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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북을 떠도는 도난문화재들
장용철 시인, 윤이상평화재단 사무처장
[27호] 2006년 09월 10일 (일) 장용철 시인, 윤이상평화재단 사무처장

최근 경매사 서울옥션이 경매도록에 1980년 경 선암사에서 도난당한 팔상도 불화를 실었다가 경찰에 고발된 사건은 한국 도난문화재의 유통 실상이 얼마나 적나라한가를 보여주는 단적인 예이다. 서울옥션 측은 이 불화가 2004년 문화재청이 발간한 『도난문화재 도록』에 빠져있었고, 소장자가 믿을 만한 컬렉터여서 수집경위 등을 수사하듯 따질 수 없었다’고 한다.

하지만 이러한 해명이야말로 ‘도난문화재를 찾으려면 경매시장에 가보라’는 비난이 나올 정도로 궁색한 변명이 아닐 수 없다. 선암사 팔상도는 국립중앙박물관이 1997년 발간한 『미술자료』에도 실렸고, 당사자인 선암사 박물관 도록은 물론, 조계종이 1999년 발간한 『도난문화재백서』에도 실려 있기 때문이다.

회사 측은 해당 문화재에 대한 조금만 주의력을 더 기울였어도 얼마든지 ‘장물’ 여부를 걸러낼 수 있는 기회가 있었던 것이다. 이 사건은 변명이나 이해 여부를 떠나 성보문화재를 성보가 아닌, 단순한 상품으로 인식하는 한탕 식 상업주의와 허술하기 그지없는 문화재청의 도난문화재 관리 시스템과의 합작이라고 여겨진다.

도난문화재 밀매에 대한 심각성은 남이나 북이나 정도의 차이는 있을지언정 크게 다르지 않은 것 같다. 북한은 식량 부족 등 경제난으로 인하여 주요 문화재를 조중접경 지역을 통해 빼돌리는 것이 공공연한 비밀로 되어있다. 실제로 대북교류 협력사업을 해본 사람들이라면 한 두 번씩 중국 쪽 브로커나 또는 직접 북한 측 인사들을 통해 문화재 밀매 제의를 받아본 경험이 있을 것이다.

특히 거래 문화재들 중에는 불교문화재가 적지 않은데, 북한 쪽 역시 상대적으로 불교문화재가 많기 때문일 것이다. 어차피 일본 등으로 빠져 나갈 문화재라면 조직적으로 국내 반입을 추진하는 것이 올바른 애국적 처사가 아니겠는가 하는 생각을 해본다.

북한의 문화재 밀반출 현상은 그 정도가 지나치다. 개방화의 물결과 회복되지 못하는 식량난 속에서 북한사람들은 문화재가 쉽게 돈벌이가 된다는 유혹을 떨칠 수 없을 것이다. 그렇다고 민족의 얼과 혼이 서린 문화재를 스스로 내다 팔고, 또 그 밀매행태를 막지 못하는 것은 북한 당국의 통치기제가 과연 제대로 작동하고 있는지 의심하지 않을 수 없게 한다.

이미 서울의 골동품 시장에서 북한산 문화재는 무조건 ‘가짜’라고 여겨질 정도로 그 밀매가 광범위하게 성행하고 있다. 간혹 진품이 등장하기도 하여 입소문이 돌기도 하지만 밀반출 특성상 헐값에 매매되기 쉽고, 구입을 하여도 출처가 분명치 않아 문화재 등록도 어렵다. 북한은 먹고 살기 위해 어쩔 수 없이 문화재를 밀거래 한다는 동정이라도 받을 수 있지만, 남쪽은 백주에 행해지는 도난문화재들의 경매행위를 무엇으로 설명할 것인가. 도난문화재의 경매 행위는 국가적 중범죄이며, ‘문화민족’의 수치인 것이다. 이러고도 어떻게 북한의 문화재 밀반출 행위를 걱정하며, 또 ‘문화강국’이라 강변할지 어색할 따름이다.

물건을 훔치는 것은 투도(偸盜)지만, 성보를 움치는 것은 바라이죄(罪)에 해당한다. 바라이죄는 목련존자도 어찌할 수 없을 정도의 무서운 죄업이다. 참으로 나쁜 것은 문화재의 밀매 행위가 잘못되고, 무서운 범죄임을 알면서도 그 성보를 장물 취급하고, 백주에 사고파는 행위이다. 더욱 한국 최고임을 자타가 인정하는 박물관이 도난문화재임을 알면서 그것을 사들이고 전시하며 돌려주지 않는 행위는 폭력이다. 아무리 돈 있는 골동품 애호가라고 하더라도 문화재를 장물로 취급하면 그는 그저 장물아비에 불과할 뿐이다.

