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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단] 불교문헌의 가치, 어디에 둘 것인가 / 강대공
[66호] 2016년 06월 01일 (수) 강대공 beopjin@dongguk.edu

1. 들어가는 말

불교문헌(佛敎文獻)에 접근할 때 우리는 종교적으로 할 것인가 학문적으로 할 것인가의 두 가지 중 하나를 선택해야 하는 상황에 놓이게 된다. 그 선택에서 학문적인 입장을 취한다고 하더라도 문헌에 대한 철학 · 사상적인 연구는 지속적으로 이루어져 왔지만 형식적인 연구는 상대적으로 도외시되었던 것이 사실이다.
형식적인 연구를 중시하는 서구의 문헌학 방법론이 근대 불교연구에 이용된 지도 이미 오랜 시간이 지났다. 오늘날은 학계에서 그동안 지양해왔던 종교적인 측면이 다시 주목받고 있어서 마치 한 바퀴를 돌아 회귀한 것 같지만, 여전히 형식적인 부분들에 대한 미지의 영역은 많이 남아 있다. 일례로 우리가 연구하지 못하고 있는 다양한 문자들로 쓰인 상당한 양의 필사본 경전들이 동남아시아의 많은 사원에 잠들어 있다. 문헌들은 문화적인 자산뿐만 아니라 학문적인 차원에서도 공유되어야 하는데, 이를 소유한 특정한 주체의 관점에서 종교적인 재료로만 다루려는 약간은 폐쇄적인 태도가 형식적인 연구를 어렵게 하는 데 일조하고 있다.

우리나라의 고려대장경 목판본의 경우, 문헌으로 보자면 800년이나 거의 온전히 보존시키고 있는 방대한 아카이브로 앞의 예와 달리 훨씬 많은 학술적인 연구가 이루어지고 있다. 그럼에도, 문화재적 가치나 종교적 재료라는 틀이 중시됨으로써 그 존재조차 모르고 있는 해외의 불교 전공 학자들을 필자는 많이 목격했다.

불교문헌들이 그동안 지니고 있던 형식적인 전통들은 필사본이나 언어를 전공으로 하는 이들에게만 중요하게 여겨졌다. 그러나 물리적인 문헌들의 발전 역사에서 생겨난 다양한 요소들은 문헌의 내용과 별개로 독자적인 가치가 부여되어야 할 것이다. 이 글에서는 불교문헌에서 쁘라끄리뜨(Prakrit)를 비롯한 ‘언어’, 그와 구분해서 취급되어야 하는 다양한 ‘문자’들, 그리고 ‘후기문헌’ 혹은 ‘위경’ 등의 사례를 통해서 오늘날 우리에게 주어진 불교문헌들의 다양한 형식적 측면 일부에 접근해 보고자 한다.

2. 한역(漢譯)과 쁘라끄리뜨

문헌 혹은 텍스트(text)란 학문연구의 기본적인 재료로서, 특정한 텍스트의 연원이나 저자, 성립 연대, 그리고 어떤 언어로 쓰였는지는 매우 중요한 요소일 것이다. 우리나라 불교 연구에서 ‘대장경’으로 통칭되는 ‘한역(漢譯)’은 가장 주요한 재료로, 1차 문헌이었다. 하지만 초기불교가 폭발적인 인기를 끌면서 불교학 자료의 중심 언어에 대한 관심이 상당 부분 남방의 빨리어로 나뉘면서 무게중심 역시 옮겨진 느낌이다. 한편 그보다 더 이른 시기에 이루어진 북전 자료 원전의 중요성에 대한 인식은 산스끄리뜨로 외연을 넓히는 역할을 했다. 그 관심은 이런 흐름에서 더 나아가서 방대한 양의 문헌을 보유하고 있지만 비교적 우리나라에 연구자가 귀한 티베트어 자료들로 확장되고 있기도 하다.

초기경전들의 경우, 단일한 전통이기도 하지만 언어에서도 인도와 보다 더 가까운 것이 빨리어라면, 붓다가 제자들에게 산스끄리뜨로 설법하는 것을 금했음에도 불구하고, 2세기란 이른 시기에 카니슈카(Kaniṣka)의 결집을 축으로 한 산스끄리뜨 불전들의 폭발적인 등장은 인도불교의 역사에서 큰 전환점임이 분명하다. 사실상 ‘대승(mahāyana)’이란 이 ‘산스끄리뜨 경전의 유통/유행’의 다른 이름이라고 해도 지나치지 않을 것이다.

산스끄리뜨와 빨리어, 티베트어 등의 1차 원전 언어들로 쓰인 불교 자료들이 알려지고 연구자료로 이용되는 상황에서 한문은 분명 2차 언어이다. 그러나 동시에 여전히 1차자료인 것도 분명하다. 다만 그렇게 되기 위해서는 특정한 하나의 텍스트에서 그 원본이었을 문헌의 부재가 확인되거나 내용이나 분량에서 큰 차이점이 있어야 한다. 물론 중국 찬술의 문헌들은 당연히 그 자체로 1차자료이다.

그러나 특정한 텍스트에 해당하는 산스끄리뜨(Sanskrit)나 쁘라끄리뜨(Prakrit) 자료가 등장하는 순간, 그 한역 자료는 사실상 2차자료가 될 수밖에 없다. 물론 연구를 위해 산스끄리뜨로 복원하는 환범(還梵, Sanskrit reconstructions/rendition)과 같은 경우도 역시 제외된다.

