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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력적인 불교를 기다리며 / 최순열
[65호] 2016년 03월 01일 (화) 최순열 동국대 명예교수

어느 날 늦은 귀갓길의 전철 속에서 젊은이 몇이 주고받는 대화를 스쳐 듣게 되었다.

요즘 공중파 매체에서 방영되고 있는 조선조 개국 전후의 정황을 다룬 드라마의 얘기였다. 그중에 고려 말의 정국을 논하면서 당시 불교가 끼친 사회적 폐해를 신랄하게 비판하는 장면이 등장하는 모양이다. 그들은 사뭇 비분강개하며 그 드라마의 내용에 기대어 전후 사정 불문하고 불교비판에 열을 올리고 있었다. 그들의 대화는 거침없이 현재의 불교에 대한 성토로 옮아갔다. 교계 안팎으로나 항간에 떠도는 도청도설(道聽塗說)의 화제까지 곁들였다. 애써 그들의 편견과 무지와 오해가 불교의 진면목을 미처 접하지 못한 탓에 기인한 것이라고 짐짓 마음을 다독거리다가, 때마침 하차할 역에 당도하게 되어 내리면서도 나의 걸음이 무거웠다.

다음날 나는 무언가 마음이 자꾸 켕기어 견딜 수가 없었다. 굳이 그들의 식견이 천박하고 무지하다고 치지도외해 버릴 수만은 없는 일이다. 왜 전철 속의 젊은이들처럼 불교에 대한 인식이 부박(浮薄)한 가십의 수준에 맴도는 경우를 흔치 않게 맞닥뜨리게 되는가. 이는 불교가 오늘의 대중들에게 제대로 이해되지 못한 탓은 아닐까. 비록 일부 고매한 스님들의 저술이나 법문이 대중의 열화 같은 반응을 불러일으키는 바도 있으며, 처처의 명성 도량에 법문삼매의 장이 시시때때로 열리는 바도 있다 하겠으나, 이는 우리만의 리그전에 심취하여 우리 자신의 그림자를 못 보고 자족하는 것은 아닌지 고개를 갸웃거리게 된다.

고답적인 불학(佛學)과 종론(宗論)의 고창(高唱)도 중요하고 신도들의 열렬한 호응과 지지의 기반을 확장하는 사업과 장광설도 중요하지만, 가장 기본이 되는 일반 대중들의 불교인식을 개선하고 확충하는 노력은 진작 미흡하지 않았는지 생각해보아야 하겠다. 그 드라마의 내용으로 일찍이 우리가 국사교육 시간에 익숙하게 들어왔던 ‘고려불교의 폐해’라든지 ‘조선조의 억불숭유’의 학습사항이 여전히 한국사에서 요지부동의 도그마로 고착되어 있는 사실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는가.

과연 그런 당대적 인식을 어떻게 해석하고 수용해야 하는지를 규명하고 바로잡는 작업이 충분하였던가. 물론 불교의 긍정적 요소로 언필칭 ‘호국불교’ 또는 ‘왕실 주도의 불경언해’를 거론해보지만, 그런 여러 사실(史實)의 기술(記述)이 함의하고 있는 의미망(意味網)이 확대 재생산되는 현상과 오늘날 우리 불교의 자화상은 어떤 상관속(相關束)으로 묶이는가를 새삼 생각해보지 않을 수 없다.

나는 지금 지나간 날의 불교나 오늘날의 불교를 탓하거나 시비곡직을 가리고자 함도 아니고 그럴 역량도 아니 된다. 하지만 뜻 높고 의지 굳은 불교인들이 각각 자기 위상에 상응하는 책임감과 열정을 가지고 오늘의 불교가 시정(市井)의 무분별한 비판의 대상이 되는 실정을 극복하고자 하는 자기 성찰 노력이 좀 더 조직화되고 첨예화되어야 하지 않을까 하는 고심을 내내 떨쳐버릴 수 없었다.

그래서 내가 전철 속의 정경을 상기하면서 먼저 떠올린 것은 〈조선불교유신론〉(한용운)이었다. 진지한 불교인이라면 예서 언급할 필요도 없을 만큼 모를 리 없는 내용이다. 목차만 일별해도 척추가 곧추서게 된다. 다음으로는 〈조선전기 경세론과 불교비판〉(강중기)을 찾았다. 두 서책의 주창과 분석은 어떻게 유효하게 될 것인가를 생각해본다. 물론 그 내용이 무오류의 절대선이 아니라 할지라도, 또 비판하고 대안과 반론을 제시할 여지가 있겠지만, 왜 그러한 명제가 성립되어야 했는지에 대한 통찰의 과정을 허심탄회하게 거치다 보면 우리 스스로 어떤 해답의 시사점에 닿지 않을까 생각된다.

오늘날 우리 불교가 어찌해야 한다는 고담준론도 분분하고, ‘개혁’이라는 화두를 기치로 내거는 사례도 많지만 필경 ‘미완’의 접두어가 여전히 벗겨지지 않고 있으며, 조선조 유자들의 불교 배타적 논지를 여지없이 극복해내는 학문적 노고가 눈에 확연하지 않은 것은 나의 과문(寡聞)의 소치인가. 물론 부단히 경전과 교학과 홍법 포교와 사회사적 불교의 위상과 현상에 대해 투철한 실천가와 연구자들의 용맹정진의 소산이 다양한 갈래로 전개되고, 또 수렴되어야 한다.

다만 그렇게 절차탁마된 결과물의 내용이 불교정보와 불교교육의 콘텐츠로 제대로 회향되기 위해서는 검증된 정본(定本)이 어떤 절차로든 정립되어야 할 것 같다. 정본화의 문제성은 있을 수 있겠지만, 불교대중화를 위한 방편으로 필요불가결의 사안이다. 그 정본을 준거로 삼아 제도교육의 현장에 투입되는 실질적 교재에서 불교 관련 내용을 개선광정(改善匡正)하는 절차도 추진해야 하고, 불교계와 유관한 각종 교육 시스템에서도 교재 및 교안으로 구성되고 실행되어야 한다.

각급 종립학교는 물론이거니와 각 불교 강원, 사찰 단위의 불교대학에서 이루어지는 교육 및 포교 활동이 매우 중요하다. 승가 교육이나 교법사 양성, 재가불자의 신심 강화교육이나 일반 대중 상대의 교화사업 등 다각적 차원의 활동에도 쇄신되고 세련된 교재와 구안(具案) 프로그램이 투입되어야 한다. 뿐만 아니라 다양한 사회교육 조직이나 문화콘텐츠의 생산자들에게도 매력적인 토픽으로 제공되어야 하겠다.

그렇게 되었을 때 비로소 지하철에서 스치는 젊은이들의 불교 인식은 사뭇 아름다운 담화로 향기가 만발하리라고 기대할 수 있을 터이다. ■


sychoi@dgu.ed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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