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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불교문헌 영역사업의 필요성 / 박진영
특집 | 불교경전의 번역과 유통
[65호] 2016년 03월 01일 (화) 박진영 jypark@american.edu

1. 들어가는 말

백성욱(白性郁, 1897~1981)은 한국에서 최초로 독일 철학박사 학위를 받은 사람으로 알려져 있다. 그는 1910년 봉국사(奉國寺)에서 최하옹(崔荷翁)을 은사로 출가했다. 그 후 경성불교중앙학림(京城佛敎中央學林)에서 교육을 마치고, 상하이로 갔다. 그곳에서 이승만을 만난 백성욱은 이승만에게서 유럽에 가서 공부하라는 조언을 받고, 유럽으로 건너갔다. 처음에는 파리에서 70킬로미터 정도 떨어진 도시인 보배(Beauvais)에서 공부를 했고, 독일로 건너가 뷔르츠부르크(Würzburg) 대학에서 학위를 받았는데, 그의 학위논문은 〈불교 형이상학(Buddhistische Metaphysik)〉으로 알려져 있다.

 1925년 학위를 마치고 한국으로 돌아온 백성욱은, 자신의 학위논문을 한글로 번역, 〈불교순전철학(佛敎純全哲學)〉이라 제목을 달고 《불교(佛敎)》에 연재했다. 〈불교순전철학〉 서문에서 백성욱은 자신이 왜 불교철학을 학위논문의 주제로 택했는지를 설명한 바 있다. 그는 독일에서 공부할 때, 유럽 사람들이 그에게 묻기를 “불교(佛敎)는 어떠 합니까?” “당신들의 사상계(思想界)는 어떠합니까?” “동방철학(東方哲學)도 역시 희랍학자(希臘學者)들을 토대(土臺) 삼는 사상입니까?”라는 질문을 받았다고 했다. 백성욱은 사람들이 불교에 대한 지식이 심히 얕고, 또한 무작정 불교가 철학이라고 단정하지만, 실제로 불교철학이 무엇인지에 대해 심도 있게 논의한 글이 당시에 없었다고 말했다. 이 서문은 1924년 7월 15일에 쓰였다고 되어 있다.

〈불교순전철학〉에서 백성욱은 불교의 형이상학, 불교 논리, 불교와 과학, 불교의 사회사상 등을 다루었다. 어렸을 때부터 불교를 배웠고 서구에서 서양철학을 공부한 그는, 동양의 철학이며 수행 전통인 불교와 서구 철학의 공통점과 차이점을 볼 수 있었다. 백성욱의 학위 논문은 그러니까, 서구 철학과 서구 지성 사회에 대한 한국 불교인의 성명서였다고도 할 수 있다. 근대라는 이름으로 동양으로 밀려든 서구의 사상과 문화는 동양이 자신의 전통적 사상과 문화를 보는 모습을 완전히 바꾸어 버렸다. 불가(佛家) 혹은 유가(儒家)로 대표되던 한국의 사상계는 이제 플라톤, 칸트, 헤겔의 철학으로 바뀔 터였다. 경성제국대학에 철학과가 생긴 것이 1926년이고 백성욱의 논문은 1925년에 완성된 것이니, 아직 한국 사회가 근대화를 통해 이루어지고 있는 지성사적 변화의 범위를 완전히 경험하기 전이지만, 백성욱의 논문은 이후 한국 사상계에서 이루어질 변화의 모습을 예감할 수 있게 하는 글이기도 했다.

백성욱의 불교철학을 위한 항변은 꼭 한국불교를 기본으로 해서 이루어진 것은 아니었다. 독일에서 공부하며 백성욱은 당시 잡지 《불교》의 편집장이었던 권상로와 서신 왕래를 한 것으로 보인다. 《불교》에 실을 원고 때문이기도 했지만, 권상로에게 보내는 서신에서 백성욱은 유럽 불교학자들의 역량에 놀라움을 금치 못했음을 표현했다. 그는 유럽 학자들이 초기경전을 원어로 읽는다는 데에 놀랐다.

그는 또한 새로운 시대에 불교가 역량을 발휘하려면, 다양한 서구 언어로의 번역이 필수적임을 역설했다. 그리고 불교 서적 번역 작업의 어려움을 말했다. 그는 우리도 불교에 관한 글을 출판하기 위한 인쇄소가 필요하다는 것을 역설하며, 한국의 불교학자들이 유럽의 동양학자들과 겨루려면, 한국의 불교학자들은 한참 더 분발해야 한다는 것을 강조했다.

한국불교의 영역사업의 필요성에 대하여 생각하는 글에서 독일에서 유럽 불교학자들에 관해 글을 쓴 백성욱에 대한 이야기로 글을 시작한 것은 한국불교의 영역이라는 작업이 가진 의미를 좀 더 넓은 맥락에서 생각해 보고자 하는 이유에서다. 사람들은 흔히 번역은 언어를 알기만 하면 된다고 생각하곤 한다. 번역하는 사람의 전공이 철학이든, 과학이든, 불교를 알든 모르든 그 사람이 영어를 아는 사람이면 번역하고자 하는 글이, 불교이든, 철학이든, 사회학이든 상관없이 번역이 가능하리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번역은 결코 기계적인 작업이 아니다. “번역자는 반역자다(A translator is a traitor)”라는 말이 있듯이, 번역은 해석학이다. 특히 한문으로 쓰인 불교 서적을 한문과 전혀 다른 구조의 언어인 영어로 번역하는 것은 더욱 그렇다. 한자나 한글에서 영어로 번역하는 과정의 장벽은 언어의 구조만이 아니다. 영어권 세계의 문화, 사상이 동아시아권의 전통, 문화, 사상과 다르다는 것을 고려하지 않는 한, 그 번역은 출판사의 창고에 갇혀 있는 출판물이 되기 십상이다.

