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남불교문화원 실장

올여름, 남도는 가히 벌겋게 달아오른 가마솥이라 할 만하다. 중복에 앞서 남도 땅끝 소록도를 다녀왔다. 광주 무각사 신도회가 소록도 한센병 환우와 의료진, 자원봉사자들에게 여름나기 보양식을 전하는 자리였다
무각사 신도들이 소록도를 찾는 것은 올해로 6년째이다. 해마다 여름이면 삼계탕, 연말에는 김장과 동지죽을 가지고 소록도를 찾고 있다. 변화가 있다면 여름 보양식이 다양해지고 있는 가운데 올여름은 삼계탕에서 계절 과일로 바뀌었다.

소록도(小鹿島)는 섬의 형태가 ‘작은 사슴’과 같다고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특별하게도 섬 전체가 국립소록도병원이다. 한센병 환우의 치료와 요양을 위한 의료기관이다. 현재 소록도에는 병원을 비롯해 7개 마을에 550여 명의 한센병 환우들이 거주하고 있다. 여기에 의료진과 자원봉사자가 200여 명에 이른다. 6년 전 소록도에 거주하는 한센병 환우가 600여 명이었으니 해마다 환우들이 줄어들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그런데 매번 소록도에 갈 때마다 불교의 현재를 보는 듯하여 가슴이 먹먹해진다.

소록도는 작은 섬이지만 한센병 환우들이 거주하는 지역이어서인지 유달리 종교 시설이 많다. 지금도 섬 곳곳에 교회 5곳, 성당 2곳, 원불교당 1곳이 자리해 있다. 아쉽게도 사찰은 한 곳도 없다. 언제부터인지 포교의 손길이 끊겨 소록도 주민들 가운데 불자를 찾아보기 어렵다. 불교계에서도 불자를 위한 신행 공간을 마련하려는 시도가 있었지만 이마저도 섬 전체가 국유지여서 여의치 않다.

어린 사슴의 눈망울같이 서글픈 사람들이 사는 소록도에서 부처님과의 인연 종자를 맺는 공간을 찾기가 어려운 것이다.

몇 해 전, 소록도 가까이 금탑사에서 서림 스님과 차담을 나누다 뜻밖의 이야기를 들었다.

20여 년 전, 지역의 어느 노스님이 말하기를 소록도에 한센병 환우들이 살게 된 것은 스님과의 인연 때문이라는 것이다. 시작은 구한말쯤이었던 것 같다. 고흥 어느 절에 한센병 환우가 살게 되었다. 주지 스님은 한센병 환우를 살리기 위해 사람들의 왕래가 적은 소록도에 따로 거주지를 마련했다. 그리고 스님은 날마다 탁발하여 섬에 들어가 한센병 환우를 거두었다. 스님이 소록도 한센병 환우를 탁발로 먹여 살린다는 소문이 돌고 한센병 환우들이 소록도를 찾게 되었다. 그러다가 일제 강점기가 되자 일본인들은 소록도에 한센병 전문병원을 세워 한센병 환우들을 수용했다.

이때부터 소록도는 한센병 환우들의 치료보다는 수용소에 가까운 천형의 땅이 되었다. 스님의 자비 손길을 받던 한센병 환우들은 온갖 고통에 시달려야 했다. 더구나 스님이 입적하고 한센병 환우들 가까이에는 타 종교인들이 자리해 정신적 위안을 주었다.

또 다른 남도의 땅끝, 전남 무안에는 각설이 타령을 현대화한 품바의 발원지가 있다. 

흔히 각설이는 시장바닥에서 타령하며 밥 한술 얻어먹는 거지들의 노래로 알려져 있다. 그러나 각설이는 한자로 覺說理(깨달을 각, 말씀 설, 이치 이)이고, 말 그대로 ‘부처님의 깨달음을 설하는 말’이다. 부처님의 깨달음을 알기 쉽게 민중에게 들려주는 노래이자 법문인 것이다. 신라 때 원효 스님은 길거리에서 춤추고 표주박을 두드리며 〈무애가(無碍歌)〉를 불렀다. 신라판 각설이다. 각설이 타령을 듣고 감동한 민중들이 감사의 뜻으로 공양(供養)을 올렸다. 그러던 것이 행위만 남아 구걸을 하는 것이 되었다.

각설이 타령의 가사를 살펴보면 부처님 말씀이라는 것을 쉽게 알 수 있다.

각설이는 ‘얼씨구’로 시작한다. 얼씨구는 ‘깨달음, 즉 얼의 씨를 찾아라’는 것이다.

얼씨구씨구 들어간다(얼의 씨가 몸 안에 들어간다) / 저얼씨구씨구 들어간다(네 얼의 씨도 몸 안에 들어간다) / 작년에 왔던 각설이 죽지도 않고 또 왔네(전생에 왔던 놈이 죽지 않고 이생에 다시 태어난다)

각설이 노래 가사는 줄곧 우리네 삶은 돌고 돌아 윤회를 계속한다는 것을 말한다. 따라서 살아생전에 윤회를 끊어야 하는데 그러기 위해서는 참다운 사람으로 살라는 것이다.

소록도는 부처님 땅이다. 남도의 각설이(스님)가 이룬 불국정토였다. 스님은 시장바닥의 거지가 되어 타령을 부르지는 않았지만, 집집이 직접 찾아가 부처님과의 인연을 맺어주고 공양받아온 음식으로 한센병 환우들의 생명을 구했다.

소록도에서 돌아오는 길 내내 머릿속에서 ‘소록도 각설이’가 맴돈다. 있는 자리에서 부처님 말씀을 전하고 실천한 ‘覺•說•理’.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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