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세상 사람들 가운데, 살아가면서 종이의 은혜를 입지 않은 사람은 단 한 명도 없을 것이다. 사람이라면 요람에서 시작하여 무덤까지 가는 동안, 내내 종이의 은혜를 입지 않을 수 없게 돼 있기 때문이다.
그 사람의 빈부와 용모와 건강은 물론, 사는 지역과 정치 체제도 가리지 않고, 선악과 명암까지도 가리지 않는다. 더없이 공평하다.

한편으로 이 세상에는 종교의 ‘말씀’을 받지 못할 뿐만 아니라, 아예 모르고 사는 사람들이 많고 많다. 부정하는 사람들까지도 많다. 상식적으로 이런 현상은 말이 되지 않는다. 결코 바람직하지 않아서 안타깝기 짝이 없는 일이다. 미처 ‘말씀’의 손길이 닿지 못하는 곳으로, 대신해서 종이의 사랑을 보냈다 한다면 모르겠다.

그래서 처음에 사람을 세상에 내보낼 때 부과한 가장 큰 소임이 ‘종이의 발명’이 아니었을까 해지는 것이다.

종교의 ‘말씀’을 기억해 두었다가 적어 놓은 것을 모두 경전(經典)이라 하는데, 수많은 ‘말씀’들이 그 엄청난 양의 ‘말씀’들이, 지금까지 전해올 수 있었던 힘은 과연 어디에 있었을까.놀랍게도 종이의 은혜에 있었다. 두말할 나위가 없는 일이다. 당연히 그 목적은, 두고두고 영원히 사람들에게 전하기 위함이었다.

만일 종이가 없었다면 어떠했을까. 공식적으로는 AD 105년 전부터 종이가 있었다. 그 이전(BC 200년부터라는 설도 있다)의 세상에서는 죽간, 목간, 거북의 등껍질, 석판, 금속판, 점토판 따위를 사용했다. 단지 이집트는 자기 나라에서만 자라는 갈대를 독점 이용(이웃 터키에서조차 구할 수 없었다)해서 BC 300년경부터, 종이와 흡사하지만 턱없이 부피가 크고 질이 낮은 파피루스를 두루마리 서책(당시는 책을 만드는 방법이 없었다)을 만드는 데 사용해 왔을 뿐이었다.

이런 형편이었으니 경전 몇 권만 죽간 따위의 재료에 쓰거나 새겨놓았다면 벌써 작은 산이 됐을 터, 경전을 만든 목적을 이루는 데에 어찌 반의 반의 반의 반이라도 가당키나 했을까.

중국의 간쑤 성 지방의 사막에 있는 둔황 모가오 굴(莫高窟)에서 영국 사람 아우렐 스타인이 발견했다는 5만여 점의 고문서와 예술품들 가운데서, 마음대로 제 나라로 가져간 《금강경》이, 만일 종이로 만든 것이 아니었다면 그 일이 어떻게 가능했을 것인가.

고구려로 불교가 들어온 것이 AD 372년 6월이라 한다. 진나라 순도와 아도가 불경과 불상 등을 가지고 들어와 초문사와 이불란사를 창건함으로써, 비로소 이 땅에서 뿌리내리기 시작했다고 초등학교에서 가르친다.

하지만, 그 불경이 종이에 써서 만든 것인지, 죽간에 써서 만든 것인지는 가르치지 않는다(못한다). 순전히 그때의 상황을 짐작해 보건대, 그냥 종이를 사용한 것이라고 치부하고 마는 것이다. 더욱이 인쇄 연도가 명기된 세계 최초의 목판 인쇄물이 간쑤 성 둔황에서 나온 것으로, 인쇄된 연도가 AD 886년으로 명기된 《금강반야바라밀다경》이고 보면, 종이책의 보존 기한에 한계가 있었다 하더라도, 한 번쯤은 의심해 볼 만도 하지 않는가.

한나라에서 신라로 제지술이 전번된 것이 AD 372년경(중국의 기록)이고, 그 기술은 고구려의 승 담징이 AD 610년에 일본에 전수하였다 하니, 이를 근거로 의심을 씻은 듯이 없애버릴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이 무렵이라면 선진 서구였다는 프랑스나 영국에서는 아직 종이가 무엇인지 캄캄할 때였으니 말이다.

《무구정광대다라니경》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다. AD 751년 불국사 창건 때 세워진 것으로 보이는 석가탑을, 50년 전쯤에 보수하기 위해 해체했을 때 다른 유물들과 발견된 것인데, 세계 최초의 목판 인쇄물이라고 자랑만 할 뿐, 종이의 재질이며 그에 따른 연대 판독에는 관심도 없는 듯하고, 해결해낼 실력도 없는 듯하다.

형편이 이 지경이니 1372년에야 만들어졌다는 《직지심체요절》에 대해서는 더 말해야 무슨 소용이 있을까. 그저 세계 최초의 금속활자본이라고 자랑하며 독일의 구텐베르크를 이겨 먹는 데만 정신을 빼앗기고 있을 수밖에.

다시 한 번 종이가 2,000년 전쯤에 발명되지 않았다고 가정해 보자. 특히 그 ‘말씀’들에 어떤 영향을 미쳤을까. 아니 5,000여 년 전, 2,500여 년 전, 혹은 2,000년 전의 그 ‘말씀’들은 지금쯤 어떤 상태가 되어 있을까. 벌써 어떤 상태로 변해 있을까.

생각만 해도 끔찍한 일이 아닌가. ‘말씀’들이란 원래가 그 뜻이 더없이 크고 넓고 깊은 까닭에, 범인에게는 애매하고 흔들리고 흐릿해서, 밥도 같고 죽도 같고 별도 같고 해도 같고 나무도 같고 숲도 같고 시냇물도 같고 바닷물도 같은 것이고 보면, 지금쯤 틀림없이 산신령의 말씀이나 무당의 주술이 돼 있을 테니 말이다. 한마디로 혼란스러움으로 인한 사사로움 그 자체일 듯싶다. 대부분은 까맣게 잊어먹었을 테고. 사람의 속성이 그렇지 않던가.

따라서 결코 이처럼 세상은 발전하지 못했을 것이다. 특히 진실을 높이 사지 못하는 세상이 됐을 것이다. ‘말씀’은 세상을 낳고 인간을 낳았지만, 종이는 세상을 다시 낳고 인간을 다시 낳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종이의 가장 큰 역할은, 모두에게 과거를 보여주면서 사람들에게 예의를 가르쳐, 사람을 사람이게 하는 것이다. 아름답게 만드는 것이다.

어찌 생각하면 이 세상이 이만큼이라도 발전하고 좋아진 것은, ‘말씀’의 은총과 더불어 종이의 사랑이 없었다면 불가능하지 않았을까. 감히 발칙한 생각을 해보는 것이다.

 

이상문 / 한국제지연합회 상임고문, kpma@paper.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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