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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린논단] 보르헤스와 불교 / 김홍근
6월 16일 열린논단 강연 자료
[0호] 2016년 06월 16일 (목) 김홍근 문학평론가

보르헤스, 불교를 말하다
- 열린논단 73번째 모임(616

   

김홍근
문학평론가

계간 불교평론과 경희대 비폭력연구소가 공동주관하는 열린논단
6월 모임(6/16)에 선생님을 초대합니다. 이번 달 주제는 보르헤스, 불교를 말하다이며 발제는 김홍근박사(문학평론가)입니다.

아시는 바와 같이 서양사회는 16세기에 르네상스, 18세기에 계몽주의를 거치면서 세계의 중심에 이성이라는 가치를 올려놓았습니다. 이성은 과학기술을 중시하였고, 과학기술의 발전은 물질의 풍요를 가져왔습니다. 하지만 이성은 태생적으로 분별과 취사선택을 지향함으로써 필연적으로 이분법적 세계관을 낳습니다. 따라서 모든 세계구성원 사이에 갈등구조를 배가시킬 수밖에 없습니다. 인류에게 행복을 가져다 줄 것이라던 이성에 대한 믿음은 생태파괴 등 근대화의 모순이 곳곳에서 드러나면서 점차 인류를 배반하는 상황으로 치닫게 된 것입니다.

‘20세기의 창조자불리는 보르헤스(1899-1986)는 이런 문제점을 통렬하게 지적한 아르헨티나 출신 소설가이자 시인입니다. 그는 서구의 이분법적 갈등구조를 넘어서는 불이(不二)의 세계관을 확립할 것을 주장한 탈근대의 선구자이기도 합니다. 그의 글은 프랑스철학을 이끈 자크 데리다, 미셀 푸코 등에게 큰 영향을 미쳤으며 미국의 포스트모더니즘의 작가 존 바스, 이탈리아의 움베르토 에코 등에게도 결정적인 영향을 미쳤습니다. 그 배경에는 불교가 있었습니다. 그는 불교사상을 깊게 공부해서 <보르헤스의 불교강의>라는 책을 썼으며, 그런 생각들을 자신의 작품의 모티브로 사용하기도 했습니다.

열린논단 6월 모임은 보르헤스가 어떻게 자신의 작품을 통해 불교를 말해왔는지를 살펴보는 자리를 마련했습니다. 발제를 맡은 김홍근 박사는 한국외대를 졸업하고 스페인으로 유학, 마드리드 대학에서 중남미문학을 전공한 문학평론가입니다. 선생은 지난 1998년에 <보르헤스의 불교강의>를 번역 소개하는 등 그동안 보르헤스와 불교와의 관계를 연구해온 이 분야 전문가이기도 합니다. 우리는 선생의 이번 발제를 통해 불교사상이 어떻게 서구지성에게 영향을 주었는지, 그 의미는 무엇인지를 알게 되는 귀중한 자리가 될 것으로 생각합니다  

 

발제; 김홍근 박사(문학평론가/ 동국대 겸임교수)
일시; 2016616일 오후 630

 

   

몇 권의 획기적인 소설작품으로 현대 서구사상사를 근본적으로 전환시킨 아르헨티나 출신의 작가 호르헤 루이스 보르헤스(1899-1986)가 불교를 깊이 공부하고 《보르헤스의 불교강의》(1998년, 여시아문)라는 책을 썼으며, 나아가 부처님의 가르침을 풀어서 자신의 작품의 모티브로 사용하였다는 사실은 매우 흥미롭다.

보르헤스, 20세기의 창조자

보르헤스는 흔히 ‘20세기의 창조자’, ‘탈근대의 선구자’ 등으로 불린다. 그의 글은 최근까지 프랑스 철학을 리드한 자크 데리다, 미셀 푸코, 모리스 블랑쇼 등에게 큰 영향을 끼쳤으며, 또한 미국의 포스트모더니즘 작가인 존 바스, 토마스 핀천, 존 가드너와 이탈리아의 움베르토 에코, 이탈로 칼비노 등의 작품에도 결정적인 영향을 미쳤다.

