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집 | 불교경전의 번역과 유통

1. 니까야독송회 7년 결사가 시작되다

2006년 12월 7일 자 인터넷판 〈한국일보〉는 “초기불교 경전 전부를 부처님이 쓰던 빨리어(고대 인도 언어) 원전에서 바로 옮긴 한글본으로 7년간 읽고 공부하는 ‘신행결사(信行結社)’가 7일 시작됐다. 불교교육단체 동산반야회는 ‘한글 니까야독송회’를 결성, 이날 저녁 서울 종로구 조계사 옆 동산불교회관 법당에서 니까야를 설명하는 첫 자리를 가졌다.”라는 기사를 실었다. 전재성 박사가 번역한 5부 니까야 읽기 모임인 ‘니까야독송회 7년 결사’가 출범하게 된 것은 동산반야회의 고 김재일 이사장의 원력 덕분이었다.

금은 각지에서 초기경전 읽기 모임이 많이 생겨났지만, 2006년 당시에는 일반 언론에서도 다룰 정도로 매우 신선했다. 왜냐하면 그로부터 몇 년이 흐른 뒤에도 오랫동안 큰 사찰 불교대학에서 공부한 노보살님들로부터 “니까야, 아함경이라는 경전을 들어본 적이 없다”는 말을 자주 들었던 것이 당시 불교계의 사정이었기 때문이다.

고 김재일 이사장이 필자에게 결사를 이끌어 줄 것을 청하면서 초기경전을 읽어야 하는 이유를 들려주던 모습이 눈에 선하다. 그런데 그때 필자의 귀에 가장 깊이 들어와 박힌 말은 딱 하나였다.

“힘들게 우리말로 번역했는데 우리나라 사람이 읽지 않으면 아무 의미가 없다.”

어쩌면 동산반야회의 니까야독송회 7년 결사는 한국 불자들에게 부처님의 원음을 읽힌다는 취지만큼이나 ‘우리말로 번역한 경전을 읽는 모임이 없어서는 안 된다’는 것이 가장 근본적인 이유라 해도 지나치지 않다.

그동안 혼자서 한문 아함경과 역경원에서 번역한 아함경, 그리고 남전대장경을 통해서 초기경전을 읽고, 고 고익진 선생님에게서 아함경에 담긴 교리공부를 해왔던 필자에게 결사의 리더가 된다는 것은 영광이었지만 부담이기도 했다. 무엇보다 내가 빨리어를 공부하지 않았기 때문이고, 그리고 빨리어를 공부했다고 하더라도 교리에 대한 설명은 언어 그 너머의 이해를 가지고 있어야 하는데, 그걸 쉽게 풀어내기란 여간 어렵지 않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읽기 모임이 없다는 건 말이 안 된다’는 취지에 적극 동감한 필자는 그 모임에 가담했다. 그렇게 해서 2006년 12월의 네 번에 걸친 모임에서는 역자인 전재성 박사가 주도해서 초기경전의 중요성을 강의 형식으로 이끌었고, 이어서 2007년부터 필자가 본격적인 읽기 모임을 이끌어갔다.

본격적으로 니까야 읽기 모임이 시작됐을 때의 〈법보신문〉의 기사(2007년 1월 8일 자)는 다음과 같았다.
“‘니까야 읽기 7년 신행결사’에 참여한 대중들은 1월 4일 오후 7시 동산불교회관 법당에서 쌍윳따니까야의 첫 장 ‘갈대의 품-거센 흐름을 건넘의 경’을 독송하는 것으로 7년 신행결사 대장정의 첫발을 내디뎠다.”
취재기자는 이어서 모임에 참석한 사람들의 육성도 전하고 있다.

초기불교 공부를 꾸준히 해왔다는 최정환 씨는 ‘다소 느슨한 감이 있기는 했지만, 상당히 의미 있는 시간이었다’고 첫 시간을 자평했다. 그리고 친정어머니와 함께 니까야 읽기 7년 결사에 참여한 천윤경 씨는 ‘기초교리를 배우고 신행생활을 하면서 무엇인가 미진하고 풀리지 않는 부분들이 있어 답답하던 중 니까야 읽기 모임을 알게 됐다’며 ‘7년이라는 세월이 만만치 않지만 이런 기회가 또 있을까 하는 생각에서 참여하게 됐는데, 한글 니까야를 읽으면서 순간순간 희열을 느끼기도 했다’고 첫날의 소감을 밝혔다.

50여 명의 대중은 적어도 다음과 같은 사항에서 공통점을 가지고 있었다. 첫째, 석가모니 부처님의 친설이 담긴 경전이 ‘니까야’라는 점을 알고 있었고, 둘째, 그동안 이런저런 신행단체에서 여러 경전을 읽어왔지만 늘 뭔가 막연한 느낌이었다는 점이다. 한마디로 말하자면, 초기경전인 니까야의 한글 번역본을 읽어나가면 그 어떤 매개자도 필요 없이 부처님을 직접 만나서 부처님의 가르침이 무엇인지 또렷하고 확실하게 알게 될 것이라는 기대를 품었다는 것이다. 우리글로 번역된 초기경전 읽기 모임은 이런 설렘을 안고 출범하였다.

2. 7년 결사의 과정과 마무리

초기경전은 어마어마한 양이다. 《법화경》이나 《금강경》을 생각하고 니까야 읽기 모임을 시작한다면 머지않아 질리고 지겨워서 그만두기 십상이다. 애초 동산반야회에서 시작한 니까야 읽기 모임 7년 결사는 50명이 넘는 인원으로 출범했지만, 한 달이 채 지나기도 전에 그 인원이 눈에 띄게 줄어들었다. 처음 독송회를 시작하고서 인터뷰할 때 회원들이 기자에게 들려줬던 그 설렘과 환희심이 한 달을 넘지 못했다는 사실은 충격이었다. 대체 뭐가 잘못되었던 것일까?

