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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리뷰] 고영섭 지음 《불학과 불교학》
화회(和會)와 통섭으로 한국불교를 읽다
[68호] 2016년 12월 01일 (목) 민순의 nirvana1010@hanmail.net

   

《불학과 불교학》
씨아이알, 2016년 7월 발행, 644쪽

해당 분야의 ‘통사(通史)’ 혹은 전공 분야의 ‘개론(槪論)’을 쓰는 것이 학자들이 꿈꾸는 마지막 로망이다. 그 과정에서 자신의 사상을 입론하는 ‘철학자’로 나아가거나 텍스트를 연찬하는 ‘연구학자’로 남는 것이다.(이 책, p.486)

동국대학교 불교학과의 고영섭 교수는 1998년 〈문아원측(文雅 圓測)과 그 교학 연구〉라는 주제의 박사학위 논문을 발표한 이래, 사국시대(고구려, 백제, 신라, 가야)부터 대한시기(대한제국~남북한 시대)에 이르기까지 전 시대를 망라하여 한국불교를 이루어 온 불교사상과 사상가 및 주요 논점들에 대해 날카로운 문제의식과 왕성한 저술활동을 한순간도 놓지 않았던 한국의 역량 있는 중진급 연구자이다.

한국불교뿐 아니라 동아시아 불교사상사 전반에 관한 탐구를 통해 한국불교의 외연과 내포를 더욱 확장하고 있는 그는 〈분황 원효의 화회논법 탐구〉 〈지눌의 진심사상〉 〈휴정의 선심학〉 〈경허의 조심학〉 〈만해 한용운의 일본인식〉 《한국불학사》(1~3) 등 다수의 논문과 저서를 집필했을 뿐 아니라, 최근에는 《한국불교사연구》(2012), 《한국불교사탐구》(2015) 등의 저술을 통하여 역사와 사회 속에서 한국불교의 보편성 및 특수성을 발굴하고자 하는 학문적 의지를 노정해 왔다. 그리고 이제 그의 관심은 불교를 연구하는 방법론의 영역으로까지 확대되어, 2016년 여름 《불학과 불교학: 인문학으로서 불교학 이야기》라는 644쪽짜리 신작을 내놓기에 이르렀다.

저자는 서문에서 ‘불학’과 ‘불교학’(또는 ‘불교연구’)을 각각 ‘붓다에 대한 연구’와 ‘붓다의 가르침에 대한 연구’로 규정하여 그 학문 대상의 차이를 분명히 한 후, “이러한 명명과 의미의 차이 때문에 ‘불교와 불교학’ 혹은 ‘불학과 불교학’의 같고 다름 또는 연속과 불연속에 대한 질문이 제기된다.”고 한다. 그러나 결국 “불학은 과거의 ‘지혜’와 현재의 ‘성찰’을 통해 미래의 ‘성숙’으로 나아가게 하는 실용적 학문(응용불학)”이요, “불교학 역시 미래의 성숙을 위해 과거의 지혜를 귀담아듣고 현재의 성찰을 거울로 삼아가는 체계적 학문(순수불학)”이므로, 본인은 “‘체계불학’과 ‘실용불학’을 아우르는 ‘중도불학’으로 ‘체계’와 ‘실용’을 통섭하고자 한다.”고 선언한다.