‘한역(漢譯)’이란 단어는 ‘중국어 번역’이란 뜻이지만 불교문헌에서 쓰일 때 이 용어는 분명 기술적 용어(technical term)이다. 이는 ‘역경삼장들에 의해 삼장에 편입된 오래된 번역’ 즉 ‘한문대장경’을 의미한다. 하지만 최근 한역 이외의 1차 언어로 된 경전들이 현대의 중국어로 번역되면서 이 표현을 자연스럽게 쓰는 경우를 종종 목격한다. 중국 사람들은 당연히 한역이란 표현을 선호하거나 혹은 당연하게 생각할지도 모르겠는데, 이는 초보적이지만 문헌상에서는 명백한 오류이다. 만일 현대의 중국어로 번역되는 경우를 정의한다면 한역이 아니라 ‘중역(中譯)’, 영어로 표현한다면 ‘Modern Chinese’라든지 다른 용어로 대체해야 한다. 빨리삼장의 제목들 또한 일본에서 상당수가 한자로 번역되어 쓰이게 되는데 그런 제목의 경우도 한역이란 표현은 지양해야 하지 않을까 싶다. 이를테면 ‘일역(日譯)’이라든지 하는 구분이 문헌학적으로 이루어져야 할 필요가 있다.

한역인 ‘잡아함(雜阿含)’이란 번역어는 그 원어가 산스끄리뜨인지 쁘라끄리뜨인지 분명치 않다. 이에 대응하는 ‘상응부(相應部)’란 용어는 빨리어를 일본에서 번역한 것이다. 이 두 개의 용어는 비록 같은 단어에서 나왔지만, 그 단순한 번역의 차이가 원전언어의 차이와 그 문헌의 구성 성격을 달리 규정짓는 기준으로 작용할 수도 있다. 필자는 외연이 너무 넓은 ‘잡(雜)’이라는 용어보다, ‘상응(相應)’이라는 현대의 일본식 번역(산스끄리뜨나 빨리어의 대응어인 saṃyukta/saṃyutta에는 ‘잡’이란 의미가 없기도 하지만)이 ‘잡아함’의 구성 성격-초기경전의 모음은 문헌 구성의 성격을 기준으로 이름을 붙인다-을 더 명확히 해준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어떤 번역어를 선택하느냐와 상관없이 ‘한역’이란 명칭은 적어도 불교문헌의 역사에서는 특별한 용어로 취급되어야 한다. 현대 중국어로 번역하거나 일본에서 한자 혹은 한문으로 번역했다고 해서 ‘한역’이란 말로 통칭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3. 쁘라끄리뜨와 빨리어

산스끄리뜨의 상대적 개념으로 인식되는 쁘라끄리뜨는 빨리어를 포함하는 개념이지만, 쁘라끄리뜨가 빨리어를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한역의 많은 어휘들의 음사어가 사실상 산스끄리뜨보다 빨리어에 더 유사한 것도 많다. 이를테면 우리식으로 발음했을 때, ‘반야(般若)’가 산스끄리뜨 ‘prajñā’보다는 빨리어 ‘pañña’에, ‘살타(薩陀)’가 산스끄리뜨 ‘sattva’보다 빨리어 ‘satta’에 더 가깝다는 생각 때문에 때로는 몇몇 한역의 음사어가 빨리어를 원형으로 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오해가 존재하기도 한다. 그러나 그것은 한역의 원전언어들이 빨리어 형태에 더 가까웠을 쁘라끄리뜨였던 때문이지 오늘날의 빨리어 문헌이 한역의 원본인 것은 결코 아니다.

빨리어 Samantapāsādikā가 원전으로 알려진 율장 주석서 《선견율비바사(善見律毘婆沙)》가 유일한 빨리어본의 한역이라고 하지만, 분량이나 내용상의 상당한 차이를 생각하면 적어도 우리가 가진 한역 《선견율비바사》의 원전이 오늘날 우리가 접하는 빨리본 Samantapāsādikā와 동일한 ‘빨리어’ 판본이었을 것이라고 단정할 수는 없을 것이다. 오늘날의 빨리어 문헌의 판본들을 볼 때 시기적으로 한역에 앞설 수 없는 것은 물론, 한역의 전래 역시 매우 많은 시차를 두고 다양한 루트를 통해 산발적으로 번역이 이루어졌기 때문이다.
또한 오늘날의 아프간이나 파키스탄, 이란 지역인 북인도에서 전해진 초기의 문헌들이 알려진 가장 고층의 한역들이다. 빨리삼장은 스리랑카와 동남아에서 출발하고 있고 언어적으로는 직접적인 관계를 갖기 어려울 것이다. 빨리어 문헌의 경우 공식적인 파괴가 수차례 이루어졌다는 역사적 사실에서 본다면, 어떤 동일한 경전일지라도 우리가 보유한 한역과 빨리어는 사실상 만나는 것이 불가능에 가깝다. 각각 다른 시기에 다른 장소에서 전승되고 각자 오랜 시간을 거치는 동안 그에 따른 변화가 있었다면 같은 문헌이라도 전혀 다른 경험을 하며 발전된 것이다. 물론 여기에는 이종철의 말처럼 인도와 중국을 연결하는 서역의 발음이나 표기방식의 변화들까지도 고려되어야 한다.

빨리어의 경우 남방에서 많은 변화를 겪었다고 하더라도 대체로 동일한 부파의 전승인 것은 물론 문화, 지역, 언어에서 매우 유사했고, 동일한 경전을 동남아시아 지역에서 서로 보내고 보존했다는 측면에서 비교적 그 기복이 심하지 않았을 것으로 추측할 수 있다. 그러나 북방의 경우 광범위한 지역들에 전혀 다른 민족과 언어로 구성된 공간을 거치면서 한역에 이르기까지 대단히 오랜 시기를 지나왔다. 당연히 그 번역어들이 최종적으로 형성되기까지의 특정 텍스트의 원본이 어떤 언어였는지 단정 짓는 것이 어려울뿐더러 그 과정에서 얼마나 많은 서역 지역의 사소한 변화들을 겪었을지 단언할 수 없는 것이 당연하다. “북전의 초기경전군에 여러 가지 요소들이 무분별하게 포함되었다면, 남전의 초기경전군은 부파의 교의를 정리하기 위해 많은 경전들은 수정하고 버렸다”는 케네스 첸(Chen, Kenneth K. S)의 지적을 받아들인다면, 차라리 그레고리 쇼펭(Gregory Schopen)의 말대로 우리가 적어도 “경전 문헌에서 언어적으로는 확실하게 말할 수 있는 것은 전혀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이 문헌정보에 관한 한 가장 정확한 표현일지도 모른다.

