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려 선불교 양대 종장의 정체를 밝히다

《한국 선불교의 원류 지공과 나옹 연구》
불광출판사 2017.1 출간 408쪽
한국불교 최대 종단인 조계종은 고려 말 태고보우(太古普愚, 1301~1382) 국사가 원나라에 들어가 임제종 선사인 석옥청공(石屋清珙)으로부터 인가를 받아온 뒤 ‘태고보우-환암혼수-구곡각운-벽계정심-벽송지엄-부용영관-청허휴정(서산 대사)……’로 임제선이 계승되었다고 주장한다.

 이 태고법맥설은 조선 후대 서산 대사의 하대 법손들이 임제종의 정통성을 확립하고자 의도적으로 정립했다는 게 학자들의 통설이다. 그럼에도 선사들은 태고를 해동초조로 삼아 사법전등(嗣法傳燈)을 주장하는데 이는 석가로부터 달마(達摩) 대사를 거쳐 6조 혜능(惠能)으로 나아가 임제(臨濟)로 이어져 오는 선이 국내에 전해졌다는 정통성을 내세우고 싶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저자인 자현 스님은 달마 대사와 다른 계파인 인도 승려 지공과 사법제자인 나옹을 ‘한국 선불교의 원류’라 했으니 학자다운 결단이다. 오늘날 한국불교는 지공과 나옹의 영향력이 지대하다는 걸 강조하려는 저자의 의도를 읽을 수 있다.

고려 말 백성들은 지공과 나옹을 살아 있는 부처로 존경했으며, 숭유억불 정책으로 불교를 옥죄던 조선 초 태종도 “우리나라에 지공대사(指空大師) · 나옹대사(懶翁大師) 이후에 내가 보고 아는 바로는 한 사람의 스님도 그 도에 정통한 자가 없었다.”며 지공과 나옹의 탁월한 면모를 인정했다. 나옹은 한글 가사인 〈서왕가(西往歌)〉와 〈승원가(僧元歌)〉를 지어 일반 백성에게 염불을 통해 서방 극락세계로 가자는 정토신앙을 고취했다. 오늘날에도 많은 사람이 나옹의 이름은 몰라도 “청산은 나를 보고 말없이 살라 하고. 창공은 나를 보고 티 없이 살라 하네……”라는 시를 즐겨 노래한다.

현행 불교의례에서도 지공과 나옹 그리고 나옹의 제자인 무학 대사를 3화상이라 부르며 예경하고 있다. 국내 사찰에서 새벽예불을 할 때 올리는 발원문이 바로 나옹이 지은 행선축원(行禪祝願)이며 불교의례의 게송 가운데 많은 부분이 나옹의 게송이다. 사찰에서는 삼성각(三聖閣)을 지어 지공 · 나옹 · 무학의 3화상을 모신 곳도 많으며, 이들과 관련한 설화가 있는 사찰은 전국 방방곡곡에 수없이 많다. 백성들의 믿음이 어느 정도인가는 무속인들이 자기들이 받드는 신을 모신 국사당(國師堂)에 이들 3화상의 영정을 모셨다는 사실로도 잘 알 수 있다. 이로써 선사들의 법맥설과는 별개로 대다수 스님과 백성들은 지공 · 나옹 · 무학 3화상을 존경하며 신앙의 대상으로 삼았음을 알 수 있다. 

이 책은 저자가 그동안 발표한 지공과 나옹혜근 관련 논문 가운데 13편을 정리해 담고 있다. 먼저 지공의 가계(家系), 나란타 수학(修學), 교(敎) · 선(禪) 수학, 무생계(無生戒), 계율관에 대해 살펴보고, 이어서 지공의 영향과 수제자인 나옹과의 관계, 나옹의 출가, 고려 말 공부선(功夫禪), 나옹 3구(三句), 나옹 공부10절목(功夫十節目), 나옹 3관(三關)의 선사상, 회암사(檜巖寺) 중창, 나옹의 붓다화에 대해 고찰하고 있다.

