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집 | 불교경전의 번역과 유통

시작하는 말

불교계의 현실을 국외로 돌려볼 때 현재 서구의 불교 추세는 테라바다와 선불교를 제외하면 티베트불교에서 많은 연구자와 신행단체의 활동, 서적이나 연구논문의 결과물을 볼 수 있다. 1989년 14대 달라이라마 뗀진 갸쵸(Ngag dbang blo bzang ye shes bstan ‘dzin rgya mtsho, 1935~ ) 성하가 노벨평화상을 받음으로써 관심을 끌기 시작했던 티베트불교는 초기에는 달라이라마의 강의와 저술을 중심으로 인기를 끌었다. 달라이라마는 여전히 세계인으로부터 가장 존경받는 인물로 손꼽히고 있지만, 그러한 관심과 열기는 오늘날 티베트불교 경전과 문헌에 담긴 불교사상과 철학, 그에 기인한 티베트문화와 인류의 정신유산 속에서 찾으려는 새로운 방향으로 발전하고 있다. 

티베트불교와 관련해 건국대 김동윤 교수의 지적대로 프랑스뿐만 아니라 서유럽 각 계층의 엘리트와 교양인들은 단순히 불교를 수동적으로 받아들이는 데 그치지 않고, 적극적인 자세로 불교의 세계로 들어가려는 노력을 게을리하지 않고 있다. 티베트불교의 내면적 가치를 찾기 위해 티베트 불경과 문헌 연구에 몰두하는 서구의 변화와 달리 한국불교는 여전히 달라이라마라는 인물에 집중된 서구 초기의 유행 양상에서 크게 벗어나지 못한 것 같다.

티베트불교에 대해 한림대 양정연 교수는 “방대한 티베트문헌과 람림의 전통은 대승불교를 교학과 수행체계를 새롭게 이해할 수 있는 보고다.”라고 극찬하였다. 한국불교는 역사적으로 중국불교 문화의 우산 아래서 성장해왔고 나름대로 우수한 불교문화의 독자성을 확립해왔다. 한편으로 현대 한국불교 교단의 사명은 석가모니 붓다의 원음에 입각한 인도불교 경전과 나란다대학의 전통에 눈을 돌릴 때라고 생각한다. 티베트대장경은 사라진 인도 산스끄리뜨 불교경전에 가장 가까운 경전이다. 한국불교가 티베트불교에 주목해야 하는 결정적 이유는 이것이다. 티베트 불교경전의 문헌적 가치 외에 티베트불교가 보존해온 나란다대학의 전통적 사원교육과 승원제도는 한국불교의 승가와 대중이 주목해야 할 또 다른 이유가 있다. 

한국의 티베트불교에 대한 연구기반 조성으로서 가장 먼저 시도해야 할 것은 티베트대장경에 대한 역경사업이 될 것이다. 티베트대장경의 역경은 대중적 인기에 입각한 불교 자원과 달리 고통과 인내와 더불어 긴 시간이 필요한 작업이 될 수 있다. 한국의 불교문화를 이해하기 위해 고려대장경을 제외할 수 없듯이 티베트불교의 이해 역시 티베트불교의 전통과 사상의 기반이 되는 티베트대장경의 연구와 이해에서 시작된다. 티베트불교가 어떤 가치가 있고, 티베트불교 수용에 대해 어떤 비판적 시각을 견지해야 하는가에 대한 정리는 티베트대장경의 역경에 대한 역사적 회고와 역경의 필요성, 그리고 그것이 한국불교에 끼칠 영향을 예측하는 것과 깊이 맞물려 있다.

1. 티베트의 불경 번역 역사

티베트불교의 역사와 역경, 종파에 대한 연구는 여러 연구자들에 의한 선행연구가 지면을 통해 이미 소개되어 있지만 간략히 요약하면, 티베트불교는 송첸감뽀(Srong btsan sgam po, 617~650) 왕 시대에 불교가 인도와 중국으로부터 동시에 들어옴으로써 시작되었다. 티송데첸(Khri srong lde brtsan, 742~800) 왕 때 벌어진 삼예사(bSam yas)의 대논쟁 이후 인도 산스끄리뜨 경전을 본격적으로 번역하게 된 내력이 《바셰(sba bzhed)》 《췌중 메톡닝뽀(chos ‘byung me tog snying po)》 부뙨(Bu stön, 1290~1364)의 《불교사(chos ‘by-ung)》 등에 기록되어 있다. 