본문에는 저자가 2005~2016년 사이에 여러 학회와 《문학 사학 철학》(대발해동양학한국학연구원, 한국불교사연구소) 학술지 등을 통해 발표한 12편의 논문들이 편집되어 있다. 각각의 제목은 다음과 같다. 제1장 철학으로서 불교철학의 지형과 방법, 제2장 마음[心]에 대한 고찰, 제3장 동아시아불교에서 유식 법상의 지형도-원측 유식(圓測 唯識)과 규기 유식(窺基 唯識)의 동처와 부동처, 제4장 한국 고대불교의 토착화와 구심화-융화(融和)와 교화(敎化)를 중심으로, 제5장 한국불교의 보편성과 특수성-물리적 ‘비빔’과 화학적 ‘달임’, 제6장 분황 원효의 화회논법(和會論法) 탐구-‘문(門)’과 ‘논(論)’을 중심으로, 제7장 보조선과 임제선의 동처와 부동처-한국의 간화선은 보조선인가 임제선인가, 제8장 한 · 중 · 일 삼국의 근대불교학 연구방법론-‘해석학’ · ‘문헌학’ · ‘고증학’의 방법과 원용, 제9장 한국불교학 연구의 어제와 그 이후-이능화 · 박정호 · 권상로 · 김영수 불교학의 탐색, 제10장 만해 한용운의 일본인식-불교계 애국계몽운동의 사상적 단초, 제11장 뇌허 김동화의 불교인식-우이 하쿠주(宇井伯壽)와 관련하여, 제12장 탄허택성의 불교와 불학-한국불교사적 지위와 한국불학사적 위상.

이는 크게 제1~2장, 제3~7장, 제8~12장의 세 부분으로 분획이 가능하다. 첫 번째 부분에서는 불교철학의 방법론과 중심 주제가 정리되고 있다. 먼저 제1장에서 ‘철학의 지형’을 ① 존재론과 주체론 ②인식론과 심성론 ③가치론과 수행론의 세 분야로 두고, 다시 그(철학의) ‘방법론’에 공시적 고찰[縱]과 통시적 고찰[橫]을 적용한다. 문제는 이 종횡의 방법을 짜임새 있게 엮어줄 수 있는 세계관의 범주인데, 이를 위해 저자는 6하의 문제의식 즉 ‘언제, 어디서, 누가, 무엇을, 어떻게, 왜’의 기준을 제시한다. 제2장에서는 불교 존재론/주체론의 핵심 주제인 마음[心]에 대한 불교사적 이해를 점검한다.

두 번째 부분에서는 전통시대 한국불교의 사상과 역사적 전개를 다루고 있다. 저자가 서문에서 규정했던바 ‘불학’에 대한 탐색인 셈이다. 제3장에서 원측으로 대표되는 한국(신라) 유식과 규기로 대표되는 중국 유식의 차이를 밝힌다. 규기의 유식이 중관과 유식의 통로를 닫아 유상유식(有相唯識)만을 지향하고 중생에 대해서도 근기의 차이가 엄연한 차별적인 존재로 규정하는 데 비해, 원측의 신라 유식은 반야공관을 수용하여 무상유식(無相唯識)을 지향하고 모든 중생을 평등하다고 간주한다. 제4장에서는 한국에 전래된 불교가 고래의 토착신앙(천신 · 산신신앙 또는 그 둘에 무속신앙이 융합된 양상)과 유교 · 도교를 융화하고 교화하면서 점차 한국문화 속에서 토착화, 구심화해 가는 역사적 과정을 보여준다.

제5장에서는 인도 및 중국불교와 대비되는 한국불교의 고유성과 독자성으로 ‘통불교적인 성격’이 주장된다. 이 주장을 뒷받침하기 위하여 저자는 삼론의 승랑, 유식의 원측, 기신의 원효, 천태법화의 현광/의통/의천, 화엄의 의상/균여, 정토염불의 경흥/무상/지눌/휴정 등 기라성 같은 한국 불교사상가들의 교리를 치밀하게 분석하며 예시한다. 그리하여 한국불교는 인도불교의 공유(空有)체계와 중국불교의 이사(理事)체계의 종합적 인식 위에서 성상(性相) 또는 선교(禪敎) 체계를 통합적으로 이해함으로써, 무종파성(無宗派性)과 통불교성을 특징으로 삼게 되었다고 결론짓는다. 제6장에서는 그중에서도 특히 원효의 화쟁사상에 주목하여, 그 교리적 특징을 다양한 측면에서 설명한다. 제7장은 한국 간화선의 정체성 문제-보조선인가, 임제선인가-를 고민하는데, 이는 현재 한국의 조계종이 고려 중기에 선종을 고양시킨 지눌과 고려 말 중국으로부터 임제선을 받아들인 보우라는 걸출한 두 명의 스승을 보유하고 있기 때문에 의미 있는 논제이다. 이에 대해 저자는 당초 지눌의 수행법이 당송 대의 조사선풍 위에 서서 자기 스스로를 결택하면서도, 대혜의 간화선풍을 주체적으로 원용하여 돈오점수와 간화결택의 행법을 수용함으로써 양자를 화회하는 지점에 자리하기 때문에, 한국의 간화선은 보조선이면서 동시에 임제선일 수 있다고 단언한다.

