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 글은 불교평론과 경희대 비폭력연구소가 주관하는 열린논단(2017년 5월 18일)에서 발제된 내용을 정리한 것이다.

1. 미국의 무신론자

2016년 6월 4일 미국의 수도 워싱턴의 링컨 기념관 앞에서는 보기 드문 광경이 펼쳐졌다. ‘이성 집회(Reason Rally)’란 이름하에 무신론자(atheist), 인본주의자(humanist), 세속주의자(secularist) 등 (제도)종교를 거부하는 수천 명의 사람이 이곳에 모이면서 미국 역사상 가장 큰 규모의 소위 ‘무종교인들’의 집회가 열린 것이다. 이 행사의 주요 목적은 무종교인들이 자신들의 세를 외부에 과시하고, 같은 해 11월에 치러질 대통령 선거에 영향력 있는 유권자 그룹의 하나로 자신들의 위치를 다지기 위함이었다.

미국의 무종교인들 혹은 무신론자들은 2010년 이후 대사회적으로 자신들의 목소리를 높이면서 서로의 연대를 강화하고 있다. 현재 미국 사회에는 무종교인을 주축으로 다양한 명칭의 수많은 단체가 활동하고 있다. 미국 내 그룹으로는 이성 집회 연합(Reason Rally Coalition), 미국 무신론자들(American Atheists), 미국 인본주의자 협회(American Humanist Association), 미국 세속주의자 연합(American Secular Union), 교회와 국가 분리를 위한 미국인 연합(Americans United for Separation of Church and State), 미국 세속주의 연대(Secular Coalition for America), 무신론자 연합(Atheist Coalition), 세속적 휴머니즘 회의(Council for Secular Humanism), 종교로부터의 자유 재단(Freedom From Religion Foundation), 자유사상협회(Freethought Society), 세속주의자 학생 동맹(Secular Student All-iance) 등등이 있으며, 국제적으로 활동을 확대한 단체는 무신론자 국제 연합(Atheist Alliance International), 무종교자와 무신론자 국제 연맹(International League of Non-religious and Atheists), 인본주의자 국제 연맹(International League of Humanists) 등이 있다.

이들 단체의 주된 목표는 사회적 편견/차별에 맞서 무신론자들의 인권을 보장받고, 국가와 종교의 철저한 분리를 주창하면서 교회(종교집단)의 면세 직위를 박탈하고, 공교육에서 종교의 영향을 배제하는 것이다. 따라서 이들 단체는 미국 사회에서 일종의 이익집단이자 압력단체로 국회의 의사결정이나 법 제정에 영향력을 행사하고자 한다. 이들의 정치적 영향력은 2016년 12월 오바마 전 미국 대통령이 서명한 (개정된) ‘국제종교자유 법안(H.R.1150)’에 “종교와 사상의 자유는 특정 종교를 실천 내지 천명하지 않을 자유는 물론이고, 유신론적(theist) 그리고 무신론적(non-theist) 믿음을 보호하는 것으로 이해해야 한다.”는 조항에서도 간접적으로 확인된다. 즉 종교의 자유와 관련하여 처음으로 무신론자들이 보호받을 집단으로 명기된 것이다.

이와 함께 미국 학계에서 무신론 연구는 2000년 이후 활발하게 진행되고 있으며, 관련 학술지-Secularism and Nonreligion(2012~ ); International Journal of Atheism(2014~ )-가 발간되고 (국제)학술대회 또한 정기적으로 개최되고 있다. 급기야는 마이애미대학교에 세계 최초로 ‘무신론학과’가 개설된다는 기사가 2016년 5월 〈뉴욕 타임스〉에 실리게 되었다. 이 학과의 정확한 명칭은 ‘무신론, 인본주의, 세속윤리 연구 학과(Study of Atheism, Humanism and Se-cular Ethics)’라고 하는데, 퇴직 사업가인 루이즈 아피냐니(Louis J. Appignani)가 해당 대학에 220만 달러를 기부함으로써 성사된 것이다.

아피냐니는 무신론자로 ‘리처드 도킨스 재단(Richard Dawkins Foundation)’의 열성적인 후원자이며 ‘미국 인본주의자 협회(American Humanist Association)’를 뒷받침하는 ‘아피냐니 인본주의자 법률 센터(Appignani Humanist Legal Center)를 워싱턴에 설립하기도 한 인물이다. 그는 앞의 기사에서 “무신론자에 대한 차별을 없애려고 노력하고 있으며”, 해당 학과의 개설은 “무신론을 타당한 것으로 만들기 위한 첫걸음”이라고 밝히고 있다. 진화생물학자이자 저명한 무신론 주창자인 리처드 도킨스 또한 해당 언론과의 전화 인터뷰에서 마이애미대학교의 용기 있는 결정을 지지하며, 윤리 연구가 종교의 족쇄로부터 벗어나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고 말했다.

