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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두언] 특권 없는 정의사회를 향해 / 박병기
[70호] 2017년 06월 01일 (목) 박병기 본지 편집위원

   

박병기
본지 편집위원

우리가 함께 살아가는 세상에는 참 많은 말들이 있다. 특히 남을 헐뜯거나 무시하는 말들이 많고,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그런 대화에 끼어들게 될 때가 있다. 심심하고 지루한 일상 속에서 남을 욕하는 것은 생각보다 재미있는 일이거나 쾌감을 느낄 수 있는 시간을 마련해주기도 한다. 그러나 어떤 기회에 그 대상이 바로 자신임을 알아차렸을 때 느껴야 하는 당혹감과 분노를 떠올려보면, 그런 대화에 시간을 뺏기는 것이 얼마나 한심한 일인지 쉽게 깨닫게 된다.

부처님 당시에도 참으로 많은 ‘세상에서 하는 말’이 있었던가 보다. 특히 최상위 계급을 이루던 브라흐민들의 말이 초기 경전에는 많이 등장한다.

“‘오직 브라흐민만이 가장 높은 계급이고 나머지 모든 계급은 열등하다. 오직 브라흐민만이 흰 계급이고 나머지 모든 계급은 시커멓다. 오직 브라흐민만이 정화(淨化)가 가능하고 다른 계급은 그렇지 않다. 브라흐민만이 브라흐마 신의 아들이고 자손이며 상속자다.’라고 말합니다. 이런 말에 대해 존자 님은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그런 말들은 다만 세상에서 하는 이야기일 뿐입니다. 어떻게 브라흐민들이 하는 말이 다만 세상에서 하는 말일 뿐인지 이해될 수 있는 길이 있습니다.”(맛지마니까야 84 《마두라경》)

우리 시민사회의 특권의식

시민사회는 정해진 계급이나 신분을 인정하지 않는 자유롭고 평등한 사회를 지향한다. 우리의 경우에도 1980년대 광주민주화운동과 6월항쟁을 통해 권위주의 정권에 대한 저항적 성격이 강한 시민사회가 자리 잡아 현재에 이르고 있다. 우리 역사를 좀 더 되돌아보면, 양반과 평민, 노비로 상징되는 신분제가 무너지기 시작하는 결정적인 계기는 19세기 중반 동학농민항쟁이었고, 그것이 광복 이후 토지개혁을 통해 경제적 차원으로까지 확장되면서 빠르게 평등의식이 자리를 잡을 수 있게 되었다.

그런데 21세기 들어 다시 이런 시대착오적 신분제가 망령처럼 소환되고 있는 중이다. 이른바 ‘헬조선(hell 朝鮮)’이라는, 문법적으로는 성립될 수 없는 개념이 그 출발점을 이루더니, 이제는 금수저와 흙수저라는 말로 확산되면서 기정사실로 받아들여지는 경향마저 나타나고 있다. 물론 말이 있다고 해서 현실 속에 그에 상응하는 것이 그대로 존재하는 것은 아니다. 특히 그 말이 사회현상의 특정 부분을 부각시키고자 하는 저널리즘적 렌즈를 통해 만들어진 경우는 더욱 그러하다. 다시 말해 우리 사회가 신분제 사회로 환원하고 있다고 판단할 근거는 아직 희박하다는 것이다.

그럼에도 ‘세상에서 하는 말’은 일정한 무게를 지니고서 우리 가슴속을 파고든다. 그중에서도 경쟁에서 패배하거나 할 가능성이 큰 사람에게 그 무게는 곧바로 상처로 이어질 수 있다. 가진 것이 많지 않아 서민으로 불리는 사람들 처지에서 볼 때, 우리 사회에는 분명히 감내하기 어려운 수준의 특권이 존재하고 있다. 미국보다는 덜 하다지만, 유전무죄(有錢無罪) 현상이 결코 적다고 볼 수 없고, 학력이나 성별로 인한 차이 또한 부정적인 의미에서 세계적인 수준이다. 그런 것들이 이번 대통령 탄핵과 파면 과정을 통해 적나라하게 드러남으로써 분노와 좌절의 폭이 넓어지게 되었다.

출생이 아닌 행위에 의해 이루어진다

부처님 당시 최고 계급이던 브라흐만 출신 두 청년 와셋타와 브라드와자가 출생에 의해서 브라흐민이 되는지를 놓고 논쟁을 벌인다. 와셋타는 ‘계행을 갖추고 덕행을 갖춘 사람, 바로 그가 브라흐만이다.’라고 주장하지만 브라드와자를 온전히 설득시키지 못하자, 부처님에게 가서 여쭈어보자고 제안한다. 다음은 이 쟁점에 대한 부처님의 답변이다.

