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집 | 불교경전의 번역과 유통

1. 들어가는 말

오늘날 한국에서 불교나 인도철학에 관심을 갖고 있는 사람이라면 빨리어나 산스끄리뜨어를 번역한 경전이나 문헌을 한 번쯤 보지 않은 사람은 없을 것이다. 하지만 이렇게 번역출판물을 본 것은 그다지 오래되지 않았다.

한국은 조선시대를 거쳐 일제강점기, 그리고 6·25 전쟁이라는 역사적 흐름 속에서 서구의 여러 나라들과 일본과는 달리 근대적 학문을 늦게 발전시키게 된다. 이렇게 보면 원전에 대한 이해가 많이 늦을 것 같은데, 생각보다는 이른 시기에 빨리어 경전이나 범어 경전에 대한 이해가 형성되었음을 알게 된다. 1938년에 발간된 《불교사(佛敎社)》(新版)에는 윈터니츠(Winternitz) 교수의 〈원시불교(原始佛敎)에서의 아(我)와 무아(無我)〉라는 논문이 번역되어 게재되어 있다. 여기에서 파리(巴利) 원전이라는 표현이나, 니가야(尼柯耶) 즉 니까야는 물론 고우빠니샤드와 같은 표현들이 소개되고 있어, 당시의 불교학자나 불자들이 이에 대한 지식을 어느 정도는 습득하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하지만 이것은 어디까지나 윈터니츠 교수의 글을 번역 소개한 것이라는 점에서 이들 문헌에 대한 전문적인 지식을 어느 정도 갖고 있는지는 알 수 없다.

한편 산스끄리뜨어 문헌은 상당히 이른 시기에 번역이 시도되었는데, 1929년과 1932년에 허영호(1899~ ?)가 범본 《유식삼십송》을 일역에서 중역하였고, 김법린(1899~1964)이 《유식이십론》을 범본에서 번역하였다.

이렇게 보면, 한국에서 빨리어와 범어에 대한 인식은 생각보다는 이른 시기부터 형성되기 시작했다고 볼 수 있다. 그러나 이러한 학문적 풍토는 남북분단과 6·25 전쟁의 과정에서 단절되고, 본격적인 원전 연구는 다소의 시간을 기다려야 했다. 그 시기는 아마도 동국대학교에 인도철학과 설치된 1964년이 기점이 될 것이다.

그리고 우리에게 익숙한 빨리어 원전 번역이 본격적인 궤도에 오른 것은 아무래도 전재성의 《상윳따니까야》가 1999년에 번역 출간된 이후일 것이다. 물론 그 이전에도 빨리어 원전이 번역 출판되기도 했지만, 전재성의 본격적인 번역 활동이 가장 주목할 만하지 않을까 싶다. 이후 전재성은 2011년 4부 니까야 모두 완역하게 되었고, 그 뒤로 각묵 스님과 대림 스님도 니까야를 번역 출판함으로써 한국의 초기불교가 대중화되는 시기를 맞게 되었다.

또한 산스끄리뜨어 문헌 역시 2000년대에 들어서면서 본격적인 번역 출판이 이어졌다. 그리고 다양한 원전에 근거한 논문들이 양산되면서 한국에서 불교학이 한 단계 성숙해지는 계기를 맞았다.

본 글에서는 이러한 번역의 과정을 간략하게 살펴보고, 이를 통해서 불교학이 대중화되는 모습을 살펴보고자 한다. 기존에 이미 심재관, 김성철, 정준영, 임승택, 황순일 등에 의해서 관련 연구들이 진행되었기에, 학문적 측면보다는 대중화된 측면을 통해 번역의 영향을 살펴볼 것이다.

결국 원전 번역이란 번역자의 언어적 능력에 일차적으로 기인하는 것이긴 하지만, 일단 번역이 된 이후에는 그것을 통해 원전에 대한 이해의 지평이 대중화된다는 측면이 더욱 중요하지 않을까 싶다. 소수 전문가들의 전유물로 알려진 고대 인도어로 쓰인 불교문헌이 다양하게 번역 출판되게 되면, 의도하지 않더라도 자연스럽게 전문가의 영역을 넘어서게 된다. 물론 번역이 잘 되었는가, 오류가 얼마나 있는가와 같은 문제들은 여전히 전문가의 영역이긴 하지만 말이다.

