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 만해사상 실천선양회 Home
불교평론 소개 l 지난호 보기
 
 인기키워드 : 사색과 성찰, 청규, ,
> 뉴스 > 논단
     
진각국사 무의자 선시의 미학
학해스님 선운사 승가대학 학감
[27호] 2006년 09월 10일 (일) 학해 스님 선운사 승가대학 학감

1.들어가며

고려말 진각국사 혜심(眞覺國師 慧諶 ; 1178~1234) 무의자(無衣子)의 선시는 우리나라 불교문학사에서 한 획을 그은 것으로 평가된다. 『진각국사어록』과 『무의자시집』을 통하여 드러난 그의 시 세계는 탁월한 선취(禪趣)를 얻고 있으며 조선시대의 선 문학에도 지대한 영향을 미쳤다. 무의자 혜심은 여말 무신란과 몽고군의 침략으로 나라가 매우 혼란한 격변기에 선종의 대선사이며 유불에 정통한 시승(詩僧)이었다.

그가 남긴 시에서 다양한 선시의 미학을 살펴볼 수 있는데, 본고에서는 어록과 시집에서 드러난 선시의 아름다움을 세 가지로 구분하여 개략적으로 논의해 보겠다. 무의자 선시에서 살펴볼 내용은 본지풍광의 진경미, 백척간두의 직절미, 수선교시의 선지미로, 무의자 문학에 전체적으로 관통하는 선시의 미학을 세 범주로 파악해보고자 한다.

2.본지풍광(本地風光)의 진경미

무의자 시의 특징 중의 하나는 마음으로 경물을 읽어내는 탁월한 시안(詩眼)에 있다할 것이다. 곧 마음 밖에 따로 한 물건도 없으니 눈 가득한 청산을 있는 그대로 읊어내는 선기(禪機)는 다음에 보이는 시에서 두드러지게 나타나고 있다.

다음의 내용은 “그림자를 마주하고(對影)”란 제목의 시 전문인데, 못의 수면에 비친 자기 모습을 보고 본래면목의 자성을 표출한 작품이다.

홀로 못가에 앉아서
우연히 못 아래 한 중을 만나네.
잠자코 서로 웃으며 바라보니
잘 알아 말 걸어도 대답하지 않네.

池邊獨自坐 池低偶逢僧
笑相視 知君語不應

이 시는 이백(李白 ; 701~762)의 “달밤에 홀로 술 마시며(月下獨酌)”을 생각나게 한다. 이백의 시에서도, “꽃나무 사이에서 한 동이 술, 친구 없이 홀로 마신다. 잔 들어 밝은 달을 맞고, 그림자 마주하니 셋이 친구 되었네(花間一壺酒, 獨酌無相親, 擧杯邀明月, 對影成三人)”란 어구가 나오는데, 그림자는 오랫동안 불가에서 청정무구한 본래의 성품을 드러내는 시의 소재로 즐겨 차용되어 왔다.

그림자의 어낼러지(analogy)는 즉자(卽自)와 대자(對自)의 만남이다. 심외무물 만목청산(心外無物 滿目靑山)의 경지에서 보면 한 물건도 차별이 없으며 너와 내가 따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모두가 대비동체인 것이다. 무의자 시에서 보이는 본지풍광은 오롯한 깨달음의 경지를 단아한 모습으로 육화하여 드러낸 것이다.

다음의 시, “냉취대(冷翠臺)” 란 제목의 시를 살펴보자.

드문드문 소나무 달빛 또한 밝아
그윽한 골짜기 바람 족히 맑아라.
웃고 즐기며 마음대로 노니니
높으나 낮으나 머무는 데마다 평안해.

