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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경과 코란 / 황건
인하의대 성형외과 교수
[67호] 2016년 09월 01일 (목) 황건 jokerhg@naver.com

런던에 체류 중에 말로만 듣던 ‘런던 책 전시회(London Book Fair)’가 사흘간만 열린다기에 만사 제쳐 두고 가 보았다. 올림피아 역에 자리한 ‘올림피아전시장’은 우리나라 코엑스 전시장보다 훨씬 컸는데 그 넓은 곳을 개별 부스들이 가득히 메우고 있었다. 곳곳에 배치된 강의실에서는 저자와의 만남, 편집인과의 만남, 출판인과의 만남 등 시시각각 유익한 강의가 진행되고 있었다. 좌석에 앉은 관중보다는 서서 듣거나 바닥에 앉은 사람이 한결 많아 보였다.

각 부스를 순회하다가 2층 한구석에 ‘코란 프로젝트(Quran pr-oject)’라고 쓰인 작은 부스 앞에서 발길을 멈추었다. 아랍어로 된 이슬람 경전을 영어로 번역하여 전시하고는 원하는 사람들에게는 무료로 한 권씩 나누어 주고 있었다.
책장을 넘기다 보니 맨 뒷부분에는 ‘부록(appendix)’들이 있었는데 낯익은 그림들이 눈길을 끌었다. 마치 백과사전을 펼쳐 본 것처럼 천문학 또는 의학적 자료들이 상세히 그려져 있었다.

〈천문학〉 편에는 코란 경전 내용과 현대의 과학을 비교하여, ‘빅뱅이론’이 이미 코란에 예언되어 있었다는 논리를 설명하고 있었다. 〈태생학〉 편에는 태아가 수정 후 발육하는 과정과 경전에 기술된 내용을 비교하여, 태생학이 의학적으로 정립되기 천 수백여 년 전에 이미 코란에 정립되었다는 사실을 강조하고 있었다. 〈유전학〉 편에는 코란 36장 36절인 “하나님께 영광이 있으소서. 그분께서는 대지가 생산하는 모든 것을 자웅으로 두셨고 인간도 그리고 알지 못하는 것도 자웅으로 지으셨노라.(Exalted is He who created all pairs-from what the earth grows and from themselves and from that which they do not know)”라는 대목을 인용하고 있었다. 즉 DNA 이중나선 구조의 아데닌과 티민, 구아닌과 시토신으로 짝을 이루는 염기서열을 보고 경전에서 이미 유전자의 본체까지 파악하고 있었다고 기술한 것이 아닌가.

딱히 수긍이 가는 내용은 아니었지만 그들의 노력이 신기해 보일 만큼 가상했다. 코란이 워낙 우리와는 멀리 떨어진 종교의 경전이므로 제대로 접할 길이 없었지만, 이토록 과학적으로 앞서 있었다고 주장하리라곤 여태 생각지 못한 일이었다.

이렇게 코란 프로젝트 중 ‘부록’을 만들어 경전과 과학을 연결시킨 목적은 이슬람 예언의 우월성을 통해서 인간존재의 의미를 알게 해 주고 우주의 질서감을 일깨워주려 함일 것이다.

그로부터 며칠 후 학회에서 모로코 출신의 성형외과 여의사와 이야기할 기회가 있었다. 내가 본 코란의 부록에 대하여 이야기하였더니 무슬림인 그녀는 이미 그 책을 읽었고 내용까지 훤히 알고 있었다. 뿐만 아니라 그녀는 무신론자인 남편에게 그 책을 보여주어 마침내 그를 무슬림으로 이끌었다고 자랑스레 말하였다. 결혼 후에 개종하는 부부는 흔히 있지만, 그녀의 남편도 의사라는데 코란 설명서를 본 후에 무슬림에 이끌렸다는 말을 듣고 코란의 설득력에 놀랐다.

귀국 후 인터넷에서 ‘코란’ ‘꾸란’에 대하여 검색하여 보았다. 여행자들이 안전을 위하여 몇 구절을 공유하는 내용이 대부분이었으나, ‘코란 몇 장’이라고 검색하면 ‘이슬람사전’에 연결되어 그 숫자에 해당하는 장의 내용이 아랍어 없이 한글로 알기 쉽게 번역되어 있었다. IS가 판치는 오늘날 코란을 암기하면 행여 목숨을 보존할까 하는 젊은이들의 대비책의 일환 같아 보였다.

문득 몇 년 전 들렀던 비슬산 유가사가 떠올랐다. 그곳 기둥의 주련들은 비록 행서체의 한문으로 쓰여 있었지만, 108돌탑 앞에 있던 목판들에는 육조혜능 선사의 말씀을 쉬운 우리말로 풀어 놓고 있었다. 일연 스님의 시비는 한문으로 쓰여 있었는데, 무산 스님의 시비는 한글로 새겨져 있었다. “비슬산 구비 길을 누가 돌아가는 걸까/ 나무들 세월 벗고 구름 비껴 섰는 골을/ 푸드득 하늘 가르며 까투리가 나는 걸까” 하는 대목을 등산을 마치고 내려오던 부모와 초등학생 아이가 시비 앞에 멈추어 소리 내어 읽던 장면이 유난히 기억에 남는다.

인도에서 시작된 불교는 현장법사 등에 의해 중국으로 전래되며 한문으로 번역되었다. 삼국시대에 한반도로 전래된 이래 불경과 그 해설은 한자로 쓰였다가, 조선시대 세종의 훈민정음 창제 이후 세조 때 한글로 번역된 《능엄경언해》 《금강경언해》 《심경언해》 《원각경언해》 등이 출간되었다.

불교가 서방으로 전래되면서 불경 또한 영어로 번역되어 세계적으로 공유하게 되었다. 불교에 관심이 컸던 영국의 종교학자 에반스 웬츠에 의하여 ‘파드마삼바바’가 쓴 《티베트 사자의 서(The Tibetan Book of the Dead)》가 서방에 소개되어 서구의 기독교적 영혼관에 큰 충격을 안겨주었다. 특히 집단 무의식 이론을 세운 심리학자 칼 융에게도 깊은 영향을 미쳤다. 이렇듯 종교적 경전들은 한 지역에 머물지 않고 공간을 초월하여 세계로 빠르게 전파되는 것이 그 속성이리라. 

과학의 선진화를 주장하는 코란의 부록이 아니라 우주의 오묘함을 설파한 불경이야말로 예언적 내용을 가진 경전이 많이 있을 것이다. “나는 이렇게 들었다(如是我聞)”로 시작되는 불경 중에서 현대의 과학을 미리 예언한 부분을 찾아본다면 코란을 능가하고도 남으리란 생각이 들었다. 다만 한자로 된 불경이 쉬운 한글로 번역되었으나, 독송할 때에는 한자를 그대로 읽고 있어 들을 때마다 아쉬움을 느낀다. 한자로 읽기보다는 우리말로 독송하면 불자가 아닌 누구라도 쉽게 이해할 수 있지 않을까?

종교개혁자 루터가 처음 한 일이 라틴어 성서를 독일어로 번역하였던 것이며, 구텐베르크의 활자가 성서를 일반인에게 보급할 수 있었던 것으로 비추어, ‘독자가 읽기 편함(Reader-friendly)’은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가장 필요한 일임에 틀림없다. 우리 불교도 예외는 아닐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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