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녹색장묘문화를 향한 불교복지의 실천체계
박희택 위덕대학교 사회복지학부 교수
[27호] 2006년 09월 10일 (일) 박희택 위덕대학교 사회복지학부 교수

Ⅰ. 불교의 인간이해

‘실천’은 ‘이해’를 전제로 한다. 바른 실천은 바른 이해가 전제가 될 때 가능하다. 이러한 관계를 불교의 『대지도론』(龍樹, Ngrjuna)은 ‘지목행족(知目行足)’이라 하였다.1) 녹색장묘문화를 향한 불교복지의 실천체계를 살펴봄에 있어서 불교에서 인간을 어떻게 이해하고 있는지 먼저 고찰해보는 것은 이러한 연유에서이다.

인간에 관한 불교의 이해는 몇 마디 언설로 나타내기 어렵다. 그만큼 불교의 인간관은 단순하지가 않다는 말이고, 또 불교의 사상체계가 호한(浩瀚)하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불교만큼 인간이해를 과학적으로2) 하는 사상체계도 달리 없다는 점을 감안하면, 우리는 오히려 다음과 같은 몇 가지 과학적인 불교 핵심어를 통해 인간이해를 명료하게 할 수 있을 것이다.

1) 삼업과 삼밀
: 인간은 신(身)·구(口)·의(意)의 존재이다. 인간은 무엇보다도 행동하고 말하고 생각하는 존재라는 뜻이다. 흔히 ‘신구의’라 하지만, 그 순차는 ‘의구신’이라 할 것이다. 생각하고 말하고 행동하는 존재가 인간이다. 인간 이외의 어떠한 존재도 이 세 작용[用]3)을 원만하게 수행하는 존재는 없다.

신구의 세 작용은 의식(도)적 생각과 말과 행동이라는 의미에서 삼업(三業)이라 한다. 신업은 살생·투도(偸盜)·사음, 구업은 망어·기어(綺語)·양설(兩舌)·악구, 의업은 탐(貪)·진(嗔)·치(癡)의 십악을 낳는다. 그런데 십악을 십선으로 전환하는 작용이라는 의미에서 밀교에 이르면 삼밀(三密)이라는 개념이 대두된다. 진실한 행동을 의미하는 신밀, 진실한 말을 의미하는 구밀, 진실한 생각을 의미하는 의밀이 삼밀이다. 삼밀에는 밀교의 긍정주의가 기저에 깔려 있으며, 밀교의 삼밀수행은 삼업과 십악을 정화 내지 전환하여 삼밀과 십선으로 나아가게 하는 실천론이라 하겠다.

삼밀에는 무상삼밀과 유상삼밀이 있는데, 전자는 ‘내가 비로자나불의 삼밀활동을 수행공간에서 실현하는 것’이라면, 후자는 ‘일상생활 가운데에서 비로자나불의 삼밀활동을 실천하는 것’을 말한다.4) 보살은 이상적 인간상이고 붓다는 완전한 인격자를 뜻하는데, 보살과 붓다는 무상삼밀과 유상삼밀의 통일에 의해 가능해지는 것이다.

2) 심식과 심인
: 삼업과 삼밀의 출발점이 되는 의업과 의밀에 관하여 좀더 고찰해 보자면 불교의 인식론을 말해야 한다. 불교에서 말하는 인간의 인식현상은 육근(六根)과 육경(六境)과 육식(六識)으로 설명할 수 있다.