그러나 미국 대학에서 종교학이나 신학과 같은 전통적인 학과 외에도 무(無)종교나 반(反)종교 현상 연구를 전공과목으로 개설하려는 움직임은 이미 감지되었던 것으로, 캘리포니아 남부의 작은 대학인 피처대학교(Pfizer College)는 2011년부터 ‘Secular Studies(세속주의 연구)’를 학부 전공과목에 포함시키고 있다. 비슷한 맥락에서 현재 적어도 46개의 미국 대학이-종교학과 내에도- 관련 교과목(무신론, 인본주의, 세속주의)을 개설하고 있다고 한다.

근래에 미국 사회에 무신론에 대한 사회적 그리고 학문적 관심이 높아진 데는 일련의 요인이 작용하고 있다. 우선 ‘신(新)무신론(New Atheism)’이라고 불리는 21세기의 문화현상을 언급할 수 있다. 이 현상은 2004년부터 2007년까지 무신론을 주창하는 지식인들-리처드 도킨스, 샘 해리스(Sam Harris), 대니얼 데닛(Daniel Dennett), 크리스토퍼 히친스(Christopher Hitchens)-이 일련의 베스트셀러 서적을 내놓으면서, 무신론에 대한 높은 대중적 관심이 형성되고 이와 함께 지식인들의 활발한 토론과 논쟁이 전개되면서 형성된 것이다.

여기에는 2001년 발생한 9 · 11 테러도 한몫을 한다. ‘신무신론’의 시작을 가져온 최초의 베스트셀러인 샘 해리스의 《종교의 종말(The End of Faith: Religion, Terror, and the Future of Reason》(2004)이 9 · 11 테러에 자극을 받아 저술되었다는 것은 잘 알려진 사실이다. 미국의 9 · 11 테러는 일본의 옴진리교 사건처럼 종교 전반에 대한 회의를 불러일으켰으며 이는 무신론 관련 서적의 높은 판매율과도 무관하지 않다. 특히 9 · 11 테러는 이슬람 혐오가 확산하는 계기를 제공하였으며, 혹자는 ‘신무신론’에 깔린 반이슬람 정서를 비판하기도 한다.


2. 무종교인은 누구인가

미국에서 무신론자들의 사회적 영향력이 커지고 무신론(자)에 대한 연구 또한 활발해진 실질적인 이유는 바로 미국 사회에서 어느 종교 집단에도 속하지 않는 소위 무종교인(religious none)의 수가 폭발적으로 증가한 데서 찾을 수 있다. 미국의 퓨 조사센터(Pew Research Center)의 2014년도 종교지형도 조사(Religious La-ndscape Survey)에 따르면 미국 전체 인구의 70.6%가 기독교인(개신교 46.6%, 가톨릭 20.8% 등)이며, 비기독교 종교인은 6.5%, 그리고 특정 (제도)종교에 속하지 않는 사람 즉 무종교인은 22.8%를 차지하고 있다.

그 결과 무종교인들은 미국에서 복음교회(25.4%)에 이어 두 번째로 큰 종교집단이 된 것이다. 이러한 조사결과는 해당 기관의 2007년 조사와 비교하여도 기독교인의 지속적 감소(78.4%→70.6%)와 함께 무종교인의 빠른 성장(16.1%→22.8%)을 보여주는 것이다. 무종교인의 증가는 기독교 전통이 오래된 유럽 국가에서도 관찰되는데 특히 영국의 한 조사(NatCen’s British Social Attitude survey)에 의하면, 2014년 종교를 가지지 않은 사람들의 수(48.5%)가 기독교인 수(43.8%)를 추월하였다고 한다.
그렇다고 특정 종교집단에 소속되어 있지 않은 무종교인들이 자동적으로 비(非)/반(反)종교적인 것은 아니다. 오히려 이들은 특정 종교집단에 속하지 않을 뿐, 일반적인 추측과 달리 상당 부분 종교적 성향을 보인다. 이는 퓨 조사센터의 ‘종교지형도 조사’에서 무종교인들을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조사 결과에서도 확인되는데, 하느님이나 ‘보편적인 원리(Universal Spirit)’를 믿느냐는 질문에 긍정적 답변이 2007년에는 70%, 2014년에는 61%를 차지하였기 때문이다. 같은 맥락에서 미국의 무종교인들 중 무신론자나 불가지론자(agnostic)의 비율은 상대적으로 낮다. 앞의 종교지형도 조사에 의하면 무종교인 중 무신론자는 2007년 10%, 2014년 13%이며, 불가지론자는 2007년 15%, 2014년 17%를 점하고 있다. 그러나 2007년과 2014년의 조사결과를 비교할 때 무종교인들 또한-특히 젊은 층에서- 점차 종교적 성향이 약화되는 추세를 보여준다. 이렇게 미국 사회에서 (제도)종교를 거부하는 인구가 빠르게 증가하면서 연구자나 대학의 정책수립자 또한 이러한 현실을 심각하게 받아들일 수밖에 없게 되었다. 이와 동시에 미국 전체 인구의 거의 4분의 1을 차지하는 무종교인들은 자신들을 하나의 사회적 세력으로 인식하기 시작하면서, 기독교가 여전히 절대적인 영향력을 행사하는 미국 사회에서-특히 이들이 자신의 정체성을 드러낼 때- 교육기관이나 직장 등에서 경험하는 차별과 편견에 맞서 자신들을 조직화하기 시작한 것이다.

