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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글대장경 역경사업의 문제점과 과제
박종린 동국역경원 역경위원
[26호] 2006년 03월 10일 (금) 박종린 동국역경원 역경위원 겸 편찬차장

들어가는 말

부처님의 참된 가르침이야 마음으로만 전할 수 있는 것이긴 하지만, 마음이 활짝 열리지 않은 사람에게 마음으로의 대화는 불가능하다. 마음과 마음간의 대화가 불가능할 때 대체 수단으로 가장 좋은 것이 말과 글이다. 그 중에서도 글은 시공(時空)을 넘어 오래도록 참마음을 전할 수 있는 효과적인 수단이다. 부처님의 가르침이 인도에서 중국을 거쳐 이 땅에 전해지기까지 글이 한 역할은 지대하다 하지 않을 수 없다. 범어(梵語)가 한자(漢字)로 번역되고, 이것이 다시 우리말로 바뀌는 역경(譯經)의 과정을 통해서 우리는 부처님과 부처님의 가르침, 그리고 그 제자들의 음성을 고스란히 간접 경험하게 된다. 번역이라는 언어변환의 과정을 그치지 않으면 그 마음을 알 수 없었음을 생각해 볼 때 역경사업의 중요성은 새삼 들먹일 필요가 없다.

부처님의 말씀이 이 땅에 한자로 도입되어 여지껏 내려오다 한글로의 변환이 이루어졌던 시초가 조선조 세조 때의 간경도감(刊經都監)을 통한 언해본의 간행에서 비롯되었고, 근세에 와서 백용성스님이 삼장역회(三藏譯會)를 조직해 금강경, 화엄경을 비롯한 여러 경전과 율장과 논서들을 번역하였지만 대규모적이고 본격적인 한글화 작업이 시도된 것은 동국역경원을 통한 한글대장경의 간행이라고 할 수 있다. 부처님의 가르침에 대한 말만 있고 글이 없다가 한글대장경을 통해서 비로소 부처님의 말씀다운 말씀이 일반에게 널리 알려졌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만큼 역경원의 한글대장경 작업은 큰 의미를 지닌 일이라 아니할 수 없다.

동국역경원이 발족된 것이 1964년이고 그 이듬해 『장아함경』을 필두로 『한글대장경』이라는 이름의 경전들이 속속 간행되기 시작했다. 그 흐름이 면면히 이어져 마침내 2001년 37년이라는 긴 역사 끝에 318책으로 된 한글대장경이 완간되게 되었다. 겉모습은 그럴듯하지만 속 내용을 보면 초창기의 뜨거운 관심과 애정은 다 사라져 버리고, 동국역경원이라는 기관은 겨우 명맥만 유지한 채 오늘에 이르고 있다. 이 기관에 몸담고 있는 실무자의 한 사람으로서 왜 이렇게 밖에 될 수 없는가에 대한 안타까움과 아쉬움이 진하게 배어 있음을 고백하지 않을 수 없다. 제 부끄러움을 무릅쓰고 더 나은 기관으로 거듭나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역경사업의 지난날을 돌아보고 앞날을 진단해 보고자 한다.

2. 역경원의 과거와 현재

비구ㆍ대처 간의 오랜 분규를 끝내고 1962년 통합종단이 발족되었을 때 새불교운동의 3대 지표의 하나로 설정된 것이 역경(譯經)사업이다. 나머지 두 가지, 즉 도제양성(徒弟養成)과 포교(布敎)사업은 역경사업이 충실하게 이루어졌을 때 효과를 거둘 수 있는 부수적인 일이라고 할 수 있을 만큼 역경사업은 시급하고도 중요한 일이 아닐 수 없었다. 이런 중요성 때문이기도 하지만 역경원이 발족될 당시 역경사업에 대한 종단 안팎의 관심과 열의는 놀라울 정도였다. 그 배경에는 초대 역경원장을 지내신 대강백 운허스님이 계셨고, 청담스님, 석주스님, 자운스님, 관응스님, 탄허스님, 경산스님 등 고승대덕 스님들과 김법린, 조명기 박사 등 당대의 쟁쟁한 재가불자들의 참여와 후원에 힘입은 바가 컸었다.

