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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교출판의 현황과 과제
홍사성 불교방송 상무
[27호] 2006년 09월 10일 (일) 홍사성 불교방송 상무

1. 문서포교의 중요성

불교가 문자를 포교의 수단으로 활용해온 것은 부처님의 말씀을 정리해놓은 경전을 문자화하면서부터다. 경전의 문자화는 부처님이 입멸한 지 500여년 뒤쯤의 일이다. 그 이전까지는 암송과 구전에 의해 가르침을 전지(傳持)해왔다.

경전의 문자화가 생각보다 늦어진 이유는 고대 인도인들의 종교적 신성관념과 관계가 있었다고 생각된다. 고대 인도인들은 『베다』와 같은 종교적 가르침을 문자로 정리하는 것을 터부시했다. 종교적 신성한 가르침을 개념화된 ‘문자’로 기록하다보면 도리어 오류를 범할지도 모른다는 우려 때문이었다. 예컨대 단어를 잘못 선택하면 암송에 의한 것보다 더 심한 왜곡이 생긴다는 것이다.1)

인도에서 태어난 불교가 경전의 문자화를 늦게야 실행한 것은 이런 전통과 무관하지 않다.

성전언어의 문자화를 금기시해온 인도의 오랜 전통에도 불구하고 불교가 문자화를 추진한 것은 교단의 내부사정 때문이었다. 부처님이 입멸한 뒤 불교교단은 가섭존자가 좌장이 되어 가르침을 정리했다. 불멸후 100일 만에 마가다의 왕사성 칠엽굴에서 이루어진 최초결집은 아난존자의 법(法)에 대한 기억과 우파리존자의 계율(戒律)에 대한 기억을 중심으로 이루어졌다. 두 사람이 자기가 기억하는 내용을 대중에게 송출하면 참석한 5백 명의 대중은 토론을 거쳐 그것을 부처님의 참다운 가르침으로 승인했다.

이렇게 이루어진 경장과 율장의 편찬사업은 수백 년간 암송과 구전으로 전해졌다. 이를 위해서는 전문적인 암송가와 해석가가 존재하기도 했다. 그런데 이러한 방법은 시간이 경과하자 부분적인 왜곡과 변질을 초래했다. 문자로 기록되지 않은 부처님의 가르침은 부파마다 조금씩 다른 경장과 율장을 봉지(奉持)하게 만들었다. 그리고 이는 다시 정법과 비법의 논쟁을 불러왔다. 정법에 대한 논쟁을 해결하기 위해 불교교단은 대규모의 경전편찬 회의를 다시 개최해야 했다. 불교교단사에서 근본분열과 지말분열이 일어난 시기에 있었던 여러 차례의 결집은 이렇게 해서 행해진 것이었다.

사실 아무리 초인적 기억력에 의지한다 하더라도 부처님이 45년간 설법한 내용을 암송으로 전지해가는 데는 한계가 있기 마련이다. 따라서 정법을 오래도록 바르게 전하고 해석상의 시비를 줄이기 위해서는 다른 방법을 찾아야 했다. 그것이 바로 기억력에 의지하는 암송보다는 문자로 기록하고 보존하는 ‘가르침의 성문화’ ‘경전의 문자화’였다.

경전의 문자화가 이루어지자 불교경전의 대중적 보급은 매우 빠른 속도로 진행됐다. 특히 대승불교운동을 주도했던 사람들은 누구보다 경전의 대중화에 많은 노력을 기울였다. 대승불교 운동가들의 경전대중화 노력은 ‘경전유통공덕’의 강조에서 여실하게 드러난다. 이들은 경전의 대량제작과 유통이야말로 대승불교운동을 성공시키는 요체로 인식했다. 많은 대승경전이 반드시 그 말미에서 경전의 유통공덕을 특별히 강조한 것은 이런 의지와 신앙이 반영된 것이다.

“어떤 사람이 이 경을 수지독송하고 그 의취를 알게 되면 이 사람은 목숨을 마친 뒤에 일천 부처님이 손을 내밀어 악취에 떨어지지 않게 하리라…이와 같은 공덕과 이익이 있으므로 지혜 있는 자는 마땅히 일심으로 자기가 쓰거나 남을 시켜서 쓰며 수지하고 독송하여 바로 생각하고 여설수행하나니라….”2)

“만일 어떤 사람이 무량아승지 세계를 칠보로 가득 채워 보시를 했다고 하자. 그러나 만일 선남자 선여인이 이 경의 사구게(四句偈) 만이라도 수지하고 독송하고 타인을 위해 해설하면 그 복이 저 복보다 뛰어난 것이다….”3)

경전에 대한 유통공덕의 강조는 나중에 이웃에게 책을 선물하는 ‘법보시(法布施)’라는 독특한 문화를 발전시켰다. 우리나라에서 성행한 경전 옮겨 쓰기 즉 사경법회(寫經法會)도 법보시 방법의 일종이었다. 고려시대에 성행한 이 의식은 모든 경전에 나오는 유통분에 근거를 둔 것이었다. 이 법회는 부처님의 가르침을 보다 바르게 이해시키는 효과 외에도 경전을 대량 보급하는 계기가 되었다. 또 사경법회는 그 자체만으로 포교의 영역을 널리 확대하는 방법이기도 했다.

불교가 이렇게 경전유통에 큰 관심과 노력을 기울인 것은 활자미디어의 장점인 정확성과 기록성을 이용해 정법을 오랫동안 보존하고 바르게 전지하며 널리 확대하고 보급하기 위해서였다. 정법을 정확하게 배우고 널리 전하는 방법으로서 활자미디어처럼 유용한 수단도 없다는 인식은 불교가 이 사업을 중요하게 여겨온 가장 큰 이유였다.

2. 한국불교의 문서포교 역사

불교의 경전유통에 대한 열의는 고대사회의 인쇄술과 제지술을 발전시키는 원동력이 됐다.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목판이나 금속활자 인쇄본이 모두 불교의 경전이나 저술이라는 사실이 이를 말해준다.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목판인쇄본은 1966년 불국사 석가탑에서 나온 『무구정광대다라니경』이다. 이전까지 최고(最古)의 목판인쇄물은 영국의 대영박물관이 소장하고 있는 당나라 함통9년(869) 간기(刊記)의 『금강반야바라밀경』이었다. 그러나 석가탑은 조성연대가 751년이므로 함통연간의 『금강경반야바라밀경』보다 『무구정광대다라니경』이 118년이나 앞선다.

금속활자 인쇄본도 1375년 우리나라 청주에서 인쇄된 『직지심체요절』이 최고본이다. 프랑스의 소르본느대학이 소장하고 있다가 1972년 파리에서 열린 ‘책의 역사’에 첫 선을 보인 이 책은, 1450년 독일의 마인츠에서 구텐베르크가 찍었다는 42행의 『성경』보다 77년이 앞선다. 이러한 사실은 불교가 역사적으로 문서교포에 얼마나 큰 관심과 가져왔으며 이로 인해 출판문화가 얼마나 앞서 있었던가를 말해주는 것이다.

