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집 | 깨달음에 대한 8개의 관점

1. 말들의 잔치

다시 깨달음이 문제다. 영원의 철학이기 때문일까, 미완의 논쟁이었기 때문일까? 크나큰 서원 때문일까, 덧없는 욕망 때문일까? 깨달음을 거론하는 말들이 난무한다. 말들의 잔치…….

전쟁과 논쟁이 한창이었던 1135년 남송(南宋) 때의 일이다. 참혹한 민생에 대해서는 따로 설명할 필요도 없을 것이다. 지적 능력으로는 부족함이 없었을 지식인이 당시 최고의 선사에게 물었다. 사대부 이한로(李漢老)는 자신이 깨달았다고 생각한 듯하다. “제가 얼마 전에 스님(대혜)께 묻자, 어리석고 막힘을 격발해 주셨습니다. 이에 힘입어 홀연히 깨달아 들어갔습니다.”

선사 대혜(1089~1163)가 응대했다. “저는 평소에 큰 서원을 세웠습니다. 차라리 이 몸으로 모든 평범한 사람들을 대신하여 지옥 고통을 받을지라도, 부처의 진리를 사람들의 사정에 따라 판단하여 결코 제 입으로 다른 사람들의 안목을 흐리게 하지는 않겠습니다.” “따로 기이하고 특별한 도리가 있습니까? 만일 별도로 있다면 도리어 아직 풀지 못한 것과 같습니다. 그저 부처임을 명심해야지 부처가 말을 이해하지 못할까 근심하지 마십시오.”

선사는 부드럽게 응대했지만, 그 속에는 준엄한 검열도 들어 있다. 대혜는 시퍼렇게 날 선 칼로 지식인의 가슴을 후벼 팠다. 이때 이한로의 심정은 어떠했을까? 대혜의 의도는 전달되었을까?

“가만히 있어라!”는 말을 듣고 그대로 했기에 검푸른 물속에 빠졌다가 바다 위를 맴도는 중음신(中陰身)이 있다. 아직도 그 바다에서 나오지 못한 여린 생명이 있다. 그들을 떠나보내지도 끌어안지도 못하는 시린 가슴이 있다. 책상 앞에서 골똘하게 생각하거나 고담준론을 펼칠 것인가? 어두운 굴속에서 가만히 있을 것인가? 좌복에 앉아 깨달음을 기다릴(待悟) 것인가?

부처라면 어찌할까?

 2. 견고한 자기

시인은 익숙한 자기를 발견하고 적잖이 당황했다.

며칠 고기를 먹지 않았습니다 눈물 흘리는 짐승들이 슬퍼졌기 때문입니다 그러던 어느 날 고기를 먹었습니다 넓적넓적 썰은 것을 구워먹으니 맛이 좋습니다 그날 아침 처형당한 간첩의 시체라고 했어요 한참을 토하다 고개 들어보니 입가에 피범벅을 한 세상이 어그적어그적 고기를 씹고 있었습니다

시인이 황망해 한 까닭은 새롭고 낯선 자기 때문이 아니라 예전 그대로의 익숙한 자기 때문이었다. 그는 연민의 정 때문인지 고기를 먹지 않았다고 했다. 여기서 ‘살생하지 않겠다’ ‘고기를 먹지 않겠다’는 계율을 떠올린다면, 지나친 비약일까? 감수성이 예민하고 자기점검이 철저한 시인이라도 이내 고기를 먹고는 혀끝의 감각에 속절없이 패배하고 말았다. 문제는 그다음이다. 갑자기 정치 사건이 등장한다. 시인은 자신의 감각과 일상, 그리고 정치 사건이 분절되지 않음을 발견한다. 그는 ‘자신이라는 하나의 세상’ 혹은 ‘세상 전체’가 스스로에 대한 역겨움에 몸서리치면서도 감각과 습관에 굴종하는 모습을 써내려갔다.

시인의 고백은 그 한 사람이 겪은 감상의 단편일까? 불교철학으로 해석하자면 어떤 존재이든 세계와의 관련으로서만 그 의미를 지니며, 일상 한 자락은 인생 전체의 단면일 것이다. 한 사람의 소박한 경험은 전체 세계의 문제와 분리될 수 없으며, 아무리 일시적인 감상일지라도 그간의 삶과 무관하지 않다. 생활습관을 바꾸려 해도 쉽게 바꿀 수 없다는 것이 시인의 소회이다. 그 사람만의 특수한 경험이라면 좋으련만 인간의 지독한 실상이라면 어찌할 것인가. 거기에는 이성이나 도덕감도 다 소용없다. 그것이 시인이 몸서리친 삶의 진실이고 욕망이라는 오래된 관성일 것이다.