움베르토 에코는 “두 명의 대가가 인류에게 장차 1.000년을 먹고살 양식을 남기고 갔다. 그들이 우리에게 보여준 새천년의 이미지는 바로 월드 와이드 웹(WWW)이다. 조이스는 그것을 언어로 구축했고, 보르헤스는 아이디어로 디자인하였다. 갈수록 세계는 이 속으로 빨려들고, 사물은 시각 이미지로 남을 것이다.”고 말했다.

블라디미르 나보코프는 “보르헤스의 작품을 처음 읽었을 때, 마치 경이로운 현관에 서 있는 것 같았으나 둘러보니 집이 없었다.”고 말했다. 미셸 푸코는 “보르헤스의 글은 지금까지 간직해온 내 사고의 전 지평을 산산이 부숴버렸다.”고 말했고, 존 바스는 “보르헤스의 글은 문학의 진정한 출구에 붙인 주석서이며, 고갈된 모더니즘 문학의 탈출구다.”고 말했다.

16세기 르네상스와 18세기 계몽주의를 거치면서 서구는 근대화를 추진했고, 세계의 중심에 ‘이성’이라는 가치를 올려놓았다. 이성은 과학기술을 중시하였고, 과학기술의 발전은 물질의 풍요를 가져왔다. 또한 이성은 역사의 진보라는 낙관론적 역사주의에 대한 믿음을 배양했다. 그 결과 자본주의, 혁명사상, 과학주의 등이 근대화란 미명하에 전 세계를 휩쓸게 되었다.

하지만 이성은 태생적으로 분별 취사선택을 지향하기에, 필연적으로 이분법적 세계관을 낳는다. 이런 관점은 또한 필연적으로 모든 세계구성원 사이에 갈등구조를 배가시킨다. 인류에게 행복을 가져다 줄 것이라던 ‘이성에 대한 믿음’은 생태파괴 등 근대화의 모순이 곳곳에서 드러나면서 점차 인류를 배반하였다.

무언가 잘못되었다. 그 오류의 근원에는, 서구인들이 금과옥조로 여기고 있던 ‘이성’에 대한 낙관론이 자리 잡고 있다는 것을 통렬히 지적한 사람이 보르헤스다. 그는 자신의 작품을 통하여 이성에 대한 순진한 신뢰가 얼마나 허망한 것인가 하는 점을 역력히 보여주었다.

보르헤스는 서구 지성들에게 인식의 전환, 그리고 인간과 자연 사이에 새로운 관계 정립을 모색하도록 촉구하였다. 그 핵심은 이분법적 갈등구조를 넘어서 불이법적 세계관을 확립하는 것이었다.

그의 글은 많은 지성인들에게 매우 세련된 방법으로 충격을 주었다. 그리고 그 비전속에는 컴퓨터나 인터넷 같은 새로운 기술문명의 도래에 대한 전망도 들어있다. 그런데, 그런 비전을 낳은 모태가 상당부분 불교에 대한 사색에서 비롯되었다면 대단히 놀라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스마트폰은 ‘마음’을 카피한 것이다.
그는 29살 때, 무아를 체험하였다. 시간이 끊어지고 세상에 대한 초월적인 관찰자가 되는 생생한 체험이 그를 서구 지성을 열광시킨 독특한 작가로 만들었다. 그는 자신의 체험을 불교를 통해 이해하게 되었던 것이다.

보르헤스의 문학세계와 불교

보르헤스는 1899년 아르헨티나의 수도 부에노스 아이레스에서 태어났다. 보르헤스는 스스로를 ‘야생의 독자’라고 말했다. 스위스에서 코스모폴리탄이 되어 보낸 학창시절 이후, 그의 독서는 고전은 물론 수많은 이단까지 넘나들었다.

그는 형이상학적 오지(奧地) 탐험가였다. 남들이 미처 밟아보지 못한 정신적 고산준봉과 원시처녀림을 답사하는 것이 그의 가장 큰 즐거움이었다. 너무나 넓은 정신세계가 있다는 사실을 깨달은 보르헤스에게 서구의 이분법적 이성중심주의적 사고는 너무나 답답해 보였다.

