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재
스님·사찰음식 전문가
사찰음식문화 체험관과 봉녕사, 동국대 등 사찰음식 강의가 동시에 겨울방학에 들어갔다.

마침 외부 강의도 없어서 하루를 오롯하게 절에서 보내게 되었다. 참 오랜만이다. 그래서인가, 파란 하늘도 보이고 기왓장과 석탑에 하얗게 쌓인 눈도 탐스럽게 보인다. 매서운 바람에도 푸른빛을 잃지 않고 서 있는 소나무가 늠름하다. 모처럼의 여유 속에 느끼는 절집의 아름다움은 절로 “고맙습니다”라는 말을 혀끝에 머물게 한다. 내친김에 머지않은 봄을 더듬어본다. 눈 녹은 가지에 파릇한 싹이 돋고 먼 곳에서 날아온 어린 새들이 그 가지 위에 내려앉을 터이다.

부처님이 열반에 드신 날은 음력 2월 15일, 양력으로 3월이다. 사자후 보살이 부처님에게 “왜 하필 2월에 열반하십니까?”라고 묻자 부처님은 말씀하셨다.

“2월은 봄이다. 봄에는 얼음이 녹아 강물이 불어나고 만물이 자라고 꽃이 피고 열매를 맺는다. 온갖 동물들이 새끼를 치고 중생들이 즐겁고 기뻐하느니라. 그러한 중생들에게 모든 법이 무상(無常)하다는 것을 말하고자 하는 것이다.”

무상은 ‘모든 것이 끊임없이 변화하기에 항상 같을(常) 수 없다(無)’라는 뜻이다. 부처님은 영원히 계속될 것 같았던 겨울이 끝나고 따듯한 봄이 오듯, 세상 모든 것이 변하는 이치를 전해주고자 하신 것이다.
인간은 모든 것이 영원히 계속될 것처럼 살아간다. 나의 건강과 물질, 지위와 관계들이 한결같기를 바라고, 고통과 괴로움, 고민은 영원할 것처럼 괴로워한다. 지금 내가 가진 것들이 변하지 않을 것이라는 고정된 생각이 고(苦)를 자초하며 삶을 힘들게 한다.

무상(無常)은 곧 ‘깨어 있음’, 깨어 있음은 지금 이 순간에 집중하라는 뜻이다. 사찰음식의 철학도 깨어 있음과 닿아 있다. 사찰음식은 선식(禪食)으로, 사찰에서 먹는 모든 음식을 포괄적으로 설명하는 개념이다. 지금 내가 먹고 있는 음식이 무엇인지 살피고 바른 음식을 먹어야만, 건강한 몸과 맑은 마음을 갖게 되고 이는 수행의 기본이다. 수행자만이 아니라 보통 사람들도 행복하려면 건강한 몸과 평화로운 마음이 있어야 한다. 집안에 어려운 일이 있거나 몸이 아파서, 일이 안 돼서 상담하러 온 이들에게 부처님이 “당신은 무엇을 먹고 사십니까?”라고 물은 까닭이 여기 있다.

음식을 통해 자신의 삶과 생각, 관계들을 돌아보라는 뜻이다.
올겨울 유행했던 조류독감으로 엄청나게 많은 닭과 오리들이 죽임을 당했다. 덩달아 달걀값이 오르고 외국에서 달걀을 수입하기에 이르렀다. 이 끔찍한 죽음과 환경 재앙 앞에서 나는 사찰음식의 철학이야말로 세상을 구할 마지막 보루처럼 느낀다. 절집 음식은 부처님 법(法)을 따른다. 바로 여법(如法)이다. 부처님 법이란 자연의 이치와 질서이다. 한 그릇 음식이 내 앞에 놓이기까지의 모든 과정에서 자연의 순리를 거스르지 않아야 한다.

음식을 만드는 것은 자연과 인간, 생명을 연결해주는 일이다. 일반적인 생명관은 피라미드식이다. 인간이 맨 위에 군림하며 차례로 동물을 지배하는 구조이다. 그러나 불교는 동그란 원의 생명관이다. 동그란 우주 안에 모든 생명이 공생한다. 거기에는 부처님도 있고 사람도 있고 동물도 있고 식물도 있고 바람도 있고 공기도 있고 물도 있고 흙도 있다. 모두가 평등하다. 이 모든 것들은 절대 혼자 존재할 수 없다. 흙 속의 양분을 먹고 과일이 열리고, 동물이 그 과일을 먹고 배설을 하고 다시 그 배설물로 땅이 비옥해진다. 우리가 먹는 한 알의 과일에는 보이지 않지만 수많은 생명의 자비와 베풂이 담겨 있다.

여법은 자연의 흐름을 거스르지 않는 것이다. 꿀벌이 꽃을 해하지 않고 꿀을 따듯 농부는 자연의 순리를 따라 다른 생명을 해치지 않고 심고 가꾸고 거둔다. 음식을 만드는 사람은 그 음식 재료 앞에서 겸손한 마음으로 약이 되는 음식을 만든다. 그리고 음식을 먹는 사람은 이 음식이 오기까지 수많은 이들의 노고와 희생된 생명에 감사하는 마음을 갖는다. 그리고 그 음식을 먹고 다른 생명과 세상에 이로움을 주는 삶을 살도록 애쓴다.

오랫동안 양계업을 한 분이 암에 걸려 나를 찾아왔다. 자신이 왜 암에 걸렸는지 이해가 안 되었지만, 곰곰 생각하니 달걀을 세척할 때 흡입한 살균제 성분 때문인지도 모르겠다고 했다. 또 다른 분은 종종 나에게 달걀을 보내주는데, 산에 울타리를 쳐놓고 닭을 풀어놓고 키우고 있다. 하루는 이 분이 전화로 싱글벙글하며 닭 자랑을 늘어놓았다.

“스님, 36개월이나 된 닭이 알을 아주 잘 낳아요. 할머니닭인데 아주 팔팔합니다. 하하.”

닭이 건강하고 행복하니 농부가 건강하고 행복하고, 농부가 지은 건강한 농산물을 먹는 나도 건강하고 행복하다. 자연의 한 생명으로서 나의 역할은 무엇인가를 다시 한번 생각게 한다. 여법하게 음식을 만들고 먹는 데는 자비와 베풂이 깃들어 있어야 한다. 그것은 모든 생명의 어울림을 위한 것이며, 그 어울림 속에 나도 있게 된다.

불교에서 깨달음은 청정한 마음 상태에서 구할 수 있다. 청정한 마음은 계율을 지키는 것에 달려 있다. 밭에 씨앗을 심으면 기다리지 않아도 저절로 잎이 나는 것처럼 계율을 지키면 저절로 마음이 깨끗해진다. 음식을 만들 때도 자연의 순리, 부처님 말씀을 따른다면 저절로 마음의 평화를 얻을 수 있다.

사찰음식 강의를 수료한 분이 들려준 소감이다.

“몸에 좋은 음식을 먹겠다고 선재 스님 사찰음식 수업을 듣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나 강의를 들으면서 어느새 나는 삶의 수행자가 되어 있었습니다. 맛있는 음식만 생각하다가 이제는 음식을 통해 좋은 삶을 살려고 노력하게 되었습니다.”

 


선재 / 스님·사찰음식 전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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