동국역경원이 처음 문을 열면서 만든 취지문이 있는데, 그 취지문에서 당시 역경사업에 대한 사뭇 비장한 의지와 각오를 엿볼 수 있다. 그 일부를 여기 옮겨 본다.

간지스 강변(江邊)에서 장엄(莊嚴)하게 울려 퍼지던 부처님의 목소리가 메아리 친지도 아득히 천육백년(千六百年)! …

최근에 이르러 이 역경에 대한 관심(關心)이 날로 짙어지고 있음에 따라 몇몇 경전(經典)들이 옮겨지고 있으나 그것은 아무런 계획성(計劃性)도 없는 질서(秩序) 이전의 작업에 지나지 않는다. …

간지스 강변에서 메아리치던 그때의 그 뜻을 귀에 익은 오늘의 우리 목소리로 바꾸어 돌려주자는 것이다. … 겨레의 가슴의 이 뜻을 전한다.

마지막 구절처럼 온겨레의 가슴에 부처님의 가르침을 전하고 싶었을 정도로 그 초심의 비장한 결의가 있었기에 지금까지 숱한 어려움 속에서도 그 명맥을 이어올 수 있지 않았나 싶기도 하다. 그간 종단의 수많은 파란과 곡절 속에서도 이 정도나마 역경사업을 펼칠 수 있었고 역경원이 존속해 올 수 있었던 것은 부처님의 가피가 있었음은 두말할 필요가 없거니와 역경사업에 대한 원력과 열정이 그 만큼 컸기 때문이었다고 볼 수 있다.

그러나 지금의 역경사업은 그 때처럼 종단 차원에서 추진하는 것도 아니고, 그때 보다 인적 물적 자원이 풍부한 것도 아니고, 도리어 더 위축되고 축소되어 버렸다고 할 수 있다. 이런 상황에서 현재 역경원의 번역시스템에 대해 언급한다는 것은 별 의미가 없다고 생각된다. 왜냐하면 역경사업을 시작한지 40년이 넘었으면 긴 연륜에 걸맞게 기구의 확충과 안정적인 재정확보를 바탕으로 원활한 사업 수행이 이루어지고 있을 때 가능한 이야기이기 때문이다. 현재 역경원의 상황은 전혀 그러하지 못하기 때문에 그에 대한 언급보다는 역경원 출범 당시를 돌아보며 그때와 관련지어 앞으로를 생각해 보는 것이 더 낫지 않을까 싶다.

1). 역경위원회(譯經委員會)의 설치

통합종단 대한불교조계종에서 역경사업을 시작하기로 결의가 된 후 종정 직속기관으로 설치한 기구가 역경위원회이다. 역경위원회는 동국역경원이 공식 출범하기 전인 1963년 1월에 가동되기 시작했다. 역경위원회에서 번역할 대장경의 목록을 작성하고 문제가 될 범어표기법 및 번역용어의 제정, 재원의 조달, 역장(譯場)의 설치 등 여러 문제를 논의하게 될 실질적인 기구인 셈이다. 역경위원회 위원장에 운허스님이 위촉된 것은 물론이다. 예나 지금이나 가장 큰 문제는 역경사업 추진을 위한 재원조달이 문제가 되었고, 당시 새로 출범한 통합 종단은 만성 부채에 시달리고 있었기 때문에 역경사업에 자금을 지원할 여력이 없었다.

그 때 마침 정부에서 고전국역사업(古典國譯事業)에 관심을 갖고 추진 중이었기 때문에 역경사업을 고전국역사업의 일환으로 국고지원을 받는 쪽으로 가닥을 잡게 되었고, 그 최선책으로 공신력 있는 학교기관인 동국대학교에 역경원을 둠으로써 국고지원이 용이하게끔 하였다. 역경원이 종단기구이면서도 동국대에 둔 이유가 이러했다. 역경원이 그간의 실적이 없었음에도 국고를 신청하고 지원받을 수 있었던 데는 무엇보다도 대학의 부속기관이라는 신뢰도가 큰 작용을 하였다. 그 결과 1965년에 신청한 국고가 국회를 통과하여 이듬해부터 지원되기 시작해 한글대장경 간행사업이 순탄한 행로를 걷을 수 있었다.

