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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색과 성찰] 꽃등 만들기 / 김희숙
[70호] 2017년 06월 01일 (목) 김희숙 nim1977@hanmail.net

온 세상에 봄꽃이 한창이다. 벚꽃 진 자리에 철쭉과 라일락, 조팝나무꽃이 흐드러지게 피었다. 버스를 타고 가다가 문득 차창 밖을 내다보았다. 꽃송이가 바람에 몸을 뒤치는 줄 알았는데, 나무와 나무 사이에 알록달록 피어 있는 게 꽃등이었다. ‘아, 부처님 오신 날이 머지않았구나.’ 크리스마스트리에 불이 켜진 걸 보고 성탄절 시즌이 된 걸 알 수 있듯이, 나는 거리에 내걸린 꽃등을 보고 초파일이 가까워진 걸 새삼 확인하곤 한다. 숫자만 보면 지레 겁을 먹는 내가 나이나 시간, 날짜에 둔감한 것처럼 음력으로 계산하는 초파일을 기억하는 손쉬운 방법 중 하나인 셈이다. 나뭇가지에 매달린 꽃등을 보자 절에 가서 등 만들기를 하던 때가 생각났다.

대학 시절, 초파일을 앞두고 엄마를 따라 절에 갔다. 엄마의 강권에 못 이긴 것이었지만 사실 나는 절밥에 눈이 멀어 있었다. 고기 한 점 없이 나물 반찬과 김치가 전부였지만 절에서 먹는 밥이 유명 레스토랑 음식보다 맛이 좋았다. 그런데 엄마는 법당에서 나오자마자 공양간으로 들어가면서 나를 등 만드는 방으로 들이밀었다. 그 방 안에는 할머니와 아주머니 신도들이 둥글게 모여 앉아 연꽃등을 만들고 있었다. 틀에 한지를 붙이는 사람, 풀을 바르는 사람, 연꽃잎 끝을 마는 사람, 육각 통에 꽃잎을 붙이는 사람…… 엉거주춤 그들 틈에 끼어 앉으니 누군가 다가와서 꽃등 만드는 법을 꼼꼼히 가르쳐주었다. 하양, 빨강, 분홍 꽃잎 중 마음에 드는 한 가지를 선택해서 층층이 꽃잎을 돌려 붙인 후 초록색 꽃받침으로 마무리하는 거였다.

등을 만드는 동안 아주머니들은 시집살이의 어려움이며 남편 흉, 자기 허물까지 부끄럼 없이 드러내놓고 있었다. 나는 이야기들을 귀동냥하며 결혼생활이며 남편감 고르는 법을 은연중 배웠다.

“학생 보살, 연등을 예쁘게 만들어야 시집가서 예쁜 아기를 낳는 거야.”

한 겹 한 겹 분홍 꽃잎을 붙이고 있는 나를 보고 한 아주머니가 농담을 건넸다. 그러자 다들 왁자지껄 맞장구를 쳤다. 그러고는 자기가 만든 등을 주르르 늘어놓고는 네 것이 더 예쁘네, 내 것이 더 곱네, 품평을 하며 웃음꽃을 피웠다.

‘난 정말 아주 못생긴 애를 낳을 건가 봐.’

나는 혼자 속을 끓이기 시작했다. 솜씨가 젬병인 내가 만든 연등은 여기저기 풀이 묻고 꽃잎이 삐뚤빼뚤, 전혀 가지런하지 않았던 것이다. 명절을 앞두고 송편이나 만두를 빚을 때도 남들이 빚은 송편이나 만두는 여인네 눈썹처럼 곱고 예쁜데 내 것은 크기만 크고 볼품이 없었다.

그때 나이 지긋한 아주머니가 내 분홍 연등을 들어 보였다.

“이것 좀 봐. 우리 학생 보살 연등이 젤 예쁘다. 우리 것은 너무 평범한데 젊은이답게 개성 있잖아.”

“진짜 그렇네.”

모두 입을 모아 내 꽃등을 칭찬해주었다. 나는 그 말이 거짓말인 걸 알면서도 기분이 좋아졌다.

키가 크고 풍채가 좋은 주지 스님이 등 만드는 방에 슬그머니 나타나셨다. 스님은 평소에 말씀이 없어서 무섭기만 했다. 수다스러운 아줌마 신도들도 스님 대하기를 어려워했다. 그런데 그날 뵌 스님은 전혀 다른 모습이었다. 떡이며 과일을 하나라도 더 챙겨주려고 허둥지둥 애쓰는 모습을 보니 웃음이 절로 나왔다. 게다가 스님은 일하는 우리가 지루하지 않게 재미있는 이야기를 해주셨다. 그때 들은 얘기 중에 아직도 기억나는 게 있다.

원효 스님이었다든가. 스님이 어느 논둑길을 걸어가고 있었다. 새참을 먹고 있던 농부들이 불가의 불살생에 대해 이러쿵저러쿵 서로 다른 의견을 내놓고 다투었다. 그러자 그들 중 한 사람이 지나가는 저 스님을 불러 시험을 해보자고 했다. 그러고는 골탕을 먹이려고 스님을 불러서 생선요리를 권했다. 그 스님은 감사 인사를 하고 그 음식을 맛있게 드셨다. 그러자 스님께 음식을 권한 자가 “저것 봐라. 불법이고 스님이고 모두 가짜다.” 하고 의기양양해 했다. 스님이 근처 개울에 가서 똥을 누었다. 그러자 똥 속에서 살아 있는 물고기들이 줄줄이 나와서 물속으로 도망을 갔다.

또 하나는 저 유명한 ‘빈자일등’의 이야기였다. 부처님이 지나시는 길목을 환히 밝히고자 너도나도 등을 달았다. 그런데 난타라는 여인은 가진 것이 없어서 등을 살 수 없었다. 생각하다 못해 오래도록 기른 제 머리카락을 잘라 팔아서 작은 등을 마련했다. 밤이 지나고 아침이 되었다. 다른 등은 모두 꺼졌는데 세찬 바람에도 난타의 등만은 꺼지지 않았다. 그 이야기를 처음 들었던 자리가 바로 등 만드는 방이었다.

그 후 나는 스스로 등 만드는 일에 참여했다. 일을 끝낸 후에는 종이컵에 연꽃잎을 붙여서 만든 작은 꽃등을 집에 가져와서 베란다에 걸어두고 한 달 내내 불을 켜곤 했다. 그런데 요즘은 일반 사찰에서 등 만들기 정경을 보기 어렵다. 그 일이 시간과 노동력을 필요로 하는 데다가 종이로 만든 등에 촛불을 켤 때 화재 위험이 있다는 이유 때문에 전기로 불을 밝히는 플라스틱 등을 대량 구입하게 된 것이다. 등을 만드는 그 시간은 서먹하던 신도들이 인사를 나누는 친목의 시간이었고, 스님이 해주시는 얘기가 모두 법문이었는데 그런 풍경을 볼 수 없어서 아쉽기만 하다. 앞으로는 부처님께 정성을 올리는 일조차 마그네틱 카드 한 장으로 처리될지 모를 일이다.

디지털시대에 아날로그적인 발상인지 모르겠지만, 앞으로는 모든 신도가 제 스스로 꽃등을 만들어 불을 밝히게 하면 어떨까? 돌아가신 아버지를 위해 하얀 연등을, 결혼하는 언니를 위해 립스틱 색깔처럼 빨강 연등을……

봄바람이 건듯 불자 장대에 매달린 꽃등이 일제히 출렁인다.

수원 정혜사 신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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