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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령화 사회 극복을 위한 불교의 역할*/ 이혜숙
특집 | 고령화 사회와 불교 : ‐ 공동체성 회복을 위한 제언
[68호] 2016년 12월 01일 (목) 이혜숙 hesook56@hanmail.net

 * 이 글은 졸고(2014) 〈3 poor에 대응하는 불교계 역할〉에서 포괄적으로 인용된 부분들이 있음을 밝힙니다.

1. 제언의 배경

우리는 스스로 대강 몇 살쯤부터 노인이라고 생각하는가. 생리적 · 심리적 · 사회문화적으로 그 기준이 일정하지는 않겠으나, 고용관계법에서는 55세 이상을 ‘고령자’라 규정하고 사회보장 관계로는 60세부터 노령인 셈이다. 2015년도에 실시된 우리나라 총 인구조사 결과, 65세 이상의 노령인구는 6,569,082명으로 보고되었다. 그 연령대에서는 여성이 남성보다 1,042,268명이 많다. 65세 이상의 노인이 전체 인구의 7% 이상을 차지하기 시작하면 소위 고령화 사회(aging society)라 하는데, 우리는 이미 2000년도에 ‘고령화 사회’에 진입하였다. 더 나아가 노인 인구 비율이 14%에 도달하면 고령사회(aged society), 20% 이상이 되면 초고령사회(super aged society)라고 하는데, 2015년도에 65세 이상 노인의 비율이 약 13.2%를 차지함으로써 우리나라는 ‘고령사회’에 거의 육박하고 있다.

이처럼 국민의 평균적인 기대수명이 늘어나고 장수하는 노인들이 많아졌다는 사실은, 각종 건강정보가 넘치고 예로부터 보양식 문화도 다양한 이 나라에서 우리가 그토록 바라던 바를 이룬 것이 아닌가. 그러나 실제 ‘고령화 사회’라는 말은 걱정스러운 뉘앙스를 풍기며 흔히 ‘저출산’과 짝을 이루며 쓰이는 어휘다. ‘저출산 고령화’ 즉 출산율이 낮아져 어린 사람은 늘어나지 않고 나이 든 사람들이 상대적으로 늘어나게 된 현상을 일컫는다. 구체적으로는 유소년 인구 대비 고령 인구 비율인 ‘노령화지수’를 지목하거나, 생산가능 인구 대비 고령 인구 비율인 ‘노년부양비’ 등을 지목하는 가운데 그 문제성을 설명하곤 한다.

노동생산성과 경제를 최대가치로 여기는 이 시대에 생산력이 떨어진 노인층을 부양해야 하는 부담이 커지고 있어서 큰 문제가 된다는 것이다. 또한 우리나라의 노인 인구가 숫자상으로 늘어났다는 사실 자체만이 아니라, 그 증가의 속도가 다른 나라들에 비해서 너무나 빨랐기 때문에 노령화 사회를 맞이하는 준비가 크게 부족했다는 점도 문제라고 한다. 다시 말하면 우리의 사회보장제도가 좀 더 일찍 확립되고, 그 보장제도 아래서 지금의 노년층이 좀 더 일찍부터 노후대책을 마련할 수 있었더라면, 현재의 충분치 않은 공적 부조(扶助) 대신에 스스로 준비해온 자산으로 노년기를 보낼 수 있는 여유가 생겼으리라는 것이다.

외국에서도 혹자는 ‘에이지퀘이크(Agequake)’라는 신조어까지 사용하며 인구 고령화가 해당 사회에 미치는 파장을 지진에 비유하고 ‘재앙(災殃)’이라 표현하기도 한다. 그러나 우리나라의 경우에서 노년층 당사자들의 입장을 한 번 더 깊이 생각해보자. 필자의 부모님처럼 연세가 팔순이 넘은 분들이라면 청소년 시절에, 칠순이 넘은 분들이라면 유년 시절에 이 땅에서 참혹한 전쟁을 겪었다. 죽음의 공포 · 불안 · 상실 · 절망 등으로 얼룩진 상처를 삭히지도 못한 채, 모두 허리띠 졸라매고 가정생활의 미래를 보장해줄 것 같은 거국적 경제개발 이념에 동참해야 했다. 그러한 부모 · 조부모 세대의 인내와 헌신 덕분에 그 뒤 세대들이 좋은 교육을 받을 수 있게 되었고 안정된 삶의 포부도 가져볼 수 있게 된 것이다.

대한민국의 파란만장한 근현대사에서 선택의 여지가 없이 줄곧 나름의 책임과 의무를 다한 노년층임에도 불구하고, 오늘날에 와서는 갑자기 사회적으로 그저 부담스러운 존재가 되어버린 것이 아닌가. 이대로 가면, 그동안 정치 · 경제 등 분야에서 생겨난 불만을 포함하여 ‘세대 갈등’으로 고착될 가능성이 농후하다. 그렇게 된다면, 세계 어느 나라의 노인층보다도 한국 노인들이야말로 지나온 생애가 허망하고 서러운 소회(所懷)를 더 많이 느끼게 될 것 같다. 우리나라 노년층의 자살률이 세계적으로 수위를 차지하게 된 것도 이런 심리사회적 배경과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이처럼 고독하고 실망스러운 노년기를 조금이라도 개선할 대안이 있기는 하겠는가. 불교계가 이와 같은 문제 상황을 모른 척해도 될 것인가.