무엇보다도 《쌍윳따니까야》를 완독한다는 자체가 사실 좀 무모했다. 똑같은 구절이 수도 없이 반복되는데 그게 퍽 지루했었다. 그리고 뭔가 흥미를 돋울 스토리텔링을 할 수 있는 경전도 아니었기 때문이다. 특히 5부 니까야를 완독하려면 그 시간이 엄청나게 걸릴 것이기 때문에 쉬지 않고 쭉쭉 읽어 내려가야 한다는 애초의 방침에도 문제가 있었다. 처음부터 필자의 역할은 사람들을 독려하면서 완독하게 하는 데에 있었지 경전의 내용을 설명하는 건 아니었다. 경전의 내용을 조목조목 설명하다가는 그 많은 니까야를 완독하려면 수십 년이 걸릴 판이요, 또한 그런 체제는 자칫 기존의 강의들과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었다.
절반에 가까운 사람들이 지루하고 지쳐서 그만두는 사태를 바라보다가 형식을 바꿔 보기로 결심했다. 그건 바로 ‘그날 읽을 경전들에 담긴 배경을 설명하고, 각 경전마다의 주제나 중요한 단어를 간략하고 명쾌하게 먼저 짚어준다’는 것이었다.

결사를 시작한 지 1년 뒤에 월간 《불교와 문화》에서는 이렇게 취재 내용을 게재했다.

지도법사인 이미령 역경위원이 먼저 읽을 경전에 대해 간략히 설명한다. 나오는 인물과 설해진 계기, 기억해야 할 부분 등을 소개한 다음 함께 1시간여 동안 큰 소리를 내어 경전을 읽는다. 그러고 나서 궁금한 점을 질문하고 대답하는 시간을 갖는다.
— 《불교와 문화》 2008년 1월호

확확 줄어들던 숫자가 멈추었다. 너무 늦은 감이 없지 않았지만 이렇게 해서라도 20명 남짓한 사람들이 결사를 이어갈 수 있었다. ‘완독’에 의미를 두지 않고 ‘경전 내용 이해’에 의미를 두는 것으로 방침을 바꾸자 사람들의 관심도가 커가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사람들에게는 설명이 필요했다. 배경을 들려주고 맥락을 훑어주면서 흥미를 가지고 접근하도록 유도할 필요가 있었다. 지루하게 반복되는 니까야의 구절들을 만나도 그 지루함과 피로감을 넘을 수 있는 영양제가 필요했다. 그건 바로 지도법사의 역량에 달렸다. 설명에 상식과 흥미를 담자 사람들의 반응이 달라졌다. 앞서 이 모임을 취재한 잡지사 측은 사람들과의 인터뷰도 담고 있는데 그 내용이 흥미롭다.

안순자 불자(69, 마포구 성산2동)는 ‘비슷한 내용이 자꾸 되풀이되는 것이 처음에는 짜증이 났으나 이제는 그 법문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마음으로 알 것 같다’면서 ‘되풀이해서 읽을수록 의미가 다가오고, 다른 책도 읽어보고 싶은 마음이 생겨 아들에게 가끔 불서를 사오라고 한다’고 밝혔다. (중략) 독송회에 참여하는 것이 ‘마치 부처님의 생생한 육성을 듣는 것 같아 좋다’는 박영철 거사(54, 서초구 반포동)는 ‘7년 후 아함경을 끝내면 대승경전도 읽어볼 계획’이라고 의욕을 보였다. (당시) 니까야독송회 회장 김영수 거사(37, 경기도 고양시 덕양구 화정동)는 ‘읽다 보니 아난이나 가섭 존자가 마치 할아버지처럼 생각돼 친근하면서도 진한 감동이 느껴진다’면서 ‘니까야 공부를 하다 보니 나의 전공인 불교미술 제작에도 새로운 눈이 떠진다’고 밝혔다.
— 《불교문화》 2008년 1월호

사람들이 말 속에서 뭔가 다른 것이 느껴진다. 처음 갓 출범했을 때는 막연하게 ‘의미 있다’라거나 ‘희열을 느낀다’라는 소감이었다면, 1년을 지내온 사람들은 조금 더 구체적으로 자신들의 생각을 드러내고 있는 것이다. ‘그 말씀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마음으로 알 것 같다’ ‘다른 책도 읽어보고 싶은 마음이 생긴다’ ‘부처님 육성을 듣는 것 같다’ ‘경전 속 등장인물이 육친처럼 느껴진다’는 것이다. ‘생생하다’ ‘친근하다’는 말이 들려오기 시작했다. 저 먼 피안의 사자후로만 느껴졌던 붓다의 가르침이 이렇게 니까야독송회 모임 회원들에게 육화(肉化), 체화(體化)되어 갔다.

문자로 적혀 있던 붓다의 말씀이 살아서 현실의 자신에게 뚜벅뚜벅 걸어와 피부를 툭 건드리며 살을 떨리게 하는 것을 몸소 느껴본 사람은 이제 초기경전의 무게를 절감하고, 그걸 읽어야 한다는 절박감을 스스로 짊어진다. 회원들의 숫자는 아주 조금 줄어들었지만 그래도 그 숫자로 꾸준히 몇 년을 이어갔다.

〈주간불교〉의 취재기자는 당시 결사에 참여한 사람들의 이야기에 조금 더 귀를 기울이면서 다음과 같은 기사(2009년 4월 30일 자)를 썼다.