이름이나 가계는 세상에서 다만 정하여 쓰는 것일 뿐이다. 관습에서 생겨서 여기저기 쓰이는 것일 뿐이다. 이 사실을 알지 못하는 사람에게 그릇된 견해가 오랫동안 마음속에 남아서 ‘출생에 의해 브라흐민이 된다.’고 단언한다. 행위에 의해 브라흐민이 되기도 하고 안 되기도 한다. ……행위에 의해 도둑이 되고 무사가 되며, 제관이나 제왕이 되기도 한다. 참으로 지혜로운 이는 이처럼 행위를 있는 그대로 본다. 그들은 연기를 보는 자이며, 행위와 그 결과를 잘 알고 있다.”(맛지마니까야 98 《와셋타경》)

부처님 당시는 초기 농경문화가 정착되면서 부의 축적과 함께 계급이 형성되면서 제도종교가 함께 출현하던 시기였다. 그 결과 자연스럽게 제도종교를 이끌어가는 지도자들과 정치권력자들에게 특권이 부여되었고, 사람들은 이렇게 관습으로 부여된 특권을 애초부터 있는 것으로 받아들이면서 순응해야만 했다. 그렇지 않을 경우 목숨까지 내놓아야 하는 억압이 뒤따랐기 때문이다. 이런 엄혹한 시절에 부처님은 그런 계급은 단지 세상 사람들이 하는 말과 관행일 뿐이라는 혁명적인 선언을 하셨고, 그것은 다시 남녀차별도 넘어서는 경지로까지 확장되었다. “비구든 비구니든 어느 누구라도 ‘네 가지 마음챙김의 확립’이 잘 서 있는 사람은 그 전보다 좀 더 훌륭하고 탁월한 이해를 얻게 된다.”(쌍윳따니까야 47 《사띠빳타나》)

우리 사회의 특권은 대체로 두 가지 방향에서 작동한다. 하나는 돈에 따른 특권이고, 다른 하나는 지위와 그 지위에서 오는 폭력적 권위, 즉 힘에 따른 특권이다. 후자의 경우 특히 고등고시 같은 시험에 통과한 사람들의 선민의식(選民意識)이 일반 시민을 개나 돼지로 비유하게 하는 부작용으로 나타나기도 하고, 전자의 경우 권력과의 결탁을 전제로 성역으로 여겨지던 부정한 대학입학 같은 형태로 나타나기까지 한다. 거의 모든 영역에서 작동하고 있다는 의미일 것이다.

어떻게 해야 극복할 수 있을까? 단 하나의 시원한 해결책은 물론 없다. 다만 이런 상황에서 흔히 떠올리는 ‘노블레스 오블리주’, 즉 고귀한 신분에 맞는 높은 ‘도덕적 의무’ 같은 말은 경계할 필요가 있다. 그 전제가 바로 ‘고귀한 신분’이라는 시대착오적인 것이기 때문이다. 우리 사회에 고귀한 신분은 존재하지 않는다. 부처님 말씀처럼 단지 행위에 의해 그 자리나 역할을 맡게 되었을 뿐이다. 이 명제가 지향하는 것에 어긋나는 현실이 분명히 있고, 그 현실은 당연히 극복 대상이다. ‘기울어진 운동장’에서 열등한 조건을 갖춘 사람에게 더 많은 기회를 줄 수 있는 차별화된 지원이 필요하고, 그것이 바로 사회윤리이고 정의이기도 하다.

남는 문제는 어떻게 그런 정책과 지원이 가능할 수 있을까 하는 실천적 차원의 것이다. 우선 우리는 그런 특권이 모두의 행복과 공동체의 안녕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사실을 직시하는 지혜를 가질 수 있어야 한다. 우리 시민들이 그런 지혜를 지닐 방법은 무엇일까? 먼저 자신의 일상 속에 혹시라도 특권의식이 들어와 있는지를 성찰하는 것이 중요하다. 다음으로는 모든 시민이 그런 지혜를 갖게 하는 시민교육이 학교교육 차원을 넘어서는 평생교육의 차원으로 확산될 수 있어야 한다.

이런 노력의 과정에서 특권의식의 허구성을 ‘출생이 아닌 행위다.’라는 간명한 명제로 정리해내신 부처님의 지혜가 되살아날 수 있었으면 한다. 바로 그것이 한국불교가 우리 시민사회를 위해 해야 하는 중요한 역할 중 하나이기도 하다. 승가 공동체의 고유성과 청정성을 존중하면서도, 한국불교가 지향하는 평등하고 정의로운 사부대중 공동체가 온전히 확립될 수 있도록 하는 노력이 그 출발점이 될 수밖에 없다. 그것을 바탕으로 삼아 시민사회를 이끌어가는 적극적이면서도 실천적인 종교성을 발휘할 수 있을 때라야, 한국불교의 미래에도 비로소 밝은 등불이 켜질 수 있을 것이다.


2017년 6월
박병기(본지 편집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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