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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양의 불교경전 번역과 역사* / 황순일
특집 | 불교경전의 번역과 유통
[65호] 2016년 03월 01일 (화) 황순일 sihwang@dgu.edu

1. 서언

서양의 불교경전 번역의 역사는 빨리경전협회(Pali Text Society)의 역사와 함께한다고 할 수 있다. 물론 1800년대 중반부터 유진 브르느프에 의해 《법화경》과 같은 대승경전이 번역되기도 했고, 막스 뮬러에 의해 동방성서(The Sacred Books of the East)의 일부로서 불교경전들이 번역되기는 했지만, 빨리경전협회의 경우와 같이 체계적이고 장기적으로 특정한 부파의 전체 경전을 로마자로 출판하고 번역하는 사업을 진행한 예는 서구에서 전례가 없었다. 영국이 서양에서 테라와다(Theravāda)로 알려진 남방불교 경전 번역사업의 중심에 서게 된 배경에는 영국의 아시아 식민지 경영과 깊이 관련되어 있다.

빨리경전협회가 창립된 1881년은 영국의 식민지 경영이 절정에 달하던 시기로서 인도와 스리랑카의 지배권이 확립된 상태에서 2차례에 걸친 전쟁을 통해 미얀마의 남부 지역을 통치하던 시기였다. 따라서 당시 영국 사회는 식민지의 종교와 문화를 자신들의 기독교적 문화에 대해 열등한 것으로 보려 했던 오리엔탈리즘(Orientalism)적 경향에 휩싸여 있었으며, 불교의 연구와 불교경전 번역사업은 자신들의 식민지 지배를 정당화하는 하나의 정치적인 도구이자 통치의 수단으로 간주했다.

이러한 사회적 분위기 속에서 빨리경전협회는 불교의 연구와 경전의 번역에 일생을 바친 몇몇 헌신적이고 열정적인 학자들과 이들의 노력에 공감했던 많은 독지가의 재정적인 뒷받침을 통해 성립되고 발전되었다.

2. 리즈 데이비스와 빨리경전협회의 성립

   
리즈 데이비스(1845~1922)와 캐롤라인.
리즈 데이비스(TW Rhys Davids)는 1843년 영국 남부 콜체스터(Colchester)에서 웨일스 출신 목사와 런던의 하급 법무관(Solicitor)의 딸 사이에서 태어났다. 일찍 어머니를 여읜 리즈 데이비스는 인도파견공무원이 되기 위해 독일 브레슬라우(Breslau)로 유학했고, 영어 가정교사를 하면서 어렵게 대학을 졸업했다. 이때 그는 유명한 범어학자였던 스텐즐러(A.F.Stenzler)에게서 문헌학적 훈련을 받았고 이를 통해 빨리어 학자로 대성하는 발판을 만들게 되었다.

인도파견공무원 시험을 거쳐서 리즈 데이비스는 1863년 불과 21세의 나이로 스리랑카의 콜롬보로 향했다. 그리고 갈라(Galla) 지역의 지방순회판사로 있을 때 불교교단 내부의 분쟁과 관련된 법률사건을 남방불교의 빨리 율장에 근거하여 해결하면서 유명해졌다. 이 시기에 리즈 데이비스는 유명한 빨리 학승이었던 야뜨라물레 스리 담마라마(Yatramulle Sri Dhammarama)의 도움을 받게 되었고 그 스님을 통해 빨리어와 불교의 세계로 빠져들게 되었다. 그리고 식민지 행정관료로 활동하면서 남는 시간을 빨리어 연구에 투자하여, 힉까두웨 스리 수망갈라(Hikkaduve Sri Sumangala)와 왓까두웨 스리 수부띠(Waskaduve Sri Subhuti) 등과 같은 당대의 학승들과 인연을 맺었다.