육근은 인식의 소의(所依)로서 안근(眼根)·이근(耳根)·비근(鼻根)·설근(舌根)·신근(身根)·의근(意根)을 말한다. 육경은 육근의 대경(對境)으로서 색경(色境)·성경(聲境)·향경(香境)·미경(味境)·촉경(觸境)·법경(法境)5)을 지칭한다. 육식은 육경의 지각(知覺)으로서 안식(眼識)·이식(耳識)·비식(鼻識)·설식(舌識)·신식(身識)·의식(意識)을 뜻한다. 이를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 육근 : 소의 : 인식기관 : 안근 ·이근·비근·설근·신근·의근
○ 육경 : 대경 : 인식대상 : 색경·성경·향경·미경·촉경·법경
○ 육식 : 지각 : 인식작용 : 안식·이식·비식·설식·신식·의식

이 가운데 인식작용에 해당되는 육식은 칠식 내지 십식까지 개념발달이 이루어졌고,6) 심(心, citta) 또는 의(意, manas)와 구분된다. 이를 흔히 ‘심의식(心意識)’이라 하는데, 심은 마음의 주체를, 의와 식(識, vij뻨a)은 마음의 작용을 나타낸다.7) 영어의 ‘mind’는 심과 의와 식을 동시에 나타내기 마련이므로 주의가 요구된다.

심의식을 심식(心識)이라 표현하기도 하며, 체대로서의 육대(六大)8) 중 식대(識大)가 심식이다. 그러니까 마음의 주체와 작용을 다 합하여 심(의)식이라 부른다는 말이며, 마음의 주체와 작용이 합일되어 순정(純正)한 진여상태 - 붓다의 마음같은 참마음에 깃든 상태를 불심인(佛心印) 또는 심인(心印)이라 부른다. 말하자면 인간은 심식의 존재(Sein)이며, 심인을 당위(Sollen)로 한다.

3) 윤회와 전생
: 심인에 깃든 상태를 해탈(解脫, vimoka)이라 부를 수 있다. 해탈하지 못 하면 윤회(輪廻, sasra)를 거듭하면서 전생(轉生)하게 된다는 것이 불교의 관점이다. 따라서 해탈하면 윤회와 전생을 벗어나게 된다. 불교에서는 고(苦, dukha)의 순환 내지 전생이 끊어진 것을 열반(涅槃, nirva)이라 하는데, 이런 맥락에서 해탈과 열반은 같은 의미로 쓰이기도 한다.

윤회는 육도(六道)9) 를 전생하며, 업에 따라 사생(四生)10)의 형태로 나누어진다. 유의할 것은 자기동일적 ‘자아(自我)’가 있어서 그것이 계속적으로 겉의 옷만 갈아입으면서 육도를 ‘윤회’하는 것이 아니라는 점이다.11) 자신의 아뢰야식적 업장의 결과[‘無我’]에 따른다는 것이다. 여기서 자아와 무아와 윤회는 서로 모순되지 않는다.12)

티벳불교에서는 일반적인 전생을 욕생(欲生)으로, 원력에 의한 전생을 원생(願生)으로 차원을 달리하여 본다. 원생이라 함은 해탈적 선업의 윤회와 전생이라 볼 수 있다. 해탈하여 윤회를 벗어 났으되, 불보살 경지의 선업적 원력에 의해 전생하는 것을 말한다.

Ⅱ. 불교복지의 눈으로 본 삶과 죽음

인간의 삶과 죽음을 불교복지의 눈으로 바라보기로 한다. 제Ⅰ장의 인간에 관한 불교의 이해를 기초로 하여 복지적 관점을 부가해보면 될 것이다. 인간은 삼업과 삼밀, 심식과 심인, 윤회와 전생의 존재로서 자기주체적 내지 자유의지적 당사자이다.13) 신이라든지 절대타자에 의해 규정되거나 조정되는 것이 아니라, 자기자신의 선택에 따라 자기 삶과 죽음의 주인공이 된다는 관점이다.

그렇다 하더라도 광대한 우주에 홀로 선 외로운 인간에게 삶과 죽음을 자기자신이 선택한다는 문제는 단순한 사안이 아닌 일대사 인연이며, 그러기에 복지적 안목이 뒤따르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1) 사유와 자기책임의 원칙
: 불교는 인간의 삶과 죽음의 단계를 사유(四有)로 설명한다.14) 생유(生有) → 본유(本有) → 사유(死有) → 중유(中有)가 그것이다. 중유는 업에 따라 다른 생유 단계로 윤회 전생한다. 생유는 삶을 받는 탁태(託胎)와 결생(結生)의 단계이며, 본유는 삶을 받은 뒤 죽을 때까지의 단계이고, 사유는 임종의 단계이며, 중유는 죽음 뒤 다음 삶을 받을 때까지의 단계이다. 이 중 중유는 49일 간이며,15) 불교의 49제는 업을 소멸하고 보다 해탈된 다른 생유의 삶을 받기를 기원하는 자손의 불공이다.