언어적인 측면에서, 대표적으로 초기경전 문헌들 각각에 대해 이야기하자면 대체로 빨리어를 우선시하지만, 초기경전군 전체를 두고 생각하면 한역 자료와 빨리어 자료 중 어느 쪽이 더 고층인가, 혹은 원본에 더 가까운가 하는 문헌상의 권위는 개별 경전에 따라 모두 다르다. 또한 수직적인 비교는 불가능에 가깝다. 왜냐하면 어떤 언어가 원본이었든 간에 다른 언어로 번역되는 과정은 매우 동시적으로 반복되며 편역이 이루어질 뿐 아니라, 원래 하나였던 문헌이 분리되기도 하고 별개의 문헌이 하나의 문헌으로 되기도 하는 현상이 다수 발생하여서 어떤 특정한 기준을 전체에 적용할 수 없기 때문이다.

한역만이 가지고 있는 언어와 전승의 다양성은 연구자들에게 한역 초기경전을 매우 가치 있게 해 주었지만, 대승불교권의 한역에서는 기존의 초기경전이 평가절하되어 있었다. 관심을 갖지 않은 공백기를 거치면서 연구가 많이 이루어지지 않은 데는 오랫동안 소승이라는 표식을 초기경전에 붙여서 의도적으로 등한시했던 우리의 전통교학 연구의 자세에도 큰 책임이 있다. 무엇보다, 다양한 쁘라끄리뜨어로 쓰여 있었을 한역 자료의 사라진 원본들을 고려하면 또 얼마나 더 복잡해질 것인가. 상상 속의 원본이 오히려 판본 대조에서 오는 차이점과 일치점을 더 의미 있게 만드는 것이겠지만.

4. 언어와 문자의 혼용

최근 북인도를 중심으로 한 대륙의 서쪽에 있던 간다라와 탁실라, 페샤와르인 오늘날의 아프가니스탄과 파키스탄, 그리고 동쪽으로는 옛날 쿠차와 호탄이 있던 오늘날의 위구르에 이르기까지, 지형적으로 또 언어와 문자에서 거대한 스펙트럼을 가진 필사본들이 등장했다. 이를 살펴보면 사실상 쁘라끄리뜨 언어 혹은 쁘라끄리뜨 문자, 혹은 그 둘이 다르거나 반대로, 한 언어를 다른 문자로 음사하는 등의 복잡한 현상이 쁘라끄리뜨들 사이에서도 일어났다는 것을 보여준다.

한역의 경우에 비유해 보자면, 산스끄리뜨를 한문으로 온전히 번역하지만, 음사의 경우는 사실상 번역이 아니라 발음을 글자만 바꾸어 옮겨 쓴 것인데, 그렇게 되면 같은 단어를 여러 다른 글자로 표현하는 것이 가능하다-Buddha를 ‘佛陀’로 하지만 전혀 다른 ‘浮屠’라고도 음사하는 것처럼-. 티베트어와 같이 산스끄리뜨에 대한 불전의 대응어를 통일해서 표준화할 수 있었던 경우는 불교문헌의 역사에서 대단히 이례적이다. 한자와 같이 소리보다 각각의 글자에 부여된 의미가 중심인 이른바 표의문자를 소릿값을 표현하는 음사어로 쓰는 경우는 번역자가 이전의 번역어에 대한 정보가 없다면 전혀 다른 글자를 쓰게 될 것이 분명하다.
산스끄리뜨 문자에 해당하는 데와나가리(Devanagari) 문자는 그 자체도 이전의 많은 형태를 거쳐 발전했지만 이 문자를 로마자화(Romanize)하는 데에도 역시 다양한 방식을 쓰고 있다. 현재 대개가 따르는 IAST(International Alphabet of Sanskrit Transliteration) 방식이 확정된 것은 1894년으로 벌써 100년이 넘었지만, 여전히 ‘vA′를 ‘wA′로 ‘ī’를 ‘ii’나 ‘ee’로, ‘ṃ’을 ‘m’이나 ‘ng’으로, ‘ś’를 ‘sh’ 등으로 쓰는 경우를 찾는 것은 어렵지 않다. 특수문자인 ‘ṃ’ ‘ā’ ‘ś’의 경우 현재는 프랑스에서 쓰는 로마자 표기인 ‘ŋ’ ‘â’ ‘ç’ 로 혼용해서 쓰이고 있으며, 비록 컴퓨터에서 입력을 위한 용도로 제한되지만 특수문자들을 달리 표기하는 Harvard-Kyoto 방식도 선호도가 매우 높다.

여기에 산스끄리뜨나 빨리어 특유의 발음을 위해 문자를 붙이거나 고쳐 쓰는 연성(sandhi)의 경우, 대표적으로 글자가 생략되거나 음운변화인 ‘ḥ’ ‘s’ ‘r’이 동일하게 쓰이는 경우, ‘ṃ’과 ‘ṅ’을 동일하게 취급하는 경우들은 매우 혼동되기 쉽다. 최근 대표적으로 관세음(觀世音)과 관자재(觀自在)의 번역의 차이를 만들어 낸 avarokiteśvara와 avarokita-iśvara의 차이와 유사한 경우이다. 천축(天竺)과 신독(身毒)이 동일하게 ‘힌두(Hindu)’ 혹은 ‘인도(Indo)’를 가리키는 음사의 과정이란 것을 모르고 그 글자만 본다면 아마 현대의 중국인들조차도 그 음사어가 인도(印度)와 같은 것이라고 알기 어려울 것이다.