문화재 밀매가 성행하는 것은 관련법에 문제가 있기 때문이다. 문화재보호법 제84조에 따르면, 도난문화재임을 알고도 신고하지 않는 행위는 문화재은닉 행위로 처벌 할 수 있다고 되어 있다. 그럼에도 민법(제249조)에 근거해 선의로 취득하여 소유권을 인정받은 문화재는 범죄가 아니라는 판례는 문화재의 장물취득을 부추기는 것이다.

삼성문화재단 측이 가평 현등사 사리구임이 분명한 성보를 되돌려주기는커녕, 나폴레옹의 이빨이나, 베토벤의 머리카락에 비유하는 행위는 신성모독에 가까운 것이다. 여염집의 사당이나 위패도 자손이 아니면 함부로 못하는 것인데, 하물며 수백 년 동안 신심으로 지켜온 신앙의 대상인 불사리를 평범한 골동품으로 구입하여 재화로 취급하고 사유화 하려는 행위는 비난 받아 마땅하다. 설령 잘못 알고 샀다고 하더라도, 그 물건의 주인이 명백하면 돌려주고 사과하는 것이 인간사회의 도리인 것이다.

현재 현등사 사리구 문제는 취득자인 삼성문화재단과 피해자인 현등사 측이 각기 소유주임을 주장하는 소송이 진행 중인 초미의 관심 사건이다. 이 사건의 결과를 보면 아마 우리가 진정한 ‘문화민족’인지, 삼성문화재단 측이 진정한 문화재 애호가인지를 판별하는 중요한 갈림길이 될 것이다.

현등사 사리구는 이미 그 물건을 절취한 범죄자가 자신이 ‘유압장치’를 이용, 사리탑에서 빼낸 장물임을 고백한 바 있다. 범죄자가 자신의 범죄임을 고백했는데도, 분별심 없이 장물을 취득하여 불교계에 누를 끼친 과오에 대해 사과는 고사하고, 선의의 취득을 항변하는 것은 여느 경매업자와도 다를 바가 없어 보인다.

문화재청 홈페이지에는 매일같이 도난문화재들에 대한 정보가 올라온다. 최근에는 하동 금산사에서 ‘목은이색 영정’(경상남도 유형문화제 232호)과 경주 신평리 비로자나불상이 도난 된 것으로 나온다. 뿐만 아니라, 청송 주정사 대웅전 문짝, 양덕원 3층 석탑 등 도난은 그 때와 장소를 가리지 않는다. 이와 같이 불교계가 똑같은 사고를 반복해서 당하는 것은 누구를 탓하기보다 일차적으로 불교 자체의 성보 관리에 커다란 허점이 있음을 말해준다.

문화재청 공식 집계를 보면 1985년부터 지금까지 최근 22년 간 도난당한 문화재가 무려 506건에 1만5천여 점에 달한 것으로 나타난다. 2006년 올해만 해도 6월 현재 27건에 1천1백여 점의 문화재가 도난 된 것으로 그 추세는 급격히 늘어나고 있다. 국립박물관을 새로 지어 수백만의 관람자가 다녀가는 나라에서 어찌된 영문인지 감쪽같이 사라지는 문화재들이 늘어나는 것이다.

도난 된 문화재 가운데 회수된 것은 불과 1천6백여 점에 가까운 것으로 나타난다. 도난 된 문화재는 그 숫자도 심각하지만 이렇듯 그 회수율이 낮은 것이 더 문제인 것이다. 따라서 ‘소 잃고 외양간 고치는 것’ 보다는 더 이상 소를 잃기 전에 외양간부터 이중 삼중으로 울타리를 치고 눈 부릅뜨고 지키는 것이 관리 비책인 것이다.

돌아오지 못한 불교계 문화재들 가운데는 국보급 성보들이 상당수 포함되어 있다. 송광사 16조사 진영(보물 제 1043호)은 보조국사 지눌 등 고려 후기 열여섯 분 고승들의 진영이고, 강화도 백련사 철조아미타불좌상(보물 제 994호) 역시 도굴된 채 그 행방이 묘연하다.

