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한수 
조선일보 종교전문기자
‘살불살조(殺佛殺祖)’.

처음 이 단어를 들었을 땐 의아했다. ‘부처를 만나면 부처를 죽이고, 조사(祖師)를 만나면 조사를 죽여라.’ 요즘 말로 의역해보자면 ‘부처를 죽여야 불교가 산다’ 정도가 될 것이다. 무슨 말인가?

한때 《공자가 죽어야 나라가 산다》는 책이 화제가 된 적이 있었다. 그때 저자의 논리는 “공자의 도덕은 사람이 아니라 정치, 남성, 어른, 주검을 위한 것이다”라는 것이었다. 문자 그대로 ‘공자가 죽어야 우리나라가 산다’는 말이다. 유교의 폐해를 공격하기 위한 책이다.

그런데 불교에서 이야기하는 ‘살불살조’는 역설이다. 무슨 종교가 창시자와 중흥조들을 죽여야 종교가 산다고 대놓고 떠든단 말인가?

‘살불살조’를 다시 떠올린 것은 인도와 네팔의 부처님 성지를 순례하면서 열반 성지인 쿠시나가르를 방문했을 때이다. 부처님이 상한 음식을 먹고 심한 복통으로 열반에 들기 전 제자들이 슬퍼하자 남긴 말씀을 떠올렸다. “자등명(自燈明) 법등명(法燈明).” 자기 자신에게 의지하고, 진리에 의지하라. 자기 자신을 등불 삼고, 진리를 등불 삼으라는 이 말씀을 떠올리니 ‘살불살조’와 같은 뜻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동안 수많은 조사(祖師)들이 “중 믿지 말라”고 했던 이야기도 같은 맥락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다면 부처님 이래 불교의 모든 조사들은 같은 말을 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지금까지 생존한 대부분 종교는 사실 ‘살불살조’의 전통을 이어오고 있다. 대개는 ‘개혁’이라는 단어를 쓴다. 종교의 개혁은 정치개혁과는 전혀 맥락이 다르다. 정치는 왕정에서 귀족정, 공화정 등의 과정을 거쳐 점차 민주주의가 확대되는 식이다. 즉 다른 방향으로 변화하는 것이 개혁이다. 그러나 대부분 종교의 개혁은 ‘원점 회귀’가 목표다. 창시자, 교조(敎祖)의 정신으로 돌아가자는 것이 항상 개혁의 화두가 됐다. 1,500년을 이어온 중세 가톨릭에 반기를 든 프로테스탄트가 그랬다. 그래서 여러 종교의 개혁가들에게는 ‘원리주의자’ ‘근본주의자’라는 별칭이 붙곤 한다.

‘살불살조’ 혹은 ‘자등명 법등명’의 관점으로 보면 근현대 한국불교사에도 개혁의 전통은 면면히 흐르고 있다. 조선왕조 500년의 억불숭유 정책으로 거의 불씨조차 남아 있지 않던 구한말에 선(禪)의 불씨를 살려낸 경허 선사가 그랬고, 광복 후 문경 봉암사 결사(結社)를 단행했던 성철 스님을 비롯한 선승(禪僧)들이 그랬다. 특히 봉암사 결사의 구호가 ‘부처님 법대로 살자’였던 것은 자못 의미심장하다.

그런 의미에서 보면 불교는 매 순간 ‘살불살조’하며 살아가도록 가르치는 것이 아닐까. 어떤 훌륭한 가르침도 맥락을 잃게 되면 도그마이자 ‘죽은 가르침’이 될 뿐이라는 점에서 그렇다. 심지어는 ‘어제의 나’ 역시 죽이고 극복해야 할 부처이고 조사가 아닐까.