이러한 단계를 볼 때 삶과 죽음을 자기자신이 선택한다는 불교의 시각은 당사자의 삼업과 삼밀, 심식과 심인에 기초한 윤회와 전생의 삶과 죽음이다는 점에서 설득력을 얻는다. ‘자기책임의 원칙(the principle of individual responsibility)’이 불교의 관점인 것이다.16) 삶도 내가 원한 것이 아니고, 죽음도 내가 원하는 바가 아니라는 일반의 논리는 자기책임의 원칙에 벗어나 있는 하나의 희론일 뿐이다.

2) 추선(복)불공과 자손복락
: 그런데 자기책임의 원칙에 내포된 불교복지적 시각이 있는데, 다름 아닌 자손의 49제이다. 이것이 당사자의 생시의 업을 넘어설 수는 없으나, 살아남은 자들의 불공공덕으로 조상이 ‘조상불(祖上佛)’이 될 수 있는 유일한 메카니즘이라 할 것이다. 자손을 위해 악업을 지은 조상을 위해 추선(追善, 선으로 나아가게 함) 내지 추복(追福, 복으로 나아가게 함)의 불공으로서 49제를 봉행하면 조상이 이고득락(離苦得樂)하게 된다는 것이다. 뿐만 아니라 조상이 이고득락 되어 불국정토 내지 밀엄정토에 태어나게 되면 그 자손이 복락을 얻게 된다는 내용까지 함유되어 있다.

이를 복전사상에서는 삼복전을 짓는 것으로 표현하고 있다. 보은전(은전)·공덕전(경전)·빈궁전(비전)을 삼복전이라 하는데, 부모와 사장(師長)과 화상(和上)을 위해 불공하면 보은전을, 삼보를 위해 불공하면 공덕전을, 빈공곤고인(貧窮困苦人)을 위해 불공하면 빈궁전을 받는다는 가르침을 펴고 있다.17) 그런데 회당 대종사는 부모를 위해서 추선(복)불공하면 보은전 뿐만이 아니라 공덕전과 빈궁전까지 받는다는 교설을 보이고 있는데,18) 이것은 부모은혜19)를 갚는 불공은 삼복전에 공(共)히 해당된다는 확대해석이라 할 것이다. 삼복전의 가르침을 간추리면 다음과 같다.

○ 보은전(報恩田) : 은전(恩田) : 부모, 사장, 화상 등
○ 공덕전(功德田) : 경전(敬田) : 삼보, 부모(회당) 등
○ 빈궁전(貧窮田) : 비전(悲田) : 빈궁곤고인, 부모(회당) 등


Ⅲ. 불교장의복지의 구성체계

인간의 사유는 생·로·병·사의 사고(四苦)와 직결된다. 사고가 삶과 죽음의 구성요소이자 과정이다. 붓다께서 ‘생’도 고라 한 것은 삶의 한 단계인 태어남[生]이 곧 늙고 병들고 죽는 무상함으로 직결되기 때문이다. 불교의 고의 개념은 아픈 고통만이 아니라, 무상(無常)한 것은 모두 고라 한다.20)

우리는 흔히 삶과 죽음이라 하여 삶과 죽음을 구분하나, 불교의 사유나 사고와 같은 개념 속에는 죽음도 삶의 한 과정임을 알 수 있다. 그러기에 불교의 수행자들은 죽음을 삶의 한 과정으로 선택하며,21) 이 경우 의식을 선명하게 가진 채로 죽음을 스스로 받아들인다. 불교의 수행자는 아니었지만, 마치 니어링(S. Nearing)이 백 번째 생일을 앞두고 그랬듯이.22)

장의복지(葬儀福祉)는 생을 제외한 삼고(노·병·사)와 관련한 제반복지를 말하는데, 불교장의복지는 불교의 인간이해를 바탕으로 한 불교적 장의복지를 일컫는다. 여기에는 불교복지의 눈으로 본 삼고관이 일관되고 있음을 물론이다. 불교장의복지는 비하라(vihra)와 불교장묘문화 등으로 구성된다고 할 수 있다.