우리나라 불교의 문서포교 의지를 가장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역사적 사건은 고려시대에 완성된 대장경의 조조(彫造)다. 두 차례에 걸쳐 조조된 고려대장경은 불교의 경전보급 사업을 국가적 차원에서 시행한 것이다. 고려가 고려대장경 초조본을 제작한 것은 현종2년(1011년) 거란의 침입을 계기로 시작해서 선종4년(1087년)까지 76년 동안이었다. 이 초조본은 대구 부인사에서 간경도감을 두고 송본과 거란본 그리고 그때까지 국내에서 개판된 판본을 저본으로 해서 『대반야경』 등 6,000여권의 경전을 새기는 대역사였다.

이 대장경은 고종19년(1232) 몽고의 침입을 받아 소실되는 비운을 맞았다. 고려정부는 몽고의 침입을 불력(佛力)으로 극복하기 위해 강화에서 다시 대장경 조조를 착수했다. 고려는 이곳에서 고종 23년(1236)부터 고종38년(1251년)까지 16년 동안 그야말로 국력을 모아 총 1511부, 6802권, 81,258판의 세칭 ‘팔만대장경’을 만들었다. 유네스코는 1995년 12월 이 경판을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했다. 이 경판은 세계적인 가치를 인정한 것이었다.4)

훈민정음이 창제(1443년)된 조선조 세종시대에도 주목할 만한 불교출판물들이 간행됐다. 부처님의 일생과 가계(家系)를 국한혼용으로 기록한 『석보상절』(1447년)과 『월인천강지곡』(1447년)은 국문학적 자료로도 중요하지만 불교의 대중포교에도 큰 역할을 한 문서였다. 세조시대(1455~1468)에는 간경도감(刊經都監)을 설치하여 불교서적을 집중적으로 간행했다. 이 시기에는 특히 『금강경』 『법화경』 『능엄경』 등의 경전이 언문으로 출판됐다. 이것은 현대에 이르러 완성된 ‘한글대장경’의 원초적 모습이라는 점에서 주목된다.

3. 근대 이후 불교출판의 흐름

1) 해방 이전의 불교출판

우리나라에 근대적 출판이 시작된 것은 최초의 민간출판사인 광인사(廣印社)가 설립되면서부터다. 광인사는 1884년 일본에서 납활자를 수입해서 근대한국 최초의 출판물인 『충효경집주합벽(忠孝經集注合壁)』(1884)을 비롯해 『농정신편(農政新編)』(1885) 『만국정표(萬國政表)』(1885) 『농정촬요(農政撮要)』(1886) 등 신문화 계몽에 필요한 서적들을 출판했다.

한편 1885년 서울 정동에 설치된 천주교 인쇄소에서는 일본 나가사키(長崎)로부터 한글 활자를 들여와 『성경』을 간행하기 시작했다. 같은 해 개신교 쪽에서는 배재학당의 설립과 더불어 학당 내에 설치된 인쇄소 겸 출판사인 삼문사(三文社)를 통해 교리 관련 서적들을 간행했다.5)

새로운 시대적 변화에 대응해 불교계에서도 현대적 인쇄기술인 연활자본에 의한 불서출판이 시작됐다. 하지만 천주교나 개신교에 비하면 불교계는 몇 십 년이 늦었다. 불교의 근대적 출판물로 추정되는 책은 연사(蓮社)라는 곳에서 출판한 『불설아미타경 언해』(1905) 이원석역 『금강반야바라밀경』(1908) 등이 있다. 그러나 이 출판물이 납활자본인 지는 알 수 없다. 현재까지 조사된 최초의 단행본은 1912년 대창서원에서 간행한 현공렴(玄公廉)이 저서 『석가여래전』이다.

단행본 범주에 넣어야 할지는 고려해야 하지만 같은 해 조선불교월보사는 건봉사, 김룡사, 법주사, 법흥사, 용주사, 위봉사, 유점사, 해인사의 『본말사법(本末寺法)』을 간행했다. 이어 1913년에는 이교담(李交潭)의 『팔상록』(중앙포교원) 한용운(韓龍雲)의 『조선불교유신론』(불교서관) 등이 간행됐다.6)

서양종교보다 비교적 늦게 시작된 불교계의 출판활동은 이후 선각적 고승들에 의해 활발하게 전개됐다. 그 대표적인 예가 백용성이 이끈 삼장역회(三藏譯會), 안진호가 개원한 만상회(卍商會), 김대은이 경영했던 불교시보사(佛敎時報社) 등이다.

백용성(白龍城 : 1864~1940)의 삼장역회는 불교포교와 경전의 한글화를 목표로 1921년 8월에 설립됐다. 백용성은 이 출판사를 통해 18년간 17종 29권에 달하는 불서를 간행했다. 대표적인 불교서적은 『심조만유론』(1921) 『팔상록』(1922) 『조선글 화엄경』(1928) 등이다. 백용성은 삼장역회 말고도 대각교당 등의 이름으로 『각해일륜』(1930) 8종의 서적을 간행하기도 했다. 이를 합치면 백용성이 간행한 불교서적은 24종 37권이나 된다.7)

안진호(安震湖 : 1880~1965)의 만상회는 지금도 불교의식집으로 애용되는 『석문의범』(1935)을 비롯해 『정선치문』 『석가여래 십지행록』(1936) 『신편 팔상록』(1942) 등의 불서를 간행했다. 만상회는 1935년부터 1944년까지 10년 남짓 출판활동을 했는데 이 기간 동안 간행한 불서는 39종이나 된다. 한해에 4~5종씩 출판한 셈인데 당시의 사정을 고려하면 매우 왕성한 출판활동이라 할 수 있다.8)

김대은(金大隱 : 1989~1989)의 불교시보사는 잡지도 출판하면서 단행본도 출판한 곳이다. 불교시보사는 1935년부터 1945년까지 통권 117호의 잡지(불교시보)를 발행했다. 이 잡지는 불교의 현대화와 대중화를 위해 여러 가지 계몽적 논설을 게재함으로써 당시의 불교계를 선도했다. 단행본으로는 『보덕각시 연기』 『부처님 말씀』 『육조대사』 『불교의 입문』(1935) 등을 간행해 대중포교에 이바지했다.9)

이 시기 불교계 출판활동의 특징은 회사를 설립한 사주(社主)가 직접 책을 저술하거나 번역하고 있다는 점이다. 백용성이나 안진호 김대은 등은 당대를 주름잡던 강사, 유학승이었다. 이들 선각적 불교지식인들은 대중포교를 위해 불서출판의 중요성을 절감하고 출판활동에 적극 나섰다. 이 점은 현대의 출판활동이 재가불자들에 의해 주도되고 있는 것과 비교될만한 흥미로운 현상이다.

