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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이쿠(俳句)의 시심과 선불교 / 김인숙
[67호] 2016년 09월 01일 (목) 김인숙 haiku@naver.com

1. 하이쿠(俳句)의 의미

하이쿠는 세계에서 가장 짧은 정형시라고 일컬어지는 일본 시문학의 한 형태로, 5-7-5의 17글자라는 기본적인 틀을 가지고 있다. 예로부터 일본에는 귀족이나 왕족, 승려 등 인문학적 지식과 능력이 있는 사람들이 즐겼던 와카(和歌)라는 형식의 시가가 있었는데 거기서 파생된 렌카(連歌)라는 노래의 앞부분이 떨어져 나와 하나의 독립된 장르가 된 것이 바로 하이쿠다. 문장으로 치면 겨우 한 문장에 불과한 시문이지만 정형시라는 형태를 가지고 있기 때문에 지켜야 하는 몇 가지 규칙이 있다.

閑さや岩にしみ入る蟬の聲
(しずかさや いわにしみいる せみのこえ)
한적함이여 바위에 스며드는 매미의 소리

위의 시구는 일본의 대표적인 하이쿠 시인인 마쓰오 바쇼(松尾芭蕉)의 작품으로 하이쿠가 지녀야 할 전형성을 가장 잘 보여주는 작품 중의 하나다. 정형시로서의 하이쿠가 가지는 첫째 조건은 글자 수가 17자여야 한다는 것이다. 언뜻 보기에 위 작품은 한자를 포함해서 12자에 불과하기 때문에 17자 규칙을 어긋난 것처럼 보이나 한자를 음독뿐만이 아니라 훈독으로도 읽는 일본어의 특성상 위의 시구를 소리 나는 대로 일본어 가나로 표기해 보면 5-7-5로 떨어지는 17자 구성을 가지고 있다.

しずかさや いわにしみいる せみのこえ

또 다른 규칙은 문장 안에 반드시 계절어(季節語)를 등장시켜야 한다는 것이다. 계절어란 봄, 여름, 가을, 겨울과 같이 계절 자체를 직접적으로 가리키는 말뿐만이 아니라 계절을 연상시킬 수 있는 명사나 형용사까지 모두 포함하는 개념이다.

“한적함이여 바위에 스며드는 매미의 소리”라는 시구에서 계절을 직접 언급하는 단어는 나오지 않는다. 하지만 ‘매미’라는 단어를 통해서 우리는 지금 이 시구의 시간적 배경이 여름이라는 것을 어렵지 않게 알 수 있다. 물론 하이쿠 중에는 계절어 규칙을 지키지 않는 작품도 있다. 그런 작품은 하이쿠가 아니라 센류(川柳)라는 이름으로 따로 불리하기도 하며 전문적 문학가가 아닌 일반 대중의 문학적, 언어적 유희의 도구로 사용되기도 한다.

마지막 세 번째 규칙은 영탄구(句)가 들어가야 한다는 것이다. “한적함이여 바위에 스며드는 매미 소리”에서 ‘한적함이여’가 바로 이 영탄구에 해당한다. 하이쿠에서 영탄구는 한 박자 쉬어가는 지점을 만들어 한 줄밖에 되지 않는 하이쿠를 단숨에 읽어 내려가는 것을 방지하는 것과 작품 전체를 관조하는 듯한 여운을 안겨주는 기능을 하고 있다. 그러므로 얼마나 세련된 영탄구를 집어넣느냐가 하이쿠 시인의 실력을 말해주는 것으로 하이쿠 전체의 수준을 판단하는 기준이 되기도 한다.

2. 일본불교와 하이쿠

동양사회에서 시를 쓴다는 것은 예로부터 고도로 발달된 지적 훈련을 받아야만 가능한 창작행위였다. 그것은 일본도 마찬가지였고 이런 창작행위를 할 수 있는 계층은 생산노동에서 자유로운 지배계층이거나 예로부터 전해져 내려오는 경전을 해석해야 하는 승려 계층이었다. 그렇다 보니 일본의 시문학을 논할 때는 이른바 오산문학이라고 일컫는 선종 승려들에 의한 창작활동에 관해 이야기하지 않을 수 없다.