톤미삼보타(Thonmi Sambhota)에 의해 티베트 문자와 문법이 최초 제정되었다. 불교경전의 번역을 위해 많은 역경승들이 초청되었고, 번역어와 번역 규칙의 제정을 위해 《번역명의대집》과 해설서인 《이권본역어집》이 편찬되었다. 티베트 경전의 번역은 모두 이를 기준으로 삼았기 때문에 현대 대부분 유실된 산스끄리뜨본 인도 경전은 현존하는 티베트 경전으로부터 산스끄리뜨본 불교경전을 복원할 수 있을 정도로 정확성이 높다.

티베트불교의 역사는 랑다르마 왕의 불교 탄압이 일어난 9세기 중엽을 전후로 전전기(Nga dar, 前傳期)와 교단의 재흥운동이 시작된 10세기 후반 이후의 후전기(後傳期, Phyi dar)로 나누어진다. 역경사에 있어서 전전기와 후전기의 시대적 구분은 몇 가지 중요한 역사적 특징을 보여준다. 인도불교의 수입에 중요한 역할을 했던 산타라끄시따는 후기중관파의 중요한 저작을 남겼지만, 밀교에도 조예가 깊어 불교 전반에 대한 이해가 성숙지 못한 상태에서 밀교가 들어올 경우 일어날 혼란을 예측해 역경을 늦추었다.

후전기의 티베트불교는 티베트대장경의 재번역과 더불어 파괴된 인도불교의 전통교단을 복구하는 것이었다. 여기에는 역경승 린첸상뽀(Rin chen zang po, 958~1055)의 역할이 컸고, 아띠샤(Atisha, 982~1054)를 비롯한 후기중관파의 활약과 더불어 인도불교의 후기밀교가 활발히 유입되었다. 이후 티베트불교는 티베트인 조사와 석학에 의해 보물과 같은 저술과 논문들이 나오면서 나란다대학의 승원제도를 보존하면서 티베트불교 고유의 가치를 확립하게 되었다.

티축데첸(Khri gtsug lde btsan, 680~743) 시대에 티베트대장경이 본격적으로 이루어졌는데, 824년에 작성된 《덴깔 목록》에 따르면 대장경을 깡귤(bKa’ ‘gyur, 佛說部)과 뗑귤(bsTan ‘gyur, 論疏部)로 나누는 전통이 확립되었고, 당시 번역되었거나 번역 중인 대승과 소승 및 현교와 밀교의 모든 경전과 논서의 제목을 23항 734부로 분류하여 기록한 것을 볼 수 있다. 13세기에는 처음으로 판각된 대장경을 나르탕 고판(古版)이라고 하고, 1730년에는 달라이라마 7세의 명에 의해 대규모로 개정된 경전을 나르탕 신판(新版)이라고 한다. 비슷한 시기에 리탕판 및 델게판이 개판(開版)되었다. 경전부의 구성은 판본마다 조금씩 다르지만 율(律), 반야(般若), 화엄(華嚴), 보적(寶積), 제경(諸經), 비밀(秘密)의 6부로 분류하고 열반부(涅槃部)가 독립된 경우도 있다. 텐규르는 찬송(讚頌), 비밀(秘密), 반야(般若), 중관(中觀), 경소(經疏), 유식(唯識), 구사(俱舍), 율(律), 불전(佛傳), 서한(書翰), 인명(因明), 성명(聲明), 의명(醫明), 공교명(工巧明), 제부(諸部)로 분류한다.

시간을 건너 현대의 티베트대장경 역경은 티베트가 정치적 이유로 세계의 주목을 받으면서 본격적으로 이루어졌다. 중국의 침공으로 인해 나라를 잃은 티베트는 달라이라마 14세의 지도하에 인도에 망명하여 그들이 고원의 땅에서 한사코 보존했던 티베트대장경과 나란다대학의 전통, 불교문화를 세계에 전했다. 초기 티베트불교는 그들의 정치적 상황과 달라이라마라는 인물에 집중되었지만 티베트불교의 가치를 연구한 서구학자들에 의해 역경의 필요성이 가장 먼저 제시되었고, 역경과 관련한 학술적 기초가 마련된 후 ACIP(Asian Classic Inut Project)나 랑중예셰(Rangjung Yeshe)와 같은 연구단체에 의해 티베트대장경의 역경이 시도되었다.

