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니크한 시각으로 해석한 불교 교리

이단의 역사로 보는 불교사

불교를 철학하다
이진경 지음 / 휴

일본의 불교학자 마스다니 후미오(增谷文雄)는 일찍이 불교와 기독교의 역사를 비교하며 각기 ‘이단의 역사’라고 정의한 적이 있다. 말하자면 기독교의 역사가 꾸준히 정통에서 벗어난 생각들을 이단으로 규정하고 배제하면서 자신들의 정체성을 형성해온 데 반해, 불교의 역사는 전승된 가르침에 끊임없이 새로운 해석을 더하면서 이단에서 이단으로 발전해왔다는 말이다.

사실 신화와 전설의 시대에서 벗어나 도시문명이 발달하고 도시 간 교역이 증대되면서 인간과 인간의 경험이 폭넓게 교류되던 시기에 창시된 불교는 당시까지 주류사상이었던 바라문교 가르침의 형이상학적 허점들을 지적하면서 인간 삶의 현실을 냉엄한 관찰을 통해 펼쳐 보였다. 그래서 인도에서는 오래전부터 《베다》의 권위나 사물의 본질(ātman) 등에 대해 적극적으로 긍정하는 바라문 전통사상의 흐름을 아스티카바다(āstika-vada, 有論)로 분류하면서 불교는 육사외도(六師外道)와 함께 그 반대인 나스티카바다(nāstika-vada, 無論)라고 규정하였다.

그리고 그런 사실은 현대철학자 화이트헤드의 “나 이전의 서양철학은 모두 플라톤의 각주(脚註)에 불과하다”는 말을 떠올리게 한다. 다시 말해 플라톤 이래 모든 현상 안에 내재하는 본질을 전제하고 전개돼온 서양철학에서 그 본질이라는 것이 부정되기 시작한 것으로, 이것은 서양의 현대철학이 점점 더 불교적인 사유로 근접하게 되는 이유라고 생각된다.

그렇다면 나스티카바다로 규정되는 불교의 특징은 무엇일까. 천변만화하는 현상에 하늘, 땅, 사람 등의 개념들을 부여하고 각각을 구별하고 분류하여 생각하고 대화하는 우리의 일상적인 상식을 넘어서서 각 개념의 허구성을 지적하고 삶의 현장에서 벌어지는 실상을 직접 깨우치라고 하는 것이다. 따라서 일단은 다른 수단이 없으니 언어를 통해 설명하지만, 언어에 집착하는 태도 역시 불교적이지 않기에 끊임없이 새로운 언어로 재해석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 대표적인 표현이 중국 선불교의 공안(公案)들일 것이다.

그런데 최근 발간된 책 이진경 지음 《불교를 철학하다》가 어떤 면에서 이런 불교의 전통을 제대로 잇고 있는 것이 아닌가 생각되어 이 리뷰를 쓰기로 했다. 내가 이 책에 특별한 흥미를 느끼게 된 것은 두 가지 점에서이다. 첫째는 저자 이진경의 범상치 않은 이력과 둘째 목차만 보면 연기, 무상, 인과 등 불교의 대표적인 교리들을 나열하고 있어 일종의 개설서로 보이지만, 풀이의 방식이 전혀 새롭기 때문이다.

책의 지은이 이진경이란 인물

2016년 12월 9일 한국불교학회에서 주관한 동계 학술 워크숍 ‘저자로부터 듣는 나의 불교학’에 발표자로 참여했던 저자는 스스로를 ‘국가 공인 빨갱이’라고 우스갯소리로 소개할 정도로 평탄치 않은 삶을 살아온 사람이다. 책에서 밝히고 있는 것처럼 “전태일과 광주 시민들의 유령이 떠돌던 시절에 대학에 들어가, 그 유령들에 홀려 뜻하지 않게 강의실 아닌 거리에서 대학 시절을 보냈고, 대학을 마칠 무렵엔 혁명을 꿈꾸는 지하생활자가 되었다”고 한다.

그리고 “1990년, 감옥에서 겪은 현실 사회주의의 붕괴를 통해 희망이 절망의 다른 이름임을 알게 되었고, 그때 얻은 물음들을 들고 여러 영역을 넘나들며 답을 찾고 있다”고 한다.