1) 비하라
: 비하라는 산스크리트어로 안식처를 말하는 것으로서, 서양의 호스피스(hospice) 개념에 준하는 것이다. 죽음에 직면한 환자와 그를 돌보는 가족의 정신적 불안을 해소하고 심리적 안정을 가져다주는 터미널 캐어(terminal care)인데, 불교의 지혜로 욕구(needs)를 파악하고 자비로 욕구를 충족시키는 총체적 서비스활동이 비하라이다. 환자 간호는 물론이고 불교경전 공부와 생활서비스를 행하며, 환자를 사별하는 가족의 고통과 슬픔까지 경감시키는 점에서 토털 캐어(total care)이다.23)

불교계의 대표적인 비하라 활동은 능행 스님의 정토마을(충북 청원 소재)에서 이루어지고 있다. 스님의 비하라 활동기라 할 최근 저서를 보면 구체적 사례가 잘 나타나 있다. 그러면서 발문격으로 실은 마지막 글에서 스님은 비하라(호스피스)는 대승불교적 수행의 꽃이며 열매라고 성격규정을 하면서, 『입보리행론』(寂天, Shantideva)의 다음 구절을 인용하여 그 원(願)을 밝히고 있다.24)

이 세상의 중생에게 병이 있는 한
병에서 완전히 나을 때까지
저는 약과 의사와
그들의 간병자로 남기를 바라옵니다.25)

절망하고 가난한 중생에게
제가 다함없는 재물이 되고
그들에게 필요한 여러 가지 도구가 되어
그들 곁에 항상 머물게 하소서.26)

허공 끝에 이를 때까지
갖가지 모든 중생계에도
그들 모두가 고통에서 벗어날 때까지
제가 그들 삶의 근원이 되게 하소서.27)

중생의 병을 완전히 없애주는
약 또한 이것이며
윤회의 길에서 헤매다 지친
중생의 피로를 풀어주는 푸른 나무입니다.28)

능행 스님이 『입보리행론』 가운데서도 비하라의 철학적 기초로 선택한 말씀으로 의미를 띠는 구절들이라 할 것이다.

2) 불교장묘문화
: 불교장묘문화는 불교장례의식과 불교묘지제도를 결합한 개념이다. 먼저 불교장례의식으로는 세 가지 정도가 있다. ① 죽는 순간에 삶의 애착을 끊도록 염불해 주는 시다림(尸茶林) ② 불교식 영결식(永訣式) ③ 죽은 후에 자손에 의해 봉행되는 49제 등이 그것이다. 모두 영식(혼)을 천도(薦度)하는 사자의례(死者儀禮)라 할 것이다.29)

불교묘지제도에는 네 가지 정도가 상정될 수 있다.30)

① 산골(풍장 및 수목장) ② 납골 ③ 매장 ④ 조장(鳥葬) 등이다. 이 중 ④는 티벳불교의 전통이라서 한국사회에서는 보기 어렵다. ③은 오늘날의 불교인과 시민이 선호하지 않는 제도이다. ①과 ②는 화장[茶毘]하여 선택할 수 있는 대상이다.31)

②가 가진 문제점이 여러 가지로 확인되고 있으며, 앞으로 ①이 확대될 것으로 예단된다. 이런 선호도와 신경향은 앞에서 거론한 불교와 불교복지의 관점과 시민단체와 정부의 장묘제도 개선운동이 상승작용을 일으켰다고 할 수 있다. 이에 대해서는 제Ⅳ장에서 계속 살펴보기로 하며, 불교장의복지의 구성체계를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 불교장의복지의 구성체계
·비하라
·불교장묘문화
- 불교장례의식 : 시다림, 불교식 영결식, 49제 등
- 불교묘지제도 : 산골, 납골, 매장, 조장 등