2). 역경사(譯經士) 양성과 역장(譯場)의 설치

초기 역경위원회는 6개의 분과로 나누어졌고, 그 명칭과 위원장은 다음과 같다. 기획위원회(석주스님), 번역위원회(운허스님), 증의위원회(자운스님), 윤문위원회(법정스님). 운영위원회(범룡스님), 유통위원회(석정스님) 등이고, 이와는 별도로 번역된 원고의 출판여부를 결정하는 원고심사위원회(운허스님)를 두었다. 이 6개 분과위원회 위원으로 선임된 사람들의 면면을 보면 불교계 내부의 저명한 스님과 재가자들이 포함되었음은 물론이고, 외부의 쟁쟁한 학자와 전문가들이 대거 참여하였다. 그 중에는 이름만 들어간 사람도 있었지만 실질적으로 활동한 사람들이 많았다. 이분들의 활동이 오래도록 지속 되지는 않았지만 한동안 적극적으로 참여하고 의견을 개진했음을 알 수 있다.

이 중에서 실질적으로 이름처럼 제대로 가동된 분과는 번역과 증의(證義)와 윤문분과 위원회라 할 수 있다. 이들 세 분과는 역경사업의 1차적인 임무를 담당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번역과 증의와 윤문의 세 과정이 유기적인 체계속에서 충분히 이루어지지 못하고 말았다. 인력과 시간의 부족과 경비절감 차원에서 이 세 과정을 오래 지속시키기 어려움은 당연한 일이었는지도 모른다. 지금도 명목상 이 세 단계를 거쳐 원고가 완성되는 것으로 되어 있으나 증의와 윤문과정은 생략한 채 번역만 의뢰하고 있는 실정이다. 증의와 윤문은 내부에서 교정 작업과 함께 수행하고 있다. 이 두 과정을 충실히 수행하기 위해서는 전문인력과 재정확보라는 두 가지 문제가 해결되어야만 하는데, 예나 지금이나 그럴만한 여력이 없었음은 짐작이 가고도 남는 바다.

지속적인 역경사업을 수행해 나가기 위해서는 가장 선결되어야 할 과제가 역경전문인력을 양성하는 문제였다. 역경원 개원 당시 고려대장경은 물론 고려대장경에 포함되지 않은 삼장(三藏)과 한국고승찬술 불서를 모두 번역하려면 최소 50년은 걸린다고 보고 이를 감당할 인력을 양성코자 역장(譯場)을 두어 역경연수생을 배출하려는 계획을 세웠다. 당시 역경위원들이 대부분 50세를 넘은 고령자들이어서 향후 오래지 않아 역경사 부족으로 큰 어려움에 부딪칠 것에 대비한 조치였다. 그래서 제1차 역경사 양성소를 수원 용주사에 개설하고 50세 미만의 연수생 15명을 받아 2년간의 교육을 통해 배출토록 했다. 그러나 이 역시 연수생의 침식과 제반 경비를 감당해야 하는 용주사측과의 마찰, 인근 공군비행장의 소음, 역경원이 있는 서울과 멀리 떨어진 지리적인 여건 등으로 인해 역장을 옮기지 않을 수 없었다.

그 사이 역장을 이리저리 옮기다 뚝섬 봉은사에 두었으나 봉은사는 사찰 토지문제로 내홍을 겪으며 그 문제 해결에 골머리를 앓는 바람에 역장 운영에 신경을 쓸 수가 없었다. 이렇게 해서 제1회 역경사 양성사업은 1968년 11월 당초 2년의 연수기간 보다 6개월이 짧은 1년 반의 연수과정을 거쳐 9명에게 역경사 연수증을 주는 것으로 끝을 맺고 말았다. 이듬해 여름 기존 역경위원들과 이들 연수교육을 수료한 사람들이 봉은사에 모여 1주일 동안 그동안 번역된 경전과 시역고(試譯稿)를 바탕으로 역경의 실제를 점검하는 ‘역경사를 위한 역경 연수회’를 가지는 것으로 역경사 양성을 위한 공식적인 일은 문을 닫고 말았다. 그 후에도 ‘동국역경원역장(東國譯經院譯場)’이라는 현판이 십 수 년 간 붙어있었으나 어느 날엔가 이마저도 봉은사에서 사라지고 말았다.