이렇게 시작된 불교출판은 해방 전까지 비교적 활발한 활동을 펼친 것으로 보인다. 이철교의 『한국불교관계논저 종합목록집』 따르면 해방 이전까지 우리나라에서 간행된 불교서적은 대략 3백여 종에 이른다.10)

그러나 해방 이후 1960년까지는 침체기를 거친다. 1950년에 발발한 6.25 전쟁과 1954년부터 시작된 불교정화운동 등 내외적 상황은 포교나 불교출판에 관심을 기울일 형편이 아니었다. 이런 사정 때문에 해방이후 60년대 초까지 간행된 불교서적은 2백여 종에 불과하다.11)

그러나 이 무렵 간행된 김동화의 『불교학개론』(백영사, 1954)은 주목할 만한 책이다. 일제 때 일본에 유학했던 불교학자 김동화가 불교교리의 전반을 현대적 학문방법으로 정리한 이 책은 이후 불교학 연구에 큰 디딤돌이 되었다.

2) 불교출판의 현대화 모색기(1960년~1975년)

1960년대 이후 불교출판에서 주목할 출판사는 법보원(法寶院)이다. 불경의 한글화 대중화에 큰 관심을 가졌던 강석주(姜昔珠 : 1988~1998)에 의해 주도된 이 출판사는 불교출판의 불모기였던 1960년대 초 『열반경』 『법화경』 『육조단경』 등 주로 한글경전의 번역 간행에 힘썼다. 특히 1961년에는 우리나라 불교 최초로 운허 스님이 편집한 『불교사전』을 간행해 불교계에 큰 기여를 했다.

1972년 문을 닫기까지 약 10여 년 동안 30여종의 불서를 간행했는데 아직도 읽히고 있는 김달진 역 『한산시』(1964) 등이 이 무렵에 출판됐다. 나중에 여러 곳에서 중판을 거듭한 『불자지송』(1964)도 법보원에서 처음으로 간행한 책이다.12)

1960년대 후반 이후 불교계 출판활동은 몇몇 전문출판사가 설립됨으로써 새로운 전기를 맞는다. 원음각(1966) 보련각(1968) 불서보급사(1968) 홍법원(1968) 등장이 그것이다. 이 출판사들은 1970년대 후반까지 불교출판활동을 주도하며 불교계 대중출판의 단초를 열었다. 예컨대 원음각은 당시 불교계에서 큰 화제를 모았던 이기영의 『원효사상』 서경수의 『세속의 길 열반의 길』을 잇달아 내면서 주목받았다. 김봉수에 의해 설립된 보련각은 주로 경전과 강원교재의 영인본 출간으로 유명하다. 김길상이 설립한 홍법원은 본격적인 대중적 불서출판의 시대를 연 출판사로 기억된다. 대표적인 출판물로는 『불교교리문답』을 비롯해 『고승법어집』 등이 있다.

이 시기 불교출판에서 특별히 눈여겨 볼 점은 경전류의 번역과 고승들의 법어집 출간이다. 당시 불교출판을 주도하던 사람들의 생각은 우선 불교경전의 ‘한글화’가 무엇보다 시급하다는 인식을 가졌던 것 같다. 60년대 초 불교출판활동을 이끌어간 법보원의 출판물이 주로 경전번역에 주력한 점이라든가, 1964년 운허 스님의 주도로 동국역경원이 설치되고 한글대장경 간행이 시작된 것 등이 그 반증이다.

그러나 번역된 경전은 일반불자들이 읽어내기에는 한계가 있었다. 단일한 경전으로는 불교의 복잡하고 심오한 교리체계를 이해하기란 무리였다. 이러한 현실에 조응한 출판물이 1968년 홍법원에서 간행한 『현대고승법어집』과 김길상의 『불교교리문답』이다. 이들 법어집과 교리문답집은 다양하고 방대한 불교교리를 비교적 알기 쉽게 설명하는 간행물이어서 독자들의 호응을 받았다. 이와 함께 행원 스님이 중국선승의 선화를 정리한 『도화집』(1987, 불교서적센터) 등도 일반인들의 불교수행에 대한 관심에 호응해준 책들이었다.

이 시기 불교출판에서 또 한 가지 주목할 만한 흐름은 ‘불교문학’ 관련의 책이 여러 종 간행된 점이다. 예를 들면 문학평론가로 활동하던 김운학 스님의 『삼매의 언어』(1968, 불서보급회) 시인인 석지현 스님의 『선시』(1974, 현암사) 운학 스님의 『불교문학 연구』(1974, 현암사) 황패강의 『신라불교설화 연구』(1976, 일지사) 등이 잇달아 간행되었다. 또 많은 승려시인의 등장으로 불교계 안에 문학 활동이 큰 유행을 이루기도 했다. 시집으로는 조오현의 『심우도』(1979, 한국문학) 등이 간행됐다.

3) 번역불서 출판의 시기

불교출판이 본격적으로 대중화된 시기는 1980년도를 전후해 보다 전문화된 출판사들이 등장하면서부터다. 근대한국 불교출판의 선구자인 백용성의 손제자 고광덕(高光德)이 월간잡지 『불광』을 간행하면서 부설로 설립한 불광출판부(1979), 뒷날 한국불교 현대출판의 조류를 바꾼 민족사(1980), 조계사 앞에서 서점을 하면서 불교출판에 뛰어든 경서원(1980) 등이 모두 비슷한 시기에 출발했다.

불광출판부는 광덕 스님의 저서를 시작으로 ‘신행과 관련된 쉬운 불서’를 간행하는데 초점을 맞추었다. 불광출판부는 ‘바라밀총서’ 외에 선과 신행 관련 단행본 등 100여 종의 불서를 간행했다. 경서원은 영세자본의 한계를 딛고 『불교경전의 성립』 등 좋은 서적을 꾸준하게 간행하고 있다. 또 민족사는 ‘깨달음의 총서’와 ‘불교 학술총서’ 등 수백 종의 불서를 쏟아내며 불교출판을 주도했다.13)

80년대 초반에서 10여년 사이의 불교출판활동의 성격을 규정하면 ‘외국불서 번역출판’을 들 수 있다. 이 시기의 번역출판은 불교계만이 아니었다. 일반출판계도 80년대에는 외국의 사회과학서적을 번역 출판하는 것이 하나의 경향이었다. 불교계의 번역출판이 반드시 이러한 영향 때문은 아니지만 시기적으로 보면 일반출판계와 흐름과 일치한다. 일종의 문화운동 성격을 지닌 번역출판은 국내 불교학계를 크게 자극하는 역할을 했다.