우선 2절에서는 주요 번역자들을 중심으로 빨리어 및 산스끄리뜨어 번역을 개괄해 볼 것인데, 주로 빨리어에 대한 정보를 자세히 다루게 될 것이다. 여기에서 논문은 다루지 않고 단행본으로 출판된 것을 중심으로 소개할 것이다. 단행본 가운데 중역은 제외하기로 한다. 그리고 원전 번역만을 다루는 잡지를 예외적으로 소개할 것이다.

그리고 3절에서는 이러한 번역 작업이 불교의 대중화 및 학문적 활성화에 어떤 역할을 했는지를, 그리고 마지막으로 한국 불교학에서 번역은 어떤 역할을 해야 하는지에 대한 소견을 밝히는 것으로 본 글을 마무리하고자 한다.

2. 인도 고전 번역의 개략적 흐름

근대적 불교학이라고 할 때, 우리는 이것을 어떻게 이해하면 좋을까. 심재관에 따르면, 근대적 불교학이란 원전의 실증적 증거를 통해 불교의 교리나 역사를 구축해가는 문헌학적 방법론이 정립된 것을 의미한다. 한편 김용옥은 한국의 식자층은 일반적으로 근대화는 서구화와 동일한 것으로 파악했다고 한다. 이에 대해서는 다양한 논의가 가능할 것이다. 하지만 불교학에 한정해서 말한다면, 서구의 문헌학적 방법론을 체계적으로 답습하기 시작한 시점을 한국의 근대적 불교학의 본격적인 시작이라고 볼 수 있을 것이다. 여기서 서구의 문헌학적 방법론이란 구체적으로 빨리어나 산스끄리뜨 원전에 대한 번역을 기반으로 한 비판적 문헌학이라고 정리할 수 있을 것이다.

이미 앞에서 간략하게 언급했듯이, 한국의 경우는 1930년대를 전후로 해서 범어에 대한 그리고 서구 불교학계의 연구에 대한 정보가 유입되면서 원전 연구에 대한 필요성을 인식하게 되었다고 볼 수 있다. 그리고 당시 일본과 유럽으로 일부 학자들이 유학을 다녀오게 되면서 본격적으로 번역 작업이 이루어지게 된다. 하지만 불행하게도 남북분단과 6·25 전쟁, 그리고 이후에 전개되는 사회적 불안정은 한국 불교학계가 이러한 학문적 전통을 계승하는 데 커다란 장애물로 작용하게 된다. 특히 허영호의 산스끄리뜨어와 빨리어 번역의 학문적 활동은 그의 납북 및 친일 논란으로 한국학계에서는 완전히 영향력을 상실하게 되었다. 그리고 김법린은 정치 활동과 동국대학교 총장과 같은 대외적 활동을 중심으로 하다 보니, 김성철이 진단하듯이 ‘일회적인 개인 활동에 머물러 버리고만 결과’가 되었다. 여하튼 1920년부터 6·25 전쟁 전후로 한 시기에 활동했던 이들을 불교학의 제1세대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이후 원전 번역이 본격적으로 이루어지기 시작한 것은 1960년대 이후 동국대학교 인도철학과의 원의범, 정태혁, 서경수 등에 의해서이다. 이들이 우리가 말할 수 있는 불교학의 제2세대라고 할 수 있다. 그리고 1980년대와 90년대에는 고익진, 서성원(법경), 윤호진 등에 의해서 원전 연구가 한층 폭을 넓히게 되었다. 이들이 불교학의 제3세대에 속하는 학자들이라고 할 수 있다. 특히 1980년대 후반 이후 유럽이나 미국에서 유학한 학자들이 속속 귀국하면서 국내의 불교학은 한 단계 도약하는 계기를 맞았다. 이는 한편으로는 일본 불교학에 절대적으로 의존했던 한국 불교학이 일본 불교학 일변도에서 벗어나 다양화되었음을 의미한다고도 볼 수 있다. 특히 인도나 스리랑카 등지에서 빨리어나 산스끄리뜨어 훈련을 받고 들어온 학자들도 늘어나면서, 다양한 학문권의 학적 전통이 국내에 유입되게 되었다.

1) 빨리어 문헌의 번역

빨리어 문헌이 본격적으로 번역되기 시작한 것은 1990년대에 들어서부터라고 할 수 있다. 그 이전에는 대부분 단편적인 번역이 주를 이루었다. 예를 들어 논문 속에서 경증을 위해 인용된 번역이 그것이다.