하이쿠 역시 이런 배경에서 태어나기는 하였으나, 그렇다고 해서 하이쿠의 시 세계가 불교 사상에 직접적인 영향을 받았다고 말하기는 쉽지 않다. 왜냐하면 일본 승려들의 사회적 신분 배경과 불문에 들어오게 된 동기들을 살펴보면, 우리가 흔히 생각하듯 속세를 버리고 부처의 가르침을 따르는 세상으로 들어가는 것과는 그 양상이 조금은 다르기 때문이다.

선불교가 일본에 전파된 이래 수많은 사찰이 일본 전역에 세워졌고 많은 이들이 이 사찰에서 수행하는 승려가 되었는데, 이 승려들의 면면을 살펴보면 명망 있는 집안의 자제들이거나 은퇴한 권력자들이나 지역유지들이 대단히 많음을 알 수 있다. 가마쿠라 시대(鎌倉時代)에 일본을 통치했던 막부(幕府) 쇼군(將軍)들의 초상을 보면 법복을 입고 있는 모습을 한 사람들이 적지 않고, 권력자의 ‘미망인’들 중에는 비구니가 된 이들도 상당히 많다. 언뜻 보기에는 불교가 일본 사회의 중추적인 가르침으로 침투해 있었기 때문에 이런 현상들이 일어나는 것으로 보이지만 그 이면을 들여다보면 조금 다른 모습 또한 알 수 있다.

상류층 사람들이 승려가 되는 것은 반드시 그들이 불법에 귀의했기 때문만은 아니었다. 사람들 중에는 승려라는 업이 ‘남들에게 내세우기 좋은 명예가 있는 직업’이기 때문에 택하는 이들도 적지 않았다. 성직자가 되기에는 너무나도 세속적인 목적이 아닐 수 없는데 이런 일들이 일어났던 것은 당시의 장자상속 제도 때문이었다.

명문세가에서 태어난 둘째나 셋째 아들 혹은 딸들은 가문을 이어받는 장자와는 전혀 다른 운명을 가지고 살아가야만 했다. 다시 말하자면 신분만 높았지 사실상 아무것도 할 수 없는 무직자 신세였던 것이다. 그렇다고 세간의 눈 때문에 아무 일이나 할 수 없었던 그들에게 가장 매력적인 직업이 바로 불교 승려였다. 종교 지도자로서의 사회적 신분과 명망, 그리고 경전 연구를 통해서 얻어지는 문학적 소양을 과시하며 살아갈 수 있는 자리였기 때문이다. 

이런 상황이 오랫동안 이어지다 보니 중세 일본에서 사찰은 권세가들이 서로의 네트워크를 확인하고 주고받는 사교의 장 역할을 하기도 했고, 우리나라의 서당이나 향교처럼 단순히 학문을 배우기 위해 들어가는 사립학교의 역할을 하기도 했다.

16세기 일본에 체재했던 포르투갈 선교사 루이스 프로이스(Luis Frois)는 일본 사찰의 풍경을 묘사하면서 일본 승려들이 경전에 대한 깊이 있는 연구보다는 한자 자구의 해석에 더 열중하고 있다고 서술한 적이 있다. 이런 현상에 대해서 미국 프린스턴대학의 명예교수 마틴 콜컷(Martin Collcut)은 일본 사회가 선불교를 받아들인 주목적이 선불교의 사상에 감화되어서라기보다는 중국 선불교의 사찰과 승려들이 가지고 있던 인문학적 지식에 더 매료되었기 때문이라고 평가하기도 한다.

덕분에 불교와 성리학이 사상적 혹은 정치적으로 첨예하게 대립했던 역사를 가지고 있는 중국이나 한국과는 달리, 일본에서는 근세 이전까지 성리학 연구가 선승들에 의해 수행되고 계승되는 기이한 현상까지 일어나기도 했다.

