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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교의 창으로 본 한국사회 / 박광서
[69호] 2017년 03월 02일 (목) 박광서 gp0117@hanmail.net

   

박광서 
종교자유정책연구원 대표

# 시국이 하 수상하니: 촛불과 태극기가 서로 힘겨루기한 지 벌써 수개월째다. 어둠을 몰아낸다는 광장의 촛불 의미는 분명하다. 나이, 직업, 지역, 이념과 관계없이 한목소리를 내는 것도 우리 사회에서 드물게 보는 현상이다.

그런데 다른 쪽의 태극기 물결은 왠지 아리송하고 어설프기만 하다. 나라를 구하기 위한 비장의 의미를 띠기 위해서라기엔 상황을 너무 과장한 것 아닌가 싶다. 그들의 태극기 독점이 국민으로 하여금 태극기를 멀리하게 만든 요인 중 하나임에 틀림없다. 게다가 함께 펄럭이는 성조기는 뭐지? 자신들의 편을 들어줄 친구라기엔 너무 일방적이고 생뚱맞지 않은가. 더구나 십자가와 십자군 복장은 더욱 괴이하다. 기독교가 이미 한국을 접수한 것인가?

# 권력 · 돈 · 종교 삼합의 기묘한 모습: 정치에 뛰어든 종교, 종교 뒤에 숨는 정치. 부도덕한 정권과 탐욕스러운 재벌 간의 유착에 신정을 꿈꾸는 기독교가 가세해 서로 숙주가 되어 빚어낸 정 · 경 · 교 삼합의 기묘한 모습이 현재 우리 사회의 민낯이다.

김동길 교수나 서경석 목사는 극보수의 아이콘이 된 지 오래고, 인명진 목사는 이 정부를 만들어낸 새누리당의 대표가 되었다. 게다가 박근혜 정부는 종교계나 시민사회의 우려에도 불구하고 자타가 공인하는 지극히 편향적인 기독교 인사들을 연달아 고위공직에 임명, 정교분리의 헌법정신을 어지럽히고 있다.

2013년 10월 “이승만 대통령이 헌법에 명시된 정교분리 원칙을 형해화(形骸化)시키면서 한국을 기독교 국가로 만든 것이 큰 업적”이라고 찬양한 유영익 교수를 국사편찬위원장에 임명했다. 또 2015년 6월 “선교는 공격적이어야, 세상법보다 교회법이 우선, 목회자의 사례는 비과세 대상, 성시화 운동에 참여해 복음화에 이바지할 것, 예배가 있는 일요일 시험 반대” 등 철저히 기독교인의 입장을 강변해온 황교안 전도사를 국무총리에, 지난해 말에는 한국기독교총연합회 대표회장 경력이 있는 최성규 목사를 국민대통합위원장에 임명했다. 선악놀이에 갇혀 분열과 배제의 논리가 몸에 밴 정치권력과 종교세력의 야합 결과로 국민통합과는 먼 행보다.

# 종교인구 변화하고 있나: 통계청이 지난해 12월 발표한 2015년 종교인구 조사는 한국의 종교지형이 10년 전과 상당히 달라지고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 불자들 300만 명이 무종교인으로, 천주교인 110여만 명이 개신교인으로 이동한 셈이 되어, 결과적으로 개신교가 불교를 추월하고 1위의 종교가 되었다. 전체적으로 종교인은 줄고 무종교인이 증가한 것은 탈종교화라는 세계적 추세로 이해할 수 있다. 하지만 유독 개신교만이 증가한 배경은 쉽게 설명되지 않는다.  

그런데 이명박 장로 대통령 5년과 보수 개신교를 우군으로 극우세력을 결집시킴으로써 정권을 유지해왔던 박근혜 정부 4년을 생각하면, 어렴풋이 그 이유를 알 것도 같다. 두 정권 동안 국민은 종교 과잉, 정확히 말하면 개신교의 정치 과잉 시대를 겪은 것이다.

지난 10년 개신교는 정치세력화를 위해 ‘죽기 살기’로, 고도의 정치집단인 천주교는 ‘죽은 척 살기’로, 사회 부적응증을 앓고 있는 불교는 ‘죽어지내기’로 한 시기다. 양극화와 패거리 문화로 인해 생존의 위협과 공동체의식 상실을 겪고 있는 불신사회의 암울한 상황에서 어떤 집단에 속하는 것이 가장 안전할까 생각하지 않을 수 없었을 것이다. 세속적 보호막으로 기능하는 종교, 즉 개신교를 피난처로 삼는 것이 생존에 유리하다는 분위기가 종교지형의 이상 현상에 어느 정도 기여했을 수 있다는 주장은 음미해 볼 만하다.

# 사랑의 교회 판결: 2017년 1월 13일, 사랑의 교회 건축 관련 ‘공공도로 지하점용 취소처분’ 판결은 종교권력을 심판한 역사적인 날로 기억될 것이다. 사필귀정(事必歸正), 허가 후 무려 6년 6개월 만에 내린 정교야합에 대한 경종으로 법치국가 회복의 상징적 사건이다. 비정상의 정상화를 바라는 사회적 분위기, 촛불의 힘도 작용하지 않았을까 싶다. 어쨌든 우리 사회의 희망으로 읽히기도 한다. 위법판결 시 수백억이 들어도 원상복구 할 수 있다고 주장했던 교회의 입장이 자못 궁금하다. 세계에서 가장 큰 지하예배당으로 기네스북에 등재까지 한 걸 보면, 논리적으로나 현실적으로나 자승자박한 꼴이다. 당시 안 되는 걸 해결하려 발 벗고 뛴 것을 자랑하던 이혜훈과 구청장으로서 우리나라 최초이자 마지막으로 불법허가를 해준 박성중 두 국회의원은 지금 어떤 생각을 하고 있을까.

# 불교, 살아나려면: 사회의 건강성 즉 공익성, 공정성, 투명성, 시민성 같은 공공성 제고에 아무 도움이 되지 않는 종교는 도태되고 마는 시대다. 모든 것을 이 세상과 연결 지어 생각하면서 불교의 사회적 책임을 재점검해야 하는 이유다.

명상수행만으로 개인의 문제와 세상의 모든 것이 해결될 것인지, 불자의 교육은 그 목적, 내용, 방법이 시대 흐름에 맞게 획기적으로 바뀌어야 하는 것은 아닌지, 사찰, 문화재, 영혼 관리에 자원의 대부분을 소진하는 것은 아닌지 철저히 되짚어 과감히 정리하고 새로운 길을 모색해야 할 시점이라는 것이다.

오래전 고 함석헌 옹이 한 말을 되새겨 본다. “퀘이커의 명상은 동양의 참선과 다르다. 동양의 참선은 비록 열 사람이 한 방에서 명상하더라도 개인주의적이다. 나는 내 참선, 저 사람은 저 사람 참선이기 때문에 모래알처럼 되는 것이다.” 이제 불자들이 답할 차례다.

박광서 / 종교자유정책연구원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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