감각은 견고하고 관성의 힘은 폭주한다. 어찌해야 감각과 관성의 힘을 이겨낼 수 있을까? 기존 삶의 방식과 기호(嗜好)의 방향을 바꿀 수 있을까? 도덕률을 이해하고 세계 운용 원칙을 숙지하면 자신과 세계를 바꿀 수 있을까? 세계와의 접촉을 차단하면 관성의 힘을 이겨낼 수 있을까?

어떤 사람들은 고민했다. 패배한 자기를 직시하고 아파하기에 고민이 시작된다. 아파하고 고민하고 기존의 자기에서 벗어나려 하면 자신을 바꾸고 세상을 바꿀 수 있다. 고타마 붓다가 그랬다.

3. 착각, 인정 욕구와 청정 욕구

1) 폭주하는 망상, 인정 욕구

혼돈의 시대, 쟁론의 시절에 선사는 한탄했다.

옳지 못한 견해를 지닌 자 중에서도 비교적 나은 사람들은 ‘보고 들어 이해한 것(見聞覺知)’을 모아 그것이 자기 것이라 여기고는, 감각에 비추어진 현상 세계를 자신의 본심이라고 착각한다.

열등한 사람들은 두 입술을 나불거리며 현묘한 담론을 펼친다. 심한 경우 발광하여 제멋대로 마구 지껄이면서 동쪽을 가리킨 채 서쪽을 그려댈 정도로 황당한 상황에 이르기도 한다.

가장 저열한 사람들은 묵조무언(黙照無言)을 고수하고 텅 빈 고요함을 간직한 채, 귀신 굴속에 꼼짝도 안 하면서 궁극의 안락을 구하려 한다.

선사의 걱정을 정리하면 첫째 이해 과신, 둘째 담론 과잉, 셋째 고요한 평온 추구가 문제다.

첫째, 둘째의 증상은 자기 집착(我執), 내 것 만들기(我取), 자기중심 사고(我愛), 우월의식(我慢)이다. 선사는 여러 병증의 근본 원인으로 자기 망상(我見)을 지목한다. “흔히 사대부들은 이 도를 공부하면서 빠른 효과를 바라고서는, 종사가 아직 입을 열기도 전에 벌써 의식활동으로 이해해 버린다.” “잡다한 독이 마음에 들어오면 곳곳마다 가로막힌다. 곳곳마다 가로막히면 아견이 자란다. 아견이 자라면 눈, 귀 가득 그저 남의 허물만 보고 들으며, 물러나 잠시라도 자신을 점검할 줄은 전혀 모르게 된다.”

선사 대혜는 사대부 그러니까 지식인들은 남의 허물만 보고 자기를 점검하지 못한다고 했는데, 왜 그럴까? 대혜에 따르면 이성이 발달하고 지식이 많을수록 자기 과신하기, 자기 구축하기가 강화되기 때문이다. “독사와 맹호는 피할 수 있지만 허위의식은 막기 어렵다.” 혀끝의 감각과 욕망의 관성은 멈추지 않고, 자기애는 폭주하며, 자기 구축하기는 눈덩이처럼 커진다. 선사는 이성과 지식에의 도취를 경고했다.
아견의 이면에는 인정(認定) 욕구가 도사리고 있다. 인정 욕구의 속성, 탐진치이겠다.

2) 격리된 자기, 청정 욕구

셋째 고요한 평온을 추구하는 심리에는 청정 욕구가 똬리를 틀고 있다. 청정 욕구의 내면에는 세상과의 소통을 차단하면 청정해질 수 있다는 착각이 자리를 잡고 있다. 그래서인지 감각과 인식을 단절하려는 시도가 만연한다.

임제는 경고한다.

어떤 눈먼 중들은 배불리 먹고는 그저 좌선하여 관법을 닦으면서 생각이 새어 나갈까 봐 꽉 붙들어 달아나지 못하게 하면서 시끄러운 것은 싫어하고 조용한 것만을 찾는데, 그것은 외도법이다. 조사께서 말씀하셨다. “그대들이 만약 ‘마음에 머물러 고요함을 보고, 마음을 일으켜 밖을 비추며, 마음을 가다듬어 안으로 맑게 하며, 마음을 한 곳으로 모아 선정에 든다’면, 이러한 유형은 모두 조작하는 것이다.” ……그대들이여, 착각하지 말라!

임제의 외침을 정리하자. ‘착각하지 말라! 격리해서 고요한 평온을 추구한다면 선이 아니다.’ 선사는 말한다. “온종일 치열하게 작용할 때 늘 상응하는가? 절대로 공에 매몰되어 고요한 데로 나가서는 안 된다.” 선사는 세상과의 접촉을 회피하여 고요함을 탐닉함, 그러니까 청정 욕구를 간파하고, 그런 것은 “검은 산 아래 귀신 집에서 살아날 계책을 세우는 격”이며 “돌로 풀을 눌러 놓는 것”이라고 탄식했다.

