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집 | 여성과 폭력 그리고 불교

- 국가정책, 생명의료 과학기술의 개입과 여성인권

1. 시작하는 글

생명, 그 존재의 신비함과 소중함은 최우선의 가치이다. 우리를 둘러싼 환경뿐 아니라 윤리적, 철학적인 면의 생명 담론은 생물 다양성 존중으로 확산되면서 인간 생명을 넘어서고 있다.

인간 생명에 대한 과학기술은 놀라운 속도로 빠르게 발전하고 있으며 자본주의와 결합하여 일상적 삶의 영역에까지 영향을 미치고 있다. 여기에 여성의 재생산권 문제가 놓여 있다. 임신, 출산, 낙태 등은 여성의 몸을 통해 이루어지는 과정이며, 이를 재생산권(Reproductive Rights)이라 한다. 재생산권은 정치적 용어로 출산의 권리(강제불임 거부 권리) 및 출산을 하지 않을 권리(피임 또는 낙태를 결정할 수 있는 권리), 사적 영역으로 보호받을 권리, 의료적 도움을 받을 권리, 가족계획과 피임의 권리, 이러한 결정으로 인한 차별과 위협으로부터 보호받을 권리 등을 포함한다. 국제인권회의를 통해 논의돼 온 재생산권은 신체적 자기결정권과 건강권, 출산과 성에 대한 성평등권, 자녀 양육 등을 위한 공적지원 요청권 등으로 구성되는 좀 더 포괄적인 인권의 틀이다. 국가의 정책적 개입, 생명의료 과학기술의 개입이 재생산권에 미치는 영향은 지대하다. 재생산권의 주체인 여성들 스스로 몸에 대한 권리 찾기, 여성인권의 측면에서 바라보려는 움직임이 커지고 있다.

지금까지 재생산권 논의는 주로 국가정책 차원의 접근이었으며, 그 주체인 여성은 배제되었다. 재생산권 논의에서 가장 사회적 논쟁을 일으키는 주제는 ‘낙태’이다. 우리 사회에서 낙태는 불법이다. 낙태는 실제 통계를 정확히 추출해내기 어려우나, 암묵적으로 일상에서 일어나고 있다. 그러다가 모자보건법 개정 논의가 있을 때, 낙태죄 판결이 있을 때, 의료법 개정이 있을 때 등의 상황에 부딪히면 그때그때 문제화되고 논란이 발생한다.

비교적 최근의 논쟁들을 떠올려보자. 2010년 2월 3일 프로라이프의사회가 서울중앙지방검찰청에 불법 낙태 시술 관련 산부인과 3곳을 고발 조치함으로써 낙태 논쟁이 촉발되었다. 2012년에는 낙태죄에 대한 합헌 판결(낙태한 여성과 의사를 처벌하는 현재의 형법은 헌법에 위배되지 않는다는 헌법재판소 판결)로 다시 논쟁이 발생하였으며, 가장 가깝게는 2016년 9월 보건복지부의 의료법 입법예고안 발표에서 논란이 증폭되었다. 보건복지부가 의료법 시행령 시행규칙에 ‘비도덕적 진료행위’의 항목으로 인공임신중절 시술을 포함하고, 의사의 자격정지 기간을 늘리는 입법예고안을 발표하였다. 낙태를 ‘비도덕적 진료행위’로 규정하겠다는 것으로, 저출산 극복정책과 무관하지 않다.

덕분에 낙태와 관련한 여성들의 목소리가 좀 더 가시화될 수 있었다. 즉시 여성계의 기자회견을 비롯하여 수많은 여성이 1, 2차 낙태죄 폐지를 위한 검은 시위를 조직하는 등 목소리가 거셌다. 이에 보건복지부는 한발 물러섰지만 언제든 반복될 논란의 중심에 ‘낙태’가 존재한다. 여성들의 경험과 생각을 충분히 드러내고 말할 수 있는 장(場)을 풍부하게, 그리고 지속적으로 만들어가야 하는 이유이다.

이 글에서는 낙태, 자궁적출, 난자 이용 등 여성의 몸에서 이루어지는 재생산권 논쟁이 발생하는 지점에 대해 알아보고 여성에게 무엇이 문제적인지를 질문하고자 한다. 재생산권이 어떻게 국가정책과 연결되어 있는지, 또 자본과 결합되어 있는지 살펴볼 것이다. 나아가 여성의 몸에 대한 생명의료 과학기술의 개입 과정에서 여성인권, 건강권에 대한 목소리가 의미하는 바를 찾아보고 대안을 모색해보고자 한다.


2. 낙태

1) 낙태의 현실

낙태를 ‘자궁에서 발육 중인 태아를 인공적으로 제거하는 일’이라는 좁은 의미의 개념으로만 설명하는 것은 적절하지 않다. 사실 낙태는 단지 여성의 몸에서 일어나는 한순간의 일이 아니다. 성관계, 임신, 출산 등 성(性)에 기반해서 일어나는 연속적인 사건의 과정이거나 결과이며, 여성을 둘러싼 사회와 관습이 영향을 미친다. 섹슈얼리티(Sexuality) 전 영역에 걸쳐 있으며 국가정책, 생명과학기술과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다. 그런데, 우리 사회에서 낙태가 거론되는 방식은 주위 몇몇에게만 털어놓을 수 있는 ‘숨겨야 하는 사건’이며 밝히고 싶지 않은 ‘낙인’이 되는 사적인 사건에 불과하다. 과거에 “하나만 낳아 잘 기르자”거나, “덮어놓고 낳다 보면 거지꼴을 못 면한다”는 가족계획 시절에는 국가가 나서서 낙태를 지원했다.