이런 이유로 일본에서 승적을 갖는다는 것이 반드시 그 사람이 불교적인 사상에 심취되어 있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었고 그들이 만들어낸 시 세계가 반드시 불교의 세계관을 반영하는 것도 아니었다. 따지고 보면 일본문화에서 불교가 차지하고 있는 위치와 역할 역시 이와 크게 다르지 않다. 일본의 토속신앙 신도들은 불교와 떼려 해도 뗄 수 없는 깊은 유착관계를 맺고 있고, 대다수의 일본인이 자신의 종교적 성향과는 관계없이 죽을 때 불교식 계명을 가지고 극락왕생을 비는 염불 소리를 듣게 된다.

도쿄의 유명한 관광지 아사쿠사(浅草)에 있는 거대 사찰 센소지(淺草寺)는, 몇백 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 에도(江戶) 시대에도 사찰을 중심으로 거대한 상점가와 유곽이 발달한 유흥의 중심지였다. 신성한 도량이 유흥의 중심지라는 것이 우리나라의 불교문화에서는 납득이 되지 않는 일이지만 일본적인 사고방식에서는 그것이 크게 이상한 것이 아니었다.  

이런 역사적 배경 때문에 일본불교의 종교적, 사상적 진정성에 대해 의심을 하는 시선도 적지 않다. 하지만 위와 같은 현상을 뒤집어서 해석해 보면 불교라는 것이 적어도 외형적, 형식적인 면에서만큼은 일본인들의 일상생활에 밀착되어 있다고 생각할 수도 있다. 그 깊이는 깊지 않을지라도 보다 넓은 분야에 걸쳐서 불교라는 종교적 외피가 일본인들의 의식에 알게 모르게 영향을 주었다고 볼 수 있는 것이다.

하이쿠라는 문학의 한 장르와 불교와의 관계도 이런 각도에서 그 연관성을 유추해 볼 수 있다. 하이쿠가 독립적인 장르로 발달하기 시작한 근세 초기에 승려나 불자들이 하이쿠라는 장르와 직접적인 연관을 맺고 있는 사례는 그리 많지 않다. 그 이유는 승려들의 문학 활동이 고급의 한시(漢詩) 쪽에 집중된 반면에, 하이쿠는 서민들의 대중문학 쪽으로 발전했기 때문이다. 대부분의 문학 장르가 높은 신분과 경제력에 그 배경을 두고 있는 반면, 하이쿠는 서민들도 즐길 수 있는 장르라는 데 남다른 의의가 있었던 것이다.

에도시대의 시인 다카이 키토(高井几董, 1741~1789)가 쓴 〈불꽃놀이 끝 미인은 술 안으로 몸을 던지고(花火尽きて美人は酒に身投げけん)〉처럼 일본의 대표적인 여름 풍물시인 불꽃놀이를 노래한 하이쿠가 대표적으로 서민들로부터 사랑을 받았던 하이쿠 중의 하나며, 이런 경향은 비교적 근대인 메이지(明治) 시대까지 이어지게 된다.

대중적인 하이쿠의 맥은 지금도 이어져 내려오고 있는데 요즘도 일본에서 인기를 끌고 있는 ‘직장인 센류(川柳) 콘테스트’가 좋은 예이다. 거기서 입선한 작품들을 보면 시류를 반영한 재미있는 작품들이 많다.

携帯と亭主の操作は指一本
(けいたいとていしゅのそうさはゆびいっぼん)
휴대폰이랑 남편 조작하는 건 손가락 하나

何になる子供の答えは正社員
(なになるこどもだちのこたえはしょうしゃいん)
장래희망? 아이들의 대답은 정규직 사원

품격이나 문학성으로 따지면 결코 수준 높은 작품이라고 말할 수는 없다. 시 전체를 조망하게 하는 영탄구의 끊어지는 맛도 없고 계절을 암시하는 시어도 없다. 그렇지만 사람들이 읽으면서 공감하고 즐거워하는 것, 그것이 바로 하이쿠가 가지고 있던 본래 성격 중의 하나고 센류는 그런 장르의 목적을 충실하게 수행하고 있다.