2. 미국에서의 한국불교

인도불교가 중국으로 전파되어 동아시아불교를 형성하면서 불교는 인도 문화와 중국, 동아시아 문화 사상이 결합되는 일대의 변화를 경험한다. 이 변화는 수 세기를 걸쳐 이루어진 경전의 번역사업이 없었다면 불가능했을 것이다. 불교학자들은 불교사에서 인도불교가 동아시아로 전파되어 동아시아불교가 탄생한 것을 불교사의 가장 큰 사건 중 하나로 보곤 한다. 그리고 그처럼 커다란 변화를 불교학자들은 또한 불교의 서구화에서 기대하고 있다. 그러한 새로운 불교의 역사에서 한국불교는 어떠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을까?

한국불교의 미국에서 시발점을 언제로 규정하는가 하는 문제가 최근 물의를 일으켰지만, 1964년 서경보 스님에 의해 한국불교가 처음 미국 사회에 정착하기 시작했다고 보면 2014년이 한국불교 미주 전법 50년이 되는 셈이다. 다른 주장처럼, 숭산 스님을 미주 한국불교의 시초로 보면, 미주 전법은 40여 년이 지났다. 인도에서 불교가 시작된 지 2,500여 년, 한국에 불교가 전래된 지도 이미 1,500년이 지났다. 그렇게 생각하면, 40~50년이라는 세월은 짧은 시간처럼 느껴질 수도 있다. 그러나 미국 사회에서 불교가 본격적으로 연구되고 수행된 시간을 따져보면 한국불교의 미주 전법 40~50년이란 그리 짧은 시간만은 아니다.

불교의 서구 진출은 유럽 쪽이 미국 쪽보다는 훨씬 앞선다. 유럽에서 동양학은 결코 긍정적인 모습으로 시작되지는 않았다. 유럽이 동양을 식민지화하면서 유럽 국가들은 자신의 식민지 정책의 일환으로 동양문화와 종교를 연구하기 시작했다. 영국이 인도에 설립했던 동인도회사가 그 대표적 예의 하나다. 인도의 식민지 정책을 위해 설립한 동인도회사는 결국 인도의 언어, 문화, 역사, 종교를 연구하게 되었다. 그리고 인도의 산스끄리뜨를 연구하기 시작하면서, 산스끄리뜨가 유럽인의 언어와 같은 근원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을 발견하게 된다. 힌두교 성전인 《바가바드기타(Bhagavad-Gita)》가 처음으로 영역되고, 불교 서적들도 번역되기 시작한다.

유럽과 미국의 불교 수용사를 보면, 한국불교 번역 작업이 생각해야 하는 또 하나의 문제점을 찾을 수 있다. 불교가 유럽으로 전파되면서 유럽의 지성인들, 그리고 유럽 철학자들은 불교에 대해 자신들 나름의 해석을 펼쳐갔다. 18세기 말에서 19세기 중엽 정도라면, 유럽 지성인들이 볼 수 있는 불교에 관한 자료는 물론 지극히 제한되어 있었을 것이다. 그럼에도, 헤겔(G.W.F. Hegel 1770~1831), 쇼펜하우어(Arther Schopenhauer, 1788~1860), 니체(Friedrich Ni-etzsche, 1844~1900) 등 서구 철학의 거장들이 불교에 대한 나름의 해석을 제공했다. 앞서 말한 바와 같이 이들이 읽을 수 있는 불교에 관한 자료들은 지극히 제한되어 있었다. 그럼에도 그들은 불교가 어떠한 종교인지, 어떠한 철학인지를 이야기했다. 여기서 주목할 만한 것은 이들 철학자와 유진 버노프(Eugène Burnouf, 1801~1852), 막스 뮬러(Max Müller, 1823~1900) 등 1세대 유럽의 불교학자들이 불교를 해석하는 커다란 해석의 틀은 자신들의 철학, 사상의 전통이었다는 것이다. 즉 유럽 사상, 문화의 전통 안에서 불교를 해석한 것이지, 불교가 자신들의 사상이나 문화와 매우 다른 전통의 산물이라는 것을 생각하지 않았다. 그렇기에, 자아(自我) 혹은 주관(主觀)이 세계를 이해하는 근본이 되어 있던 근대 서구 대륙철학에서, 자아를 몰자아 혹은 무아(無我)로 보는 불교는 비관적, 염세적 종교이며 철학으로 해석되었던 것이다.

19세기 말이 되자 미국으로 불교가 입성했다. 1893년에 있었던 시카고 세계종교대회(Parliament of the World’s Religion)가 개최되면서 미국 종교계는 불교가 새로운 세기에서 어떠한 공헌을 할 수 있는지 물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불교는 과학과 공존할 수 있는 종교라는 평가를 내렸다. 과학은 근대 세계에서 지식의 명확성과 객관성을 대표하는 술어였다. 근대 과학의 발전과 더불어 기독교가 겪어야 했던 문제들을 생각해보면, 과학기술이 세계 형성의 근본을 이룰 것이라고 믿어지는 새로운 20세기의 종교로서 불교의 과학과의 공존성을 지적한 것은 이해할 만한 일이다. 그러나 불교와 과학의 공존성이 미국 사회에서 불교를 알리는 데 영향을 주기 시작한 것은 시카고 세계종교대회로부터 한참이나 지난 20세기 말, 그리고 21세기에 들어서다. 인지심리학, 뇌과학 등이 불교의 명상을 연구하면서, 불교와 과학의 공동 연구는 활기를 띠기 시작한 것이다.