낙태에 대한 첫 공식적인 조사결과는 보건복지부와 고려대 의대가 2005년 실시한 ‘인공임신중절 실태조사’이다. 당시 조사에서는 연간 34만2천 건의 인공임신중절 시술이 이뤄지고 있는 것으로 파악되었고 그중 기혼이 58%, 미혼이 42%였다. 비혼 여성의 96%는 사회 · 경제적 이유(비혼, 미성년자, 경제적 어려움 등), 기혼 여성의 76.7%는 가족계획(자녀 불원, 터울 조절, 양육 부담) 때문에 낙태를 한다. 보건복지부는 실태조사를 바탕으로 정부가 인공임신중절 문제를 더 이상 방치할 수 없다는 인식하에 ‘인공임신중절의 예방과 감소를 위한 법적 · 제도적 개선방안 공청회’(연세대 의료법윤리학연구소 주관)를 열었다. 모자보건법 제14조 개정 방향에 대한 연구결과 발표에서 연세대 김소윤 교수는 “현실에서는 인공임신중절이 시행되고 있어 법 자체가 사문화돼 있다”고 규정하고, “인공임신중절의 법과 현실의 괴리 극복과 감소를 위해서는 현행 인공임신중절 허용 한계 · 허용 주수(週數)를 재정비하고 허용 절차를 두어야 출산 친화적 사회복지 정책을 강력히 추진할 수 있다”고 제안하였다.

모자보건법 제14조(인공임신중절 수술의 허용한계 사유) 개정을 위해 보건복지부가 구성한 ‘인공임신중절 감소를 위한 생명포럼(2007~2008년)’ 및 ‘인공임신중절의 예방과 감소를 위한 법적 · 제도적 개선방안 공청회’에서 필자는 “태아의 생명권과 여성의 선택권의 이분법적 인식과 논쟁을 넘어서야 하고 임신 · 출산 등 재생산권에 대한 사회 전반의 적극적 논의와 사회 · 경제적 사유에 의한 인공임신중절에 대한 합의가 필요하다”고 주장하였다. 당시 논의 과정에서 일부 구성원들은 여성들의 낙태 원인과 배경에 대해 폭넓게 이해하지 못하였다. ‘사회 · 경제적 적응 사유를 허용 범위에 포함한다’는 것을 우려하여 이분법적인 논쟁을 넘어서기 어려웠다.

2010년 가임기 여성(표본조사, 4천명)을 대상으로 진행된 ‘전국 인공임신중절 변동 실태조사’에서, 기혼 여성 중절률은 감소한 반면, 미혼 여성의 경우는 줄지 않고 있어 미혼의 임신중절 문제에 대한 관심이 필요한 것으로 분석됐다. 임신중절 사유로는 원치 않는 임신, 경제상 양육 어려움, 태아의 건강 문제를 우선순위로 응답하였다.

양현아 교수는 “낙태가 만연하는 것은 생명존중 사상의 부족이 아니라 임신할 수 있는 여성의 몸, 성, 자기결정에 대한 존중 사상이 부족하기 때문이다. 여성의 낙태 결정이 오히려 처벌의 대상이 되고, 낙태가 여성의 몸과 마음에 남기는 폐해가 사회적으로 알려져 있지 않고, 성평등한 피임 수행이 자리 잡지 않았기 때문이다. 또한 아이를 낳았을 경우에는 가족과 남성에게 의존하지 않고 살 수 있는 어머니 조건이 제대로 마련되어 있지 않기 때문이다.”라고 분석했다.

철학적 · 윤리적 차원에서 태아의 생명은 보호되고 존중되어야 한다. 생명존중 담론에서 태아의 생명권은 무엇과도 견줄 수 없는 가치이다. 낙태하는 여성은 무책임하고 이기적인 여성으로 치부되지만, 여성은 자신의 몸으로 생명을 만들고 낳고 기르는 주체로 누구보다 책임을 느낀다. 출산 후 육아의 과정은 개인의 심리적 신체적 부담을 넘어서 사회 · 경제적인 것을 포함하는 일이다. 축복받지 못할 탄생, 태어나서 제대로 양육될 가능성의 한계, 여성과 아이에게 필요한 사회적 안전망이 보장되기 어려운 현실에서 고민하다가 낙태를 선택한다. 선택 후에도 그 자책은 평생을 따라다닌다.

불법인 ‘낙태’는 누구에게도 알리기 쉽지 않은 일이기에 터놓고 이야기할 수 없었다. 한국여성민우회가 2013년 펴낸 《있잖아… 나, 낙태했어》에는 낙태를 경험한 25인의 생생한 사례들이 나와 있다. “어떤 여성도 낙태하고 싶은 여성은 없습니다.” “여성에게 출산을 결정하는 것은 내 인생을 결정하는 것과 동등한 무게입니다.” 등등.