세상사에 시달리고 온갖 혼란스러운 상황에 빠지면 세상과의 단절을 생각해보기도 한다. 고요한 평온을 느끼기 위해 단절을 시도하지만, 뜻대로 되지 않는다. 불교의 대전제에 따르면, 존재는 이미 수많은 관계 속에 있으므로, 관계를 회피한다고 해서 격리될 수 없기 때문이다.

고요히 가만히 있고 싶은 욕망이 스멀스멀 올라온다. 움직이지 말고 ‘가만히 있어라!’는 환청이 울린다. 어찌하면 변화하고 살아날 수 있을까? 이해하면 그럴 수 있을까? 조용히 가만히 있으면 될까? 이제부터 선사들의 속뜻을 느껴보자.

4. 이해와 체험

1) 문 앞의 찰간을 거꾸러뜨려라!

어떤 기록에 의하면, 붓다가 열반에 들 때까지 직제자 가운데 딱 한 사람만 깨닫지 못했다고 한다. 붓다가 열반에 드신 후, 제자들이 붓다의 말씀을 기록하기 위해 모였다. 마하깟사빠가 결집을 주도하면서 참여자를 추천받았다. 무려 499명이 추천되었다. 여러 비구들이 오백 명을 채우자며 아난을 추천했다. 마하깟사빠가 반대했는데, 그 이유가 명확하다. 아난에게는 아끼는 마음, 미워하는 마음, 두려워하는 마음, 어리석음이 남아 있다는 것이다. 한마디로 아라한이 아니라는 것이다.

후대의 기록은 더 극적이다. 결집을 위한 준비 모임에서 어떤 비구가 말했다. “아난은 붓다의 시자로서 가까이서 가르침을 받았습니다. 아난이 이 일에 큰 역할을 맡아야 합니다.” 이때 염화미소의 주인공 가섭이 일침을 놓았다. “그런 학인은 덕력 높은 대중 속에 들어올 수 없다. 그것은 옴병에 걸린 여우가 사자 무리에 들어오는 것과 같다.” 그러면서 아난을 손수 끌어내고는 문을 닫아 버렸다.

비루먹은 여우 새끼가 되어 처참하기 그지없었던 아난은 방일하지 않고 정진했다. 밤이 꼬박 지나고 날이 새려는 새벽이었다. 해뜨기 직전 그는 자리에 누웠다. 머리가 목침에 닿는 순간, 그는 문제의 관문을 돌파했다. 날이 밝자 아난은 가섭을 찾아갔다. 가섭은 그럴 줄 알았다는 듯, 아난을 흔쾌히 받아들였다. 후대의 선사들에 의해 아난이 깨친 일화는 이다지도 멋지게 가공되었다.

쫓겨난 아난과 다시 들어간 아난, 둘 간의 차이는 어디에서 생겨났을까? 아난은 결집에서 쫓겨난 후 생각했다. “나는 붓다를 지극하게 모셨고 계를 범하지도 않았다. 왜 나는 아라한이 되지 못했을까?” “왜 나는 스승의 대업을 따르는 일에서 쫓겨났을까?” 그는 밤새 잠을 이루지 못했다. 만일 아난이 예전처럼 계율을 지키면서 스승의 가르침을 논리로 이해하려 들었다면, 그는 선문에서 잊힌 존재가 되었을 것이다. 그는 한 번도 겪지 않았던 가슴앓이를 해야 했다. 그 아픔 끝에서 그는 그간 느끼지 못했던 낯선 자신을 발견했다. 그리하여 새로운 눈, 새로운 삶이 열렸다.

어떤 문헌은 가섭과 아난의 일화를 이렇게 전한다. 아난이 가섭에게 물었다. “붓다가 가사를 전한 것 말고 무슨 법을 전했습니까?” 바로 이어진 가섭의 대답. “아난아, 문 앞에 있는 찰간(刹竿)을 거꾸러뜨려라!” 이때 아난은 어찌했을까?

아난은 머리로 알아내지는 못했지만 가슴으로 앓았다. 이리저리 머리를 굴릴 수 있지만 다 필요 없다. 붓다가 임종 때에 아난을 불러들여 열심히 정진하라고 당부한 까닭도 여기에 있다. 문제는 문 앞의 찰간, 자기 안의 기둥이다.

아난에 관한 기록들은 사실 그대로일까?