20세기에 불교가 미국인들 사이에 알려지는 데 영향을 준 것은 과학 이전에 미국 사회 자체에서 일어났던 1960년대의 반문화운동(countercultural movement)였다. 월남전과 미국의 매카시즘 등 미국 사회 안에서 기득권자와 기존 문화에 대항하여 일어난 반문화운동은 우리에게는 흔히 히피 문화로 알려져 있다. 새로운 사상과 대체적 문화를 찾아 나선 미국의 젊은 세대들과 지성인들은 동양의 불교와 도교에서 새로운 문화의 가능성을 보았던 것이다. 이성과 논리, 개인주의를 중심으로 하는 미국의 문화에서, 대체적 문화로 나선 불교와 도교는 이성과 논리를 넘어서서 새롭게 인간과 사회를 보는 가능성을 제시한다고 그들은 보았던 것이다.

우리는 유럽과 미국을 모두 ‘서구’ 사회로 통일화하곤 한다. 그러나 이 두 사회가 불교를 받아들인 모습은, 그들 사회의 전통과 당시 두 사회가 중요시하고 있던 문제들에 따라 전혀 다른 모습으로 나타났다. 이 역사적인 예는 하나의 문화, 전통이 새로운 문화와 전통을 만날 때 동반하는 다각적인 요인들을 보여준다. 이 요인들은 한국불교 영역사업에서 신중히 고려해야 할 요소들이다.

번역사업을 구상할 때, 우리는 단순히 언어적인 전이만을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그러나 번역이란, 한 문헌을 원래 쓰인 언어에서 다른 언어로 전환하는 작업이 아니다. 번역은 학풍의 형성이며, 새로운 해석의 가능성을 여는 것이라는 생각이 없는 한, 번역서의 의미는 그리 크다고 할 수 없다. 한문으로 쓰인 한국 불교서적을 전혀 다른 형태의 언어와 문화를 가지고 있는 영어로 번역하는 작업에서는 불교 자체가 가지고 있는 사상과 가르침, 영어권 사회의 전통과 사상, 그리고 그 연관하에서 이루어질 새로운 학풍과 새로운 해석학의 연관관계를 통합적으로 생각해야 한다. 연기(緣起)를 ‘dependent co-arising’으로 혹은 화두선을 ‘Hwadu Seon’이라고 번역하고, 이를 이해시킬 수 있는 논의가 수반되지 않는다면 이 번역의 의미가 얼마나 번역을 읽는 사람들을 이해시킬 것이며, 나아가 그들의 생각과 삶에 영향을 미칠 수 있을 것인가.

후기식민주의(postcolonialism)를 논하는 학자들은 식민주의는 해방과 더불어 끝날 수 없다는 것을 잘 보여준다. 즉, 식민주의에서 해방되었다고 해도 식민지의 사람들의 언어와 문화, 사회는 이미 식민주의 국가의 문화, 언어의 영향을 받아왔기 때문에 식민지의 사람들이 식민국가의 영향에서 벗어나서 자기 나름의 언어, 문화, 역사를 형성하기 위해서는 끝없는 역사, 사회, 언어, 문화에 대한 비판이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와는 조금 다른 의미에서지만, 불교 번역사업을 이러한 맥락에서 생각해 보아야 할 것이다. 한국불교문헌을 영어로 만들어 놓았다고 해서 영역사업이 완성되었다고 말할 수 없다는 의미이다.

앞서 이야기처럼 불교가 미국에 공식적으로 소개된 것은 19세기 말이다. 그러나 20세기 중반까지 대부분의 미국인은 불교를 거의 알지 못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제2차 세계대전의 종식과 더불어 미국 사회가 변화하면서 새로운 가치관을 찾는 움직임이 일어나고, 또한 월남 전쟁과 같은 동양의 정치적 상황은 미국 사회에서 불교가 짧은 시간에 알려질 수 있는 계기를 제공하였다. 학자들은 1960년대가 미국에서 불교가 가장 빠르게 성장했던 시기라고 보고 있다.

미국의 대학교에서 불교학 강의가 시작된 것도 바로 이 시기다. 위스콘신주립대학이 1961년에 불교학 강의를 시작했고, 곧이어 뉴욕의 컬럼비아대학, 버클리 캘리포니아주립대학에 불교학 과정이 생겨났다. 대학교에서 불교학이 강의 되면서 동양의 다양한 불교 전통이 연구되기 시작한다. 그러면 한국불교에 대한 미국 사회의 관심은 1960년대 이후 지금까지 어떻게 변화해 왔는가? 이를 객관적으로 살펴볼 수 있는 한 방법은 미국 대학의 불교학 강의에서 사용되는 불교 입문서에서 한국불교가 어떻게 소개되고 있는지 살펴보는 것이다. 몇몇 교과서를 예로 들어 보자.