3). 번역사업과 역경예규(譯經例規)의 제정

번역을 위해서는 원칙이 정해지게 마련이다. 번역에 앞서 이 규칙을 제정하고 이 규칙에 따라 원고를 정리하고 교정작업을 거쳐 출판하게 된다. 당시의 역경위원들은 대부분 고령이었고, 한문에는 능했으나 한글의 어법과 표현에는 밝지 못했기 때문에 일정한 규칙을 제정하지 않으면 안 되었다. 이렇게 만들어진 것이 역경예규이다. 역경예규는 역경작업을 일관성 있게 하자는데 뜻이 있었다. 역경예규의 작성은 개원 이후 한글대장경 제1집 장아함경을 출판함에 있어 반드시 필요한 작업이었다. 당시 이 역경예규를 만드는 데는 저명한 국어학자인 외솔 최현배, 일석 이희승 박사 등이 참여 하였고, 운허스님, 법정스님, 김달진 시인, 서경수 교수 등이 중추적인 역할을 하였다. 40년이 지난 지금 당시의 역경예규를 보면 제대로 된 번역문을 만들기 위해 얼마나 애를 썼는가 하는 흔적이 역력히 보인다.

“문장은 순한글로 쓰되 고유명사나 범어(梵語), 번역하기 어려운 한자 술어인 경우, 처음 나올 때만 해당하는 한자를 괄호 안에 표기함을 원칙으로 한다,” “문장은 구어체 현대문을 사용한다.”는 등의 원칙을 제정했다. 특히 당시로는 획기적인 일로 ‘범자(梵字)의 한글화 표기법’을 제정하여 범어로 표기된 말은 가능한 원어를 따라 표기하도록 하였다. 지금도 범어표기법에 대한 학자들의 견해차로 인한 혼란 때문에 한자음을 그대로 따라 적는 방법을 취하고 있는데 벌써 40년전에 원음에 충실하기 위한 범어표기법을 마련했다는 것은 상당히 진보적인 생각이라 아니할 수 없다.

또 하나 중요한 일은 사용빈도수가 높은 중요 불교 용어 270개(나중에 600여개로 추가함)에 대해 우리말로 풀어썼다는 점이다. 역경위원과 국어학자들이 참석한 역경용어심의회(譯經用語審議會)를 두고 불교용어를 우리말로 바꾸는 노력을 함께 기울였다. 지금 보면 이렇게까지 풀었어야 했을까 하는 말들[예로 생사(生死)를 ‘죽살이’, 윤회(輪廻)를 ‘바퀴돌이’로 표현함]이 많아 쓴웃음이 나오기도 하지만 그 노력과 열정만큼은 높이 평가하지 않을 수 없다 하겠다. 지금은 이러한 말들이 순우리말로 정착되지 못하고 사장(死藏)되는 바람에 도리어 한자음으로 회귀하고 말아 그런 노력이 있었는지 조차 아는 사람이 드물 정도가 되었다. 이밖에도 운허스님께서는 진언집(眞言集)을 보고 다라니 표기법도 제정하였는데, 지금도 다라니를 한글화할 때는 당시 제정된 그대로를 따른다.

4). 역경사업의 제문제

역경사업이 원만하게 이루어지려면 다음과 같은 몇 가지 문제점들이 시정되고 해결되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이 문제의 해결은 요원하고 역경사업은 그야말로 역경에 처한 골치아픈 일에 불과할 뿐이다.

(1) 말과 글의 중요성 인식 부족

역경사업이 지지부진하고 제대로 되지 않는 가장 큰 요인은 말과 글의 중요성에 대한 인식 부족을 꼽을 수 있다. 이는 비단 역경사업에만 국한되는 문제는 아니다. 우리나라 불교 전반에 걸친 문제이기도 하지만 역경사업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기 때문에 거론하는 것이다. 불교는 마음의 종교이고, 깨침의 종교이다. 불교의 궁극적인 목적은 마음을 깨쳐 부처가 되는데 있다. 가장 바람직하고 이상적인 인간인 부처가 되기 위해서는 마음을 깨치지 않으면 안된다. 말과 글은 마음을 표현하는 도구이다. 마음은 말과 글을 넘어서는 존재이고, 궁극에 가서는 말과 글로 표현될 수 없는 그 무엇이긴 하다.