불교계 번역출판의 선두주자는 민족사다. 윤창화에 의해 설립된 민족사는 첫 출판물로 여익구가 편역한 『불교의 사회사상』(1981)을 출간했으나, 엄혹한 군부통치 아래 판금(販禁)되고 말았다. 불교서적으로 군사정부에 의해 판금된 책은 이 책이 처음이었다. 영세 자본으로 출발한 민족사는 이후 단행본 출판에서 잠시 물러나 주로 일본불교학계의 우수한 불교연구서를 영인해서 판매하는 쪽으로 방향을 바꾸었다. 민족사는 6~7년간 300여 종에 이르는 일본불서를 영인해 국내에 소개했다.

민족사가 다시 단행본출판에 눈을 돌린 것은 1986년부터다. 일본학계의 우수한 교리서적을 영인하면서 축적한 도서정보를 활용해 이를 국내에 번역 출판하는 쪽으로 방향을 선회한 것이다. 민족사는 이후 1990년대 중반까지 10여년에 걸쳐 집중적으로 외국불서를 번역 출판했다. 그 종수는 80여종이 넘는다. 이중 80% 가까이는 일본서적이고 나머지는 영어권 불교서적이다. 민족사가 거의 홍수처럼 쏟아낸 ‘외국불서 번역출판’은 이 시기 출판활동의 성격을 규정할 만큼 큰 비중을 차지했다. 80년대 이후 불교출판에 뛰어든 많은 출판사들도 우선 번역출판부터 시작하는 경우가 많았다. 이는 국내의 필자수가 부족한데다가 대중의 요구에 부합하는 저작활동이 부족한 것에 그 원인이 있었다.

민족사의 이 같은 출판활동은 몇 가지 측면에서 주목된다. 무엇보다 불교출판의 내용을 풍부하게 했다는 점이다. 이전까지 불교출판은 전통적인 강원교재와 염불독송집 간행이 고작이었다. 한글로 된 새로운 불교서적이 나오지 않은 것은 아니지만 그 수준이나 체재 등 여러 가지 측면에서 낙후를 못했다. 이런 환경에서 민족사의 활발한 출판활동은 불교학계는 물론 불교계 전체의 지적 수준을 향상시키는데 큰 역할을 했다. 특히 일본과 서양의 현대적 연구 성과를 본격적으로 소개함으로써 국내불교학계의 연구의욕을 자극한 점은 이 출판사가 한국불교에 기여한 보이지 않는 공로다. 한마디로 민족사는 80년대 이후 한국불교출판계를 이끌어가는 견인차 역할을 했다고 해도 지나치지 않다.14)

민족사의 불서출판은 사업적으로도 어느 정도 성공을 거둔 것으로 평가된다. 매출규모가 일반출판에 크게 미치지 못하지만 잘만하면 자본잠식은 면할 수 있다는 기대를 갖게 했다. 이러한 기대감은 새로운 출판사의 설립으로 이어졌다. 1984년 불일출판사를 필두로 대원정사(1987) 장경각(1987) 우리출판사(1988) 불교시대사(1990) 효림(1992) 불지사(1992) 등이 잇따라 문을 열었다. 이들 출판사는 기존의 출판사와 경쟁하며 현대불교출판의 황금기를 만들어 나갔다. 한편 1989년에는 불교서적을 전문적으로 공급하는 총판회사 운주사가 설립됐다. 운주사는 이후 1990년대부터 시작된 불교출판의 황금시기를 맞아 불교출판물의 보급망 확대와 대중화 크게 기여했다.

4) 불교출판의 황금시기

1980년대 중반부터 가속도가 붙기 시작한 불교출판은 1990년대에 이르면 근대 이후 가장 왕성한 출판활동을 보였다. 이 시기의 불교출판계는 출판사 수에서나 출판물량에서 정점을 이루고 있었다. 이 중 불교시대사는 불교계 최초의 총서인 ‘만다라총서’ 20권을 간행하고 『불교상식백과』 『한국불교인명사전』 『한국불교사찰사전』 등 특화된 사전을 간행해 주목을 모았다. 또 장경각은 중국선종의 중요한 출판물들을 번역한 ‘선림고경총서’ 40여권을 간행해 이 분야에서 독보적인 위치를 구축했다.

출판사 수의 증가는 출판물량의 증가를 가져왔다. 1990년부터 2000년에 이르는 10여 년 동안 출판된 각종 불교관련 서적들은 과거에 비할 때 양적으로도 뚜렷한 성장세를 보였다. 2000년도판 『불교서적 종합목록』15) 에 수록된 단행본 목록은 불교출판이 어디까지 왔는가를 보여준다. 이 목록집에는 그 때까지 간행된 총2,605종의 불교서적을 크게 13가지로 분류해서 소개하고 있다. 이 수치를 1960년대 초반까지 유통되던 불교관련 서적의 종수와 비교해보면 5배 이상의 성장세를 보여주는 자료다.

이 목록집에서 또 한 가지 주목되는 점은 종류의 다양성이다. 이 목록집은 일반적 도서분류법인 10진법 대신 입문, 불교사, 철학 및 교리, 불교경전, 의식, 고승전기, 포교와 교육, 문학, 법어집, 선어록과 수행, 불교예술, 어린이, 기타 등 13가지로 나누고 있다. 이 가운데 각 항목은 다시 몇 가지 소항목으로 나누어지고 있다.

이를테면 불교사의 경우 소항목에는 인도불교의 역사와 중국불교의 역사, 한국불교의 역사 등으로 나누어진다. 각국의 불교사 항목을 살펴보면, 보다 전문화된 도서명도 보인다. 교리만 하더라도 대승불교 소승불교 유식불교 화엄불교 등으로 나누고 있다. 이러한 분류는 이미 우리나라 불교서적이 총론이나 통사의 수준을 넘어 각론 수준에 진입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것이다.

1990년대 불교출판에서 또 한 가지 특기해야 할 점은 장정과 체재의 변화와 발전이다. 사실 1980년도 이전까지만 해도 불교서적은 투박한 편집과 조악한 장정이 특징처럼 여겨졌다. 가로조판은 일반출판물도 시도하지 않은 것이니 그렇다 하더라도 편집이나 디자인 개념은 눈을 씻고 찾아보아도 없었다. 불교출판계에 편집과 디자인 개념을 도입한 것은 민족사와 불교시대사 불지사와 같은 신생출판사들이었다.

이곳에서 출판한 불교서적들은 독자의 눈높이에 맞춘 새로운 감각의 편집과 디자인을 선보였다. 그 중에서도 불지사의 활약은 단연 돋보인다. 김형균에 의해 1992년에 설립된 불지사는 편집대행을 전문으로 하면서 단행본도 간행하는 출판사였다. 이 회사는 전문디자이너를 고용해 품위 있고 아름다운 책을 만드는데 앞장섰다. 종래의 편집개념에서 한발 앞서 디자인 개념으로 접근한 불지사 편집스타일은 이내 불교출판계에 널리 전파됐다.