그는 문학이라는 도구를 통하여 관견(管見)에 사로잡혀 있는 서구 사상계를 마음껏 조롱하였다. 그리고 언어의 망치를 들고 그들의 속되고 편협된 고정관념을 산산이 깨부수는 작업을 감행했다. 알음알이(이성의 왜곡)가 얼마나 사람을 어둡게 만드는가 하는 것은 불가(佛家)에서 오래 전부터 내려오는 가르침이다. 보르헤스가 근대 서구인들에게 하고 싶었던 말은 바로, ‘입차문래 막존지해(入此門來 莫存知解, 이 대문을 들어서는 자는 알음알이를 버려라)’였다.

보르헤스는 지극히 현묘한 초이성의 세계를 날렵한 직관과 거침없는 상상력으로 포착하여, 군더더기 없고 경쾌한 문체로 독특한 문학세계를 구축해놓았다. 그는 마치 깨달음의 소식을 전하는 것처럼 경이적이고 환상적인 세계를 독자들의 눈앞에 펼쳐 보였다.

보르헤스는 만년에 그의 고향에서 행한 강연에서 “불교는 나에게 구원의 길이었다.”(위의 책, p. 223)고 고백했다. 그는 청년기에 읽은 쇼펜하우어의 책에서 처음 불교를 접했고, 이후 <불소행찬> 등의 불경과 파울 도이센이나 스즈키 다이세츠의 책을 통하여 불교에 대한 이해를 넓혀나갔다.

‘보르헤시안 문학’ 탄생의 계기, 시간체험

보르헤스는 유럽에서 돌아온 20대 중반 무렵, 아르헨티나 고유의 문화를 체험하고자 당시 유행하던 탱고와 팜파의 가우초(목동)를 접해나갔다. 부에노스아이레스의 변두리를 돌아다녔던 이 시기에 그는 뜻밖에도 결정적인 문학체험을 한다. 그의 나이 스물아홉인 1928년, 어느 시골길에서 모든 예술체험의 원형이랄 수 있는 ‘시간체험’을 한 것이다. 보르헤스는 자신의 문학을 관통하는 주제로 ‘시간’과 ‘무한’을 꼽은 적이 있다. 보르헤스의 환상과 형이상학의 뒤에는 시간에 대한 오랜 사색이 자리하고 있는데, 그 계기는 인간에게 주어진 시공간의 제약이라는 존재론적인 조건을 뚫고 초월의 세계로 비약해본 다음의 경험이었다. 보르헤스는 자신의 ‘근본경험’을 이렇게 기록했다.

나는 며칠 전에 경험했던 일을 여기다 기록하고자 한다. 모험이라 부르기에는 너무나 덧없으면서도 한편 아찔한 경험이며, 사상이라고 부르기에는 너무도 비이성적이고 감성적인 것이었다. 말하자면, 하나의 장면과 그 장면이 한 말을 내가 들었던 것이다. 언젠가 이미 내가 그 말을 들었는지도 모르지만, 내 혼신을 바쳐 듣기는 처음이었던 말을 그 때 들었던 것이다. 그 사건이 일어난 시간과 장소를 비롯한 전말은 다음과 같다.