특히 티베트 망명정부에 의해 설립된 정부 도서관인 LTWA(Libr-ary of Tibetan Works and Archieves)와 CUTS(티베트학 중앙대학, Central University of Tibetan Studies)는 그들이 티베트에서 전송, 보존했던 티베트대장경 판본들을 모두 수집, 정리하고 디지털화하고 번역하였다. CUTS는 학부로부터 석·박사과정이 개설되어 있으며 연구체제를 희귀본 수집 복원팀, 산스끄리뜨어 대조팀, 사전편찬팀, 번역팀으로 구성해 세계 학계의 티베트불교 및 티베트학 연구의 중요한 토대를 마련하였다. 남인도의 문고트(Mungod) 주변에는 인도 나란다대학의 승원 전통을 계승한 겔룩빠의 간덴, 데붕, 세라 사원을 복원하여 인도에 사라졌던 나란다대학이 다시 티베트인에 의해 인도에 복구되었다.

LTWA는 최근에 로짜와 과정을 신설하여 외국인에게 티베트대장경 역경가 양성에 힘을 기울이고 있고, 네팔에는 랑중예셰에서 티베트불교와 문화를 전공과목으로 정식 학위과정을 두어 개설했으며, 84,000 프로젝트팀이 신설되어 티베트 불교경전을 영어를 비롯한 외국어로 번역하는 사업을 벌이고 있다. 티베트 망명정부는 독자적인 산업기반이 없기 때문에 이 모든 사업은 달라이라마와 티베트불교를 지원하는 개인 및 세계적 후원단체에 의해 이루어지고 있다.

한국불교의 경우 티베트불교와 조우한 최초의 기록은 고려시대까지 거슬러 올라가지만, 현대에 이르러 티베트불교와의 본격적인 교류는 1967년 9월 달라이라마 성하가 동국대학교에 티베트대장경 라사판 경전부 전질을 기증한 것에서 비롯된다. 이후 달라이라마의 후원으로 2009년 동국대학교에 티베트장경연구소(현 티벳대장경역경원)가 설립되어 티베트대장경의 역경불사가 본격적으로 이루어지게 되었다. 티베트대장경에 대한 자발적인 역경의 필요성에 대한 자각과 연구 동기에 의해 출범하지 못한 것이 아쉽지만 티베트대장경의 역경 전문 연구기관의 출범은 세계 불교학계의 상당한 관심의 대상이 되고 있다. 뒤이어 2014년 5월에는 진옥 스님의 원장 취임을 계기로 티벳대장경역경원으로 명칭을 바꾸고 조직을 개편한 후 LTWA, CUTS, 랑중예세 등과 연구협력 관계를 맺으면서 새로운 역경사업에 전념하고 있다.

2. 티베트대장경의 역사적 가치

티베트불교와 대장경이 세계불교학자들의 관심 대상이 되고 있는 가장 큰 이유는 티베트대장경이 인도불교의 산스끄리뜨 원전에 가장 충실한 번역을 보이기 때문이다. 티베트 문자와 문법 체계는 인도대장경을 번역하기 위해 제정되었다. 불교 전공자들에 의해 이루어진 산스끄리뜨, 티베트어, 한문과 자국어의 대조 번역은 자연스럽게 티베트대장경이 산스끄리뜨어 원문에 얼마나 가까운지를 연구결과로 보여준다. 티베트대장경의 산스끄리뜨 원전에 대한 정확성 때문에 현재 인도정부는 파뜨나에서 유실된 인도 문헌들을 티베트대장경의 문집부로부터 추출해 산스끄리뜨어로 복원하고 있다. 같은 산스끄리뜨 원전 복원작업이 불교 대장경을 중심으로 티베트학 중앙대학에서 이루어지고 있다.