이런 그의 이력을 쉽게 추적해볼 수 있게 해주는 것이 그가 그동안 써놓은 책들이다. 가장 유명한 것은 1987년 발간한 《사회구성체론과 사회과학방법론》으로, 이 책은 당시 대학가 운동권에서 교과서 대접을 받았고 그때 얻은 유명세로 자신을 숨기기 위해 썼던 이진경이란 가명으로 계속 저술활동을 하게 되었다고 한다.

아무튼 스스로 밝히듯이 자본주의와 근대성에 대한 이중의 혁명을 꿈꾸며 썼다는 《철학과 굴뚝청소부》 《맑스주의와 근대성》 《근대적 시공간의 탄생》 《수학의 몽상》 《철학의 모험》 《근대적 주거공간의 탄생》 《필로시네마, 혹은 탈주의 철학에 대한 10편의 영화》 등이 있고, 사회주의 붕괴 이후 새로운 혁명을 모색하며 마르크스, 푸코, 들뢰즈, 가타리 등과 함께 사유하여 지었다는 《노마디즘》 《철학의 외부》 《자본을 넘어선 자본》 《미래의 맑스주의》 《외부, 사유의 정치학》 《역사의 공간》 등과 《코뮨주의》 《불온한 것들의 존재론》 《뻔뻔한 시대, 한줌의 정치》 《만국의 프레카라이트여, 공모하라!》(공편) 《삶을 위한 철학수업》 《파격의 고전》 등 책 이름만 나열해도 그의 정신세계가 결코 만만찮은 영역을 넘나들고 있음이 짐작된다.

그런데 그가 불교에 관심을 갖게 된 것은 그 스스로 머리말에서 밝혔듯 “가장 멀리서…… 덮쳐온 하나의 사건”이었다고 한다. “어머니가 열심히 절에 다녔지만, 한 번도 절에 가본 적이 없었고, 무언가 철학적 향기가 느껴지긴 했지만 찾아서 읽어볼 생각은 전혀 하지 못했으니까”라며. 그가 처음으로 불교 서적을 접한 것은 누군가에게 받았을 것으로 기억하는 성철 스님의 강의록이었고, 이어서 《벽암록》을 보았는데 “처음부터 끝까지 한 문장도 이해할 수 없었지만, 책의 마지막 쪽을 넘길 때까지 손에서 떨어지지 않는” 황당한 경험이었다고 한다.

그러나 그 후 책의 본문 속에 기술하고 있는 어떤 개인적인 사건을 겪으며 불현듯 머리를 밀고(출가한 것은 아니고) 불교에 집중하게 되었다며 이런 회상을 하고 있다.

‘아상’에 대해, 그 아상이 만드는 세계의 일방성에 대해 눈을 돌리게 되었고, 그로 인해 ‘무아’를 설하는 철학에 ‘정신없이’ 빨려 들어갔다. 그저 세상을 향해 분별하고 재단하던 시선을 비로소 나 자신을 보는 데, 나 자신이 만든 세상의 협소함을 보는 데 쓸 수 있게 된 것이다. 이전에 읽고 생각하고 행하던 모든 것, 가령 ‘차이의 철학’이니 ‘공동체’니 하는 것들이 무아의 철학 없이는 공허한 것이 될 것임을 직감했고, 그 직관 속에서 그것들 또한 변성되기 시작했다.

이렇게 해서 상당 기간 불교를 사색하고 2015년 1년 동안 〈법보신문〉에 연재했던 기사를 토대로 펴낸 것이 《불교를 철학하다》이다. 그는 현재 박태호라는 본명으로 서울과학기술대 기초교육학부에서 강의하고 있다고 한다.

21세기 불교를 위한 하나의 초상

이 소제목은 《불교를 철학하다》라는 책 제목에 붙여진 부제이다. 말하자면 불교의 주요 사상들을 해설하되 철두철미하게 저자의 견해로 소개하겠다는 의지로 보인다. 그래서인지 책의 뒷 커버에는 ‘철학자 이진경이 불교를 바라보는 시선’이라는 문구를 싣고 있다. 또한 많은 경우 경전의 전거를 인용하여 개념을 설명하는 일반적인 불교 서적과 달리 과학과 서양철학, 예술, 생리학과 진화론 등이 풍부하게 불교사상을 해부하는 소재로 등장하고 있다.