한국의 경우 2014년 한국갤럽의 《한국인의 종교》 조사결과에 의하면 (종교를 믿고 있지 않다고 답한) 비종교인은 2004년 성인 인구의 47%에서 2014년 50%로 증가하였고, 2015년 통계청의 《인구주택총조사》에서도 ‘종교가 없는 인구’는 2005년 47.1%에서 2015년 56.1%로 빠른 증가 추세를 보여준다. 그러나 한국의 비/무종교인 또한 상당 부분 ‘종교적’임을 확인할 수 있는데, 앞의 한국갤럽 조사에서 ‘비종교인’의 35%가 과거에 종교-개신교 68%, 불교 22%, 천주교 10%-를 가졌다고 답한 것이다.

이들 중 일부는 초자연적 실재의 존재-절대자/신 16%, 극락/천국 18%, 죽은 다음의 영혼 28%, 기적 42%, 귀신/악마 22%-는 물론이고 전통종교의 핵심 교리-창조설 21%, 윤회설 21%, 해탈설 27%- 또한 수용하고 있으며, 무엇보다 이들의 30%가 개인 생활에서 종교가 ‘중요하다’고 답하였다. 반면 이들 비/무종교인의 약 3분의 1이 현재 종교를 믿지 않는 이유로 ‘종교에 대한 불신과 실망으로’(19%)와 ‘나 자신을 믿기에’(15%)를 선택하고, 그다음 항목인 ‘나는 종교보다 개인적인 성찰과 수련에 관심이 많다’에 일반 종교인-불교인 33%, 개신교인 25%, 천주교인 29%-보다 높은 비율(40%)로 ‘그렇다’고 답하고 있다. 이를 통해 비종교인들 중에서 종교적인 성향을 보이는 그룹은 제도종교에 대한 부정적 시각이 뚜렷한 동시에 보다 주체적이고 개인적인 종교 생활을 선호하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이렇게 무종교인 내지 ‘종교 없음’ 인구가 한국 성인 인구의 절반을 차지하면서 가장 큰 종교식별(religious identification) 범주가 되었다. 그러나 한국갤럽 조사에서는 물론이고 한국 학계에서도 이들을 대상으로 구체적인 세계관이나 종교적/영적 활동에 대한 설문조사나 심층적인 조사가 이루어지지 않아 무종교인 및 ‘소속 없는 종교인’에 대한 구체적이고도 포괄적인 논의를 전개하기에는 한계가 있다. 이는 한국 학계의 종교 연구가 개별 종교전통에 집중되면서 종교성의 다양한 스펙트럼 그리고 다원주의 사회의 분화된 종교성을 간과하면서 나온 결과라고 할 수 있다. 여기서 예외는 개신교 무종교인 즉 개신교인으로서 정체성을 가지고는 있으나 교회에 나가지 않는 소위 ‘가나안(안 나가) 성도’에 대한 개신교 학계의 연구로, 2012년 한국기독교목회자협의회 그리고 2013년 목회사회학 연구소의 설문조사를 시작으로 관련 연구가 현재까지 꾸준히 이어지고 있다.

이 중 흥미로운 조사결과는 ‘가나안 성도’ 즉 개신교 무종교인의 다수가 교회로의 복귀에 대해 긍정적인 생각-‘당장은 아니지만 언젠가’(53.3%), ‘가능한 대로 빨리’(13.8%)-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다. 또한 미국에서 ‘탈종교인(religious done)’ 즉 교회로 돌아가려는 마음이 없는 사람들이 증가하는 추세에 비추어, 해당 개념을 한국의 현 개신교 교회의 상황을 분석하는 데 적용하려는 연구도 시도되고 있다.