그러나 한편으로 마음은 말과 글을 떠나서는 그 존재 자체를 증명할 수 없는 한계가 있다. 그러므로 마음을 드러내고 표현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말과 글을 동원해야 한다. 이 점에서 한국불교는 뼈저린 반성을 해야 한다. 마음의 깨침을 위해서는 말과 글이 없어서는 안될 중요한 수단임을 강조하고, 또 그렇게 실천했어야 했다. 그러지 못한 결과가 오늘의 한국불교와 불자들을 우상 앞에 절하고 복을 비는 어리석은 무리들로 매도되게끔 만들었다. 마음만 중요하지 말과 글이 중요하다는 생각에 철저하지 못했기 때문에 이 정도로 밖에 알리지 못했고 역경사업 역시 용두사미가 되어 버리고 말았다. 부처님의 가르침을 제대로 된 글로 옮기고, 이를 바탕으로 제대로 된 말을 많이 할 때 불교가 살아나는 것은 물론이고, 역경사업도 활발하게 전개될 것이다.

(2) 역경사의 부족

역경원의 경전 번역 작업은 한문으로 된 전적을 우리말로 옮기는 일이다. 산스크리트어나 팔리어로 된 경전을 우리말로 옮기는 작업도 해야 하지만 현재로서는 그만한 여력이 없을뿐만 아니라 다른 데서 하고 있기 때문에 굳이 우리가 나설 필요까지는 없다. 대신 방대한 분량의 한문으로 된 전적들을 우리말로 옮기는 일이 시급하고 중요하다. 이를 위해서는 한문실력이 출중하고 불교 전반에 걸쳐 해박한 지식을 보유한 역경사가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앞에서 보았듯이 역경원 개원 당시부터 역경사 양성의 중요성을 깨닫고 그 일을 벌리고자 했으나 여러 가지 이유로 좌절되고 말았다.

그때만 해도 한문을 쓰고 배우는 사람이 그래도 많은 편이었으나 지금은 한문 시대가 아니다 보니 한문에 능통한 사람이 극히 드문 형편이다. 따로 제도적인 장치를 마련해서 양성하지 않으면 갈수록 심각한 문제가 아닐 수 없다. 그냥 막연한 심정으로 어떻게 되겠지 해서는 세월만 갈뿐 해결되지 않는다. 돈도 중요하지만 일은 결국 사람이 한다. 훌륭한 역경사 없는 역경사업의 수행은 한낱 말의 유희에 지나지 않을 뿐이다. 만시지탄이지만 지금이라도 역경사를 양성할 수 있는 바탕이 마련되어야 한다. 늦으면 늦을 수록 역경사업은 역경(逆境)의 수렁으로 빠지게 된다. 불교학의 진흥을 위해서라도 역경사의 양성은 필수불가결한 일이다.

(3) 재정확보의 어려움

자본주의사회에서 돈은 신이다. 신의 전지전능한 능력을 대신할 수 있게 만드는 것이 돈이다. 돈 없이 이루어질 수 있는 일은 아무것도 없다. 역경사업 역시 돈에서 자유로워 질 수 없는 일이다. 역경사업은 역경원 개원 당시부터 재정문제가 가장 큰 고민거리였다. 자체 재정확보가 안 된 상태에서 재정문제를 해결하는 길은 국고를 지원받는 것이 최선의 방법이었다.

마침 이 일의 중요성을 잘 알고 있는 불자의 도움으로 국고를 지원받게 되었고, 중간에 중단된 것이 몇 번 있기는 해도 대체적으로 국고지원이 없었다면 해낼 수 없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다. 40년이 지난 지금도 국고 지원을 받아 이 일을 벌이고 있으니 국가가 역경사업의 은인이기는 하지만 한편 생각하면 불자들이 많이 부끄러워해야 할 부분이기도 하다. 아무리 전통문화를 현대화하는 사업이라고는 해도 정부 도움 없이 불자들의 힘으로 해내는 것이 더없이 좋지 않겠는가?