疎松月白 幽峽足風淸
笑傲縱遊戱 高低隨處平

이 시에서 나온 ‘수처평(隨處平)’이란 말은 원래 임제종의 개조(開祖)인 임제(臨濟 ; ?~867)스님의 『임제록』에 “어느 곳에 가든지 주인이 되라. 지금 있는 여기가 모두 진리이다(隨處作主 立處皆眞)”이란 말에서 나온 것이다. 즉 외물의 경계에 끌려 다니지 말고 지금 여기 자신이 있는 이 자리가 모든 것의 근원이며 중심이라는 사실에 눈을 뜨면 그것이 바로 진리이며 화평한 연화장인 것이다.

산중에 사는 승려로서 마음가는대로 소요하며 노니는 정경을 지극히 담담하게 읊고 있는데, 외물이래야 그윽한 산골에 지천인 솔, 바람, 달빛이 고작인데 마음은 ‘처평’하니 참으로 담박한 풍광 그것이다. 마음 밖에 진경은 더 있을 수도 없고 따로 더 그려낼 것도 없는 까닭이 여기에 있다.

또 “산에 노닐며(遊山)”란 시에서 보이는 물외초탈(物外超脫)의 경지는 이미 저 멀리 맹자와 굴원에 잇닿아 있으면서도 무의자 자신의 선취(禪趣)를 한껏 드러내고 있다.


시내에 가서 내 발을 씻고
산 바라보며 내 눈을 맑게 하네.
부질없는 영욕은 꿈꾸지 않으니
이밖에 또 무엇을 구할까.

臨溪濯我足 看山淸我目
不夢閑榮辱 此外更無求

이 시에서 명리(名利)를 멀리하겠다는 의지는 “내 발을 씻는다”는 말에서 곧 의미가 드러난다. 탁아족(濯我足)이란 말은 이미『맹자(孟子)』이루상(離婁上)에 보인다. 작자는 “창랑의 물이 맑으면 내 갓 끈을 씻고, 창랑의 물이 더러우면 내 발을 씻는다.(有孺子歌曰, 滄浪之水兮,可以濯我纓. 滄浪之水濁兮,可以濯我足. 孔子曰, 小子聽之, 斯濯纓,濁斯濯足矣,自取之也)”라는 어구에서 뜻을 취하여 속진(俗塵)에 초탈한 한정(閑情)을 드러내었다. 이 시에서 드러낸 산중살림의 정서는 또한 굴원(屈原)이 지은 『초사(楚辭)』“어부사(漁父辭)”에도 나온다.

영욕이야 꿈속에서라도 추구하지 않겠다는 결연한 의지는 이미 모든 외물을 포섭한 선의 경지에 들어선 것이다. 그럼으로 그밖에 더 구할 게 없으니 꿈에서라도 남은 찌꺼기로 덧붙이는 일조차 도인의 눈에는 군더더기로 비칠 것이다. 이 시에서 보이는 알레고리(allegory)는 구조적으로 결합되어 있는데, 일예로 시내와 발, 산과 눈이다. 이러한 대립적 구조의 결합은 시적 이미지를 탄탄하게 연결하여 ‘심외무물 만목청산(心外無物 滿目靑山)’의 경지를 그대로 드러내고 있다.

또 다음에 보이는 제목의 시는 “천거상인이 비갠 뒤에 산을 보고 화답(和天居上人雨後看山)”하는 내용이다. 여기에서는 사물마다 자재하는 진경산수를 그려냄으로써 시방세계가 곧 불성으로 가득한 대화엄장임을 표현해내고 있다.

비 갠 뒤 봄 산은 만 가지 모습인데
푸른 숲 흰 구름 한가해 사랑스러워.
흰 구름 흩어진 곳 두물마다 모습 드러나
멀리 산 바라보니 산 너머 산이로다.