티베트대장경과 고려대장경의 구성과 체제를 비교해보면 티베트대장경의 특징이 손쉽게 파악이 된다. 고려대장경의 경우 인도 경전만을 살펴볼 때 아함경 이후 부파, 대승불교의 경론이 모두 포함되어 있지만, 주로 밀교 경전으로 구성된 문헌의 시대적 상한선은 송 시대 시호(施護)에 의해 번역된 일부 후기밀교 경전까지로 그 시기는 8세기 전후로 볼 수 있다. 반면 티베트대장경은 8세기 이후 인도에서 불교가 사라진 12세기까지 출현한 모든 현교와 밀교의 경론을 모두 포함하고 있다.

고려대장경과 티베트대장경의 주요한 구성 차이는 고려대장경에 번역되지 않는 티베트대장경의 주요 문헌군으로 첫째 후기중관파로부터 시작한 인명학 문헌들과 둘째, 인도 후기밀교 중심의 산스끄리뜨 문헌이 티베트대장경에 다수 포함되어 있고, 나머지 장외불전으로 티베트인의 고유 저작이 숭붐에 포함되어 있다. 또한 티베트와 당의 불교 교류를 통해 한문경전이 티베트어로 번역되어 있는데, 신라 원측(圓測) 스님의 《해심밀경소(解深密經疏)》도 이때 번역되었다. 결정적으로 한국불교와 티베트불교의 차이는 인명(因明)과 밀교(密敎)에서 드러난다고 할 수 있다.

인명과 밀교는 인도 후기대승불교 시대를 이끌었던 마차의 양 수레바퀴로 진리탐구를 위한 분석적, 철학적 도구인 이론과 대승불교 유가행의 완성이라 말할 수 있다. 불교논리학으로 부르는 인명학(因明學)은 디그나가(Dignāga, 480~540)와 다르마끼르띠(Dhar-makirti, 7세기)에 의해 확립되었는데, 근본적으로 삼학 가운데 혜학을 구성하는 것이지만 불교의 진리를 논리적으로 탐구하는 모든 과정은 인명의 범주에 포함된다. 용수보살(龍樹菩薩, 150~250) 이후 논의된 공성의 규명이나, 인식의 탐구는 후기중관파 또는 유가행중관파로 일컬어지는 학문적 경향을 형성하였다. 디그나가와 다르마끼르띠는 불교의 인명논리학을 집대성하여 종(宗), 인(因), 유(喩)로 이루어진 삼지작법(三支作法)이 정착되고 이후 오지작법의 논쟁 방식이 점차 정립되었다. 인명학은 인도 후기밀교의 이론적 토대를 형성하는 과정에서도 중요한 역할을 했다. 많은 후기중관의 논사들이 밀교 수행을 실수(實修)하고 저술들을 남긴 것은 이 때문이다.

티베트불교에서 인명학은 겔룩빠에서 특히 중요시되어 스님들은 일상적으로 논쟁 방식과 더불어 《반야경》, 중관과 유식, 《구사론》 등을 통해 논리학의 주요 주제들을 연구하고 대론한다. 인도 다람살라에는 첸니다창(Institute of Buddhist Dialectics)이 있어 주요 교과과정이 개설되어 한국을 비롯한 외국인들이 공부할 수 있다. 인명을 통한 불교논리학을 서구 불교에서 중요시하는 이유는 서구의 철학과 사상적 조류에 답할 수 있는 논리적 도구가 불교에 존재하기 때문이다. 인명학은 서구뿐만 아니라 한국불교에서도 새로운 불교 세대와 한국의 정신세계 변화에 대응할 수 있는 수단이 될 수 있다. 다른 종교와 달리 불교는 혜학을 통해 불확실할지도 모를 종교적 경험들을 논리적 도구를 통해 명확한 자아와 세계관을 확립해 가는 것이 다르다. 그 논리적 도구의 정점이 불교논리학이고 티베트에서는 출가 스님들뿐만 아니라 재가대중들도 논리학을 배우고 연마한다.

논리학과 더불어 티베트대장경 구성에서 볼 수 있는 다른 특징은 방대한 밀교 경전들이다. 부뙨은 밀교대장경을 소작(所作, krya)딴뜨라, 행(行, carya)딴뜨라, 유가(瑜伽, yoga)딴뜨라, 무상유가(無上瑜伽, anuttarayoga)딴뜨라로 구분하였다. 간략히 설명하면 소작딴뜨라는 불교의 의례와 관련된 밀교 경전이고, 행딴뜨라는 《대일경(大日經)》을 위주로 한 의례에 기반을 둔 밀교경전, 유가딴뜨라는 《금강정경(金剛頂經)》을 중심으로 유가행을 목적으로 한 밀교 경전이며, 무상유가딴뜨라는 인도 후기밀교 경전이 포함된다.   