3. 미국불교 교재를 통해 본 한국불교

미국 대학에서 가장 많이 쓰이는 불교 교재로 리처드 로빈슨과 윌라드 존슨의 저서 《불교: 역사적 개관(Buddhist Religion: A Hi-storical Introduction)》이라는 교과서가 있다. 1970년에 처음 출판되어 2004년까지 다섯 번의 증보·개정판을 출판했다. 이 책의 1970년도판을 보면 한국불교는 두 쪽 반밖에 되지 않는다. 내용은 한국불교가 4세기에 중국 승려 순도에 의해 전파된 이래 1960년대까지 어떻게 발전해 왔는지 한국불교사를 아주 간략하게 개관한 것이다. 30년이 지나서 1997년에 이 책의 제4판이 출판되었다. 이 4판은 한국불교에 16쪽을 할당했다. 한국에 불교가 전래된 이후의 불교 역사를 개관하고 대각국사 의천, 보조국사 지눌, 태고보우 등 한국불교사의 주요인물이 따로 소개되어 있다. 또한 현대의 다양한 불교 종파와 불경의 한글화 작업 등도 다루고 있고, 한국의 선수행에 관해서도 소개하고 있다.  

또 다른 교과서의 예로 2002년 도널드 미첼이 출간한 《불교: 불교적 경험에 대한 입문(Buddhism: Introducing the Buddhist Experi-ence)》이라는 교재를 들 수 있다. 이 책에서 저자는 한국불교를 완전히 한 장(章)으로 따로 분류하여 소개하고 있다. 책 전체가 11장으로 구성되어 있고, 그중에서 특정 국가의 불교가 따로 한 장을 차지하고 있는 것은 인도, 티베트, 중국, 한국, 일본 등 다섯 국가의 불교 전통뿐이라는 점을 보면, 분명 미국 불교학계에서 한국불교에 대한 인지도가 1970년에서 2002년 사이 크게 높아졌다는 것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예라고 할 수 있다.

한국불교에 대한 관심의 증가는 찰스 프레비쉬와 데미안 키언이 2007년에 출판한 《불교백과사전(Encyclopedia of Buddhism)》 구성에서도 볼 수 있다. 불교학의 주요 주제를 24개 항목으로 나누어 24명의 불교학자 각기 책임을 맡아 집필된 이 《불교백과 사전》의 24항목의 주제 중에는 한국불교 전통이 하나의 주제로 자리매김했다. 이 책에서도 특정 국가의 불교 전통이 단독 주제로 선정된 것은 인도, 티베트, 중국, 한국 일본뿐이라는 점, 그리고 한국의 불교가 이들 나라의 불교와 같은 비중으로 취급되고 있다는 것은 매우 고무적인 일이다.

그렇다면 한국불교의 어떠한 점이 미국 사회와 학계에서 한국불교의 중요성을 인식하게 하는 요인으로 작용하는가 하는 질문을 해볼 수 있겠다. 《불교: 역사적 개관》에서 저자는 한국의 승가를 소개하며 다음과 같이 말한다. “한국 사회가 빠르게 세속화되고 있지만, 한국불교는 동아시아불교 중에서 가장 강력한 승단 조직을 가지고 있다. 전통 선원과 비구니 사찰에서의 삶은 수세기 동안 변함없이 그 모습을 유지함으로써, 이 선원들이 근거로 삼았던 중국 송나라 시절의 전통 선원이 어떠한 모습이었는지에 대한 정확한 모델을 우리에게 보여준다. 따라서 현재 미국 대중매체에서 선불교를 전형화하면서 범하고 있는 많은 잘못을 수정하는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고 적고 있다. 또한, “한국의 선원은 우리에게 선적인 삶과 불교의 경전이 어떻게 서로 보완하며 공존하도록 돼 있는지 그 살아 있는 본보기를 제공한다”고 말하고 있다. 이 인용문에서 알 수 있듯이, 미국학계에서 한국불교를 특징짓는 요소 중에 한국의 불교 승단이 전통 불교의 본보기를 제시한다는 점이 중요하게 작용하고 있다.

이러한 한국불교의 성격은 미국에 거주하고 있는 한국인들, 즉 한국계 미국인의 불교에 대한 미국 사회의 관심에서도 볼 수 있다. 미국에서 불교가 어떻게 전개되어왔는가를 연구한 저서 중에 1981년에 출판된 《백조는 어떻게 호수로 왔는가(How the Swans Came to the Lake)》라는 책이 있다. 이 책에서 저자 릭 필즈는 한국계 미국인의 불교를 소개하며 다음과 같이 말한다. “한국인들이 미국불교에 등장하기 시작한 것은 최근의 일이지만, 한국 승단의 계속적인 활기와 힘, 그리고 한국 재가불자들의 (불교에 대한) 헌신과 지원을 통해 본다면 한국인들이 앞으로 전개될 미국 불교에서 중요한 역할을 할 것임은 분명한 사실이다.”

미국에서 불교의 역사는 이제 시작하는 단계에 불과하지만, 미국불교가 앞으로 불교사에 새로운 장을 열 것이라고 많은 학자들은 기대하고 있다. 미국불교의 특징 중 하나는 지금까지 불교사의 다른 시대, 다른 나라에서 존재했던 다양한 불교 전통이 한자리에 모여 있다는 것이다. 그 다양한 불교의 공존이 그만큼 미국불교를 풍부하게 만든다면, 또한 세속화라는 21세기의 역사적 현실과 자본주의라는 미국의 사회적 현실 앞에서 불교의 생존은 불교가 어떻게 그 기본적 가르침을 유지하면서도 미국 사회가 요구하는 것을 줄 수 있는가에 있다고 할 수 있다. 그리고 미국 내에서 한국불교의 성장 역시 이러한 역사 현실적 환경을 넘어설 수는 없다. 이 또한 한국불교 영역사업이 고려하지 않으면 안 되는 점이라고 생각된다.