2) 도는 알고 모름에 속하지 않는다

“이렇게 들었다(如是我聞)”라는 문장은 사실만을 기록하겠다는 다짐일까, 독자를 현혹하기 위한 장치일까? 붓다의 제자들은 스승의 언행을 기록하여 후세에 전했다. 그들의 후예들은 그 기록을 정밀하게 분석하여 주석을 붙였다. 세련되고 빈틈 없는 이론이 확립되었다. 그들은 붓다의 “열심히 정진하라”는 당부를 잊지 않았고 교조의 말씀과 권위를 의심하지 않았다.

선사들은 ‘있는 그대로 진리임’을 ‘평상의 마음(平常心)’으로 표현했다. 조주(趙州, 778~897)가 남전(南泉, 748~834)에게 도를 묻자, 남전은 “평상의 마음이 도이다.”라고 대답했다. 조주가 다시 “그래도 닦아 나아갈 것이 있지 않겠습니까?”라고 묻자, 남전은 “무엇이든 애써 하려 들면 그대로 어긋나버린다.”라고 응답했다. 학인 시절, 조주는 집요했다. 그는 오늘날의 우리를 대신해서 멈추지 않고 추궁했다. “하려고 하지 않으면 어떻게 도를 알겠습니까?”

남전의 응답이 결정적이다. “도는 알고 모름에 속하지 않는다!” 어찌해서 도는 알고 모름에 속하지 않을까? 남전은 평범한 사람의 속마음을 간파했다는 듯이 내리고 내려 풀어주었다. “안다는 것은 헛된 지각이며 모른다는 것은 아무런 지각도 없는 것이다.” 앎은 왜 헛된 지각일까?

그런데 붓다의 가르침을 세상에 펼치겠다고 하면서도, 붓다를 천하의 사기꾼으로 만들고 나아가 개밥으로 줘버리겠다고 외치는 세력이 등장했다. 하루는 운문(雲門, 864~949)이 붓다의 출생 이야기를 거론하며 시비를 걸었다. “세존이 처음 태어나시어 한 손은 하늘을, 한 손은 땅을 가리키며 사방으로 일곱 걸음을 걷더니 사방으로 눈을 두리번거리며 말씀하셨다. 하늘 위 하늘 아래 오로지 나는 존귀하다(天上天下唯我獨尊).” 이어진 운문의 말이 흥미진진하다. “그때 내가 보았더라면 한 방에 쳐 죽여 개밥으로 주어서, 천하의 태평을 도모하는 데에 한몫했을 텐데.” 그는 왜 부처를 죽이겠다고 했을까?

선어록은 사실의 기록일까? 어찌 본다면 등불을 전하는 기록(傳燈錄)은 과장과 취사선택의 역사이고, 선사들의 어록은 비틀기와 만들어내기의 경연일지도 모른다. 선어록에 그런 측면이 있음을 부인할 수 없다. 왜 선사들은 과장/취사선택, 비틀기/만들어내기를 서슴지 않았을까?

선사들이 사실을 날조하고 창작한 까닭은? 자기 애착과 과대망상이 폭주하고, 관성은 멈추지 않기 때문일 것이다. 선사들은 지식과 이해로는 자신을 변화시킬 수 없음을 절감했다. 그들은 텍스트 공부의 한계에 봉착하고 절박감을 느꼈다. 오죽하면 그들이 “문자에 의존하지 않는다(不立文字), 텍스트를 벗어나 따로 전한다(敎外別傳)”라고 했을까. 그런 구호들은 착각과 허위의식을 극복하려 분투했던 절박감의 표출이 아닐까? 분투의 결과물이 선이라고 한다면 지나칠까?

왜곡과 창작을 일삼았던 쪽의 표제이다. “이쪽으로 들어왔다면 지식과 이해를 추구하지 말라(入此門來 莫存知解).” “바닥까지 의심해야 제대로 깨칠 수 있다(大疑之下 必有大悟).” 철저하게 의심하지 못하면 깨달을 수 없다. 이해하려 한다면 자신을 변화시킬 수 없다.
지금부터가 문제이다. 왜 변화하여야 하며, 어떻게 해야 변화가 일어날까?

5. 어떻게 해야 할까 1: 결단과 의지

“절벽에 매달린 손을 놓아라!”

경론 공부에 매진하고 선정에 몰입해도 도무지 움직이지 않는 자신에 끝 모를 무력감을 느꼈을 수도 있다. 무력감을 절감한 선사들은 각별한 처방을 제시했다. 이해나 선정의 선결 조건이 있다는 것이다. 결단과 의지가 그것이다. 선사들은 그런 결단과 의지를 “높은 낭떠러지에서 한 발 더 내딛기(百尺竿頭進一步)” “절벽에 매달린 손 놓기(懸崖撒手)”로 표현했다.