이렇듯 한국의 개신교계가 (개신교) 무종교인에 주목하고 있는 것은, 유광석이 지적한 바와 같이 무종교인은 종교시장의 영역 밖에서 분리된, 종교에 무관심한 인간들이 아니라, 단지 그들의 필요에 부합하는 종교서비스를 찾지 못했거나 탐색 중인 잠재적 구매자로서 이들이 거시적 종교경제에 동력을 제공할 수 있는 유효한 사회적 자원이라는 인식과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이에 반해 훨씬 숫자가 많을 것으로 추정되는 한국의 ‘불교 무종교인’-즉 불교적 세계관을 가지거나 불교 신행을 독자적으로 실천하지만 (어떤 이유로) 자신이 적을 두었던 사찰을 떠났거나, 처음부터 특정 사찰에 적을 두지 아니하고 예불에도 참석하지 않는 자들-에 대한 (경험적) 조사나 연구는 현재까지 부재한 상황이다. 이는 한국의 불교계가 종교인(불교인)과 무종교인을 단순히 대립적 혹은 이분법적 개념으로 상정하고 후자의 증가를 단순히 전자에 대한 위협으로 인식하면서 나온 결과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거시적으로 볼 때 무종교인의 빠른 증가는 한국 사회가 다원화되면서 과점적 종교시장이 점차 해체되고 재편되는 과정에서 나오는 자연스러운 현상이라고 할 수 있다.
이런 맥락에서 최근에 일련의 한국의 종교사회학자들이 무종교인에 주목하여 조사연구를 본격적으로 시작하고 있는 것은 고무적이며, 특히 한국종교사회학회에서 ‘종교 없음(religious nones)’에 관한 한 · 미 공동협력연구를 진행함으로써 이들 그룹의 종교성을 비교연구 할 좋은 기회가 주어졌다. 그러나 예상할 수 있듯이 이들 연구에서 불교 무종교인은 누락되어 있다.

한편 무종교인의 한 부분을 차지하며, 기성 종교에 대하여 가장 큰 거부감을 가지고 있는 그러나 한국 사회에 엄연히 존재하는 ‘무신론자’에 대한 연구는 한국 학계로부터 전혀 관심을 받지 못하고 있다. 최신 관련 자료로는 갤럽인터내셔널(Gallop International)이 2012년과 2014년 발표한 〈종교성과 무신론 세계 지표(Global Index of religiosity and atheism)〉가 있을 뿐이다. 여기서 ‘무신론’은 ‘종교성’과 대치되는 지점으로 종교성의 부재를 의미한다.

2012년 해당 기관은 57개국 5만1천 명을 대상으로, 2014년 조사는 65개국 6만3,900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진행하였다. 두 번의 조사에서 동일한 질문-종교의례 참석과 상관없이 당신은 종교적인가, 비(非)종교적인가, 아니면 ‘확고한 무신론자(convicted atheist)’인가-이 조사대상자에게 제시되고, 그 응답을 토대로 국가별 순위가 매겨졌다. 2012년의 조사결과에 의하면 한국인의 52%가 자신을 ‘종교적’, 31%가 ‘비종교적’, 15%가 ‘확고한 무신론자’라고 밝힘에 따라 한국은 무신론자가 가장 많은 국가 중 5위에 올랐다. 그러나 2014년 조사에서는 한국인의 44%가 자신을 ‘종교적’, 49%가 ‘비종교적’, 6%가 ‘확고한 무신론자’라고 밝히면서, 한국은 가장 덜 종교적인 국가 중 12위를 차지했다.

한국의 ‘무신론자’와 관련하여 2년 사이의 이러한 급격한 지수 변화(15%→6%)는 조사결과의 신뢰성에 의문을 불러일으켰으며, 해당 기관의 조사방법에 대하여 이미 여러 문제점-너무 작은 모집단, 질문의 적절성 및 이러한 자기확인 조사방법의 문제 등-이 제기된 바 있었다. 유사한 맥락에서 2012년 해당 조사단체는 이전 조사인 2005년과 비교하여 전 세계적으로 종교적인 사람들이 77%에서 68%로 감소하고, 무신론자는 4%에서 13%로 급상승했다는 조사결과를 발표한 반면, 2014년에는 전 세계인의 63%가 종교적이며, 22%가 비종교적, 11%가 ‘확고한 무신론자’로 여전히 전 세계인의 3분의 2가 자신을 종교적이라고 주장하고 있어 종교의 힘은 여전히 굳건하다며 이전 조사와는 상반된 평가를 내놓았다. 이러한 데이터/해석의 비일관성은 한국의 무신론자의 규모를 파악하는 데 혼란만 가중시킨다고 할 수 있다. 사실 ‘무신론자’는 유일신 종교인 기독교를 배경으로 발전된 개념이며, 이를 서구와 상이한 범신론적 혹은 다신론적 문화권에 적용하는 것은 문제가 많다. 특히 불교와 같이 유일신 사상이 결여된 종교는 자동적으로 무신론적 종교로 간주될 수 있는 위험성을 지닌다. 따라서 비서구권에서 ‘무신론자’에 대한 해석은 개인이나 종교집단에 따라 다분히 자의적일 수 있다.

