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년도 더 된 일이다. 전남 송광사의 제일 큰 어른이신 구산(九山) 스님을 찍으러 갔을 때였다. 저녁 공양을 마치고 쉬고 있는데 주지 스님이 밖에서 누가 나를 찾는다고 했다. 송광사 입구 불일암(佛日庵)에서 온 심부름꾼이었다. 그 암자에 사시는 스님이 나를 만났으면 한다고 해서 따라갔다. 만나자는 용건은 스님이 찍은 사진들을 좀 봐달라는 것이었다.

그 스님은 몇 달 전 전라도 광주의 의사한테서 카메라 한 대를 선물로 받았다고 했다. 그래서 그동안 사진을 좀 찍어보았는데 나의 조언을 듣고 싶다고 했다. 한 스무 장 남짓 되는 5×7인치 크기의 사진들을 훑어보고는 보통 때 일반인들에게 하는 것과는 조금 다른 수준으로 말씀드렸다. 암자 주변의 풀이나 꽃, 그리고 나무들을 찍는 풍경들이건만 거의 정서적 반응들이 아쉬웠다.

스님이 찍은 사진은 모두가 단순히 ‘이것은 꽃이다’ ‘이것은 나무다’라는 식의 식물도감과 같은 것들이었다. 스님은 암자 주변을 둘러싸고 있는 자연의 아름다움에 이끌려 셔터(shutter)를 눌렀을 터인데, 그 느낌이 전혀 표현되어 있지 않음을 우선 지적했다. 이런 결과는 결국 사진을 마음으로 찍어야 하는데 단순히 눈으로 찍으면 이렇게밖에는 안 찍힌다고 했다. 이 말끝에 스님은 대뜸 “그렇다면 사진은 도(道)가 아닌가!”라고 말씀했다. 나는 그 말을 받아 “이 세상에 도가 아닌 것이 어디에 있습니까?” 하고 반문했다.

이런 경우 결국 나는 얼떨결에 공자님 앞에서 문자를 쓴 격이 되었는데 사실은 사진은 눈이 아니라 그야말로 마음으로 찍을 일이다. 우리가 살아가면서 유정물이나 심지어 무정물이거나 간에 눈이 아니라 무엇보다도 마음으로 다가가야만 자연스럽게 내면적인 교감이 이루어지게 된다. 예컨대 비단 사진뿐 아니라 극히 사소하거나 하찮은 일일지라도 오롯한 마음으로 임하면 그 가운데서 누구이건 간에 나름대로의 어떤 경지에 접하기 마련이다.

사진은 기계적인 작동을 통한 예술 행위다. 그런데도 이렇듯이 오롯한 마음으로 가슴 깊이 느껴지는 감성적인 직감(直感)을 카메라 셔터와 동조(同調)시키기만 하면 화면에 그 반응이 고스란히 드러난다. 마치 화선지가 물감을 머금으면 스며서 배어 나오듯이 그렇게 느낌이 자연스럽게 우러난다. 이러한 사진적 표현의 묘미는 웬만큼 사진에 통달하면 누구나 저절로 터득되는 표현의 기본기술이다. 이러한 사진적 표현의 맥락에서 나는 스님에게 눈으로가 아니라 ‘마음으로 사진 찍기’를 강조했던 것이다.

그런데 만약 가정(假定)해서 지금 이 시각에 그때 그 시절로 시간을 되돌려 똑같은 상황에서 그 스님이 나에게 똑같은 조언을 요구한다면 나의 대답은 이제 크게 달라지게 되었다. 즉 더 이상 ‘사진은 마음으로 찍는 것이다’라고 말하지 않을 것이다. 그동안 사진의 외길을 아무튼 계속해서 걷다 보니 그때보다는 철이 좀 들어서 사진에 대한 생각이 많이 바뀌었다. 요즈음에도 어쩌다가 예나 다름없이 사진을 좀 봐달라는 부탁을 받는다. 그러면 ‘사진을 마음으로 찍으라’고 더 이상 말하지 않고 그 대신 ‘마음을 찍으라, 바로 당신의 그 마음을 찍으라’고 그렇게 권하게 되었다. 예나 지금이나 마음 타령인데 그 차이는 근본적으로 완전히 다른 것이다.

아마도 지난날 그때 그 스님에게 이렇게 말하였더라면 공자님 앞에 문자 쓴 꼴이 아니라 송구스럽게도 부처님에게 설법한 격이 되었을 것이다. 그러나 어떻든 분명히 사진은 ‘마음’으로 찍는 것이다. 바로 카메라를 들이대고 있는 카메라맨 자기 자신의 ‘마음’을 찍는 것이다. 그러니까 사진을 찍을 때는 당연히 찍으려는 대상에 카메라를 조준하기 이전에 먼저 자기 자신의 내면을 향해서 초점을 맞춰야 하는 것이다.

1980년대에 스님을 만난 그 후 꼬박 5년 넘게 일련의 장승 작업에 매달렸다.

전국에 흩어져 있는 장승들을 찾아, 자가용이 없었던 나는 전적으로 대중교통을 이용해야만 했다. 당시만 해도 교통사정이 지금과는 많이 달라서 발바닥이 부르트도록 걸어야만 했다. 장승을 찍은 지 3년쯤 지났을 무렵, 어느 날 전라남도 깊은 산골에서 한 장승을 이리저리 찍고 하는데 시간이 많이 지나갔다. 그러다가 한순간 퍼뜩! 내 머릿속에 마치 전깃불이 켜진 듯 한 생각이 환히 떠올랐다.

 ‘지금 나는 장승을 찍고 있는 것이 아니라 바로 내 마음을 찍고 있다’는 그 생각이었다. 알고 보니 카메라가 겨누고 있는 장승은 다만 그저 하나의 촉매(觸媒)일 뿐이었다. 원래 내가 태어날 때 본유(本有)의 심층적 무의식 속에 잠재하고 있는 심령적인 영성이 밖으로 촉발케 하는, 결국은 한낱 촉매라는 사실을 직감하였다. 만약에 나에게 본래의 이러한 본성이 없다면 장승은 그저 그런 나무둥치에 지나지 않는 것이었다. 장승에서 풍기는 샤머니즘의 신기(神氣)는 바로 나의 내면적 심층의식에서 밖으로 촉발된 신령한 기운일 따름이었다.

비단 이뿐만 아니라 천주교의 성상(聖像)이나 불교의 부처님들도 인간이 생래적인 성스러운 종교적 심성을 촉발시키는 촉매로서 똑같은 역할을 하고 있기는 매한가지다. 이런 점에서 신자들이 성상이나 부처님 앞에 엎드려 부지런히 경배하는 것은 결국은 자기 자신에게 절을 올리고 있는 것이다. 사진가로서 나도 마찬가지였다. 그동안 장승을 찍으러 전국을 누비고 다닌 것이 아니고 나 자신을 찍으러 다닌 것이었다.

불일암의 그 스님께서는 몇 년 전에 세상을 떠났다. 만약에 지금도 생존하고 있다면 다시 한 번 꼭 만나보고 싶다. 이번에는 스님 쪽에서 사진에 대해 물어보기 전에 내가 물어볼 것이 너무 많다. 물론 모두가 불교에 대한 여러 가지 궁금한 것들이다. 특히 혜능 스님의 《육조단경》에 대해서 물어볼 것이 아주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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