Ⅳ. 녹색장묘문화를 향한 불교복지의 실천체계

오늘날 한국사회도 주로 생태주의적 환경담론과32) 결부지어 녹색장묘문화가 검토되고 있다. 생태주의적 녹색장묘문화는 인간의 탐욕을 줄이는 문명전환 운동을 통해서 성취될 수 있다고 볼 때, 불교의 인간이해 내지 불교장묘문화의 특징과 적극적 친근성(positive affinity)을 띤다고 할 수 있다. 이 점에서 녹색장묘문화를 향해 불교복지가 기여할 바가 크다고 하겠으며, 이를 실천체계로 정리해 보기로 한다.
녹색장묘문화를 향한 불교복지의 실천체계는 세 차원에서 확립될 필요가 있다. 첫째는 이해체계이며, 둘째는 운동체계이며, 셋째는 제도체계이다. 이 하위 세 체계의 주 실천주체는 불교인과 시민으로 한다.

1) 이해체계 : 녹색장묘문화 정착을 위한 불교인과 시민의 인식체계
○ 인간은 자기책임의 원칙에 따라 살아가며, 자기 자신의 업에 의해 사후를 스스로 결정한다.
○ 인간은 긍정적 삼밀(몸과 입과 뜻)활동으로 십선을 행하는 삶을 살아갈 수 있으며, 심식(마음)의 바른 운용으로 심인(참마음)에 깃들게 된다.
○ 자손은 자손을 위해 악업을 지은 조상을 위해 추선(복)하여야 하며, 이를 통해 조상추선(복)은 물론 자손복락까지 얻음을 기억한다.
○ 비하라(호스피스) 활동은 총체적 서비스활동이므로 전문적 참여를 모색해야 하며, 장묘문화는 불교와 불교복지의 관점에 따라 생태주의에 상응한 방향으로 개선되어야 한다.33)

2) 운동체계 : 녹색장묘문화 정착을 위한 불교인과 시민의 정치체계
○ 녹색장묘문화 정착을 위한 시민사회의 거버넌스(시민정치) 활동이 요청되며, 이것은 정치적 합의(political consensus)로 이행되어야 한다.
○ 매장과 납골을 지양하고, 산골(풍장 및 수목장)을 장려하는 시민운동을 전개하여야 한다.34)

○ 산골 장려운동은 지자체의 산골공원(유택동산 및 수목장림) 조성에 초점을 맞추며, 지역사회의 리더십의 정치적 승인을 얻어내도록 조직화한다.

3) 제도체계 : 녹색장묘문화 정착을 위한 불교인과 시민의 청원체계
○ 산골공원(유택동산 및 수목장림) 조성의 법적 근거가 정부 차원에서 마련되고 있으므로,35) 지자체와 지자체 의회에 예산확보와 조례통과를 주문한다.
○ 장사등에관한법률과 동 시행령 및 동 시행규칙 등을 녹색장묘문화 정착에 부합하게 전향적으로 개정하되, 산골의 최소한 기준도 포함시켜 청원한다.

박희택
위덕대학교 사회복지학부 교수.2003년 서울대학교 대학원 정치학박사 학위 취득. 주제는 「신라의 불교수용과 정치발전의 연구」. 학교법인 회당학원 법인사무처장, 위덕대학교 기획팀장, 위덕대 및 서울대 강사 등을 지냈으며, 현재 경주시 사회복지협의회 감사, 참여불교 재가연대 불교아카데미 학술위원, 조계종 종교평화위원회 전문위원 등을 맡고 있다. 저서로는 『우리 불교 나의 열정』『삶으로서의 민족통일』『회당사상의 내포와 외연』『불교사회복지 연구』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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