그는 1868년부터 스리랑카 고대 왕국의 수도인 아누라다뿌라(Anuradhapura)의 고고학 조사관으로 활동하며 고대 유적지의 비문들을 조사하여 왕립아시아학회에 발표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그는 자신의 상관이던 트웨인함(C.W. Twynham)과 끊임없는 불화를 겪었으며 결국 몇몇 불미스러운 사건에 연루되어 1872년 스리랑카 파견공무원에서 해임되어 버린다. 리즈 데이비스는 런던으로 돌아와서 법률 공부를 시작하여 1877년 법정변호사(Barrister)가 되었지만 빨리어와 불교에 대한 관심을 버릴 수가 없었다. 훗날 그와 결혼한 캐롤라인 리즈 데이비스(Caroline Rhys Davids)에 의하면 당시 “리즈 데이비스는 세일론에서 물려받은 정신적인 유산에 매료되고 쫓기고 있었으며” 점차 불교학자의 길로 나가게 되었다.  

1881년 리즈 데이비스는 빨리어 불교의 문헌들을 편집하고 번역하고 출판하는 작업이야말로 웨다(Veda) 문헌들의 출판이 종교 및 종교사 연구에 공헌한 것만큼이나 중요한 작업이 될 것이라고 선언하고, 1864년 설립된 초기영어문헌협회(Early English Text Society)의 예를 따라서 빨리경전협회(Pali Text Soeicty)를 설립하게 되었다. 초기영어문헌협회가 필사본의 형태로 남아 있는 초기 영어 문헌들을 수집 출판하여 초기 영어 문헌들의 연구를 진흥하는 것을 목적으로 했다면, 빨리경전협회는 경전류, 논서류, 주석서류, 역사서 등 빨리어 문헌들을 수집 출판하고 영어로 번역하는 것을 목적으로 했다.

리즈 데이비스는 유럽과 미국의 동양학자들의 도움을 받아서 세계 각지의 도서관에 흩어져 있는 빨리어 필사본들을 수집했고 스리랑카에서 인연을 맺었던 스님들의 적극적인 지원을 통해 스리랑카의 여러 사원에 남아 있는 필사본들을 수집 조사 연구하는 작업에 착수할 수 있었다. 빨리어 경전을 수집하고 편집하여 로마자로 출판하는 작업은 신속하게 진행되었다. 1901년 PTS 저널은 율장의 작업이 이미 끝났고 경장은 거의 마무리가 되고 있으며 논장의 경우 작업이 절반 정도 진행되었음을 보고하고 있다. 빨리경전협회의 초기 20년 동안 총 12,809페이지 정도로 추산되는 빨리 삼장 중에서 8,609페이지가 수집, 교정, 출판되어 약 67%의 작업을 완성되었다는 것은 당시로 보았을 때 대단한 성과라고 하지 않을 수 없다. 

빨리경전협회의 초기 활동이 성공적이었던 이유 중의 하나는 각각의 문헌들이 철저하게 개별적으로 편집되어 출판되었다는 점이다. 율장(Vinaya-piṭaka)의 경우 독일의 올덴베르그(H. Oldenberg)가 책임 편집하고, 경장(Sutta-piṭaka)의 장부(Dīgha-nikāya)는 리즈 데이비스 자신이 직접 책임 편집했다. 따라서 각각의 경우 특수문자의 표기와 편집 방식에서 책임 편집자의 선호에 따라 몇몇 미세한 차이들이 생겨났다.

이때 빨리경전협회는 다양한 편집 방식을 하나로 통일하기 위한 소모적인 논쟁에 시간을 허비하기보다는 각 편집자의 개성을 살리는 방식으로 작업을 진행하였다. 빨리어 경전 출판에서 편집 방식의 차이들은 여전히 통일되지 않고 남아 있고, 빨리어를 처음 접하는 사람들에게 몇몇 혼란을 야기하고 있지만, 전체적으로 보았을 때 이 문제를 심각하게 다루어야 할 만큼 많은 차이가 나타난다고 생각되지 않았다. 또한 내용적으로 보았을 때 구전문학 작품에서 많이 나타나는 동일한 문장의 지루한 반복들을 어떻게 처리할 것인가에 대해서도 논란이 있었다. 반복을 싫어하는 서양어의 특성을 빨리어에 적용하여 반복을 줄이고 문장을 간략하고 간명하게 만들려는 시도라고 볼 수 있다. 하지만 이러한 시도 역시 경전의 가치를 하락시키는 요인으로 간주되었고, 최대한 원전에 가까워야 한다는 원칙 속에서 각각의 편집자의 개인적인 판단에 맡기는 방향으로 나가게 되었다.