낙태의 이면에는 연애와 성관계 등에서 자기 몸에 대한 통제권을 갖기 어려운 여성의 현실이 있고, 비혼 여성의 임신에 대한 부정적인 낙인이 있다. 출산을 결심하는 것은 양육을 담당하게 될 여성 자신(때로 배우자나 가족)의 삶과 자라날 아이의 삶을 기획하는 일이다. 선택의 순간, 삶을 규정하는 여건들이 우선 고려되는 것은 당연하다. 국가적인 양육의 계획, 임신 가능한 여성을 구분 짓는 범주, 양육을 위한 사회적인 환경이 그 여건을 만들어낸다. 출산이 만들어내는 삶의 모습(아이를 포함하여)을 상상해 볼 때, 그 삶을 살아내고 책임져야 하는 누군가에게는, 이는 평생의 생존권을 건 선택이 될 수밖에 없다. 여성이 체감하는 ‘사회적인 여건들’이 개인이 감당할 수 있는 수준을 넘어설 때가 많기 때문이다.

2) 낙태와 법

현행 형법은 낙태를 범죄화하여 처벌을 규정하고 있고, 모자보건법에서 제한적으로 허용되나 허용 범위는 협소하다. 낙태 건수를 추정할 때 이중 4% 정도의 합법적인 낙태 외에 96%는 불법이다. 법대로 한다면 낙태를 한 여성과 시술한 의사들은 처벌을 받아야 한다. 하지만 현실에서는 어떤가? 낙태로 처벌을 받는 경우는 극소수다. 낙태할 수밖에 없는 ‘어쩔 수 없는 상황’이 있음을 누구나 알고, 이미 인정하고 있기 때문이다. 사문화된 법이나 낙태 처벌의 법이 존재하는 한 법과 현실 사이의 모순은 계속될 수밖에 없다.

형법에서는 제27장 낙태의 죄 제269조(낙태)에서 “낙태 시 1년 이하의 징역 또는 200만 원이하의 벌금에 처한다” 등과 제270조(의사 등의 낙태, 부동의 낙태)에서 “의사, 한의사, 조산사, 약제사 또는 약종상이 부녀의 촉탁 또는 승낙을 받아 낙태하게 한 때에는 2년 이하의 징역에 처한다” 등 처벌규정을 정해 놓았다. 형법의 낙태죄 규정은 일차적으로 낙태한 여성과 시술 의료진을 처벌하는 반면에 남성(배우자)에 대한 직접 처벌규정을 두고 있지 않고, 모자보건법은 남성(배우자)에게 낙태에 대한 동의권을 부여하고 있다.

낙태 범죄화는 여성의 몸과 삶에 대한 통제로 귀결된다. 2010년 프로라이프의사회의 낙태 고발로 낙태가 형법상 범죄라는 사실이 널리 알려지자, 여성단체 상담소에는 남성 파트너에 의하여 낙태죄로 고발당한 여성들이 상담 전화를 걸어와 호소하는 상황이 발생하였다. 남성은 함께 낙태를 결정하고도 여성을 낙태죄로 고발하겠다고 협박하거나 실제로 고발한다. 임신의 한 주체인 남성은 책임과 위험에 대한 부담을 함께 갖기는커녕, 오히려 여성 통제 수단으로 악용하기도 한다.

모자보건법은 인공임신중절을 원칙적으로 금지한다. 다만 모자보건법 제14조에 예외조항이 있다. 당시 허용 사유를 확대 적용하게 된 것은 여성들의 낙태 자유화 목소리가 반영된 것이 아니라 국가의 인구억제 정책 때문이었다. 모자보건법상 논란의 핵심은 낙태의 허용 사유에 사회 · 경제적 사유를 추가하거나 ‘기간 방식(Fristenlösung)’을 도입하여 일정 기간 이내의 낙태를 허용하자는 견해와 모자보건법 제14조를 폐지하여 낙태를 금지하거나 현행법을 엄격히 집행하여 낙태 단속 및 처벌을 강화하자는 견해의 대립이라 할 수 있다.

헌법의 관점에서 태아의 생명은 사람의 생명과 다르게 평가되기도 한다. 2008년 헌법재판소는 태아가 생명권의 주체가 됨을 인정하면서도, “생명의 연속적 발전 과정에 대해 동일한 생명이라는 이유만으로 언제나 동일한 법적 효과를 부여하여야 하는 것은 아니다. 동일한 생명이라 할지라도 법질서가 생명의 발전 과정을 일정한 단계들로 구분하고 그 각 단계에 상이한 법적 효과를 부여하는 것이 불가능하지 않다.”라고 밝힌 바 있다. 이와 달리 2012년 헌법재판소는 낙태죄에 대하여 합헌 결정을 하였다. 헌법재판소 다수의견은 낙태죄 합헌의견을 제출하면서 “태아가 독자적 생존능력을 갖추었는지 여부를 그에 대한 낙태 허용의 판단 기준으로 삼을 수는 없다. 인간이면 누구나 신체적 조건이나 발달 상태 등과 관계없이 동등하게 생명 보호의 주체가 되는 것과 마찬가지로, 태아도 성장 상태와 관계없이 생명권의 주체로서 마땅히 보호를 받아야 한다”고 하였다. 헌법재판소는 태아의 생명권을 인정하며, “인간의 생명은 고귀하고 이 세상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존엄한 인간 존재의 근원”이라고 명시했다.

그러나 우생학적 또는 유전학적 사유가 있을 때는 ‘낙태를 허용해야 할 필요가 절실한 경우’에 해당한다고 판단하는 점이나 난임 시술을 위한 인공수정 과정에서 배아의 선별, 폐기, 선택적 유산이 현실에서 일어나고 있다는 점에서 차별적이다. ‘낙태를 하면 안 된다’와 ‘낙태를 해서라도 해결해야 한다’는 이중적인 현실이 존재한다. 미혼 여성의 낙태는 지탄받지만, 자녀 터울 조정을 위한 기혼 여성의 낙태는 용납되며, 모자보건법의 허용조항에서 명시하듯 장애 여성의 낙태는 사회적으로 용인된다.