雨後春山勢萬般 最憐翠白雲閑
白雲散處頭頭露 望盡遠山山外山

비가 개고 나니 청신한 산경은 펼쳐진 그대로가 장광설이다. 유정물이거나 무정물이거나 산색 그대로가 청정한 법신이다. 달리 더 무엇을 끌어다 덧칠을 할까. 두두물물마다 본래면목 그대로 제 모습을 갖추니 산 그대로 산이다. 그러므로 차별이 이미 끊어졌으니 달리 내세울 필요도 없으며 따로 고집하지 않으니 온 산 모두가 한 몸으로 온전한 우주법계의 연화장 세계이다. 하나의 액자 속에 진경을 담아 불법을 그대로 그려냈으니 천의무봉의 화공(畵工), 바로 이 경지에 들었다할 수 있겠다.

다음의 시, “연못가에서 우연히 읊음(池上偶吟)”에서는 교교한 달빛 아래 연못가를 거닐며 읊은 시로 달과 마음이 알레고리를 이루며 하나로 포개지는 절창이다.

산들바람 솔바람소리 불러 와
쓸쓸하여 맑고도 애처롭다.
밝은 달 마음결에 떨어지니
해맑고 깨끗해 티끌 한 점 없어라.

보고 듣는 게 유달리 상쾌하여
시 읊조리며 홀로 거닌다네.
흥이 다하여 고요히 앉았노라니
마음조차 싸늘해 식은 재와 같아라.

微風引松 肅肅淸且哀
皎月落心波 澄澄淨無埃
見聞殊爽快 嘯獨徘徊
興盡却靜坐 心寒如死灰

티끌 한 점 없는 달과 마음은 중층 구조를 이룬다. 마침내 달빛도 가라앉아 마음은 식은 재처럼 싸늘하게 식으니 얼음 같은 선기가 정수리에 뻗치는 느낌이 드는 시이다. 이 시에는 작자의 의도된 시적 장치가 숨겨져 있다는 것을 유념해야 한다. 이러한 시적장치는 선가에서 냇가에 비친 수면과 더불어 거울 또한 유용한 도구로 자주 차용되어왔다. 달빛과 마음이 내외의 이중구조를 이루어 시적 긴장감을 불러일으키며 시간의 경과에 따라 서로 포개져 하나로 동일화되고 있다.

수면은 내외를 아우르는 중개자로 외물인 저 달을 끌어오고 안으로는 마음을 비추어 서로 관통하며 원융한 경지를 드러낸다. 곧 달과 마음은 수면을 매개로 하여 파이작삼(破二作三)의 경지를 넘어 하나로 통합되어 모든 경계가 일거에 무너지고 만다. 이 시에서 보이는 탁월한 알레고리는 선지의 경지를 잘 드러내었다고 말할 수 있다.

3.백척간두(百尺竿頭)의 직절미

무의자의 선시에서 두드러진 한 특징은 벽립천인(壁立千)의 기상이다. 이는 백천간두에 서서 물러나지 않고 한 걸음 더 내딛는 수선(修禪)의 결의를 다짐과 동시에 언외의 선지를 갈파하는 용처가 된다고 볼 수 있다. 말을 여의고 생각조차 끊어버린 선경에서 나온 시는 무의자 선시의 한 특징이라 할 만하다. 다음에 보이는 “폭포(瀑)”란 시에서는 이러한 기상이 매우 잘 드러나 있다.

아득한 절벽에서 와르르 떨어지니
차가운 물소리 계곡에 메아리치네.
작디작은 한 점 티끌도 여기,
그 어디에도 머물 곳 없어라.

迅瀑落危層 冷聲聞還壑
纖纖一點塵 無處可栖泊

아슬한 벼랑을 타고 흘러내리는 폭포는 수직의 역동성을 내포하며 선경에 다달은 깨침의 포효와도 같다. 차갑게 내려 쏟는 물소리와 한 점 티끌도 용납하지 않는 수직의 방향성은 글자 그대로 은산철벽을 깨는 장쾌한 외침으로 형상화된다. 백척간두에 선 출격장부의 기상이 잘 드러난 이 시는 무의자 자신의 자부이기고 하다.

