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년 전, 《불교의 여성성불 사상》이란 책을 펴냈다. 늦깎이로 동국대학교에 들어가 공부한 끝에 박사학위로 제출한 논문을 조금 수정해서 낸 책이었다. 책을 내고 났더니 몇 군데서 격려를 해주었다. 불교진흥원에서는 원효학술상 수상작으로 선정해 상찬을 해주었고, 작년에는 청호불교재단에서 또 학술상을 주는 것이었다. 친구들은 늦복이 터졌다고 꽃다발을 안겨주었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이런 주제의 저술로 상을 받는다는 것이 개인적으로 여러 가지를 생각게 해주었다. 무슨 말인가 하면 현 단계에서 한국불교의 여성 인식은 아직도 충분한 수준에 이르지 못하고 있다는 사실의 반영이라는 것이다.

사실 필자가 다룬 여성성불 문제는 불교교리 안에서는 전혀 문제가 될 수 없는 일이다. 그럼에도 현실은 정반대의 상황에 머물러 있다. 따라서 이런 활동을 계기로 한국불교의 여성 인식이 한 단계 올라섰으면 하고 기대하지만 과연 그렇게 될까는 여전히 회의적이기만 하다. 지난 세월 동안 여성불교를 공부하면서 느꼈던 불만과 좌절은 요즘에도 크게 달라지지 않고 있다는 것이 솔직한 생각이다.

나는 30대 초부터 불교 신앙을 갖고, 절에 다니면서 신행생활을 해왔다. 여러 사람들이 동의하는 바대로 한국불교를 받치고 있는 힘은 여성불자들로부터 나온다고 해도 지나친 말은 아니다. 그런데 한국불교는 여성불자들의 능력은 활용하면서, 출 · 재가를 막론하고 여성불자들에게 그에 합당한 지위와 역할은 주지 않는다. 물론 요즘은 드러내놓고 여성을 비하하는 종교인은 없다. 그러나 어느 종교를 막론하고 저변에 깔린 여성에 대한 편견은 아직도 많다.

터놓고 말하면 나는 지난 40여 년간 여성불자로서 수많은 불편한 모습들을 목격하고 감내하면서 지내왔다. 어느 큰절의 주지 스님이 여성불자들을 앞에 놓고 반말로 법문하시는 모습을 봤을 때는 정말 속이 상했다. 아는 스님이 “여자들 해봐야 별거 있나, 내생에 남자 몸 받는 것밖에”라고 하시는 말을 듣고는, ‘부처님은 여성을 어떻게 생각하셨을까? 정말 여자는 금생에 수행을 열심히 해도 내생에 남자로 태어나는 과보밖에는 못 받는 존재인가?’ 하는 의문을 가졌다. 이것이 불교의 정설인지 꼭 밝혀내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러니까 내가 냈던 책은 그 발심의 결과물이었던 셈이다.

나의 연구는 요약해서 말하면, 불교와 같은 페미니즘의 종교는 없다는 것이다. 부처님이 살아계실 때, 인도의 여성들은 부처님이 세 번이나 거부했는데도 포기하지 않고 먼 길을 찾아가 부처님의 출가 제자가 되었다. 부처님이 여성출가를 주저한 것은 여성의 생리적 특성을 고려한 것이지 여성의 본성이나 능력 자체가 남성과 달라서가 아니었다. 따라서 여성도 남성과 동등하게 정신세계의 동참자가 되었으며, 비구 교단과 나란히 비구니 교단을 탄생시켰다. 세계의 어느 종교에서도 여성들이 교조에게 그와 같은 요구를 한 일이 없고, 나아가 교조가 여성들의 요구를 받아들여 여성을 남성과 같은 차원의 수행자로 인정한 종교는 없다. 오늘날 우리가 볼 수 있는 《장로니게》라는 자료가 그 당시의 사정을 말해준다.

여성 수행자들인 장로비구니들이 남긴 게송인 《장로니게》에는 71명 비구니의 이름이 나오고 그들이 쓴 게송 522수가 실려 있다. 부처님이 살아 계실 때부터 기원전 3세기에 이르는 동안 성립된 것으로 보이는 이 책에는 장로비구니들의 수행 역정이 그들 자신의 언어로 기록되어 있다. 그 가운데는 아라한이 된 여성들도 있다. 부처님은 여성도 수행하면 아라한이 될 수 있다고 분명히 말씀하셨는데, 그것을 증명한 것이다. 수행에 대한 그들의 열정이 얼마나 솔직하고 치열한지, 오늘날 우리는 무엇을 하는 걸까 하고 부끄러움을 느끼게 될 정도다.

그러나 이런 위대한 전통이 그대로 이어지지 않았다. 부파불교에 오면서 남성 중심의 교단은 당시 인도 사상계의 영향을 받아 여성은 다섯 가지 장애가 있다는 생각(女人五障說)을 만들어냈다. 다섯 가지 장애중 하나가 여성은 부처가 될 수 없다는 여성불성불설이다. 모든 중생의 성불을 강조하는 대승의 시대에 이르러 이 같은 생각은 문제가 되었다. 그러자 초기 대승불교 시대에는 여성의 성불을 인정하는 듯한 설명을 했다. 그러나 자세히 보면 남성으로 몸을 바꾸어야 성불한다는 이른바 ‘변성성불론(變性成佛論)’에 머물고 있었다. 여성도 성불할 수 있다는 사상은 《승만경》이 성립된 중기 대승불교에 와서야 완성되었다. 불교의 여성에 대한 역사적 인식을 한눈에 훑어보면 거기에는 왜곡과 변천이 있었음을 알 수 있다. 대승불교에 와서 부처님의 사상으로 돌아가게 된 것은 참으로 다행한 일이라 할 것이다.

이러한 왜곡과 변천이 생긴 것을 나는, 인도 사회의 여성에 대한 극심한 편견과 남성 출가자들의 여성에 대한 보수적인 인식에 원인이 있다고 본다. 즉 부처님이 여성을 인정하신 그 사상은 간과하고, 여성에 대한 편견에서 나온 여성불성불설(女性不成佛說)이나 변성남자성불설(變性男子成佛說)을 내세워 여성을 억압했던 것이다. 한국불교가 아직도 봉건적 발상의 왜곡된 학설에 대한 자성과 비판을 하지 않는다면 이는 시대착오적이다.

모두가 알다시피 부처님은 2,600여 년 전 인간이 인간을 구속하는 카스트 제도를 부정하셨다. 대승불교는 ‘일체중생에게 불성이 있다(一切衆生 悉有佛性)’고 말한다. 그러면서 한편으로는 여성을 부정하는 이율배반적인 행태는 이제 당연히 불식되어야 한다. 불교의 근본사상으로 돌아가야 한다는 뜻이다. 이러한 생각이 보편화하여 교단운영이나 신행에서 차별이 없어져야 불교는 인류문명사에서 다시 찬연하게 빛나는 종교가 될 것이다.        

여성불교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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