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홍일 동국대 건축공학과 교수

들어가며

선의 가장 큰 명제는 불립문자이다. 시대에 따라, 상황과 사람에 따라 다르게 설명이 되어야 하는 무한대의 변화를 언어로 결코 정확하게 표현할 수 없다. 모든 선사들이 말하는 무수한 말도 결국은 그 무엇이라는 동일한 주제를 자신의 그릇 크기대로 표현하는 것이다.

단연코 필자는 선을 안다고 할 수 없다. 그저 여기저기서 귀동냥한 말을 내 나름대로 해석하여 건축에 비추어 볼 뿐이다. 나에게서 선은 본질을 꿰뚫어 볼 수 있는 능력, 그리고 그대로 행할 수 있는 힘이다.

모든 것이 선이 될 수 있다고 한다. 건축은 자신의 본질적 모습을 가장 잘 보였을 때 선과 만난다. 건축은 기능이 있고 기능을 담는 용기이다. 기능을 위한 공간이 생성되면 그 겉모습은 형태로 표현된다. 건축의 기본은 공간, 형태, 그리고 그 형태를 만들기 위한 구조방식과 재료 등이다. 이러한 요소의 표현이 극한까지 간 건축에서 선의 의미를 찾고자 한다.

형태의 본질

건축에서 제일 처음 만나는 부분은 형태다. 20세기 서양건축계의 거장인 르 꼬르뷰제는1) 모든 건축의 형태가 기본적으로 원통, 구, 피라미드, 육면체로 만들어진다고 하였다.

최초의 집은 오두막에서 출발하였다. 나무 프레임에 지붕을 얹어놓는 형태에서 점차 벽체와 지붕의 모습이 견고해지는 과정을 거쳐 오늘날 집이라고 일컫는 보편적 모습이 형성된다. 동양은 나무를 주 재료로 사용하여 가구식 목구조의 건축이 주로 행해지고 서양은 돌을 주 재료로 사용한 조적식 구조가 발달하였다. 조적식 구조는 가구식 구조에 비해 벽체에 의한 볼륨의 형태가 명확하게 표현되기 때문에 서양건축은 표면의 장식과 함께 매스감을 느끼는 볼륨으로 표현 되었다.

시대를 따라 여러 형식을 거치며 변화하는 건축의 형태에서 끌로드-니꼴라-르두(Claude-Nicola-Ledoux)2)는 가장 기본이 되는 요소를 찾았다. 전통적 개념의 건축은 기단, 몸통, 지붕으로 구성되는데 그는 이런 원칙을 깨고 형태의 기본인 구, 원통, 육면체, 사각뿔 등을 적용한 설계안 내 놓았다.

농장주 주택 설계안은 완전한 구 형태를 주택에 그대로 대입하였고, 수레만드는 목수를 위한 주택은 육면체에 원통형 구멍이 뚫린 형태를 대입하였다.
기존의 건축은 벽체에 장식적 요소와 지붕이 있는 형식을 취하였는데 르두의 건축은 원형질의 기하학 형태를 가공하지 않고 그대로 적용하였다.

그는 건축 형태의 가장 본질적 모습을 군더더기 없는 원형질의 기하를 그대로 적용하였다. 이러한 형태를 만들때 그의 건축에서 선에서 추구하는 본질적 모습에 대한 추구를 비추어 볼 수 있다.
추사 김정희는 세한도에서 전통가옥의 근본 형태를 표현하였다. 세한도는 1844년 제주도 유배 시 그를 찾아온 역관 이상적의 인품을 소나무와 잣나무에 비유하여 그려 준 그림인데 그림 중앙에 위치한 집은 어린 아이들이 그린 것과 같은 모습이다. 당대 최고의 필력을 자랑하는 추사의 집 묘사는 몇 개의 선을 긋는 것으로 마무리 되었다.

그가 추구한 글씨의 본질에 대한 물음, 그리고 귀양살이에서 오는 삶의 근본에 대한 질문은 불교를 가까이 한 그의 생활에서 선의 경지를 느끼지 않을 수 없다. 그가 집을 표현하고자 할 때 떠오른 모습은 이미 선의 경계를 넘어가고 있었다.

우리나라 전통그림에 표현된 건축의 모습에서 이만큼 골기를 느끼게 한 그림은 없다.