원전 번역이 보다 활발해지기 위해서는 아무래도 우리말로 된 문법서가 필요하다고 할 수 있다. 국내에서 빨리어 문법서로 가장 이른 것은 1994년도에 출간된 전재성과 최봉수의 문법서일 것이다. 전재성은 《빠알리어 사전-문법편》(한국불교대학출판부)을, 최봉수는 《불교원전 언어연구》(불교원전번역연구소)를 출판했다. 이 중 최봉수의 책의 부제는 ‘산스크리트어 팔리어’로, 두 언어의 문법적 특성을 중심으로 저술되었다. 전재성의 책은 최봉수의 책보다는 보다 전문적으로 문법을 다루고 있는데, ‘음성론, 형태론, 구문론, 조어론, 시어론’으로 나누어 상세한 설명을 해주고 있다. 이후 2001년도에 김형준이 일본의 미즈노 고겐이 저술한 《パ-リ語文法》을 《팔리어문법》(연기사)으로 번역 출간했다. 그리고 최근에는 릴리 데 실바(Lily de Silva)가 저술한 Pali Primer를 김한상이 《빨리어의 기초와 실천》(씨아이알)으로 번역 출간하였다.

다음으로 번역 출판한 단행본은 아무래도 최봉수를 가장 먼저 언급할 수 있을 것이다. 그는 1992년에 《춤과 사색의 한가운데》(길)를 출판했는데, 서언에서 그가 언급하듯이 “우리나라에서 최초로 2,500년 전의 언어인 빨리어에서 직접 번역”한 것으로 볼 수 있다. 하지만 이 책은 니까야 중 어느 경전을 번역했는지 출처를 전혀 밝혀 놓고 있지 않다는 점이 단점이다. 그럼에도 국내에서는 처음으로 원전 번역을 시도했다는 점에서 평가할 만하다. 그 이듬해인 1993년에는 《팔리경전이 들려주는 고타마 붓다》(불광출판부)를 출간했다. 이 책은 서지정보와 간단한 주석을 달아 이해를 돕고 있다.

《전법륜경》이나 《대반열반경》 등 붓다의 삶에 초점을 둔 책이라고 할 수 있다. 그리고 같은 해에 《팔리경전이 들려주는 불교의 진리》(불광출판부)도 출간했는데, 이 책에서는 주로 당시에 유행하던 다른 가르침에 대한 비판적 성격을 지닌 《사문과경》이나 《데바다하경》 《범망경》 등을 중심으로 불교의 핵심적인 가르침을 전하는 경전들을 선별하여 번역하였다. 그리고 2003년에는 《디가니카야 1. 실라칸다왁가》(한국불교대원회)를 번역 출판했다. 디가니카야는 3개의 품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그 첫 번째가 실라칸다왁가(Silakkhnada-vagga)이다. 번역하면 ‘계온품’이 되는데, 이 품에는 총 13개의 소경(小經)이 들어 있다. 최봉수는 각 경을 번역하면서 상세하게 미주를 달아 놓고 있다. 하지만 그 이후 나머지 두 개의 품은 출판되지 않았다.

한편 1987년 작고한 서경수의 유작 가운데 《밀린다팡하》가 있다. 이 책은 1993년에 동국대학교 불전간행위원회에서 출판하였다. 그런데 아쉽게도 이 책의 경우는 정확하게 빨리어 Milindapañha에서 번역한 것인지, 아니면 다른 언어로 번역된 것을 중역한 것인지가 밝혀져 있지 않다. 만약 빨리어에서 직접 번역한 것이라면, 한국에서 빨리어 경전을 번역 출판한 것으로는 가장 선구적 인물이었다고 평가할 수 있을 것이다. 왜냐하면 이 책은 1987년 작고하기 이전에 번역되었기 때문이다.

한편 백도수는 강독서 형식의 번역서를 출판하였다. 2001년도에 《초급 빨리어(Pali) 경전 강독: 문법 해설과 기초 강독편》(민속원)을, 2004년도에는 《중급 빨리어(Pali) 경전 강독》(해조음)을 출판하였다. 그리고 2002년에는 《맛지마니까야(中部) 1》(민속원), 2007년에는 《위대한 비구: 장로게 주석 1》 《위대한 비구니: 장로니게 주석》(열린경전 불전주석연구소)을 각각 번역 출판하였다.