낙태죄에 대한 헌법재판소의 합헌 판결은 낙태를 처벌하지 않는다면 훨씬 더 낙태가 만연하게 될 거라는 판단에서다. 그러나 낙태죄를 처벌한다고 하여 여성이 낙태를 ‘선택’하지 않는 것은 아니다. 프로라이프의사회가 낙태 시술 의사들을 고발하기 시작하자 30~50만 원이던 수술비는 10배가 오르고, 중국으로 원정 낙태를 가기도 했다. 즉, 낙태죄는 여성이 처한 여러 여건상 불가피하게 ‘선택’한 낙태 수술을 어렵게 만든다. 결과적으로 여성들이 더 낮은 비용으로, 더 안전하지 않은 낙태 시술을 하기에 이른 것이다.

법학자인 조국 교수는 여성의 자기결정권 존중의 필요성을 인정한다. 낙태에 대한 현실성을 수용하여 모자보건법에서 배우자 동의 요건의 삭제(남성의 여성 신체에 대한 처분권 인정), 우생학적 허용 사유 및 범죄적 허용 사유의 재정리(“강간 · 준강간에 의한 임신에 한정됨”을 “형법상 처벌될 수 있는 성범죄로 인하여 임신된 경우”로 규정), 사회 · 경제적 허용 사유가 수용(청소년 비혼모 지원 대책 없이 미성년자에게 아이 낳을 것을 요구하는 것 등은 국가의 직무유기를 여성에게 전가하는 것으로 형벌권의 오남용이다)되어야 한다고 말한다.

3) 문제는 ‘낙태죄’다.

2016년 9월 22일 보건복지부의 ‘의료법 시행령 및 시행규칙’ 개정안 입법예고는 많은 여성의 분노를 사게 되었고, 낙태죄 폐지 운동의 재점화 계기가 되었다. 보건복지부는 모자보건법 제14조 제1항을 위반하는 인공임신중절을 ‘비도덕적 진료행위’로 규정하며 이를 시술한 의사의 처벌 기준을 1개월에서 최대 12개월까지 강화한다고 하였다. 이에 반발한 산부인과 의사들은 10월 9일 기자간담회를 열어, 개정안이 철회되지 않으면 입법예고 기간이 끝나는 11월 2일부터 인공임신중절 시술 전면 중단 방침을 선언했다. 인공임신중절 시술을 ‘비도덕적 진료행위’에 포함하여 처벌을 강화하겠다는 정부나, 법안 통과 시 시술을 전면 거부하겠다는 의사들의 선언에 여성에 대한 고려는 없다.

낙태죄로 고발, 처벌당하는 것은 의사들이나 현실에서 피해를 입는 것은 여성들이다. 따라서 보건복지부의 조치에 분노한 여성들이 거리로 나와 ‘진짜 문제는 낙태죄’라고 외친 것이다. 여성/장애/법률/의료/학계/시민사회단체(2개 연대체, 72개 단체, 개인 서명자들 4,101명)들은 광화문 광장에 모여 “나의 자궁은 나의 것, 여성의 몸은 통제의 대상이 아니다”라는 슬로건 아래 임신중절과 관련된 보건복지부의 시행령 개정을 규탄하는 기자회견을 열고 퍼포먼스를 통해 목소리를 높였다. 여성들은 기자회견문에서 “우리는 국가와 사회가 감당해야 할 생명에 대한 책임을 떠넘긴 채, 우리 삶의 권리를 무시하고, 여성의 몸과 섹슈얼리티를 통제의 대상으로 삼아온 법과 정책을 거부한다. 우리는 더 이상 통제의 대상이 되지 않을 것이다. 여성들에게는 처벌 대신 더 많은 자율성과 권한이 주어져야 하며, 국가와 사회는 이를 보장할 수 있는 조건을 만들어야 한다. (중략) ‘낙태죄’ 폐지는 오직 여성들에게만 책임을 전가해 온 시대를 끝내고, 진정한 생명존중이 이루어지는 사회로 변화를 만들어낼 출발점이다.”라며 입법예고안 철회와 ‘낙태죄’ 폐지를 요구하였다. 여성들은 대전, 대구, 부산, 전북, 전남, 진주 등에서 전국적인 ‘검은 시위’를 열어나갔고 공동선언문을 발표하였다.

단체들은 성명서를 내고 카드뉴스를 제작, 임신 · 출산 결정권에 대한 국가의 침해 거부 행동을 제안하였다. 여성들의 임신중절을 불법으로 규정하고 처벌하는 ‘낙태죄’ 폐지를 위한 법개정청원 서명운동을 펼쳐나갔다. 53개 단체가 참여하고 2주 만에 1만7천 명 이상이 동참하였다. 불꽃페미액션, 페미당당, 강남역10번출구의 기자회견 및 퍼포먼스와 ‘성과 재생산포럼’ 주최로 열린 ‘생명권 vs 선택권 판 뒤집기’ 포럼 등 액션과 논의에서 ‘여성의 몸에 대한 탄압과 통제 중단’을 외쳤다.
언론도 “‘내 자궁의 주인은 나’ 한국판 ‘검은 옷 시위’ 불붙나” 등의 제목으로 기사화했다. 검은(옷) 시위의 배경은 가톨릭 국가인 폴란드였는데, 2016년 10월 낙태전면금지법이 발의되자 10만여 명의 검은 옷을 입은 시민들이 ‘검은 시위(poland abortion)’로 분노를 표출하였고, 그 결과 폴란드 정부는 법 발의를 취소하고 의회에서 법안이 폐기된 바 있다. 한편 한국의 시위 소식을 접한 아일랜드 사회당 페미니스트 그룹인 ROSA, 폴란드 시위를 주도했던 단체 Razem 등이 한국판 검은 시위에 대한 지지성명을 내기도 하였다.