선승으로서 생사를 여의고 저 폭포처럼 줄기차게 떨어지는 결연한 의지는 우뚝한 자신의 기봉(機鋒)을 펼쳐 보인 선시로 평가된다. 한 점 티끌조차 용납 않는 저 폭포의 경계는 범부가 쉽사리 접할 수 있는 경지가 아니다. 그러므로 폭포는 모든 걸 버리고 그 어느 것도 일체 머물게 하지 않는 속성을 가짐으로 해서 종종 유가 시와 더불어 선가의 보도(寶刀)로 채용되어 왔다.

다음에 보이는 시는 무의자가 출가 득도할때 지은 시이다. 이 작품에서는 그가 출가하며 결심한 초발심을 유지하고 있음을 엿볼 수 있다. 긴 서(序)로 되어있는 시의 원문에 보면, 1221년 임오년 음력 11월 고려 조계산 수선사 무의자 진각이 득도 출가할 때 지은 시로, 이능화가 펴낸 『조선불교통사』 가운데서 옮겨 실은 것이라고 되어 있다. 이 시에서 그는 세속에서 말하는 부귀나 공명 따위를 “깨진 시루” 라고 말하며 모든 외물을 툴툴 털어버리고 대장부의 길로 나섬을 일갈하고 있다.

불문에 뜻을 두고 사모하여
식은 재처럼 좌선을 배우리라.
공명이야 한갓 깨어진 시루며
사업이야 이루고 나면 덧없어라.

부귀도 그저 그렇고 그런 것
빈궁도 또한 그러한 것.
내 장차 고향을 버리고
소나무 아래 편안한 잠이나 자려네.

志慕空門法 灰心學坐禪
功石一墮甑 事業恨忘筌
富貴徒爲爾 貧窮亦自然
吾將捨閭里 松下寄安眠
-貞祐九年壬午仲冬 高麗曹溪山 修禪社無衣子眞覺述 得度時辭家詩, 此下朝鮮佛敎通史中轉集.

깨진 시루, 즉 타증(墮甑)이란 말은 이미 그르친 일은 애석해 해봐야 소용이 없다는 말로, 『사기(史記)』 후한서(後漢書) 맹민(孟敏)편에, “타증불고(墮甑不顧)”란 고사에서 유래된 말이다. 후한 때 맹민이란 사람이 있었는데, 가난하여 어느 날 시루를 팔기 위해 지고 다니다가, 그만 잘못 발이 걸려 넘어져 시루가 다 깨져 산산조각이 났다. 그러나 그는 뒤도 돌아보지 않고 훌훌 털고 가던 길을 그냥 가버렸다. 그 날 마침 당시의 명사로 존경받던 곽임종이 지나가다 가까이에서 그 광경을 보게 되었다. 그는 맹민이 다른 사람과 다름을 알고 그에게 공부할 것을 권유하였다. 십년이 지난 뒤 맹민은 천하에 이름을 얻었다고 한다.

무의자는 불문(佛門)에 들면서 자신이 선택한 길에 대하여 속가의 규범이나 척도를 아예 버리고 있음을 선언한 것이다. 그는 동시에 속가의 사업이란 게 망전(忘筌)과 같아서 이루고 나면 아무 것도 아니라는 걸 언명하고 있다. 망전이란 말은 원래 『장자(莊子)』 외물편(外物篇)에 “득어망전(得魚忘筌)”이란 말에서 유래한다. 물고기를 잡고나면 통발을 잊는다는 말인데, 곧 목적을 이루면 수단은 잊는다는 뜻이다.

『비유경(比喩經)』에도 “사벌등안(捨筏登岸)”, 곧 뗏목을 타고 바다를 건너면 뗏목을 버린다는 비유가 있다. 구경의 절대 진리에 도달하고 나면 수단은 물론 그 절대경지 조차 잊는다는 뜻으로 무의자 자신은 이러한 언표를 통하여 자신이 평생 기탁한 불법의 세계관에 대하여 확고한 신념을 가진 것으로 볼 수 있다. 그가 지향한 소나무 아래는 바로 공문법(空門法)임을 말한 것이다.