그리고 범라 스님은 1999년에 《위숟디 막가》(화은각)를 번역 출간했는데, 여러 주석서와 소초(ṭīka)를 참조하여 번역하였음을 밝히고 있다. 꽤 이른 시기에 논서가 번역되었다는 점에서 특기할 만하다. 또 임승택은 2001년에 경장과 논장 사이의 발달 관계를 엿볼 수 있는 중요한 문헌으로 평가받고 있는 《빠띠삼비다막가》를 번역 출판했다. 그리고 2014년에는 붓다의 가르침을 해석하는 일종의 방법론을 제시한 것으로 평가되는 《네띠빠까라나》를 한국연구재단의 지원을 받아 공동번역으로 출판하였다.

일아 스님은 2008년에 《한권으로 읽는 빠알리 경전》(민족사)을 편역하여 출판하였고, 2015년에는 《숫따니빠따》를 번역 출판하였다. 전자는 다양한 빨리 경전의 내용을 부처님의 생애부터 가르침, 교단과 수행의 일면을 일별할 수 있도록 했고, 후자는 주석을 미주로 처리하고 본문에서는 간결하게 경전의 내용만을 번역하여 읽을 수 있도록 했다.

이 외에도 니까야를 단편적으로 번역한 연구자들이 있는데, 최근에는 김서리가 2013년에 《담마빠다》(수명출판)를 상세한 문법적 설명을 붙여 출판하였다. 강종미는 2009년에 《앙굿따라니까야(1·2)》(호두마을선원)를 번역하여 출판하였다. 이중표는 2014년에 《(정선) 디가 니까야》(전남대학교 출판부)를 출판했다.
한편 저널이나 시리즈 형식으로 번역된 것도 있다. 먼저 동국대학교 불교문화연구원에서 2001년 이후 매년 펴내는 《원전연구》를 들 수 있다.

여기에서는 이자랑, 임승택, 공만식, 이영진, 이필원 등이 다양한 빨리 문헌(경전과 율장, 논서 등)을 번역하고 주석한 글들이 실려 있다. 그리고 정성준, 백도수, 최종남 등이 산스끄리뜨 문헌을 번역하고 주석하였다. 텍스트에 대한 완역은 아니지만 중요한 문헌들에 대한 해제와 함께 주제별 혹은 장별로 번역이 계속되고 있어, 장기적으로 원전 번역에 있어 커다란 의미를 지니게 될 것으로 생각된다. 그리고 중앙승가대학교 역경학과의 학승들이 중심이 되어 빨리 경전을 번역하여, 초기불전 시리즈로 2005년 《입출식념경(Ānāpānasati sutta)》이 번역되었고, 2006년에는 《대념처경, 염처경》 2007년에는 《대인연경 정견경》이 번역 출판되었다. 상세한 문법적 사항에 대한 설명과 원문을 제시하고 있어 원전 번역을 공부하는 사람들에게 큰 도움이 될 수 있다. 하지만 이후에는 출판되지 않아 아쉬움을 남긴다.

이상의 번역본들이 국내의 니까야 연구 및 초기불교 연구에 큰 공헌을 했지만, 니까야 번역에 있어 가장 중요한 두 그룹을 들 수 있다. 하나는 한국빠알리성전협회를 이끌며 4부 니까야를 전부 완역한 전재성이고, 다른 한 그룹은 초기불전연구원을 설립하고 역시 4부 니까야를 완역한 각묵 스님과 대림 스님이다. 전재성은 1999년 《쌍윳따니까야》 제1권을 시작으로 2001년에 《쌍윳따니까야》를 완역하고, 2003년도에는 《맛지마니까야》 2008년도에는 《앙굿따라니까야》 2011년에 《디가니까야》를 마지막으로 4부 니까야를 완역했다. 그리고 이어서 《꾸다까니까야》에 속하는 경전 가운데, 2004년에 《숫타니파타》 2008년에 《담마파다》 2009년에 《우다나》 2012년에 《이띠붓따까》를 번역 출간했다. 2015년에는 《빨리 비나야(Pali Vinaya)》를 번역했다.

초기불전연구원은 2006년 《디가니까야》 완역 출간을 시작으로 2007년에는 《앙굿따라니까야》 2009년에 《상윳따니까야》 그리고 2012년에 《맛지마니까야》를 마지막으로 해서 4부 니까야를 전부 완역 출판했다. 그 외에도 2002년에는 《아비담마 길라잡이》(전 2권)을 번역했고, 2004년에는 《청정도론》(전 3권)을 번역했다.