아일랜드와 폴란드의 여성들은 한국 여성들에게 연대하기 위해 온라인으로 지지 선언과 인증샷을 보내주었다. 이에 화답하며 종로 보신각 앞에서 벌어진 검은 시위에서 한국 여성들은 “낙태를 합법화하라(폴란드: Zalegalizowac aborce)” “헌법 제8조 수정안을 폐지하라(아일랜드: Repeal the 8th)” “한 명도 잃을 수 없다(라틴아메리카: Ni Una Menos).” 등 스페인, 이탈리아, 멕시코, 아르헨티나 등에서의 시위를 알렸다. 세계 각국의 여성들은 ‘연결될수록 강하다’는 연대의 정신을 되새기며 낙태 합법화를 위해 싸우고 있다.

보건복지부는 위 개정령 안을 백지화하는 것까지 검토하겠다고 물러섰으나, 낙태죄가 존재하는 한 의료인을 규제함으로써 여성의 낙태를 사실상 금지하는 상황은 언제든지 발생할 수 있다. 낙태 합법화를 위한 움직임은 지속될 전망이다.


3. 자궁적출

여성 질병 중 대표적인 게 자궁 관련 질환이다. 자궁은 단순히 아이를 보존하고 기르는 기관을 넘어서 생명 에너지의 원천이 되고 몸의 혈액을 통솔하는 중요한 기관이다. 많은 여성이 겪는 월경 전 증후군이나 생리통, 월경불순, 부정출혈, 자궁근종 등은 발병 원인을 모르는 체 치료를 받는다. 자궁근종은 근육에서 발생하는 종양으로 여성에게 발생하는 양성종양 중 가장 흔한 종양으로 기혼 여성들의 경우, 자궁근종으로 밝혀지면 적출을 권유받는 경우가 많다. 이유는 아이를 더 이상 낳지 않을 경우에 ‘이젠 쓸모도 없는데……’ ‘가지고 있어 봤자 자궁암 같은 병만 만들 뿐’ ‘한 번 혹이 생긴 사람은 또 생길 가능성이 많으니’ ‘자궁 적출을 하는 것이 근본적인 치료라고 의사가 권해서’ 등이다. 여성에게는 ‘월경을 안 하게 되니 자연 피임이 되는 편리함’도 덧붙여진다.

자궁적출술 건수는 한국이 OECD 국가 중 1위이다. 자궁근종을 전문적으로 치료하는 양한방 협진센터인 이음여성의원의 김현진 원장은 “자궁근종 환자 중 실제로 자궁적출술이 필요한 경우는 3% 정도이다. 하지만 지나치게 많은 자궁적출술이 이뤄지고 있다. 한국의 산부인과는 학술 성향이 외과 중심으로 발달해 온 면도 있고, 수술해야 의료수가가 올라가는 의료제도의 모순점도 한 원인이 되고 있다”고 말한다. “자궁적출술을 하게 되면 우울증, 피부 및 근골격계의 빠른 노화, 요실금, 성감저하 등의 부작용이 따를 수 있다. 무조건 수술을 결정하기보다는, 먼저 비수술적 치료를 시도해 보는 것이 더 안전하다”고 조언한다.

자궁적출에 대한 우려에도 당사자인 여성들의 자궁적출에 대한 경험을 들을 수 있는 자료는 희박하다. 한국여성민우회(이하 민우회)가 자궁적출 수술을 경험한 여성들을 대상으로 시행한 설문조사(전국 8개 도시 30살 이상 여성 510명을 대상으로 실시)에 따르면, 조사 대상의 10% 정도 여성이 자궁적출술을 권유받았고, 이들 중 60% 정도가 실제 수술을 받았다고 한다. 자궁적출술을 받은 이유는 자궁근종이 가장 많고 그 외에도 자궁내막증, 비정기적인 자궁출혈 등이었으며 설문조사 대상자의 53.8%가 ‘필요 이상으로 여성의 자궁을 들어내는 경향이 있다’고 답했다.

건강보험심사평가원에 의하면 2012년 자궁근종 진료환자 수는 28만여 명, 자궁적출술은 1만4,549건, 자궁근종 절제술은 1만1,769건으로 매년 2만5,000명가량이 자궁수술을 받았다.

국민건강보험공단 발표 자료에는 2014년 자궁 관련 질환으로 자궁적출 수술을 한 사람은 4만 명 이상 될 것이며 해마다 늘고 있다. OECD 국가 중 자궁적출률 1위이고, 평균보다 4배가 많다. OECD 평균은 인구 10만 명당 115.6명인 데 비해 한국은 430.7명이나 된다.

