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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날 생각 / 최승범
[65호] 2016년 03월 01일 (화) 최승범 시인, 고하문학관 관장

1.

어린 시절 나는 주로 할아버지의 훈도 아래 자랐다. 《천자문》을 깨친 것도 《소학》을 읽은 것도 할아버지를 따라서였다.

“고자소학(古者小學)에 교인이쇄소응대진퇴지절(敎人以灑掃應對進退之節)과 애친경장융사친우지도(愛親敬長隆師親友之道)하니 개소이위수신제가치국평천하지본(皆所以爲修身齊家治國平天下之本)이라……” 즉 ‘옛날 소학에서는 물 뿌리고 쓸며, 응대하고 대답하며, 나아가고 물러나는 예절과 어버이를 사랑하고 어른을 공경하며, 스승을 존경하고 벗과 친하게 지내는 도리를 가르쳤다. 이것은 모두 ‘몸을 닦고 집안을 가지런히 하며, 나라를 다스리고 천하를 평안히 한다’는 대학의 가르침의 근본이 된다.’를 두 어깨 흔들며 읽은 것도 할아버지를 따라서였다.

아침에 배운 몇 줄을 책 덮고 염송할 때엔 곧잘 ‘죽마(竹馬)’에서 ‘승(乘)’을 빠트리기 일쑤였다. 그 때문에 할아버지의 담뱃대 대통을 맞을 뻔한 일도 있었다.

8·15 해방 후 집을 떠나 중학교엘 다닐 때도 방학이면 할아버지께선 한문을 읽으라는 말씀이었다. 이때마다 영어 공부를 핑계 삼아 나도 막무가내였다. 이제 되짚어 생각해봐도 후회막급이다.

2.

어린 시절 고향의 뒷산엔 호성암(虎成庵)이란 암자가 있었다. 저 때의 스님은 호걸품이 있었다. 곧잘 우리 집 사랑채에 들러 할아버지께 밖에서 들은 세상 형편 이야기들을 전하고 암자로 돌아가기 마련이었다.
바로 육이오 전쟁 때의 일이다. 무슨 일로의 연유였던가, 나는 남원경찰서 유치장에 하룻밤 수감당한 일이 있었다. 저 때 호성암의 호걸품 스님도 와 있는 것이 아닌가. 눈인사를 나누었지만 나에게 따로 귀띔해 주는 말은 없었다.

나는 다음날 풀려나 학교로 돌아왔다. 이때 나는 남원 우체국장 관사에 기숙하고 있었다. 지금 생각해도 꿈만 같을 뿐, 무슨 영문이었던가를 알 수 없다.

3.

몇 번째의 일본 여행길에서였던가. 마음에 드는, 읽고 싶은 책 한 권을 샀다. 다카다 고우인(高田好胤, 1924년생)이 저자였다. 1989년 10쇄를 기록하였다. 책 뒤표지에 인세는 고우인이 주지로 있는 약사사(藥師寺) 사찰 부흥기금으로 삼겠다고 밝혀져 있다.

이런저런 이야기보다도 이 책이 마음에 든 것은 무엇보다도 책 이름에 있었다. 책 커버 또한 삼베를 특수 처리한 멋스러운 것이었다. 책 제목은 우리말로 직역하면 《어버이의 모습은 아들딸의 마음》이었다. 이는 《소학》에 근거를 둔 말인 셈이다. 곧 아들딸의 사랑은 사람의 길을 바르게 행하도록 하는 데 두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어버이의 뒷모습이 언제나 아들딸에게 본보기가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소학》에는 송나라 장횡거(張橫渠)의 말도 전한다. 어린아이를 가르치는 데는 ‘안상공경(安祥恭敬)’의 네 가지를 먼저 가르쳐야 한다는 것이다. 조용 침착하고, 알뜰 찬찬하고, 공순 온공하고, 삼가 조심해야 한다고 했다.

요는 실천 궁행이 문제다. 어버이가 앞서고 자녀들이 따를 수 있는 가정이어야 한다.

최근 들어 어린이 학대가 물의를 일으키고 있다. 바로 최근까지도 뉴스 시간마다 의붓아비, 의붓딸, 친딸, 친어미 갈피조차 잡을 수 없는 세상 꼴이다. 이런 꼴의 세상 망조가 일찍이 있었던가.
잠시 숨도 돌릴 겸, 스스키다 규킨(薄田泣菫, 1877~1945)의 시 한 수를 옮겨본다. 

저편 작은 산을 원숭이가 간다 
앞선 큰 원숭이가 물정을 몰라
뒤따른 원숭이도 물정을 몰라
중간의 원숭이가 영리하여
산전(山田)에 씨를 뿌렸다
꽃이 피고 열매 맺으면
두 원숭이는 돌아와서
하나도 남기지 않고 먹어 치워서
종자를 뿌린 친구 이름은
잃어버려 끝내 생각하지 못한다

요컨대, 다른 사람의 괴로움은 잊고, 그 위에 정좌하고 앉아서, 제 잇속만을 챙기는 사람들이 있어 세상 돌아가는 꼴은 얄궂기도 하다는 이야기이다.

4.
이만 마무리를 지어야 할 것 같다. 처음 생각으로는 무엇인가 이야기가 될 법 같기도 했었다. 그러나 줄을 바꾸어 내려오면서는 이건 아닌데 하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그래도 옛날이 그리워지는 것은, 요즘일수록 옛 가르침이 필요하지 않은가 싶어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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