하지만 문화의 대중화에는 언제나 선정성과 정치성향의 문제가 따라오기 마련이어서 막부의 정치를 비판하거나, 도박과 폭력, 호색에 관해 노래한 시들은 검열되고 삭제되는 일도 있었다. 그런 경향은 지금도 마찬가지여서 직장인 센류 콘테스트에도 매년 적지 않은 수의 저속하고 악의에 찬 내용의 센류가 응모해 온다고 한다.

그렇다면 불교와 하이쿠는 전혀 연관 관계가 없었다는 이야기가 되는 것일까?

그렇지는 않다. 좋은 의미로나 나쁜 의미로나 대중적으로 유행하고 있던 하이쿠의 시풍에 반기를 들고 이것을 하나의 예술세계로 끌어올린 이가 있었으니 그가 바로 앞에서도 언급한 바 있는 마쓰오 바쇼다.
그는 닌자(忍者)로 유명한 미에현(三重県) 이가시(伊賀市)에서 무사 집안의 둘째 아들로 태어났다. 바쇼는 13살 때 아버지를 여의고 형이 가문의 뒤를 이었지만, 생활이 몹시도 곤궁했다고 한다. 그래서 다른 상급무사의 집에서 주방 일을 돕다가 하이쿠를 알게 되어 이쪽 세계로 투신했다고 알려져 있다. 그리고 이런저런 일을 전전하다가 전문적인 하이쿠 작가가 되면서 2,400킬로미터에 달하는 ‘오쿠노호소미치(奥の細道)’ 기행을 하면서 자신의 이름을 역사에 남기며 시성(詩聖)으로 추앙받게 되었는데, 이 기행과 그의 시 세계가 밀접한 관계를 가지고 있다.

마쓰오 바쇼의 시 세계에 이렇게 선불교의 가르침이 많이 투영된 것은 바쇼 자신은 정식 승려가 아니었지만 승려들과의 교류를 통해 자신의 시 세계를 넓혀 왔기 때문이다. 그에게 가장 직접적인 영향을 미친 이는 붓초 선사(佛頂禪師)였다. 붓초 선사는 현재의 이바라키현(茨城県)에 있는 곤폰사(根本寺)라는 절의 주지였다. 그는 막부가 신사와 사찰에게 주어지는 영지를 조정하는 과정에서 곤폰사의 영지를 가시마신궁(廘島神宮)이라는 신사에 넘겨준 것에 불복하여 막부에 소송을 제기하면서 에도에서 일시적으로 살게 되었다. 그때 그가 살았던 곳을 린센암(臨川庵)이라고 이름 붙였는데 때마침 린센암에서 가까운 곳에 살고 있던 바쇼가 이곳을 출입하게 되면서 1년 반 정도 교류하며 참선을 배웠다고 한다.

이때 맺은 붓초 선사와의 인연이 꽤나 깊었던지 선사가 가시마신궁과의 소송에서 승소하여 고향인 이바라키의 곤폰사로 돌아간 후에도 바쇼는 에도에서 곤폰사가 있는 곳까지 여행을 다녀오기도 했다. 그래서인지 마쓰오 바쇼는 승복 같은 옷을 즐겨 입었고 머리 또한 승려처럼 짧게 삭발하기도 했다. 그리고 여행지에서도 여러 선승들과 교류하면서 불교적 색채를 자신의 작품에 불어넣기도 했다.

하지만 앞에서도 말했듯이 일본에서는 불교를 통해 문학적 세계관의 외연을 넓힌다는 것이 반드시 불교를 사상적, 종교적으로 수용한다는 것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마쓰오 바쇼는 승려의 외양을 흉내 내기는 했어도 출가하지도 않았고 승려들처럼 계율에 따르는 수행을 하지도 않았다.

