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사회에서 불교사상의 역할은 무엇인가

1.

서평(書評)의 사전적 의미는 ‘책의 내용에 대한 평’이다. 하지만 이 서평은 구체적이고 세세한 책의 내용보다는 《불교사회사상의 이해 : 한국의 상황을 중심으로》라는 ‘책’ 자체에 집중하고자 한다. 이 책의 저자 ‘이병욱’이 밝히고 있듯이, 저자의 전공은 ‘고전 불교사상’이다. 그가 고백했듯이 현대 불교사회사상은 ‘창문 너머에 있는 다른 영역’이었다. 게다가 그가 감당할 능력이 없을 거라 지레짐작한 영역이었다. 하지만 현대 불교사회사상은 ‘언제가는 발을 들여놓고 싶은 영역’이었다. 이러한 열망에도 불구하고 저자는 관련 주제의 논문을 청탁받기 전에는 섣불리 마음을 내지 못했다. 이러한 머뭇거림은 겸양이 아닌 자신의 주(主) 전공이 아닌 타 전공에 발을 들여놓기가 쉽지 않다는 학계의 오래된 관행에 기인할 것이다.

학문의 세계가 전문화 · 세분화되어 각각의 전공을 구분하는 칸막이를 넘어서는 일은 흔치 않은 일이 되어버렸다. 어쩌다 칸막이를 넘어서는 일은 의도적인 무시(혹은 배제)의 대상, 혹은 비난의 대상이 되기도 한다. 그러나 최근에는 이러한 학계의 폐쇄성이 문제로 지적되고 있다. 학계에서 통섭과 통합, 융합이 유행하는 저간의 이유이기도 하다. 우리를 암담하게 하는 것은 그러한 융합과 통섭도 자신들만의 칸막이를 만들고 있는 듯하며, 더욱 안타까운 일은 종교를 다루는 학문에서도 마찬가지라는 사실이다.

이러한 관행을 고려할 때, 비록 ‘우연한 기회에 관련 주제의 논문 청탁을 받아서 연구를 시작하였다’고 하지만 어느덧 한 편의 책으로 출간할 정도로 연구를 지속하고 있다는 사실은 학문에 대한 저자의 진정성을 보여준다. 여하튼 저자는 2008년부터 2014년까지 6년에 걸쳐 연구한 불교사회사상 관련 논문 9편을 모아 이 책을 발간하였다.

2.

논문 모음집이란 점에서 이 책은 다소의 한계를 안고 있다. 대체로 논문 모음집은 기(旣) 발표된 학술논문들을 특정한 목적을 가지고 모아서 편집한 책이다. 일종의 단편소설집이라 할 수 있다. 특정한 하나의 주제를 장기간 고민하고, 그 결과를 글로 옮긴 장편소설과는 차이가 있다. 때문에 논문 모음집은 개별 논문의 질과 상관없이, 주제가 일관되지 않고 개별 논문의 체계와 용어 등이 일치되지 않아서 책을 읽는 데 어려움이 앞서는 경우도 있다. 집단연구나 프로젝트 성과물의 경우가 더욱 그렇지만, 저자가 한 명인 경우에도 그렇다. 저자가 한 명인 경우에는 가끔 주장이 서로 상충되는 경우도 있다.

하지만 이 책은 논문 모음집임에도 책의 주제와 개별 논문의 체계, 관점 등이 일관성을 유지하고 있다. 이러한 일관성은 저자가 가지고 있었던 ‘창문 너머의 영역’에 대한 조심스럽고도 진중한 접근 태도에 기인한다고 생각한다. 저자는 머리말에서 논문 작업을 ‘금단의 땅이 조금씩 열리는 희열’ ‘사는 보람’이라고 표현하였다. 오늘날 한국사회에서 ‘직업으로서 학문’을 영위하는 사람들 중에서 자신의 연구 작업에서 ‘금단의 영역을 맛보는 희열’과 ‘사는 보람’을 느끼는 사람이 얼마나 될지 의문이다. 학문을 대하는 진중한 태도와 이를 통해 얻는 희열과 보람, 서평자가 이 책의 내용보다 책 자체에 주목하는 이유이다.  