한국 사회에서 ‘무신론자’에 관련하여 사회적 · 학술적 논의가 부재한 것은 기독교가 주류 종교이자 일종의 국가종교 위치를 점하고 있는 서구의 일부 국가-특히 미국-와 달리 한국 사회에서는 ‘무신론자’에 대한 직접적인 차별/편견이 공공연히 관찰되지 않기에 사회적 이슈나 문제로 표면화되지 않는다는 것이 주요 이유일 것이다. 유사한 맥락에서 한국의 ‘무신론자’들은 스스로를 조직화하려는 경향이 두드러지지 않는다. 여기서 예외적인 것은 ‘프리싱커스(Freethinkers)’라는 서울대학교, 한국과학기술원(KAIST), 연세대학교, 고려대학교, 성균관대학교, 포항공과대학(POSTECH), 광주과학기술원(GIST) 등 여러 학교의 자유사상 동아리가 모여 결성한 연합 동아리이다. 이 무신론 연합동아리는 2011년 카이스트에서 처음 결성된 후 타 대학으로 확대되었다고 한다. 서울대학교 프리싱커스는 2011년 말 ‘서울대학교의 행동하는 합리주의자들’이라는 이름으로 처음 창립되었다. 이들은 프리싱커스(Freethinkers, 자유사상가)가 “권위, 전통, 도그마를 경계하고 논리, 이성, 경험에 의한 의사결정을 추구하는 사람들”을 의미하며, 자유사상(Freethought)은 “논리, 이성, 경험주의에 기반하여 견해를 형성하는 것이 권위, 전통, 교리에 기반한 것보다 더 낫다고 보는 철학적 관점”이며, “역사적으로는 과학적 회의주의, 세속적 인본주의, 무신론 등과 관련”된다고 설명하고 있다. 이 동아리는 미국의 ‘CFI(Center for Inquiry On Campus)’와 결연을 하고 있으며, 후자는 이성과 과학 그리고 교육에서 연구의 자유를 고취하고 수호하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그러나 서울대 프리싱커스가 매체의 주목을 끈 것은 2013년 캠퍼스나 길거리에서의 강압적인 전도에 거부 의사를 밝힐 수 있는 ‘전도 퇴치카드’를 만들어 학생들에게 배포한 ‘사건’ 때문이다. 이 카드의 앞면에는 “저희는 종교가 없습니다. 세뇌로 얼룩진 울타리를 깨고 나와 세상을 둘러보면 신이 인간을 만든 것이 아니라 인간이 종교를 만들었다는 것을 더 감동적으로 배울 수 있기 때문입니다. 저희는 다른 사람들에게 피해를 주지 않고 조용히 어떤 믿음을 갖고 사는 것까지 비난하고 싶은 생각은 거의 없습니다. 그러니 저희를 괴롭히지 말아 주세요.”라고 적혀 있다. 서울대 프리싱커스의 당시 회장인 양호민은 한 매체와의 인터뷰에서 무신론은 반종교가 아닌 비종교라며, 해당 동아리는 비종교인이 경험하는 불이익을 해소하기 위해 ‘비종교인 권리장전’을 준비하고 있다고 밝히기도 하였다.

비록 프리싱커스는 단체 규모도 작고 사회적 영향력도 미미하지만 젊은 지식인들 사이에서 이성, 과학, 합리적 사고를 중시하면서 (기성)종교에 대한 거부감이 확산하고 있음을 반영하고 있다. 물론 여기에는 2000년대 중반부터 한국의 지식인들 사이에 커다란 반향을 일으킨 서구의 무신론 관련 베스트셀러 서적들의 영향력도 간과할 수 없다. 무엇보다 한국의 무종교인 중 무신론자와 같이 제도종교 그리고 더 나아가 ‘종교’ 자체를 거부하는 사람들이-특히 젊은 층에서- 증가하는 현실에서 이들 그룹에 대한 심층적 연구는 필요하다고 할 수 있다.