2) 산스끄리뜨 문헌의 번역

산스끄리뜨 문헌의 번역은 빨리 문헌보다는 빠르다. 앞서 언급했듯이, 김법린이 《유식이십론》을 범본에서 번역한 것과, 허영호가 범본 《유식삼십송》을 일역에서 중역한 것이 가장 빠를 것이다. 이후로는 이기영이 단행본으로 출판한 것으로, 1974년에 자유교육협에서 《반야경·금강경》을 역해한 것이 있다. 이것을 1978년에 수정하여 《금강경》(한국불교연구원)을 산스끄리뜨본과 한역본을 대조하여 번역하였다. 단행본 이전에는 빨리어 문헌과는 달리 활발한 연구자료로 범문 자료가 활용되었다. 역주된 논문도 발표되었는데, 정태혁은 1972년에 〈월칭조 범문 중론석 관성체품 역주(月稱造 梵文 中論釋 觀聖諦品 譯註)〉를 발표하였다.

산스끄리뜨 문법책은 1990년 이지수의 《산스끄리뜨 기초와 실천》(민족사)이 처음 번역 출판된 이래, 1994년 《산스끄리뜨 입문》(이문출판사, 이지수 편역)이 출판되었다. 그리고 2014년에는 박영길이 찰스 필립 브라운이 지은 저술을 번역하여, 《산스끄리뜨 시형론: 운율 및 숫자적 상징에 대한 해설》(금강대학교 금강인문총서)을 출판하였고, 김성철(금강대)은 2015년에 토마스 이진스(Thomas Egenes)의 책을 번역하여 《산스크리트 입문》(전 2권)을 출판했다.

이후 산스끄리뜨 문헌 역시 1990년대 들어서 본격적으로 번역, 출판되기 시작했다. 우선 박인성은 1996년에 《쁘라산나빠다》(민음사)를 번역했다. 이 책은 일종의 강독서의 성격을 갖는다. 자세한 각주와 원문을 같이 싣고 있다. 2001년에는 산스끄리뜨본과 티베트본 그리고 한역본을 비교, 대조하며 번역한 《중론(中論)》(주민출판사)을 출판했다.

김성철(동국대 경주캠퍼스)은 1999년에 중관학파의 중요한 논서 가운데 하나인 《회쟁론(廻諍論)》(경서원)을 산스끄리뜨본, 티벳본, 한역본을 대조하면서, 자세한 문법 해설을 덧붙여 번역 출판했다.

최봉수는 2000년에 《범본 극락장엄경》(동산반야회)를 번역했고, 2010년에는 범본 《금강경》을 번역하여 《금강경 여설》(구차제정실수도량)을 번역 출판했다.

각묵 스님은 2001년에 《금강경역해》(불광출판부)를 번역 출판했다. 자세한 문법적 설명과 원문 그리고 주해까지 달려 있어, 산스끄리뜨 강독 자료로 활용할 때에도 도움이 될 수 있다. 김정근은 2011년에 《쁘라산나빠다》(전 4권, 푸른가람)를 완역했는데, 원문과 함께 단어와 문법 설명을 덧붙여 강독서로 활용될 수 있도록 했다.

 그리고 우제선은 2011년 《요가행자의 증지》(금강대학교 금강학술총서)를 번역 출판했다. 이 책은 《유가사결정론》을 해석하고, 판본을 비교하고 주석 작업을 겸한 책이다. 그리고 2014년에 라뜨나끼르띠의 저술을 번역하여 《찰나멸 논증》(소명출판)을 출판하였다.

그리고 불교 문헌은 아니지만 중요한 인도 문헌들에 대한 원전 번역도 이루어졌다. 이재숙은 1996년에 18개의 우빠니샤드를 번역하여 《우파니샤드》(한길사, 전 2권)를 출판했고, 이지수는 2005년에 인도 고대 우화집인 《히또빠데샤》(통나무)를 번역 출판했으며, 정승석은 2010년에 《요가수트라 주석》(소명출판)을 번역 출판하였다.

3. 원전 번역이 미친 영향

이상에서 언급된 번역 외에도 많은 번역본이 출판되었고, 앞으로도 출판될 예정이다. 이는 한국 불교학이 이제는 충분한 기초 역량을 갖추었음을 보여주는 증거라고 할 것이다. 앞으로 현재 부분적으로 행해지고 있는 사본에 대한 연구와 이를 토대로 한 비판 교정본에 대한 작업들을 할 수 있는 연구 인력이 더욱 늘어난다면, 국내의 문헌학적 연구방법은 또 한 번 도약할 것으로 기대된다.