불교계는 특히 신자들의 인구학적 구성비를 보았을 때 상대적으로 노년 인구가 많고 청년 인구가 적다는 것이 잘 알려져 있다. 따라서 기존 신자들을 관리하는 차원으로 보더라도 노년층의 특수성을 잘 이해하고 보살펴야 할 책임이 충분하다. 과거에는 노령 신자들이 장기간 사찰에 머물며 생활하기도 했다. 우리가 아주 곤궁한 상황에 놓였을 때 흔히 쓰는 표현으로 ‘집도 절도 없다’는 말이 있듯이, 절이란 종종 누군가에게 자신의 가정을 대신해서 의지처가 되어주던 곳임을 짐작할 수 있다. 요즘 용어로 ‘사회적 부양’의 선구적인 역할을 해온 곳이 바로 사찰이었던 것이다. 그런 전통을 오늘에 이어가고자, 이하 본론에서는 고령화 사회의 현안들을 되짚어보고, 돈만으로 다 마련될 수 없는 기본가치 즉 공동체성의 회복에 주안점을 두고 불교계 역할을 제언하고자 한다. 

2. 사회의 고령화는 재앙인가

사회현상을 이해하기 위해서 필자는 사회조사 결과들을 참조하고 통계치 분석을 바탕으로 문제점을 추론할 것이다. 정부 차원에서 실시한 조사들과 통계치는 방법론상으로 비교적 충실한 내용이라고 볼 수 있기 때문이다. 앞서 인용하였듯이, 누군가가 고령화를 사회적 재앙이라고까지 말하는 데에는 무엇보다도 국가가 노인 세대에 지출하는 사회복지 비용이 심각하게 부담스럽다는 입장이 있다. 소위 ‘노년부양비’의 문제가 그것이다.

다음의 〈표 1〉에 보이는 노년부양비란 15세에서 64세까지의 생산가능인구 100명당 몇 명의 노인을 부양하게 되는지를 의미한다. 예를 들어서 2016년에는 노인 한 명에 대해서 5~6명의 생산가능 인구가 함께 사회적으로 부양하는 셈이라는 통계다. 또 한편으로 생산가능 인구는 14세 미만의 유소년을 사회적으로 부양할 책임도 있기 때문에 그 유소년부양비를 합하면, 우리의 생산가능 인구 두세 명이 노인과 어린이 각 한 명씩을 사회적으로 부양해야 한다는 계산이다. 이렇게 산술적으로 따져보니, 바야흐로 우리 사회는 비생산적인 인구가 많아져서 생산인구의 허리를 더욱 휘게 만드는 구조가 되었다는 걱정이 크다. 부양을 받는 입장으로 단죄(?)된 노년층이 어쩔 수 없이 자책감을 느끼게 되는 배경일 것이다.

   

그러나 한국에서 노년부양비라는 개념은 다시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2014년도 실시한 노인 실태조사에 의하면, 65세 이상 노인 중 14.2%만이 노년에 일하는 것이 ‘좋아 보이지 않는다’고 응답하였고 일상생활 기능에 제한이 없는 노인의 32.2%가 재정적 수입을 목적으로 일하고 있다. 기혼 자녀와 동거하고 있는 65세 이상 노인의 경우에도 동거하는 이유가 ‘자녀의 경제력이 부족해서’가 19%이고, ‘가사 및 손자녀 양육을 돕기 위함’이 27%나 된다. 조사 통계치 대신에 간단히 주위를 돌아보더라도, 한국의 노년층은 단지 부양받기만을 원하는 존재가 아니라, 노년에도 일하는 것을 좋게 보고 가족을 부양하면서 오래도록 노동력을 제공하기 때문에, 노년층 상당수는 실질적으로 생산가능 인구에 속한다는 점을 인정해야 할 것이다.

다음 페이지의 〈표 2〉는 통계청이 매월 발표하는 고용동향 가운데 2016년 9월 고용지표의 일부이다. 소정의 조사 기간 동안 만 15세 이상의 인구 가운데 “상품이나 서비스를 생산하기 위하여 실제로 수입이 있는 일을 한 취업자와, 일하지는 않았으나 구직활동을 한 실업자의 합”을 경제활동 인구라고 정의한다. 연령대별로 분석한 경제활동 인구 비율[경제활동 참가율]과 취업자 비율[고용률] 그리고 일자리가 주어지면 당장 일할 수 있고 최소 4주간의 구직활동을 하였으나 일을 얻지 못한 실업자 비율[실업률] 등이 발표된다. 조사결과를 보면, 60대 이상의 노년층이 스스로 생산적이고자 노력하는 상황을 필자는 충분히 추정할 수가 있다. 20대 청년층보다 60대 이상의 취업률이 높고, 15세 이상 인구 전체의 실업률보다 오히려 60대 이상의 실업률이 더 낮다는 사실을 어떻게 해석할 것인가.

   

지난해 실시된 사회조사 결과에서도, 60세 이상의 고령자가 생활비를 마련하는 방법은 ‘본인 및 배우자 부담’이 66.6%로 가장 많았고, ‘자녀 또는 친척 지원(23.0%)’ ‘정부 및 사회단체 지원(10.4%)’ 순으로 나타났다. 생활비를 본인이나 배우자가 부담하는 경우에는 ‘근로소득 및 사업소득(54.4%)’ ‘연금 및 퇴직급여(27.6%)’ ‘재산소득(11.7%)’ 등이 대부분을 차지하므로, ‘사회적 부양’에 해당되는 것은 ‘정부나 사회단체’로부터 받는 10.4% 정도의 지원이라고 볼 수 있다. 더욱이 현재 자녀와 같이 사는 60세 이상 고령자들은 ‘자녀의 독립생활이 불가능(34.2%)’한 것이 동거의 가장 큰 이유다. ‘자녀의 독립생활 불가능’이나 ‘손 · 자녀의 양육 및 자녀의 가사를 돕기 위해서’라는 이유로 고령자가 자녀와 동거하는 비율이 2년 전보다 각각 4.9%p, 1.9%p 증가했다는 점도 유심히 보아야 할 부분이다.