지공은 부계(父系)가 석가모니 붓다의 삼촌이며 모계(母系)가 달마(達摩)의 혈족이라며 최고 혈통을 주장했다. 이에 대해 저자는 부계인 마가다국과 모계인 향지국(香至國)은 지리적으로 너무 멀어 결혼 성사가 거의 불가능하며, 이는 석가모니와 달마의 혈통을 계승했다는 혈통적 신성함을 강조하기 위한 것이라고 주장한다. 그리고 이미 이슬람교도들에 의해 불타 버린 나란타대학에서 수학했다고 한 것은 나란타를 강조함으로써 스러져가는 인도불교의 대안을 고려불교에서 모색하며 스스로 위로하기 위해서라고 했다. 현대 불교학이 파악하는 인도불교사에서 본다면 지공의 주장들이 사실로만 받아들일 수는 없지만, 다소 과장이 있더라도 지공이 처한 특수한 환경과 변화에 대한 이해를 반영해서 지공의 행동을 이해할 필요가 있다는 견해를 밝히고 있다. 

지공은 금강산 법기보살을 친견한다며 원나라 진종의 어향사로 1326년 3월 고려에 들어와 2년 7개월을 머물렀다. 이 기간 동안 전국을 돌면서 선(禪)을 가르치고 계(戒)를 설하며 대대적인 교화를 하자 고려인들은 지공을 살아 있는 부처로 믿고 받들었다. 지공이 설한 계는 신도5계나 10선계(十善戒)나 보살계가 아닌 일반 불자들에게 생소한 무생계(無生戒)였다. 무생계는 대승계로 승속(僧俗), 사서(士庶), 남녀를 구분하지 않았다. 자신이 한역(漢譯)한 《문수사리보살최상승무생계경(文殊師利菩薩最上乘無生戒經)》(보물 738호, 세계 유일본이 현재 통도사 성보박물관에 보관 중이다)의 내용을 바탕으로 한 무생계를 하루에 수만 명에게 주었다고 하나 모든 사람에게 계첩을 준 것은 아니다. 목판에 내용을 새기고 이를 찍어내는 계첩이 아니라 현존하는 무생계첩 4개는 모두 여러 장의 필사본에 불화까지 그려진 계첩이므로 특정인들에게만 주었다고 볼 수 있다.

저자는 지공이 고려불교에 미친 영향력을 세 가지로 정리하고 있다. 첫째 입원(入元) 유학하는 조계종 선승 다수가 지공이 주석한 대도(大都) 법원사(法源寺)를 들르며, 둘째 지공의 영골(靈骨, 사리)이 고려로 오자 공민왕이 붓다의 사리와 함께 정대(頂戴)하여 이운했으며, 셋째 나옹이 지공의 수제자라는 점 때문에 고려불교계의 일인자로 도약했다고 했다.

나옹은 국내 조계선을 닦아 회암사에서 깨달음을 얻었지만, 원나라로 들어가 지공의 문하에서 수학하고 지공의 선을 계승하는 한편 임제종 선사인 평산처림(平山處林)에게도 인가를 받았다. 저자는 조선 중 · 후기 나옹의 사법제자인 환암혼수가 태고의 문손으로 확정하게 된 배경으로 기존의 연구 내용 이외에, 명의 건국과 중화주의 및 조선 성리학에 의한 관점 변화가 지공에 대한 위치를 바꾸게 되었다고 주장한다. 그리하여 지공 중심의 나옹보다는 보우가 더 순수한 임제정맥이라는 인식을 확보했기 때문에 보우가 보다 주류가 되었다고 했다.

고려 말 공민왕은 신돈과 거리를 두면서 불교개편 의지를 갖추고 공부선을 베풀 때 나옹을 주맹으로 발탁했다. 나옹에게 시제(試題)를 내고 판단을 내리는 전권을 주었는데, 나옹은 공부선의 판단 기준으로 ‘3구(三句)→공부10절목(功夫十節目)→3관(三關)’이라는 선적(禪的) 방법을 제시했다. 저자는 나옹이 공부선에서 제시한 3구, 10절목, 3관의 선사상을 고찰하고 있다. 먼저 3구는 나옹 이전에도 임제3구, 덕산3구, 암두3구 등 선의 간결한 시험 요목이지만, 나옹은 현실을 긍정하면서 곧장 실천으로 나갈 수 있는 구조를 갖추고 있다고 했다. 이러한 현실긍정과 강력한 실천성은 나옹이 친정치적이면서도 동시에 염불 게송이나 가사문학 등을 통해 민중마저도 감싸 안으려는 성향에서 잘 나타난다고 주장한다.

저자는 공부10절목은 남종선의 전통과 나옹의 체험이라는 이중적인 요소가 융합된 결과물로 선수행의 특징이 체계적으로 정리된 것이라 주장한다. 또한 공부10절목은 선수행과 관련된 체계적인 구조며, 돈오(頓悟) 이후 이상적인 목적에 관한 부분이라고 했다.