향엄(香嚴, ?~898)은 이해로 관문을 돌파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을 자극했다. 그는 극적인 상황을 설정했다. “어떤 사람이 높은 나무에 올라가서 손으로 줄기를 잡지도 않고 발로도 나무줄기를 밟지 않은 채, 입으로 나뭇가지를 물고 있다. 그때 나무 밑에서 다른 사람이, ‘조사가 서쪽에서 오신 뜻은 무엇인가?’라고 질문했다. 대답하지 않는다면 다른 사람이 질문한 의도를 저버리게 되고, 말한다면 생명을 잃을 것이다. 이런 때 어떻게 대응하려는가?” 조금은 억지스럽다. 오죽하면 선사가 억지를 부렸을까?

향엄이 던진 문제를 의식활동으로 해결하려 한다면 헛수고다. 향엄이 설치한 덫에 걸린 셈이다. 야보(冶父)는 덫에 걸린 불쌍한 이에게 독침을 놓았다. 

得樹攀枝未足奇   나뭇가지에 매달려 있는 건 기특할 게 못 되니
懸崖撒手丈夫兒   장부라면 깎아지른 절벽에서 손을 놓아야 하리니
水寒夜冷魚難覓   싸늘한 밤, 물은 찬데 고기는 낚기 어려워
留得空船載月歸   빈 배에 달빛만 담아 싣고 돌아오누나.

길을 가다 보면 높은 산, 가파른 절벽을 만날 수도 있다. 해는 저무는데 날은 춥고 바람은 세차다. 돌아갈 길은 없다. 한 손 한 손 절벽을 기어오르다 더 이상 잡을 것 없는 지점에 봉착했다. 낭떠러지에 한 손으로 매달려 있다. 어떻게 하면 살아날 수 있을까? 여기에 예기치 못한 반전이 있다. 손을 놓고 목숨을 버릴 수 있을 때 살아날 수 있다.
대혜가 응원한다.

그대가 내놓을 방도가 없다면, 곧장 죽는 길로 가야만 한다. 물에 뛰어들든지 불에 달려가든지 해서 목숨을 아끼지 않고 버려야 비로소 죽을 수 있다. 죽어 버리면 도리어 다시 살아난다. 그대들을 보살이라고 부르면 좋아하고 도적놈이라고 한다면 싫어하겠지만, 그대들은 여전히 그저 이전의 그 사람일 뿐이다. 그래서 옛사람은 말했던 것이다. “절벽에 매달려 손을 놓아버려야 기꺼이 스스로 체득할 수 있다. 죽은 뒤에 다시 살아난다면, 그대를 속일 수 없을 것이다.”

선사들은 왜 이다지도 감당하기 힘든 상황을 설정하여 학인들을 궁지에 몰아넣었을까? 달마의 후예들은 사람들이 부처답게 살지 못하는 까닭은 지식이 부족해서가 아니라 부처로 살겠다는 의지가 부족하고 현 상황을 타개하겠다는 결단이 결여되었기 때문이라고 진단했다. 그래서 그들은 지식 축적보다는 결단과 의지를, 이해보다는 공(空) 체험을 처방했다.

선문에 이런 말이 전해진다. “한차례 추위가 뼛속 깊이 사무치지 않으면 어찌 매화가 코를 찌르는 향기를 발산할 수 있겠는가?”

6. 어떻게 해야 할까 2: 거친 땅으로

1) 땅에서 넘어진 자, 땅을 짚고 일어난다

깨달음과 관련하여 가설이 있다. ㈎ “세속을 벗어나야 깨달을 수 있다.” ㈏ “고요한 평온이 깨달음이다.” ㈐ “깨달으면 온통 불국토이다.” 세 가지 가설은 사실일까, 허구일까?

괴물 속의 모파상

먼저 ㈎, ㈏와 관련하여, 현실 벗어나기는 깨달음의 필요조건일까? 고요한 평온은 깨달음의 충분조건일까?
프랑스 혁명 100주년이던 해, 1889년 봄 파리 한복판에 뼈대만 앙상한 철골 구조물이 세워졌다. 구조물의 설계도가 공개되자 시민들은 경악했고 파리의 괴물이라고 수치스럽게 여겼다.

모파상(Guy de Maupassant)도 철골 구조물을 건설하지 말라고 요구했다. 끝내 구조물은 완공되었고, 모파상의 집에 철골 구조물 쪽으로는 창문이 나지 않았다고 한다.

그러던 그가 파리의 괴물 속에 들어가서 식사도 하고 글도 썼다고 한다. 어떤 사람이 질문했다.

“그렇게 반대하더니 여기에 웬일입니까?”

모파상의 응답.

“에펠탑이 안 보이는 곳은 에펠탑 속뿐입니다.”

