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선주 
소설가·한국여성문학인회 이사장
나는 엄격한 유교 집안에서 자랐지만, 불교의 삼생에 걸친 인연에 대해서는 어려서부터 익히 들어왔기에 자연스럽게 내 의식 속에 자리 잡고 있었다. 그러기에 불교는 종교라기보다는 심오한 자아 해탈을 통한 철학이라는 생각을 해왔었다.

결혼하여 시댁 식구들을 만났을 때, 나에게 새로운 인연이 생겼음을 가슴에 깊이 아로새겼다. 당연히 시모에 대해 거부감이 없었고, 남편을 낳아준 소중한 분이라고 생각한 것은 어쩌면 어려서부터 읽어온 인연에 대한 불교 동화 덕분이었는지도 모른다.

시모는 독실한 불교신자였다. 그분은 ‘지는 것이 이기는 것이다. 모든 중생을 어여삐 여기고 자비를 베풀어라.’는 인생 지침을 나에게 말해주었다. 당시 나는 지는 것은 패배를 의미하는 것이지 어떻게 이긴다고 하시나 하는 생각으로 그 말씀이 이해가 되지 않았다. 하지만 세월이 흐를수록 넓고 깊은 통찰력을 통한 이해심과 포용력 앞에서 그분을 진심으로 좋아하고 따르게 되었다.

시모와 나는 종종 절에 함께 가곤 했다. 그 시절, 나는 모든 종교를 좋아하지 않았다. ‘천상천하유아독존’이라는 생각으로 나 자신이 곧 우주였다. 누구에게 의지하고 바라는 것보다 모든 행위는 자신이 결정해서 행동하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아무도 모르게 혼자 있어도, 자신의 내부에서 자부할 수 있게 진정 바르고 착하게 산다면 그것이 곧 종교라고 생각했다. 철저하게 위선을 인정하지 않았고, 오직 나의 직심만을 최고의 가치라고 생각했다.

어느 날, 시모와 함께 탄공 스님이라는 분을 만나게 되었다. 하얀 머리카락과 수염이 무성하고 길어서 산신령을 연상하게 하는 분이었다. 백 살이 넘었다는 말이 실감이 나지 않을 만큼 눈빛이 형형하고 꼿꼿하신 분이었다. 시모는 스님을 몹시 존경하고 따르는 듯했다. 스님은 나를 보자마자 무척 좋아하셨다. 나를 뚫어지게 바라보며 분에 넘치는 칭찬을 하는 바람에 나는 어쩔 줄을 몰랐다. 현명함도 덕스러움도 없는 나를 너무나 높이 평가하는 스님에게 내 가슴 속에 자리 잡은 온갖 잡념들을 들킬까 봐 겁이 덜컥 난 것이다. 나는 지극히 평범한 한 남자의 아내일 뿐인데……. 그래서 나는 될 수 있는 대로 스님을 피해서 경내를 돌아다니곤 했다.

인도의 사르나트에 갔을 때였다. 부처님이 해탈하신 곳이라고 했다. 그곳에서 문득 이상하게도 탄공 스님이 눈앞에 어른거렸다. 나는 작은 불상을 하나 사서 스님에게 선물로 드렸다. 스님은 어린아이처럼 좋아하시더니 손수 그린 그림을 나에게 주셨다. 이 불상은 비싸지 않은 것이라고 했더니, 값이 문제가 아니라 그곳에서 당신을 생각하고 가져왔다는 그 사실이 대단한 마음이라고 하시면서 넘치는 선물을 하신 것이다.
어느 날 홀연히 스님이 세상을 뜨셨다. 아끼는 신도들을 불러서 잔치를 열고 학춤을 추고 나서 홀로 방에 들어가 앉아서 열반하신 것이다.

스님이 가시고 신문 방송 등에서 보도한 기사를 보며 그분이 대단한 스님이었다는 것을 알았다. 그리고 평소에 말씀하시던 것이 그대로 현실이 되는 것을 종종 느끼며, 좀 더 가까이 가서 심오한 가르침을 받지 못했던 나의 어리석음이 몹시 안타까웠다.

세월이 흘러 시모도 가시고, 아들이 자라서 수능시험을 치르는 때가 되었다. 나는 어미로서 아들을 위해 정성을 들이고 싶었다. 그때 문득 스님이 계시던 절이 생각났다. 그곳에서 스님과 시모를 만나고 싶었다. 나는 아득한 전생으로 걸어 들어가듯이 나도 모르게 그곳으로 달려갔다. 주지 스님이 나에게 염주를 주면서 혼자 대웅전에 가서 정성을 들이라고 했다. 그곳에는 아무도 없었다.

나는 오로지 아들을 위한 마음 하나로 정신을 통일하고 백팔 번의 절을 올리기 시작했다. 난생처음으로 온 마음을 다 바쳐서 일구월심의 자세로 해본 절이었다.

절을 마치고 법당을 나서자 온 천지에 하얀 눈이 난분분 흩날리고 있지 않은가. 10월 중순에 눈이라니! 내가 헛것을 보았나, 하는 생각으로 눈을 감았다 떴다 하며 한동안 허공을 망연히 바라보고 있었다. 하지만 확인하고 또 확인해도 틀림없는 눈이었다.

그때, 나는 비로소 스님이 나를 찾아오신 것을 불현듯 깨달았다.

아! 스님! 어찌 이곳에…… 벅찬 가슴을 싸안고 합장을 한 채, 오래오래 무아의 경지에서 헤어나지 못했다. 서늘한 기운이 온몸을 휘감고 돌아서 나도 모르게 감았던 눈을 뜨고 나니 언제 그랬느냐는 듯이 환한 햇빛이 경내 가득히 쏟아지고 있었고, 맑고 푸른 하늘이 아득하게 보였다. 어느 틈에 스님이 훌쩍 떠나신 것이 느껴졌다. 이것이 진정 그분과 필연적으로 이어진 인연이란 말인가. 나는 벅차오르는 가슴을 부여안고 절을 떠났다.

전국 수험생의 1% 안에 든 아들의 성적은 어쩌면 스님 덕분이 아니었던가 하는 생각이 뇌리를 스치고 지나갔다. 나는 어려서부터 신비로운 마음으로 무작정 믿었던 삼생 인연의 이야기를 생생하게 터득한 것 같아서 온몸을 부르르 떨었다. 다음 생에서는 과연 스님과 어떤 인연으로 만나게 될까? 몹시 궁금하고 기다려진다.

김선주 / 소설가·한국여성문학인회 이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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