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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두언] 2016년, 우리는 행복했는가 / 이도흠
[68호] 2016년 12월 01일 (목) 이도흠 본지 편집위원장

   

이도흠
본지 편집위원장

어느덧 한 해의 끝에 다다랐다. 나라 전체가 혼란스럽다. 유전자가 침팬지와 98.8%나 일치하는 인간이 짐승과 다른 특성은 여러 가지이겠지만, 그중에서도 백미는 성찰이다. 내 안의 짐승들의 유전자가 작동하여 본능적으로 탐욕을 추구하다가도 멈추어 서서 돌아보게 하는 것, 바로 그것이 성찰이다.

성찰로부터 우리는 자아와 직접 대면하고 그 앞의 세계와 그 의미와 부조리에 대해 인식하며, 세계와 나와의 관계와 그로부터 빚어진 사건들을 되돌아본다. 잘못과 삿됨을 반성하고 더 나은 미래를 연다. 그것이 나의 거듭남과 인류의 발전을 불러온 동인이다. 한 해의 종점에 서서 돌아볼 때 가장 먼저 떠오르는 질문은 “2016년 우리는 행복했는가?”이다. 

모든 생명이 이고득락(離苦得樂)을 추구한다. 인간 또한 슬픔과 고통을 멀리하고 즐겁고 행복하기를 바란다. 그럼 과연 무엇이 행복일까. 고운 옷을 입고 맛난 것을 먹으며 좋은 집에서 살면서 가족과 함께 부귀영화를 누리면 행복한가. 아니면, 높은 자리에 오르고, 명예를 드높이고 돈을 잘 벌면 행복한가. 그럴 수도 있다. 하지만, 인간은 세계 앞에 선 고독한 존재(being)이자 상호생성자(inter-becoming)다. 아주 미세하여 우리가 감지하지 못하지만 찰나의 순간에도 내 호흡에 영향을 받아 내 앞의 대기의 미생물이 달라지고 그리 변한 대기가 상대방의 몸으로 들어가 그 몸을 변하게 한다. 모든 인간 존재는 서로 의지하고 영향을 미치고 상호작용하며 원인인 동시에 결과가 된다.

 씨와 열매가 그 자체로는 공(空)하지만, 씨가 자신을 소멸시켜서 싹과 잎을 내고 꽃을 피워 열매를 만들고 열매가 자신을 썩혀서 씨를 내듯, 나와 타자는 불일불이(不一不二)의 관계 속에서 형성된다. 네가 있음으로 말미암아 내가 있기에, 자아란 관계 속에서 생성되는 허상이다. 하지만 내가 그의 지혜를 수용할 때, 그의 고통을 자신의 것처럼 아파할 때, 그의 말과 행동을 닮고자 할 때 내가 만들어지며, 나 또한 타인에게 그리 작용한다. 그러니, 바로 옆에서 아이가 굶주려 울고 있는데 아름다운 음악을 들으며 사랑하는 연인과 함께 앉아 와인 잔을 부딪치면서 얼마나 행복할 수 있는가.

21세기는 ‘빈틈’이 사라진 시대다. 강은 흐르면서 이온 작용, 미생물의 분해, 식물의 흡수 등으로 스스로 정화한다. 하루에 100톤을 정화할 수 있는 강에 99.9톤의 폐수를 버린다 하더라도 0.1톤의 빈틈이 있다면 강은 1급수를 유지한다. 이처럼 무위자연(無爲自然)이란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이 아니라 ‘빈틈[虛]’을 만드는 것이다. 이 빈틈이 있는 한 자연은 스스로 정화하고 순환하며 그리 모든 생명과 상호작용하며 그렇게 존재하는 것이다. 하지만, 이제 자연이든 사회든 이 빈틈마저 파괴되면서, 2016년 지금 지구상에 존재하는 모든 생명은 위기에 있다. 더구나, 욕망은 신기루다. 살을 섞고 나서야 충족되지 않는 불만과 함께 그 여인이 오매불망 그리던 그 대상이 아님을 아는 스토커처럼, 모두가 욕망을 추구하지만 대상에 이르고서야 그것이 한갓 허깨비에 지나지 않음을 깨닫는다.

국가든 기업이든 개인이든 ‘빈틈’마저 파괴하고 별다른 견제 없이 욕망을 마구 발산하면서 인류도, 한국사회도 지옥으로 변하였다. 특히, 인간이 본질적이고 이기적이고 경쟁적이라면서 자본주의의 야만을 견제하던 거의 모든 장치를 ‘규제’란 이름으로 풀어버린 신자유주의 체제 이후 인류사회는 심각한 불평등 속에서 테러와 폭력이 난무하고 민주주의마저 껍데기만 남게 되었다.