한국불교에 대한 관심의 증가는 그 관심을 충족시켜줄 자료가 뒷받침되지 않는 한 일정한 한도에 머무를 수밖에 없다. 앞에서 언급한 바와 같이 이제 한국불교는 인도, 티베트, 중국, 일본과 더불어 불교사의 한 주요 전통으로 인식될 만큼 미국 사회에서 관심이 증가하였다.

그러나 영어권에서 한국불교를 연구하는 학자의 수와, 한국불교에 관한 출판물의 양은 인도, 티베트, 중국, 일본을 연구하는 학자의 수나 서적에 훨씬 못 미치는 상황이다. 미국 사회와 학계의 한국불교의 중요성에 대한 인식에 부합하기 위해, 그리고 한국불교에 대한 서구의 새로운 연구 방향을 형성해 나가기 위해서는 한국 불교서적의 영어 번역 출판, 한국불교에 관한 연구서적 출판이 특히 중요하다. 그리고 한국 이민자의 불교 수행에 관한 연구 및 서적 출판은 앞으로 미국 사회에서 한국불교에 대한 관심을 형성해 나가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할 요인이라고 할 수 있다.

4. 영역된 한국불교문헌 현황

영어권에서 한국불교를 알 수 있는 자료들은 현재 어떠한 것들이 있을까? 앞에서 간단히 살펴본 미국의 불교 교재에서 한국불교에 대한 취급의 변화는 결국, 한국불교에 대한 영어 자료가 얼마나 있는지와 연관된다. 1970년 저서에서는 3쪽도 채우지 못했던 한국불교, 그러나 1970년에서 2000년 사이에 한국불교에 관한 몇몇 주요 번역 서적 및 학술 논문이 출판되었고 이는 한국불교에 대한 인지도를 높이는 데 큰 역할을 했다. 그 예로, 1983년에 출판된 로버트 버스웰의 지눌 번역을 들 수 있다.

또한 버스웰은 1980년 중반에서 1990년 초까지 5편 이상, 지눌의 선불교에 관한 논문을 발표했다. 이들 논문이 지눌 저서의 번역만큼 중요한 역할을 했다고 할 수 있다. 물론 버스웰의 지눌 저서 번역이 출판되기 전까지 영어권에서는 지눌의 저서를 대하지 못했다. 그러나 만일 지눌 저서의 영역만 출판되고, 지눌 선불교의 특성을 논의하고, 이를 중국 선불교의 전통과 비교해서 설명해주는 버스웰의 논문이 뒷받침되지 않았다면, 지눌의 글은 영어로 되어 있다고 해도 많은 사람에게 읽히고, 이해되기는 힘들었을 것이다. 한국불교의 영역은 영역되는 문헌에 대한 학문적 해석이 뒷받침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1990년대 후반부터 2000년대에 걸쳐 한국불교의 새로운 번역과 학술 서적이 발표되었다. 그 이전까지는 연구되지 않았던 근현대 한국불교 연구의 성과물이 영어권에서 출판된 것은 주목할 만한 성과다. 블라디미르 티호노프(박노자)와 오언 밀러가 만해 한용운의 작품을 영역해 출판했고(2008), 필자(박진영)의 김일엽 번역(2014)이 출판되었다. 이와 더불어 박포리, 김환수, 필자 등이 각각 한국 근대 불교에 대한 저서를 출판했다. 이들은 모두 최근에 출판된 저서라 아직 그 영향을 판가름할 수는 없지만, 번역과 학술 서적의 평행적 출판으로 한국 근현대 불교에 대한 이해를 높이는 데 기여하리라 본다.

또 다른 영역은 여성과 한국불교에 관한 저서다. 마르틴 베첼러, 조은수 등이 한국불교에서 여성문제를 다루는 저서를 출판했다. 학계와 사회의 다양한 분야에서 모두 여성문제를 첨예하게 다루고 있는 현 상태를 감안할 때, 한국불교와 여성문제에 대한 출판은 한국불교가 미국불교 그리고 세계적인 불교 논의에 접목될 수 있는 주요 주제 중 하나다. 이 두 저서는 영역은 아니지만, 앞으로 한국불교에서 비구니, 영성에 관한 영역이 출판될 때 영어권에서 그 출판물이 잘 받아들여질 수 있는 길을 마련해준 셈이다.

가장 최근의 한국불교 영역 주요 사업의 성과는 조계종에서 기획해 지난 수년에 걸쳐 진행되어 완성된 《한국전통사상총서》 불교 영역 13권이다. 이 13권은 원효, 지눌, 휴정, 화엄(2권), 제교학, 공안집(2권), 선어록, 시선집, 문화, 계율 고승비문 등이다. 이를 통해 근대 이전 한국불교의 주요 문헌을 영어권 독자와 학자들이 읽을 수 있게 되었다. 또 다른 영역사업으로 오랫동안 지속되고 있는 사업은 원효 전서 영역사업이 있다. 이를 통해, 원효의 주요 작품들이 영역되고 있다.

원효의 《금강삼매경론(金剛三昧經論)》을 버스웰이, 그리고 〈이장의(二障義)〉 〈십문화쟁론(十門和諍論)〉 〈중변분별론소(中邊分別論疏)〉 등의 영역이 한 권으로 찰스 뮬러와 꽁 응우옌이 번역 편집하여 출판했다. 불교 영역의 또 다른 주요 프로젝트로 한국학중앙연구원에서 추진하고 있는 한국 고전 100선 번역 안에 포함되어 있는 불교서적이다. 지금까지 필자가 김일엽의 《어느 수도인의 회상》을, 존 조르겐슨이 서산 휴정의 《선가귀감(禪家龜鑑)》을 그리고 찰스 뮬러가 정도전의 《불씨잡변(佛氏雜辨)》과 함허득통의 《현정론(顯正論)》을 번역, 출판했다. 최근에 또한 동국대에서 주관하고 있는 근대 한국불교 대표문헌 영역출판사업 역시 주목할 만하다. 이 영역 작업이 성과를 내면, 한국 근대불교에 대한 다양한 자료를 영어권에서도 볼 수 있게 될 것이다.