3관은 나옹 이전에도 선문에서 널리 사용되던 것이지만 나옹은 공부선의 판단 기준에 맞춰 새로운 구조로 조합한 것이다. 선사상적인 특징은 공성(空性)으로 현상의 대립과 같은 모든 문제를 극복하고(1관), 본래면목의 자각을 통해 미혹이 존재할 근거를 두루 소멸하는 모습이 보이며(2관), 일상으로 다시 복귀하는(3관) 구조라고 고찰했다.

나옹이 중창한 회암사(檜巖寺)는 지공으로부터 받은 ‘삼산양수지기(三山兩水之記)’의 장소며, 지공의 유골이 모셔진 곳이다. 훗날 무학대사가 주지하고 태조 이성계가 퇴위한 뒤 거처하던 곳으로 조선시대 가장 규모가 큰 절이었다. 저자는 나옹이 회암사를 중창하게 된 배경으로 오대산 불교를 이룬 자장의 영향이 컸다고 주장한다. 자장이 삼국통일 직전의 혼란상을 불교적인 관점으로 극복하려고 했던 방식에 영향을 받았다고 했다.

마지막으로 나옹을 부처로 인식하는 과정에 대해 고찰하고 있다. 나옹의 붓다화는 선종과 티베트불교의 생불 문화를 배경으로 하며, 철산소경(鐵山紹瓊)과 지공(指空)이 대표 인물이다. 고려에 들어온 철산과 지공을 고려인들은 생불(生佛)처럼 존경했다. 그리고 나옹이 입적한 뒤 나옹 문도들을 중심으로 나옹을 붓다화했다고 주장한다. 나옹을 붓다화하는 두 가지 요인으로 나옹의 사리 이적을 통한 종교적 관점의 인식 전환과 나옹의 무기력한 열반 과정에서 대두되는 나옹 문도들의 위기의식과 회암사의 존립 문제를 든다. 여러 기록에서 다비를 하니 치아 40개가 나왔고, 사리가 155과가 나왔는데 기도하니 558과로 나뉘었으며 4부대중이 재 가운데 얻은 것은 수를 헤아릴 수 없었다고 했다. 그리고 나옹이 머물며 법회를 열었던 회암사를 기원정사로, 나옹이 입적한 신륵사를 쿠시나가라로 비유했다. 조선조에 이르면 나옹을 석가모니의 화신으로 하여 석가모니불이 “말법이 되면 고려 땅에 나옹이라는 비구로 다시 태어나 외도를 파괴한다.”고 예언했다는 《치성광명경(熾盛光明經)》이라는 위경(僞經)까지 만들었다.

이 책은 저자가 발표한 논문을 정리한 전문 서적이므로 일반 독자가 쉽게 읽어나갈 수는 없지만, 한국 선불교의 법맥과 선사상에 관심을 가진 이라면 반드시 읽어야 할 책이다. 한국불교가 고려 말에 전래된 임제선만을 주장한다면 삼국시대 한반도에 불교가 전래되어 계승해온 한국불교는 단절된다. 그리고 사법전등을 고집한다면 세속의 장자상속처럼 하나의 법맥만을 인정하게 된다.

오늘날 한국불교를 보면 스님과 신도들이 선과 교와 염불을 함께 수행하고 있는 게 사실이다. 역사적으로 살펴보아도 한국 선불교는 임제선만 이어져 온 게 아니라 법안선과 위앙선과 조동선과 운문선 사상이 스며들어 있다. 샛강이 모여 큰 강을 이루듯 오늘날 한국불교는 많은 사상이 모여든 결과다.

이 책이 오늘날 한국불교의 신앙 현실을 자세히 들여다보면서 지공과 나옹에 대한 올바른 평가를 할 수 있는 계기가 되었으면 한다. 아울러 저자에게는 나옹의 〈서왕가〉와 〈승원가〉에 나타난 정토사상을 중심으로 민중들의 소리를 담아내는 데 관심을 가져주었으면 한다. ■

 

이철헌
동국대학교 경주캠퍼스 파라미타칼리지 조교수. 동국대학교 대학원 졸업(철학박사).주요 논문으로 〈나옹혜근의 연구〉(박사학위 논문)와 저서로 《붓다의 근본 가르침》 《대승불교의 가르침》 《갈등치유론》(공저)과 역서로 《문수사리보살최상승무생계경》(공역)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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