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월 초쯤이었던 것 같다.

종교를 담당하는 후배가 티베트인들의 정신적 지도자인 달라이 라마가 계신 인도 다람살라에 출장을 갈 일이 생겼다고 했다. 달라이 라마 방한추진위원회가 일간지 종교기자단과 함께 다람살라를 방문한다는 거였다. 내심 부러웠다. 꽤 오래 종교 담당 기자로 일하면서도 다람살라와는 인연이 없었던 탓이다. 종교기자단은 1990년대 후반에 한 차례 다람살라를 방문한 적이 있는데 그때도 필자는 동참하지 못했다. 종교를 몇 년 동안 담당하다 잠시 다른 부서에 가 있을 때였기 때문이다.

7월 들어 종교 담당이 다시 다람살라 이야기를 꺼냈다. 가족과 여름휴가 여행을 떠나기로 하고 여행상품 예약까지 다 했는데 다람살라 출장 기간이 휴가와 겹친다는 거였다. 다른 부원들도 난색을 표했다. 달라이 라마를 친견할 수 있는 출장은 흔치 않은 기회여서 편집국장한테 보고했더니 이렇게 말했다. “데스크가 가면 되겠구먼.” 결국 다람살라 출장은 돌고 돌아 내 차지가 됐다. 인연이 되려면 이렇게 뜻밖의 기회가 오는 것을…….

다람살라로 가는 길은 만만찮았다. 아침 일찍 델리를 출발해 기차와 버스로 꼬박 하루를 달린 끝에야 저녁 늦게 다람살라에 도착했다. 캄캄하고 가파른 산길을 꼬불꼬불 돌고 돌아 올라가느라 버스가 버거워 보일 정도였다. 땅 넓은 인도에서 왜 달라이 라마는 하필 이 산꼭대기에 정착하셨을까 싶었다. 하지만 중국 공산당 정부의 탄압에 견디다 못해 조국을 등진 젊은 지도자가 선택할 수 있는 변변한 땅이 어디에 있었을까. 그나마 이 산중에 뿌리 내리고 망명정부를 세우는 데에도 얼마나 많은 간난신고(艱難辛苦)를 겪었을 것인가.

다음날 아침 일찍 다람살라의 중심 사찰인 남걀 사원으로 향했다. 달라이 라마가 한국인을 비롯한 아시아인을 위해 마련한 특별법회에 참가하기 위해서였다. 아침 6시에 갔는데도 벌써 남걀 사원 앞엔 입장을 기다리는 줄이 길었다. 달라이 라마의 법문은 9시를 조금 넘어서 시작됐다. 그 사이 남걀 사원의 법당 안팎은 3,000여 명의 불자들로 가득 찼다. 검은 머리, 노랑머리, 갈색 머리……. 참가자들의 인종도 국적도 다양했다. 가까이에서든 먼 발치에서든 존자(尊者)를 직접 보려는 사람들이다. 사원 옆 주석처에서 법회 장소로 온 달라이 라마는 특유의 인자한 미소를 머금은 채 각국 스님들의 손을 잡아주고, 대중들에게 손을 흔들어 인사를 건넸다.

법문이 시작됐다. 용수보살의 《보만론》을 교재로 삼아 공성(空性)과 무아, 보리심, 사성제 등에 대한 설명이 이어졌다. 법문은 10개 언어로 동시통역됐다. 불교의 교리에 관한 설명이라 애당초 공부가 얕은 사람이 듣기에 쉬운 내용은 아니었지만 존자의 법문은 쉽고도 친절했다. 법문 중간중간에 “잘 들리느냐?”고 묻고, 유머를 섞어가며 법회를 이끌었다.

법문의 메시지는 분명했다. 맹신하지 말고 확실히 알고 믿으라는 것. “왜 부처님 말씀이 그런지, 법이 왜 법이 되는지 알아야 번뇌를 없앨 수 있다. 그리고 그 방법을 알아야 한다.”고 했다.

번뇌를 없애는 방법이 아닌 것은 부처님 법이 아니라고 했다. 고정관념이나 집착, 착각은 이를 방해하는 장애물이다. 부처님은 “내 말이라도 잘라보고, 태워보고, 긁어보고, 살펴봐서 이치에 맞으면 믿고 아니라면 버리라.”고 했다. 존자는 “수미산을 믿지 않는다.”고 했다.

수미산은 불교적 우주관에서 세계의 중심이라고 믿어온 산이다. 하지만 과학적 증거가 명백한 마당에 바닥이 평평한 땅의 중심에 수미산이 있다고 우기면 어리석은 짓이라는 게 존자의 말씀이었다. 존자가 대중법문을 통해 불교의 교리와 개념들을 하나하나 설명하는 것도 결국 확실히 알고 믿고 수행해야 바른 결과를 얻을 수 있기 때문이다. 존자는 “공성(空性)과 보리심(菩提心)에 대해 스스로 사유하고 배워야 한다. 사유가 깊어지면 실제로 수행을 하게 되고, 그 결과를 경험과 체험으로 증득하게 될 때 삶이 바뀌게 된다.”고 강조했다.

다음날 아침, 존자를 다시 친견할 기회가 생겼다. 이번엔 대중법회가 아니라 달라이 라마 방한추진위원회 대표단과 한국 기자들을 위한 자리였다. 존자는 접견실에 들어서자마자 이렇게 말했다. “도대체 몇 년을 더 기다려야 하죠?” 거두절미하고 한국 불자들의 최대 관심사인 자신의 방한 문제로 직입(直入)한 것이었다. 그러면서 다소 희망 섞인 전망도 내놓았다. 중국 정부가 조금씩 달라지고 있어서 내년에는 좋은 쪽으로 변화가 있을 거란 얘기였다.

방한한다면 한국 사람들에게 어떤 메시지를 주고 싶은지 묻자 나온 답은 역시 ‘공부하라’였다. 존자는 “대부분의 불자들은 전통과 관습에 따라 독송과 예불을 하지만 배움과 수행은 중시하지 않는 경향이 있다”며 “경전에 담긴 뜻을 분석하고 추론하고 관찰해서 지혜로써 따르고 배워야 불교가 수천 년을 이어갈 수 있다.”고 했다.  존자는 늘 그래왔던 것처럼 자비와 연민의 실천을 강조했다. 전 지구적인 갈등과 다툼, 고통을 행복으로 바꾸는 묘약이 사랑과 자비, 연민이라는 것. “70억 인류가 모두 행복해지는 길은 서로 아끼고 베푸는 것”이라고 설파했다.

친견을 마치고 존자와 함께 단체 사진을 찍을 때였다. 존자로부터 한 사람 건너 서 있던 필자에게 존자가 손을 내밀며 말했다. “Take my hand.” 바로 옆 사람 뿐만 아니라 한 사람 건너까지도 자신의 손을 잡을 수 있는 기회를 준 것이다.

긴 말이 필요 없었다. 타자에 대한 존자의 깊은 배려와 자비를 온전히 보여주는 한 마디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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