5. 무엇을 왜, 어떻게 번역할 것인가?

지난 20년 동안 한국불교 영역사업은 커다란 발전을 보았다. 그리고 현재 진행되고 있는 사업들이 결실을 맺게 되면, 앞으로 수년 내에 한국불교의 많은 주요 문헌들을 영어권에서도 읽을 수 있게 될 것이다. 우리는 여기서 다시 한 번 가장 기본적인 질문을 해보지 않을 수 없다. 한국불교의 영역사업은 왜 필요한가? 우리는 한국불교의 영역이 필요하다고 말한다. 한국불교의 세계화라는 말도 언제부터인가 주문처럼 우리의 입에서 맴돌고 있다. 그런데 실제로 한국불교의 세계화는 어떻게 이루어지는 것인가? 한국불교의 영역의 필요성을 생각하면서 우리는 무엇을 왜, 그리고 어떻게 번역해야 할까? 번역의 의의는 무엇이고, 번역은 누구를 위한 것인가 하는 질문을 좀 더 심도 있게 생각해 보아야 한다. 이를 위해 다음의 세 가지 질문을 해보자. ① 왜 영역을 하는가, ② 무엇을 어떻게 영역할 것인가? 그리고 ③ 어떻게 출판할 것인가?

1) 왜 한국불교문헌을 영역하려고 하는가?

영역 작업은 한국불교문헌이 쓰인 한자나 혹은 한글을 읽을 수 없는 독자층을 위한 것이다. 그리고 그 주요 대상은 아마 미국에서 동양학을 배우는 학생, 동양학을 연구하는 학자들, 그리고 점점 더 늘어나고 있는 미국의 불자들 혹은 동양문화에 관심 있는 독자들일 것이다.

미국의 대학 강의실에서 사용될 수 있는 자료는 어떤 것일까? 서구(미국)에서 동양학이 대학에서 강의 되기 시작한 것은 1960년대 말이다. 동양학은 언어 습득으로부터 시작되어 동양의 특정 지역의 역사, 문화, 문학의 강의로 이어졌다. 동아시아의 경우, 일본학이 1980년대 일본 경제의 급성장을 통해 미국 젊은 층에 급속히 퍼졌다. 한국학도 이와 같은 경로로 한국어 강의를 토대로 한국사, 그리고 한국문학 강의로 이어졌다. 1990년대 중반만 해도, 한국문학을 한 학기 동안 강의할 수 있을 만큼의 자료도 영어로는 제대로 정립되지 않았다.불과 20년 만에 한국문학 번역은 지대한 발전을 보였다.

언어, 문학 다음으로 이어진 것이 종교에 대한 연구이다. 1980년과 1990년대, 2000년대 초반 미국의 대부분 대학의 종교학과에 한 명 정도는 동양 종교를 가르치는 교수가 임용되었다. 종교 다음으로 이어지는 것이 철학이다. 미국 대학 철학과에 동양철학 전공자가 한 명이라도 있는 경우는 아직도 드문 현상이다. 철학을 강의하는 교수들은 대부분 동아시아학과, 아시아학과 혹은 종교학과에 있다. 그러나 동양철학에 관한 학생들의 관심은 나날이 증가하고 있다. 앞으로 20년 정도의 시간 동안 미국 철학과는 서서히 동양철학 전공자를 고용하기 시작해서 동양철학, 동서양비교철학 등을 통해 동양철학, 서양철학 등의 개념이 아닌 ‘세계철학(world philosophy)’에 관한 교육을 지향하게 될 것이다.

영역된 한국불교의 내용과 형식이 교재로 사용하기에 적절하다면 종교학, 철학, 불교학 등의 강좌에서 사용될 수 있을 것이다. 적절한 내용과 적절한 형식이라는 것은 무엇을 뜻하는가?

2) 무엇을 어떻게 번역할 것인가?

한국불교문헌을 번역하려면, 우선 무엇을 번역할지를 정해야 할 것이다. 그 선정과정을 결정하는 요소는 무엇인가? 한국불교사에서 중요시되는 문헌들이 있다. 그리고 한국불교 영역을 위한 문헌을 선정할 때 이들 문헌이 우선적으로 선정이 될 것이다.

그러나 영역 출판물의 첫 번째 독자층은 한국 독자도, 한국 내에 있는 학자도 아닌 영어권의 학생들, 학자들 그리고 불자들이라는 점을 고려해야 한다. 한국불교사에서 특정 문헌이 의미가 있는 것은 그 문헌이 가지고 있는 불교사상, 그리고 그 문헌이 한국불교사, 지성사, 문화사와의 연관관계 아래에서 이해되기 때문이기도 하다. 어떠한 사상도 진공 상태에서 이해되지는 않는다. 문화적, 역사적, 사상사적 맥락이 없이는 아무리 한국불교사에서는 주옥같은 문헌이라고 해도, 그 문헌의 영역이 영어권 독자들에게 잘 받아들여지리라고 판단할 수는 없다. 혹자는 영역사업은 한국불교문헌을 영역해내는 것이 사업의 목적이고, 영역된 문헌을 소화해 내는 것은 독자들의 몫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다. 진정으로 그러한 것일까?