과거 우리나라의 사회보장제도가 충실하게 확립되지 못한 시대를 살아왔기 때문에 노년에도 생활비를 위해서 일해야 하는 한편, 2015년 현재 46% 이상의 노인층은 여전히 부모로서 성인 자녀와 함께 살며 생활상 도움을 주고 있는 실정이다. 오늘날 재정이 궁핍하게 된 부모들의 상당수는 그동안 자녀의 교육이나 결혼 등에 과도한 지원을 하면서 자신의 노후 대비를 제대로 할 수가 없었을 것이다. 우리 사회의 이러한 문화적 특수성을 인정한다면, 숫자상 고령화 사회에 접어든 것만으로 사회적 ‘재앙’이라 단정할 일은 아니라고 생각된다.

3. 인생의 노년기는 재앙인가

앞서 필자가 노년층의 경제활동 참가율 등을 소개한 것은, 노년층이 기타 연령층과 마찬가지로 경제적 자립을 희망하는 성실한 사회구성원임을 강조하기 위해서였다. 소위 ‘노년부양비’(노령 인구 vs 생산연령 인구)라는 지표는 상대적으로 젊은 층에게 노인에 대한 경계심과 심리적 부담감을 자극하는 수치일 뿐, 사회구성원 사이의 부양 관계를 설명하기에는 부족하다. 실제로 65세 이상 노인층의 취업률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중 한국이 2위(OECD 평균 13.1%)로서 그만큼 많은 노인이 경제활동에 참여하고 있다. 그럼에도, 노인층 빈곤율이 OECD 국가 중 최고라는 것이 오히려 심각한 문제점이다. 우리나라 노인의 약 절반인 49.6%가 상대적으로 빈곤하고 그 비율은 2014년 현재 OECD 평균인 12.6%의 4배에 가깝다. 이런 빈곤은 노년의 탓이 아니라 사회경제적 요인에 의한 것이다.

생산⇒분배⇒소득이라는 사회구조적 맥락에서 야기되는 빈곤 등의 문제에 불교계와 같은 민간이 개입하기에는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 빈곤이 가장 심각한 고령화 사회의 문제로 지적되어 ‘재앙’ 운운한다지만, 노년기 복지 수준은 전반적인 생활여건과 더불어 주관적인 삶의 만족도 측면에서 검토되어야 한다. 불행히도 노인 자살률은 2014년 현재 10만 명당 55명으로서 전체 연령대의 자살률 27.3명의 2배에 이른다. 인생에서 자살이란 가장 강력하게 복지에 반(反)하는 선택이고, 당사자를 포함한 반연(絆緣)들에게 일종의 재앙이 아닐 수 없다. 나이가 들어 심신이 쇠락(衰落)하는 것도 안타까운데 굳이 서둘러 삶의 종지부를 찍고 싶은 당사자의 내면은 어떤 상태인가. 바로 이 문제에 불교계가 좀 더 관심을 가져야 하고 또 기여할 바가 반드시 있다고 생각되기 때문에, 필자는 여기서 우리 사회 노년층의 심리사회적 단면을 조명한다.

   

위 〈표 3〉에서 보다시피, 2014년 현재 한국의 노인들은 10명 중 1명 이상이 자살을 생각해본 적이 있고, 자살 생각을 해본 10명 중 1명 이상은 자살시도를 한 적이 있다고 한다. 그 원인으로서는 경제 문제, 건강 문제(본인과 가족의 건강), 인간관계 문제(가족 친지와의 단절 · 사별 · 외로움)로 크게 나누어진다. 남석인 등의 연구에 의하면, 노년기 일상생활 가운데 스트레스 수준이 높을수록, 건강에 대한 주관적 인식이 나쁠수록 자살 충동의 가능성이 커진다고 한다. 또한 노인이 갖는 주관적 사회계층 인식이 생활 스트레스와 주관적 건강 인식의 이중매개 경로를 거쳐서 자살 충동에 영향을 미치는 것으로 나타난다. 생활 수준 및 신체건강에 대한 주관적 인식과, 더불어 느끼는 생활 스트레스 등이 노년기 삶에 결정적인 요소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채수미에 의하면, 65세 이상 노년층의 불안 수준은 5.6점(매우 불안=10점)이며 인구학적 특성보다 주로 사회학적 특성에 따라 차이를 보인다고 한다. 즉, 성별 · 연령별 · 지역별로 불안감의 차이는 두드러지지 않으나, 독거노인의 불안감이 더 크고, 소득이 낮을수록 불안감이 크다. 신체적 건강 수준에 따라 불안감의 차이가 나타나고, 불안감은 노년기 내에서 비슷한 수준으로 나타난다. 한편, 사회적 지지가 될 동거인이 있을 때 불안감은 완화되고, 여가활동을 통해서 심리사회적 안녕감 및 삶의 만족도가 증대될 수 있다고 한다. 지역사회 내에서 공동체 활동을 통한 교류와 소속감을 증진하고, 건강 수준에 대한 불안감을 해소하기 위하여 노년층을 위한 심신 건강증진 프로그램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우리나라 노년층의 빈곤율이나 자살률 등과 관련하여 안타깝지만, 불교계라고 해서 단박에 획기적인 대안을 만들 수는 없다. 그러나 지금까지 발표된 조사와 연구들을 참고하면 불교계로서 어느 정도 가능한 역할의 방향을 세워볼 수가 있다. 소득 수준이 삶의 만족감에 영향을 주는 것은 분명하지만 충분조건이 아니라서, 우리 사회는 비교적 높아진 소득 수준과 기대수명 등에도 불구하고 삶의 만족도는 OECD 35개 국가 중 30위 정도이다. 생활여건과 주관적 안녕감이 심하게 불일치하는 우리나라에서 지금 불교계 역할은 삶의 주관적 평가와 객관적 수준의 대립과 괴리를 해소할 방도를 찾아내는 일인 것 같다. 특히 노년층의 심리사회적 정황에 부응하여, 심신의 노쇠(老衰) 현상에 대한 불안보다 수용하기를 격려하고, 독거(獨居) 생활보다는 공동체에 참여하고 교류할 기회를 제공할 필요가 있다.