그런 의미에서 보자면 마쓰오 바쇼의 불교 수용은 미학적, 문학적 관점에만 국한되는 피상적인 것일 수도 있다. 독자들이 음미해 볼 수 있는 선문답적 여운을 던져주기는 해도 그것이 반드시 철저한 인생의 관조와 연결되는 것도 아니다. 하지만 이것을 조금 더 현실적으로 말하자면 마쓰오 바쇼의 불교 수용은, 서민문학으로서 대중화 혹은 선정화되어 가고 있던 하이쿠의 시풍을 정화하고 한 단계 높은 예술성을 확보하기 위한 전략적인 선택이라고 볼 수도 있을 것이다.

이런 마쓰오 바쇼의 선불교적 시풍이 계승된 것은 그보다 조금 후대의 시인인 요사 부손(与謝蕪村, 1716~1784)이었다. 마쓰오 바쇼를 지극히 존경했던 그는 바쇼가 떠났던 기행의 흔적을 따라 바쇼처럼 승려의 행색을 한 채 일본 동북지방을 기행하기도 하였다. 그는 시어에 불교용어인 우치(愚痴)와 무지(無智)를 사용하는 등 불교적인 색채를 강하게 드러냈는데 그의 문인이 하이쿠란 무엇인가 하고 질문을 했을 때 그는 “하이쿠란 세속의 말을 써서 세속을 벗어나는 것”이라고 대답했다고 한다.

일본의 정토종 승려이자 중국 사상학자인 미야자와 마사요리(宮沢将頼)는 부손뿐만 아니라 에도시대 말기의 하이쿠 시인인 고바야시 잇사(小林一茶, 1763~1828)의 시에서도 정토종의 영향을 찾아볼 수 있다고 주장을 하기도 하였다. 그리고 이런 움직임은 메이지 시대 이후에 와서 마사오카 시키(正岡子規, 1867~1902)에 의해 극대화되었다.

《호토토기스(ホトトギス/子規)》라는 하이쿠 잡지를 창간하여 하이쿠 시인으로서 왕성한 활동을 했던 시키는 그의 수필집인 《묵즙일적(墨汁一滴)》에서 “내 안의 희망이 극한에 이를 정도로 작아졌으니 이후에 찾아오는 것은 희망의 제로 상태일 것이다. 희망이 제로 상태에 다다른 시기를 석가는 이를 일러 열반이라고 하였고 예수는 이를 일러 구원이라고 하였다.”라고 심정을 밝힌 적이 있는데, 심한 결핵을 앓았던 그는 점점 악화되어 가는 자신의 병세의 처지를 불교 등의 종교적인 가르침과 깨우침으로 이겨내려 하였다고 한다. 이런 그의 태도가 시작의 세계에도 반영되었음은 두말할 나위가 없다.

3. 하이쿠의 선불교적 요소

승복처럼 보이는 옷에 삿갓을 쓰고 방랑을 하는 바쇼의 초상 때문에 그를 승려 출신으로 오해하고 있는 사람들도 있지만, 그가 승적을 가진 정식 승려였다는 기록은 어디에도 없다. 하지만 그의 작품은 적어도 이미지라는 측면에서는 선불교와 일정 부분 교집합을 가지고 있고 그것이 마쓰오 바쇼의 작품, 한발 더 나아가 하이쿠라는 장르 전체의 미학적 수준을 끌어올렸다고 말할 수 있다.

古池や蛙飛こむ水のおと
(ふるいけや かわずとびこむ みずのおと)
오래된 연못 개구리 뛰어들어 물 치는 소리

밑도 끝도 없는 이 한 줄의 문장은 세계에서 가장 짧은 시라고 일컬어지는 일본의 하이쿠의 특징을 잘 보여준다. 하지만 한눈에 봐도 짧기 그지없는 이 한 줄의 시가 주는 여운은 의외로 깊고 오래 간다. 여름날 푸른 이끼가 낀 낡은 연못의 풍경과 갑자기 뛰어든 작은 청개구리가 만들어 낸 수면 위의 파문이, 그리고 그 순간에 들려온 짧은 물방울 소리와 그 이후로 길게 꼬리를 끌며 이어지는 정적의 여운이 그대로 전해져 오는 듯하다.