기억을 더듬어 보면, 그 날 오후 나는 바라까스에 있었다. 전에 가본 적이 없던, 멀리 떨어진 동네라는 사실이 묘한 감흥을 불러 일으켰다. 그 날 밤 별다른 할 일이 없었고 날씨도 고즈넉해서, 저녁 먹고 난 후에 산책하러 나갔다. 나는 딱히 방향을 정해 놓고 싶지 않았다. 가능한 한 모든 가능성을 열어두기 위해, 어느 길 하나라도 그에 대한 사전 정보 없이 발걸음이 이끄는 대로 따라갔다. 소위 말하는 대로, 발길 따라 정처 없이 걸은 것이다. 대로나 넓은 거리를 피하는 것 외에는 의식적인 선입견 없이 우연의 가장 맹목적인 초대에 스스로를 맡겨버렸다. 어쨌든, 친숙한 어떤 힘이 나를 어느 동네로 이끌었는데, 나는 그 이름을 늘 기억하고 가슴에 담아두고 싶다. 이 말은 그 동네가 유년기의 향수를 불러일으키는 고향 같았다는 뜻이 아니라, 아직도 내겐 신비한 분위기를 간직한 지역으로 느껴진다는 의미이다. 실제로 있기는 드물지만 말로는 들어봤음직한, 동시에 이웃 같으면서도 신화적인 그런 동네 말이다. 그 구석진 골목길들은 우리 동네의 친숙한 길들의 등 뒤에 숨어있는 이면 같았다. 마치 우리 집의 뼈대나 우리 몸의 보이지 않는 골격이 감쪽같이 감추어져 있듯이. 나는 어느 길모퉁이에 이르렀다. 생각이 차분히 가라앉는 것을 느끼며, 나는 밤을 들이마셨다. 사실 복잡할 것도 없는 거리의 모습이지만, 그때 내가 피곤했는지 더욱 단순하게 보였다. 그 독특한 모습이 거리를 비현실적으로 보이게 했다. 거리에는 낮은 집들이 이어지고 있었다. 그 풍경의 일차적인 의미는 가난이지만, 뒤집어 보면 그 동네가 곧 안온한 지역이라는 것을 뜻했다. 가장 가난하지만, 가장 아름다운 거리. 어느 집도 거리를 뽐내려 하지 않았다. 무화과나무 그늘이 저쪽 길모퉁이를 덮고 있었다. 늘어선 담보다 조금 더 높이 솟아 있는 대문은 밤과 같이 무한한 어떤 질료로 만들어진 것 같았다. 거리에는 보도가 패여 있었다. 거리는 원초적인 흙으로, 아직 정복되지 않은 아메리카의 원초적인 흙으로 덮여있었다. 골목길의 안쪽 끝은 들판으로 이어져 아스라이 말도나도 지역 쪽으로 사그라지고 있었다. 황량하고 을씨년스러운 땅 위에 서있는 분홍빛 토담은 달빛을 비추는 게 아니라 자신의 내면에서 새어나오는 빛을 비추고 있는 것 같았다. 부드러운 분위기를 표현하는 데는 저 분홍빛 이상이 없을 것이다.

나는 그대로 멈춰 서서 그 순박한 광경을 바라보았다. 나는 확신을 가지고 이렇게 생각했다. 이것은 30년 전과 조금도 다름없는 모습이다… 나는 그 세월을 가늠해 보았다. 큰 변화가 없는 나라에선 그 시간이 긴 세월은 아니지만, 급속한 변화를 겪고 있는 이 나라에선 꽤 장구한 기간이었다. 어디선가 새소리가 들리는 것 같았고, 나는 작은, 새 크기만큼의 친근감을 느꼈다. 자세히 둘러보니 그 아찔한 침묵 속에서, 역시 비시간적으로 들리는 풀벌레 소리만 들려오고 있었다. <나는 천팔백 몇 십 년에 있다>고 마음먹으니, 그 말의 의미는 단순한 상념에서 풀려나 문자 그대로 현실화되는 것 같이 느껴졌다. 나는 스스로가 마치 죽은 사람인 것처럼, 이 세상에 대한 추상적인 관찰자로 느껴졌다. 알지 못할, 그러나 선명한 형이상학적 공포가 나를 엄습했다. 내가 소위 시간의 강물을 거슬러 올라왔다고는 도저히 믿어지지 않았다. 나는 감각할 수 없는 <영원>이란 단어의 묵시적이고 부재하는 의미를 포착한 게 아닌가 의심해 보았다. 단지 시간이 제법 흐른 지금에야 그 느낌을 이렇게 말해본다.

말하자면 이렇다. 적막한 밤, 무늬 없는 작은 토담, 원시림의 시골냄새, 토속적인 흙길 등 순박한 광경을 자아낸 그 모습은 단순히 몇 십 년 전 그 모퉁이에 있었던 광경과 비슷하다는 것이 아니라, 반복이나 유사성을 뛰어넘어 그때와 똑 같은, 바로 <그것>이었다. 만일 우리가 그 동질성에 착안한다면, 시간이란 하나의 환상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겉으로는 서로 달라 보이는 어제라는 시간과 오늘이라는 시간 사이에 내재하는 무차별성과 불가분성은 시간이라는 개념을 해체시키기에 충분하다.