건축의 장식

앞서 이야기한 르두의 생각은 서양의 근대건축 정신으로 이어진다. 근대 건축은 철근 콘크리트 재료의 발달과 사회적 수요에 의한 건축의 구축법이 달라지며 장식은 죄악이라는 명제를 만들었다. 이전의 서양건축은 기둥, 벽체에 장식 문양이 수없이 들어갔다. 그러나 아돌프 로스3)는 이러한 장식의 아름다움은 건축의 본질을 해치는 것이라 주장하며 죄악이라는 극단적인 표현까지 하였다.

슈타이너 주택에서 실행한 극도의 무장식적 디자인은 꼬리빠진 닭과 같이 꼴불견이라는 혹독한 비평을 받았으나 로스는 그의 주장을 굽히지 않고 그의 생애를 통해 주장하였다. 말년에 “나의 노력으로 30년이 지난 현재, 나는 불필요한 장식으로부터 인류를 해방시켰다”라는 말은 건축의 기본을 주장하는 그의 구도자 같은 수행정신을 잘 표현하고 있다.

로스를 시작으로 르 꼬르뷰제, 미스 반 데 로에등 이어지는 건축가들의 계속된 작업이 장식 없는 근대건축의 미학을 정착시켰고 현대 건축은 이러한 생각의 연장선상에 있다.

서양건축은 모든 예술의 총합체였다. 벽화와 조각 등이 목적과 기능에 맞게 적절히 결합하여 건축의 한 부분으로 자리 잡고 있었다. 20세기 초 시작된 근대 건축은 기능을 위한 요소를 제외한 장식부분을 건축에서 제거하였다. 기능주의 건축용어를 탄생시키며 건축의 가장 근본이 되는 기능에 초점을 맞추고 이를 위한 형태를 주장하였다.
수행의 근본은 항상 가장 본질적인 것을 찾는 작업이다. 근본을 알면 그 다음의 모습은 자유로움이다. 기본을 아는 자유는 마음 가는대로 행하여도 틀림이 없을것이며 그 변화무쌍의 모습도 자나치지 않는다.

근대 건축은 수천년간 내려온 서양건축의 근본에 대한 질문이었다. 건축이 갖는 가장 근본으로 되돌아가 새로운 시대에 맞는 모습을 찾기 위한 질문으로 건축의 형태, 재료, 기능, 공간 등 모든 것의 새로운 정의가 필요하였다. 장식이라는 군더더기를 덜어내고 건축의 미학을 다시 정리하는 작업 역시 수행의 작업이었다. 근대건축 초기는 건축에서 선의 시대라 말 할 수 있다.

장식이 배제된 극도의 절제미를 우리의 전통건축에서는 종묘 건축에서 볼 수 있다. 종묘는 왕과 왕후의 신주를 모시고 제를 지내는 곳으로 조영은 1394년 12월 태조가 한양으로 천도할 때 시작하였으며, 1592년 임진왜란때 소실되었다가 1608년 중건되어 오늘에 이르렀다. 종묘정전은 종묘에서 가장 중심이 되는 건축으로 1834년 현재의 모습인 19칸으로 되었다.

종묘 정전은 장식이 배제된 매우 단순한 구조다. 마당 역할을 하는 하부 기단이 있고, 상부기단위에 위패를 모시는 건물이 있다. 건물은 기둥과 지붕, 뒷면을 막는 벽으로 구성된다. 그러나 19칸이나 계속되어 반복되는 기둥의 효과는 인간의 척도를 벗어나고 있다. 아무런 장식 없는 하부기단의 공간은 100m가 넘는 지붕의 길이를 감당하기 위한 정적의 공간을 만들고 있다.

영혼을 위한 공간이기에 엄숙함과 장엄함을 동시에 표현하기 위해 선조들이 선택한 방법은 건축의 기본이었다. 선을 추구하는 불교 건축이 장엄을 표현하기 위해 단청과 같은 장식에 힘을 쏟아부은 것과 대조를 이룬다.
정전 앞에서면 선의 느낌이 어떤 것인지 알 수 있을 것 같다.

건축공간의 근본

서양 근대 건축에서 재료와 기술의 발달로 건축의 구축법이 달라지며 공간의 모습도 그 이전의 건축과 확연한 차이를 드러낸다. 고전건축 공간은 선형의 연속성에 의한 2차원 구성이었음에 반해 근대건축 공간은 구조의 발달에 힘입어 그 구성이 3차원의 복합계 공간을 만들었다.

