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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색과 성찰]《부모은중경》을 읽다가 / 김충현
[70호] 2017년 06월 01일 (목) 김충현 kangur@hanmail.net

6 · 25 전쟁 통 추운 겨울, 열두세 살이나 되었을까, 여자아이 하나가 병원으로 실려 갔다. 피난 트럭에서 떨어져 온통 피투성이가 된 몸이었다. 부모님과 헤어져 어디로 가는지 모르고 무작정 타고 가다 횡액을 만났다. 여자아이는 코 큰 선교사가 차린 병원에서 몇 달을 지냈다. 겨우 몸을 추스르고 집으로 돌아왔다. 사경을 넘어 돌아온 집, 구석구석 쑤신 몸을 이끌고 돌아온 어린아이가 맞닥뜨린 것은 끝없는 품팔이였다. 파고 파도 마른 땅을 고사리손으로 파내고 겨우 만난 나무뿌리를 씹어가며 손바닥처럼 좁은 땅뙈기를 일궈야 했다. 배곯기가 끼니 때우는 것보다 잦았던 세월을 지나 그야말로 꽃다운 열여덟, 거북등 농사를 짓던 사내와 혼인했다.

사내도 가난하기는 마찬가지. 열여덟 살 처녀를 데려와 아이 셋을 낳았으나 그해 닥친 가뭄은 유독 혹독했다. 그는 집에서 기다리고 있는 어머니와 아내, 아들 둘과 딸 아이 하나 다섯 식구의 목숨을 위해 무슨 일이든 해야 했다. 그는 햇살에 달궈진 뻥튀기 기계를 지고 강렬한 햇살이 땅을 누렇게 달군 5월의 남도를 돌아다녔다. 집을 떠난 지 한 달 보름여, 사내의 얼굴은 까맣다 못해 붉게 물들었다. 흙먼지와 열기에 숨이 막히고 목은 타들어갔다. 온통 황토로 뒤덮인 길을 밀짚모자 하나 쓰고 땅만큼이나 누런 무명 삼베옷을 입은 사내는 힘들어도 지친 걸음을 멈출 수 없었다. 뻥튀기와 품팔이로 사내는 보리 서 말을 마련했다. 한동안 식솔들은 굶주림을 면할 수 있었다.

부부는 어느 해 남도 생활을 접기로 했다. 그래도 서울이 낫겠지 싶어서였다. 타향살이지만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다행히 몸은 건강하니 어떻게든 버틸 수 있으리라 믿었다. 그사이 태어난 막내아들을 데리고 밤 기차를 탔다.

이제 함께 살아온 지 60여 년, 부부는 아들 셋과 딸 하나를 키워냈다. 큰 아이가 환갑을 지났으니 참으로 오랜 세월이다. 한창 윤기가 오르던 청춘부터 몸이 성하지 못한 지금까지, 부부는 잠시도 한눈을 팔지 않고 긴 세월을 버텨왔다. 신문팔이, 막노동, 채석장 인부, 포장마차와 좌판 장사, 지게꾼과 청소부, 상인들을 상대로 한 해장국 식당 운영까지. 조금씩 나아지던 생활이었지만 모질기 짝이 없는 시간들이었다.

묵묵하고 미련하기까지 했던 생업은 이제 부부에게 더 힘든 날들을 남겨주었다. 허기와 갈증에도 식당에서 팔던 해장국 한 그릇 쉬이 먹지 못하고 버텼다. 겨우 살 만해지자 남편에게 당뇨가 찾아왔다. 오랜 투병, 몸도 제대로 가누지 못하고 간간이 정신까지 흐려지기도 한다. 그런 남편을 팔순을 맞은 아내가 돌본다. 아내라고 성한 곳이 있을 리 만무다. 무릎 연골은 오래전에 닳아 없어졌고, 허리 통증에 주사와 침을 맞지 않으면 견디기 어렵고, 진통제를 끼니마다 챙겨 먹어야 한다. 손가락 발가락 마디마다 퉁퉁 부어 움직일 때마다 쑤신다. 심장도 정상은 아니다. 남편을 두고 먼저 가는 일이 제일 무섭다.

부부가 걸어온 고행의 길, 때로는 행복한 순간도 있었다. 입에 풀칠만 하면 다행으로 받아들였을 시절, 아이들은 모두 대학을 마쳤다. 손자들도 제 몫은 하며 살아가고 있다. 샛길로 엇나가지 않고 성실하게 생업을 꾸려간다. 늙은 부부에게는 이게 자랑이다. 지독한 고통에 몸은 만신창이이지만 이만하면 성공한 삶이다. 기나길고 모질고 고통스러웠지만 감사하고 또 감사한 생이다.

이 부부가 나의 부모님이다. 나의 부모님은 평생 가시밭길을 마다 않고 걸으며 식솔의 목숨을 이었고 삶을 챙기고 기반을 닦아주었다. 어찌 내 부모뿐이랴! 그 시절을 지나왔던 이 땅 모든 부모는 다 그렇게 살아왔을 터이다. 내 아이들 먹이고 가르치기 위해 뼛골이 빠지고 온통 몸이 삭았을 것이다.

화사하기만 한 5월. 많은 것들을 기념하고 챙기는 날들로 가득한 이 5월이면 나는 늘 아픔과 감사의 마음이 교차한다. 평생 고생만 하신 두 분의 삶을 생각하면 밥알이 목에 걸린다. 그 고마움을 생각하면 편하게 앉아 있기조차 송구하다.

자식은 다 자란 뒤에는 불효를 행한다. 부모와 함께 이야기를 나누며 마음에 맞지 않는다고 눈을 흘기고 눈동자를 굴린다…… 출입하고 오가면서 어른께 말씀드리기는커녕 말과 행동이 교만하여 매사를 제멋대로 처리한다…… 그래도 부모님 마음은 자식을 뒤쫓아 항상 근심하고 걱정으로 살고, 혹은 울다가 눈이 어두워지기도 한다…… 부모가 있는 곳에는 문안하거나 들여다보는 일조차도 끊어지고 만다. 그러니 방이 추운지 더운지, 부모가 배가 고픈지 목이 마른지 알 길이 없다.

《부모은중경》의 말씀이다. 5월이 서글픈 것은 경전의 말씀이 아니더라도 내 불효 탓이다. 겨우 1년에 몇 차례 때를 맞아 찾아뵙고 점심 한 끼 모시고 봉투 하나를 슬며시 드리는 것으로 스스로 위안을 삼는다. 더 할 수 있는 효(孝)가 분명 더 있음을 알고 있으면서도 하지 않는다. 아이를 키운다는 이유로 늙은 부모님을 자꾸 모른 척한다. 어쩌면 이 세상에 효도란 없을지도 모른다. 애당초 조금이라도 갚을 수 있는 길이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어버이날이 있는 5월은 한없이 감사하지만 생각할수록 서글프고 죄스러운 달이다.

불교방송 춘천총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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