이것이 한역이 아니라 쁘라끄리뜨 사이에서, 브라흐미(Brahmi) 문자나 카로슈티(Kharoṣṭhi) 문자 등에서 복잡하게 얽혀서 일어난다고 미루어보면 결코 간단한 문제가 아니다. 초기경전들도 빨리어와 한역의 제한되는 것이 아니라 중앙아시아를 중심으로 다양한 언어와 문자로 기록된 판본들이 발견되기 시작한 것도 이미 한 세기를 넘어서고 있다. 또한 쁘라끄리뜨형의 다양한 형태가 산스끄리뜨에 섞여들어 가면서 만들어진 ‘불교 범어(Buddhist-Hybrit-Sanskrit)’로 된 문헌들의 발전은, 다양한 언어가 쓰이는 지역들을 중심으로 활동이 이루어졌던 불교가 얼마나 많은 언어와 문자들로 쓰이고 또한 그들끼리 교차될 수 있는지 보여주는 하나의 징후에 지나지 않는다.

5. 동남아시아 필사본의 문자

언어와 문자의 혼용 현상은 아직 사본 연구자들의 손이 많이 닿지 않았거나 혹은 상대적으로 알려지지 않은 동남아에서도 복잡하게 일어난다. 최근 15세기를 기준으로 한 동남아 필사본들이 학계에 알려지기 시작했는데, 물론 다른 연구 분야에 비하면 연구자가 상당히 소수에 불과하다. 수많은 언어와 문자들로 확장되고 있는 불교 필사본 연구에서 동남아 필사본들은 지역학을 전공하는 현지나 유럽의 소수 학자들을 제외하면 사실 불모지에 가까운지도 모른다. 필사본들이 사원의 도서관이나 창고에서 개방되지 못하고 단지 알려지지 않은 ‘보물’로만 존재하고 있다는 점에서 1차적으로는 물리적인 접근부터 벽에 부딪히기 마련이다.
게다가 현재 알려진 것처럼 빨리 경전의 표준인 PTS의 저본이 되었을 태국, 미얀마, 캄보디아, 스리랑카, 라오스 등에서 발견되는 필사본들은 그들 나라의 현대 문자로만 되어 있는 것이 결코 아니다.

스리랑카와 동남아시아의 식민지와 영토 분쟁의 배경 위에서 15세기 이전 필사본들은 찾아보기 어려운 상황이긴 하지만, 그 시기 전후로 지금까지 보존되어 오고 있는 동남아의 공개되지 않은 엄청난 양의 필사본들은 현대의 동남아 문자들이 아니라 콤(Kh-om), 몬(Mon), 탐(Tham) 등과 더불어 동남아의 민족의 원류 중 상당수인 따이(Tai)에 소속된 고층의 다양한 문자들이다. 훈민정음을 오늘날의 우리가 읽어갈 수 없는 것과 마찬가지로, 고층의 동남아 문자들은 남인도에서 발원하여 현대에 이르기까지 상당한 차원에서 섞여 왔으며, 불교 경전 그러니까 성전언어를 표기하기 위해 자신들이 일상에서 쓰는 문자와 분리해서 사용했던 예가 대부분이다. 또한 문자가 형성되지 않은 경우는 당연히 불경을 표현하기 위해 썼던 문자들을 일상의 문자로 차용했으며, 그 과정에서 그들의 ‘언어’와 ‘문자’는 복잡하게 서로 교차되고 있다.

언어는 빨리어지만 고유 문자가 없는 빨리어를 표현하기 위해 각국에서 불교문헌을 표시하는 문자를 쓰는 ‘혼성언어(bilingual)’는 우리가 ‘우리말’의 ‘언어’를 ‘한자’란 ‘글자’를 통해 표현하거나 혹은 한문으로 쓰지만 한글식의 문법으로 순서를 바꾸어 표현했던 이두와 같이 다양한 경우가 존재한다. ① 특정한 고층의 문자로 빨리어를 표현하거나, ② 빨리어를 동남아의 특정한 언어로 번역하는 방법(이 경우는 대개 표기가 달라진다.) ③ 빨리어가 산스끄리뜨에 가깝게 변형된 경우, 예를 들면 Pāli-Sanskrit, Thai-Sanskrit, Hybrid-Thai 등과 같이 다채롭게 섞이고 있다. ④ 또한 타이(Thai)로 번역된 빨리어가 태국의 고층문자나, 다른 동남아의 고층의 문자로 표현되는 경우이다.

다른 경우는 혼성문자(biscript)도 있다. 문자들끼리 섞이는 경우인데 주로 한 층의 고형 문자가 다른 문자의 표식들을 선호하는 것으로 문장부호나 음정 표시를 다른 문자에서 차용한다. 필자의 생각으로는 우리가 한자 경전을 읽기 쉽게 하고자 우리식 격조사를 붙이는 현토(懸吐)와 유사한 경우이다. 현토의 한 사례인 구결(口訣)의 경우 한자에서 글자 일부를 따서 붙이는 것처럼, 글자의 장단 같은 성조 표시(tone-mark)등을 다른 문자로 표기하는 것이다.

같은 문자로 분류되지만 각자 지역-혹은 민족-들이 서체를 달리해서 썼던 경우까지 포함하면 그 수는 훨씬 더 늘어난다. 이는 브라흐미 문자가 약 50년을 간격으로 데와나가리 문자로 발전되어가는 과정을 거치며 수많은 글자의 형태를 탄생시킨 것처럼 다양한 발전상 위에 있는데, 유사한 부분도 많기 때문에 쉽게 해결될 수 있는 것도 있지만 형태를 달리하는 경우도 상당히 많다.