빨리경전협회의 초기 활동에는 리즈 데이비스가 과거 식민지 행정관료 시절에 인연을 맺어온 많은 스리랑카 스님들의 후원이 중요한 역할을 했다. 첫해에 이미 70여 명 이상의 스리랑카 스님들이 앞으로 나오게 될 빨리어 경전들의 출판비용을 선납할 정도로 리즈 데이비스의 작업을 도왔다. 기본적으로 빨리경전협회는 회원을 모집하고 회원들이 낸 회비를 통해서 운영되는 단체이다. 회원들이 낸 회비는 빨리 문헌들을 연구하고 출판하는 작업에 사용되었는데, 많은 부분이 경제적으로 열악한 상황에 있었던 빨리어 학자들에게 그들의 작업에 대한 보상으로 제공되었다. 따라서 빨리경전협회는 부분적으로 남방불교 승려들의 후원을 받았지만, 기본적으로 종교단체라기보다는 학술단체의 성격을 지니고 있었으며 빨리 경전을 연구하는 학자들을 후원하여 남방불교의 연구를 촉진하고 것을 목적으로 한다고 볼 수 있다.     

3. 빨리경전협회의 발전

빨리경전협회의 본격적인 역경 작업에는 하나의 원칙이 있었는데 그것은 1년에 2권씩의 결과물을 출판하는 것이었다. 일반적으로 종단이나 국가의 지원을 받은 역경사업은 단기간에 많은 결과물을 내어놓으려는 조급함 때문에 결과물의 질적 수준이 떨어져서 실패하는 경우가 많이 있다. 빨리경전협회의 작업과 별개로 유럽과 미국의 학자들에 의해서 빨리 경전의 일부가 편집되고 출판되고 있었지만 리즈 데이비스는 결코 서두르지 않았다. 이 시기에 그는 왕립아시아학회(Royal Asiatic Society)의 총무로 활동하면서 런던대 강사와 빨리경전협회장을 겸임하고 있었다. 그는 PTS 저널의 편집과 출판 및 협회의 경제적인 부분을 담당했고, 사서로서 일정액의 봉급과 사택을 사용했던 것으로 나타나고 있다.

사실상 리즈 데이비스가 빨리경전협회의 활동에만 집중할 수 없었기 때문에 자신의 부인이자 비서였던 캐롤라인 리즈 데이비스(Caroline Rhys Davids)를 통해 협회의 행정을 지원했는데, 가족 단위로 초창기 빨리경전협회를 이끌었다고 할 수 있다. 빨리경전협회는 많은 사람의 기대와 달리 고풍스러운 건물과 멋있는 사무실을 갖추고 있지 않았다. 주로 회장의 사택이나 출판사의 창고에 자그마한 사무실을 유지하는 정도로 운영되었다. 초대 회장인 리즈 데이비스와 제2대 회장인 캐롤라인에 의해 협회가 창립되어 발전할 때 이러한 전통이 시작되었고 제5대 회장으로서 빨리경전협회의 중흥을 이끌었던 오너(I.B. Horner)에게까지 이어졌다. 그녀는 별도의 사무실 없이 케임브리지에 있는 자신의 집을 협회 사무실로 활용했던 것으로 유명했다. 영국적 실용주의의 관점에서 보았을 때 학술단체로서 성격이 강했던 빨리경전협회의 가치는 건물이나 사무실과 같은 유형자산에 있는 것이 아니라, 협회의 활동과 학문적 성과를 통한 출판물의 축적에 있었던 것으로 보았기 때문이다.