일본 고마자와대학(駒澤大学)에서 종교학을 가르쳤던 유명 불교학자 나라 야스아키(奈良康明 )교수는 마쓰오 바쇼의 〈오래된 연못 개구리 뛰어들어 물 치는 소리〉에 대해 인간과 자연이 일체화되어 있는 일본인의 자연관을 가장 잘 드러내는 예인 동시에 마쓰오 바쇼의 지고한 종교적 경지를 보여주는 하이쿠라고 평하고 있다.

그 외에도 많은 연구자들이 〈오래된 연못 개구리 뛰어들어 물 치는 소리〉를 개구리가 연못으로 뛰어드는 물소리로 인해 정적의 세계가 찰나적으로 깨졌다가 다시 원래의 정적으로 돌아오면서 그 광경을 바라보는 시인의 존재를 재인식하는 선적(禪的)인 깨달음을 추구한 시라고 분석하고 있다.

物いへば脣寒し秋の風
(ものいえばくちびるさむしあきのかぜ)
말을 하려니 입술이 시리구나 가을 찬바람

찬바람이 불어오는 늦가을과 초겨울이 만나는 지점. 그 공간이 주는 한적함과 그 공간 위에 두 발을 딛고 서 있는 이의 고독과 적막함을 마쓰오 바쇼는 겨우 한 줄의 시로 극대화시키고 있다.

泣きすぎてがらんとした蟬の殻
(なきすぎてがらんとしたせみのから)
너무 울어 텅 비어 버렸는가 매미의 허물

우리나라 사람들에게는 크게 익숙하지 않은 모습이겠지만, 유난히 매미가 많은 일본에서 나뭇잎 여기저기에 매미 껍질은 어디서나 흔하게 발견되는 여름의 풍경이면서 여름의 끝이 머지않았음을 알려 주는 모래시계와도 같은 것이다. 자신의 모습 그대로 지상에 남기고 하늘로 날아간 매미. 그는 지금의 모습을 만들기 위해 7년이라는 시간을 땅속에서 인내해야만 한다. 하지만 그렇게 기다려서 맞이한 자유는 겨우 7일에 불과하다는 것을 우리는 잘 알고 있다. 그 운명이 지닌 허무함과 슬픔을 마쓰오 바쇼는 담담한 시어로 그려내고 있다.

물론 바쇼의 모든 하이쿠가 선문답을 떠올리게 하는 함축적 여운을 지향하는 것은 아니다. 의미는 깊지 않지만 회화적 이미지를 최대한 추구하려는 작품도 있다.

石山の石より白し秋の風
​(いしやまのいしよりしろしあきのかぜ)
바위산의 바위보다 더 하얀 가을바람

蔥白く洗ひたてたるさむさ哉
(ねぶかしろくあらひたてたるさむさかな)
파를 하얗게 씻어서 쌓아놓은 매운 추위여

바위라는 무기질적이고 차가운 표면을 가진 물체를 빌려 그려내는 가을바람의 스산함, 그리고 대파의 흰 줄기라는 일상생활에서 가까운 사물을 통해 그려내는 새하얀 눈의 이미지는 그 장면만으로도 하나의 완벽한 그림이 된다.

하지만 기본적으로 바쇼의 작품이 추구하는 방향은 속도보다는 천천히 나아가는 걸음을, 젊음이 주는 에너지보다는 세월의 연륜을, 두 손 가득 쥐어지는 풍부함보다는 어딘가 비어 있는 여백을, 선명하게 드러나는 원색보다는 반쯤은 감춰진 무채색을, 심장을 고동치게 하는 드라마틱한 반전보다는 일상의 그림자를 뒤돌아보게 하는 관조의 미학을 추구하고 있다.