실제 자궁근종으로 인해 자궁적출술이 필요한 경우는 근종이 암으로 전이될 가능성이 있거나, 출혈이 심해 빈혈을 초래하거나 다른 질환과 동반되어 위급한 경우 등으로 제한적이다. 그러나 자궁근종이 암으로 전환될 가능성은 매우 희박하며, 특히 난소에서 여성호르몬 분비가 중단되는 폐경기에 들어서면 근종의 크기가 자연적으로 줄어들기 때문에 굳이 수술할 필요가 없다고 한다. 증상에 비해 수술 비율이 높은 것이 우리나라 의료의 현실이며, 자궁을 통째로 제거하는 자궁적출 수술의 경우에는 근종만 제거하는 근종절제 수술에 비해 후유증도 심하게 나타난다. 민우회의 설문조사에서도 자궁적출 수술 이후 후유증을 겪고 있는 여성이 37.5%로 나타났다. 후유증의 종류로는 근육통, 안면홍조, 성생활 장애, 소화장애, 우울증이 나타났으며, 약 60%가 자궁적출 수술 전에 의료진으로부터 후유증에 대해 ‘듣지 못했다’고 답했고, 30.7%가 수술에 대해 만족하지 않거나 매우 불만족스럽다고 답했다.

자궁은 출산 기능과 상관없이 여성의 몸과 건강에 중요한 영향을 끼치기 때문에 자궁적출은 심각하게 고려해서 결정해야 한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주장이다. 자궁적출술이 만연한 현실에서 정확한 실태조사를 통해 여성의 몸을 위한 최우선의 선택인지 따져보아야 한다. 대부분의 여성 관련 질환이나 시술은 사회적 편견과 차별 탓에 은폐되는 속성이 있어서 정확한 통계조차 없이 의료기술에 종속된 형편이다. 무분별한 자궁적출은 반드시 지양되어야 한다. 우선적으로 자궁을 보존할 수 있는 방법을 찾는 것이 바람직하며, 여성의 건강권 측면에서 수술이 꼭 필요한 치료법인지 확인하고 설명을 듣는 것이 필요하다. 정말 불가피하게 자궁을 들어내야 하는 경우라면 수술 이후 여성들이 겪을 다양한 후유증을 줄일 수 있는 사전 · 사후 상담과 지원이 따라야 한다.


4. 생명의료 과학기술과 여성의 몸

1) 체외수정에서의 낙태

생명의료 과학기술은 건강성과 삶의 질을 향상시키는 동시에 인간의 존엄성과 신체의 안전을 위협할 수도 있다. 특히 여성의 몸에 미치는 영향은 긍정적이지만은 않다. 재생산권과 관련하여 인간이 생식세포, 수정란, 배아를 이용할 수 있게 되면서, 생명권 시작의 시점에 대한 판단이 의료/과학기술의 조건에 따라 좌우되고 있다. 한편, 생식과 관련된 배아복제 등 전혀 새로운 윤리적 문제를 야기하고 있다.

배아를 만드는 과정은 여성의 난자 제공 없이는 불가능하다. 그럼에도 생식 관련 기술이 여성의 몸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가에 대한 관심은 없었다. 배아 이용에 있어서 인간의 몸에서 분리한 배아와 여성의 몸에 존재하는 배아에 다른 기준이 적용된다. 여성은 법적으로 자신의 몸에서 분리해 낸 생식세포와 배아에 대해서도, 자신의 몸에 지닌 배아나 태아에 대해서도 주도권을 제대로 가지지 못하는 상황이 발생한다.

또한 저출산 지원 정책으로 난임 시술의 성공률을 높이기 위해 배아의 선별이나 폐기, 다수의 배아가 착상되었을 경우의 선택적 유산 등이 벌어지고 있다. 난임 해결을 위한 체외수정 방식 시술의 성공률은 25~30% 정도이기 때문에 성공률을 높이기 위해서 여러 개의 배아를 이식하는 방식으로 시술이 이루어지는데 다태아 임신이 된다. 다태아 임신 비율은 한국에서 더 높게 나타나는데, 현재 체외수정의 경우 40% 정도가 다태아 출생으로 보고 있다. 다태아 임신이 문제가 되는 것은 이 자체로 고위험 임신에 해당하는 경우가 많으며, 저체중아와 조산아 출생으로 이어지기 때문이다. 이를 방지하기 위해서 2개 이상의 배아가 착상되는 경우 선택유산(Selective abortion)이 이루어진다. 선택유산의 경우는 ‘이기적인 여성이 아이의 생명을 죽이는 행위’로 비난받지 않는데, 이는 기존의 ‘낙태에 대한 규범’이 얼마나 편향적이며, 생명권이라는 개념이 얼마나 상대적인지를 보여준다.

2) 배아복제 연구와 난자 이용

한국여성민우회를 중심으로 한 여성단체들은 2000년 ‘생명공학 감시를 위한 여성 모임’을 시작으로 여성의 재생산권을 여성인권의 관점에서 바라보고, 인공수정과 난자 관리에 관한 규제 규정을 요구해왔다.