재정문제 해결을 위해 역경원은 처음부터 법인화를 계획했었고, 이를 위해 기금을 꾸준히 조성해 왔었다. 초대 역경원장 운허스님께서는 70년대 중반 자체자금 1억원이 모여질 때까지만 국고지원을 받고 그 이후에는 그 기금으로 역경원을 운영하며 역경사업을 펼칠 구상을 하였었다. 큰스님의 원력에 힘입은 바가 크기도 하지만 초기 불자들의 뜨거운 동참으로 한글대장경이 많이 보급될 수 있었고, 그 결과 적립한 자체기금이 80년대 초 3억원이 넘었다. 이 자금이 모태가 되어 1984년 11월 마침내 재단법인 동국역경사업진흥회(이사장 지관스님)라는 법인체가 만들어질 수 있었다. 보다 안정적인 역경사업의 지원을 위해 역경원에서 마련한 자체자금으로 독립된 법인을 만들었던 것이다.

재단법인 설립 후 가지고 있던 돈으로 서울 방배동에 있는 빌딩을 구입했고, 지금은 시가 50억원을 호가할 정도로 자산가치가 불어나게 되었다. 물론 이 건물 임대수입금으로 역경원을 운영할 수 있는 충분한 재정 규모는 못되지만 연 3억원에 가까운 임대료 수입금은 결코 적은 돈이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역경원에 지원되는 금액은 그 십분의 일에도 못미치는 연 2천만에 불과하다. 여기에는 그간 복잡 미묘하고 우여곡절이 많아 딱히 무어라 말하기 곤란한 점은 있으나 어쨌거나 현재 재단법인 동국역경사업진흥회의 운영 주체가 역경원이 아니라는 사실이다. 지속적인 역경사업을 펼치기 위해서 역경원에서 벌어 모은 돈으로 법인을 만들었고, 그 돈이 모태가 되어 빌딩을 구입하게 되었다면 이유에 어떠하든 간에 역경원이 그 법인의 운영 주체가 되어야 하고, 또 그 수익금의 대부분은 역경원에서 역경사업을 펼치는데 사용되어야 마땅하다.

그런데도 현실은 전혀 그렇지 못하니 오늘날 불교가 이 정도로 밖에 발전하지 못하고, 역경사업이 이 모양으로 밖에 될 수 없는 요인과 모순점이 여기에 다 용해되어 있다 해도 지나친 말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참으로 어처구니없는 일이 눈앞에 벌어지고 있고, 그럼에도 이를 감내하지 않으면 안 되는 현실이 그저 답답하고 가슴 아플 뿐이다.

법인체가 번듯하게 만들어졌음에도 불구하고 역경원이 운영 주체가 되지 못하다 보니 재정난을 계속될 수밖에 없었고, 이를 타개하고자 애를 쓰는 것은 당연한 일인지도 모른다. 이런 노력의 일환으로 1995년 7월 새로이 결성된 것이 동국역경원후원회이다.

이 모임은 법인체가 아닌 순수 후원조직일 뿐이고, 모금액도 연 1억원 안팎에 불과하다. 이 모임을 활성화하기 위해 역경원장 월운스님께서는 팔순에 가까운 노령에도 불구하고 전국 방방곡곡을 누비며 역경사업에 동참해 줄 것을 호소하고 있어 보는 이들을 안타깝게 한다. 부족한 재정을 어떻게 하든 채워서 사부(師傅)이신 운허스님의 유업을 계승하고 마무리 짓기 위해 불철주야 애쓰시는 스님을 통해서 출가사문의 숭고한 모습을 발견하는 또 다른 기쁨은 있으나, 생각할수록 야속하고 서운한 마음은 지울 길이 없다.

역경사업은 우리 불자 모두의 몫이다. 불자들이 십시일반 동참해서 역경사업을 후원해야 한다. 그렇지 않고 지금처럼 국고지원에만 힘입는다거나 학생들의 등록금으로 유지되는 동국대에 의지하여 해결한다거나 해서는 곤란하다. 이것은 돈의 문제가 아니라 신심의 문제요, 불자로서 자긍심의 문제다. 내일을 내 힘으로 해결하고자 하는 주체적인 노력 없이는 잘 해결될 수 없다. 이런 이유, 저런 핑계로 밖으로 끌고 나간 재단법인 동국역경사업진흥회도 하루속히 역경원이 운영할 수 있도록 원상회복시켜야 한다. 중생인 우리가 본래 부처를 회복하기 위해 수행하듯이 모든 것이 있을 자리에 있을 수 있도록 노력하는 것이 불자의 도리가 아닐까 싶다.