초기 경전을 봉독하고 담긴 뜻을 배우는 강의를 들으면서 회원들은 부처님 법에 쉽게 다가갈 수 있는 계기가 됐다고 입을 모은다. 대승경전의 추상적인 개념들이 자기 안에서 체화될 수 있었다는 것이다.

불교에 이제 갓 입문했다는 이법운심 보살(62)은 “경전을 전혀 모르고 왔는데도 쉽게 부처님 말씀을 공부할 수 있다”면서 “시간이 지날수록 부처님 법을 알아간다는 게 신기하고 나 자신이 기특하다”고 말했다. 이 씨는 이어 “쉽게 이해되는 만큼 실생활에서도 많은 도움이 된다”면서 “특히 팔정도에 대해 알아가면서 스스로를 낮추고 실행할 수 있는 원력을 갖게 됐다”고 말했다.

25년간 불교를 공부해왔다는 이정혜(60, 자광심) 독송회 총무는 니까야를 독송하면서 무엇보다 모르고 무조건 믿었던 불교에서 벗어났다고 강조했다. 이 총무는 “25년 동안 불교를 믿으면서 친족의 죽음도 겪고 힘든 일이 많아 고민하면 대부분 ‘천도재를 지내라’는 답변이었다”며 “니까야를 읽으면서 스스로 미혹한 부분에서 벗어날 수 있었고 적어도 모르면서 무조건 불교를 믿지는 않게 됐다”고 속내를 털어놨다. 이 총무는 이어 “부처님의 원음을 생생하게 담고 있는 게 바로 초기경전”이라면서 “초기경전은 읽으면 읽을수록 어렴풋이 알았던 불교 교리들이 교통정리가 되는 것 같다”고 즐거워했다.

또한 니까야독송회의 박주석 회장은 같은 날 취재했던 기자에게 “‘수년간 사업체를 운영하면서 나도 모르게 나 자신이 권위적이고, 관료적으로 변해 있었다. 성격도 급했고, 지시 일변도로 사람을 대해 왔었다’며 ‘독송을 하면서부터는 둥글고 원만하며 솔선수범하는 모습으로 변했다고 주위 사람들이 평가한다’고 생활의 변화를 이야기했다.”고 인터뷰했다.

3년째 경전읽기 모임을 꾸준히 해온 사람들에게서는 ‘부처님 법을 알아간다는 것’ ‘실생활에서도 도움이 된다’ ‘무조건 믿는다는 것에서 벗어났다’ ‘어렴풋이 알았던 교리들이 교통정리가 되는 것 같다’는 소감이 흘러나왔다. 소리로 전해지고, 문자로 적혀 내려왔던 붓다의 가르침이 21세기를 살아가고 있는 현대인의 삶을 툭 건드리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하지만 막연한 ‘환희심’이나 ‘가피’가 아니라 조금 더 구체적으로 자신의 일상에 어떤 변화가 일어나고 있음을 깨달았다는 회원들의 인터뷰가 흥미롭다. 그리고 그 모임을 이끌어간 필자는 사람들과 이야기를 나누는 과정에서 그들이 자신의 목소리로, 그리고 자신의 언어로 붓다의 가르침에 대해 말을 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경전에서 그랬다더라’ ‘스님이 그러셨더라’가 아니라 ‘내가 생각하기에 부처님은 ……셨던 것 같습니다.’라는 말을 하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스님과 같은 매개자가 없으면 붓다를 스스로 인지할 수 없을 것만 같았던 보통의 불자들은 이렇게 신행생활의 주체가 되어 자신의 생각으로 자신의 언어로 자신의 목소리로 불교 이야기를 하기 시작했다.

니까야 독송 7년 결사는 2013년 12월 19일 회향했다. 그러는 사이 초기경전의 한글 번역작업은 매우 다채로워졌다. 일단 완역한다는 임무를 무난히 완수한 역자들은 이제 자신들의 번역본을 검수하면서 조금 더 완전한 번역본이 되도록 애를 쓰고 있다. 또한 여러 사람이 니까야를 통해 조금 더 쉬운 불교 이야기를 책으로 써서 내고 있다. 무엇보다도 이제는 니까야 읽기 모임이 참 많이 생겼는데 그중에는 7~8년의 역사를 자랑하는 모임도 있다. 사람들은 우리말로 번역된 니까야 읽기 모임을 통해서 무엇을 느끼고 있을까? 그 이야기를 들어보았다.

3. 경전읽기모임 참여자들을 인터뷰하다

〈법보신문〉에는 〈나의 발심수행〉이란 제목의 연재물이 2004년부터 시작해서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다. 여기에서는 염불, 독경, 절, 사경 등의 다양한 수행법으로 인생에 커다란 의미와 삶의 보람을 되찾은 재가불자들의 이야기를 만날 수 있다. 필자는 이 연재물을 주의 깊게 살펴보곤 하는데 그때마다 참 흥미로운 사실을 확인한다. 대한민국 불자들에게 경전 수행은 ‘무조건 《금강경》’이고, 특히 사경 수행은 ‘무조건 《법화경》’이라는 점이다. 팔만사천법문이라는 말도 있듯이 수없이 많은 경전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한국의 불자들에게 선택받은 경전은 ‘오직’ 《금강경》과 《법화경》이라는 사실이 흥미롭지 않은가? 참으로 많은 사람이 《금강경》을 열심히 독송해서 마음의 평화를 얻고, 삶의 지혜를 얻고, 가피를 입어 횡액을 무사히 건넜다고 고백한다. 그런데 그보다 더 많은 숫자의 사람들이 《금강경》을 비롯한 경전들을 아무리 읽어도 뭔가 와 닿지 않는다고 고백한다. 그들의 말은 거의 똑같다.