4. 공동체성 회복은 가능한가

한국인 일반의 정신적 웰빙 수준이 외국에 비하여 현저히 낮다는 것과, 노인뿐만 아니라 전체적인 자살률이 세계 1위라는 사실은 이미 우리에게 큰 문제가 있음을 시사한다. 사회학자들에 의하면, 대개 국민소득이 어느 수준을 넘어서면 탈(脫)물질주의적 가치를 중시하는 조용한 혁명이 일어나서, 표현의 자유가 보호되고 돈보다 생각이 중시되는 인간적인 사회로 진보한다고 했다. 그러나 우리는 1980년대 후반 잠시 그런 경향을 보이다가 90년대 중반 이후부터 배금주의가 팽배하고 탈물질주의적 가치도 위축되기 시작했다고 진단되었다. 또, 그간 OECD 등의 행복지수 산정 결과로 볼 때, 우리는 경제나 교육 · 고용 측면에 비추어 사회적 ‘형평성’과 ‘만족도 · 신뢰 · 연대성’ 등의 사회통합 측면에서 각별한 정책적 노력이 필요한 것으로 평가된 바 있다. 최근 보건복지부의 시범사업으로 ‘독거노인 친구 만들기’가 있다. 독거노인의 사회관계를 활성화하는 프로그램과 심리상담 및 치료 서비스 등을 제공하고 비슷한 연령대의 독거노인들이 함께 지내면서 상호 돌봄의 관계망을 형성하도록 지원하는 사업이다. 노인이 사회적으로 배제되지 않고 서로 연대하여 도움으로써 불안과 우울을 해소하게 되는 효과가 나타났다.

무엇보다도 지금은, 지나치게 경쟁적인 현실의 성과자본주의 아래서 비교적 생산성이 줄어든 노년기 삶을 홀대하고 폄하하는 세태를 바로잡아야 한다. 거기에 불교계 고유의 역할이 필요하고 또 가능하다고 생각된다. 연기법(緣起法)과 불성평등(佛性平等)이 진리라고 믿는 불자라면, 바로 지금 우리에게 절실히 필요한 공동체성의 회복을 목표로 삼지 않을 수 없다. 부자와 빈자 · 청년과 노년 · 남자와 여자 · 상사와 부하 등등 모든 구성원이 상의상관(相依相關)의 조직원리에 속하는 존재이기 때문에, 서로가 불가분의 반연(絆緣)임을 도외시할 수 없다. 서로가 한 울타리 아래 운명공동체라는 생각이 들어야 마땅하다.

이 사회가 벌써 늙었다는 걱정에다가 개인도 그저 젊게 보이려고만 하는 세태, 고령화를 자칫 재앙처럼 예단(豫斷)하고 그 속에 청년과 노년을 서로 원망하게 하는 작금의 세태에 대해서 불교계는 제동을 걸어야 옳다. 물론, 불교가 만병통치의 주술처럼 무엇이든지 다 해결할 수 있게 한다는 뜻이 아니다. 공동체성의 회복이란, 불교계 구성원들의 신념을 확인하고 절차를 밟아서 지속적으로 추진해가야 할 운동이고 사업이다. 앞서 인용한 노인 대상 조사연구도 노년기 삶의 질을 위하여 혼자 생활하기보다는 공동체 활동에 참여하도록 제안했고, 한국인 일반의 행복지수에서도 ‘신뢰’와 ‘연대’ 등 사회통합지표의 수준이 현저하게 낮은 점이 지적되었기 때문에, 차제에 불교계 내부의 분발을 촉구하는 것이다.

이미 2012년 대한불교조계종 포교원에서도 ‘불교는 사부대중의 공동체를 지향한다’는 취지와 함께 ‘사회 통합성의 위기’에 대처하기 위하여 사찰의 지역 통합성 지표를 개발하는 연구를 수행한 바 있다. 주로 그 연구는 기존 사찰이 새로운 지역사회 활동을 통해서 포교의 기능을 강화할 목적이었다. 그렇지만 필자는 한 걸음 더 나아가서 사찰 인근에 좋은 주거공동체를 만들게 되면, 그곳에 이주해온 신자(주민)들이 자연친화적 환경에서 삶의 만족도를 높이고, 지역사회에 통합되는 보람을 누릴 가능성과 아울러 자연스럽게 불교문화에 다가서게 되는 포교 효과도 기대할 수 있다고 본다.