티베트불교를 통해 외형적으로 생소함을 느끼게 하는 문화적 이질감은 대부분 밀교에서 비롯된 것이 많다. 티베트불교의 낯선 도상과 의례는 인도의 종교적 소재에서 비롯된 것이거나, 한국에 전달되지 않은 인도 후기밀교에 기인한 것이다. 그러나 밀교의 내재된 본질을 들여다보면 무상유가딴뜨라를 제외하면 소작, 행, 유가딴뜨라는 삼국시대부터 고려시대에 이르기까지 한국에 전해졌던 밀교이다. 오늘날 한국불교의 선찰에서 조석으로 〈신묘장구대다라니〉를 독송하거나 점안식, 각종 공양이나 점안, 시식 등의 밀교의식은 한국불교와 밀교의 깊은 역사적 관계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것이다.

인도 후기밀교의 경우 중요한 수행인 생기차제와 구경차제는 석가모니 붓다가 설한 12지연기의 순관(順觀)과 역관(逆觀)을 실천적으로 완성한 것이다. 7세기 전후해 밀교 교학이 체계화된 이후 불교가 인도에서 사라질 때까지 가장 많이 출현한 경전은 주로 밀교경전이고, 오늘날까지 단절되지 않고 중요시되는 이유는 밀교는 중국 불공삼장(不空三藏)의 지적대로 가장 빠르게 성불에 이를 수 있는 정학(定學)의 요체이기 때문이다. 티베트불교의 겔룩빠의 전승은 후기밀교 경전인 《비밀집회딴뜨라(Guhyasamāja-tantra)》에 대해, “《비밀집회딴뜨라》가 사바세계에 존재하면 불교가 아직 세상에 전해지는 것이고, 《비밀집회딴뜨라》가 사바세계에서 사라지면 이 세계에 불교가 단절되었다는 것을 뜻한다”라고 할 정도로 후기밀교는 특별한 의미가 있다.

티베트불교의 전통에서 밀교를 이해하는 방식은 인도의 스승인 아티샤의 《보리도등론》에서 나타난다. 아티샤는 수행자의 근기를 하사·중사·상사의 세 부류로 나누어 근기별로 적합한 수행의 단계가 있음을 역설하고, 계율과 현밀겸수(顯密兼修)를 강조하였다. 14세기에 활동한 쫑카빠(Tsong kha pa, 1357~1419)는 인도불교 교단의 전통적 계율을 회복하고, 《보리도차제론》과 《비밀도차제론》을 통해 현교와 밀교의 도차제(道次第)를 정의하였다.

쫑카빠는 《보리도차제론》을 저술하여 현교의 수행근기를 하사도와 중사도, 상사도의 삼사도(三士道)로 나누고, 대승의 근기인 상사도에 대해 바라밀의 수행과 더불어 최후에 지관(止觀)의 수행으로 현교의 도차제를 마무리하고 있다. 이것은 근본적으로 아티샤의 교학에 바탕을 두고 있는 것이라 할 수 있다. 《보리도차제론》에서 쫑카빠는 현교의 수행을 마친 다음 밀교의 수행으로 나아갈 것을 제시한다.

티베트불교의 발전으로 인해 자연스럽게 종파가 형성되었고 대부분은 계율과 현밀겸수의 입장을 지지한다. 현존하는 종파로 대표적인 것은 겔룩빠(dGe lugs pa), 까규빠(dKa rgyu pa), 닝마빠(rNy-ing ma pa), 샤꺄빠(Śa kya pa)가 남아 있다. 이들 종파는 인도불교 전통의 불교 대장경을 보존하고 있지만 후대에 들어 종파의 조사, 스님들에 의한 저술들이 증가하고, 종파 고유의 교학 체계를 형성하였기 때문에 이에 따른 불경 체제의 변화를 반영하고 있다.   