3. 맺는 말

‘역경(譯經)사업은 역경(逆境)에 처한 사업’이라는 자조적인 한숨을 되 내일 때가 있다. 역경사업은 그만큼 쉽지 않은 일이기 때문이다. 잘 해봐야 본전이고, 조금만 잘못하면 욕만 바가지로 얻어먹게 되는 일이 역경사업이다. 반드시 해야 할 일이고 누군가가 나서서 해야 한다 라고 말하면서도 막상 역경사업을 후원하는 데는 인색한 불자들의 미온적이고 이중적인 태도는 여간 실망스러운 것이 아니다.

해야 할 일과 하고픈 일이 눈에 뻔히 보이는데도 할 수 없는 여러 가지 제약 때문에 마음을 접으며 체념해야 하는 이 아픔이 언제까지 지속되어야 하는지 알 수 없다. 시작은 거창하지만 돌아서면 그 열기는 금방 식어버리고 나중에는 아예 나몰라라 외면해버리는 이런 풍토 속에서 무한정의 시간과 자금을 필요로 하는 역경사업을 지속하는 일이 무모하다는 생각이 들 때도 있다. 작용이 있으면 그에 상응하는 반작용이 있어야 힘이 샘솟는 법인데 도무지 우리 불교집안에는 호응과 반응이 너무나 미지근하다.

도대체 통일된 표준 경전이 없는 종교가 불교 말고 또 어디 있다는 말인가. 천 칠백년 여년의 오랜 역사와 전통을 지닌 종교가 소의(所依)로 하는 경전의 통일된 우리말 번역이 없다는 사실이 이해가 된다고 생각하는가? 그러고도 불자로서 신행생활을 한다고 하는데, 무엇을 어떻게 믿고 하길래 여법한 신행생활이 가능한지 알 수가 없다. 말과 글에 의지함이 없이도 마음이 제대로 닦인다면 그 마음은 어떤 마음인지도 궁금하다.

그런 마음이 존재한다면 나도 그런 마음을 찾아서 닦아 깨치고 싶다. 말과 글을 소홀히 하고도 그 종교가 잘 된다면 그 종교는 더 이상 나아갈 곳이 없는 궁극의 경지에 이른 종교이거나, 아니면 타락하거나 썩은 종교일 것이다. 불교가 이 땅에서 건강한 종교로 오래도록 존재하려면 말과 글의 개발과 보급을 위해 더 많은 열정과 에너지를 쏟아 부어야 한다.

역경사업을 담당하는 중추기관인 역경원은 앞으로도 할 일이 태산 같이 많다. 지금하고 있는 한글대장경 개역(改譯) 전산화(電算化) 사업을 빨리 마무리지어서 인터넷 무상서비스를 제공해야 하며, 새로운 편제로 개편된 새한글대장경이 간행되어 나와야 한다. 대장경이라는 숲에서 부처님의 핵심적인 가르침이 담긴 경을 가려 뽑아 법회에서 활용될 수 있도록 통일된 우리말 번역 경전이 출간되어야 함은 두말할 나위가 없다. 또 고려대장경에서 빠진 중요한 삼장(三藏)을 번역해내야 하며, 우리나라 역대 큰스님들의 시ㆍ문집(詩文集)을 비롯한 찬술 불서들을 번역해 내야 하는 과제가 남아 있다.

이런 일련의 일들을 지속적이고도 원만하게 수행하기 위해서는 신심 있는 불자 단월(檀越)들의 재정적인 후원으로 역경사업 기금이 넉넉히 조성되어야 한다. 역경불사는 신심이 바탕이 되어 마련된 정재(淨財)가 아니면 이루어지기가 어렵다. 한국불교가 잘 되는 길은 역경불사가 제대로 이루어지는데 있다고 해도 지나친 말이 아닐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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