愚痴無智のあま酒造る松が岡
(ぐちむじのあまさけつくるまつがおか)
우치무지의 달달한 술 만드는 마쓰가오카

이 작품은 부손의 하이쿠인데, 단술이라는 단어로 이 작품의 배경이 여름임을 나타내고 있다. 일본에는 여름철에 단술을 빚는 풍습이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불교용어인 우치(愚痴)와 무지(無智)를 상당히 재미있는 방식으로 사용하고 있는데, 자신이 우둔하고 지혜롭지 못하다는 겸허한 태도를 드러냄과 동시에 “우치무치”라는 소리를 통해 보글보글하며 술이 발효하는 소리를 의성어로 나타낸 것이기도 하다. 이렇게 부손은 불교적인 용어를 빌리더라도 바쇼와는 다르게 서민적 해학을 살린다는 하이쿠의 본래적 모습에 더 충실한 편이다.

이런 점은 잇사도 마찬가지인데 그는 부손보다도 불교적인 것을 보다 적극적으로 시어에 반영하고 있다.

本堂にぎつしりつまる藪蚊哉
(ぶつどうにぎつしりつまるやぶかかな)
법당 안까지 꽉꽉 들어차 버린 모기떼들아

なむあみだ仏の方より鳴蚊哉
(なむあみだぶつのほうよりめいかかな)
나무아미타불보다는 모기 우는 소리

위의 작품들은 직접적인 불교의 가르침이나 사상을 시어에 반영하지 않아도 잇사의 평범한 불자로서 생활상을 보여주는 하이쿠들이다. 그런가 하면 은근슬쩍 그의 신앙을 시에 드러내기도 한다.

涼しさや弥陀成仏の此のかたは
(すずしさやみたじょうぶつのこのかたは)
시원함이여 아미타불의 성불 그대로구나

도쿄대학의 명예교수 하야시마 교쇼(早島鏡正)는 잇사의 작품에 대해 “서민성 속에 진리성, 혹은 종교성과 같은 고귀함이 감춰져 있다.”라고 평가하고 있다. 이렇듯 불교가 일본 문학계에서 가지고 있는 역할과 위치로 보았을 때, 불교를 거치지 않고서는 문학성을 향상시키기가 결코 쉽지 않았기 때문에 세세한 부분에서 불교와 하이쿠의 접점은 그리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다. 하지만 불교와 하이쿠의 교집합을 가장 널리 알린 것은 역시 마쓰오 바쇼의 작품이 가지는 미학적 측면이라고 하지 않을 수가 없다.

자연을 노래하는 시어로 결국은 인간 세상의 허무함을 일깨워준다는 점에서, 그리고 마치 선문답의 화두를 던지듯이 함축된 언어를 던져 그것을 듣는 사람으로 하여금 상상력을 발휘하도록 만든다는 점에서 마쓰오 바쇼의 하이쿠는 불립문자(不立文字)로 대표되는 선의 가르침과 많이 닮아 있다. 그릇이 만들어지면 그 안에는 내용물이 담기게 되듯이 마쓰오 바쇼가 하이쿠라는 거푸집을 통해 선불교적 세계관을 가진 시풍을 만들어냄으로써 지금의 하이쿠는 미학적으로 높은 완성도를 가진 시가 되었고, 일본뿐만 아니라 세계에서 관심을 가지는 문학 장르가 되었다.

프랑스의 철학자이자 비평가인 롤랑 바르트(Roland Barthes)는 하이쿠에 대해 시간과 인간의 감정을 하나의 스냅샷 사진처럼 찍어낸 완벽한 기호체계라고 표현한 적이 있다.