“훌륭한 말씀이겠지요. 하지만 우리 같은 중생이 뭐 다 알 수 있나요? 그거 다 알면 부처님이게요? 그냥 스님들이 읽으면 좋다고 하니까 읽는 거지요.”
‘읽으면 좋다’ -경전을 대하는 보통 불자들이 늘상 듣는 말이다. ‘어디에 좋은가?’라고 물으면 ‘분별심 내지 말라’라는 따끔한 질책이 돌아온다. 이 얼마나 모호하고도 무모한 문답인가. 지금 자신에게 무엇이 필요한지도 파악하지 못한 사람에게 ‘무조건 좋다’라고 경전을 권하면서도 ‘읽다 보면 저절로 트인다’라면서 ‘그러기 전까지 분별심 내지 말라’는 대답이 과연 타당한가?

지금까지 경전을 사이에 둔 사람들의 대화는 거의 이렇게 진행되어 왔다.

‘뭔가 있는 것 같은’ 경전을 ‘뭐가 있어야 하는지’도 모르는 사람들이 ‘뭔가 대단한 것을 깨달을 때까지’ 읽는 것이 경전 수행의 일반적인 모습이었다. 이게 현실이다.

도대체 그 ‘뭔가’가 뭐란 말인가. 우리는 그걸 어떻게 알 수 있을까? 부처님이란 분은 손을 내밀어 붙잡으려 하면 잡히지 않는 환(幻)과 같은, 그런 존재란 말인가? 선가의 스님들에게는 이런 생각들이 쓸데없는 분별심일지 몰라도, 이런 자세에 진지하게 물음표를 다는 일은 매우 중요하다. 종교는 자신의 삶에 자기가 주인공이 되도록 해주는 것이기 때문이다.

언제까지 ‘스님이 좋대.’라는 말로 사람들이 붓다의 가르침으로 인도될 것이라고 생각하는가. 이제 사람들은 스스로 경전을 펼쳐 읽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 시작은 초기경전의 한글번역본을 읽는 모임에서 확인할 수 있다. 니까야 한글번역본 경전 읽기 모임에 참여하고 있는 사람들의 목소리를 들어봤다.

① 상도선원의 ‘니까야 합송회’ 임희근 씨

서울 동작구 상도선원에서는 2008년 8월부터 ‘니까야 합송회’를 시작해서 현재까지 이어오고 있다. 이 합송회는 주지이신 미산 스님의 제안으로 시작됐다. 처음부터 이 합송회에 참여해서 주도적으로 이끌고 있는 임희근 씨(불문학 전문번역가)는, 상도선원이 ‘교육과 수행’을 중히 여기는 도량인 만큼 초기불교 경전을 읽는 모임을 통해 제대로 된 불교 신행교육 도량으로 자리 잡겠다는 스님의 취지와도 부합된다고 말한다. 처음 이 모임을 시작했을 때는 선원에 오래전부터 다녔던 신자들이 대거 참여했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연령층이 낮아지고 있다.

임희근 씨는 니까야를 만나기 전에는 대승경전들을 봉독했는데 불광교육원에서 각묵 스님의 강의를 듣고 초기경전과 인연을 맺었다. 니까야 공부를 시작하면서 그는 “예전에는 신앙생활이 좀 붕 떠 있는 느낌이었다. 이전까지 막연하게 믿어왔던 불자의 신앙생활에 제대로 된 이정표를 만난 기분이다. 현실적인 가르침이 담겨 있다.”라고 말한다. 그는 《대반열반경》을 처음 읽었는데 그때 자신이 부처님의 직설에 대해 목말라했음을 알게 됐다고 말한다.

현재 격주 월요일 오후에 열리는 상도선원의 니까야 합송회에는 고정인원이 10여 명 정도이고, 직장인들이기 때문에 꼬박꼬박 참석하는 일이 쉽지는 않다. 이 모임이 8년째 이어올 수 있었던 데에는 법천 거사의 힘이 아주 크다. 그는 합송회에서 읽을 분량에 대해 미리 파악하고 발제를 해서 사람들에게 소개한다.

그의 진지하고 열정적인 자세가 니까야 합송회에 힘을 불어넣어 주고 있다. 회원들 중에는 그저 초기경전이라는 데에 호기심이 일어서 왔다가 다시 대승경전 쪽으로 경전 수행을 이어가는 사람들도 물론 있다. 임희근 씨는 이 모임의 확실한 리더 역할을 해줄 사람이 있었으면 하는 바람과 함께 초기경전을 독송하는 모임들이 ‘범(凡)니까야 네트워크’라도 형성해서 경전 독송에서 일어나는 궁금증이나 차분하고 정확한 해설을 공유하기를 바란다. 임희근 씨는 니까야의 특징을 ‘현실적’이라고 대답한다. 막연하기만 했던 불교와의 만남이었지만 이제는 불교가 매우 현실적으로 다가오고 있으며, 두 발을 안심하고 바닥에 내리게 만들어준 경전이라는 답이다. 그리고 많은 회원이 거의 같은 생각일 것이라고 들려주었다.

② 불광교육원 ‘초기불전 공부 모임’의 조성애 씨
    (주부, 개인 사업가, 사찰 봉사자).

2011년에 시작한 이 모임은 현재 《디가니까야》를 읽는 중이다. 불광교육원에서 공부한 사람들이 중심이 되고 있는데 처음에는 20명에서 시작했지만 현재는 12명으로, 성비로는 남성이 더 많다. 매주 화요일 오후에 진행하고 있는데 한 시간 30분은 니까야를 합송하고, 그리고 마지막 30분은 명상을 하는 것으로 공부 모임을 마친다.