한국사회는 더 극단적이다. 가계부채는 1,300조 원에 육박하는데, 같은 일을 하고도 절반의 임금밖에 받지 못하는 비정규직 노동자가 1,000만 명에 달한다. 720만 명의 자영업자 가운데 절반이 100만 원도 벌지 못한 채 빚만 키우고 있고 매년 80만 명, 5년 안에 70%가 폐업하고 있으며, 이도 여의치 않아 다단계 판매로 나선 572만 명 가운데 78%가 단 돈 1원도 벌지 못했다. 상위 10%가 전체 종합소득의 55.5%를 가져갔으며, 실업자는 300만 명에 육박하고 청년의 절반이 백수다. 기업은 경영악화를 이유로 노동자를 해고하고 이에 항의하면 공권력이 동원된다. 세월호 참사, 백남기 농민 사망, 역사교과서 국정화, 위안부 할머니 밀실야합, 사드 배치 강행, 노동개악, 개성공단 폐쇄, 언론과 인터넷 통제 등 ‘비정상적인 국정농단’이 꼬리를 물고 이어지는 데도 성찰과 개선은커녕 진상규명조차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 이에 그동안 행복하지 못했던 시민들이 분노의 촛불을 들고 거리로 나서고 있다.

이 상황에서 진정으로 행복한 길이 무엇일까. 먼저 연기(緣起)를 철저히 깨우치는 것이다. 우주와 자연과 온 생명과 타인들이 나와 연기되고 있음을 깨닫는다면 그들과 공존을 모색하는 것이 나를 위한 길임은 당연한 귀결이다. 지극한 수행정진을 하여 열반에 이르렀어도 이를 미루고 고통 속에 있는 중생을 구제하여 그를 부처로 만들 때 내가 진정으로 부처가 되듯, 타인의 행복이 나의 행복이다. 그가 미소 지을 때 내 얼굴에서도 긴장이 풀리고 웃음으로 화답한다. 그를 자유롭고 행복하게 할 때 비로소 나는 진정으로 자유롭고 행복해진다.

이제 개인은 타자, 곧 나를 위하여 내 욕망을 절제하는 데서 행복을 추구하는 소욕지족(少欲知足)의 삶으로 전환해야 한다. 이 나라 또한 이제 양적 발전보다 삶의 질, GDP보다 국민의 행복지수, 경쟁보다 협력, 개발보다 공존, 한 사람의 열 걸음보다 열 사람의 한 걸음을 지향해야 한다. 무역량보다 이 땅의 강과 숲에 얼마나 다양한 생명이 살고 있는지, GDP보다 거리를 지나는 시민들이 얼마나 미소를 짓고 있는지, 국부를 늘리기보다 얼마나 가난한 이들에게 공평하게 분배되고 있는지, 기업 이윤을 늘리기보다 얼마나 노동자들이 자기실현으로서 노동을 하는지, 뛰어난 인재를 길러내기보다 못난 놈들이 얼마나 자신의 숨은 능력을 드러내는지에 초점을 맞추어 국가를 경영하고 정책을 구사해야 한다. 한마디로 생명과 평화, 평등을 추구하는 정의로운 생태복지국가, 대의민주제에 참여민주제와 숙의민주제를 결합한 민주공화국으로 전환해야 한다. 그런 나와 나라로 거듭날 때 모두가 행복할 수 있을 것이다.

지금 이 땅에서 가장 불행한 사람들 가운데 한 부류가 노인들이다. 한국도 65세 이상 인구 비율이 13%를 넘을 정도로 고령화 사회에 접어들었다. 현재의 상황에서 동네 어귀를 지키는 느티나무처럼 늙기는 어렵다. 가을걷이를 모두 끝낸 농부처럼 여유로울 수도 없다. 학자금 대출을 받은 이가 이를 전부 갚을 때까지 빚의 굴레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데서 잘 드러나듯, 노인들이 자식과 자신 때문에 미래를 당겨서 소비하도록 만들었기 때문이다. 품위가 있고 여유로운 노년을 맞을 수 있도록 이 나라와 사회의 시스템이 보장하여 주지 않았기 때문이다.

엘렌 랭어(Ellen Langer)는 시계 거꾸로 돌리기 연구(counter clo-ckwise study)를 수행하였다. 70, 80대의 노인들을 타임머신을 탄 듯 20년 전의 맥락으로 꾸민 곳에서 생활하게 하였더니, 단지 7일 만에 그들의 건강과 활력이 획기적으로 증대되었다. 이어지는 마음챙김(mindfulness) 실험을 통하여 랭어는 나이는 숫자에 불과하며 마음먹기에 따라 노화를 젊음으로, 질병을 건강으로 바꾼 결과를 도출하였다. 하지만, 아픈 것이 청춘이라는 식의 담론은 사회적 문제를 개인의 문제로 환원하기에 모순을 은폐하고 그것을 해결할 길을 봉쇄한다. 고령화 사회의 문제도 마음과 물질, 개인과 사회를 종합하여 분석하고 대안을 모색해야 해결의 실마리를 찾을 것이다. 이번 호에 그런 글들을 실었다.

“성찰하지 않는 과거는 미래가 된다.”라는 말이 너무도 강렬하게 뼈에 사무치도록 새겨지는 시국이다. 각자 자신의 자리에서 성찰하면서 파사현정(破邪顯正)을 하고, “미래의 앞당긴 실천이 없는 현재는 과거로 퇴행이다.”라는 자세로 우리 국민 모두가 다같이 행복한 길을 꿈꾸고 이를 구현할 길을 찾아보자.

2016년 12월

이도흠(본지 편집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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