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교평론 열린논단 2016년 3월 17일

“불교, 동서인문학과 어떻게 소통할 것인가”

불교평론과 경희대 비폭력연구소가 공동주관하는 열린논단 3월모임(3/17)이 열렸습니다. 이번 달 주제는 ‘불교, 동서인문학과 어떻게 소통할 것인가’이며 발제는 한형조 교수(한국학 중앙연구원)가 했습니다.

열린논단도 그렇습니다만 불교를 주제로 발제하고 토론하는 모임에 나가보면 늘 세 그룹의 화법이 엇갈리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학자들은 ‘전문’의 불교를 논설하고, 스님들은 화두를 둘러싼 근본실참에 주된 관심을 보입니다. 그러다보니 소통이 잘 되지 않습니다. 객석의 일반 청중들도 답답하기는 마찬가지입니다. 불교가 삶을 지도해 주기를 바라지만 스님들의 화두는 너무 험준하고, 학자들의 불교는 도무지 알아듣기 난감하다는 것입니다.  

일찍이 윌 듀런트는 <철학 이야기>에 쏟아지는 전문가들의 비판에 대해 이렇게 스스로를 변명했습니다. “어떤 지식이 소통하기에 너무 위대하면, 그 지식은 스콜라적 번쇄함, 아니면 묻지 마의 권위로 떨어지고 만다.” 이 말은 오늘의 불교에게 그대로 적용해도 될 것입니다. 그만큼 우리는 소통이 안 되는 주장이 날아다니는 환경에서 불교를 말하고 있다는 뜻입니다.  

이러한 불통과 동상이몽을 깰 방법은 없을까. 이번 논단은 이런 문제의식을 가지고 불교가 '불교안의 불교'와 '불교 밖의 불교'와 소통하는 방법은 무엇인지에 대해 발제하고 토론했습니다. 발제를 맡아준 한형조 선생은 누구나 알아들을 수 있는 대중적 글쓰기를 통해 ‘불통의 불교’를 ‘소통의 불교’로 바꾸는데 앞장서 온 분입니다. 선생은 이날 발제에서 “일상에 매몰되지 않으면서, 신비를 걷어내는 어디쯤에 불교의 중도가 있다. 이 길은 잊혀진 ‘지식’을 다시 부르는 것에서 시작하고, 이해를 통해 직관에 이르는 것에서 끝난다. 이것을 혜능의 어구를 빌려 말한다면 중승불교(中乘佛敎)라 부를 수도 있겠다.”고 말했습니다.
이날 모임은 PPT로 진행되었습니다. 아래의 자료는 선생의 발제내용을 요약한 PPT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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