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가

내가 공군에서 의가사제대하고 공주 마곡사 은적암으로 아버지를 찾아간 것은 여름날 해 질 녘이었다. 가파른 산언덕을 걸어올라 암자에 도착하니 바깥마당을 비질하던 여승이 환한 얼굴로 맞아주었다. 그때 무거운 나뭇단을 지게에 지신 아버지가 산모롱이를 돌아오고 있었다. 얼른 달려가 지게를 대신 지려 했지만, 아버지는 막무가내였다. “너는 평생 지게를 져선 안 된다.” 순간 내 몸속에서 날카로운 자학심리가 치올랐다. 아버지처럼 평생 지게를 지며 살겠다는 오기였다.

암자에서 아버지와 겸상으로 저녁을 먹고 산모롱이를 돌아가니 헛간처럼 생긴 작은 초가가 나타났다. 그 외딴 별채가 일흔한 살 된 불목하니의 거처였다. 나는 달빛이 깔린 평상마루에 아버지와 마주 앉아 특명(特命)으로 제대하게 된 사연을 먼저 화제에 올렸다. 헌병이 보초 서고 있는 참모총장실에 잠입한 경로며, 그 바람에 소속부대에서 매를 맞고 팬티 바람에 연병장을 열다섯 바퀴 돌게 된 내력이며, 참모총장이 군종감을 불러 “김 일병의 가정형편”을 검토해서 대책을 세우라고 지시했다는 이야기를 신나게 엮어나갔다. 그런 재미로 아버지 가슴에 쌓여 있을 슬픔을 눙쳐드리고 싶었다.

“참 묘한 인연이에요. 마곡사는 옛날에 김구 선생이 거처했던 곳이고, 그분의 아드님이 저를 특명으로 제대시켜준 공군참모총장이니 말에요. 그 덕택에 지금 아버지를 뵐 수 있게 됐거든요. 이제 무슨 수로든 아버지를 호강시켜드릴 테니 아무 걱정 마세요. 며느리가 지은 밥도 잡수시고요.”

“부처님이 돌봐주신 모양이구나. 한데 며느리라니? 그게 뭔 소리여?”

“아버지한테 며느릿감이 생겼어요.”

“며느릿감?”

“그 아가씨도 불자래요. 출가를 결심한 적도 있었고요. 아버지가 멀고 먼 마곡사까지 와서 불목하니 되신 거나 똑같은 팔자죠. 그나저나 아버지는 왜 불목하니가 되신 거죠? 먹고 잘 데가 없으시면 옛날처럼 남의집살이라도…….”

내 솔직한 질문에 아버지는 물안개가 자욱한 계곡을 바라보다가 한마디를 흘렸다.

“절간에 사니까 이렇게 맘이 편할 수가 없어.”

“편하다고요? 만날 산에서 나무해 나르고, 끼니마다 불 때 주고, 구석구석 청소하고, 하루 일이 태산 같은데 편하다뇨.”

“마음이 편하면 일은 저절로 되는 법이다. 마음이 편치 않으면 종일 놀고 지내도 고단한 법이야.”

그때 나이가 지긋한 여승이 달빛이 깔린 마당으로 걸어왔다. 손에는 목판이 들려 있었다. “촐촐하실 테니 드세요.” 목판 속에는 인절미와 사탕이 담겨 있었다. 아버지의 권유로 잠시 평상에 걸터앉은 스님은 “이제 아드님이 제대했으니 고생짐을 더시게 됐네요.” 하고 덕담을 주고 나서 자리를 떴다.

“자상하고 온화한 스님이셔. 내게 유독 인정을 베푸시는데, 집안 내력이 우리와 비슷했던 모양이야. 너처럼 책을 무척 좋아하시지.”

나는 이때다 하고 그동안 몰래 써온 소설 습작 사실을 털어놓았다. 아버지의 참담한 모습을 통감하면서도 재물이나 명예 같은 현실적인 욕망보다 맹랑한 허무에 빠져 지내온 내 그 ‘이배(離背)’가 늘 가책을 느끼게 했던 것이다. 진작 돈벌이에 집착했던들, 호강시켜드리겠다고 큰소리친 그 위무의 대책이 캄캄하기만 하다.

“소설가? 허풍쟁이 말이냐?”

“아버지도 광대가 되셨으면 허풍떠셨을 것 아녜요?”

나는 얼른 아버지의 표정을 살펴보았다. 콩밭을 매다가 호미를 팽개치고 남사당패를 쫓아간 그 끼가 내 핏속에도 흐를 것이었다. 아버지가 불목하니 노릇을 하신 것도 광대가 되고 싶었던 그 끼 탓이 아닐까 싶다. 우주의 지름을 명주실로 쟀듯이 말이다.

내가 초등학생 시절이었다. 별이 뜨는 여름밤이면 그 농투성이는 마당에 멍석을 깔고 드러눕게 마련이었다. 까만 하늘을 보며 흥얼거리는 콧노래 속에는 별을 세는 재미가 묻어 있었다. 그가 불쑥 철 무른 외아들에게 물었다. “얘야, 우주가 뭐라니?” 나는 아버지에게 천문학 실력을 자랑하고 싶어 멍석 위에 나란히 누웠다.

“아버지가 주무시는 사랑방을 우주라고 하면요, 방 안에 있는 재떨이, 요강, 목침, 등잔, 궤짝, 아버지 몸뚱이를 별이라고 생각하시면 돼요. 다만 그런 허접쓰레기들이 방바닥에 놓여 있지 않고 공중에 둥둥 떠 있다고 생각하시면 돼요.”

“그러니까 별은 하늘에 박혀 있지 않고 둠벙에 개구리 떠 있듯 둥둥 떠 있는 거구먼? 그런디 말여, 우주 이쪽 끄트머리와 저쪽 끄트머리를 명주실로 재면 몇 타래나 된다니?”

아버지의 그런 호기심을 채워드리기 위해 나는 늘 하늘과 친숙해야 했다. 하늘과 친숙해지면 사람이 멍청해진다. 결국 아버지는 바보스러운 아들, 바보스러운 소설가를 만들어 낸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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