2005년 황우석 논문조작 사건이 세상에 드러났다. TV 프로그램 〈PD 수첩〉이 황우석 교수의 2004년 《사이언스》 게재 논문에서 사용된 난자의 출처에 대한 의문을 방송하면서 황우석 교수팀의 배아줄기세포 연구에 1,620여 개의 난자가 쓰인 사실이 밝혀졌다. 한국여성단체연합, 여성민우회, 대한YWCA연합회 등 32개 여성단체가 난자채취 의혹에 대한 진상 규명을 촉구하였다. 여성계는 “황우석 교수 관련 사회적 논란의 핵심은 논문의 조작과 배아줄기세포의 존재 여부, 원천기술의 보유 여부에 집중되었을 뿐 난자 사용과 관련한 문제는 부차적인 문제로 치부되어 왔다”며 “이는 과학기술의 발전과 국익을 위해서라면 여성의 난자와 몸은 얼마든지 도구로 사용될 수 있다는 반인권적 · 비윤리적 태도를 보여주는 것이다”라고 지적했다.
수많은 난자를 사용해야 하는 배아복제 연구는 인권 · 윤리 문제를 피해갈 수 없기에 정부의 음성적인 난자 및 배아 관리 실태에 대한 지적, 여성의 몸을 보호하고 난자와 배아 관리의 투명성을 확보하기 위한 엄격한 난자 관리 시스템 마련, 체계적인 난자와 배아 관리를 위해 ‘생명윤리 및 안전에 관한 법률’의 개정, ‘인공수정에 관한 법률’ 제정을 촉구하였다.

황우석 논문조작 사건은 여성 건강권 논의를 촉발시켰다. 한국여성민우회는 ‘생명과학기술의 시대, 여성인권 확보를 위한 국제포럼’을 열어 복제 배아줄기세포, 인공수정, 대리모 같은 생명과학기술 발달이 여성의 몸과 밀접하게 관련돼있을 뿐만 아니라 인권 침해 소지까지 크다는 내용을 공유하고 대안을 찾고자 하였다. 미국에서 유전자, 재생산기술과 관련하여 활동해 온 CGS, 인도에서 여성건강과 관련한 다양한 활동을 진행해 온 SAMA, 영국에서 사회운동, 건강, 여성, 환경과 관련된 활동을 해 온 코너 하우스(The Corner House), 여성건강에 관한 정보를 담은 《우리 몸 우리 자신(Our Bodies Ourselves)》을 출간한 보스턴여성건강공동체(OBOS) 등에서 참여하였다. 포럼에서는 한국 사회에서 여성의 재생산 권리가 모성과 시민권과의 관계 속에서 어떤 위치를 차지하고 있는지, 생명과학기술이라는 개념의 문제와 이에 효과적으로 개입할 방안, ‘난자채취 시술이 여성의 건강에 미치는 위험성’과 ‘여성의 난자를 사용하는 줄기세포 연구의 문제점’ ‘생명과학기술의 국제적 상품화와 여성주의적 비판’에 대한 발표들이 진행되었다. 생명과학기술의 적용 과정에서 여성인권의 문제가 중요하게 취급되지 않았던 현실들이 공통적으로 지적되었고, 많은 발표자가 난자채취 시술 과정의 위험성에 대한 연구 자료가 충분하지 않다는 점을 상기시켰다. 하지만 이러한 위험성에도 여성들이 난자를 기증, 제공하는 복잡한 사회적 맥락이 존재한다. 각국의 상황, 개별 여성들의 경험들은 너무나 달라 상황에 따른 다양한 전략과 방법의 선택이 필요함을 공감하였고, 규제와 절차를 넘어서는 ‘운동’이 더욱 필요함을 확인할 수 있었다.

5. 맺는말

지금까지 낙태, 자궁적출, 난자 이용 등 여성의 몸을 통해 이루어지는 여성의 건강권, 재생산권 논쟁이 발생하는 지점에 대해 살펴보았다.

낙태 논쟁은 ‘생명권 대 결정권’ 구도로 지속되어 온 경향이 있지만, ‘태아 대 여성’이 대칭되는 문제가 아니다. 여성들은 낙태를 원하는 것이 아니며, 여성 자신과 태어날 아이, 가족, 그리고 사회적 맥락의 복합적인 관계 속에서 불가피하게 선택하는 것이다. 분명한 것은 낙태는 사회문제의 복합적인 구성물이며, 이에 대한 최종 결정권은 당사자 여성의 주체적 권리여야 한다. 물론 이를 예방하기 위한 교육적 · 사회적 접근, 출산 후 지원책, 인식의 전환 등에 대한 필요성은 절대적이다. 청소년 시기부터 제대로 된 성교육, 체계적인 피임 교육, 상담의 보편화, 비(미)혼모에 대한 사회 · 경제적 지원 등의 정책과 제도를 통하여 종합적으로 접근해야 가능하다.

낙태를 줄일 수 있는 방안은 낙태의 범죄화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다. 처벌이 강화되고, 낙태가 음성화될수록 여성들은 자신의 삶과 직결된 임신의 유지 여부와 건강 문제 등에 대해 상담하거나 의료적 도움을 받기가 어려워지며, 의사들 또한 여성의 건강권을 고려할 수 없게 된다. 저소득층과 청소년들에게는 높아지는 비용 문제 등 의료 접근성이 떨어질수록 더욱 위험한 상황에 처할 수밖에 없다. 불법시술로 인한 피해와 낙인, 죄책감으로 인한 사회적인 폭력 역시 온전히 여성이 감당해야 할 몫이다.