마지막 부분인 제8~12장에서는 대한시기의 ‘불교학’자들의 방법론이 소개된다. 우선 제8장에서 한 · 중 · 일 삼국의 근대불교학 연구방법론이 형성된 경위와 그 내용을 확인한다. 당시 중국불교에서 ‘근대성 담론’이 유행하고, 일본불교에서 ‘호국론’이 계발되어 국가불교적인 방향으로 급변하게 된 것과 달리, 한국에서는 ‘통불교론’이 제기되어 지식사회에 편만한 사회진화론과 함께 민족주의로 결합되어 가는 양상이 나타난다. ‘통불교론’은 한국불교가 인도불교의 원류와 맥을 같이하는 불교라는 자긍심 위에서 불교를 총체적으로 바라보는 인식 틀이자 연구법이다.

 제9장에서는 이 시기 한국의 대표적인 불교학자로 이능화, 박정호, 권상로, 김영수를 꼽고 각각의 방법론적 특징을 추적한다. 여기에서 이능화의 종교사학적 방법론, 박정호의 민족사학적 방법론, 권상로의 문화사학적 방법론, 김영수의 전통사학적 방법론이 밝혀진다. 또 제10장에서는 그 이력의 독특함으로 인해 앞 장에서 미처 다루어지지 않았던 한용운의 시대인식을 소개한다. 그는 일본을 선진 문명국으로 선망하는 동시에, 또한 극복해야 할 군사제국으로 간주하기도 하는 등 일본에 대해 양가적인 인식을 가지고 있었다. 그 결과 한용운은 일본불교를 본받아 한국불교에서도 유신을 단행하자고 주장 한편, 그 자신 애국계몽운동가로서 면모도 갖추게 된다.

그의 서구 근대성 수용은 중국 서계여의 《영환지략(瀛環志略)》과 양계초의 《음빙실문집(飮氷室文集)》을 통해 촉발되었으되, 양계초의 근대 이해가 또한 후쿠자와 유키치, 이노우에 엔료, 이노우에 데쓰지로 등 일본 사상가들을 통로로 한 것이었던 만큼, 한용운 역시 서구→일본 사상가→양계초라는 삼중의 연쇄 고리를 통해 근대를 이해한 셈이다. 즉 그는 양계초라는 렌즈를 통해 후쿠자와로부터 사회진화론과 계몽주의를, 이노우에 엔료로부터 불교를 철학적 종교로 간주하는 시각을, 그리고 이노우에 데쓰지로로부터 칸트의 사상을 습득할 수 있었다.

제11장에서는 김동화의 불교인식을 다루고 있다. 김동화는 다수의 불교 저술을 집필하는 한편 불교교리 전체에 대한 체계적 연구라는 화두를 견지함으로써, 불교의 전 분야를 망라해 탐구하면서도 시종 종합과 통합을 지향했던 한국 전통 불학의 방법론을 계승했다. 특히 그는 원효와 태현의 포괄적인 연구 태도에 주목하여, 하나의 교학에 편벽되지 않고 여러 경전과 논서의 취지가 지닌 독특성을 그대로 살리고자 하였다.