이 책을 읽으면서 기억에 남고 이야기하고 싶었던 또 다른 한 가지는 글쓰기 태도이다. 이 책이 학문의 영역에 기여한다고 생각한 부분이기도 하다. 앞서 이야기한 ‘일관성’도 매우 중요했지만, 어찌 보면 핵심은 아니다. 의도했는지 모르겠지만, 저자는 학술논문에서는 다소 벗어난 형식의 글쓰기를 통해 이 책의 주제인 불교사회사상의 실현체를 보여주고 있다.

저자가 언급했듯이, 불교에서는 ‘바라보는 주관’과 ‘보이는 객체’는 서로 어우러져야 한다고 이해한다. 곧 인식하는 주체와 인식대상인 현상세계를 일체(一體)의 개념으로 포괄하고 있다. 때문에 ‘주관과 객체의 일치를 체험하고, 이를 통해 시공간의 한계를 뛰어넘을 수 있다’고 주장한다. 이러한 상태가 곧 일즉일체(一卽一切), 중도(中道), 공(空), 무아(無我), 무상(無想)이며, 연기적 세계라고 이야기한다. 물론 이러한 세계관은 불교만의 것은 아니다. 서구의 근대철학이 가진 억압과 차별, 폭력성을 극복하고자 등장한 포스트 모더니즘(postmodernism)과 이와 연관된 해석학과 현상학 등에서도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주관과 객체의 분리보다는 지평과 맥락이란 개념을 통해 이분법적 사고를 극복하려 한다. 이는 주체와 객체의 이분법적 분리를 통해 ‘객관(客觀)’이 가능하다는 신념에 대한 거부하기도 하다. 나아가 ‘객관적’이라는 용어를 통해 주체를 은폐하는 것에 대한 저항이기도 하다.

오늘날의 많은 철학가와 사회과학자들이 그 영향의 근원이, 불교이든 서양의 포스트 모더니즘이든, ‘객관’이란 허울 속에서 자신을 숨기는 행위를 비판한다. 오히려 자신과 자신이 속한 장(場, field)을 적극적으로 드러내야 한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학문적 글쓰기에서 이러한 주장과 인식이 여전히 일반적이지 않다. 일부 사회과학 학술지에서 ‘나’를 전면에 내세우는 논문을 본 기억이 있지만, 이는 일반적이지는 않은 사례이다. 여전히 ‘객관성’ 유지가 최고의 가치이며, 논문의 기본이다. 단지, 일부 예외적인 분과학문, 예외적인 방법론, 예외적인 논문이 있을 뿐이다. ‘불교학’에서도 마찬가지이다. 주관과 객관이란 이분법을 거부하고 연기적 세계를 주장하지만, 여전히 글쓰기는 근대적이다. 자신을 드러내는 것은 객관을 해치는 것으로 ‘수정’의 대상이다. 하지만 이 책의 저자는 자신을 드러내는 것에 거리낌이 없다. 자신의 철학 교양수업 내용, 대학 캠퍼스를 거니는 자신의 이야기, 불교교리에 대한 자신의 이해와 의구심 등등을 가감 없이 펼치고 있다. 주관과 객관의 이분법을 뛰어넘는 진정한 불교적 글쓰기를 실현하고 있다.


3.