3. 범주로서 무종교인

‘종교가 없다’ ‘종교를 가지고 있지 않다’ ‘종교를 믿지 않는다’라고 자신을 표현하는 한국의 소위 ‘무종교인들(religious nones)’은-다른 사회에서와 같이- 다양한 종교적 지향성을 가진 사람들로 구성되어 있다: 종교조직에 속하지 않는 그러나 종교적인 사람들, 중충적(multiple) 신앙을 가진 사람들, 종교적 소극주의자, 불가지론자(agnostic), 무신론자(theist) 등등. 이들의 공통점은 특정 종교조직에 속하지 않으며, 특정 종교의 의례에도 참여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러나 종교조직 가입 여부나 의례의 빈도수와 같은 단순 지표로 이들은 하나의 범주로 묶고 이들을 비/반종교적이라고 쉽게 판단을 내리는 것은 인간의 복합적인 종교성을 간과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이미 앞에서도 언급했듯이 서구와 한국의 조사결과는 이들의 상당수가 ‘종교적’ 관심사를 유지하고 있음을 확인해주고 있다. 무엇보다 동시대인들은 종교의 권위적/위계질서적인 조직이나 절대적인 교리의 가르침을 벗어나 보다 개인적이고도 주체적으로 자신의 종교적 삶을 영위하려는 경향이 강하게 나타난다. 앞에서 언급한 2014년 한국갤럽의 조사를 보더라도 불교인의 67%, 개신교인의 52%, 천주교인의 65%, ‘비종교인’의 75%가 ‘종교를 믿는 것은 좋지만 종교 단체에 얽매이는 것은 싫다’에 ‘그렇다’고 답했으며, 연령별로도 큰 차이를 보이지 않는다. 따라서 종교 조직 소속 여부를 종교성을 가늠하는 척도로 사용하는 것은 현대적인 종교 상황을 이해하는 데도 생산적이지 않다.

무엇보다 동시대 종교지형의 특징은 ‘종교인’과 ‘무/비종교인(the religious nones; religiously unaffiliated)’으로 단순하게 분할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즉 한쪽에 특정 제도종교에 속하고 충실하게 종교적 의무를 실천하는 집단이 있다면, 그 반대편에는 제도종교는 물론이고 초자연적 세계관 일체를 거부하는 집단이 있으며, 이 둘 사이에는 어느 쪽에도 속하지 않는 다양한 종교적인 색채의 개개인들로 구성된 거대한 중간층이 존재한다는 것이다. 이런 의미에서 우리는 종교가 사라지는 소위 ‘무종교’ 시대에 살고 있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종교의 사회적 형태와 개인의 종교성/영성이 다양한 방법으로 재구성되는 시대에 살고 있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4. 한국불교와 무종교인 그리고 무종교 시대

그렇다면 다시 이 글의 제목이기도 한 ‘무종교 시대는 오고 있는가?’라는 질문으로 돌아가고자 한다. 필자의 생각으로는 ‘무종교’라는 말은 작금에 흔히 회자되는 무종교인에 대한 왜곡된 이해로부터 출발한 것처럼 보이며, 이는 실체를 결여한 공허한 개념이라는 것이다. ‘무종교’가 ‘종교 없음’을 의미하는 것이라면 ‘종교’는 믿음, 신념과 같이 미래에도 쉽게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서구에서 이미 오랜 기간 관찰되었던 것과 같이 제도화된 종교는 무엇보다 급격한 신도의 감소로 그 영향력을 잃어가고 있는 것이 확실하다. 다시 말해, ‘종교’는 쉽게 사라지지 않지만, 제도종교는 적어도 서구 일부 국가에서는 현재 사라질 위기에 처해 있다는 것이다. 이는 현대인들이 점점 더 비제도화된 종교성, 즉 제도종교의 구속에서 벗어나 자신만의 종교성/영성을 추구하는 성향이 강화되고 있기 때문이다.