이 모임 역시 재가불자들이 자발적으로 기획하고 시작했으며, 현재 도원 정춘태 거사가 좌장의 역할을 하고 있다. 도원 거사는 그날 읽을 경의 내용을 미리 공부한 뒤에 합송할 때 주목해야 할 부분, 주제, 내용 설명을 회원들에게 들려주며, 합송한 뒤에는 회원들끼리 질의응답하는 시간도 갖고 있다. 이 모임에 처음부터 참여해서 관리 및 진행의 실질적인 업무를 맡아서 하는 조성애 씨는 “예전에는 ‘기도하면 좋다, 보시하면 좋다’라고만 들었다. ‘그냥 좋은 게 좋은 것이니 열심히 읽기만 하면 된다’는 말을 많이 들었다.

하지만 사찰에서 기본교육을 받고 불교대학을 다니면서 자꾸 갈증을 느꼈다”고 말한다. 예전에 대승경전을 읽을 때는 애매모호하고 추상적이었지만 니까야를 독송하고 그 설명을 듣고 생각하다 보니까 어느 순간, “아, 그래, 바로 이거였구나!”하는 깨달음이 마음속에서 생겨났으며, 그걸 스스로 체인하는 순간 뭔가 굉장히 신났다고 말한다. 필자는 조성애 씨의 이 말을 들으면서 이건 바로 ‘자내증(自內證)’의 경지가 아닐까 생각했다. 다른 이의 언어, 종이 위의 글자로 만나던 내용을 자신의 몸으로 터득하고 소화가 될 때 느끼는 그 기쁨이 바로 이것이리라는 것이다.

조성애 씨는 니까야를 공부한다고 해서 예전에 대승경전을 읽으며 했던 신앙생활 자체가 달라지지는 않았다고 한다. 니까야를 합송하면서 스님들의 법문이 오히려 더 잘 이해가 되었으며, 니까야가 《법화경》이나 《화엄경》과도 맥이 통하는 걸 느꼈다고 한다. 각 경전들이 전혀 다른 차원을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라 니까야 속에도 불자로서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에 대한 내용이 들어 있고, 《법화경》이나 《화엄경》에도 니까야의 메시지를 충분히 확인할 수 있어서 신행생활에 자신감이 더 확고해지는 걸 느꼈다고 말한다.

덕분에 창건주인 광덕 스님 법문의 핵심에 조금 더 가깝게 다가가는 자신을 발견하게 되었다고 한다. 다시 말하면, 늘 안갯속에 가려져 있던 것만 같았던 대승의 가르침이 오히려 살갑게 그리고 또렷하게 자신에게 이해되고 있음을 느꼈다는 것이다. 그리고 경전을 읽으면서 터득한 내용을 생활에서 자꾸 접목하게 되고, 다른 이들에게 불교에 관해 이야기해 줄 때에도 경전에 근거해서 말하게 되므로 자신감도 있고, 더 분명하게 말해줄 수 있어서 좋다고 한다.

조성애 씨는 특히 니까야를 읽으면서 등장하는 지역 이름이나 제자 이름이 실제적이어서 좋았다고 말한다. 성지순례를 갔어도 경전의 내용과 해당 지역이 제대로 맞아떨어질 때 뿌듯한 자신감을 갖게 되었다는 것이다. 제자들도 대체로 실존인물들이라는 점에서 현실적인 만족감이 더 커졌다고 한다. 초역사적인 불교가 역사성을 띠게 되는 순간이 아닐까 한다.

그는 불광의 ‘초기불전 공부모임’의 특징으로 큰소리로 합송하는 것을 들고 있다. 큰 소리로 낭송을 하자니 글자를 틀리게 읽어서는 안 되겠다는 마음에서 정신을 똑바로 차리게 되고, 발음도 또렷하게 하는 연습이 절로 되며, 이런 과정을 통해 남들 앞에서 이야기할 때 정확한 내용을 분명하고 또렷하게 자신감을 가지고 하게 되었다고 말한다. 조성애 씨는 니까야 공부모임에서 아쉬운 점이 있다면 경전의 주제를 조금 더 명확하게 짚어서 일러주는 길라잡이 역할을 해줄 사람이나 장치가 있었으면 하는 아쉬움도 표했다. 뿐만 아니라 우리말 번역본이라는 것을 감안하더라도 어떤 글자에는 한문 표기도 병기하면 의미가 조금 더 명확해질 것이라는 의견도 주었다.

③ 변택주 씨(붓다로 살자 연구원, 꼬마평화도서관을 여는 사람들 바라지)

변택주 씨는 불교계에서 순 우리글로 칼럼을 쓰고 있는 몇 안 되는 불자이다. 그런 만큼 우리말로 풀어낸 초기경전이 나왔다는 사실은 그를 행복하게 해준다. “우리말로 풀어내는 것이 붓다의 뜻을 더 잘 살려낸다. 한문과 같은 어려운 불교용어로 남아 있으면 웬만큼 읽어서는 그 뜻이 와 닿지 않기 때문이다.”라고 그는 말한다.

붓다가 어떤 말씀을 했는지 그 뜻이 와 닿지 않는 사람이 불자로서의 삶을 기운차게 살아갈 수 있을까? 그래서 그는 될 수 있으면 경전들이 순우리말로 더 풀어 쓰이기를 바란다. 우리말은 개념어이기보다는 사람의 하루살이에 직접적으로 닿아 있다는 것이 그의 지론이다. 가령 ‘관세음보살’에서 ‘관’이라는 말은 ‘보고 살핀다’라는 뜻으로 풀 수 있는데, 이 말에서 ‘보살핌’이라는 뜻을 충분히 끌어낼 수 있고, 중생들을 보살피는 존재가 관세음보살이라는 뜻으로 이어지지 않겠느냐는 것이다.