이때부터 불교출판은 내용도 내용이지만 편집과 디자인에서 독자의 시선을 사로잡기 시작했다. 불지사는 이밖에도 출판대행을 통해 쌓은 편집실무자를 양성하고 배출해서 불교계 출판사에 공급하는 출판인력 양성소 역할도 톡톡하게 해냈다.

이 시기 불교출판에서 빼놓을 수 없는 흐름 가운데 하나는 일반출판사들의 불교서적 간행이다. 불교교리와 사상의 이해에 대한 대중적 수요를 영세한 불교계 출판사가 다 감당하지 못하자 일반대형출판사들이 상업적 성과를 겨냥해 불서출판을 시작한 것이다.

이 분야는 현암사와 같은 대형출판사가 이미 1970년대 초에 ‘현대인의 불교’라는 전집을 간행해서 성공을 거둔 바 있는 데서도 그 가능성을 인정받고 있었다. 이러한 경험은 고려원, 김영사, 세계사와 같은 출판사의 관심을 유발시켰다. 고려원의 경우 1985년부터 30여권에 이르는 ‘다르마총서’를 간행했으며 김영사는 ‘불타의 세계’ 등 스테디 불서를 여러 종 만들었다. 세계사는 ‘마음글방’이라는 20여권에 이르는 총서를 제작했다.

이밖에도 많은 출판사들이 불교서적 출판에 참여했다. 여기에는 출판사 사주들의 불교에 대한 개인적 관심도 한몫을 했다. 하지만 보다 근본적인 것은 불교서적에 대한 대중적 수요와 상업적 가능성에 대한 일반출판계의 화답이라고 해야 할 것이다.

1990년대 불교출판의 성격을 한마디로 요약하면 내용의 다양화와 편집의 고급화가 동시에 일어난 ‘불교출판의 황금시대’라 할 만하다. 양적으로도 많은 서적이 출판되었지만 질적으로도 높은 수준에 도달하고 있었다. 특히 번역출판을 통해 외국의 불교연구 성과를 국내에 소개한 것은 한국불교의 지적 수준을 향상시키는 데 크게 기여했다.
모든 지적인 성과가 책을 통해 나타나고, 책은 다시 읽는 사람을 성장시킨다.

이런 전제를 인정한다면 1990년대 불교출판의 성장은 곧 한국불교의 지적 성장을 의미하는 것이었다. 사실 현대 한국의 불교도들은 알게 모르게 불서를 통해 바른 신앙의 길을 찾아왔으며 지적 수준을 성장시켜 왔다. 이 시기에 집중적으로 간행된 불서가 아니면 한국불교의 학문적 깊이나 세련도도 현재보다 훨씬 낮았을 것이다. 보다 적극적으로 말하면 한국불교의 지적수준은 이 시기를 거치면서 놀라운 성장을 이룩했다. 그리고 그 공로의 8할은 바로 불교출판의 몫이라 해도 좋다.

5) 불교출판의 침체기

1998년은 한국사회 전체가 이른바 IMF 관리체제로 들어간 매우 어려운 시기였다. 기업들은 도산하고 여기저기서 대량으로 실업자가 양산되었다. 불경기는 전산업(全産業)으로 확대되었다. 이 여파는 그러잖아도 취약한 불교출판계에 해일처럼 밀어닥쳤다. 많은 출판사들이 활동을 축소하거나 문을 닫는 지경에 이르렀다.

IMF 이후 출판활동을 잠정적으로 중단한 출판사는 대원정사 비롯해 불일출판사 등 7~8개가 넘었다. 불과 30여개 남짓한 불교전문출판사 가운데 3분지 1이 활동을 중단한 것은 불교출판이 얼마나 위축됐는가를 보여주는 것이었다. 이로 말미암아 매년 늘어나던 불교출판물은 그 수치가 현격하게 떨어졌다.

불교출판의 위축현상은 IMF 관리체제가 끝난 2002년 이후까지 계속됐다. 대표적 전문출판사인 민족사의 경우만 해도 1990년대 중반까지 매년 20여종 이상 간행하던 출판물의 숫자를 10여종 이하로 줄였다. 불교시대사도 연간 10여종에서 절반으로 줄였다.

그 이유는 판매부진에도 원인이 있지만 새로운 필자가 발굴되지 않은 것과도 관계가 깊었다. 번역출판시대에는 외국의 좋은 불서를 선정하는 안목만 있으면 출판이 가능했다. 그런데 공교롭게도 IMF 관리체제로 들어간 시기는 외국의 좋은 불서를 번역해 소개하는 것이 어느 정도 마무리되는 시점이었다.

일반출판의 경우 이러한 시기가 되면 국내학계가 필자를 공급했다. 그동안 번역서로 공부한 독자들이 필자로 성장하여 좋은 책을 집필해줌으로써 공백을 채워주는 것이다. 그러나 불교의 경우 그 기간도 짧았을 뿐만 아니라 저변이 매우 좁았다. 불교출판계는 더 이상 번역할 출판물을 찾지 못하고, 국내에서는 아직 새로운 필자를 확보하지 못한 상태에서 침체기를 맞은 것이다.

또 한 가지는 변화된 출판문화의 일반적 트랜드를 읽어내지 못한 것도 주요 원인으로 지적할 수 있다. 2000년 이후 우리나라 출판계를 휩쓴 출판물은 명상류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였다. 특히 달라이라마와 틱낫한의 선풍적 인기는 일반출판계에서도 하나의 트랜드로 자리 잡는데 큰 역할을 했다. 문제는 이러한 출판물들이 불교전문출판사가 아닌 일반출판사에 의해 주도되고 있다는 점이다.

일반출판사들은 불교전문출판사들과는 달리 튼튼한 자본력과 신속한 정보취득, 발 빠른 대응, 상업적 접근으로 이 분야에서 놀라운 성공을 거두고 있다. 1990년대 중반부터 일반대형출판사가 불교출판물로 어느 정도 성과를 거둔 것과 비슷한 현상이 반복되고 있는 것이다.

불교적 명상을 주제로 하는 도서의 출판은 불교출판계에도 부분적인 영향을 끼치기는 했다. 우선 쉽게 읽히는 책을 만들려는 쪽으로 방향을 크게 선회하려는 움직임을 만들어냈다. 교리해설서는 딱딱한 이론보다 비유와 설화를 통한 이해에 중점을 둔 책이 눈에 띄게 늘었다. 스님 필자를 동원한 경전설화나 선문답 해설, 스타스님들의 수필집 출판도 늘어났다. 그러나 불교출판계의 여전한 관심은 신앙과 교리의 해설에 중심이 놓여 있다.