한편 번역은 번역자의 역량에 크게 의지하는 바이지만, 그 속에는 반드시 번역자의 의도가 들어가게 된다. 말하자면 번역자의 이해 지평에 따라 같은 원전 번역이라고 해도 미묘한 차이를 갖게 된다. 우리가 원전을 직접 번역하지 않고 영어나 일어로 번역된 것을 중역할 때에는 어쩔 수 없이 해당 번역자의 안목에 갇히게 된다. 그래서 어렵지만 번역을 시도하게 되는 것이다.

앞서 보았듯이, 국내 번역의 역사는 1920년대까지 거슬러 가지만, 불행하게도 그 학맥은 이어지지 못하고 1960년대부터 다시 시작되는 학문적 불행의 역사를 지니게 되었다. 이후 1980년대와 90년대를 거치면서 해외 유학생들이 귀국하면서 본격적인 번역의 시기가 도래했다. 그러면서 한국의 불교학계는 물론 일반 대중불교의 흐름에도 커다란 변화를 가져오게 되었다.

1) 원전어 학습의 기회 확대

국내 대학에서 빨리어와 산스끄리뜨어를 배울 수 있는 곳은 그리 많지 않다. 대표적으로 동국대학교 불교대학에 강좌가 개설되어 있고 중앙승가대학교, 금강대학교 불교학과, 위덕대학교 그리고 한국외국어대학 인도어과에 산스끄리뜨어 강좌가 개설되어 있다. 그 외 인도불교 전공자가 철학과 교수로 재직하고 있는 몇몇 대학이 있지만 학부 강좌로 인도 고전어가 개설되어 있지는 않다. 그러나 이들 대학에서는 교수를 중심으로 강독 스터디가 진행되거나, 대학원에서 학습의 기회가 제공되고 있다.

이렇듯 대학에서도 불교재단이나 외국어대학 외에 빨리어와 같은 원전어를 배울 기회는 극히 드문 형편이다. 그런데 2000년대 들어서면서 이들 언어에 대한 학문적 요구가 증대하고, 또 관련 연구가 정부 지원을 받아 진행되면서 전문가 양성을 목적으로 한 강좌 개설뿐만 아니라 일반 대중에게도 배움의 기회가 제공되기에 이르렀다. 대표적으로 한국연구재단의 지원을 받아 인문한국을 진행하고 있는 금강대학교와 고려대학교 민족문화연구원 산하 문화학교에서 진행하는 언어교육프로그램이 있다.

우선 금강대학교는 2012년 2월부터 꾸준히 시민을 위한 산스끄리뜨어 전문강좌를 개설하고 있다. 문법과 강독을 위주로 하는데, 초급, 중급 과정을 방학 기간에 실시하고 있다. 그리고 고려대학교 민족문화연구원에서는 2009년 7월부터 빨리어와 산스끄리뜨어 강좌를 진행해 오다가, 현재는 산스끄리뜨어만 초급, 중급 강좌를 운용하고 있다. 

대학 이외의 승가대학이나 연구원, 교양불교대학에서도 빨리어 및 산스끄리뜨어 강좌가 진행되고 있다. 가장 먼저 가산불교문화연구원은 1990년대 중반부터 2000년대 초반까지 문법과 강독을 위한 강좌가 개설되어 운영되었다. 사찰에서도 강좌가 개설되어 있는 곳이 많다. 일례로 봉선사에서는 2012년 7월에 ‘봉선사 산스끄리뜨 편집실’을 설립해서 빨리어나 산스끄리뜨 교육을 실시하고 있다. 그리고 자체 발간한 《빨리어 문법》과 《산스끄리뜨·빠알리 표모음집》을 무료로 배포하기도 했다. 한국상좌불교명상원은 2011년 매주 금요일 저녁 7시에 강남 한국명상원에서 ‘빨리어 경전 강좌’를 실시했다. 현재는 언어 강좌는 개설되고 있지 않으나, 니까야 읽기라든가 초기불교 수행을 중심으로 교육이 이루어지고 있다.