근대 건축의 거장이라 불리우는 르 꼬르뷰제, 루이스 칸, 미스 반 데 로에, 알바 알토 등은 고전건축과 다른 자신만의 독특한 공간을 만들었다. 르 꼬르뷰제는 ‘건축적 산책로’라는 개념의 공간을 만들어 오브제가 떠있는 공간을 산책하듯 여유롭게 동선을 따라 거닐며 공간을 음미할 수 있게 하였고, 루이스 칸은 건축물 전체를 읽을 수 있는 중심 공간을 만들었다. 이러한 일련의 과정 속에 미스 반 데 로에의 건축 공간에 대한 생각의 변화에서 선에 근접하는 모습을 볼 수 있다.

미스 반 데 로에는 1886년 독일 아헨에서 태어나고 베를린에서 건축수업을 받았다. 후일 미국으로 건너가 시카고 일리노이 공대에 재직하면서 시카고학파의 중심이 되었다.

그가 1929년 바르셀로나 국제 박람회에 설계한 독일관은 근대 건축 공간의 특징을 잘 나타내 주고 있다. 기둥은 벽체와 분리 되어 각각의 독립적 가치를 표현하고, 벽체와 천정도 완벽히 분리된 모습으로 재료와 색을 달리 하고 있다. 특히 천정면은 독립된 하나의 수평면으로 건축의 공간적 영역을 제한하여 수직 벽체가 그 경계를 넘나 들며 내외부 공간의 연계성을 만들 수 있도록 하였다.

특히 간접 빛의 유입에 의해 동선을 유도하는 방법은 르 꼬르뷰제의 건축에서도 자주 볼 수 있는 공간연출 방법이다. 바르셀로나 파빌리온의 내부에서 이중 간유리벽을 만들고 천정에서 간접 빛을 유입시켜 빛나는 벽을 설치한 것은 빛과 공간에 대한 그의 관심도를 잘 표현 해주고 있다. 이후에 설계한 일련의 주택에서도 비슷한 공간 언어를 구사하였다.

그리고 미국으로 이주하여 일리노이 공대 건축과 과장으로 재임하면서 대학의 마스터 플랜을 만들고 대학 건물을 설계 하였다. 대학 건물 중 건축과 건물인 크라운 홀을 설계하며 미스는 텅 빈 공간을 만들고 “유니버셜 공간”이라 불렀다. 크라운 홀은 외부가 철제 아이빔 프레임으로 구성되고 프레임에 유리가 끼워진 하이테크 건축으로 만들어 졌다.

그리고 철 구조물의 장점을 이용하여 내부는 기둥이 하나도 없는 텅빈 공간을 만들었다. 사용자의 편의에 따라 자유롭게 칸막이를 하여 이용하라는 의도이다. 기능주의 건축의 공간은 특정한 기능에 따라 그에 맞게 만들어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그러나 미스는 시간과 상황에 따라 사용자의 기능은 변할 수밖에 없고, 기능이 변할 때 공간도 따라 변화할 수 있는 공간을 주장하였다.

결국 그러한 공간은 모든 군더더기를 제거한 공간 그 자체의 모습으로 환원되어 아무 모양이 없는 그리고 아무 장애물도 없는 텅 빈 공간 자체의 모습을 만들게 되었다.

베를린의 내셔날 갤러리 건물에서도 4개의 기둥으로 지지된 한판의 수평면이 지붕을 형성하고 그 하부에 텅빈 공간을 만들었다. 전시공간은 커다란 기단을 만들어 지하층을 두고 그 속에 위치하도록 하였다. 1층은 전시장을 들어가기 위한 홀 공간으로 기둥이 없는 커다란 공간일 뿐이다.

미스의 유니버셜 공간은 이전의 그가 보여준 공간 연출의 방법과 능력을 모두 넘어선 공간 그 자체를 보여준다. 피카소의 그림이 어린 아이 그림과 같은 모습을 하고, 추사 김정희가 그린 집의 모습 역시 그와 같은 것은 모든 기교를 넘어선 본질의 모습이기 때문인 것처럼 미스의 공간도 선의 경지에 올라선 본질적 모습을 보여준다.