5. 사찰 인근 생활공동체 만들기

1) 전제
2014년 현재 65세 이상 노인 중 혼자 생활하는 노인가구는 23%, 부부가 함께 생활하는 노인가구는 44.5%이며, 독거노인의 수는 명백하게 증가하는 추세다. 노인 단독가구가 겪는 생활상 어려움으로는 경제적 불안감(25.8%)과 아플 때 간호 문제(25.6%)가 가장 높고 다음이 심리적 불안감과 외로움(21.7%) 순으로 나타난다. 노인들의 거처는 단독주택(51.7%), 아파트(34.7%), 다세대 및 연립주택(11.8%)의 순서이며, 자기 소유의 집에서 사는 노인(69.2%), 무상거주(11%), 보증금 있는 월세(9.8%), 전세(8.4%) 등의 순서다. 도시 지역 거주 노인이 76.6%로 역시 증가 추세라고 한다.

노인들의 주거공동체라고 하면 흔히 양로시설이나 요양시설을 생각하겠지만, 연령대를 막론하고 아직까지 한국의 노인들은 그런 ‘시설’을 선호하지 않는다. 사회생활과 격리되는 ‘시설’이 아니라, 작은 마을공동체같이 서로가 이웃이 되고 일상적으로 접촉하고 교류할 수 있는 평범한 삶의 터전을 필요로 한다. 이와 같은 노년층의 주거 실태와 욕구를 어느 정도 파악해야 새로운 주거공동체에 대한 설계가 좀 더 합리적이 될 것이다. 노년기를 위한 대안공동체는 사찰 인근에 물리적으로 거주지를 조성하자는 것이기 때문에 승가공동체 구성원의 합의가 전제되어야 한다.

2) 이용 대상자
이 사업은 도시에서 혼자 살고 있는 노인들을 비롯하여 재정 · 주거 및 심리사회적으로 취약한 노인들을 우선 대상자로 삼아서 안정적이고 건강한 공동생활 터전을 제공하려는 목적이 있다. 그러나 지역 환경 및 수요에 따라서는 저소득층만이 아니라 중산층 이상을 대상으로 할 수 있고, 노인이 포함된 모든 연령층을 위한 생활공동체로 운영될 수도 있을 것이다. 이용자로는, 해당 지역 출신들이 고향을 떠나 타지에서 살다가 노년에 귀향하는 경우가 될 수도 있고, 지역 연고는 없지만 가까운 이웃을 새로 얻기 위해서 순수하게 이주해오는 경우가 될 수도 있다. 해당 지역사회에는 새로운 형태의 마을공동체가 조성되고 비록 노년층이라서 느리지만 주체적으로 친교하고 소통하는 주민 활동이 시작될 수 있을 것이다.
한편, 해당 사찰의 오랜 지지자요 외호자인 재가불자들도 주거공동체를 이용할 수 있도록 한다. 불자로서 여생을 평소 인연 있는 사찰 부근에서 보람 있게 마감할 수 있도록 배려하는 사업이기도 하다. 해당 사찰에서 오래된 신자일수록 본가를 떠나 대안공동체 생활에 적응하기가 용이할 것으로 예상된다. 아울러 해당 불자의 가족이나 지인들이 자연스럽게 사찰과 더 가까워지고 더 자주 찾아올 가능성과 그 효과를 기대할 수도 있다. 만약 이 공동체 사업이 제대로 정착되면 21세기 새로운 재가불교 수행공동체의 패턴을 창조하며, 생애 마지막까지 불교적 가치를 구현하는 수행도량이 될 수도 있을 것이다.

3) 운영 주체
대안적 생활공동체의 물리적 공간은 사찰이 제공하되, 그 주거공동체가 굴러가도록 할 운영비는 이용자의 이주(移住) 자금과 공공의 지원기금 등을 배합하여 조성한다. 사찰의 부속 토지를 새로이 주거용 공간으로 개발하거나, 혹은 현재 사찰 진입로에 있는 임대차 상가들을 파격적으로 환수해서 리모델링을 해서, 공동체의 주거공간으로 용도변경을 해도 좋을 것이다. 특히 어떤 사찰들의 경우는 너무 출입구 가까이에 상점과 유흥음식점들이 자리하고 있어서, 수행공간이라는 사찰 분위기를 해치기도 하므로 공간의 용도를 주거공동체로 변경해보기를 권하는 것이다.
사찰 소유 토지에 주거용 건물을 새로 짓는다면 건축 비용은 여러 가지 방식으로 조달할 수 있을 것이다. 우선 이주자들의 이주 보증금이 있겠고, 지자체의 특수마을(자연친화마을, 고령친화마을 등) 조성사업비 지원계획과 같은 것은 없는지, 사전에 타진해볼 필요가 있다. 운영 책임은 기본적으로 해당 사찰(혹은 소속 신도회)에 두고 지역사회에서의 공신력을 바탕으로 지자체와 마을 조성사업을 협의한다. 사찰(신도회)이 대외적으로 법적인 책임을 지는 운영 주체일 뿐만 아니라 내부적으로는 사업의 전반적인 진행을 지휘하고 감독하는 역할을 한다. 만약, 공동체가 설립될 때 지방정부의 제도적 지원을 받게 된다면, 지자체는 운영상 협력자 이상의 감독자가 될 것이다.