이상의 상황이 불교문헌에서 ‘언어(languages)’와 ‘문자(script/letter)’가 얼마나 첨예하게 구분되고 그들끼리 다시 교차되어 왔는지 보여주는 실례이다. 수많은 번역어와 음사어들이 쏟아지고, 또 수없이 많은 언어로 번역되는 불교문헌의 경우는 상당수가 쁘라끄리뜨로 된 원본을 취했을 것으로 판단되지만 사실 대부분의 경우 다시 원래의 문자와 언어를 추정해 내는 것은 매우 어렵다.

6. 정전, 비경전 문헌, 후기경전 문헌

과거 동북아권의 한역 불전들을 쓰던 학자들은 ‘입장경(入藏經)’ 목록을 만들었다. 입장경이란 말하자면 개별 경전에 정전의 권위를 부여하는 것이다. 대장경은 원래 붓다의 가르침뿐 아니라 이후 불교학자들의 저술에도 열려 있는 것이긴 하지만, 종교적으로 더 이상의 불교문헌을 함부로 대장경에 넣을 수 없었던 이들에게는 필요한 작업이었을 것이다. 서구의 학자들이 빨리 문헌의 형태에서 이를 구분할 때는 경전 문헌(canonical), 비경전 문헌(un/non-canonical), 그리고 후기경전 문헌(post-canonical) 등으로 쓰는데, 비경전이나 후기경전 문헌은 구분하기 힘들어서 맥락에서는 차이가 다소 있을 수도 있겠지만 사실상 같은 의미로 보인다.

중국에서는 이 작업이 오래되었기 때문인지 별로 이견이 없었던 것 같지만, 빨리 문헌들에서는 아직도 중요한 문제이다. 남방불교의 중요한 경전들인 《밀린다팡하(Milindapañha)》-이미 우리에게도 너무나 유명한-나 《넷띠빠까라나(Nettipakarana)》-최근에 우리에게도 번역된-와 같은 핵심적인 후기의 문헌들을 삼장(Tipitaka)에 포함시킬 것인가 아닌가에 대한 문제 때문이다. 즉 경전/비경전(canon/uncanon)의 어떤 부류에 넣을 것인가 하는 문제이다. 최근에는 《해탈도론(Vimutti-magga)》이나 《청정도론(Visuddhi-magga)》과 같이 유명한 주석 문헌의 경우는 준경전 문헌(semi-canonical texts)으로 분류하기도 한다.

경전의 묶음에 대한 총칭으로는 주로 삼장(三藏, tripitaka/tipita-ka)이라는 표현을 쓰는데, 동북아에서는 크다는 형용사를 붙여 ‘대장경(大藏經)’이란 표현을 고정화시켰지만, 삼장이란 표현이 역시 가장 널리 쓰이고 있으며 한때는 일체경(一切經)이나 중경(衆經)이란 표현도 사용했다. 장(藏)이란 글자는 물론 산스끄리뜨와 빨리어가 동일하게 쓰는 삐따까(piṭaka)의 물리적인 대응어이긴 하지만, 삐따까가 경전들을 분류하는 가장 큰 카테고리 역할을 했다면 동북아에서 ‘장’이란 경전 전체를 의미하는 훨씬 포괄적인 의미를 지닌다. ‘캐논(canon)’이라는 서구적인 표현은 사실 의미는 다르지만 용례를 보면 우리가 쓰는 ‘경(經)’과 상당히 일치한다.

그러니까 ‘입장’이란 그 묶음에 포함시킬 것인가에 대한 자격 부여를 뜻하는데, 삼장 편집에서 누락되었거나 중국 찬술, 또는 번역자의 정보가 없는 실역(失譯) 등, 몇 가지 경우에 사용되었다. 그러나 인도 찬술이 아닌 것이 확실하면 위경(僞經)이라고 불리거나 판단이 서지 않는 경우는 의심스러운 경전, 의경(疑經)으로도 불렸다.

중국에서 위경이나 의경들은 아마도 입장이 이루어지면서 분류가 행해진 것 같은데, 분명한 것은 ‘장외(藏外)’란 용어로 어떤 후기문헌(post-canon)들을 표준화하고 있는 것 같다. 의미가 통하므로 사실 ‘장외문헌’과 ‘un/non/post-canon’으로 구분하는 것은 대응어로 쓰는 데 큰 문제가 없지만 이 용어들은 각각 ‘한역대장경’과 ‘빨리삼장’이란 다른 구조를 반영하는 것이므로 이를 염두에 두어야 한다. 빨리삼장은 정확하게 경율론의 삼장이 가장 상위개념이지만, 지역찬술들과 대소승의 문헌들이 포함되는 한역은 그런 방식의 분류가 불가능 하기 때문에 문헌의 성격에 각각 지위를 부여해서 분류한다.

그래서 한역삼장에서 ‘초기경전’과 ‘반야경’은 ‘경장’이 아니라 각각 ‘아함부’와 ‘반야부’에 소속된다. 이런 구조의 차이를 놓고 볼 때 빨리삼장에서 각각의 경전을 구분하는 canonical이란 기준은 한역에서 위경/의경의 구분이나 장외문헌과는 온전히 대응시키기는 좀 어려운 개념이다. 이를테면 한역은 대장경 체제 속에 포함되면 어떤 성격의 문헌이든 입장경이 될 수 있지만, 빨리삼장의 경우는 삼장 체제 속에 넣는다 하더라도 위에서 예를 든 《밀린다팡하》의 경우 ‘경전(canon)’으로 분류하기가 어려울 수 있다.

