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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두언] 인류의 미래에 어떻게 기여할 것인가 / 윤종갑
[71호] 2017년 09월 01일 (금) 윤종갑 본지 편집위원

   

윤종갑
본지 편집위원

한 치 앞도 내다볼 수 없는 것이 세상살이이다.

누가 박근혜 전 대통령이 탄핵을 받고 지금의 수인(囚人) 신세로 전락할 줄 알았으며 또 문재인 대통령이 당선되어 대기업 총수들과 호프 미팅을 할 줄 알았겠는가? 우리는 주위 도처에서 미래의 일을 잘 알지 못해 사주풀이도 하고 점집을 기웃거리는 사람들을 본다.

부처님 당시에도 이러한 부류의 사람들이 많았던 모양이다. 이에 대해 부처님은 자신의 운명을 점이나 신에게 맡기는 것은 어리석은 행위로 보았다. 그리하여 제자들에게 “아타르바베다 주문을 삼가야 하며, 해몽을 하거나 징조를 점치거나 별을 점치거나 새소리나 동물의 소리를 점치는 일을 해서는 안 된다.”(《숫따니빠따》 927)라고 단호하게 말씀하셨다. 행복과 불행은 점이나 신에 의해 결정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과보에 의해 결정된다는 것을 강조하신 것이다.

즉, ‘콩 심은 데 콩 나고 팥 심은 데 팥 난다’라는 인과응보의 연기법이다. 모든 것은 원인에 의해서 결과가 생기는 것이며, 그 어느 것도 홀로 있는 것이 아니라 서로의 관계에 의해 존재한다는 이른바 운명공동체의 동체대비(同體大悲)를 설파하신 것이다. 한 개인의 운명뿐만 아니라 인류공동체, 나아가 우주만물이 하나의 운명체이며, 이 또한 연기법에 따라 그 미래가 결정된다는 사실이다.

인류 역사의 과거와 현재

인류 역사를 되돌아보면, 인간의 삶을 근본적으로 변화시킨 계기는 역시 산업혁명이다. 3차에 걸친 산업혁명은 삶의 지반이 되는 생산체계와 경제구조를 혁신적으로 바꾸었을 뿐만 아니라 사회구조와 국제 정세도 탈바꿈시켰다. 산업화 · 분업화에 따른 인구의 도심지로의 격심한 이동은 농촌 지역 공동체의 갑작스러운 몰락과 더불어 자본가와 노동자라는 새로운 대립적 계급구조를 출현시켰으며, 대량으로 생산된 상품을 판매하기 위한 식민지 쟁탈과 신무기로 무장한 강대국의 패권 경쟁은 끝내 두 번에 걸친 비극적 세계대전을 낳았다. 마르크스가 일찍이 예단하였듯이 산업혁명과 함께 시작된 자본주의는 부의 불평등과 인권의 착취, 약소국에 대한 강대국의 침탈 등 그 이전에는 결코 볼 수 없었던 새로운 괴물의 출현이었다. 그리고 이제 오늘날 우리는 제4차 산업혁명을 눈앞에 두고 있다.

어느 문화비평가가 표현했듯이 제4차 산업혁명은 이미 와 있는 미래이다. 대통령 후보자는 물론이고 신지식인이라면 누구나 제4차 산업혁명을 실제 경험하고 이에 감염된 듯이 부르짖고 있기 때문이다. 제4차 산업혁명은 ‘초연결성(Hyper-Connected)’ ‘초지능화(Hyper-Intelligent)’의 특성을 지니며, 사물인터넷(IoT), 클라우드 등 정보통신기술(ICT)을 통해 인간과 인간, 사물과 사물, 인간과 사물이 상호 연결된 첨단 인공지능 기술이다. 따라서 주로 육체적 노동을 대신하던 이전의 산업혁명과는 차원을 달리한다. 인간의 전유물로 여겼던 지능은 물론이고 자유의지와 정서적 감정까지도 갖추어 스스로 판단하는 인공지능이 나타난다면, 그 존재는 기계인지 인간인지, 아니면 인간과 기계가 합성된 ‘기계인간’이라는 새로운 종의 출현인지 규정하기가 쉽지 않다.

이처럼 첨단 과학기술은 인간과 기계의 경계를 점차 지우고 있으며 신의 전유물로 여겨지던 인간의 생명까지도 관장하게 되었다. 배아복제, 이종 간의 장기이식, 인공장기 대용이 가능하게 되었으며 크리스퍼(CRISPR) 유전자가위 기술로 인해 열등한 유전자를 잘라 내고 우수한 유전자를 주입해 ‘맞춤 아기(designer baby)’를 생산해 낼 수 있는 시대가 열린 것이다. 그 결과 앞으로의 인류는 인간 대신 기계인간 또는 이종인간이 이끌어가는 시대가 될지도 모른다. 여기서 우리는 인상파 화가 고갱이 인류의 미래를 걱정하며 자신의 작품에 붙인 그림 제목을 떠올리지 않을 수 없다. ‘우리는 어디서 왔는가, 우리는 무엇인가, 우리는 어디로 가는가?’