3. 티베트대장경의 우리말 번역 이유
 
한국불교는 전통적으로 한문과 중국의 종학불교의 토대에서 고유의 불교문화를 이룩해 왔다. 신라의 원효를 위시한 교학 연구는 조선시대에 들어 대부분 사라지고, 실천 중심의 선불교가 조선불교의 중심을 이루어 오늘날까지 계승되고 있다. 동국대학교를 시작으로 한국 불교학계의 교학적 연구가 되살아났지만, 불교학의 출발은 붓다의 원음과 인도불교 교단의 전통에서 비롯된 원전에 대한 정확한 번역과 이해로부터 시작되어야 할 당위성이 있다.

불교학의 전공 분야에 따라 산스끄리뜨나 티베트어에 대한 이해가 필요하지 않을 수도 있지만, 지금처럼 티베트 경전을 통해 산스끄리뜨 원전의 의미 역출이 가능한 현실에서는 티베트 경전의 번역과 인용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한국불교의 입장에서 한글대장경과 한문대장경, 티베트대장경과 그 모본인 산스끄리뜨 경전의 비교와 대조는 결국 동아시아의 문화라는 거시적 주제와도 연결되어 있다.

석가모니 붓다의 가르침을 이해하는 다양한 방식이 존재하는데, 그것은 티베트불교의 4대 종파나 중국의 화엄종, 천태종 같은 종학불교의 전통으로 발전하였다. 티베트의 종파와 중국의 종학은 차이가 있는데, 티베트불교의 경우 아함으로부터 후기대승불교에 이르는 전체성을 전제한다. 때문에 티베트불교는 지역이나 인물에서 종파의 명칭이 성립될지언정, 경전의 명칭이나 교학의 지엽적 소재를 두고 종파의 이름을 만들지 않는다. 중국불교는 역사적 배경 때문에 인도불교의 폭넓은 교학과 실천적 전통을 모두 섭렵하지는 않는다. 인도불교 교단 가운데 설일체유부, 경량부, 중관, 유식의 4대 학파가 있지만, 모두 석가모니 붓다의 교설과 경전에 대해서는 절대적 권위를 부여하고 논쟁이 필요할 때 이론의 전거로서 인용한다. 한국불교의 입장에서 중국의 종파불교 영향을 받은 단점은 인도불교의 전체적 교학과 수행체계를 외면하는 데 있다. 불교의 발전은 전체성을 담보한 가운데 독자성을 드러낼 수 있는 것이어야 한다.

다음으로 티베트대장경의 역경은 테라바다와 대승불교를 망라한 인도불교의 전체성을 제고하는 분위기를 조성할 가능성이 크다. 이때 예상되는 논의는 삼예사에서 일어났던 것과 같이 인도불교의 차제론(krama, 次第論)과 선불교의 돈오론(頓悟論)의 선택, 또는 공존 등이 주제가 될 것이다.

이와 관련해 이종복 리처드스톡턴대학 아시아철학 교수는 초기 티베트불교가 처한 두 번째 문제는 중국의 매우 급진적인 돈오돈수를 주장하는 선종과 체계적인 수행 방법에 따른 깨달음을 주장하는 인도불교의 충돌이었다고 평가하였다. 역사를 돌이켜보면 삼예사의 논쟁 결과 인도의 까말라실라가 승리해서 중국의 마하연 선사가 물러갔지만, 만약 시간이 더 있었더라면 인도불교의 전체성과 중국불교의 실천적 장점의 조화를 모색해서 두 불교적 전통이 공존할 수 있는 계기도 이루어졌을 것이라고 생각해본다.

티베트불교에 내재되어 있는 나란다대학의 전통이 결코 중국 선불교를 배척하지 않는다. 한국의 선불교를 조선시대에 임제의 가풍이라고 평가한 기록도 있지만 선수행의 화두는 인도불교 유가행의 소연(所緣)으로 볼 수 있고, 깨달음에 대한 돈점의 문제는 《현관장엄론》이나, 도차제를 다루는 문헌들, 혹은 중관의 승의제나 세속제의 이제설에 입각해 서로 배척하거나 거부될 수 있는 것이 아니라고 생각된다. 오히려 선불교의 교학적, 실천적 위치를 인도불교 전체성 속에서 파악하고 선불교가 지닌 실천적 장점을 제고해 그 가치가 더욱 드러날 수 있다고 볼 수 있다.

