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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껏 웃으면서 고행하기 / 김미숙
[69호] 2017년 03월 02일 (목) 김미숙 jainica@naver.com

   

김미숙 
동국대 다르마칼리지 조교수

불자라면 모두가, 인생은 고통이라고, 더 나아가 세상 모든 것이 고통이라는 말을 추호도 여지 없이 지당한 부처님의 가르침으로 여길 것이다.

나 또한 불교와 관련된 강의를 할 적마다, 대체로 어김없이 ‘인생은 고통’이라는 대명제에서 시작하곤 한다.

인생은 고통이다!

잠시 잠깐 웃고 있더라도, 인생은 고통이며, 아무 근심 없이 잘 사는 듯 보여도 속내를 알고 보면 고통스러운 걱정이 없는 사람이 없다. 그것이 인생이다.

언젠가 나와 같이 걸어가던 학생 하나가, 곁을 지나쳐 가는 어느 교수를 보더니 말했다.

“저분은 강의하실 때, 활짝 웃으시면서 ‘인생은 고통’이라고…….”

그 학생이 덧붙이길, 일체개고(一切皆苦)를 설명하면서 웃기만 하던 그분은 과연 고통의 의미를 제대로 알고나 있는지 궁금하다고. 그 말을 들은 뒤부터는 행여 나도 그런 소리를 들을까 봐 못내 조심스레 강의하곤 한다. 참으로 일체가 고(苦), 아닐 수 없다.

이미 지나간 날이 앞으로 남은 날보다 분명히 많은 지점에 다다른 나로서도 아무리 에누리해서 생각해 봐도 고통이었다, 내 인생! 좋은 날이 어찌 없었을까마는, 일체개고는 적어도 내게는 최상의 진리이다. 이렇게 스스로 절감하고 아는 진리이지만 나이 어린 학생들에게 그것을 설명하기란 쉽지 않다.

사실 학교에서 불교를 강의하다 보면 매번 설명하기 난감하다고 느끼는 것이 바로 일체개고와 윤회 문제이다. 강의실에서는 언제나 솔직해야 한다는 것을 신조로 삼고 있는 나로서는, 윤회를 설명할 때 어느 선에서 그쳐야 하는지 번번이 헤매곤 한다. 역사적인 개념으로 설명할 것인지, 아니면 교리적인 신앙으로 해명해야 하는지, 아니면 개인적인 소신 발언을 해야 하는지 언제나 난감하다.

일체개고를 설명하는 일도 윤회 개념 못지않다. 일단, 학생들은 공부하는 것이 힘들다고 하면서 인생은 고통이라고 수긍한다. 피상적인 삶의 고통들, 그저 얻고 싶은 것을 얻지 못하고, 보기 싫은 꼴을 봐야 하고, 보고 싶은데 볼 수 없다는 것 등이 고통이라고 공감하며, 그 정도라면 일체개고도 이해된다는 것이다. 그러나 무상한 오온(五蘊)으로 이루어진 존재 자체가 그대로 고통이라는 뜻이 일체개고의 본질이자 핵심이라는 데에 이르면, 대부분의 수강생은 불교란 염세적이고 비관적인 종교라고 여긴다. 나름대로 적잖은 세월을 쏟아서 공부했건만, 아직도 뾰족한 설명 방법은 생각나지 않는다. 불교는 염세적이거나 비관적인 종교는 결코 아니라고 설명해 주고 싶은데 번번이 실패하고 만다.

일체개고나 윤회설과는 달리, 쉽고 분명하게 설명할 수는 있지만, 현실의 상황과 달라서 또 곤란한 문제도 있다. 바로 중도(中道) 수행법이다.

다 알다시피, 싯다르타는 출가 후 6년 동안 지속했던 갖가지 고행을 포기하고 나서, 깨끗이 목욕을 한 뒤 우유죽을 먹고 나서 보리수 아래 앉아 숙고 끝에 진리를 깨달았다. 그렇게 붓다가 된 후에 선언하였다.
“고행은 궁극적인 지혜를 얻는 데 아무런 소용이 없다.”

이 얘기를 들은 내 학생들은 적잖이 의아해한다. 왜냐하면 아무래도 스님들의 겉모습은 고행 그 자체로 보이기 때문이다. 학생들만 그렇게 생각하는 것은 아니다. 현대 서구의 학자나 재가자들도 불교의 수행은 고행 수행법에 속한다고 분류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교 수행법을 과연 중도 수행이라고 해야 할까? 결단코 고행은 아니라고 말할 수 있을까?