인간이 그런 순간들을 겪는 경우의 수가 무한하지 못하다는 것은 명백하다. 육체적인 고통과 쾌락의 순간들, 잠에 빠져드는 순간들, 음악을 듣는 순간들, 삼매에 들거나 권태로운 순간들, 그런 원초적인 순간들은 대개 무인칭적인 것이다. 조심스럽게 이렇게 결론을 내려본다. 삶이란 너무나 가련한 것이기에, 역설적으로 더욱 불멸이 되지 않을 수 없다고. 하지만 우리는 그 가련함조차도 확신할 수 없다. 왜냐하면 감각적인 면에서는 시간을 쉽게 논박할 수 있지만, 지적으로는 부정하기 어려우며, 그 본질은 연속성의 개념과 불가분의 관계에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그 날 힐끗 엿본 나의 체험은 감정적인 일화로 남을 것이고, 그 밤이 내게 아낌없이 보여준 영원의 가능한 암시와 엑스타시의 진실된 순간은 이 페이지의 미해결 과제로 남을 것이다. (「죽음 속에서 느끼다」, 『보르헤스 전집』 I, pp. 365-367, 이하 필자 번역)

마치 죽은 사람처럼, 비시간 속에 들어가서 세상에 대한 추상적인 관찰자가 되어 ‘영원’을 엿본 체험. 그 ‘형이상학적인 공포’는 보르헤스 문학의 출발점이 된다. 그는 그 공포를 해명하기 위해 글을 썼으며, 자신의 트레이드 마크가 된 ‘형이상학’과 ‘환상’의 세계를 탐험하게 되는 것이다. 「죽음 속에서 느끼다」는 글 제목이 시사하는 것처럼, 살아서 부닥쳐보는 죽음은 언제나 인생을 깨닫게 해주는 근본적인 은총이다. 장자는 죽음을 대종사(大宗師), 즉 큰 스승으로 불렀다. 사(死)는 곧 사(師). 미리 죽음을 당겨 체험하는 것이야말로 인생의 비의를 깨닫는 지름길이기 때문이다. ‘죽음 속에서 느끼는 것’은 무엇보다도 시간이 끊어지는 느낌인데, 이 시간제단(時間際斷)의 근본경험은 의식의 흐름을 끊어놓음으로써 무아(無我)와 무한(無限)을 체험하게 해준다.

1936년 보르헤스는 『영원의 역사』를 펴낸다. 이 에세이집에는 여섯 편의 에세이가 수록되어 있는데, 그 중의 세 편은 <시간>에 대한 글이고 나머지 세 편은 문학수사학에 관한 글이다. 보르헤스는 평생 <시간이란 무엇인가?>하는 강박관념을 지니고 살았다. 그것은 보르헤스로 하여금 <시간의 원형>에 대해 사색하게 만들었다. 그는 서구 역사에 있어서의 시간관을 검토해 본다. 그는 자신이 20대에 시간의 원형인 일종의 <영원>을 맛보았지만, 그것은 서구에서 말하는 전통적인 영원과는 다르다는 것을 확인한다. 자신이 경험한 시간체험을 분석하고 규명하기 위해, 서구에서 <영원>이란 개념이 형성되고 재해석되어온 과정을 추적하고, 그 말미에 자신의 경험을 덧붙인 것이 이 책의 제목으로 채택된 「영원의 역사」라는 에세이다.