이어서 다음의 시, ‘소요곡(逍遙谷)’을 살펴보면 산중에 숨어사는 도인의 풍모를 잘 그려내고 있다.

대붕은 바람타고 몇 만리 날아가지만
메추리는 숲 속 한 가지에 만족해 사는구나.
길고 짧음은 비록 다르나 유유자적하나니
야윈 지팡이에 헤진 누더기 나에게 마땅하여라.

大鵬風翼幾萬里 斤林巢足一枝
長短雖殊俱自適 瘦殘衲也相

무의자 자신은 대붕이라기보다는 숲 속 한 가지에 깃들어 사는 메추리에 비유하면서 걸림이 없이 자적하게 노닐며 청빈한 삶을 이끌고 있음을 겸허한 문장으로 표현해내고 있다. 야윈 지팡이와 헤진 누더기는 청빈한 삶을 가리키는 승가의 무소유를 나타내는 의미로 자주 쓰인다. 대붕(大鵬)은 『장자(莊子)』, 내편 소요유(逍遙遊)에 나오는 새 이름으로, 북쪽 바다에 사는 데 넓이가 몇 천리가 되며 한번 날을 때는 그 날개가 구름같이 하늘을 가린다는 상상의 새이다.

사실 이 시는 대붕과 메추리의 비교를 통하여 시적 긴장을 유지하고 있는데, 무의자가 진술한 “유유자적”에서 ‘자적’이란 바로 자신이 주인공이 되는 삶으로 처중(處中)에 부합하면 그것으로 족함을 드러낸 것이다. 이는 한편으로는 지극한 하심(下心)이며 겸사이고, 다른 한편으로는 은자의 한가로운 심경을 드러낸 것이다.

다음에 보이는 시는, 대나무(竹尊者)는 무의자 자신을 의탁한 시로 선승으로서 자신이 지향하는 굳은 기절(氣節)을 형상화한 작품이다. 풍상이 더욱 거셀수록 마음공부는 수선의 공력을 더하고 빼어난 절조는 스스로 비움으로써 더욱 굳센 의지를 표상하고 있다.

내가 죽존자를 사랑함은
추위와 더위에 아랑곳 하지 않네.
풍상 겪을수록 절개 더 굳세고
온종일 스스로 마음을 비우네.

달 아래 맑은 그림자 드리우고
바람결에 부처님 말씀 전하네.
하얗게 눈을 머리에 이고
뛰어난 운치 총림에 났도다.

我愛竹尊者 不容寒暑侵
經霜彌勵節 終日自虛心
月下分淸影 風前送梵音
皓然頭載雪 標致生林

이 시는 무의자의 다른 가전체(假傳體) 작품인 “죽존자전”에서 더욱 구체적으로 그려지고 있는데, 죽존자는 무의자 자신이 그려내는 자화상인 셈이다. 죽존자전에서 그는 존자의 미덕은 다 말할 수 없으나 대략 열 가지가 있음을 말하고 있다. 첫째, 나자마자 우뚝 자란다. 둘째, 늙을수록 굳세다. 셋째, 조리가 곧다. 넷째, 성품이 맑고 싸늘하다. 다섯째, 소리가 사랑스럽다. 여섯째, 외모가 볼 만하다. 일곱째, 마음을 비워 사물에 잘 대응한다. 여덟째, 절개를 지켜 추위를 잘 참는다. 아홉째, 맛이 좋아 사람의 입맛을 기른다. 열째, 재질이 좋아 세상에 이로움이 된다는 것이 그것이다.

대나무는 꼿꼿한 기상과 허심의 표상으로 선가의 시나 유가의 시에서 즐겨 다루어지는 소재이다. 대나무를 높여 무의자는 존자라 부르고, 그 뜻과 몸가짐이 매우 고상하기에 이를 좋아하여 자신이 지향하는 삶을 우의적으로 드러내고 있다.