여기서 우리는 영역사업의 범위에 대하여 생각해보아야 한다. 지금까지 전개된 영역사업을 보면, 전집류적 성격을 볼 수 있다. 한 불교사상가의 전 작품을 영역하려는 사업, 혹은 한국불교사를 통틀어서 전집으로 만들어내는 작업이다. 과연 전집류적 영역사업이 현시점에서 한국불교를 알리는 데 가장 적절한 방법인지 생각해 보지 않을 수 없다.

전집류적 서적은 독자를 위한 것이라기보다는 수집가와 도서관을 위한 것이다. 서지학적 상황에서 한국불교전서나 대정신수대장경 같은 전집은 우리에게 꼭 필요한 것이다. 그러나 한국불교전서가 있기 전에 이미 이 전서에 포함된 문헌들이 존재했다. 대정신수대장경이 존재하기 전에 그 전집에 포함된 문헌들이 존재했다. 한국불교 영역의 전집류적 접근을 생각한다면, 이는 개개 문헌이 먼저 영역되고 이해되는 바탕에서 이루어져야 한다. 한국불교문헌의 영역은 아직 그 단계에 이르지 못했다.

이 글의 앞부분에서 강조해왔던 것처럼 특정 문헌과 그 문헌에 대한 연구 없이, 또한 한국불교, 한국역사, 한국문화를 잘 알지 못하는 독자들에게 어떻게 영역된 한국불교문헌을 잘 이해시킬 수 있는가 하는 고려와 대책 없이는 영역사업이 성과를 거둘 수 없다. 한국불교사에서 주요한 문헌이며, 주요한 인물이기 때문에 무조건 전체를 영역한다는 것은 현시점에서 영어권 독자들에게 한국불교를 알리는 데 그리 큰 도움이 못 되는 것이다.

전집류적 작업을 통해, 한국불교에 이렇게 중요한 인물이, 중요한 문헌이 있다고 소리를 지를 수 있을지는 모른다. 그러나 읽어야 할 독자층이 그 소리를 들어주지 않는다면 그 작업은, 시간 낭비, 인력 낭비, 경비 낭비가 될 것이다. 그런 점에서 전집류적 접근에서 벗어나 이제는 특정 문헌을 영역하고, 동시에 그에 대한 영어권에서의 학풍을 형성할 수 있는 뒷받침을 함께 생각하는 것이 영역된 번역이 영어권에서 의미를 가질 수 있는 현실적인 방법이다.

영어 번역사업을 추진하면서 또 하나 고려해야 할 것은 번역하고자 하는 문헌이 현재 사회나 학계에서 관심을 두는 주제에 어떠한 공헌을 할 수 있는가 하는 것이다. 한 문헌은 단지 그 문헌이 어떤 사상 전통에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한다는 이유로 모든 사람에게 중요성을 띠지는 않는다. 사람이 변하고 사회가 변하듯, 우리의 지성사에 존재하는 문헌의 의미와 가치도 변화한다. 1960년대부터 미국 사회에서 동양철학과 종교에 대한 관심이 일면서, 불교와 도교는 빠르게 관심 있는 미국 학자들과 일반인들에게 퍼져나갔다. 그렇지만 같은 동양철학이며 종교 전통인 유교/유가는 불교처럼 미국인들에게 흥미를 주지 못했다.

왜 그랬을까? 유가의 지극히 가부장주의적 사상은 20세기의 화두 중 하나인 여성문제를 논의하는 데 아무런 도움이 되지 못한다고 여겨졌기 때문이다. 유가의 가부장주의는 여성주의가 우리 사회에서 현실로 되기 위해 극복되어야 할 전통으로 여겨졌던 것이다. 또한 현대의 가장 주요한 정치사상인 민주주의의 맥락에서 생각할 때, 유가의 위계질서 체제는 민주주의적 사회를 건설하는 데 도움이 되지 못한다고 생각되었다. 그러나 미국 학계에서 유가가 그대로 묻혀서 잊히지는 않았다. 1990년대 말에서 2000년대에 들어서면서, 유가학자들은 유가의 가르침이 어떻게 여성주의와 공존할 수 있는지, 유가가 여성주의에 공헌할 수 있는 점은 어떤 것인지 밝혀내기 시작했다. 또한 유가적 민주주의란 어떤 것인지, 전통 서구적 민주주의와 어떻게 다르고 어떠한 장점을 가지는지를 토론하기 시작했다. 21세기의 문제를 통해 유가를 재해석해내는 작업인 것이다.

20세기 프랑스 철학자 모리스 메를로 퐁띠(Maurice Merleau Pon-ty, 1908~1961)가 한 말이 있다. 우리가 고전을 읽는 것은, 고전을 읽고서 이전의 사상가들이 고민했던 문제를 우리가 풀어내려고 하는 것이 아니라, 고전을 읽고 거기에 있는 지혜로 우리의 문제를 풀려고 하는 것이라는 것이다. 영어권의 학생, 학자, 불자, 독자들이 한국불교를 읽는다면, 무엇 때문에 그들은 한국불교 서적을 읽을까?