4) 운영 방법
이 부분은 생활공동체를 일상적으로 운영할 중심 소프트웨어(software)로서 사회적 기업(사회적 협동조합, http://www.coop-eratives.go.kr) 운영체제를 도입한다. 공동체로 이주한 노인 한 사람 한 사람이 적극적으로 공동 살림의 주인이 되어야겠지만, 공동체의 규모에 따라서는, 일정 수의 상근자와 자원봉사자들로 구성한 관리 인력을 둘 수도 있다. 또 만약에 이주한 노인들이 평소 생업에 종사했다고 하면 그 경험을 살려서 소규모 가내생산을 추진할 수도 있다. 생산과 소득이 있게 되는 경우, 사회적 협동조합 방식으로 운영하는 것이 적절하다.
사회적 협동조합은 비영리법인의 인격을 가지며, 공익사업을 40% 이상 수행해야 한다. 예컨대, 지역사회 재생사업, 주민권익 증진, 취약계층 사회서비스 일자리, 국가 및 지자체 위탁사업 등이 그것이다. 최소 설립 인원은 5명으로 자발적인 소규모 활동이 가능하고 출자액에 상관없이 1인 1표로써 의사결정에 참여한다. 2013년 10월 현재 사회적 협동조합은 총 91개가 승인되어 있다. 사업상 잉여금은 일부 적립하고 나머지는 공동체 생활에 재투자함으로써, 장차 재산의 축적보다는 바로 삶의 질을 높이는 재투자가 되도록 재정을 관리한다.
이주하는 노인들의 연령과 건강, 취향에 따라서 차이는 있겠지만, 가능하다면 구성원의 기본생활과 여가활동 등의 재정이 어느 정도 자급자족이 되는 공동체를 목표로 설계한다. 자급자족이라 함은, 공동체에 입주한 노인들이 공동출자한 자금으로 생업을 일으키기도 하고, 외부의 원조 없이 관리자 인건비를 포함해서 사업비를 충당하는 생산적 공동체를 기획하는 것을 의미한다. 우리나라 고령자의 일에 대한 생각과 경제활동 참가율 등을 감안할 때, 공동체 이용자가 작으나마 생업을 유지한다는 것이 그리 터무니없는 계획이 될 것 같지는 않다.
공동체 생활의 규범은 구성원들의 민주적이고 자발적인 결정에 따르겠지만, 불교 승가의 일미화합(一味和合)을 이념으로 원용해도 좋겠다. 더 세부적인 생활관리는 협동조합 원리에 따라서 이행할 수 있다. 생활공동체 구성원들에게 굳이 불교적 색채를 강요하지 않아도 사찰 부근의 물리적 환경에 맞추어 살다 보면 자연스럽게 명상, 채식, 공동생산 및 공동소비 등 불교 승가의 전통들이 반영될 수 있을 것이다. 사찰의 부대 여건을 고려하여 우선 가능한 위치에서부터 시범운영을 착수해볼 필요가 있다.

5) 지원 체계
국토교통부 산하 도시재생사업단(http://kourc.or.kr)이 2007년 1월에 출범하면서 지역공동체를 중심으로 한 도시재생 방식이 ‘지역자력형 도시재생 사업’과 ‘마을 만들기 사업’ 등으로 시행되고 있다. ‘마을 만들기 사업’은 일본에서 시작된 방식이기도 하나, 2012년 서울시가 마을공동체 담당관을 신설하고 사업지원 조례를 제정하여 민관 거버넌스를 구축해서 의욕적으로 추진하고 있다(http://seulmaeul.org). 일찍이 1990년대 영국의 도시재생 사업이 비영리기구 및 자원단체에 의한 사회적 자본을 중심으로 하여, 거주환경을 개선하는 것만이 아니라 사회문제까지도 해결하며 사회적 기업화되어온 경향도 참고해볼 수 있다.
일본에서는 정부가 지역사회의 빈집을 매입하여 사회복지법인 등에 위탁을 주거나, 비영리 조직이 빈집을 구입할 자금을 융자해주어서 독거노인들을 위한 그룹 홈을 운영하도록 지원한 사례들이 있다. 성격은 좀 다르지만, 저소득층의 주거안정을 위해서 비영리단체들이 저렴한 사회주택 · 임대주택을 제공해온 사례들도 참고할 만하다.

6) 유사 공동체 예시

① 태국의 불교공동체 아소케
1975년 초 태국의 유명 연예인이었던 보디락이 승려위원회로부터 독립을 선언하고, 방콕 외곽 지역에 ‘산티 아소케’라는 공동체를 처음 창설하였다. ‘아소케’란 고통 없음을 뜻하고 ‘산티’는 평화를 뜻한다. 구성원은 대개 빈곤층과 중산층 출신이고, 친환경 농사로 자급자족하며, 채식식당, 슈퍼마켓, 재가자 주택, 기숙사, 스님 숙소, 학교, 사원, 출판사, 회의장, 치과, TV 방송국 등이 있다. 아소케 공동체는 크게 마을, 학교, 사원으로 구성되고 “적게 소비하며, 많이 일하고, 사회에 환원하자”는 슬로건에 따라 지속가능한 공동소비를 한다. 정직하게 좋은 농산품을 만들어서 시장수요가 늘고, 학교에는 교사 자격증을 가진 자원봉사자들과 자격증 없는 노인들이 대내외적으로 유기농법, 쓰레기 재활용법 등을 가르친다.
경제위기로 출범한 또 다른 불교공동체로서 시사 아소케가 있다. 1969년 태국 북동쪽 시사켓의 버려진 땅에 몇몇 가족이 모여들어서 유기농 공동체를 조직하였고, 현재는 80가정 200명의 재가불자와 아소케 스님들로 구성되어 있다. 여기에 합류하고자 하는 가족 성원들은 ‘성실히 일하기, 오계 지키기, 채식하기’를 반드시 지켜야 한다. 버섯, 각종 허브 제품들, 유기농 비료가 유명하고, 정원과 논 외에도 방앗간, 두부 공장, 채식식당, 사무실, 학교 등이 있으며, 학생들은 농사법을 배우고 책임 있는 시민들로 키워진다. 생산품은 이윤 없이 팔거나 기부한다. 1986년 ‘부다탐’이라는 사원마을로 세상에 알려졌고 공동체를 연구하기 위하여 많은 방문객이 찾아오고 있다. 시사 아소케 특유의 학교 체계로 운영되며 직업교육, 건강관리, 불교교육 등을 실시한다.