현 한국의 불교계는 2016년 말 통계청이 ‘2015년 인구주택총조사’의 하나로 종교인구 집계결과를 발표하면서 큰 충격에 빠진 것 같다. 그것은 최대의 신자 수를 자랑하던 불교계가 불교인구의 가파른 감소로 인해 10년 전 1,058만8천 명에서 7.3%가 줄어든 761만9천 명으로 집계되었기 때문이다. 여기에 또 하나의 충격을 보탠 것은 개신교인은 10년 전보다 1.5% 증가해 967만6천 명이 되면서 한국 사회에서 가장 큰 종교집단이 된 것이다. 이로써 한국의 불교는 처음으로 개신교에 이어 두 번째 종교집단이 되었다. 이러한 불교인의 빠른 감소는 종교인구 전체의 감소로 이어져, 2005년 전체 인구의 52.9%였던 종교인구는 2015년에는 전체 인구의 43.9%인 2,155만4천 명이 되었다. 이에 반해 ‘종교 없음’ 인구는 2005년 전체 인구의 47.1%에서 2015년에는 전체 인구의 56.1%인 2,749만9천 명으로 집계되면서 처음으로 ‘종교 있음’ 인구를 추월했다. 한국불교계는 불교신자의 수와 ‘종교 없음’ 인구 내지 ‘무종교인’의 수를 부정적인 상관관계로 보는 듯하다. 즉 이탈한 불교신자들의 상당 부분이 무종교인으로 흡수되었다고 보는 것이다. 이를 뒷받침할 경험적 조사는 없으나 논리적인 추론이라고 할 수 있다.

한국불교계는 이러한 집계결과가 나오게 된 통계청 조사방식의 문제점을 지적하는 것은 물론이고 한국 사회에서 종교인구와 불교인구의 빠른 감소, 즉 한국 사회의 ‘탈종교’ 현상을 어떻게 이해하고 어떻게 대응하여야 하는지 광범위한 논의를 전개하고 있다. 편집진이 필자에게 이 글을 요청한 것 또한 이러한 한국불교계의 위기의식을 반영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불교인구의 급속한 감소는 한국불교가 지난 10년간 꾸준히 그 외연을 넓혀왔던 것을 고려하면 언뜻 모순처럼 보인다.

대표적인 예는 모든 이들에게 열려 있는 템플스테이로 2002년 FIFA 월드컵 때부터 시작된 해당 사업은 2016년에는 템플스테이 운영 사찰이 120곳으로 증가하였다. (현재는 정체기를 맞고 있지만) 이러한 템플스테이의 확산에는 정부가 국내외 관광 활성화와 문화자원화 정책을 추진하면서 템플스테이를 문화관광상품으로 높이 평가하여 해당 사업에 지속적인 국고 지원을 한 것도 커다란 역할을 하였다.

이 밖에도 누구나 동참할 수 있는 것으로는 선묵혜자 스님이 이끄는 ‘108산사 순례기도회’, 사찰이 주관하는 크고 작은 (명상)수련 모임이 많이 있다. 필자는 다른 논문에서 이러한 전통종교의 변화는 제도종교가 자신의 경계 짓기 내지 폐쇄성을 극복하고 보다 ‘열린 종교’로 나아가는 모습을 보여주는 것이며, 해당 종교가 대사회적 영향력을 높이고 보다 넓은 층의 잠재적 신도/고객을 확보하려는 하나의 시도라고 평가한 적이 있다.

여기서 ‘열린 종교’와 관련하여 현재 불교계가 추진하고 있는 거대 프로젝트인 ‘마음치유’ 사업을 언급할 필요가 있다. 조계종을 중심으로 한국불교계는 불교신자는 물론이고 일반인을 대상으로 효과적인 마음치유와 상담을 위해 전통적인 불교명상에 서구의 심리치료요법이나 상담기법을 접목한 프로그램들을 적극적으로 개발 · 보급하고 있다. 물론 여기에는 한국불교계가 서구에서 개발된 불교의 명상기법과 심리치료요법을 결합한 ‘마음챙김(Mindfulness)’이 서구사회에서 명상센터는 물론이고 심리치료/상담 현장에서 광범위하게 적용되고 높은 호응을 얻고 있는 데 크게 고무된 것도 한몫한다. 불교상담개발원장 도현 스님의 2014년 발언은 많은 것을 시사한다: “불교상담은 머지않아 불교를 대표하는 브랜드가 될 것”이며, “불교상담의 전문화와 대중화가 한국불교 미래의 큰 축을 담당할 것”이다.

이는 근래 한국불교계가 마음치유와 상담에 대한 커다란 관심을 보이고 투자를 확대하는 것이 단지 정신적으로 고통받는 대중을 치유한다는 목적을 넘어, 선교 내지 포교의 지평을 넓히고, 한국 사회에서 현재 커다란 수요가 존재하는 ‘마음 힐링’ 시장에서 중심적 역할을 담당함으로써, 현대사회에서 불교의 역량을 새롭게 창출하고자 한다는 것을 보여준다. 이렇게 한국불교계는 마음치유와 상담을 새로운 시대적 과제로 받아들이면서 2000년부터 관련 인프라를 지속적으로 확장하고 있다. 즉 관련 프로그램의 지속적인 개발과 효과적 적용/보급 그리고 지도/상담인력의 양성과 자격증 발급 등을 위해 다수의 교육기관, 연구소, 학회 등이 설립된 것이다.