보르헤스는 “시간이 무엇인지 알려면 먼저 시간의 모델이며 원형인 영원을 이해해야 한다”고 플로티누스가 『에네이다스』에서 말한 한 구절을 인용하면서 글을 시작한다. 제1장에서는 고대 그리스인들이 이해한 <영원>에 대해 다루는데, 영원은 과거, 현재, 미래의 기계적 총합이 아니라 과거, 현재, 미래의 동시성을 시사한다고 한다. 그리스인들의 <영원>관을 집약한 사람은 플라톤이다. 그는 <시간은 영원의 움직이는 영상>이라고 정의했다. 인간은 사물을 하나씩 하나씩 연속적으로 인지할 수밖에 없지만, 이데아의 세계에 머무는 신은 만물을 포괄하기 때문에 모든 것을 동시에 파악할 수 있다고 한다. 신의 세계에서는 아무 것도 흘러가지 않고, 만물은 그 상태 그대로 자족하는 가운데 조용히 지속될 뿐이라는 것이다. 하지만 전지전능하지 못한 인간은 절대적인 영원을 인식할 수 없고, 대신 영원의 움직이는 영상인 시간을 통해 사물을 순차적이며 상대적으로 인식할 뿐이라는 것이다. 이데아주의자 플라톤의 이론은 이렇게 정리된다. <개체와 사물은 그것들이 포함되는 종種에 참여할 때만 존재한다. 종은 그들의 영속하는 실재이다.> 지금 들리는 새소리는 어느 한 마리 새의 소리일 뿐 아니라, 그 새가 속하는 종이 시간을 뛰어넘어 내는 영원한 소리라는 것이다.
제2장에선 기독교의 <영원>을 다루는데, 그것이 가장 잘 반영된 책은 성 아우구스티누스의 『참회록』 제11권이다. 이레네우스 주교가 삼위일체설을 교회의 공식 도그마로 공표했을 때, 기독교적 <영원>이 탄생했다고 보르헤스는 말한다. 성부와 성자와 성령이 시간적인 선후관계 없이 동시에 일체가 된다는 것은 곧 초시간적인 <영원>을 인정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그러자 영원은 신의 열아홉 가지 속성 중의 하나로 부여되었다. 결국 신의 품속인 사후세계의 천국에서 시간은 영원으로 변하지 않을 수가 없다. 이 <영원>을 해명하려고 애쓴 것이 성 아우구스티누스이다.

제3장에선 현재 속에 과거와 미래가 내포되어 있는 것을 통해 영원을 설명하려는 성 아우구스티누스의 이론을 보다 자세히 소개하고 있다. 보르헤스는 이 글의 마지막 장인 제4장에서 자신이 경험한 <영원>을 소개하고 있다. 그 내용은 앞에서 이미 소개하였다. 옥따비오 빠스는 <시적 체험의 핵심은 시간 체험이다>고 말한 적이 있다. 보르헤스의 시와 단편소설에 나타나는 독특한 형이상학적 세계는 그가 20대 후반에 체험한, 마치 <죽은 사람>처럼 <세상에 대한 추상적인 관찰자>가 되어본 특이한 경험의 산물로 인간과 우주를 바라보는 하나의 독특한 <입장>을 가져다주었다. 보르헤스는 1946년에 자신의 시간관을 새롭게 정리하여 「새로운 시간론」을 쓰는데, 그 말미에 다시 한 번 시간과 인간의 본질에 대해 언급한다.

시간의 연속성을 부정하는 것, 자아를 부정하는 것, 별이 가득 찬 우주를 부정하는 것은 겉으로는 절망으로 보이지만 속으로는 위로가 된다. 우리들의 운명은 (스웨덴보리의 지옥이나 티베트 신화의 지옥과는 달리) 비현실적이기 때문에 무서운 게 아니다. 그것이 무서운 이유는 돌이킬 수 없고 완강하기 때문이다. 시간은 나를 이루는 본질이다. 시간은 나를 휩쓰는 강이지만, 내가 곧 강이다. 시간은 나를 삼키는 호랑이지만, 내가 바로 호랑이다. 시간은 나를 소진시키는 불이지만, 내가 즉 불이다. 세상은 불행히도 실재하고, 나는 불행히도 보르헤스다. (『보르헤스 전집』II, p. 149)

시간이 우리 밖에서 흐르는 게 아니라, 우리의 내부에서 흐르고, 시간이 곧 우리 자신이라는 보르헤스의 글은 많은 생각의 실마리를 제공한다. 잘 생각해보면 시간은 저기 밖에서 흘러가는 것이 아니다. 내 안에서 흘러간다. 아니, 보르헤스에 따르면, 내가 곧 시간이다. 기차를 타보면, 창밖으로 전봇대와 들판이 지나간다. 나는 가만히 있는데, 사물들이 스쳐지나가는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진정으로 가는 것은 반대다. 들판은 가만히 있고, 내가 지나가고 있다. 인간은 관성으로 사물들이 흘러간다고 느끼지만, 실제는 내가 가고 있는 것이다. 인생이란 기차는 언젠가 우리를 종점으로 데려다 준다. 보르헤스는 기차에서 내릴 수 없기에 ‘세상은 불행히도 리얼하고’, 그것을 알면서도 가야하기에 그는 ‘불행히도 보르헤스다.’ 이런 맥락에서 선가에서 전해오는 게송의 한 구절인 “다리가 흐르지 물이 흐르는 게 아니다(橋流水不流)”의 의미도 이해할 수 있다.