OECD 30개국 중 23개국에서 낙태를 합법화하거나, 낙태 허용 사유에 사회 · 경제적 사유를 포함시켜 여성의 낙태권을 폭넓게 인정하고 있다. 2009년 유엔 여성차별철폐위원회는 ‘낙태죄 폐지’를 권고하였고, 세계보건기구(WHO)는 안전하고 법적인 낙태는 여성이 누려야 할 ‘근본적 (재생산) 권리’로 언급한 바 있다.
‘여성의 임신 출산 결정권을 위한 네트워크’의 단체들, ‘불꽃페미액션’ ‘페미당당’ 연대모임인 ‘성과 재생산 포럼’ 등의 목소리는 점차 확장되고 있다. 여성들은 한결같은 목소리로 “국가정책에 따라, 국익 앞에 여성의 몸에 대한 권리는 없다” “여성들, 재생산권을 행사하라!” “온전한 재생산 권리 행사가 가능한 세상 만들기”를 외치며, 공감대를 형성해가고 있다. 국가정책에 더 이상 휘둘리지 않고 재생산권에서 자기결정권을 되찾겠다는 의지의 천명이다.

생명의료과학의 발전은 여성의 몸, 여성의 재생산 기능과 밀접한 관계가 있다. 거의가 남성으로 구성된 과학, 의료기술 분야, 윤리 분야, 법 분야 등의 논의에서 여성의 경험과 관점은 별로 고려되지 않고 있다. 새로운 의료과학기술의 발전에 대한 윤리적, 철학적 비판이 있지만, 한편으로는 그 성과를 받아들일 수밖에 없는 것이 우리의 삶이다. 여성은 출산 관련 의료의 소비자이며, 생명의료 과학기술의 토대인 난자의 소유자다. 여성들이 자신의 몸에서 이루어지는 임신과 출산의 전 과정에 대해서 일차적인 선택과 결정권을 갖는 것은 당연하다. 현실에서는 여성의 선택이 가능한 경우보다 제한되거나 방해하는 사회, 경제, 정치적 조건이 있다. 가부장적 사회적 규범과 환경, 의료제도와 자본과 권력 차원의 영향력이 존재한다.

영국, 스웨덴, 이탈리아 등은 자유적, 개인적 논의하에 비교적 기술 친화적인 입법을 하고 있다. 독일, 스위스, 노르웨이 등 생명공학의 발전에 대하여 엄격한 입법의 국가들은 생명공학의 원료 제공자가 될 여성에 대한 도구화를 중요한 문제로 본다. 유럽연합은, 사회적 가치의 문제로서 난자 제공자인 여성의 몸이 도구화되는 것을 문제로 인식하고, 계획에 젠더 관점을 도입하는 것을 주요 어젠다로 채택하고 있다.

생명의료 과학기술의 긍정적 측면과 동시에 규제의 필요성을 놓쳐서는 안 된다. 기술에 의해 출산되는 아이의 존엄성, 여성의 건강과 인권 침해, 생명 경시 현상, 자본의 권력에 의해 지배되는 현실 등을 고려한 재생산 기술 범위에 대한 정립이 논의되어야 한다. 재생산 기술정책은 사회정책, 경제정책, 과학정책이며, 그 핵심은 재생산 기능을 가지고 있는 여성의 몸에 대한 정책이다. 재생산 기술에 대한 논의는 주로 종교적, 윤리적, 법적인 문제들을 중심으로 다루어져 왔다. 낙태, 자궁적출, 난자 이용 등 재생산권의 장(場)에서 여성들의 경험과 생각을 충분히 드러내고 말할 수 있어야 한다.

국가정책, 생명의료 과학기술의 개입은 재생산권 영역에서 여성의 자기결정권, 여성인권을 담보하는가? 임신, 출산, 낙태, 자궁적출, 생명의료 과학기술에서 난자 이용 등 재생산 영역에서 여성들의 삶에 개입하고 있는 가부장적인 인식, 과학기술에서의 국가주도 정책, 자본과 권력이 연결되어 있다. 아직까지 국가정책, 생명의료 과학기술의 개입은 여성의 자기결정권, 여성인권을 담보해내지 못하고 있어 문제적이다. 여성의 의사에 반하여 여성의 몸에 개입되는 기술은 중대한 폭력에 다름 아니다.

2017년 3 · 8 여성대회에서 여성 · 시민단체는 2010년 3월 5일 오전 서울 청계광장에서 ‘3 · 8 세계여성의 날’을 맞아 기자회견을 열고 “임신과 낙태, 그리고 출산에 대한 결정권은 여성에게 있다”며 “오늘 우리는 여성의 몸을 통제하는 모든 억압을 단호히 거부한다”고 선언했다. 여성계가 19대 대선에서 대통령에게 기대하는 ‘지속가능한 성평등 사회를 위한 젠더 정책’의 첫 번째 항목이 낙태죄 폐지(여성의 재생산권 확보를 위한 낙태 처벌조항 삭제)이다.

여성은 재생산권의 어떤 장(場)에서도 자신의 경험과 생각을 충분히 드러내고 말할 수 있어야 하고, 정확한 정보를 제공받고 결정의 주도권을 가질 수 있어야 한다. 여성들에 의한 재생산권에 대한 권리 찾기, 자기결정권의 목소리에 그 답이 있다. ■

유경희 
전 한국여성민우회 대표. 한양대학교 사학과, 가톨릭대 상담심리대학원 상담학과 졸업. 녹색연합 상임대표, 시민사회단체연대회의 공동대표, 전국성폭력상담소 · 피해자 보호시설협의회 공동대표 등 역임. 주요 논문으로 〈여성주의 집단상담이 이혼여성의 심리적 적응에 미치는 효과〉가 있고, 저서로 《당당한 성, 안전한 성, 즐거운 성》(공저) 《여자들의 유쾌한 질주, 여성운동 새로 쓰기》(공저) 등 다수. 현재 그리다협동조합 대표, 생기랑마음달풀 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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