1989년 도굴된 실상사 백장암 석등(보물 제140)은 통일신라 석등의 원형을 잘 간직한 수작이다. 도난과 도굴의 형태도 갈수록 대담해져서 법당 안의 후불탱화를 도려 가는 것은 초범의 행위이고, 국보인 여주 고달사 부도탑을 기중기로 들어 올리다 그 빼어난 지붕 돌을 깨뜨리는 고수들도 수두룩하다.

해외로 강탈되거나 밀반출 된 문화재 7만 4천여 점과 규모는 물론, 행방조차도 파악할 수 없는 최근의 북한문화재까지 포함한다면 5천년 유구한 전통문화는 상당부분 껍질만 남는 것이 아닌지 모를 일이다. 그러면 이제 어찌해야 할 것인가. 문화재는 하루아침에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지키는 것이 더 중요하다.

문화재를 지키는 것은 법률적 제도나 기구도 중요하지만 문화재의 중요성에 대한 국민들의 인식을 제고하는 것이 더 중요한 것이다. 그런 점에서 문화재청의 ‘1문화재 1지킴이 운동’이나, 불교계 시민단체의 ‘1폐사지 1지킴이 운동’ 등은 매우 고무적인 현상이 아닐 수 없다.

선진국들의 경우, 문화재 보호는 철저한 법적 장치와 함께 국민의식이 하나가 되어 제2의 부존자원, 관광자원 차원에서 문화재 보존의 틀을 가꾸어 나가고 있다. 미국의 경우, 문화유산 관리법제가 다양한 것이 그 특징이다. 1906년 고물애호법이 제정된 이래 1966년 사적보호법 제정을 계기로 연방정부 소유 땅에 있는 문화재와 사적에 대한 등재 및 보호 작업이 완벽하게 추진되고 있다. 미국의 문화재보호법은 연방정부나 주정부가 재원을 마련하여 1백만 달러이상까지도 지원을 할 정도이다.

호주의 경우, 정부의 과감한 정책적 지원으로 시민단체와 합심해서 효율적인 문화유산 관리체제를 구축했다. 호주의 문화유산위원회에는 무려 6천6백여 개의 시민단체가 등록되어 ‘유적 지킴이’ 활동을 펼치고 있다. 일본은 문화재청과 지자체 간에 신속한 문화재보호협조 체제가 구축되어 지자체 단위의 현장 박물관과 유적보존 활동이 활발하다. 특히 내셔널트러스트 같은 단체는 나라시대의 대형건물을 자체 발굴 복원할 정도로 민간기관의 역량이 전문화 되어 있다.

한반도를 떠도는 도난 문화재들의 정착지는 어디일까. 인사동 거리에 나가면 혹시 그 일차 집결지가 인사동이 아닌가 여겨질 때가 있다. 온 곳도 갈 곳도 모르는 정체불명의 무두불(無頭佛)들, 석조물, 불구(佛具) 등이 시멘트 보도 불럭을 좌대 삼아 중생들을 영접하기도 하고, 형형색색의 상호를 주련으로 삼기도 한다.

정작 소중한 것은 인신구속 이상의 감금 상태로 ‘살인의 추억’을 회상하고 있을지도 모를 행방불명의 무수한 성보들이다. 도난문화재에 있어서 공소 시효 7년을 연장하거나 아예 없애 버려서, 모든 도난문화재가 제자리를 찾아가는 그날까지 감시와 추적을 계속해야 할 것이다.

장용철
시인, 윤이상평화재단 사무처장.‘풍경소리’(지하철 법음을 전하는 사람들의 모임)의 작가인 장용철 시인은 투명한 동심을 통해 나와 너, 나의 세상이 경계를 허물고 하나가 되는 따뜻한 화해의 세상을 꿈꾸고 그려왔다. 조선일보 신춘문예로 등단, 『서울지옥』『늙은 산』 등의 시집과 『눈은 눈을 보지 못함같이』 『잊혀진 가람탐험』 등을 펴냈다. 지하철 '풍경소리' 게시판을 통해 소개된 '아름다운 관계', '처음 그것' 등은 폭넓은 공감대를 형성, 인터넷 블로그 및 카페의 인기 검색어가 되었다. 시인은 현재 진각복지재단 사무처장과 윤이상평화재단 사무처장, 문화복지연대 공동대표로 활동하고 있으며, 제19회 불이상을 수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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