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격적인 불교시론의 탄생

《붓다와 함께 쓰는 시론》
푸른사상, 2015년 11월 발행, 334쪽
우리 시론의 문제를 고민해오던 정효구 교수가 이번에 불교시론이라 할 《붓다와 함께 쓰는 시론》(푸른사상, 2015. 11)을 출간하였다. 부제 ‘근대시론을 넘어서기 위하여’에 그의 저작 의도가 담겨 있듯이, 이 책은 서구 이론에 바탕을 둔 근대시론에 대한 반성을 구체적 형태로 풀어낸 의미 있는 저서이다. 서구의 시론을 배우면서도 우리 시와 잘 아귀와 맞지 않는 부분이 많다는 사실은 시학에 입문한 학자들에게 저자의 말대로 “아쉬움, 낯섦, 결핍감, 소외감 등”을 주기에 충분하였다.

그러나 최초의 당혹감은 서구 이론의 적용에 익숙해지면서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여지고, 이런 당혹감은 한 걸음 더 나아가서는 일종의 허위적인 자부심으로까지 변질되기도 한다. 물론 애초의 문제의식을 끝까지 견지하는 이들도 있다. 그러나 그들이 그런 문제의식을 하나의 체계적인 저서를 통하여 풀어내는 경우는 매우 드물다.

지금까지 서구 중심적인 근대 시론에 대한 한계를 자각하고 우리의 전통적인 사유에서 이를 해결하고자 하는 시도가 없었던 것은 아니다. 샤머니즘과 상호소통하는 기층사유적 관점에서 우리의 문학정신을 강조한 김동리와 그것의 시학적 번역으로서 ‘신라정신’을 강조한 서정주, 그리고 최근 여러 저서를 통하여 자기 이론을 형성한 김지하와 신범순 등이 있다. 유교사상의 측면에서 접근한 이로는 윤재근이 가장 대표적이며 근래의 김영석, 최승호, 이성희 같은 이가 있다.

불교사상의 측면에서 접근한 이도 여럿 있지만 대부분 막연한 논의라 할 수 있다. 창작 방법론적으로 불교와 시의 상관성을 강조하는 경우도 극단적인 논의로 귀결되는 경우가 많다. 불교와 문학의 관계를 다룬 글이 산적해 있음에도 불구하고 창의적인 관점에서 불교철학을 시학의 차원으로 접근한 논의는 찾기 힘들다. 불교철학의 독자성과 방대함에 압도당하여 시학의 가능성이 위축된 경우라 할 수 있다.

이때 가능한 시도는 일방향적이고도 비가역적인 연구가 될 수밖에 없다. 즉 문학에 나타나는 불교철학의 영향을 다루는 것이 그것이다.

정효구 교수는 이런 한계 속에 구체적인 연구 결과를 낸 학자 중의 하나라 할 수 있다. 저자는 이전에 유식불교의 관점에서 공감의 문제를 해명한 바 있다. 저자는 공감의 유형을 두 부류로 나누는데, 그 근거를 자아의 문제에 초점을 맞추어 유식철학의 제7식인 마나스식에서 비롯되는 자기중심적 유아와 심층적인 자아초월적 무아에서 찾는다. 전자는 분별과 시비로 이루어진 자아의 세계, 후자는 일심(一心)과 공심(空心)이 구현되는 초아의 세계와 관련되어 있다고 한다. 이에 따라 자아중심적 유아의 공감으로 ‘이해, 생각 이입과 감정이입, 애호, 감격과 통쾌’를 들고 있으며, 자아초월적 무아의 공감으로 ‘납득, 감탄, 전율, 감동’을 들고 있다. 자아중심적 유아의 공감이 제7식인 마나스식에 근거한 데 반하여, 자아초월적 공감이 유식철학의 어떤 주장에 근거를 두고 있는지는 불분명하지만, 이는 시 감상의 문제를 새로운 관점에서 풀어낸 경우라 할 수 있다.

정효구 교수의 이번 저서는 불교 시학의 문제를 보다 전문적인 관점에서 체계적으로 접근하였다는 점에서 기존의 한계를 넘어서고 있다고 할 수 있다. 기존에 이루어진 불교 관련 시학적 접근이 파편적이고 비체계적이었다면 저자의 접근은 종합적이고 체계적이라는 점에서 시학적 의미를 지닌다고 할 수 있다.

이 책이 종합적이고 체계적이라는 점은 이 책의 구성을 살펴보아도 알 수 있을 것이다. 이 책의 구성을 간단하게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이 책은 전체가 4부로 이루어져 있다.

제1부 ‘시심불심(詩心佛心)’은 시학의 문제가 불교의 문제와 동일하다는 점을 강조하는 일반론이다. ‘시, 불성에 대한 믿음으로 밀어 나누기’ ‘시, 불성의 만개를 꿈꾸는 주술의 언어’ ‘시, 불심이 창조한 증도(證道)의 세계’ ‘시, 상(相)으로써 상(相)을 넘어서는 길’ 등의 절들로 일반론을 풀어내고 있다.