일각에서는 김동화의 초기 저작인 《불교학개론》이 일본 불교학자인 우이 하쿠주의 《불교범론》과 본문의 체제에서 유사성이 있다며 김동화를 우이 하쿠주의 모방이라 폄훼하기도 하지만, 저자는 두 저술의 편제가 구체적인 차원에서 명백히 상이하고 또 김동화의 기타 저술이나 사상의 특징이 우이 하쿠주에게서 발견되지 않으므로, 그러한 모방설은 옳지 못하다고 단호히 배격한다. 오히려 김동화는 ‘통사(通史)’와 ‘개론(槪論)’의 서술이 가능한 최고 단계의 ‘불교학’자로서, 포괄과 통합이라는 한국 ‘불학’의 방법론적 전통을 계승한 대가로 인정된다.

그리고 마지막 제12장에서 탄허택성을 다루고 있다. 그런데 저자에게 탄허는 ‘불학’의 방법론적 전통을 계승한 ‘불교학’자임을 넘어, 급기야 그 자신이 ‘불학자’이자 동시에 ‘불교학자’인 자리에 위치한 인물로 간주되는 것 같다. 탄허는 화엄교학을 정통으로 하면서도 수행의 핵심인 선법을 가벼이 여기지 않은 화엄선승일 뿐 아니라, 오대산문을 확립한 산악신앙의 계승자이자 유 · 불 · 도 삼교−때로는 기독교까지 4교−의 회통자였다. 사찰복원과 교육시설 확립을 통한 ‘교육 불사’와 번역 및 강론 등을 통한 ‘역경 결사’에 집중한 교육가이면서, 또한 자연에 대한 깊은 통찰력와 인과응보/권선징악의 종교융합적 이해를 통해 미래를 내다볼 줄 아는 예지자이기도 했다.

그는 삼교의 차이를 해명하면서도 그들 사이의 상통점을 발견할 줄 아는 통섭자였다. 비록 ‘불학자이자 동시에 불교학자’라고 명시하지는 않았지만, 붓다에 대한 공부와 수행을 아우르는 화엄선승의 모습을 강조한다. 그리고 시공을 넘나들며 마주치는 제설(諸說)을 종횡으로 화회하고 통섭하는 면모를 상세히 묘사하는 서술방식에서, 저자가 탄허에게서 “‘중도불학’으로 ‘체계’와 ‘실용’을 통섭하고자 한” 방법론적 전례를 발견했음을 감지하게 된다. 이 기나긴 저작의 마지막 장에 탄허가 배치된 것은 그의 생애 시기가 가장 뒤늦기 때문이기도 하겠지만, 한편으로는 ‘불학’적 방법론을 계승한 ‘불교학’자(김동화)의 자리를 넘어 그 스스로 ‘불학자’이자 ‘불교학자’였기 때문이기도 했던 것으로 보인다.

이상에서 확인한 바와 같이, 저자는 한국 전통시기의 ‘불학’과 대한시기의 ‘불교학’을 관통하는 방법론을 ‘화회’와 ‘통섭’의 특징으로 개관한다. 저자는 한국 불학과 불교학의 개별 사상/사상가에 대한 연구로부터 시작하여, 한국불교사 전체에 두루 하는 특징에 대한 탐색을 거쳐, 이제 그 방법론을 고민하는 단계에까지 이르게 된 학문적 이력을 쌓아 왔다. 그가 머지않은 장래에 ‘통사’ 혹은 ‘개론’을 쓰는 학자적 로망을 넘어, ‘중도불학’의 방법론으로 ‘체계(순수불학 즉 불교학)’와 ‘실용(응용불학 즉 불학)’을 자재로이 통섭하고, 끝내 그 자신 ‘불학자’이자 ‘불교학자’인 큰 스승이 될 것을 즐거운 마음으로 기대한다. ■

 

민순의 / 서울대학교 인문학연구원 객원연구원. 서울대학교 종교학과 졸업(석사, 박사). 조계종 교육원 불학연구소 · 불교사회연구소 상임연구원, 한신대학교 강사 등 역임. 주요 논문으로 〈조선전기 도첩제도(度牒制度) 연구〉 〈조선 초 조계종의 불교주도적 자의식과 종파 패러다임의 변화〉 〈정도전과 권근의 불교이해와 그 의의〉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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