하지만 무엇보다 주목할 만한 것은 선운사 초기불교승가대학원(원장 재연 스님)이다. 선운사 초기불교승가대학원은 2011년 개원하였는데, 2010년 12월 22일 조계종 정식 전문교육기관으로 인가받고 기초 빨리어, 빨리어 경율론, 인도불교사 등을 교육하고 있다. 그리고 초기불교에 대한 높은 관심은 조계종 디지털대학에서 빨리어와 산스끄리뜨어 강좌를 개설하여 조계종 승가대학 표준교육과정으로 교육하고 있다. 온라인으로 교육이 이루어지기에 관심 있는 스님은 누구나 고전어를 학습할 수 있는 기회가 열리게 되었다는 점에서 승가 교육의 새로운 장을 열었다고 평가해 볼 수 있다. 아울러 2013년 승가대학 표준 교과목으로 조계종 교육원은 니까야 강독을 개설하여, 적극적으로 초기불교에 대한 이해를 고양시키는 데 주력하고 있다.

2) 인도불교에 대한 관심 증대

빨리어 문헌 및 산스끄리뜨 문헌에 대한 번역이 활발해지면서, 자연스럽게 국내 불자들의 관심도 초기불교 및 인도불교로 향하게 되었다. 기존에는 한역된 대승불교 경전 일변도였다면, 니까야의 번역 보급과 초기불교 관련 서적의 활발한 출판, 그리고 산스끄리뜨본 대승경전에 대한 관심으로 확대되는 모습을 띠게 되었다. 그리고 실제 니까야 및 산스끄리뜨에서 직접 번역된 경전을 읽는 모임도 활성화되었다. 일례로 〈법보신문〉의 조사에 따른 현황을 보면 경전 읽기 모임 11개 단체 가운데 4곳에서 니까야를 읽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그리고 불교방송(BBS)에서는 〈경전의 숲을 거닐다〉라는 프로그램에서 빨리 니까야를 읽고 그 의미를 되짚어보는 방송을 2013년부터 현재까지 진행하고 있다.

먼저 니까야 읽기가 광범위하게 확산되는 이유로는 무엇보다 ‘부처님 원음’을 듣고 싶어 하는 열망 때문으로 해석된다. 물론 니까야가 부처님의 원음을 왜곡없이 고스란히 담고 있다고 말하기는 어렵지만, 현재 우리가 접할 수 있는 문헌 가운데에서는 니까야만큼 사실적으로 부처님의 가르침을 접할 수 있는 것도 없다는 것도 부정할 수 없을 것이다.

이전에 한역 아함경을 번역하여 한글대장경을 출판했을 때와는 달리, 니까야의 번역은 한국 불교도들에게 신선한 자극과 함께, 신행의 형태에도 변화의 바람을 불러 일으켰다. 기존에는 기도와 참선 위주의 수행이 주를 이루었다면, 니까야의 보급은 위빠사나 수행의 저변 확대에 기여했고, 나아가 초기불교의 수행체계 전반의 핵심을 이루는 사성제와 팔정도, 37보리분법 등에 대한 관심을 촉발시켰다. 그리고 계율의 중요성을 환기시킨 것도 니까야 번역이 초래한 중요한 변화의 하나이다. 니까야에서 중요한 핵심은 계율이 가장 근본이 된다는 것에서 수행의 출발을 삼고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율장의 번역은 율이 더 이상 승가만의 전유물이 아니라, 재가불교도에게도 공개됨으로써 계율에 대한 새로운 이해의 지평을 열게 되었다고 볼 수 있다. 이러한 흐름은 자연스럽게 종단의 종헌종법을 초기불교의 율 정신에 비추어 보는 비판적 시각을 가능케 함으로써, ‘붓다 정신’의 회복을 주창하는 밑거름으로 작용했다고 해도 과언은 아닐 것이다. 전체적으로 니까야의 번역은 교학과 수행의 두 측면에 대한 관심을 증폭시켜, 한국불교의 다양화에 기여한 바가 컸다고 할 수 있다.

다음으로 산스끄리뜨어 경전 및 논서의 번역은 아직은 니까야에 비해 활발하지는 않다. 하지만 단행본 출간만을 볼 때 그러한 것이지, 연구논문을 보면 매우 활발한 연구가 진행되고 있다. 번역본 출간은 주로 중관과 유식 계통의 논서가 많고, 경전으로는 아무래도 《금강경》이 여러 학자들에 의해 번역되었다. 앞으로 번역 출간되어야 할 산스끄리뜨 원전은 많다. 예를 들어 《구사론(Abhidharmakośabhāṣya)》 《아비다르마디빠(Abhidharmadīpa)》 《보살지(Bodhisattvabhūmi)》 《대승아비달마집론(Abhidharmasa-muccaya)》 등등의 많은 논서가 있다. 이들 논서의 경우 한역은 대부분 번역이 되었으나, 산스끄리뜨어의 경우는 부분 번역이 이루어졌을 뿐, 전체가 번역되어 출간되지는 못했다.