알레프, 소설로 그려낸 화엄법계

보르헤스의 대표작에는 불교의 영향이 선명히 배어있다. 그는 자신의 《보르헤스의 불교강의》에서 부처님이 보리수 아래서 정각을 이루는 장면을 이렇게 묘사했다.

홀로 나무 아래 정좌한 싯다르타는 순간적으로 자신과 모든 중생의 수많은 전생을 보았다. 한눈에 우주 구석구석의 수많은 세계를 둘러보았다. 그 뒤 인(因)과 과(果)의 사슬도 모두 보았다. (위의 책, p. 93)

싯다르타 태자가 깨달음을 얻어 부처가 되는 이 장면에서 보르헤스는 깊은 감동을 받았다. 바로 한 인간이 자신에게 주어진 시공간의 제약을 뚫고 전우주적 존재로 변모하여 피안으로 도약하는 경험을 증명했기 때문이다. 그는 부처님이 말한 우주의 심오한 구성방식(인과법)을 이해했다. 그는 그 정각 장면을 소설화해보고 싶었다. 먼저 그는 ‘신의 글’이라는 단편을 썼다.

신성과의, 우주와의 합일이 일어났다. 나는 지극히 높은 바퀴를 보았다. 그것은 내 눈앞에, 뒤에, 또는 옆에 있는 게 아니라 모든 곳에 동시에 있었다. 미래에 있을 것이고, 현재에 있고, 그리고 과거에 있었던 모든 것들이 서로 얽혀 짜인 채 그 바퀴를 형성하고 있었다. 거대한 깨달음에서 오는 기쁨! 나는 우주의 심오한 구성방식을 보았다. (위의 책, p. 22)

보르헤스가 말하는 바퀴란 진리의 법륜(法輪)임이 명백하다. 위의 묘사는 부처님의 깨달음의 내용을 더욱 상세하게 묘사한 화엄경 입법계품의 선재동자의 깨달음의 장면과 너무나 유사하다. 화엄경에서는 바퀴가 탑으로 비유된다.

탑은 하늘과 같이 넓고 광대하다. (…) 젊은 순례자 선재는 각개의 탑 하나하나에서 뿐만 아니라 모든 탑들 속에서, 즉 하나에 모든 것이 포함되어 있고 그 각각이 모든 것을 포함하는 그런 곳에서 자기 자신을 발견한다. (위의 책, p. 23)

그는 〈알레프〉란 단편소설에서 이 세상의 실상이 제망찰해(帝網刹海)의 화엄법계임을 그려냈다. 알레프는 서구 알파벳의 첫 글자로 희랍어의 알파에 해당하는 말이다. 즉 모든 문명의 근원을 상징한다. 그는 우연한 기회에 어느 지하실에서 우주의 비밀을 간직한 동전 크기만 한 발광체를 보았다고 했다. 그것은 일종의 우주경(宇宙鏡)으로서, 앞에서 나온 바퀴나 탑의 또 다른 비유이다. 그는 마니주를 본 체험을 소설로 형상화했던 것이다.

그때 나는 알레프를 보았다. 알레프의 직경은 2-3센티미터밖에 안되었지만, 우주 전 공간이 축소되지 않고 거기 있었다. 나는 현기증이 나서 울고 말았다. 왜냐하면 인간들이 그 이름을 남용하지만 결코 본 일이 없는 현현한 가상의 대상, 즉 불가해한 우주를 내 두 눈이 보았기 때문이다. (위의 책 p. 27)

보르헤스의 서술은 소설 속의 평범한 묘사를 뛰어넘는 직관이 담겨 있다. 그것은 번개 같은 찰나에 우주의 신비를 깨친 어느 각자(覺者)의 체험이 담긴 글 같기 때문이다.