예를 들면 첫 장에서는 ‘나의 본성은 내 이웃이 결정한다’는 제목으로 연기(緣起)를 설명하고 있는데, 바이올린에 변하지 않는 본성[自性]이 없다는 의미로 백남준이 바이올린을 끈에 묶어 뉴욕의 아스팔트 위로 몇 시간 질질 끌고 다닌 일화를 소개한다. 그리고 역시 백남준이 1960년대 독일에서 벌인 퍼포먼스를 이야기하는데, 천천히 바이올린을 들어 올려 빠르게 내리쳤다는 것이다. 그때 바이올린의 처참한 변신을 보다 못해 “그만!” 하며 비명을 지른 관객이 있었는데, 그는 드레스덴오케스트라의 바이올린 수석주자였다고 한다. 말하자면 바이올린은 좋은 연주자를 만날 때만 아름다운 소리를 내는 악기이고, 카페의 벽에 걸려 있으면 단순한 장식물이며, 단하(丹霞) 스님 같은 이를 만났으면 대웅전 목불과 더불어 보기 좋게 장작이 되었을 것이란 이야기이다.

마찬가지로 무상(無常)을 설명하면서는 들뢰즈의 차이의 철학을 이용하는데, ‘세상에 동일한 두 장의 나뭇잎이 없음에도 은행잎이란 말로 수많은 나뭇잎을 동일시하는 것은 어떤 특징이나 형태, 양상의 반복 때문’이라고 한다. 말하자면 무상을 철저히 관조한다 함은 어제의 나와 오늘의 나도 다르다는 사실을 직시해야 하며, 나아가 정치적인 입장에서는 동일성의 권력으로부터 벗어나 모든 이들의 차이를 인정해야 열린 세계로 나아갈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부처님이 신분의 차별을 두지 않고 제자들을 받아들이고 심지어는 앙굴라마라조차 승단에 받아들인 일이 ‘동일화하려는 의지의 다른 이름인 애착과 집착으로부터 각자의 삶을 벗어나게 하려는 윤리학적 관심에 따른 것’이라고 한다.

또한 인과(因果)를 해석하면서는 분석적 인과성과 연기적 인과성을 나누어, 과학 대부분이 추구하는 분석적 인과는 초기 조건의 차이를 부차적으로 보고 ‘동일한 조건이라면’이라는 말로 추상하여 보편적 인과성을 찾고자 하는 것에 비해, 연기적 사유에 의한 인과란 초기 조건의 차이에 따라 인과 작용이 크게 달라지는 나비효과를 들어 카오스 이론으로 설명하고자 한다. 그래서 이렇게 이야기한다.

수많은 요인이 물고 물려 하나의 결과를 만들어내는 것이기 때문에 폭풍의 연기적 조건을 이루는 몇 가지가 있다고 해서 항상 폭풍이 부는 건 아니다. 생명의 진화과정을 비디오테이프처럼 역으로 감아 다시 돌린다면 역사가 똑같이 진행되어 결국 ‘인간’이란 생물이 출현하는 일은 일어날 가능성이 거의 없다는 고생물학자 스티븐 굴드의 말은 이런 의미다.

또 공(空)에 대해서는 다음과 같이 설명하며 줄기세포를 예로 든다.
공이란 개념은 연기란 개념과 짝을 이룬다. 어떤 것이 음식물이나 생명체가 되게 하는 것이 연기적 조건이라며, 어떤 연기적 조건과도 만나기 이전의 상태가 공이다. 그렇기에 어떤 것의 본성이 ‘공’함을 본다는 것은 텅 빈 허공을 보는 것도, 아무것도 없는 무를 보는 것도 아니다. 그것이 만나게 될 연기적 조건에 따라 얻게 될 규정 가능성을 보는 것이고, 그 조건에 따라 얼마든지 다른 것이 될 수 있는 잠재성을 보는 것이다. 공성을 본다 함은 수많은 규정 가능성을 향해 열려 있음을 보는 것이고, 최대치로 열린 잠재성 속에서 어떤 것을 보는 것이다.

불교학을 전공하지 않은 이의 불교에 대한 진지한 사색이기에 전공자들에게 생소한 면이 있기도 하지만, 오히려 무한한 상상력을 불러일으키는 책이라 아니할 수 없다. ■

 

이영근
출판평론가. 동국대 불교학과를 졸업하고 동 대학원 불교학과 석사과정을 수료했다. 불교서적 출판과 디자인 작업에 종사했다. 현재는 더 많은 이들과 불교로 소통할 수 있는 방안을 모색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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