본질을 넘어선 자연스러움

건축의 본질을 찾는 작업은 건축가들 누구나 추구하는 작업이다. 자신만의 본질을 찾고 그에 의한 건축을 만들어 보는 것, 그것이 건축가의 꿈이다. 그러나 본질을 찾고, 건축의 모든 것을 체화한 후의 건축은 어떤 모습일까. 그것은 아마도 어떤 격식에도 얽매이지 않는 자유로움의 표현 일 것이다.

일본에서 국보로 지정된 이도 다완은 조선시대 막사발이 일본에 건너가 찻잔으로 사용된 것으로 그 찻잔을 갖기 위해 전쟁을 할 정도로 귀하게 대접 받는 물건이다. 정리 정돈, 절제의 미학이 지배하는 일본 문화에서 그 어떤 격식에도 얽매이지 않는 자연스런 모습의 찻잔은 그들은 절대로 만들 수 없는 정신세계이기 때문이다. 수많은 세월을 그릇 만들기에 보내온 도공이 그저 무심히 만든 그릇에서 그들이 본 아름다움은 선 세계의 극치를 느낀 것이다.
이러한 모습이 우리 건축에서도 종종 나타난다. 경기도 안성시 서운면 소재 청룡사 대웅전은 다포계 팔작지붕의 고려시대 건축이다. 이 건물의 기둥은 나무의 비뚤어진 모습을 그대로 치목하여 사용하였다. 건물을 만드는 재료는 반듯하게 치목하여 사용하는 것이 오히려 더 편리하다.

굴곡진 모습을 그대로 사용하려면 그러한 재료에 이어지는 다른재료 역시 구불구불한 모습대로 치목을 하여야 하기 때문에 그만큼 더 까다로운 과정을 거쳐야 한다. 일본의 전통건축은 가구와 같이 반듯하게 재료를 가공하여 만들기 때문에 청룡사와 같은 모습의 건축은 상상할 수 없다.

청룡사의 건축에서 이도 다완과 같은 무심의 경지를 볼 수 있다. 그 재료가 휘어지면 어떻고 짧으면 어떻리, 생긴 모습대로 맞추어 집을 지으면 되는 것이다. 건축의 본질을 넘어선 자유스러움, 이러한 모습에서 선의 의미를 찾을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해본다.

마치며

참선 수련을 하는 이유는 대 자유인이 되기 위해서라 한다. 그 자유로움은 본질을 꿰뚫어 봄으로써 얻어진다. 추사 김정희가 대가들의 글씨를 모두 섭렵한 후 자신의 글씨를 쓸 수 있는 자유를 얻듯이, 본질에 대한 끊임없는 추구 그리고 그 후에 얻어지는 자유로움의 모습에서 선의 의미를 찾을 수 있다.

건축의 3가지 요소를 구조, 기능, 미라고 이야기한다. 이러한 3요소는 공간, 형태, 재료등으로 표현되고, 하나하나의 요소에 대한 본질적 탐구에서 건축에 대한 선의 의미를 찾을 수 있다. 궁극의 공간을 만든 미스 반 데 로에, 완전한 형태를 추구한 루이스 칸 등 그들의 끊임없는 추구는 수행자의 모습과 다름이 없다.

서양건축이 본질적 의미를 찾아 계속되는 정진을 할 때 우리나라의 전통건축에서는 규범을 넘어선 자유로움의 모습을 얻었다. 그 모습에서 깨달음을 얻은 선사가 저자거리에 묻혀 거리낌 없이 일개 범인으로 살아가는 자유를 보았다.

김홍일
동국대 건축공학과 교수.프랑스 빠리 벨빌건축대학 졸업. 1992년 D.P.L.G(프랑스건축사) 자격 취득. 1991년 프랑스 빠리 10대학 예술사학부 박사 준비과정 D.E.A를 수료했다. 2004년 대한 건축학회 편집위원회 부위원장, 한국건축가 협회 교육분과위원회 부위원장, 1999년 대한 건축사 협회. 국제 위원, Berlin 세계 건축사 대회(U.I.A) 한국대표, 경기대학교 건축대학원 겸임교수 등을 역임했다. 현재는 서울시 중구 도시계획위원, 문화재청 전시관건립자문위원 등을 맡고 있다. 주요 경력으로는 1995년 경기도청사 현상설계, 국립중앙박물관 국제 현상설계 했으며, 불교건축은 경북 예천 용문사 불교유물전시관 기본계획연구, 충남 논산 관동사 등을 설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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