미로정원, 소설로 그려낸 업사상

보르헤스가 불교에서 영향을 받은 또 하나의 주제는 자아의 정체성의 문제이다. 즉 ‘나는 누구인가’ 하는 것과 그에 대한 불교적 해결인 무아사상에 주목했다. 그는 인간이란 동시에 세상이라는 연극의 배우, 연출가, 관객이라고 보았다.

이 사상은 보르헤스로 하여금 서구 근대철학의 핵심주제인 ‘이성을 가진 근대적 주체(modern ego)’에 대해 회의하게 만들었다. 여기서 이성의 한계에 대해 비판하며, 보다 통합적인 인간성을 모색하는 탈근대적 사유가 탄생하게 된다.

깨달음의 세계와 함께 보르헤스가 불교에서 가장 매력을 느꼈던 주제는 윤회설과 업(業)사상이었다. 업이란 쉬지 않고 짜여지는 인연의 천 같은 것이라는 아이디어는 보르헤스로 하여금 또 하나의 대표작인 <끝없이 갈라지는 미로정원>을 쓰게 했다. 그는 업이라는 그물구조에서 ‘시간의 미로’라는 아이디어를 끄집어낸 것이다. 인간은 이 세상이라는 공간적 미로 속에서 길을 잃고 살아가고 있지만, 동시에 업이라는 시간의 미로 속에서도 전생(轉生)하며 헤매고 있다는 것이 그의 관점이다.

보르헤스는 부처님의 가르침이 가장 원형 그대로 남아 있는 것이 선불교라고 보았다. 그는 견성성불을 강조하였다. 때때로 난해해 보이는 그의 단편은 일종의 깨달음에 대한 문학적 화두이며, 어떤 시들은 게송(偈頌)처럼 보이기도 한다. 그는 일본의 한 줄 시(詩) 하이쿠를 좋아하여 스페인어로 직접 하이쿠를 짓기도 했다.

이분법에서 불이법으로

이성주의의 이분법에 기반을 둔 모더니즘적 사고를 넘어서야 한다는 반성이 작금의 시대적 대세를 이루고 있는 것은 엄연한 사실이다. 보르헤스는 누구보다도 앞서 이 사실을 꿰뚫어 보았다. 그의 글은 주객 갈등의 완고한 근대적 자아라는 감옥에 갇혀, 대상에 대한 지배에 집착하고 정신분열에 신음하던 서구의 지성들에게 탁 트인 소요유와 확연무성한 불이법의 세계를 보여주었다.

그들은 보르헤스의 글을 읽고 서구가 수천 년 동안 사로잡혀 있던 이분법의 고정관념에서 깨어 나오는 암시를 받았던 것이다. 이 점에서 우리는 왜 서구의 많은 지성들이 보르헤스를 인식전환의 나침반으로 지목하고 따랐는가를 이해할 수 있다. 그런 보르헤스 사상의 밑바닥에는 불교가 연연히 흐르고 있다는 사실은 우리에게 많은 시사점을 던져준다.

바야흐로 인류를 인도할 새로운 지성의 별이 동쪽에서 떠오르고 있다. 서구의 지성들이 깨달음의 세계에 눈을 뜬 것이다. 동서를 넘나든 보르헤스가 길을 열어놓은 바대로, 그 별은 포용적이고 궁극적 진리를 함유하는 불이법의 불교사상임이 점차 드러나고 있다.

문제는 부처님이 제시한 그 진리가 어떻게 새로운 시대에 맞는 논리와 언어의 옷을 입고 나와서, 서구 지성까지 포함한 온 인류를 인도할 수 있느냐 하는 것이다. 새 시대를 맞이하는 한국불교의 지성적 사명 역시 여기에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김홍근
문학평론가. 스페인 마드리드대학교 문학박사(중남미문학 전공) 성천문화재단 고전아카데미 부원장 역임. 현재 동국대학교 겸임교수, 한국간화선연구소 책임연구원.  저서 및 역서/ 『보르헤스 문학전기』 『참선일기』 『보르헤스의 불교강의』 『인생교과서 – 부처』(공저) 『禪話』 등이 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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