티베트대장경이 정확한 불교경전 역어를 통한 불교의 이해를 위해 필요한 것이지만, 과연 티베트 불교경전을 번역할 경우 일반 재가대중들이 접근했을 때 그 난이도가 어느 정도인지 예상해 볼 필요가 있다. 일부이긴 하지만 한문경전에 대해 그에 상응하는 티베트어 번역경전을 제시했을 때 한문 용어가 배제된 산스끄리뜨어 경전 원어는 확실히 재가대중들에게 쉬운 말들이었다는 공통된 답변을 들을 수 있었다. 섣부른 판단일지 모르지만 티베트대장경의 역어는 난해한 한문불교용어로의 환원이 아니라, 현실 주변의 쉬운 불교용어로 역해될 가능성이 높다. 지금은 서구인들이 불교를 공부할 때 난해한 한문경전을 경유하지 않고 티베트경전을 통해 불교경전을 읽는 것이 대세적 흐름이다.

마지막으로 티베트불교 문헌은 인도불교 전통의 경론 외에 티베트인 스승들의 고유 저작이 풍부하게 담겨 있다. 과거 중국인들이 방대한 불교경전을 접하고 그들 고유의 실용적 이론과 실천체계를 확립했던 것처럼 티베트인들도 인도불교 경전과 스승의 구전을 통해 불교를 수용한 후 오랜 시간을 거쳐 불교문헌을 연구하고 방대한 주석과 논문을 남겨 놓았다. 중국과 티베트불교 모두 인도 원전을 근거로 그 이론들을 제시하지만, 일정한 시점에서 중국과 티베트 모두 자신들의 스승과 전승을 기초로 종학이나 종파의 전통을 확립해 나갔다. 티베트불교는 인도 나란다대학의 전통을 충실히 계승한 겔룩빠, 사꺄빠도 있고 틸로빠, 나로빠로 이어지는 밀교 전통도 있으며, 전전기 티베트불교의 전통을 보이는 닝마빠도 있다. 이들은 인도불교의 교학, 수행을 계승하며 그들이 오래도록 쌓은 경험을 사원과 티베트인 사회의 전통 속에 보존해왔다. 방대한 인도의 원전을 인간 현실의 실천에 실제로 수용하고 이해될 수 있도록 만든 것이기 때문에 그 실천적, 경험적 역사를 배울 필요가 있다.

4. 티베트 경전 번역의 파급효과
 
티베트불교 전공자나 티베트불교에 관심 있는 불자와 대화해보면 누구나 티베트불교가 가진 매력적 측면과 티베트대장경 역경에 대한 당위성에 대해 공감한다. 그러나 티베트불교에 대한 호감에 비례해 티베트불교의 사상이나 체계를 체계적으로 접근해 본 적이 있느냐는 질문에는 긍정적 답변을 듣기 어렵다. 달라이라마에 대해서는 누구나 이름을 들어서 잘 알지만 정작 티베트불교에 대해서는 잘 알지 못하는 것이다.
이유를 고민해보면 한국의 불자나 일반인들이 티베트불교와 관련된 서적이나 문화에 대한 정보와 자원이 부족해서 모른다기보다 근본적으로 불교를 알기 위해 불교 서적과 주변 매체에 접근하려는 노력이 부족하다는 결론을 조심스럽게 내려 볼 수 있다. 그것은 불교계의 출판사들이 거의 전멸한 현실로도 설명될 수 있는 부분이다. 현대 한국 불자들의 신행활동을 살펴보면 과거 조선 후기 불교계를 평가했던 그대로 간경과 염불, 참선이 중심이 되다 보니 교학 연구에 소홀했던 병폐가 지금까지도 사라지지 않는 것이다. 분명히 계정혜 삼학의 실수를 고루 권고했던 석가모니 붓다의 가르침에서 벗어난 것이다. 

티베트대장경의 번역은 한국불교의 승가와 재가대중이 불교수행과 신행을 이해하고 실천하는 패러다임을 근본적으로 바꾸는 계기로 작용할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이것은 새 시대에 불교의 새로운 방향을 모색하는 것이라기보다 원래 인도불교가 가졌던 실천적 전통을 회복하는 것으로 보는 것이 맞을 것 같다. 교학적 연구를 차치하고라도 티베트인들이 그들의 실생활에서 늘 염주와 마니차를 돌리고 손에 경전을 놓지 않는 것을 한국 불자들은 본받을 필요가 있다. 티베트 불자들은 달라이라마를 비롯한 스승들의 설법과 함께 석가모니 붓다의 원음에서 비롯된 인도 불경과 용수보살을 비롯한 인도의 전통적 조사들의 혜학과 기지에 행복해하고 있기 때문이다.