인류의 미래와 부처님의 가르침

부처님은 인간사회의 과거, 현재, 그리고 미래의 모든 문제를 인간 자신의 내면에서 찾으려고 했다. 사회현실은 인간 내면의 반영으로서 사회적 모든 문제가 그 시대를 살아가는 인간들의 소행으로 인한 것임을 간파하였기 때문이다. 그러한 내면의 소행 가운데서도 탐 · 진 · 치 삼독으로 인한 불행을 가장 치명적인 것으로 여겼다. 삼독이 이 세상을 불태우는 불행과 고통의 직접적인 원인이라는 걸 깨달으신 것이다.

비구들이여, 모든 것은 불타고 있다. 무엇이 모두 불타고 있는가? 눈이 불타고 있고, 눈에 보이는 것들이 불타고 있고, 눈으로 느끼는 것이 불타고 있고, 눈에 닿는 것이 불타고 있고, 눈의 닿음에서 일어나는 느낌인 즐거움과 괴로움, 즐겁지도 않고 괴롭지도 않은 것들이 불타고 있다. 무엇으로 불타고 있는가? 욕망[貪]으로 불타고, 증오[瞋]로 불타고, 어리석음[癡]으로 불타고 있다. 생로병사 · 슬픔 · 괴로움 · 절망으로 불타고 있다.(《율장》 1-4)

나의 삼독을 제거하여 나뿐만 아니라 세상을 행복하게 하는 것, 그것이 바로 부처님의 핵심 가르침이다. 이처럼 내면의 성품을 중요시한 부처님이었지만 기술도 결코 부정하지 않았다. 초기경전인 《숫따니빠따》(261)를 보면, 오히려 “널리 많이 배우고 기술을 익힐 것”을 권장하고 있다. 그리고 이와 함께 “높은 수련과 수행”을 닦을 것을 당부하였다. 기술도 중요하지만 그 기술을 사용하는 인간의 자질과 성품을 중요시한 것이다.

인류는 3차에 걸친 산업혁명에도 불구하고 부의 불평등은 심화되고 국가 간의 경쟁은 치열해졌으며 지구 환경은 더욱 황폐화되었다. 과학기술이 발전함에도 불구하고 인류는 오히려 불행해지는 딜레마에 빠진 것이다. 무엇이 문제일까? 이 문제에 대한 해답이 이 글 서두에서 제시한 불교의 연기법이다. 기술이 아무리 발전하여도 선인선과 악인악과(善因善果 惡因惡果)의 연기법을 벗어날 수 없기 때문이다. 인간은 과학기술을 통해 주변의 환경을 바꾸는 데 전력해 왔지만, 정작 자신의 성품을 바꾸는 데는 무심하였다. 지금까지와 마찬가지로 탐 · 진 · 치 삼독에 기반한 산업혁명이 계속된다면 인류는 오히려 더 불행을 자초하게 될 것이다. 이것은 몇 차례에 걸친 산업혁명이 인류에게 남긴 소중하고도 뼈아픈 교훈이다.

인류의 행복을 위한 부처님의 가르침은 명확하다. 삼독의 불길을 여읠 때, 이 세계는 진정 평화롭고 행복해질 수 있다는 사실이다. 모든 존재가 서로 화합하고 공생하는 동체대비의 공동체가 자연스레 형성되는 것이다. 그렇게 되면, “땅에 있는 것이나 하늘에 있는 것이나 모든 존재들은 다 행복”(《숫따니빠따》 222)하게 될 것이다.

지금 한국불교계는 제4차 산업혁명을 화두로 그 실상 파악과 불교적 활용 가치에 몰두하고 있다. 여기서 되새겨야 할 점은 불교적인 관점에서 제4차 산업혁명을 해석하고 이해하여 그 변화에 제대로 대응하고 적응하는 것뿐 아니라 그 변화의 방향을 올바르게 제시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는 사실이다.

그리고 그 방향의 제시는 부처님의 가르침에 입각해서 이루어져야 하며, 제4차 산업혁명이 초래할 긍정적인 측면보다는 부정적인 영향들을 직시하여 예방하는 일이다. 그리하여 “과거를 불살라버리고 미래도 한쪽 옆으로 치워놓고 현재에도 집착으로 움켜쥐지 않으면 평화로운 평온한 길을 유행(遊行)하게 될 것이다.”(《숫따니빠따》 949) 그것이 바로 지속가능한 인류의 발전과 행복을 위해 이 시대에 되새겨야 할 소중한 불교적 지혜이다.


2017년 9월
윤종갑(본지 편집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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