4.수선교시(修禪敎示)의 선지미

무의자 선시의 다른 한 특징으로는 수선(修禪)과 교법을 시의 형식을 취하여 선지(禪旨)를 드러내고 있다. 언외시교(言外示敎)의 선리시(禪理詩)에서 시는 자칫하면 그 참 뜻을 그르치기 쉽다. 그만큼 지향하는 선의 골수가 말 안에 갇힘으로써 전심(傳心)의 체용을 훼손하기에, 선가에서는 시황계(詩荒戒)를 경계하여온 게 사실이다. 무의자는 어록과 시집을 통해 시자들이나 지인에게 많은 시법시(示法詩)를 지어서 자신의 뜻을 드러내었다.

다음은, “시자에게 눈꺼풀이 얼마나 되는가를 묻자 대답이 없어 시를 지어 보임(問侍者眼皮多少無對作詩示云)”이란 제목의 시이다. 이 작품에서는 문수라는 시자가 자주 졸기에 참선을 독려하면서 경책하는 뜻을 보여주고 있다. 시자의 도가 아무리 높다고 할지라도 참선에 수마를 못 견뎌서는 물먹은 종이로 범을 묶는 꼴이라고 경책하면서 참선공부에 더욱 매진할 것을 우의적으로 희롱하여 지은 것이다. 시자를 나무라면서도 슬며시 웃음이 나오는 시적 여백이 매우 경쾌한 시로 자신의 도가 가볍다고 너스레를 뜨는 무의자의 여유가 인상적인 시이다.

구지선사 한 손가락은 길이가 얼마인지
아무개 눈꺼풀은 그 얼마나 무거운가.
곧 너의 도 깊어 세상을 덮어도
나의 도는 보잘 것 없어 꿈에서나 보일런가.

억지로 오대산 문수보살에게 여쭈어도
물 먹은 종이로 호랑이 묶는 꼴 일세.
어느 날 우바리 존자가 인도한다면
무수히 현신하여 허공을 채우시게.
(이 시는 문수한에게 희롱하여 보인 것이다.)

俱低一指長多少 某甲眼皮幾何
直饒道該天地 我道驢年夢見
强安排向五臺中 濕紙徒勞大蟲
當日優婆離欲 現身無數滿虛空
(右示文殊漢)

이 시에 나오는 구지일지(俱低一指)는 구지화상에 관한 일화에서 끌어온 것이다. 구지는 마조 문하의 대매법상법과 항주 천룡선사의 법통을 이어받은 선사로서 손가락 하나를 세우는 선(禪), 곧 ‘일지두선(一指頭禪)’을 평생 써서 불법의 진리를 모두 드러내었다. 『벽암록』 제19칙에 나오는 이 고화(古話)를 통해 문수시자에게 내려앉는 눈꺼풀를 경계하며 참선공부에 진척이 없음을 엄하게 경책하고 있다.

이런 근기로 공부하다가는 여년(驢年)에라도 성취를 못할 것이 뻔하기에 시로서 매운 죽비로 경책한 것이라 볼 수 있다. 여년은 십이지(十二支) 가운데 당나귀 해가 없으므로 미래 영구하다는 의미로 결코 오지 않는 때를 가리킬 때 쓰는데, 시자의 공부가 미진함을 우의적으로 끌어다 썼다.

다음은 “당에서 대중에게 보임(禪堂示衆)”란 시이다. 『진각국사어록』가운데 시중(示衆)에 실린 것으로, 벽안은 중층의 의미로 겹쳐져 수승한 선의 경지에 든 무의자 자신을 드러내고 있다. 벽안(碧眼)은 원래 벽안호승(碧眼胡僧), 곧 푸른 눈을 가진 달마대사를 가리키는 말이기도 한데, 무의자의 시선과 달마의 시선이 동일시되는 경지를 함의한다 볼 수 있다. 이러한 선경에 들면 이미 심경무애(心境無碍)의 경지로서 진여의 본체계(本體界)가 확연히 드러나고 만다.