제2부 ‘시경심경(詩經心經)’은 불교 경전의 에센스라 할 《반야심경》을 중심으로 《법화경》 《화엄경》 등을 아울러 시경이 곧 심경임을 강조하는 논의를 모은 것이다. ‘시, 반야지혜를 증장하는 길’ ‘시, 전도몽상(顚倒夢想)으로부터 떠나는 길’ ‘시, 무유공포(無有恐怖)의 세계에 이르는 길’ 등 《반야심경》의 중심적인 개념들을 통하여 시의 본질을 다루고 있다.

제3부 ‘시상심상(詩想心想)’은 불교의 관점에서 기존의 근대시론에서 언급해온 시의 구성요소나 특징들을 새롭게 점검하는 각론에 해당한다. ‘문체, 마음의 물질화’ ‘시어, 여실(如實)한 말들의 탄생’ ‘리듬, 원음(圓音)을 그리워하는 율동’ 등처럼 문체, 시어, 리듬, 비유, 상징, 상상력, 어조, 소재, 역설과 반어, 여백, 이미지, 정서, 공감, 독자, 시집 등 15개의 시론 주제들을 다루고 있다.

제4부 ‘시인평인(詩人平人)’은 불교와 동북아의 고전적인 지혜에 입각하여 시와 관련된 여러 주제를 자유롭게 다루고 있는 주제론이다. ‘시와 성공’ ‘시와 심호흡’ ‘시와 연금술’ 등의 절로 이루어져 있다.

이 책을 통독하면서 시학 연구자로서 근대시론이 놓친 부분을 확인할 수 있었다는 점이 무엇보다 의미가 있었다. 근대 서구 시론의 구도에 익숙한 우리에게 이 책은 우리가 그동안 놓친 시학적 문제를 새롭게 바라볼 수 있는 가능성을 암시해 준다. 예를 들어 리듬의 문제, 이미지를 다루는 부분에서 그 가능성을 확인할 수 있다. 리듬의 문제를 다루는 부분은 형식적이고 기계적인 차원의 것만을 다룬 기존 논의의 한계를 인식하게 해주며 이 문제를 창의적인 시각에서 새롭게 부각시킬 가능성을 보이고 있다. 이미지의 문제를 다루는 부분도 그런 가능성을 지니고 있다. 이미지의 문제는 여러 부분에 흩어져 있지만, 전체적으로 기존에 다루지 못한 이미지의 본질을 성찰할 수 있게 만드는 계기를 지니고 있다.

그럼에도 아쉬운 점은 이 책의 내용이 독자로 하여금 전문성에 대한 갈증을 느끼게 한다는 점이다. 즉 논의의 깊이를 느끼기에 다소 부족해 보인다는 것이다. 물론 이 책이 전문 시학자가 아니라 일반인을 상대로 한 교양서를 지향하였기 때문일 수도 있지만, 그럼에도 시의 본질에 닿지 못한 부분이 많다는 우려를 떨칠 수 없었다. 앞에서 다룬 이미지의 문제를 예로 들어 설명할 수 있겠다. 이미지는 시에서 본질적인 요소 중의 하나이다. 추상적 개념과 달리, 감각적 물질성을 보유한 이미지는 관념성을 제거하여 현상적 생생함을 보여주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한다. 시는 개념적이고 논리적인 설득 수단이 아니기 때문에, 시가 시다워지려면 이미지가 전면에 놓일 수밖에 없다.

그런데 이 책에서 이미지에 대한 설명은 일반 근대시론으로서 관점과 대부분 일치한다. 다만 마지막 부분에 모든 이미지에 주관성이 개입되어 ‘진실한 오독’(235)의 면모가 작용한다고 하며, 그래서 이미지는 ‘진실한 환영들’(235)이라고 규정하는 부분이 새로움을 지닌다고 할 수 있다. 그런데 ‘이미지, 진실한 환영들’이라는 절의 제목으로도 부각되어 있는 이 새로운 부분에 대한 논의는 상식적인 수준에 그쳐 버린다. ‘진실한 환영’으로서 이미지의 본질이 중심이 되어 논의가 이루어졌다면 그 깊이가 확보될 수 있었을 것이란 점이 아쉬움으로 남는다. 필자는 이미지의 문제를 불교적 시각에서 다룬 바 있는데, 이미지의 문제를 유식불교의 현량(現量) 개념과 연결시킬 때 기존 논의가 놓친 본질적인 면모가 드러난다고 보았기 때문에 이 점이 더욱 아쉬워 보였다.

기본적으로 이 저서가 이런 한계를 지니고 있다고 판단되지만 아마도 그것은 앞에서 밝힌 바처럼 일반론을 지향하기 때문일 수 있다. 그렇다면 이후 더 전문적인 불교 시학의 탄생이 불가피하다고 할 수 있다. 시학의 판도를 바꿀 핵심적인 개념을 중심으로 불교 시학을 재구성한다면(관점이 바뀌면 본질과 구성요소도 달라질 것이다) 한국 시학뿐 아니라 세계 시학의 발전에 큰 보탬이 되리라 믿는다. ■


박현수 / 시인·문학평론가. 1992년 〈한국일보〉 등단. 시집 《우울한 시대의 사랑에게》 《위험한 독서》 평론집 《황금책갈피》 등이 있음. 유심작품상(학술 부문) 등 수상. 현재 경북대학교 국어국문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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