새로운 불교출판의 트랜드인 명상류나 수필류는 여전히 일반출판사들에 의해 주도되는 형국이다. 여기에는 일반출판사들이 불교전문출판사보다는 상업적 감각이 더 뛰어나다는 점도 한몫을 하고 있다. 필자들도 상업적 성공을 겨냥할 때는 전문출판사보다는 일반출판사를 선호한다. 이러한 현상이 불교출판의 앞날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는 더 두고 볼 일이다.

4. 불교출판의 과제와 대책

1) 통계로 살펴본 불교출판의 현황

우리나라 불교출판은 해방이후의 불교계의 어려운 사정을 고려하면 놀라운 성장을 보여 왔다. 윤창화가 문화부 납본기준으로 조사한 바16)에 의하면 1989년 이후 1998년까지 불교출판계는 매년 평균 200여종의 불교서적을 간행했다. 평균 이틀에 한 권이 넘는 새로운 불서를 간행한 셈이다. 그러나 이러한 숫자는 불교출판의 과거와 비교할 때만 의미가 있다. 발행종수나 발행부수 출판사, 전문서점을 다른 종교와 비교할 경우에는 전혀 다른 결론에 도달한다.

또 불교 자체적으로도 1998년 이후부터는 성장세가 멈추고 위축과 감소가 뚜렷해졌다. 출판협회에서 간행하는 『한국출판연감』17) 을 통해 지난 몇 년 사이의 변화를 비교해보면 이 점은 더욱 분명하게 드러난다.

1998년 판 『한국출판총람』에 의하면 1997년 한 해 동안 우리나라에서 발행된 단행본 도서는 2만2천7백69종이고, 발행 부수로는 1억3천4백61만6천4백95부였다. 이 가운데 ‘종교’ 항목으로 분류된 도서는 1천9백21종으로 전체도서에서 차지하는 구성비는 8.5%이다. 종교도서 가운데 불교도서는 150종이었으며 기독계통 도서는 1천5백여 종이 넘었다.

도서를 간행하는 출판사수는 6천6백7개사이며 이 중 기독전문출판사는 170개사 불교는 43개사다. 또 전국의 서점총수 4천7백39개소이며 기독계통은 3백 개소를 넘는다. 이에 비해 불교전문서점은 60여개 소(사찰서점 포함)를 밑돌고 있다. 한편 2005년 판 『한국출판총람』에 의하면 2004년 한 해 동안 우리나라에서 발행된 단행본 도서는 3만5천3백94종이고, 발행 부수로는 1억8백95만8천5백50부였다. 이 가운데 ‘종교’ 항목으로 분류된 도서는 1천1백81종으로 전체도서에서 차지하는 구성비는 3.35%이다.

종교도서 가운데 불교도서는 109종인 반면 기독계통 도서는 1천22종이다. 도서 종수와 발행 부수의 절대열세 현상은 출판사수에서도 마찬가지다. 2004년 현재 우리나라 출판사는 1만9천1백35개 6천6백7개 사에 이른다. 이 중 기독계통은 161개 사인데 비해 불교는 20개사에 머물고 있다. 전문매장(서점)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전국의 서점총수 2천3백28개소 가운데 기독계통은 470개소이고 불교전문서점은 사찰서점을 포함해 109개다.18)

이 자료를 중심으로 살펴보면 몇 가지 우려할 만한 현상이 드러나고 있다. 무엇보다 불교출판이 점점 위축되고 있다는 점이다. IMF직전인 1997년보다 8년 뒤인 2004년 불교출판의 사정이 훨씬 나쁘다. 기독교의 경우 발행종수가 줄어들기는 했지만 아직도 매년 1000종 이상의 도서를 발간하고 있다. 기독교는 1997년에 1500종을 발행했으나 2004년에는 1024종을 간행했다. 500여종이 줄어든 셈이다. 그러나 불교의 경우는 더 심각하다. 1997년에 150종을 발행했는데 2004년에는 109종으로 줄어들었다. 증감의 비율로 보면 기독교보다 다소 낫지만 총량으로 보면 여전히 10배 가까이 차이가 있다.

출판사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기독교는 1997년에 170개사에서 2004년에는 161개사로 줄었다. 이에 비해 불교는 40개사에서 18개사로 줄었다. 기독교는 감소가 별로 없는데 비해 불교는 절반 이하로 줄어든 것이다. 이와 상반된 자료도 있기는 하다. 『e불교정보』에 의하면 불교출판사 수는 전국적으로 무려 100여 곳이 넘는다.19)

그러나 이 자료집에서 적시한 출판사는 불교전문출판사가 아니라 불교관련 서적을 1권이라도 출판한 일반출판사까지 포함한 것이다. 정확한 비교를 하자면 기독교출판협회와 불교출판협회에 등록된 출판사만을 대상으로 해야 한다. 이를 근거로 한다면 불교전문출판사는 17개20) 기독교전문출판사는 161개다.21)

도저히 비교가 되지 않는 수치다. 다행한 것은 불교전문서점이 몇 년 사이에 늘어난 것이다. 기독교에 비해서는 여전히 적은 숫자지만 1998년 조사 때보다 50개 이상 늘어난 수치다. 불교출판 저성장시대에 하나의 이변이라 할 수 있는 현상이다. 이는 운주사가 그동안 판로 개척을 위해 기울인 노력이 수치로 나타나는 부분이기도 하다.

여기서 한 가지 유념할 부분은 불교출판의 위축이 불교계 전체의 미래에 미칠 영향에 대해서다. 두말할 것도 없이 출판문화사업은 불교지식사회를 이끄는 견인차다. 그러므로 불교출판 사업이 위축되면 불교지식사회 전체가 위축될 수밖에 없다. 불교지식사회가 위축되면 정법에 대한 기준과 판단이 모호해지고 온갖 사이비 불교가 횡행하게 된다. 역사적으로도 불교출판과 교학불교가 위축될 때 비법과 사이비가 횡행한 점은 오늘의 한국불교에 큰 교훈이 된다. 그런 점에서 최근의 불교출판의 침체는 우려할만한 일이다. 어렵더라도 불교출판이 새로운 활로와 대책을 찾아야 할 이유가 여기에 있다.

2) 불교출판의 저성장 원인

불교출판은 IMF 이후 2006년 현재까지도 회복세로 돌아서지 못하고 있다. 도리어 침체가 점점 깊어가고 있다. 각종 통계자료가 이를 말해준다. 다른 종교에 비해 상대적으로 낙후돼가는 부분도 있지만 불교 자체의 절대적 수치에서도 점점 저성장을 나타내는 징후가 짙게 나타나고 있다. 이 같은 불교출판의 저성장과 낙후의 원인은 어디에서 기인한 것인가. 대책과 전망을 말하기 이전에 먼저 여기에 대한 원인규명이 필요하다. 이와 관련해 지금까지 자주 지적돼온 것은 대체로 다음과 같은 것들이다.