이처럼 쉽게 알아듣는 것은 뭔가를 하게 하고, 하다 보면 알게 되는 것이니, 경전이 우리말로 풀어져야 하는 것은 당연하고도 필요한 일이라고 그는 말한다. 또한 그는 우리말로 풀어낸 경전을 소리 내어 읽기를 권한다. 소리 내어 읽다 보면 실제로 몸에 그 소리가 울리게 되는데, 이런 각자의 울림이 함께 읽음으로써 ‘어울림’이 되지 않겠느냐는 것이다. 우리 삶을 고스란히 담고 있는 우리말 경전을 소리 내어 읽음으로써 붓다의 가르침이 저 멀리 자리해서 한없이 바라보게만 하는 고매한 차원의 이치가 아니라, 붓다처럼 살게 해주는 ‘직설(直說)’이 될 것이요, 경을 소리 내어 읽음으로써 우리는 붓다로 사는 것이 될 것이라고 그는 말한다.


④동산반야회 ‘니까야 독송 7년결사’의 박주석 씨(사업기획가)

동산반야회에서 필자와 함께 니까야 독송 7년결사를 이어온 박주석 씨는 니까야 독송결사를 시작하면서 ‘눈이 뜨였다’고 말한다. 자신의 모습이 보였다는 말이다. 자신의 모습을 바라보는데 그게 그렇게 슬플 수가 없었다고 한다. 젊은 시절 어떻게든 가난을 헤쳐 보려고 발버둥 치며 지내온 시절의 자신이 한없이 불쌍해지면서 그동안 세상을 덧없이 살아왔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고 그는 말한다. 니까야 속에 담긴 붓다와 사람들의 문답을 통해 자신의 지난 삶이 보이기 시작했고, 깊은 통탄과 함께 진한 아픔을 느꼈다고 한다.

하지만 차츰 그런 삶들이 전혀 무의미하고 고생스러웠기만 한 게 아니라 마음먹고 견뎌낼 때 자신에게는 좋은 시간이 돌아올 수 있다는 것도 깨달았으며, 이후에는 니까야 독송결사에 참여하여 불교 공부 한다는 것이 신나기 그지없었다고 들려주었다. 박주석 씨는 결사 7년을 결석한 적이 없었다. 그는 긴 호흡으로 읽어야 하는 이 결사에 참여하면서 어떤 일이 있어도 마지막까지 함께하겠다는 결심을 했고, 그 결과 자신과의 약속을 이뤄냈다.

이전에도 다른 경전을 읽기는 했지만 수박 겉핥기식이었다고 그는 회고한다. 또한 매주 니까야를 합송하기에 앞서 해당 내용에 대한 친절한 설명이 크게 도움되었다고 한다. 다른 곳에서 경전반에 들어가면 강사가 자신의 지식을 자랑하는 듯한 모습이 그리 기분 좋게 받아들여지지 않았는데, 니까야에서는 철저하게 석가모니 부처님과 그 제자들의 모습에 근거해서 배경 이야기와 주제에 대한 설명을 듣자니 아주 차분하게 불교에 대해 알아가는 계기가 되었다고 그는 말한다.

그는 “이전에는 부모님들이 토속적으로 절에 다니며 착하게 사는 모습을 보이는 것이 불교라고 생각했었다”고 말한다. 하지만 니까야를 공부하면서 “내게 일어난 일들을 부처님 관점에서 바라보고 의문을 갖고 답을 구하려고 해야 했는데 그러지 못했구나.” 하는 반성을 하게 되었고, 니까야 독송결사에 참여하면서부터는 “난관에 봉착하면 구원받을 것만 생각했는데, 이제는 풀어나갈 지혜를 찾아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고 그는 말한다.


4. 경전읽기모임은 어떤 영향을 미칠까

1) 개인에게 미치는 효과

몇몇 사람과 인터뷰를 하면서 그들이 힘주어 말하는 대목들을 살펴보았다. 임희근 씨의 경우 ‘현실성’이라는 말을 강조했다. 우리글로 번역된 초기경전을 읽으면서 안갯속에 부옇게 가려져 있던 것이 또렷하고 명백하게 현실적으로 다가왔다는 말이다. 수많은 불자들에게 불교란 어떤 것인가를 물으면 명확한 대답을 하지 못한다.

불교의 메시지가 워낙 크고 깊어서 그런 것일 수도 있겠지만, 불자들의 삶과 유리되어 있기 때문이기도 하다. 자신들의 목소리로 불교에 대해서 한마디도 하지 못한다면 그런 신앙생활이 얼마나 위태롭겠는가. 현실적이지 못한 내용을 붓다의 가르침이라고 받아들이자니 답답하기도 했을 뿐만 아니라 모호하기까지 했을 테다. 하지만 초기경전은 질문이 정확하고 그에 대한 붓다의 대답도 명확하다.

실존했던 인물들과의 문답 속에서 이뤄지는 진리추구의 길은 재가불자들에게도 확고한 믿음을 안겨주었던 것이리라.

조성애 씨의 경우 ‘역사성’이란 말을 유난히 강조하는 것처럼 느껴졌다. 초기경전을 공부하면서 성지순례를 떠나보니 ‘바로 이곳이 석가모니 부처님께서 제자 ○○○○에게 이러저러한 가르침을 들려주신 곳이구나’ ‘경전 속에 등장하던 지명이 바로 이곳이구나’라는 것을 확인하면서 환희심이 생겨났다고 그는 말했다. 종교란 현실 저 너머의 세계까지 아우르는 것이라는 걸 부정하지는 않겠다. 하지만 지금 살고 있는 이 현재와 현실을 무시한 저 너머는 의미가 없다. 조성애 씨는 우리가 우러르고 겸손히 받아들이는 가르침이 ‘진짜로 이곳’에서 펼쳐진 것이라는 것을 확인했다. 그런 기반 위에서 대승의 가르침도 무난하게 소화가 되었다는 그의 말에서 불자들에게 필요했던 것은 바로 이 ‘역사성’이었음을 확인했다.

