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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에 가는 가톨릭 신자 / 전동균
[65호] 2016년 03월 01일 (화) 전동균 동의대 교수

비록 주일미사를 자주 빼먹는 처지이긴 하지만 나는 명동성당에서 견진성사까지 받은 가톨릭 신자여서 책상 위에는 성모상과 기도서가 놓여 있다.

그런데 나는 절집에 다니는 것을 좋아한다. 오랫동안 내 즐거움 중 하나는 휴일에 북한산 문수사에 가는 거였다.

구기동 입구에서 꽤 가파른 돌길을 한 시간 반쯤 땀을 쏟으며 올라가면 마치 허공에 매달린 듯한 문수사가 있다. 이곳은 기도처로도 널리 알려져 있는데, 천연동굴인 문수굴의 찬 바닥에 엎드려 문수보살께 절을 올리는 일도 좋고, 온몸을 굽혀 절을 올리는 이들의 간절한 뒷모습을 바라보는 일도 좋았다. 절을 올린 뒤에 앞이 확 트인 마당에서 건너편 보현봉을 마주하면 가슴이 더없이 서늘해지곤 했다.

보현봉은 전형적인 암봉(岩峰)이어서, 봄날이면 갓 태어난 햇볕들이 맨살의 몸을 수줍게 반짝였고, 가을엔 직벽의 가슴 한쪽을 날 선 칼날이 스쳐 지나간 듯 단풍이 새겨졌다. 또 겨울이면 거무스레한 아랫도리만 살짝 드러낸 채 온통 하얗게 눈에 뒤덮인 장엄을 보여주었다. 그 모습이 마치 인간은 알지 못할 신비한 경전의 말씀인 것 같아서 오랫동안 문수사 마당에 앉아 있곤 했는데, 그러고 있으면 어머니 품속이 바로 여기거니 싶었다.

10여 년을 다닌 문수사뿐만이 아니다. 그전엔 비구니 절답게 정결하고 예쁜 진관사에 빠져서 어린아이들을 데리고 다녔고, 설악산 백담사며 오대산 월정사며 인연이 닿은 절에서는 한동안 방을 얻어 머물기도 했다.
가톨릭 신자인데도 스스럼없이 절에 다니면서 어느 절에 가든 꼬박꼬박 부처님께 3배를, 때로는 108배를 올리기도 했는데, 이런 나를 좀 의아하게 생각하는 이들도 있었다. 보수적인 개신교 신자인 한 친구는 기독교인이 그렇게 부처님께 정성 들여 절하는 게 온당한 일이냐고 나에게 심각하게 물은 적이 있었다. “세상 만물을 창조하신 무소부재(無所不在)의 하느님이 절엔들 아니 계시겠느냐”고 웃으면서 응답했지만, 그이는 잘 이해가 되지 않는다는 듯 곤혹스러운 표정이었다.

같이 성당을 다니는 아내도 그랬다. 가톨릭이 지난 1962년 제2차 공의회를 통해서 다른 종교를 존중하고 열린 대화를 시작했지만, 부처님 전에 108배까지 올리는 것은 좀 지나치지 않느냐는 게 아내의 말이었다.
주변에서 이런 얘길 몇 차례 듣다 보니 좀 불편하기도 해서 한 번은 가까운 신부님께 여쭈었더니, “당연히 부처님께 절을 해야지!” 하셨다. 통쾌했다. 신학생 시절 조계사에 놀러 갔다가 할머니들 부탁으로 연등을 거는 일을 한 적이 있노라는 신부님이 무척이나 다정스레 느껴졌다.

종교에 대한 생각이나 마음은 어떤 지식이나 논리보다 직접 겪은 체험이 열쇠가 아닌가 싶다. 불교와 가톨릭은 겉보기엔 다르지만 심층에서는 서로 통하고 닮은 점도 많은 것 같은데, 예컨대 봉쇄수도원의 수사들과 선원에서 정진 중인 스님들의 삶이 그리 다르지 않다고 나는 생각한다.

남에게 얘기하긴 부끄러울 만큼 미약한 신앙을 지녔지만, 아침저녁 짧은 기도를 잊지 않는 가톨릭 신자면서도 이처럼 불교에 친근함을 느끼는 것은 내가 자란 환경이나 체험과 깊은 관계가 있을 것이다.
나는 고향이 경주다. 알다시피 경주는 우리나라 어느 곳보다 불교 유적이 많은 곳이다.

내가 어린 시절을 보낸 집의 화단에는 어느 절이 고향이었을 연꽃무늬 돌들이 놓여 있었고, 다니던 고등학교 바로 뒤엔 분황사가, 집에서 학교로 가는 도중엔 황룡사지 터가 있었다. 곧잘 낚시하러 다니던 방죽 아래 밭에서는 귀한 석불이 발굴되었고, 친구들 가운데 몇몇의 주소지는 꽤 유명한 암자였다. 자주 소풍을 가던 남산에서는 목 없는 불상 위에 뱀들이 똬리를 틀고 앉아 따스한 햇볕을 쬐고 있는 모습을 목격하곤 했다. 그리고 사월 초파일이나 칠월 백중날뿐 아니라 무슨 일만 있으면 할머니와 어머니들은 쌀을 들고 절에 기도를 드리러 가곤 했다. 그런 모습들을 보고 자란 사람에게 불교는 종교이기 이전에 삶의 일부, 생활의 한 풍경이 아니었을까.

지난겨울 월정사에서 방 한 칸을 얻어 지내고 있을 때 내 윗방에는 예수회 신부님이 와 계셨다. 묵언수행을 하는 듯 말이 없던 그 신부님은 전나무 숲길과 상원사 적멸보궁으로 이어진 선재길을 걸으면서 문수성지의 청량한 숨결 속에 아픈 몸을 돌보고 계셨다. 또 내가 아는 한 스님은 성당에서 법문을 하신 적이 있는데, 마더 테레사의 삶에서 깊은 감동을 받았다는 말씀을 하셨다. 그래서일까, 그 스님이 계신 절에는 해맑은 미소를 띤 수녀님들이 종종 방문하시곤 했다.

나는 명동성당의 성모상을 즐겨 찾지만, 또한 길상사의 관세음보살상을 좋아한다. 최종태 선생이 조각한 단아한 모습의 그 보살상은 어쩌면 성모님을 닮은 것 같기도 하고, 흰 물그릇 앞에서 기도를 올리던 우리 어머니와 할머니의 마음을 무척이나 닮은 듯싶다. 그래서 그 앞에선 절로 손이 모이고, 마음속에 숨겨 두었던 말을 하고 싶어진다. ■                     dong@deu.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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