첫째는 고질적인 독서부재 풍토다. 한국인의 저조한 독서율은 세계적으로도 유명하다. 2004년 5월 미국의 다국적 여론조사기관인 NOP월드가 세계 30개국 ‘미디어소비행태’를 조사한 결과 한국인이 독서에 할애하는 시간은 주당 3.1시간이었다. 30개국 평균인 6.5시간의 절반에도 미치지 못하는 최하위였다. 이에 비해 한국들은 업무 이외의 인터넷 등 컴퓨터 사용에는 독서시간의 약3배인 주당 9.9시간을 써 30개국 평균인 8.9시간을 웃돌았다.22)

이러한 독서부재 풍토는 불교의 경우 더욱 심각하게 나타나고 있다. 한국불교에는 오래 전부터 교학을 무시하는 경향이 있어왔다. 사교입선(捨敎入禪)이라는 말에서 보듯이 교학을 통한 이론적 공부보다는 참선을 중시하는 수행풍토가 지배적이었다. 선종에서는 전통적으로 불립문자(不立文字)를 내세우며 독서를 기피했다. 불립문자는 문자에 집착하지 말라는 뜻이지만 우리의 경우는 아예 책을 멀리하라는 것으로 받아들였다.

또 일반신자의 경우는 또 다른 의미의 불립문자에 매몰돼 있었다. 즉 교리공부보다는 기도나 불공 같은 법사(法事)에만 충실하면 공덕을 쌓는다고 믿었다. 이러한 종교적 환경은 책 읽는 것을 외도(外道)로 여길 정도로 심각한 수준이다. 불교인들이 다른 종교인보다 저조한 독서율을 보이는 것은 이러한 그릇된 풍토와 관계가 있다.

둘째는 눈높이에 맞는 불서의 부재를 들 수 있다. 지금까지 불교출판의 대종을 이루어온 것은 학문적 성과를 담은 저작물이었다. 번역된 외국불서라 하더라도 이 범주를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 그러나 이러한 종류의 불서는 읽는 사람이 제한적일 수밖에 없다.23)

전문적 지식을 필요로 하는 불교학자나 고급독자의 숫자가 그리 많지 않기 때문이다. 이에 비해 일반불자를 대상으로 하는 대중적이면서 쉽게 읽을 수 있는 불서는 부족한 편이다. ‘쉬운 불서’란 교리해설을 쉽고 재미있게 하는 것만을 뜻하는 것은 아니다. 교리에 상응하여 일상생활에서 도움을 줄 수 있는 ‘현대적 설법집’ 형태의 책이 쉬운 불서다. 그러자면 인격과 명성과 필력이 담보돼야 한다. 그러나 국내 필자들 중에서 이런 책을 집필할 사람은 손에 꼽힐 정도다.

일반불자들의 눈높이에 맞춘 책이 부족한 것에 대해 일부에서는 출판사의 기획력 부재를 말하기도 한다. 그러나 이것은 우리나라 불교의 전반적 사정과 맞물려 있는 문제로 이해하는 것이 정확하다. 쉬운 책을 쓸 필자가 마땅하지 않은 상황에서 눈높이에 맞춘 책을 내라고 재촉하는 것은 임신도 하지 않은 여인에게 옥동자를 낳아달라고 하는 것과 같다. 최근에 유행하고 있는 명상류의 책도 국내필자가 집필한 것은 전무하다시피 하다. 이것은 문제의 소재가 어디에 있는가를 말해준다. 그러나 원인이야 어디에 있든 이 문제는 주요한 과제가 아닐 수 없다.

셋째는 출판자본의 영세성 문제를 들 수 있다. 일반적으로 출판 사업은 창의적 문화산업이므로 자본의 문제가 필수불가결한 조건이 아닌 것으로 알고 있다. 물론 일부 출판사들의 경우 특이한 아이디어로 제작한 몇 권의 단행본으로 성공하는 예가 있기는 하다. 하지만 특수한 경우를 일반화하는 것은 언제나 위험한 발상이다.

출판처럼 단기적 성공이 어려운 사업일수록 계획적이고 장기적인 안목의 투자가 필요하다. 특히 불교처럼 베스트셀러가 나오기 힘든 조건에서는 단기적 실패에도 불구하고 장기적으로 지속적인 출판을 해나갈 자본력이 뒷받침돼야 한다. 좋은 책을 간행하고도 홍보나 광고를 못하는 것은 자금부족에서 오는 현상이다.

출판에서 아이디어가 먼저냐 자본이 먼저냐는 닭이 먼저냐 계란이 먼저냐 하는 문제와 같아서 어느 것을 우선하기는 어렵다. 하지만 안정적인 사업을 위해서는 자본력의 문제를 소홀하게 여기면 안 된다. 특히 불교출판의 경우는 지속적 활동을 위해 자본의 뒷받침과 영업활동과 유통의 문제를 심각하게 고민해야 한다. 왜냐하면 자본의 영세성은 불교출판의 활성화를 방해하는 ‘공공의 적’이 때문이다.

일반출판사들이 자본력과 영업력을 바탕으로 불교관련 저작물 가운데 성공 가능한 것을 확보할 때 불교전문출판사가 두 손 묶고 바라보도록 해서는 안 된다. 자본의 영세성 때문에 좋은 출판물을 확보 못하고, 이는 다시 공격적 경영을 못하게 하는 악순환이 반복되는 한 불교출판의 미래는 없다.

이밖에도 유통구조의 문제, 기획력의 부재 등 여러 가지가 문제로 지적될 수 있지만 가장 근본적인 것은 역시 책을 읽지도 않고 사지도 않는 풍토에 있다고 할 것이다.24) 아무리 좋은 책을 만들어도 독자가 사지도 않고 읽지도 않는다면 이 사업은 그야말로 맨땅에 머리를 받는 것처럼 무모한 것이다. 지금까지 한국불교의 출판 사업은 이 비유가 딱 어울리는 사업이었다. 이것은 또한 현대한국 불교출판이 짊어지고 있는 불행한 멍에이기도 하다.

3) 불교출판 활성화를 위한 대책

지금까지 우리는 불교출판의 현황과 문제점에 대해 몇 가지 소주제를 중심으로 살펴보았다. 그 과정에서 여러 가지 긍정적인 부분도 찾아냈지만 문제점도 발견됐다. 이제 남은 일은 문제점으로 지적된 과제를 어떻게 극복할 것인가 하는 것이다.