“우리는 마찰이 없는 미끄러운 얼음판으로 잘못 들어섰던 것이다. 어떤 의미에서 그 조건은 이상적인 것이었고 그로 말미암아 우리는 걸을 수 없게 된 것이다. 걷고 싶다. 그러므로 마찰이 필요하다. 거친 땅으로 되돌아가자!” 살아 움직이려면 마찰이 필요하다. 이상적인 조건을 찾으려 한다며 시끄럽고 마찰이 있는 현장에서 벗어나지 말라. 피하고 싶다면 피하고 싶은 그 속으로 들어가라. 괴물 속, 거친 땅에서 돌파하라는 것이다.

불법은 세간에 있다

세속의 일에 휩쓸리면 탐진치가 기승하기 쉽다. 세속을 벗어나서 선정에 들어야 할까? 선정의 목적은 세상 벗어나기일까? 혜능의 후예들은 혜능의 말을 이렇게 정리했다.

 “불법은 세간에 있다. 세간을 떠나지 말고 깨달아야 한다. 세간을 떠나서 보리를 찾는 것은 토끼의 뿔을 구하는 것과 같다.”

혜능과 그 후예들에 따르면, 세간을 벗어나서는 깨달을 수 없고, 세상일에서 멀어짐은 선정의 목적도 아니다.

그래도 미심쩍다면 다른 선사의 말로 확인해 보자. “만일 일상생활을 떠나 무엇인가를 추구한다면, 파도를 떠나 물을 구하는 것이며 금 그릇을 버리고 금을 구하는 것이다. 구하면 구할수록 더욱 멀어질 뿐이다.” “선은 고요한 곳에 있지도 않고 시끄러운 곳에 있지도 않으며, 생각하여 따지고 분별하는 곳에 있지도 않고, 일상생활에서 인연에 대응하는 곳에 있지도 않다. 비록 그러하지만 결코 고요한 곳, 시끄러운 곳, 생각하여 따지고 분별하는 곳, 일상생활에서 인연에 대응하는 곳을 내버리지 말고 참구해야 한다. 문득 눈뜨면 모든 것이 자기 집안의 일이다.” 언제 어디서든, 사람 사는 일 어떤 것에서라도 선을 해야 한다는 뜻이다. 역대 조사에 따르면 선은 세상일에서 멀어져 고요하게 하는 것이 아니다.

자기 것을 아끼고 나는 남과 다르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본래 부처가 중생으로 살게 된다. 부처가 중생으로 사는 까닭은 세상일 때문이 아니다. 세상일 때문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부처가 중생으로 사는 것일지도 모른다. “부처는 중생의 세계 속에서 일 마친 사람이고, 중생은 부처의 세계에서 일을 마치지 못한 사람이다.” “땅으로 말미암아 넘어지면 땅에 의지하여 일어난다. 일어나거나 넘어지는 것은 사람에게 달려 있으니, 결국 이 한 자락 땅과는 상관없는 일이다.” 깨닫거나 깨닫지 못하는 것, 부처로 살거나 중생으로 사는 것은 세속의 일과는 상관없는 일이다. 오로지 당사자가 진실로 참회하고 본래성불을 수용할지에 달려 있다.

“현실보다 더 초현실적인 것은 없다.”

세속을 벗어나야 깨달을 수 있다는 생각은 망상이다. 고요한 평온이 깨달음이라는 생각은 착각이다. 진정으로 평온을 추구한다면 어찌해야 할까? 선사의 해법을 보자. “진정한 고요가 바로 지금 구현되기를 원한다면, 반드시 치열하게 생멸하는 가운데에서 한번 크게 도약해야 한다.”

2) 불법은 소통에 달려 있다

㈐와 관련하여, 깨달으면 온통 불국토이고 온전한 세상이 펼쳐질까?

지식인 관료 백거이(白居易, 772~846)와 선사 조과도림(鳥窠道林, 741~824)의 일화에서 선의 정수를 음미할 수 있다. 이야기는 백거이가 저장 성의 반란군을 진압하고서 일부러 산속 깊숙이 조과를 찾아와 만나는 것으로 시작한다. 백거이가 인사했다.

“선사께서 앉아 계신 곳이 몹시 위험합니다.” 백거이의 정성을 높이 샀는지, 조과가 한 마디 던졌다.

“노승에게 무슨 위험이 있겠습니까? 그대가 더 위험합니다.” 한 차례 대화한 후, 백거이가 본격적으로 물었다.

“무엇이 불법의 큰 뜻입니까?”

이어지는 선사의 대답이 의외이다.

 “악을 짓지 말고, 선을 행하십시오.”

당대를 주름잡던 정치가이자 문인이었던 백거이의 대응은 상식적이지만 그리 만만하지 않다.

“세 살짜리 어린아이도 그렇게 말할 수 있습니다.”

선사가 선의 정수를 넌지시 건네주었다.