또한 삼장 가운데 경장과 율장은 ‘경전 문헌(canonical)’에 소속되지만 아비담마 논서와 같은 경우는 ‘비경전 문헌(un/non-canonical)’으로 분류할 수도 있다. 다시 말해서 한역에서 쓰는 장외란 표현은 삼장이란 카테고리에 포함시키는가 아닌가가 기준이지만, 빨리삼장에서 ‘canonical’이란 경전문헌 체계에서 좀 더 다양하게 쓰이는 기준이다. 이는 문헌학에서 구분했을 때는 충분히 고려되어야 하는 문제지만 그렇지 않을 때 ‘비경전(un/non-canon)’이란 용어는 ‘장외(藏外)’와 대체로 대응된다고 본다.

7. 위경, 의식문 혹은 의례집의 역설적 가치

장외문헌이나 위경/의경 등은 이미 대장경에 포함될 수 있는 길이 닫혔기 때문에-입장경의 경우라고 해도 대장경 편집에서 편제가 끝났기 때문에- 새로운 묶음을 만들었다. 그것을 속장(續藏)-때로는 중국 문헌체계의 방식으로 보유(補遺)-이라고 불렸으며, 이에 대하여 기존의 경전은 정장(正藏)이라고 명명되었다. 이후 정장과 속장은 대장경 편찬의 기준이 되었다.

그런데 한역대장경의 세계 표준이 된 일본의 ‘다이쇼신수대장경(大正新修大藏經, 이후 대정장으로 약칭)’이 모든 경전의 카테고리를 묶어서 그 명칭에 성격을 부여하여 30개 항목으로 분류하면서, 크게 정장과 속장이란 기준으로 나누던 방식은 사실상 종식되었다. 즉 카테고리를 세분화하면서 굳이 정장과 속장을 나눌 필요가 없게 된 것이다. 경소부에 대한 속(續)경소부, 제종부에 대한 속제종부와 같이 분류한 명칭에서 알 수 있듯, 대정장은 속장의 영역을 정장과 통합시켜 버렸다.

대정장이 한역삼장을 이처럼 체계적으로 분류한 것은 오늘날과 같이 대장경이 전산화되기 이전, 대정장이 불교 경전의 문헌학에 기여한 중요한 사건이다. 이전에는 분류 기준이 없었으며, 대정장의 기준 모본이 되었던 우리의 고려대장경 역시 처음에 반야부 경전들로 시작될 뿐 역시 제대로 된 분류가 없었다. 우리는 내용의 참고보다 목판이라는 물리적 경전 자체가 기준이었기 때문에 거기서 나온 인쇄본인 인경본을 천자문의 순서대로 함에 담아 구분했을 뿐이다. 대정장은 초기경전과 부처님의 생애에 관한 부분인 아함부와 본연부를 처음에 두고 그다음에 반야부를 배치함으로써 초기경전류를 전제로 하는 분류를 만들어 내었다.
속장이 정장과 통합된 대정장의 편제가 한편으로는 그 이전의 ‘만자속장(卍字續藏)’을 대표적인 ‘속장’으로 자리매김하게 했는지도 모른다. 만장 역시 정장이 있으며 다른 대장경들도 대체로 속장이 따로 있지만, 오늘날의 불교학자들에게 ‘속장’이란 표현은 대체로 만속장을 의미하는 고유명사이기 때문이다. 꼭 그 때문만은 아니겠지만, 이제는 현존하지 않는 고려시대에 만들어진 의천의 속장경인 ‘교장’과 만속장이 혼동되는 경우도 종종 있다. 그나마 이 만속장마저 중국 인쇄판만이 우리에게 전해지면서 중국의 대장경이라고 여겨지는 경우도 종종 있는 터라 필자가 보기에 오늘날 ‘속장’의 의미는 문헌정보를 중시하지 않는 이들에게는 큰 의미가 없게 되었다고 봐도 무리가 아니다. 그러다 보니 대정장이 100책으로 구성되어 있지만, 그 전체를 다 보는 학자들은 오직 일본 학자들, 그중에서도 일부 전공 학자들로 한정된다.

그렇게 보면 위경은 사실 정 · 속장의 분류와 큰 연관은 없다. 엄밀하게 말해서 어떤 기준을 두느냐에 따라 위경의 범위는 크게 달라지는데, 역사적인 붓다의 육성을 기준으로 한다면 아함부 이외의 경전들은 모두 위경이 될 것이지만, 그 부분에 대한 논쟁은 이미 오래전에 끝났으니 재론할 필요가 없다. 또 이후 찬술 주체가 인도가 아닌 중국에서 이루어진 문헌들을 기준으로 한다면 대체로 속장의 범위에 들어 있는 문헌들은 위경일 수 있겠다. 그러나 이 역시 논서와 주석서를 삼장에 입장경으로 받아들이는 대장경의 기준으로 본다면 속장자체를 역시 그대로 위경으로볼 수 없을 것이다.

그렇다면 가장 좁은 혹은 명확한 의미에서 위경이란 내용상 불교 전승과는 차이가 있는, 대체로 시대의 사회상 혹은 가치관이나 그 지역의 다른 종교를 반영한 경우거나. 혹은 불교의 현지화(localization)를 위해 만들어진 경전들이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교리나 명칭이 그 경전의 주인공이나 주제로 등장하는 그 문헌들의 성격이다. 또 논서와 같은 형식이 있기 때문에 만일 오랜 전승이 있는 경전처럼 꾸며진 것이 아니라면 위경으로 취급할 수 없다. 따라서 오늘날 한역의 경우 경전 앞에 불설(佛說)이란 수식어가 붙어 있으면 대개 위경으로 판단하는데, 교조주의를 받아들이지 않는 불교 전통에서 ‘위경’이란 표현은 맥락과 상관없이 쉽게 쓰일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마치 우리가 ‘소승’이란 표현이 하나의 명확하고 오래된 용어이기 때문에 필요에 따라 쓰기는 하지만, 가능하면 무비판적으로 쉽게 쓰지는 않으려고 하는 것과 유사하다.

