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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림이 있는 한마디를 위하여 / 성재헌
[65호] 2016년 03월 01일 (화) 성재헌 불경번역가

동창이 훤하고도 일어나지 않는 게으름을 꾸짖을 요량인지 아내가 TV 볼륨을 높였다.

“엘니뇨 영향으로 북극 제트기류가 요동치면서 전국에 한파가 닥쳤습니다. 곳곳에 폭설이 쏟아졌고, 현재 서울의 수은주는 영하 15도를 기록하고 있습니다.”

결의에 찬 아나운서의 목소리와 리포터의 호들갑만으로도 얼어 터진 수도계량기와 정체된 도로 사정, 그리고 옆에서 째려보고 있을 아내의 눈길까지 훤히 보이는 듯하였다. 하지만 아랫목이 너무 따끈했다. 결국 “추워―” 하고 웅얼거리면서 굼벵이처럼 잔뜩 웅크렸다. 그렇게 추운 날씨 소식을 면죄부처럼 틀어쥐고서 이불을 돌돌 감을 때였다. 드르륵 하고 문이 열리더니 앞집 할머니가 문턱으로 들어섰다.

“아이고, 신랑은 아직 자네. 긴긴 겨울밤은 뭐하고 여태 늘어졌어!”

어른이 오셨으니 벌떡 일어나 인사를 해야 마땅했다. 하지만 ‘헛기침도 없이 안방까지 불쑥불쑥 드나드는 사이에 새삼스레 뭔 인사’ 하고는 여전히 꿈속인 양 이부자리에서 뭉그적거렸다. 그렇게 우렁찬 TV 소리를 극복하고 인륜마저 망각한 채 게으름뱅이 노릇을 고수했다. 하지만 이어진 아내와 할머니의 대화에 잠꾸러기 시늉이 곧 들통 나고 말았다.

“이거 맛이나 봐.” “웬 사과예요?” “부아가 치밀어서 어제 한 상자 샀지.” “뭔 일 있으셨어요?” “어제 미장원에 놀러 갔는데, 주인 할마씨가 사람들과 둘러앉아 사과를 깎고 있더라고. 그래서 ‘뭣들 하셔’ 했더니, 주인 할마씨가 힐끔 쳐다보더니만 대뜸 이러는 거야. ‘자네는 사과 안 좋아하지.’ 아니, 내가 사과를 한쪽 달라고 했어 어쨌어. 다짜고짜 여름철 혓바닥 들이미는 파리 쫓듯이 하니, 인정머리가 어째 그 모양이야! 하도 화가 치밀어 그 길로 시장에 가서 사과를 한 상자 샀잖아.”

할머니의 표현은 절묘했다. 할머니가 겪었을 당황스러움과 노여움, 미장원에서 벌어졌을 사건의 전모가 “혓바닥 들이미는 파리 쫓듯” 했다는 그 한마디에 온전히 담겨 있었다. 게다가 열심히 손발을 비벼대며 요리조리 눈치를 보다가 혓바닥을 날름거리는 파리의 모습이 연상되어 도저히 웃음을 참을 수 없었다. 결국 낄낄대다가 이부자리를 박차고 일어나야만 했다.

새삼 ‘적절한 언어란 이런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문득 간밤의 일이 떠올랐다. 남명화상(南明和尙)의 〈증도가계송(證道歌繼頌)〉에 이런 구절이 있다.
 
증도가, 이 곡조를 노래함이여
일찍이 열반회상에서 직접 부촉하셨지
황금빛 피부의 가섭이 웃음을 그치지 못했으니
몇 자락 푸른 산이 초가를 마주함이로다.
證道歌。歌此曲。
涅槃會上曾親囑。
金色頭陀笑不休。
數朶靑山對芧屋。

부처님께서 영산회상에서 연꽃을 들어 보이자 수많은 대중 가운데 오직 가섭 홀로 빙그레 미소 지었다는 고사가 있다. 그때 부처님께서 “나의 정법안장(正法眼藏)과 열반묘심(涅槃妙心)을 가섭에게 부촉하노라”라고 말씀하셨다고 한다. 남명화상은 영가대사(永嘉大師)가 노래한 〈증도가〉와 그 노래를 이어서 부른 자신의 계송(繼頌)이 부처님께서 가섭존자에게 부촉하신 것과 다름없다는 것이다. 그러면 부처님이 가섭에게 전하고, 가섭이 알아차리고서 빙그레 웃고, 영가대사가 노래하고, 남명화상도 노래한 정법안장과 열반묘심은 무엇일까? 남명화상은 그것을 제4구에서 “몇 자락 푸른 산이 초가를 마주한 것”이라고 표현하였다.

이게 무슨 뜻일까? 내가 아둔한 탓인지, 세월이 많이 흘러 공감대를 잃어버린 탓인지, 구두 신고 발가락 긁는 것처럼 도무지 개운치가 않았다. 밤새도록 이리저리 해설서를 뒤지다가 새벽녘에 《남명집언해(南明集諺解)》를 읽고는 무릎을 쳤다. 조선 성종 때 명승 학조대사(學祖大師)께서 이렇게 설명하셨다.

“‘황금빛 피부를 가진 가섭이 웃음을 그치지 못한다’고 한 것은 지렁이에게 머리와 뿔이 돋은 격이다. ‘몇 자락 푸른 산이 초가집을 마주한다’고 한 것은 늙은 고양이가 펄쩍 뛰어 나무에 오르려다가 힘도 달리고 재주도 달려 땅바닥에 처박힌 꼴이다.”

학조 스님의 말씀은 이렇게 바꿀 수도 있을 것이다.

“가섭이 깨닫고 웃었다고? 지렁이 머리에 뿔 나는 소리 하고 있네. 오늘 집 앞에서 보는 산이 어제 그 산이라고? 늙은 고양이 담벼락 기어오르다 고꾸라지는 소리 하고 있네.”

깨달아 새삼스레 얻은 바가 있다고 하면 헛소리고, 깨달아도 전혀 새로울 게 없다고 해도 웃기는 소리란 뜻이다. 너무도 명확했다. 게다가 고양이가 높은 담장 앞에서 아등바등 용쓰는 우스꽝스러운 모습이 그려져 절로 웃음이 터졌다.

적절한 언어란 바로 이런 것이 아닐까? 언어란 뜻을 전달하는 수단이다. 언어는 애초에 상대를 염두에 두고 전개하는 것이다. 읽는 이의 가슴을 울리지 못하면 소동파의 〈적벽부〉도 낙서이고, 듣는 이의 가슴을 울리지 못하면 베토벤의 운명도 소음이다.

그간 번역(飜譯)을 업으로 삼아 부처님과 조사의 말씀을 전달한답시고 용을 썼지만 학조 스님의 표현대로 ‘늙은 고양이 담벼락 기어오르는 꼴’은 아니었는지 심히 의심스럽다. 과연 누군가를 이부자리에서 벌떡 일으켜 세우고 무릎을 치며 감탄하게 했을까? 가만히 돌아보니, 앞집 할머니만큼도 절절하게 느끼지 못하고 생생하게 표현하지 못한 것 같다.

늘어진 게으름에 지나간 과오까지 겹쳐 이래저래 부끄러운 아침이다. ■ tjdwogjs@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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