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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리뷰] 김호성 지음 《힌두교와 불교》/ 김미숙
붓다의 눈으로 듣는 크리슈나의 고둥 소리
[66호] 2016년 06월 01일 (수) 김미숙 ashoka@hanmail.net

   

《힌두교와 불교》
김호성 지음, 여래, 2016년

《바가바드기타》는 힌두교의 대표 경전이요, 성전이라는 말은 매우 일반적으로 쓰이는 말이다. 하지만 인도인의 전통 종교라고 분류되곤 하는 힌두교의 정의와 범위는 간단치 않다. 더구나 힌두교의 경전이 무엇이냐고 따지자면, 더욱 복잡해질 것이다. 그러나 그러한 복잡성 덕분에 흔히 간단히 또는 가볍게 말해서, 《바가바드기타》가 힌두교를 대표한다고 아주 쉽게 말하곤 한다. 하지만 전제해 두거니와, 《바가바드기타》는 힌두교라는 종교 전반을 아우르기에는 너무나 소략(疏略)한 고대 서사 문헌의 일종이다.

원전은 《마하바라타》라는 대서사시이고, 그중 〈비슈마(Bhiṣma) 장(章)〉에 나오는 크리슈나와 아르주나의 대화 부분을 별책으로 묶은 것이 《바가바드기타》이다. 그리고 김호성의 신간 저서 《힌두교와 불교-바가바드기타의 불교적 이해》는 특히 《바가바드기타》 제1장 35, 36절 등을 모티프로 삼아서 다양한 각도로 불교와 비교한 뒤 의미를 재고하거나 비판하고 있다.

책 전체의 논지를 꿰뚫고 있는 주요 논제 《바가바드기타》 제1장 35, 36절은 다음과 같다.

그들이 나를 죽이려 해도
나는 그들을 죽이고 싶지 않소.
마두수다나, 삼계(三界)의 왕권을 얻는다 한들 하지 않을 터,
하물며 이 땅을 위해서겠소.

드리타라슈트라의 아들들을 죽이고 나서
자나르다나, 우리에게 무슨 기쁨이 있겠소.
우리가 그들을 죽인다 해도
우리에게는 오직 죄악만이 생길 것이오.

이렇게 말하면서 싸우기를 단념하는 아르주나. 그런데 마두수다나이자 자나르다나인 크리슈나는 아르주나를 전쟁으로, 폭력으로 밀어내고자 온갖 설득을 한다. 여기서 크리슈나의 논리, 즉 아르주나의 불살생 결심을 폭력과 전쟁으로 돌려놓고자 펼치는 크리슈나 신의 연설, 노래가 《바가바드기타》의 주요 내용이자 사상이다. 그리고 마침내 크리슈나 신에게 설득당하는 아르주나는 불살생의 마음을 단념하고 만다. 그는 전쟁과 폭력으로 ‘전향(轉向)’한다.

저자는 아르주나의 단념, 즉 섬세한 비폭력적 감정 상태에 주목한다. 붓다의 가르침 “원한을 원한으로 갚지 말라. 원한에 의해서는 원한이 결코 그치지 않는다.”라는 《법구경》의 구절을 근거로 하여, 폭력을 권하는 크리슈나 또는 비슈누, 즉 힌두교 주신(主神)의 명령을 “지우개로 지우고서 읽어야 한다”(책, 23쪽)고 말한다.

그런데 《바가바드기타》 안에서도 그에 대한 답이 제시되고 있다. 다양한 요가의 형태를 통해서 풀어내고 있기 때문이다. 행위 요가에서 시작하여 신애 요가, 지혜 요가를 거쳐서, 마침내 해탈로 이르는 《바가바드기타》의 구조와 사상은, 저자가 지행회통(知行會通)이라는 불교적 정언 명령으로 읽어내고 있듯이, 대승불교와 선불교(禪佛敎)의 궁극적 이상과도 조화를 이룬다(책, 24~26쪽 참조). 특히 저자는 《바가바드기타》의 3요가를 통한 실천 원리를 ‘삼도회통(三道會通)’이라는 독창적인 용어로 정리해 내고 있다(책, 28쪽).
《바가바드기타》의 주제이자 《힌두교와 불교》의 핵심 주제인 폭력과 비폭력, 권력 쟁투의 문제는, 고대 인도의 역사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폭력과 권력의 문제는,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인간이 세상에서 살다가 죽음에 이르는 순간까지 직접적이든 간접적이든 직면할 수밖에 없는 핵심적인 모티프이다. 따라서 폭력과 권력 쟁투의 전개 과정을 바르게 해석하고 이해하는 것은, 저자가 인용해서 말하고 있듯이(책, 37쪽, M. M. Deshpande의 글 참조), 주인공들의 ‘내적 지향성’을 바르게 읽어내는 긴요한 작업이 될 것이다. 그런데 바로 그 작업을 이 책의 저자는 긴 세월 동안 매우 집요하게 해내고 있다는 사실에 놀라지 않을 수 없다. 저자는 1992년 이래로 《바가바드기타》에 사로잡혀 있다고 고백하고 있다.