푸른 눈으로 청산을 마주하니
티끌 한 점 들어올 틈이 없구나.
맑은 기운 저절로 뼛속에 스미니
무엇 하러 새삼스레 열반을 찾을까.

碧眼對靑山 塵不容其間
自然淸到骨 何更泥洹

이 시에서 청산은 그 자리 그대로 있는 자성의 청정근원을 상징하는데, 흔히 백운과 대구(對句)를 이루는 시어로 사용하고 있다. 여기서는 오롯한 법신을 표상하여 티끌 한 점도 용납하지 않는다는 뜻이다. 그러므로 열반이니, 진여니 하며 시끄럽게 더 구할게 없다는 것이다. 눈 가득한 청산이 그대로 비추기에 새삼스럽게 열반을 구한다는 자체가 부질없는 짓인 셈이다. 무의자가 도달한 그 자리에는 이미 뼈 속까지 환하게 법신과 맞닿아 원융회통한 선지라 할 것이다.

다음에 보이는 시는, “종민상인에게 보임(示宗敏上人)”이란 선시이다. 내용을 살펴보면 화두를 들 때 주의할 점과 공부과정에서 나타날 수 있는 병통을 지적하고 있다. 언어나 이론에 의한 개념적 분별을 경계하며, 일상에서 참선이 아닌 고요함만 추구하는 좌선을 부정한다. 스승이 제시하는 말 아래에서 깨우침을 얻으려는 그 자체마저 버리고 은산철벽과 같은 상태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 무명을 타파할 것을 권유하고 있다.

말이나 이치로 헤아리지 말고
아무 일없는 속에서 앉아있지도 말게.
들어 보이는 곳에서 깨달으려 하지 말고
미혹한 마음으로 깨달음을 기다리지도 말게.

마음 쓸 곳마저 없는 경지에 이르러서
끝까지 물러나지 아니하면
홀연히 칠통을 타파할 때가 오려니
상쾌하고 상쾌하도다.

語路理路不得行 無事匣裏莫坐在
擧起之處勿承當 亦莫將迷要悟待
恰到無所用心處 終不於此却打退
忽然打破漆桶來 快快快快快快快

이 시는 간화선을 주창한 송대 대혜종고의 『서장(書狀)』에서 인용한 것으로 화두를 드는데 주의할 점을 제시하고 있다. 즉 “여사인에게 답하는 편지(答 呂舍人 巨仁)”에서 간시궐(乾屎)이라는 화두를 일상에서 들되, 말이나 이치로 헤아리거나 분별하지 말고 적적한 선정에도 머물지 말며 아무 단서도(沒巴鼻)도 없고 재미도 없어서 가슴속에 답답함을 느낄 때가 좋은 소식이다.

선지식이 한 마디 일어주는데서 깨우침을 구하려 하지 말며 다만 의정(疑情)에 투철하면 홀연히 깨달음이 올 것이라고 하고 있다. 그러나 마음으로 깨달음을 기다린다고 하면 영겁토록 미망에 떨어짐을 경계하고 있다. 우리나라 간화선 종장으로서 면모를 엿볼 수 있는 시이며 간화선의 맥인 송대의 원오극근과 대혜종고에 이어 고려시대 보조지눌과 진각혜심의 관계성을 살펴볼 수 있는 시다.