윤승용은 《불교평론》의 다른 지면에서 “불교는 승려 중심의 사회 · 문화적 종교이자 세속과의 경계(境界)의식이 별로 없는 공동체 종교이다. 하여 신앙의 정체성이나 조직의 경계가 불분명하여 외부의 환경변화에 그만큼 취약할 수밖에 없다.”라고 적고 있다. 그러나 필자는 교리나 신앙의 유연한 해석 그리고 대사회적 경계를 낮춤으로써 한국불교가 위에서 언급한 거대 사업들을 추진하는 것이 가능하였다고 생각한다. 이러한 경계 낮추기를 통해 종교는 자신의 영향력을 고유의 종교 영역을 넘어 사회 주변으로 보다 용이하게 전이 내지 확산시킬 수 있으며, 동시에 내부의 조직과 외부 자원을 효과적으로 이용하고, 광범위한 수요층을 확보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대사회적 경계를 낮춤으로써 자신의 사회 · 문화적 영향력을 높이는 동시에 바로 그 같은 이유로 강하게 결속된 신도층을 확보하기 어렵다는 자기모순에 빠지게 된다. 템플스테이와 같이 일반에게 널리 확산된, 대외적으로 성공적인 사업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한국불교가 자신의 신도를 빠르게 잃고 있는 것이 바로 그 이유이다.

한국불교계는 템플스테이나 마음치유와 같은 프로그램을 정체된 교세를 회복시켜 줄 하나의 현대적 포교 방법으로 간주하여 이를 통해 잠재적 불교신자를 확보하고자 하나, 이러한 프로그램에 참여하고 있는 자들은 일종의 소비자이며 구매자라는 것을 명심할 필요가 있다. 왜냐면 이들은 자신의 필요성과 시간적/경제적 조건에 따라 이에 부합되는 프로그램을 선택하고 대신 일정한 비용을 지불하는 자들이기 때문이다. 언제나 필요에 따라 여러 불교 프로그램을 자유롭게 선택하고 소비할 수 있다면, 이들이 굳이 위계질서로 엮인 권위적인 불교공동체의 일원이 될 이유는 없을 것이다. 여기서 한국불교의 모순이 극명하게 드러난다. 즉 한국불교는 대사회적 경계가 매우 낮아 경계의 주변 영역에서는 자유로운 이동과 상대적으로 평등적 관계가 가능하나, 내부로 들어오면 (남성) 성직자 중심의 매우 권위적이고 경직된 수행공동체가 중심에 자리 잡고 있다는 것이다.

일련의 선행 조사연구가 보여주듯이 종교인구 조사에서 ‘종교 없음’ 내지 ‘무종교인’으로 분류된 사람들은 모두 종교 냉담자들이 아니며 오히려 이들의 상당 부분은 종교적 성향/관심을 유지하고 있다. 이런 의미에서 이들은 매우 중요한 종교적 자원으로, 불교인구로 흡수될 수 있는 여지를 가지고 있다. 그러나 이들의 상당수는 부도덕하거나 권위적인 성직자 혹은 경직된 종교조직 때문에 종교를 이탈하였거나, 아예 처음부터 종교조직에 발을 들여놓지 않은 사람들로서, 현 한국불교의 경직된 수행공동체의 구조를 근본적으로 바꾸지 않는 한 이들을 신도로 확보하는 작업은 쉽지 않을 것이다.

이런 맥락에서 한국불교는 기로에 서 있다고 할 수 있다. 즉 계속 외연을 확장하여 한국 사회에서 하나의 영향력 있는 종교문화로서 존재가치를 확보하든가, 아니면 재가 신도들이 자신의 역량과 역할을 활발히 펼칠 수 있는 공적 공간으로서 불교 수행공동체를 개혁하여 지속적인 신도의 유입을 유도할 것인지. 물론 가장 좋은 방법은 이 두 길을 동시에 가는 것일 것이다. 그러나 이 두 길 사이에서 균형을 잡는 일은 쉽지 않으며, 위험하기까지 하다는 것은 확실해 보인다. ■


우혜란 
서울대학교 종교문제연구소 객원연구원. 서울대 종교학과, 동 대학원(석사), 독일 마부르그필립스대학교 종교학과(박사) 졸업. 주요 논문으로 〈동시대 종교현상으로서 ‘유동적 종교(Fluid Religion)’에 대한 논의〉 〈포스트모던 시대의 새로운 종교현상〉 “New Age in South Korea” 등이 있고, 공저로 《종교, 미디어, 감각》 《신자유주의 사회의 종교를 묻는다》 Religion in Focus 등이 있음. 한국신종교학회 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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