변택주 씨의 경우 우리말로 부드럽게 번역된 경전을 ‘합송할 경우의 효과’를 강조했다. 우리말의 장점은 문자로만 남는 것이 아니라 실제의 삶으로 고스란히 구현된다는 특징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큰 소리로 천천히 합송하는 그 자체만으로 경전 속 가르침을 실제로 체험하는 듯한 효과까지 낼 수도 있다고 그는 강조했다. 경전 관련 모임이 누군가 한 사람의 강의에 의존하는 것이 아니라 다 함께 한목소리로 낭송하는 방향으로 필히 이어지는 것은 수행이 삶 속에서 그대로 펼쳐지는 것과 다르지 않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 아닐까.

박주석 씨와의 대화에서 니까야 독송결사가 한 개인에게 어떤 의미가 있는지를 생각하게 되었다. 니까야는 다른 경전들과 달리 붓다가 숱한 사람들과 대화를 나누는 경의 모음이다. 헤아릴 수 없이 많이 오가는 문답 속에서 경전 독송자는 기꺼이 그 대화에 참여하게 된다. 질문자의 모습 어디쯤에서 독송자 자신의 모습을 보게 되고, 그 질문에 친절하게 대하는 붓다의 모습을 통해서 자신의 고민이 정당한 것임을 느끼게 되고, 붓다와의 문답을 통해 지혜를 얻어가는 경전 속 주인공들의 모습을 통해서 독송자들도 자기 인생의 주인공으로서 어떤 자세를 취해야 하는지를 익힌다.

예전의 경전 모임에서도 이런 효과를 있었겠지만 특히 니까야 읽기 모임에서는 이런 일들이 더 자주 일어나고 있다. 기도 만능주의가 아니라, 자신의 현재를 바라보고, 풀어내고자 의지를 일으키고, 인과법 등에 빗대어 스스로 사색하면서 살아갈 힘과 용기를 얻었다고 그는 말했다. 단순히 부처님의 가르침을 익히는 것이 아니라 ‘독송자 스스로가 부처님처럼 생각하게 되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2) 경전읽기모임의 효과

그렇다면 이런 장점을 가진 경전 독송이 공동체 안에서 꾸려질 때는 어떤 효과를 갖게 될까? 무엇보다 한문을 거치지 않았다는 점에서 많은 독송자가 편안하게 생각한다는 점이 흥미롭다. ‘한문경전은 어렵다’는 것이 사람들 사이에 팽배했음을 반증하기도 한다. 하지만 엄밀하게 말하면 ‘한문’이라서 어려웠던 것이 아니라 한문으로 쓰인 경과 논을 풀어내는 사람들이 어렵게 만들었기 때문이기도 하다. 무엇보다 한문이라는 문자는 글자 하나하나마다 수많은 뜻을 동시에 담고 있어서 똑 부러지는 해석을 유도하기가 어려웠다. 그러다 보니 기존의 중역 경전을 공부하는 경우, 부처님 가르침을 공부하기보다는 ‘한문’을 공부하는 것에 더 초점을 맞추기도 했다.

하지만 원전에서 우리글로 직역된 경전을 만나면서 사람들은 글자(문자) 풀이보다는 내용 파악에 주력하게 되었다. 또한 맥락을 파악하기도 쉬워졌다. 주석서 등의 도움을 받으면 아무리 어려운 내용이라도 그 주변 정황을 알게 되면서 어느 정도 파악할 수가 있기 때문이다. 서울불교대학원대학의 정준영 교수는 “한문은 다의적인 데다 함축적인 메시지를 품고 있는 문자이기 때문에 그 내용을 파악하기가 어려웠지만 빨리어는 그 뜻이 단순하고도 또렷하다. 현대인에게 정확히 다가갈 수 있는 장점이 있다. 그래서 빨리어를 직역한 우리글 초기경전을 읽는 분들은 무엇보다도 ‘쉽다’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라고 말한다.

전체적인 맥락을 짚어가면서 실재한 인물들과의 문답을 통해 붓다라는 존재를 확인하는 과정은 불자들에게 자신이 살아 있는 부처님을 친견하고 그 회상(會上)에 동참했다는 뿌듯함을 안겨준다. 그 뿌듯함은 신심과 직접적으로 이어진다.

                       그림 1                                                          그림2

예전에는 그 어려운 경과 논을 먼저 공부한 스님이라는 필터를 통해서 부처님 가르침을 만났다면 이제는 달라졌다. 직접 부처님 회상에 참여해서 그때 일어난 일들을 독송하게 된 것이다. 필터를 통해서 받아들이는 가르침은 아무래도 변형되기 십상이다. 부처님 가르침이 온전히 전해지기보다는 전달자의 취향과 근기에 따르기 때문이다(〈그림 1〉).

하지만 직접 한글로 번역된 경전을 접하면서 재가불자들은 그 어떤 중간 전달자를 거치지 않고도 부처님을 대면한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재가자는 전문 수행가인 스님과 동등하게 불제자로서 신행생활을 하게 되었다고 말할 수 있다(〈그림 2〉).

이런 뿌듯한 만족감은 불자들의 적극적인 자세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재가불자들이 자발적으로 니까야독송회 모임을 만들고 이끌어가고 있다는 것이다. 물론 여기에는 사찰의 주지 스님의 역량이 큰 힘을 발휘하고 있다는 점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그런 가운데 스님을 모시지 않고도 우리글로 번역된 경전을 불자들 스스로가 팀을 꾸려 몇 년씩 이어오고 있다는 점을 무엇을 말할까.