법정 스님으로부터 경전 번역에 뛰어든 계기를 들은 적이 있다. 젊은 시절 해인사에서 정진하던 스님에게 장경판전에서 내려오던 한 노보살이 물었다. “팔만대장경이 어디 있나요?” “방금 내려오신 곳에 있는 게 팔만대장경입니다.” “아, 그 빨래판 같은 거요?” 법정 스님은 그 순간 ‘팔만대장경도 읽지 못하면 빨래판보다 못하다’고 절감하고 쉬운 우리말로 경전을 옮기기 시작했다고 했다. 불자들이야 이해를 하건 말건 한문투성이 경전을 읊어야 한다고 고수했다면 그것이야말로 불교를 죽이는 일이었을 것이다.

성철 스님은 봉암사 결사 이후 ‘집도 절도 없이’ 전국의 수행처를 떠돌면서 치열하게 수행하고, 가르쳤다. 그랬던 그가 1966년 해인총림 방장으로 취임한 후에는 후학들과 불자를 모아놓고 ‘백일법문’을 했다. 팔만대장경은 물론이고 현대 물리학의 상대성이론까지 동원했다. 그리고 종정에 취임한 후에는 그나마도 경전의 어려운 한문을 쓰지 않고 쉬운 우리말로 법문하고 법어를 내렸다. 역시 ‘죽은 불교’가 아닌 ‘살아 있는 불교’를 만들기 위해서였다는 생각이다.

최근 필자는 또 다른 ‘현대판 살불살조’를 목격하곤 한다. 신흥사 조실 설악무산 스님의 법문에서다. 그의 법문엔 애플 창업자 스티브 잡스를 비롯해 할리우드의 각본가, 시골 장의사의 염(殮)장이가 했던 말이 등장한다. 그에겐 모두  살아 있는 조사(祖師)들이다. 반대로 ‘선(禪)의 황금시대’를 열었던 중국의 조사들을 ‘신선주의자(神仙主義者)’들이라고 질타한다. 조사들이 진짜 신선주의자들이라서일까? 아닐 것이다. 오히려 대한민국 선방에 앉아 수행하는 선승들에게 “《벽암록》의 문답을 ‘불변의 정답’으로 받아들이지 말고 ‘지금 여기’의 문제로 삼으라”고 내리는 할(喝)이고 방(棒)이다.

무산 스님은 언젠가 “종교는 서비스이고 비위 맞추는 것이다. 친절이 최고의 종교이다. 석가모니, 마더 테레사만큼 세상 사람들 비위 맞춰준 이는 없다”고 한 적이 있다.

필자는 얼마 전 부산의 한 노비구니 스님을 만났다. 최근 3~4년 사이에 국내외 구호기관과 동국대 경주캠퍼스 등에 모두 16억 원 넘게 기부한 주인공이었다. 걸레와 행주도 해지면 기워서 다시 쓰고, 신장 기능이 약해 수시로 입원하지만 5~6인실 아니면 입원하지 않을 정도로 아껴서 모은 돈을 법당 불사에 쓰지 않고 남몰래 기부해온 그다. 인터뷰를 한사코 사양하던 그는 어렵게 입을 열고는 당당하게 말했다.

“나는 전생에 좋은 업을 지어 금생에 잘 살았다. 그러다 보니 내가 다음 생을 위해서는 무슨 업을 지었나 싶었다. 그때부터 남을 돕기 시작했다.”

노비구니 스님 역시 ‘어제의 나’라는 부처를 죽인 것이다.

최근 통계청 조사에서 불교 인구가 급감하였다고 걱정들이 많다. 일견 참담하게 보이는 결과다. 그러나 돌이켜보면 그동안 ‘천만 불자’라는 것은 허깨비 아니었나 싶다. 1년에 부처님오신날 하루 등 달고 절에 오는 불자들의 수에 만족했던 것은 아닌가.

이제라도 하루하루 자등명 법등명하고, 살불살조의 정신을 되살려 여법하게 살아간다면 진정한 불교 진흥의 길이 열릴 것이라 믿는다.

김한수 
조선일보 종교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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