이에 대해 우선 할 수 있는 대답은 ‘모든 해법은 문제 속에 들어 있다’는 것이다. 불교출판의 발전을 위한 해법도 앞에서 제기한 문제를 어떻게 적절하게 대처하느냐에 있다. 문제는 적절한 실천적 대안이 어떤 것인가 하는 것인데 현단계에서 검토할 수 있는 것은 대체로 다음과 같은 것들이라고 생각한다.

첫째는 모든 불자가 불서를 가까이 하도록 책 읽는 분위기를 조성하는 것이다. 지식의 양이 종교적 지혜의 깊이를 결정하는 것은 아니다. 그렇지만 바른 지식에서 많은 도움을 받을 수 있는 것 또한 사실이다. 불교에서 말하는 무명이란 기실 우리가 처한 세계와 인생에 대한 현상을 바르게 이해하지 못하는 데서 생기는 것이다.

무명이란 무지의 다른 표현이라 할 때 이를 극복하기 위한 방법으로 독서를 통한 교리의 바른 이해는 매우 중요하다. 그런 뜻에서 불서 읽기는 단순한 독서의 차원을 넘어 정법을 이해하고 실천하는 신앙운동의 한 방법으로 재인식돼야 한다. 모든 불자들이 경전과 교리해설서를 읽는다면 과거의 빗나간 신앙행태 즉 기복불교와 지식불교의 한계를 뛰어넘을 수 있을 것이다.

책을 통해 불교의 진리를 바로 알고 실천의 계기를 이끌어내야 한다는 의미다. 이는 불교출판계 뿐만 아니라 한국불교의 종교적 수준과 신행활동의 수준을 한 단계 끌어올리는 계기가 될 것이다. 그런 뜻에서 몇몇 불자들에 의해 추진되고 있는 ‘불서읽기 운동’은 비록 작은 움직임이지만 큰 의미를 갖는 것이라 할 것이다.

둘째는 출판사들도 이제는 새로운 기획출판에 관심을 기울여야 한다는 점이다. 최근의 독서경향은 어렵게 서술된 책은 독자들의 환영을 받지 못한다. 텔레비전을 비롯한 영상문화에 길들여진 새로운 세대는 보다 쉽고 재미있는 읽을거리를 원하다. 독자의 변화와 욕구에 대응한 출판물로는 만화 또는 삽화나 사진을 삽입한 도서들이다. 만화는 과거에는 어린이나 청소년이 즐겨 읽는 도서였지만 점차 폭을 넓혀가고 있다.

불교도서도 이 분야를 적극 개발할 필요가 있다.25) 또 삽화나 사진이 들어간 도서는 독자들에게 본문의 내용을 쉽게 설명해주므로 장점이 있다. 뿐만 아니라 활자만 빽빽한 책보다는 한결 부담이 적어 영상시대 독자들의 선호도가 높다. 딱딱한 이론적 교리해설서보다는 사람 사는 얘기를 통해 신심을 고취시키는 인물전과 같은 불서도 개발해 볼 분야다.

명상이 담긴 짧은 글이나 수필처럼 쉽게 읽히는 글도 현대독자들이 선호하는 도서다. 요컨대 정서적 접근이 가능한 불서의 기획과 출판은 딱딱한 책의 한계를 돌파할 새로운 출구가 될 것이다. 또 한 가지 염두에 둘 것은 전자출판에 관한 것이다. 아직은 초보적 수준에 불과하지만 IT기술의 보급과 더불어 전자출판이 확대될 경우 불교출판은 어떻게 할지에 대해 지금부터 고민이 필요하다.

셋째는 불서의 유통과 보급을 도와줄 범불교적 관심과 협조다. 불교출판의 성패가 정법의 선양과 유지에 관건이라면 이의 활성화를 위한 범불교적 차원의 지원책을 수립해야 한다. 그 방법의 하나로 관광지나 대형사찰을 중심으로 불서를 판매하는 서점을 운영하는 것도 좋은 방안이 될 것이다. 사찰을 찾는 사람들이 불서를 쉽게 접하고 구매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또 한 가지 방법은 사찰마다 작은 도서관을 만들고 신간불서를 구매해주는 것이다. 전국에 1천개 사찰만 도서관을 운영하고 불서를 구매해준다면 신간 1천여 권은 쉽게 소화할 수 있다.

1종의 불서를 1000권씩 인쇄해 몇 년에 걸쳐 판매하는 불서출판의 현실을 고려하면 이는 획기적인 지원 대책이 될 수 있다. 또 매년 범불교차원의 우수불서 선정과 시상, 우수불서에 대해서는 종단이 앞장서서 보급해주기, 불서읽기를 장려하기 위해 법회 때마다 좋은 불서를 소개하기 등도 침체에 빠진 불교출판 활성화에 큰 도움이 될 것이다.

불교출판의 활성화를 위해 가장 중요한 것은 인식의 전환이다. 좋은 책이 먼저냐, 책 읽는 불자가 많아야 하느냐 하는 논쟁은 무익하다. 불교의 오랜 전통에 의하면 간경(看經), 즉 경전을 읽고 공부하는 것은 깨달음에 이르는 첩경으로 인식해왔다. 간경이란 현대적 의미로 말한다면 바로 불서읽기다. 이는 모든 불자가 수행의 완성을 위해 불서읽기를 생활화해야 한다는 것을 말한다. 불서읽기를 단순히 불교적 지식과 교양을 쌓기 위한 것이 아니라 정법을 배우고 선양하는 올바른 수행법의 하나라는 인식이 확산돼야 한다. 한국불교의 큰 과제인 포교활성화는 이러한 인식전환이 일어날 때 진정한 성공을 거둘 수 있다.

과거의 불교인들이 부처님의 말씀을 외우고 전하기를 권하던 뜻은 다른 데 있지 않았다. 모든 사람이 불교를 바르게 이해함으로써 근본무명을 타파하고 바른 지혜를 얻기 위해서였다. 이것이 전법활동의 가장 중요한 목표였다. 그리고 그 중심에 불서읽기 즉 간경과 독경(讀經)이 자리하고 있었다. 이점을 다시 생각한다면, 오늘의 불교인들이 어떤 자세를 가져야 할지에 대한 해답이 나온다.

간경수행(看經修行)을 불자들의 가장 중요한 종교생활이 되도록 하는 것이다. 대승불교운동가들이 권장했던 것과 마찬가지로 법보시(法布施)와 사경법회(寫經法會), 불서읽기를 염불하듯이 생활화해야 한다. 그리하여 한사람이라도 더, 한권이라도 더 많은 불서를 읽도록 권장하는 일이 신앙화 될 때 불교출판은 새로운 활로를 열어갈 수 있을 것이다.

홍사성
동국대 불교학과 졸업. 불교신문사 기자, 편집부장, 불교방송 보도부장, 불교텔레비전 제작국장, 현 불교방송 상무. 저서로 <부처님은 이렇게 말씀했다><세계의 불교>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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