스스로가 신행의 주체자로 우뚝 서는 것을 말하고 있다. 늘 절대적 존재(관세음보살 등)의 구원 대상으로서, 전문적 수행자(스님)에 비해 한참 낮은 차원의 후원자로서 존재하던 불자들 사이에서 이제는 직접 부처님의 가르침을 만나고 합송하고 자신들의 목소리로 이야기를 나누면서 그 위상이 달라지고 있다는 것이다.
우리글로 번역된 경전 읽기 모임은 단순히 경전 공부 차원에만 머물러 있지 않다. 초기경전 속에 등장하는 다양한 수행법을 익히면서 실제로 명상과 참선 수행으로도 이어가려는 움직임도 보이고 있다. 정준영 교수는 “기존의 남방불교권에서 강조하는 수행법들은 니까야 중에서도 《대념처경》이나 주석 문헌에 치우쳐 있다는 아쉬운 점도 있지만, 니까야라는 방대한 문헌 속에 등장하는 다양한 수행법들을 자꾸 만나다 보면 경전이라는 텍스트의 도움을 받으며 참선수행에 실제로 임할 수 있다”고 말한다.

 간화선의 경우 어떻게 임해야 하는지, 그리고 어떤 경로를 거치고, 어떻게 이어지는지에 대한 정리가 아쉽다. 그래서 사람마다 저마다의 목소리로 선을 말하고 있는 실정이다. 반면 니까야에서는 명상의 단계가 조목조목 설명되어 있기 때문에 누구나 시도해볼 수 있고, 중간 점검을 텍스트에 의거해 받을 수 있기 때문에 수행의 생활화에도 도움이 된다는 것이 정준영 교수의 말이다.

3)현대 속에 살아 숨 쉬는 붓다의 가르침으로

뿐만 아니라 한글번역 경전이 유통되면서 불교계 안에만 갇혀 있던 부처님 가르침이 일반 대중 속으로 파고들 힘을 얻게 되었다는 것도 짚어보고 싶다. 초기경전 니까야에는 헤아릴 수 없이 많은 주제가 다뤄지고 있다. 돈, 부부, 사랑, 자연과 생태, 음식, 외도, 대화법, 심리치료…… 등의 이런 주제들을 해당 분야의 불자 전문가가 다룰 경우, 붓다 가르침의 사회 파급력은 매우 크다. 실제로 행정학, 경제학, 경영학을 전공한 윤성식 교수는 초기경전에서 다뤄지고 있는 ‘돈’에 관한 책을 냈다.

그의 책 《부처님의 부자수업》은 불교계뿐만 아니라 일반 사회에서도 관심을 보여서 〈연합뉴스〉 〈머니투데이〉 〈서울경제〉 등 경제일간지가 앞다퉈 이 책을 소개하고 있다. 전문 수행가인 스님이 아닌, 실물경제에 밝고, 세계적으로 경제의 흐름을 꿰뚫고 있는 전문가가 부처님의 말씀을 경전에 근거하여 거론한다는 것이 이들의 호기심을 불러일으킨 것으로 보인다.
또한 초기경전을 공부하는 옥복연 종교와젠더연구소 소장의 제안이 없었더라면 그와 필자가 함께 쓴 《붓다의 길을 걷는 여성》도 세상에 나오기 힘들었을 것이다. 이 책은 〈오마이뉴스〉와 〈인천일보〉 그리고 〈한겨레신문〉에서 관심을 보였는데, 재가 여성불자의 이야기를 여성학 전공자와 여성 칼럼니스트가 썼다는 사실이 호기심을 유도한 것이라 생각한다.

아직은 초기경전의 내용을 파악하느라 급급한 시점이지만, 우리글로 번역된 초기경전을 각 분야의 전공자들이 만났을 때 이 시대 난제의 해법을 부처님 가르침에서 끌어올 수도 있다. 또한 사회 각 분야에 벌어지고 있는 다양한 난제들에 대해서 불교적 이론 정립이 아직 걸음마 단계에 머물고 있는데, 이런 문제도 해결될 수 있다. 《금강경》과 《화엄경》의 사상만으로는 속 시원하고 명쾌하고 친근하게 다가갈 수 없는 현실적인 문제에 대해서도 초기경전 공부를 통해 진정한 석가모니 부처님의 입장에 입각하여 이론을 세우고 제시한다면 불교의 대(對)사회적 역할은 충분히 제 역량을 발휘할 수 있으리라 본다.

우리글 번역경전 읽기 모임은 개인에게는 경을 합송하며 개인의 종교적 심성을 키우고, 현실생활에 적용하면서 알차게 불자로서의 삶을 가꿔가게 해준다. 나아가 이런 개인 불자들이 만나 경전읽기 모임을 이끌면 재가불자들이 주체적으로 당당하게 부처님 제자로서 부처님 회상에 나아가게 된다. 재가불자의 주체적 신행생활은 불교가 시대에 발맞추고 시대의 난관에 함께 고민하고 해결책을 모색하며, 희망을 안겨주는 방향으로 나아간다. ■

 

이미령 / 불광교육원 전임강사. 동국대학교 불교학과 및 동 대학원 졸업. 동국역경원 역경위원 역임. 불광불교대학, 동산불교대학 등에서 경전 강의를 하며 여러 불교 매체에서 북 칼럼니스트로 활동 중. 주요 저서로 《고맙습니다 관세음보살》 《붓다 한 말씀》 《간경수행입문》 역서로 《직지》 《대당서역기》 등 다수. 행원문화재단 문화상(역경 분야) 수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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