필자는 롤랑 바르트가 마쓰오 바쇼로 대표되는 하이쿠의 미학적 세계관을 정확히 꿰뚫고 있다고 생각한다. 겨우 17자의 여유밖에 없는 하이쿠는 고도로 세련된 언어의 정련술(精練術)을 요구하지만, 하이쿠에서 드러내고자 하는 것은 정련된 언어가 가지는 치열함 그 자체가 아니다. 아니, 오히려 그 언어에서 한 발자국 비켜나 있는 비언어적인 공간을 표현하는 데 미학의 가치를 두고 있다. 이렇게 하이쿠가 지니고 있는 미니멀리즘(minimalism)적인 여백과 서양의 이미지즘(Imagism)이 결합하면서 선(禪)이라는 것은 어딘가 여백이 있고 간결한 동양의 고급 정신문화라는 이미지를 만들어내면서, 선불교의 본질을 보여주지는 못해도 선불교로 가는 문턱을 낮추는 역할을 했다고 볼 수 있을 것이다. 하이쿠의 미학적 측면은 일찍부터 유럽의 지식사회로부터 주목을 받아 1910년대 이미지즘 운동이 일어났을 때 동양의 이미지즘의 대표적인 예로서 소개되기도 하였다.

4. 하이쿠의 현재와 미래

일본인들은 언어 행위를 함에서 직설적인 표현보다는 우회적이고 모호한 표현을 자주 사용한다. 일본인들은 ‘공기를 읽는다.’라는 표현을 자주 쓰는데 이것은 직접적인 언어로 드러나지 않는 행간의 분위기를 파악하여 이에 맞게 행동한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으로 상식적인 사회활동을 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갖추어야 할 덕목으로 손꼽힌다.

하이쿠는 바로 이러한 일본인들의 언어 행위의 핵심이다. 바로 집단이 공유하고 있는 정서적 공감대를 최소한의 함축적 언어로만 표현하면서 그 뒤에 숨은 전체적인 의미를 파악하고자 하는 것이다. 그런 이유 때문인지 아직도 많은 현대 일본인들이 예스러운 시가인 하이쿠를 애호하고 있다. 지금도 약 1,000여 개에 달하는 하이쿠 관련 단체가 활동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근래 세계 각국에서 짧으면서도 긴 여운을 주는 하이쿠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면서 일본어가 아닌 다른 나라의 언어로 하이쿠를 써보겠다는 시도가 여기저기서 일어나는 중이다. 우리나라에서도 하이쿠를 즐기는 인구가 최근 점점 늘어나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는데 일본어와 문법의 유사성이 많은 한국어가 다른 나라의 언어보다 하이쿠의 여운과 읽는 맛을 즐기기에 더 적합하다고 한다.

하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다른 언어보다 한국어가 유리하다는 것뿐이지 한국어가 일본어를 완벽에 가깝게 대체할 수 있다는 얘기는 아니다. 아시다시피 시처럼 외국어로 번역하기 힘든 문학 장르도 없다. 의미뿐만 아니라 형식과 운율을 모두 살려서 다른 언어로 이식한다는 것은 거의 불가능에 가까운 작업이기 때문이다. 하이쿠처럼 5-7-5라는 음운의 제약이 있는 정형시는 더 말할 것도 없다. 그런데도 비(非)일본어로 하이쿠를 번역하고 또 오리지널 작품을 써보겠다는 움직임이 적지 않다는 것은 이 짧은 시가 주는 여운에 매료되는 사람들이 그만큼 많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리라.

물론 하이쿠의 유행에 대하여 이른바 왜색 문화의 유입이라고 걱정하는 시선이 없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하이쿠는 짧으면서도 일본인의 의식 속에 자리 잡고 있는 미학적 세계관을 고스란히 드러내는 결코 짧지 않은 의미를 지니는 문학이다. 일본이라는 나라를 무시하고 살아갈 것이 아니라면, 앞으로도 일본과 더불어 미래의 나날들을 준비해 나가야 하는 상황이라면 하이쿠에 관심을 가져 보는 것도 결코 나쁜 선택은 아닐 것이다. ■


김인숙 / 시인 · 전 관동대학교 일어일문학과 겸임교수. 성신여자대학교, 동 대학원 일어일문학과 졸업(석사). 주요 논문으로 〈노자라시기행에 관한 고찰(野ざらし紀行についての一考察)〉(석사 논문), 〈바쇼의 하이카이 성립에 관한 고찰(芭蕉俳諧成立の一考)〉 〈韓日文学의 比較研究〉 등이 있다. 한국현대시인협회 작품상, 열린시학상 수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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