티베트대장경의 역경은 분명 조선조의 암흑기를 벗어나 침체된 한국불교를 새롭게 일으키는 거시적 구조조정의 한 과정이다. 티베트 경전의 역경이 이루어져야 할 당위성에서 밝힌 대로 한국불교에 변화가 일어난다면 그것은 참선이나 염불, 진언 중심의 부분적 종단불교의 한계를 극복하는 것이다. 인도불교 나란다대학의 전통에 입각해 전체 속에서 종단의 특수성과 장점을 드러내는 방향의 변화일 것이고, 한국의 불자라면 누구나 손에서 경전과 논서를 떼놓지 않는, 혜학을 소홀히하지 않는 균형 잡힌 불교 신행의 확대일 것이다. 티베트 경전의 번역이 이루어진다고 해서 당장 티베트불교가 한국불교에 혁신적 변화를 일으킬 것으로 보기는 어렵다. 하지만 안성두 교수는 “근래 초기불교가 한국불교에 새로운 변화를 가져왔다면 앞으로는 자비심과 보살행, 계율을 강조하는 티베트불교가 한국불교를 변화시키는 새로운 기폭제로 작용할 수 있을 것”이라며 “한국불교는 티베트불교를 통해 대승불교의 새로운 면모와 저력을 발견하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티베트불교의 연구자들은 쫑카빠의 《보리도차제론(菩提道次第論, Lam rim chen mo)》에서 인도불교 전체의 전통에서 대승불교의 수행도를 확립할 것을 제안하기도 한다. 김성철 동국대 교수가 체계불학에서 주장한 대로 이 책은 석가모니 붓다의 삼학의 실천원리에 기초해 테라와다와 대승보살도 전체를 아우르는 것으로 대승불교의 인도적 전승을 이해하기 위한 요체를 차제론에 입각해 담고 있다고 평가된다.
희망적인 것은 서구에 일어났던 티베트불교 열풍과 비교할 때 한국의 티베트불교에 대한 관심은 더디긴 하지만 분명히 증가 추세에 있다. 티베트불교 전공학자나 문인들에 의한 서적 출간도 과거와 비교할 때 활발해졌다. 또한 겔룩빠의 선택된 학승들에 의해 나란다대학의 전통 교학과 기초논리학인 ‘뒤다’와 같은 과목을 대중에게 지도하고 있으며, 나로빠에서 유래한 까규의 전통을 지도하는 기회도 많아지고 있다. 그러나 이 모든 기회조차도 티베트대장경의 역경이 기초가 된다.

현재 티벳대장경역경원을 중심으로 티베트대장경의 역경사업이 본격적으로 추진되고 있다. 이것은 전법을 부촉한 석가모니 붓다의 유시를 받드는 것이다. 현재 인도에 나란다대학이 설립되어 있지만 아직은 옛 나란다대학의 복원과 거리가 먼 형태로 현대 대학의 학제 위주로 설립되어 있다. 진정한 인도 나란다대학과 인도 승가의 전승 회복은 나란다대학의 복원을 지지하는 모든 국가가 참여하여 나란다대학의 영혼인 산스끄리뜨대장경 복원, 현존하는 티베트 사원대학의 학제연구를 통한 과거 나란다대학의 시스템 복구가 연구되어야 한다. 한국불교에서도 종파와 출신을 초월해 출가와 재가 사부대중 모두가 힘을 합쳐 동참해야 할 숙원사업이다. ■


정성준 / 동국대학교 티벳대장경역경원 전임연구원. 동국대학교 불교학과, 동 대학원 졸업(석사, 박사). 동국대학교 불교문화연구원 전임연구원, 동국대학교 불교학과 BK 초빙교수 등 역임. 주요 논문으로 〈티벳대장경의 현밀관 비교〉 〈서구심리학과 만다라치료〉 등이 있고 저서로 《인도 후기밀교의 수행체계 연구》 《도해 사자의 서》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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