오늘날 불교문헌에서 학제 간 교차연구와 같은 다양한 방식은 경전을 구성하는 언어와 문자의 다양성에서 비롯된 것이 아닌가 싶다. 다양한 언어들과 문자, 필사본과 같은 고층의 자료를 다루는 방법과, 자료를 연구하는 과정에 필요한 전자기기와 화학적인 도구들, 고고학적 기술은 실로 다양하다고 할 수 있다. 이는 인문학과 사회학 등의 인접 연구에서도 마찬가지지만, 최근 문헌학 연구 태도를 중심으로 불교 경전 문헌의 종교적 권위가 하향되면서 위경을 비롯하여 과거 학자들에게 연구 가치가 크게 없던 자료들이 역설적으로 중요해지고 있다. 그 때문에 한편으로는 경전의 권위가 떨어지는 것 같지만, 이런 학문적인 태도가 과거 교리에만 중시되던 연구 경향을 불교설화와 같은 비역사적인 종교적 자료들을 학문 주제로 끌어올리는 긍정적 상황으로도 작용하게 하고 있다.

그 문헌들이 가진 다양한 언어와 문자의 정보, 현지화된 당시 불교 혹은 사회의 요구, 민간과 대중에게 알려진 신화와 이에 따른 상징체계 등이 여기에 집약되면서 하나의 위경 문헌이 주는 학술적 가치는 상당하다. 위경이라는 수식을 떼고, 문헌이란 이름표를 붙인 다른 경전들과 동등하게 다루어지고 있는 것이다. 저작 정보를 의심할 필요가 없는 경전들은 그 내용만 취하면 그만이지만, 위경의 경우는 작자와 성립연대, 저술 의도 등, 학자들에게는 역설적으로 더 많은 콘텐츠를 제공한다.

위경과는 좀 다른 방식의 문헌 중 대표적인 것은 의례집이다. 의례 혹은 의식을 집전하기 위해 특별한 목적을 갖고 쓰이는 책들은 대체로 기존의 경전에서 그 내용을 추출하여 편집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의식집전이라는 특수한 목적을 위해 만든 문헌인 만큼, 특정한 의식집이 가진 내용은 그 의식이 행해지는 교단 혹은 종파에 따라 상당 부분 성격이나 내용이 다르다.

그러나 공통적인 것은 핵심적인 교리를 함축적으로 표현하고, 독송하기에 용이한 운율 때문에 동시에 이 두 가지를 만족시키는 방식인 게송의 형태로 많이 쓰였다는 점이다. 그래서 산문 부분이 대체로 제외되며, 설명 없이 사실들을 나열하고 또한 운율에 맞춘 다른 내용들이 반복된다. 피터 스킬링(Peter Skilling)의 말대로 붓다의 생애에 관한 자료들이 하나의 체계를 갖추는 것도 바로 이런 예경문들에서 상당히 이루어지고 있다. 특히 교리적으로 접근하기 전에 불교에 대부분은 바로 의례집을 통해서 교단에 직접 입문하기 때문에 의례집은 초심자가 암기해야 할 기본적인 불교 지식들을 포함하게 된다. 동북아에서는 《반야심경》, 동남아에서는 《자비경》과 같은 개별 경전이 여기에 포함되기도 하지만 대체로 의식집은 편집본이다. 경전의 성립이나 번역, 구성에 관한 이야기나 불교의 역사, 붓다의 생애에 관한 설화적인 디테일과 함께 그 교단의 교의 등이 모두 의식집에서 드러나는 것을 보면 분명 의식집은 하나의 주요한 전거들을 나열해줄 수 있는 것으로 위경과 함께 매우 의미 있는 자료일 것이다.

인도 종교의 전통에서 의식/의례란 업(karma)이라는 용어가 가진 원래의 의미에서처럼 제식/제사를 의미하는데 이는 신들의 세계에 인간이 제식을 통해 직접 개입함을 의미한다. 인도 종교인들이 생각하던 제례는 우주창조의 반복과 재생이며, 신들의 우주창조 과정을 인간이 의식을 통해 그대로 재현한다는 의미를 지니고 있다. 즉 동일한 의례와 의식이지만 불교의 의례는 기본적으로 인도 종교의 의례와는 전혀 다르다. 불교의 의례가 인도 종교 전통의 영향력을 얼마나 받고 있는가에 관해서는 전문적인 연구가 따로 필요하겠지만, 라모트(Lamotte)의 말처럼 초기불교 교단에는 ‘기도’란 개념조차 존재하지 않았다. 오늘날 한국불교에서 의례는 대부분이 ① 삼보에 대한 예경, ② 중생을 위한 발원, ③ 지난날의 잘못에 대한 참회 등으로 이루어져 있다. 하지만 붓다의 생애와 불교의 역사, 그리고 그 가르침이나 고사(사건)가 상당 부분 포함되어 있기도 하다. 우리의 전통 승단에서 반복적으로 이루어지는 붓다의 4대성지에 관한 암송은 중국에서 만든 교단의 운영규칙인 《청규》-《청규》를 의식집으로 분류할 수 있을지는 모르겠지만-에서 소개하고 있고, 대승 경전의 유통정보에 대한 암송은 《예화엄경문禮華嚴經文》에서 추출한 일부가 ‘아침 종송’에서 매일 이루어지고 있다. 또한 지금은 불교 신도들의 장례식 혹은 제식에서 통용되지만 원래는 스님들에 대한 장례의식을 다룬 재례집인 《다비문》과 《시식》 등은 선종의 주요 고사나 교리-선종의 ‘교리’라고 하면 다소 이상하지만-를 축약해서 전달하고 있다.