② 일본의 야마기시 공동체
이 공동체는 1953년 일본에서 야마기시 미요조(山岸巳大藏)가 제창한 이념, 즉 ‘자연과 인위 즉 천지인(天地人)의 조화를 도모하여, 풍부한 물자와 건강과 친애의 정으로 가득 찬 안정되고 쾌적한 사회를 인류에 도입하자’는 취지에서 설립된 야마기시회(山岸會)와 동시에 야마기시식 양계보급회가 결성된 것이 그 시작이다. 다음 해 창립자의 〈야마기시즘 사회의 실태〉라는 논문이 발표되고 그로부터 ‘행복연찬회’가 개최되기 시작하였다. 1956년 1월에 개최된 야마기시즘 특별강습 연찬회가 교토 근교 광명사(光明寺)에서 1주일 동안 있었고 현재까지 그 전통을 이어오고 있다. 1961년부터 야마기시즘 생활 실현지가 일본의 여러 농촌에 건립되었고, 1966년에는 한국에서 제1회 야마기시즘 특별강습 연찬회가 수원의 농민교육원에서 있었다. 1974년부터 일본의 각 야마기시 공동체는 농산물 공급을 시작하였다
이 공동체 탄생의 배경에는 전쟁의 참상을 겪은 일본사회의 바람이 담겨 있다. 그 뒤로 50년 동안 야마기시즘 운동은 모든 사람의 행복을 바라고, 특히 회원들에 의해서 행복한 지역사회 만들기 일환으로 여러 가지 연찬 활동을 한다. 첫째, 아이 기르기, 부모 성장 강좌 등과, 둘째, 생산자도 소비자도 함께 살고 살리는 ‘먹거리’ 운동, 셋째, 지역이 친밀감으로 넘치는 행복사회가 될 수 있게 하는 각종 활동이 그것이다.
그곳에서는 단지 복수의 개인이 모인 공동(共同) 혹은 협동(協同) 생활이 아니라, 일체(一體) 생활에 서로 녹아들어 간 자세로써 공동의 농업 · 축산 · 임업 등 생산활동을 하고 있다. 마을 사람들이 재배한 유기농산물은 농장 직판점에서 일반인에게 판매되고, 목축도 순환농법에 의해 만들어진 유기농 사료를 먹고 자란다. 마을에서 열리는 다도회(茶道會)는 야마기시즘을 체험하기 위해 전 세계에서 찾아온 외국인들도 참가한다.

③ 한국의 선애빌 마을
명상학교 수선재에서 만난 다양한 직업과 다양한 연령대의 사람들이 2010년에 지구환경 · 에너지 · 인간성 회복 등의 문제를 풀기 위하여 충남 보은 기대리에 처음 세운 마을이다. ‘선을 사랑하는 사람들이 일군 마을’이라는 뜻의 마을 이름에, 주로 40대 연령층이 모여서 인생 이모작(second life)을 꿈꾸고 있다. 공동출자한 기금으로 ‘농업회사업인 (유)선애마을 보은’을 설립하여 2만 평의 부지를 마련하였고, 총 27세대 55명 정도의 사람들이 생태주의 공동생활을 하고 있다. 보은 외에도 충주, 영암, 나주, 고흥 등 네 곳에 6개의 선애빌이 더 있다. 2012년부터 세계생태공동체(Global Ecovillage Network)의 한국 대표단체가 되었다.

이 공동체는 생활에 필요한 모든 것을 생태주의에 입각하여 해결하고자 한다. 무엇보다도 환경과 에너지 문제에 민감한 사람들이기 때문에, 집은 22평으로 공통되게 짓고, 난방은 화목 보일러를 사용하며 태양열 조리기를 설치하였다. 세탁기는 3가구당 1대이며, TV와 냉장고를 사용하지 않고, 주민은 마을 공동식당에서 다 같이 식사한다. 특히 매월 3일간 ‘전기 없는 날’을 지정하여 에너지 절약을 실천한다. 자연발효 원리를 적용한 생태주의적인 공동화장실을 사용하고, 빗물과 생활오수를 재활용한다. ‘나누고 비우자’는 경제철학에 입각하여, 공동농작을 통해서 기본적으로 식자재의 자급자족을 도모한다. 공동생산물은 공동분배를 하되 개별소득에서 각자 공동체에 기부하며, 식비 등 공동운영비에 충당한다. 도시에서 돈 때문에, 일 때문에 쫓기지 않으려고 귀농한 사람들이므로 비교적 느슨하게 서로 도와서 할 수 있을 정도로만 일하고자 한다. 그럼에도, 공동체 구성원들의 생활비를 마련하기 위해서 산야초 효소, 채소 수프, 흑삼 등을 생산하여 판매한다. 일반인들에게 마을생활을 개방하여 공동체 체험, 명상힐링 프로그램이나 강연 등에서 얻은 수익을 공동체 경비로 사용한다.