4. 나가는 말

한국불교는 한문문화권에 속한 고대에는 중국으로부터 불교를 수입했다. 중국이 인도로부터 직접 불교경전이나 논서와 같은 문헌들을 직접 들여와 번역 작업을 했다면, 우리는 중국의 번역 결과물을 그대로 수용한 것이다. 그렇다 보니, 불교는 자연스럽게 한문을 아는 식자층의 종교가 되었고, 글을 모르는 일반인들의 신행 형태는 기복이 주를 이룰 수밖에 없었다. 이러한 현상은 조선시대를 거쳐 심화되었고, 결국 불교는 구한말과 일제강점기를 거치면서 고루한 종교로 인식되게 되었다. 결국 사회의 변화를 이끌고 사람들을 선도해 가는 종교와는 다른 이미지를 갖게 되었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이러한 상황을 변화시키면서, 불교에 대한 이해를 일신하게 된 것은 누가 뭐래도 인도불교 문헌에 대한 번역과 보급에 있다고 생각된다. 어려운 한문 투의 술어 대신, 현대어로 표현된 문장은 젊은 사람들에게도 쉽게 공감할 수 있는 여지를 넓히게 되었다. 결국 불교의 현대화는 번역과 더불어 시작되었다고 할 수 있다. 현대화는 두 가지로 집약되는데, 하나는 불교의 대중화이고, 다른 하나는 확고한 문헌학적 연구에 기반한 불교학의 발전이다. 따라서 불교학의 발전과 대중화는 따로 가는 것이 아니라, 같이 진행되는 것임을 우리는 번역의 과정을 통해 확인할 수 있다. 또한 대중화는 불교도뿐만 아니라 비불교도들이 불교에 관심을 갖게 하는 계기로 작용하고, 불교의 수행적 측면에서도 긍정적인 역할을 담당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그런 만큼 앞으로 한국불교는 개별 번역자의 능력에 의존해 왔던 기존의 시스템을 좀더 강화하여 공동번역 시스템과 기존의 번역을 재검토하여, 계속적인 수정 작업을 해야 할 것이다. 물론 이 작업은 결코 쉬운 작업이 아니다. 인도 고전어를 현대 한국어로 옮기는 작업은 영어를 번역하는 것과는 또 다른 차원의 문제이다. 번역의 문제는 문장과 단어의 두 측면을 모두 포괄하는 작업이다. 2000년 초반과 2010년에 이루어진 사띠(sati) 번역과 관련된 논쟁은 이를 잘 보여준다. 어떤 하나의 합의에 도달하지 못한다고 해도, 그 자체만으로 불교학이 발전하는 데는 크게 도움이 된다. 그리고 이러한 담론은 번역이 얼마나 어려운 작업이며, 많은 사람의 토의가 왜 필요한지를 또한 보여준다. 그리고 이러한 논쟁의 흐름 속에서 자연스럽게 불교에 관심을 갖고 있는 사람들도 같이 성장해 가는 이점도 있다.

‘가장 한국적인 것이 가장 세계적인 것’이라는 표어가 있듯이, ‘가장 붓다적인 것이 가장 불교적인 것’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번역은 바로 ‘붓다적인 것’, 말하자면 ‘붓다의 원음에 가장 가까운 것’을 찾아가는 여정이라고 할 수 있다.

불교를 일신하는 가장 좋은 길은 ‘부처님의 가르침’을 왜곡 없이 이해할 수 있고, 공부할 수 있는 토대를 마련하는 것일 것이다. 그것의 핵심은 바로 ‘번역’이기에, 번역에 대한 불교계와 학계의 지속적인 노력과 지원이 체계적으로 이루어진다면, 한국불교는 불교학의 전문화와 대중화라는 두 마리의 토끼를 모두 잡을 수 있을 것이다. ■

 

이필원 / 동국대학교 경주캠퍼스 파라미타칼리지 조교수. 청주대학교 철학과, 동국대학교 대학원 인도철학과 졸업. 일본 북쿄대학에서 박사학위 취득. 주요 논문으로 〈阿羅漢の研究〉(박사논문) 〈사무량심의 ‘해탈도’적 성격 고찰〉 〈초기불교의 연기이해: 수행론적 관점에서의 새로운 접근〉 등이 있으며, 번역서 《사성제 팔정도》와 《불교 경전은 어떻게 전해졌을까》(공저)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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