어쩌면 한국불교는 어떤 것인가 하는 막연한 호기심 때문일 수도 있다. 그러나 그러한 호기심도 그 깊은 뒷면을 보면, 우리는 하나의 서적을 접하면서 우리의 문제에 어떠한 새로운 시각을 보여줄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감이 있을 것이다. 물론, 한국불교사에서 주요 문헌, 그 문헌의 역사적, 사상사적 의미, 그 문헌이 현시점에서 쟁점이 되는 문제에 대한 공헌을 기계적으로 계산해서 영역 서적을 선정할 수는 없을 것이다. 그러나 우리의 논의는 한국불교 영역사업이 고려해야 할 부분은 결코 단순하지 않다는 것을 보여준다. 좀 더 총체적으로 번역사업이 진정 이루려고 하는 성과가 무엇인지, 그리고 그 성과를 위해서는 어떠한 점들을 고려해야 하는지에 대한 포괄적인 접근과 계획 없이는 영역사업이 일구어낼 수 있는 성과는 지극히 제한적일 수밖에 없다.

3) 어떻게 출판할 것인가?

독자에 대한 고려, 그리고 현 사회와 학계와 연관된 주제의 고려와 더불어, 어떻게 출판할 것인가 하는 점 역시 한국불교 영역사업에서 중요하게 고려되어야 할 문제다. 나라마다 출판의 의미가 다를 수 있다. 특히 학문 서적을 출판하는 방식과 그 의의는 한국과 서구와는 많이 다르다. 한국불교 영역사업이 영어권의 독자를 위한 사업이라면, 출판 방식 역시 영어권 독자와 사회에서 일반적으로 받아들여지는 방식을 택하는 것이 맞는다고 생각된다. 그러기 위해서는 영역된 한국불교문헌은 영어권 독자들에게 잘 접근할 수 있게 출판되어야 한다.

또한 영역된 문헌은 영어권 독자들에게 신뢰받을 수 있는 출판사에서 출판해야 한다. 이는 곧, 영역된 문헌은 영어권 사회에서 인정받는 출판사에서 출판해야 한다는 것이다. 미국 학계에서 인정을 해주는 출판사의 출판은 출판된 한국불교문헌의 질을 확증해주며 또한, 영어권계 독자들이 이곳 사회에서 편리하게 구매할 수 있는 판매망을 보증해준다. 힘들게 시간과 노력과 경비를 들인 영어 번역 문헌이 영어권 독자들이 신뢰할 수 없는 방식으로 출판된다면, 아니면 영어권 독자들에게 알려지기 어려운 방법으로 출판된다면, 영역사업의 성과는 지극히 미미해질 수밖에 없다.

영역 서적의 형태 또한 독자에게 접근할 수 있는 방법을 고려해야 할 것이다. 전집류는 주요 문헌을 함께 모아놓았다는 장점이 있지만, 전집류의 방대성은 또한 그 한계이기도 하다. 그 분야의 특수 전문가가 아닌 한 어느 문헌을 보아야 할지 일반 독자들은 선택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또한 강의실의 교재로 쓰이기도 힘들다. 새로운 영역도 중요하지만, 지금까지 영역된 작품들 중 주요한 것을 모아 한 권으로 한국불교를 보여줄 수 있는 한국불교 주요 작품 모음집 같은 것을 출판하는 것도 영어권에서 한국불교가 알려지고 연구되는 데 주요한 일이다. 단행본 모음집은 한국불교 전공자가 아닌 학자들, 학생들 그리고 일반 독자들에게 한국불교를 더욱 접근하기 쉽게 해줄 수 있다.


6. 나가는 말

번역이란 단순히 한 언어로 된 문서를 다른 언어로 바꾸는 행위가 아니다. 불교문헌을 영역하는 것은 더욱 그렇다. 이는 두 다른 사회, 문화의 만남이다. 그리고 모든 만남이 그렇듯이 이는 관계의 문제이기도 하다. 한국불교 영역사업을 주관하는 사람 혹은 단체는 영역되어야 할 문헌, 영역의 출판을 결정한다. 그러나 그러한 결정은 관계의 다른 편에 있는 독자와 그 독자가 살고 있는 사회와 문화에 대한 고려를 수반해야 한다. 만남에서 동반자를 고려하지 않는다면 그 만남이 제대로 결실을 맺을 수 없듯이, 번역사업 역시 동반자에 대한 고려 없이는 큰 성과를 기대하기 어렵다.
한국불교의 영역은 누구를 위해 그리고 무엇을 위해 하는가? 한국불교를 다른 사회에 알리려고 하는가, 아니면 한국에 있는 특정 단체의 업적을 늘리려고 하는가? 영어권 독자들이 읽기를 바라고서 하는가, 아니면 영어권 독자들에게 알려질 가능성이 미약하더라도 출판을 위해 출판하는가? 지난 10여 년 동안 한국불교문헌의 영역이 양적으로 눈에 띌 만큼 성과를 낼 것은 사실이다. 이제는 이러한 양적 성과에 바탕을 두고 좀 더 크게 눈을 떠서, 불교문헌의 영역 출판이라는 작업이 현실적으로 한국불교를 세계에 알리는 데 도움이 되기 위해서는 어떠한 점들을 고려해야 하는지와 같은 근본적인 문제에 대한 깊은 안목이 더욱 필요한 때다. ■

 

박진영 / 미국 아메리칸 대학(워싱턴 소재) 철학과 부교수, 동양학 프로그램 디렉터. 스토니부룩 뉴욕주립대학에서 〈불교와 탈근대철학 연구〉로 박사. 저서로 Buddhism and Postmodernity: Zen, Huayan, and the Possibility of Buddhist Postmodern Ethics 등과 편저로 Makers of Modern Korean Buddhism, 역서로 Reflections of a Zen Buddhist Nun: Essays by Zen Ma-ster Kim Iryŏp 등이 있다. 현재 북미한국철학회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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