이상으로 서평을 마무리하기에는 다소 아쉬움이 있어, 불교사상에 대한 저자의 설명과 책의 구성을 간략하게 소개하고자 한다. 저자는 불교사상을 ‘독자성’과 ‘적응성’ ‘보편성’과 ‘특수성’으로 설명하고 있다. 독자성과 보편성은 시대와 장소를 초월해서 불교인에게 지침이 되는 것, 적응성과 특수성은 특정한 시대와 장소에 적응되는 것이다. 자유와 평등이란 두 가치를 기둥으로 하는 불교라는 (보편적) 나무가 ‘현대 한국’에서 뿌리를 내리고 성장하기 위해서는 현대 한국사회에서 적응이 제대로 이루어져야 한다는 것이다. 삼국시대 이래 한반도에서 성장 · 발전한 불교사상, 즉 원효 · 의상 · 의천 · 만해 · 경봉 · 경허 · 성철 · 운허 · 서옹 · 서암 등등이 그들이 살았던 시대와 장소에서 불교를 적응시킨 것이라면, 우리는 지금 여기 현대한국에 적응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러한 관점에서 이 책은 총론 격으로 불교사회사상의 이론적 토대와 한국에서의 변천과정을 다룬 1부(불교사회사상, 한국의 불교사회참여사상)에 이어서, 2부에서부터 4부까지는 평화관과 폭력관, 자연관, 자본주의 문화 비판, 불교를 통한 통일의 모색(통일론으로서 화쟁의 가능성) 등을 정리하고 있다. 개별 논문들은 세부 주제에 관한 서양이론을 먼저 제시하고, 이에 대한 비판과 함께 관련 불교사상을 논하고 있다. 그 후 한국사회에 대한 저자의 문제의식에 입각하여 그 의미와 기여할 지점을 정리하고 있다.

저자는 우리가 적응해야 하는 한국사회를 경제적으로는 천민자본주의, 문화적으로는 폭력적인 단선적 문화라고 평가하고 있다. 이로 인해 한국은 경제적 가치만이 추구되고, 이를 위해 비합리적인 폭력이 허용되는 사회이다. 한국인들이 추구할 수 있는 가치를 다원화하고, 폭력적 문화를 형성하고 있는 종속적 사대문화, 전쟁 의존적인 반공이데올로기, 위계적 연고주의, 강권적 군사문화, 경쟁적 차별문화, 폭력의 문화를 극복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그리고 이러한 ‘전환’에 자유와 평등, 자비와 비폭력을 강조하는 불교가 기여할 수 있다고 기대하고 있다.    

4.

마지막으로 조금은 아쉬운 부분에 대해 이야기하려 한다. 첫 번째로 이 책은 제목에서처럼 ‘이해’의 수준을 넘어서지 못하고 있다. 즉 개론서 혹은 입문서로서 역할을 담당하고 있지만, 심화된 전문성을 담아내지 못하고 있다. 이제 막 관련 연구를 시작했음을 고려하면 시간이 지나면 자연스럽게 해소될 것이라 생각한다.
두 번째는 한국사회에 뿌리내리는 불교사회사상을 추구하지만 실제 논의 전개에서는 서구사상에 의존하고 있는 안타까움이 있다.

물론 저자는 ‘서양의 이론이 한반도에서 중심적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는 현실적 이유를 제시하고 있다. ‘서양에서 제기한 이론의 관점에서 불교사상을 바라보는’ 작업을 통해 ‘동양과 서양의 의미 있는 창조적 융합’이라는 의미도 부여하고 있다. 하지만 이는 현대=서구=선진(先進)이라는 단순 도식의 반복에 지나지 않는다고 여겨진다. ‘현대 한국’에 뿌리를 내리기 위해서 우선은 ‘한국’이란 시공간의 맥락에서 관련된 주제(평화, 폭력, 자연 등등)가 검토되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

 

이명호 / 한양대 · 중앙승가대학교 강사. 한양대학교 사회학박사(종교사회학 · 역사사회학). 한국사회를 포함한 제3세계의 ‘근대적 전환’에 관심을 가지고 있으며, 이를 ‘종교’와 ‘공동체’ ‘관계’를 키워드로 설명하고자 함. 주요 논문으로는 〈근대 이전 한국사회의 종교와 신앙: 종교 개념의 이념형적 재구성을 통하여〉 〈공동체 모델로서 승가공동체의 적용 가능성에 대한 탐색적 고찰〉 등이 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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