이방인이 될 수밖에 없는 우리는, 인도인 스스로도 자인(自認)하듯이, 《바가바드기타》를 통하지 않고서는 힌두의 세계와 역사 문화 속으로 들어갈 길이 없다는 점을 인정한다.

저자 또한 책의 곳곳에서 고백하고 있듯, 특히 불교도인 한국 사람으로서, 인도 문화적 배경과 역사적 뿌리 위에 놓인 고전 문헌들을 철두철미 해체하여 보편성을 찾는 것은 얼마나 난해한 일인가? 그럼에도, 저자가 분석해 낸 일련의 연구 결과는 《바가바드기타》에 함축된 보편적인 사상을 끌어내는 데 성공했다고 본다. 이와 관련된 독창적인 논의를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첫째, 《바가바드기타》에 대한 기존의 연구가 대체로 크리슈나의 주장에 집중하고 있는 것과 달리, 이 책의 저자는 아르주나의 포기에 주목한다. 저자는 맨 앞 도입부에 나오는 아르주나의 포기 또는 단념에 내포된 불살생주의를 원효의 화쟁(和爭) 사상과 연결 짓고 있으며, 더 나아가 다른 인도 철학파, 예컨대 자이나교의 상대주의, 불교의 무기설(無記說), 산자야의 회의론 또한 그와 동일하다고 분석한다(책, 50쪽). 저자는 아르주나의 단념이 끝까지 관철된 것은 아니었으나, 단념을 토로하는 제1장 35, 36절의 고백만으로도 독단주의를 배제한 화쟁론적 태도로서 의미를 부여하고 있다. 그리고 저자는 최종적으로 아르주나의 포기는 “힌두교적인 가치관을 담고 있다기보다는 오히려 불교적 가치관을 표방”하고 있다고 판단 내린다(책, 99쪽).

둘째, 크리슈나가 강조하는 다르마의 실천, 즉 아르주나가 수행해야 할 크샤트리아의 의무는, 신라 화랑도의 세속오계, 조선 시대의 호국불교와 유사성을 갖는다고 해석한다(책, 57쪽 이하 참조). 크리슈나는 아르주나에게 행위의 결과에 집착하지 말고, 각자 자신의 의무만을 온전히 이행하기를 강조하고 있다. 윤리적인 판단은 차치해 두고, 그저 임전무퇴(臨戰無退)의 정신으로만 전쟁에 임할 수 있고, 그것이 각자의 의무 이행이며, 행위 요가이다. 저자는 사회적인 의무에 속박된 인간들이 어떻게 판단하고 행동해야 하는지에 대해서 치열하게 묻고 또 묻고 거듭한 뒤에 자답(自答)하고 있다.

셋째, 저자는 《바가바드기타》에서 말하는 정의로운 전쟁과 《대승열반경》에서 말하는 호법론에서, 폭력 또는 전쟁을 정당화시키는 논리를 추출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책, 152쪽 이하 참조). 그러나 저자는 강조한다. 우리가 ‘정의로운 전쟁론’을 부인할 수 있을 때 비로소 현실 속에서 진정한 평화를 구현할 수 있다고.

대양의 맛을 알기 위해서 온 바다의 물을 마실 필요는 없다. 이 말은, 흔히 짧고 얄팍한 《바가바드기타》 한 권 안에 대양과 같이 넓고 깊은 힌두 정신의 핵심이 들어 있다는 의미를 나타내는 문구로도 쓰인다. 암소 같은 《마하바라타》에서 흘러나온 우유 같은 《바가바드기타》! 다시 또 그 속에서 골수를 뽑아낸 이 책, 《힌두교와 불교-바가바드기타의 불교적 이해》는 시대와 역사, 환경과 신분을 떠나서 우리 자신의 본성을 돌아보게 해준다.

참으로, 살생과 폭력으로 인해 악인(惡人)이 되는 것이 아니다. 크리슈나 신이 아르주나에게 일러주었듯이, “위선과 오만, 편견과 분노, 무자비와 무지”, 이것들로 인해 인간은 참 자유를 잃고 악인으로 추락한다(《바가바드기타》 제16장 참조).

탈(脫), 인생에서 벗어나야 하는 것이 어디 살생과 폭력뿐이겠는가? 저자가 책의 말미에 후설을 붙여서, 왕상회향(往相廻向)과 환상회향(還相廻向)이라는 말로써 미래의 또 다른 작업을 기약하고 있듯이, 어쩌면 저자의 《바가바드기타》 연구는 한없이 이어질 것만 같다. ■

 

 

김미숙 / 동국대학교 다르마칼리지 조교수. 동국대학교 대학원 인도철학과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다. 저서로 《인도 불교와 자이나교》 《한 권으로 읽는 불교 문화》 《자이나 수행론》 등이 있고, 고전 기반 어린이 동화책 《그리고》 시리즈 7권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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