최근에 나는 종교 음식 관련 연구를 진행하고 있는데, 그 때문에 중국 사찰 몇 곳을 들러볼 기회가 있었다. 현대 중국 사찰의 일상을 경험할 수 있는 좋은 기회였다. 그중에서도 8일 정도 머물렀던 광둥(廣東) 성 동화선사(東華禪寺)의 가풍은 매우 인상적이었다. 동화선사는 오래전 육조혜능(六朝慧能) 선사가 수행했던 절터를 기반 삼아 근년에 재건한 사찰이라 한다.

여름의 동화선사는 낮 온도가 섭씨 44도를 가볍게 넘나들 정도로 무더웠다. 44도의 여름은 내 생애 처음 겪어보는 온도였다. 나는 녹초가 되어 숨조차 쉬기 힘들었고, 해가 떠 있는 시간에 몸을 조금이라도 움직이는 것은 그야말로 지독한 인내가 필요했다. 그런데도 그 절의 대중은 새벽부터 늦은 밤까지 각자 정해진 시간표와 소임에 따라 매우 일사불란하게 움직이고 있었다. 10여 년 만에 급성장한 사찰다운, 생기 넘치는 현장이었다.

동화선사에 상주하는 스님의 수는 98명, 재가자는 180명에 달했다. 땡볕 아래서 땀에 젖은 몸이야 아랑곳하지 않고 절 곳곳에서 쉼 없이 일하던 그들 모두가 내게는 몹시 경이로웠다. 망원렌즈를 통해서 엿본 그들의 얼굴에서는 미소가 떠나질 않았기 때문이다.

동화선사와 비슷한 날씨의 인도에서는 그렇지 않았다. 가까이서 만나면 누구나 밝게 웃고 있던 사람들도, 그들 모르게 망원렌즈를 통해서 관찰해 보면 한결같이 찡그린 채로 화난 인상을 하고 있었던 경험이 떠올랐다.

참으로 존경스러운 마음이 들 만큼 동화선사 대중의 일상은 경건하고 우애 넘치고 자비심도 충만한 듯 보였다. 길지 않은 며칠 동안 무엇을 얼마나 많이 보았겠는가? 하지만 여러 나라 곳곳의 불교 사찰에서 자고 먹고 돌아다니면서 보았던 경험의 눈으로 확실히 본 것은 작열하는 태양만큼 뜨거운 그들의 신심과 수행력이었다.

7년 폐관(廢關) 수행을 마쳤다는 주지 스님을 비롯하여, 하루 한 끼만 식사하는 스님, 눕지 않는 수행을 2년 넘게 하고 있다는 스님, 보름 동안의 단식을 막 마쳤다는 스님 등, 일중일식(日中一食), 야부도단(夜不倒單), 갖가지 고행을 했거나 또 하고 있는 중이었다. 그들 모두가 형형한 눈빛에 얼굴 가득 미소가 어려 있었다. 하나같이 수척한 듯 여윈 모습이었지만, 평정한 듯 서늘한 듯 충만한 선기(禪氣)가 느껴졌다.

샤키야무니 붓다, 그가 고행하지 말라고 말렸지만, 당대의 제자들은 두타(頭陀) 수행이라는 이름으로 고행을 지속했다. 그리고 두타 고행은 전통이 되었고, 21세기 중국의 한 절에도 고스란히 전승되고 있었다.
생각해 보니, 어쩌면 웃으면서 기꺼이 고행할 수 있는 동화선사의 대중은 염세주의나 비관주의가 아닌 불교의 진수를 알고 있는 듯하다. 평온한 미소 가득한 그들의 고행은 이미 고통의 차원을 넘어선 지 오래일 테니까. 그들은 원형 불교의 정신 그대로, 사랑과 자비를 구현하고자 애써 하루하루 고행하는 것이리라.
동화선사의 어느 스님 말씀하시길, “수행은 생명에 대한 깊은 사랑”이란다. 폐부에 와 닿는 그 말씀을 듣고서야 내 오랜 고민도 슬슬 풀려가는 듯싶었다.

김미숙 / 동국대학교 다르마칼리지 조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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