칠통(漆桶)이란 중생의 청정자성이 무명(無明)에 덮여, 불법의 이치를 보지 못한다는 의미로 쓰이고 있다. 언어의 길(語路)과 이치 길(理路)은 수행자를 묶는 사슬이 될 뿐이기에 이를 막고 끊어야 올바른 정견을 가질 수 있고 나아가 정진의 과덕으로 깨침을 얻을 수 있다고 보았다. 그리고 나아가 깨침을 구하고자 하는 그 생각에도 갇히지 말 것을 말하면서 곧장 칠통을 타파할 것을 권하고 있다. 무의자가 내보인 다수의 시법시(示法詩)는 이러한 삼엄한 경계의 뜻을 표현한 시가 많다는 점은 유념해야할 것이다.

다음에 보이는 “진병식에서 법좌에 올라(鎭兵上堂)” 란 시는 당시의 시대상과 연관 지어 볼 수 있는 것으로 진병도량(鎭兵道場)에서 대중에게 설법한 뒤에 게송으로 읊은 것이다.

싸우지 않고도 적병을 굴복시키니
지극한 어짐은 다툴 자 누구인가.
태평하여 한 가지 일도 없으니
바다는 평온하고 물은 맑도다.

不戰屈人兵 至仁誰與爭
太平無一事 海晏復河淸

이 시는 무의자가 54세 되던 해(1231) 몽고군이 침입하여 나라가 위기에 처하자, 불법을 선양하여 전쟁을 종식하길 기원하는 진병도량을 설치하고 국태민안을 기원하는 상당법문 끝에 보인 글이다. 싸우지 않고도 적을 이길 수 있다는 소망을 피력하면서, 대자비로 태평성대를 기원하는 지극한 뜻을 잘 드러내고 있다.

더불어 당시 시대상을 엿보면 안으로는 무신란과 밖으로는 몽고군의 침탈로 혼란한 시기였기에 수선사(修禪社)의 대선사로 국태민안을 기원하며 백성과 군병들을 위로하고 있다. 어짐(至仁)으로서 승리가 최선책이며 태평으로 나가는 길임을 말하고 있다. 승가로서 비록 적일지라도 싸우지 않고 대자비로 물리칠 수 있다고 진병도량에서 행한 상당어(上堂語)는 매우 의미심장하다.

5.나오며

무의자의 문학적 성과는 방대하며 한국 불교문학사에서 매우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 그가 펴낸 『선문염송』과 더불어 『진각국사어록』과 『무의자시집』은 수선사의 대선사로서 무의자의 탁월한 문학적 성취를 알기에 충분하다. 그러나 본고에서는 한정된 지면으로 무의자가 남긴 시편에서 간취할 수 있는 선시의 미학을 본지풍광의 진경미, 백척간두의 직절미, 수선교시의 선지미라는 세 가지 범주로 구분하여 살펴보았다.

이상으로 그의 선시에 드러난 미학적 검토는 외형적 문체의 아름다움과 내용상의 아름다움을 병행하여 극히 제한된 몇 편에 한정하여 살펴보았기에 앞으로 다양한 시각에서 전반적인 검토가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그가 남긴 전반적인 문학적 성취에 대하여는 다른 통로를 통하여 심층적으로 논의할 여지를 남겨두기로 한다.

학해 스님
선운사 승가대학 학감.1985년 출가. 자운 스님을 계사로 90년 비구계수지. 실상사 화엄학림 졸업. 현 선운승가대 학감
ⓒ 불교평론(http://www.budreview.com)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 저작권문의  

     
댓글달기는 로그인 후 가능합니다.
전체댓글수(0)  
전체기사의견(0)
불교평론 소개독자투고불편신고구독신청개인정보취급방침청소년보호정책
[135-887] 서울시 강남구 신사동 512-9번지 MG타워빌딩 3층 | Tel 02-739-5781 | Fax 02-739-5782 | 편집인·청소년보호책임자 : 홍사성
Copyright 2007 불교평론. All rights reserved. mail to budreview@hanmail.net
불교평론을 통해 제공되는 모든 콘텐츠(기사 및 사진)는 무단 사용, 복사, 배포시 저작권법에 저해되며, 법적 제재를 받을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