 “세 살 어린아이도 그렇게 말할 수 있겠지만, 팔십 노인도 그렇게 살 수 없습니다.”

이어진 선사의 대답도 언뜻 보면 상식적이지만, 곱씹어 보면 상식 속에서 선의 핵심은 말보다는 삶임을 느낄 수 있다. 선사가 상식을 전한 까닭은? 말하기는 쉬워도 그렇게 살기는 어렵기 때문이 아닐까.

깨달음 이후의 노력[頓悟漸修]이 진짜 수행이라고 했던 지눌이 말했다.

깨달은 후 점수의 문은 오염을 닦는 것만이 아니고, 보살만행을 하여 자기와 타자를 함께 구제하는 것이다. 요즈음 선을 하는 이들은 모두 그저 불성만 밝게 보면 이타의 행원은 저절로 원만하게 이루어진다고 한다. 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불성을 밝게 본다는 것은 그저 중생과 부처가 평등하고 나와 남의 차별이 없음을 보는 것이다. 나아가 자비와 서원의 마음을 내지 않으면서 한갓 고요함에 머무르지 않을까 걱정스럽다. ……한번 깨달은 뒤에는 판별하는 지혜(差別智)로 중생들이 괴로워함을 보고 자비와 서원의 마음을 내어, 제힘과 분수에 따라 보살도를 실천하면 깨달음의 행위가 점점 더 원만해지리니, 어찌 기쁘고 유쾌하지 않겠는가?

여기서 돈오돈수와 돈오점수, 해오(解悟)와 구경각(究竟覺)의 차이를 따지지는 않겠다. 깨달음의 요체로 지눌이 요구한 조건을 정리해 보자. 첫째, 보살만행이 실현되어야 한다. 둘째, 보살만행을 실현하기 위해서는 차별지가 작동되어야 한다. 지눌의 기준으로 보면, 깨달음의 충분조건은 보살만행이고, 보살만행의 필요조건은 가치판단이다.

차별지 곧 가치판단은 불이문(不二門)에 위배되지 않을까? 차별지는 공(空)을 기반으로 할 때만 방편으로 수용할 수 있다. “모든 존재가 공함을 안다 하더라도 방편의 힘 때문에 중생을 버리지 않으며, 비록 중생을 버리지 않는다 하더라도 모든 존재가 공함을 안다.” 자기 집착에서 출발한 차별은 분별 망상이고, 공성(空性)에 근거한 구분은 진정한 차별지이다. 현상적인 차이를 인정하지 않는 무조건적인 연대는 실천력이 없고, 본질적인 연관을 전제하지 않고 나와 남을 구분함은 자기 망상일 뿐이다.

돈오를 표방했던 혜능은 “불법은 소통에 달려 있다(道須通流)”고 했다. 소통하지 않는다면 진리가 아니라는 뜻이다. 그리고 대혜는 “공부가 지극해도 발휘하지 못하면 공부했다고 할 수 없으며, 공부가 세상을 교화하지 못했다면 공부했다고 할 수 없다.”라고 했다. 내면의 고요한 평온이 지켜 졌고 현실 문제를 초월했다고 해서 깨달았다 할 수 없다. 공성 체험이 없는 실천은 맹목이며, 실천이 없는 공성 체험은 공허하다.

7. 깨달음의 조건

1) 언제나 자유로운가

선에는 깨달음의 판별기준이 없을까? 초기불교에는 선정의 단계와 깨달음의 정도에 명확한 기준이 있지만, 선에는 그런 것이 없어 사이비가 난무한다고 생각할 수 있다. 선에도 판별기준이 없지 않다. 깨달음을 묻는 지식인에게 선사가 당부한다. 대혜가 부계신(富季申)과 이한로에게 제시한 깨달음의 판별기준을 정리하면 이렇다.

첫째, 상황에 맞게 자유롭게 주고 빼앗으며, 죽이고 살리는가?
둘째, 남을 이롭게 하고 스스로를 이롭게 하는가?
셋째, 언제나 뜻대로 자유로운가?
넷째, 어떤 일을 하든지 망상과 욕망에 굴복하지 않는가?
다섯째, 깨어있거나 잠자거나 한결같은가?
여섯째, 본연 그대로 행동하면서 억지로 하지 않는가?
일곱째, 생사의 마음이 계속되지 않는가?

첫째, 셋째, 여섯째는 자유롭게 기존의 자기를 극복하고 본원의 자기를 복원함[殺活自在] 그리고 언제 어디서나 주인으로 삶[隨處作主], 둘째는 자비행을 실천함, 넷째는 탐진치를 해소함을 의미한다. 적어도 고요한 평온이나 ‘잘 이해함’은 깨달음의 기준으로 제시되지 않았다. 