6. 제안을 마무리하며

고령화된 우리 사회에서 노년기의 고충에 대해서 매우 간략하게 짚어 보았다. OECD와 같은 국제기구의 조사에 의하면, 우리 노년층은 다른 나라의 노인들에 비해서 더 많이 일하면서도 더 빈곤하고, 삶의 만족도를 포함한 행복지수가 매우 낮은 처지에 놓여 있다. 그런가 하면 내부적으로는 ‘노년부양비’라는 산술적 통계에 의해서 두루 부담스러운 존재로 낙인찍히고 있다. 대한민국의 근현대를 발전시키고 가족을 부양하며 열심히 살아온 지금의 노년층에게 고령화의 재앙을 초래할 장본인으로 단죄하는 분위기가 억울할 수밖에 없다. 특히 지난 수년간 정치, 경제, 사회 등 전반적인 여건이 악화되는 바람에 기대감이 줄어든 청년층의 입장에서 노년층을 홀대하고 경계하는 세태가 자칫 세대 갈등으로 고착될 수 있으므로, 불교적 입장에서 도외시할 수 없다.

빈곤이나 건강문제를 포함하고 심리사회적으로 불안과 소외감을 느끼는 노년층을 위하여, 그나마 불교계가 가진 자원을 활용하면 추진이 가능할 것으로 보이는 ‘생활공동체 건설’을 제언하였다. 사회문제 개입에 비교적 소극적인 불교계이니만큼 승가로부터 합의를 얻고 계획을 실천하기까지의 절차가 원활하지 않을 수도 있다. 그렇더라도 필자로서는 제언하기를 망설일 이유가 없다. 비록 다른 배경을 가지고 다른 조건에서 태어난 생활공동체들이기는 하지만 국내외에서 성공적인 생활공동체의 사례들을 소개하였다. 우리도 시범적으로 착수해볼 가치가 충분하다고 보기 때문이다. 연전에 필자가 이미 어느 종단을 향해서 이러한 생활공동체에 관한 계획을 피력한 바 있었다. 하지만 ‘종단이 받아들이려면 10년쯤 걸릴 것 같다’는 촌평과 함께 무위로 끝나고 말았던 일도 있다.

예외 없이 인간은 태어나서 늙고 병들어 죽는다. 인간 현실에 고통은 늘 있는 것이라고 불교는 말한다. 그렇다고 해서 고통을 해소하는 노력을 할 필요가 없다거나, 노력할 수가 없다는 것은 아니다. 그렇다면, 양식이 있는 불자로서, 사회구성원으로서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까. 사회문제 개입에서는 정책당국이 해야 할 일이 있고, 민간 영역인 불교계가 할 수 있는 일과 해야 하는 일이 있을 것이다. 고령화 사회와 같은 현실문제에 적절한 사회 행동을 취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먼저 불교계 구성원들의 사회현상에 대한 이해가 어떠한지를 돌아볼 필요가 있다. 불교계 내부에서부터 지속적인 의식계몽과 교육의 과정이 필요하다. 극적인 소득 불평등과 주거 불안 등은 인권침해의 요소라는 사실을 불자 대중이 충분히 알게 되어야 한다.

주관이라고 하든 객관이라고 하든, 빈곤선은 고정된 것이 아니며 삶의 만족도 역시 고정되는 것이 아니다. 그래서 물질과 마음의 상호작용에 초점을 둔 불교적 개입이 지속적이고 효과적으로 필요하다. 우선은 현재 독거노인이나, 독실하게 종신 수행을 바라는 불자 노인들을 대상으로, 사찰 인근의 생태환경이 건강한 터에 주거지를 마련한다. 새 부지 혹은 기존 가옥(시내 빈집 임대/사찰 인근 상가 환수) 활용은 해당 사찰의 상황에 따라서 결정될 것이고, 대안공동체를 이용할 사람은 기본적으로 실비의 공동생활 투자금을 지참한다. 단, 빈곤노인에게는 별도의 대책이 필요하다.

오늘과 같은 자본주의 시대에 만성적인 빈곤과 소득 불평등 · 주거 불안정의 문제를 간헐적인 재정지원이나 국지적 주택정책만으로 해결할 수 없다는 것은 명백하다. 그런 가운데서 불교계의 역할이 얼마나 큰 기여를 하게 될지 속단하지는 않을 것이다. 그럼에도, 승가공동체의 공감과 합의 아래, 불교 신자나 지역주민들이 꾸준히 자생력을 키워가며 나름대로 안정된 노년 혹은 질적으로 혁신된 생애를 보낼 수 있도록 대안공동체의 개발이 성취되기를 기대하며 제안하는 바이다. ■

 

이혜숙 / 금강대 응용불교학과 객원교수. 동국대 불교대학원 불교학과 철학박사. 동국대 불교대학원 겸임교수, 한국사회복지사협회 국제교류위원 등 역임. 저서로 《종교사회복지(편저)》 《아시아의 종교분쟁과 평화운동(공저)》 역서로 《불교사회복지학》 등 다수. 본지 편집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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