의례집이 압축하고 있는 정보들은 인도와 동아시아에서 유사한 방식으로 이루어지던 구전 혹은 암송의 전통처럼 반복적으로 읽는 것을 통해서 역사의 주요 장면들이나 교리들을 암기하게 하기 위한 구조로 되어 있다. 마치 아비다르마의 전통에서 학습을 위해 교리들을 간략하게 정리하고 체계화하는(법수, 혹은 논모-matṛka) 방식과 유사하다. 따라서 의식집들은 매우 주요한 내용을 간추려 담고 있으며 그 내용의 암송용 패키지는 오직 의식집을 통해서만 얻을 수 있다.

8. 맺는말

위경과 정전이라는 경전의 구분은 적어도 학자들에게는 과거와 달리 더 이상 불설과 비불설의 구분과 동일시되는 잣대가 아니며 불교 연구에서 텍스트의 성격을 구분해주는 사소한 정보의 일부일 뿐이다. 각각의 텍스트마다 다양한 언어와 다양한 문자가 존재하고 이들이 서로 얽히고설켜서 수많은 교집합과 새로운 부분집합들을 만들어 낸다. 경전의 내용에서도 우리는 2,500년 전의 교리만을 찾아내는 것이 아니라, 2,500년 동안 발전된 교리의 해석, 언어, 문자, 역사, 문화, 사회 등 인접하여 연결된 수많은 학문적 가치들을 불교문헌을 통해 읽어낼 수 있다. 이 발전사의 복잡함은 역설적으로 우리에게 동시에 많은 정보를 전달해 주는 멀티미디어와 같은 역할을 하고 있다. 그러므로 과거 교상판석과 같이 불교문헌의 우열을 나누는 것은 오늘날 큰 의미가 없게 되어버렸다. 적어도 경전 문헌 각각은 그 언어와 문자가 무엇으로 구성되어 있든, 역사적인 사실이든 아니든, 어떤 성격의 내용이든, 어디에서 만들어졌든 상관없이 고유의 가치를-특히 학술적인- 지니고 있다.

물론 종교적인 문헌에 접근하면서 하나의 학문적인 대상 혹은 연구 재료로만 취급하는 것은 분명 조심스럽다. 불교도 경전의 권위를 기준으로 진리를 판단하는 인도 전통인 성언량(聖言量)을 받아들였으며, 석도안(釋道安)과 같은 불세출의 불교문헌 학자조차도 ‘아무리 뛰어난 후대의 가르침이라고 하더라도 진리를 설한 성인의 가르침을 함부로 재단해서는 안 된다’는 전통적 권고사항을 주고 있기는 하다. 그러나 우리에게는 경전보다도 내용 자체가 진리인지 먼저 판단하라는 가르침(依義不依語)도 있다. 사실 붓다 스스로도 전통이나 특정한 믿음에 의지하지 말 것은 물론, 당신의 설법조차도 비판 없이 수용하지 말라고 했다.

그리고 2,000년의 세월 동안 열려 있었던 대장경의 운용방식을 생각한다면, 우리가 과연 기존의 ‘정전’과 ‘위경’이라는 일반적인 종교 문헌의 구분을 불교의 삼장에 그대로 적용해도 되는가 하는 의문은 분명 남는다.

문헌 자료에 대하여 종교적인 측면과 함께 학문적인 차원을 구분 지어야 하는 학자들에게, 2,500년 동안 발전시켜 온 많은 불교문헌들의 가치가 ‘그래도 45년간 이루어진 역사적인 붓다의 진짜 가르침보다는 부족한 것이다’라고 단정할 수 있는 것인지 생각해 보아야 하지 않을까? 지역과 시간의 변화에 따라 다양한 언어와 문자로 불교의 문헌들이 서사되어 온 것과 같이 그 내용에서도 새로운 가치와 정보들이 추가되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것인데, 그것이 반드시 설명의 발전이라고만 할 수 있을까?

 언어와 문자의 변화 그리고 경전의 권위와 선호도는 당연히 문화와 사고의 차이를 반영한다. 문헌을 접하는 데 있어서 그것들이 어떻게 변화하고 쓰여졌는가를 추적하고 제시하는 것이 불교를 학문적으로 연구하는 이들의 일이라면, 어떤 문헌이 더 중요하고 의미 있는가 하는 것은 불교도들 각자의 선택이다. 그 선택에 대해서 옳고 그름이란 잣대는 너무 단순하며, 언어와 문자가 복잡할수록, 상반된 판본들이 차이가 날수록, 또 그 내용이 다양할수록 그 선택의 영역이 훨씬 넓다는 것을 의미할 뿐이다.

필자는 여기에서 전혀 불교적인 방식이 아님에도 오랫동안 고수해 왔던 술이부작(述而不作)과 같은 태도는 지양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경전이 전하는 내용의 메시지에만 집중할 것이 아니라, 다양한 언어와 문자와 새로운 창작들이 전하는 후대에 더해진 모든 정보를 그 시대적인 맥락과 함께 읽어낼 때만 각각의 불교문헌이 가진 가치를 온전하게 느낄 수 있다고 생각한다. ■

 

강대공(KANGDAEGONG) / 태국 출라롱콘대학교 태국학연구소(The Institute of Thai Studies) 객원연구원. 동국대 선학과와 동 대학원 인도철학과 졸업(박사과정 수료). 가산불교문화연구원 연구원 역임. 주요 논문으로 〈동남아시아의 빨리어 문자와 불교 사본〉 〈동북아시아의 대승불교 경전에서 인도불교 나가전설의 재구성〉 〈번뇌와 길상을 통해 본 108법수의 기원과 발전〉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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