2) 거대한 사랑과 연민[大慈大悲]

선문에 들어서려 한다면 스스로에게 물어보라. ‘나는 세상의 아픔을 공감하나? 나는 부처 그대로 살고 있나?’ ‘조사가 서쪽에서 온 까닭’에 온통 매달리기 이전에 ‘싯다르타가 출가한 까닭’을 가슴에 새겨야 하지 않을까. 세상의 아픔을 공감하지 않는다면 범부이거나 마구니, 그것도 아니라면 목석일 것이다. 공감은 감수성이기보다는 의지의 발동에 가깝다.

부처로 살고자 한다면 돌이켜 생각해보자. 싯다르타는 고요한 평온을 위해 왕위를 포기하고 가족을 등졌을까? 아니면 사람들의 아픔에 가슴이 시렸고 세상의 아픔을 치유하기 위해 출가했을까? 그의 출가는 연기나 중도를 발견하기 위해서이기보다는, 연기와 중도를 실행하기 위해서였을 것이다.

봉암사의 적명은 이렇게 말한다. “깨닫고 난 뒤에는 정서적으로 자유로워집니다. ……지적인 장애에서도 벗어납니다. 깨달은 이들의 특징을 들자면 자비심이 생긴다는 것입니다. ……진정한 사랑은 대자대비로 표현됩니다.” 대자대비가 없다면 깨달은 것이 아니다. ‘진정한 사랑’이라는 표현을 썼다면 진정하지 않은 사랑도 있겠다. 무아를 체득하지 못한 사랑, 아견으로 무장한 사랑 곧 자기 과신, 인정 욕구가 그것이다.
이미 그대로 부처이기에 시작도 사랑과 연민이고 끝도 사랑과 연민이다. 부처로서의 삶에 시작과 끝은 다르지 않다. 다른 점이 있다면 일정한 노력이 끼어들었는지, 자연스럽게 발휘되는지의 문제이다.

8. 부처로 살면 부처다

선문에서는 이미 그대로 부처라고 한다.
진정으로 깨달았다면 지혜를 온전히 갖추고 있다. 본디 부처이기에 지혜를 따로 축적하지 않아도 된다. 지혜와 자비를 축적하거나 훈련해야 하는 것이 아니라 바로 실현하고 발휘하면 그만이다. 봄이 와야 훈풍이 불고 꽃이 피는 것이 아니라, 훈풍이 불고 꽃이 피면 봄이라고 한다. 깨달아야 부처로 사는 것이 아니라, 부처로서 살면 깨달았다고 한다.

부처가 범부로 산다면 자기 혁명이 필요하다. 이미 그대로 부처인데도, 부처의 행위가 발휘되지 않고 범부의 행위가 먼저 튀어나온다면 ‘어쩔 수 없이’ 일정한 결단과 노력이 필요하다. 이미 부처인데 노력이 필요하기에 ‘노력 없는 노력’ ‘수행 없는 수행’이라는 용어를 사용한다. 의지를 발동하여 혁신에 몰두하다 보면 어느 순간부터는 저절로 부처로서의 삶이 발휘된다. 

크게 깨닫지 못하는 것은 크게 의심하지 않았기 때문이다(大疑之下 必有大悟). 크게 깨닫지 못하는 까닭은 자신과 세상을 의심하지 않기 때문이다. “지금의 모습이 진짜 나일까? 눈에 보이는 세상 그대로가 진짜 세상일까?” 혹시 현재의 모습과 질서는 중생의 모습이 아닐까? 진실한 모습과 질서는 아직 드러나지 못한 것은 아닐까? 자기가 근본적으로 변하려면 자신의 현재 모습과 세상의 기존 질서를 낯설게 보아야 한다. 낯설지만 새로운 삶, 새로운 세상을 꿈꿔야 본래 자기로 복원할 수 있을 것이다. 낯설게 보기에 가슴이 두근거려야 하리니, 몸서리치도록 낯설게 보아야 할 것이다.

붓다의 메시지를 음미해본다. 본래성불의 의미를 다시 새겨본다:

격리보다는 소통이고, 고요한 평온이나 이해보다는 실천이다. 바로 여기에서 자비를 실천하라. 깨달음은 말에 있지 않고 삶에 달려 있다. 이미 그대로 부처이기에 부처로 살면 그만이다. “부처로 살면 부처이다(佛行是佛).”40) ■

 

 

변희욱 / 서울대 철학사상연구소 연구원. 서울대 철학과 동 대학원 졸업. 〈대혜 간화선 연구〉로 박사학위 취득. 〈간화의 철학: 실제와 원리〉 〈송대의 간화와 격물〉 〈교학 이후, 교외별전 이후: 교외별전의 해석학〉 외 다수의 논문과 《간화선 수행의 성찰과 과제》 등 6권의 공저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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