빨리경전협회는 중앙집중식의 건물과 사무실을 유지할 필요가 없는 조직이었다. 협회의 성과물인 빨리 경전의 편집, 번역, 출판은 철저하게 개별 학자들에 의해서 독립적으로 진행되고 있었다. 초창기 여러 빨리 경전들은 자코비(Jacobi), 뮬러(Muller), 올덴베르그(Oldenberg) 등과 같은 학자들에게 체계적으로 배분되었으며 그들의 책임하에 교정과 편집 작업이 진행되었다. 그리고 각각의 경전의 번역 또한 철저하게 개별적으로 작업이 이루어졌다. 율장(Vin-aya-piṭaka)의 경우 리즈 데이비스와 올덴베르그에 의해 부분적으로 막스 뮬러의 《동방성서(The Sacred Books of the East)》 시리즈로서 번역 출판되었던 것이 빨리경전협회에 흡수되어 출판되었고, 오너 여사에 의해 교정 보완되어 재판되면서 현재와 같은 형태를 갖추게 되었다. 경장(Sutta-piṭaka)의 경우 장부(Dīgha-nikāya)는 리즈 데이비스 자신이 책임 번역하였고, 중부(Majjhima-nikāya)는 찰머스(R. Chalmers) 등이 번역하였으며, 잡부(Samyutta-nikāya)는 캐롤라인과 우드워드(F. L. Woodward) 등의 공동 작업으로 번역하였고, 증일부(Aṅguttara-nikāya)는 우드워드와 해어(E. M. Ha-re) 등의 공동 작업으로 번역이 이루어졌다.

빨리경전협회의 개별 편집, 개별 번역 방식은 번역용어의 통일 문제와 같은 부작용을 가지고 있었다. 하지만, 이 방식은 국제적으로 다양한 학자들이 참여하고 있는 상황에서 쉽게 발생할 수 있는 협회 내부의 불협화음을 조기에 차단할 수 있는 중요한 요소가 되었다. 사실상 빨리 경전에는 문장의 맥락에 따라 다른 의미로 사용되는 다의적인 용어들로 가득 차 있다. 기본적으로 다의적인 특성을 지니고 있는 초기경전의 용어들에 대해서 단일하고 통일된 번역어를 제시하는 것은 아마도 불가능한 것으로 보였을 것이다. 따라서 빨리경전협회는 번역용어를 통일하기보다는 개개의 학자들이 각각의 문맥에 따라 최적의 용어를 선택하여 번역작업에 임하도록 했다. 이러한 작업은 개별 번역 방식을 통해서 철저하게 개개인의 학문적인 판단을 통해 이루어졌고, 점차 불교혼성영어(Buddhist Hybrid English)라고 농담 삼아 이야기되는 조금은 복잡하고 난해한 불교 전문 번역어들이 서서히 자리를 잡는 계기를 마련했다.

아마도 이러한 부분은 번역어가 거의 통일되어 있는 한문불교권의 독자들에게는 쉽게 이해되지 않을 것이다. 불교 승려와 전문가들의 입장에서 보면 동일한 빨리어 용어에 대해서 다양한 영어 번역어가 있는 것은 혼란을 초래할 뿐이고 경전을 올바로 이해하는 데 장애가 된다고 판단될 수도 있다. 하지만 불교 초심자의 경우는 승려들과 학자들과 같은 정도로 불교 전문용어들을 이해하고 있지 못하기 때문에 이들에게 한문불교 전문용어들이 가득한 번역서는 또 다른 형태의 해독이 불가능한 암호문에 불과하다고 할 수 있다. 또한 문맥에 따라 다의적인 특징을 지니고 있는 빨리어 용어들에 단일한 번역어를 고정할 경우 특정한 문맥에서는 용어의 의미가 통하지만 다른 문맥에서는 용어의 의미가 통하지 않게 되어 많은 사람에게 혼란을 초래하게 될 뿐이다. 어떤 의미에서 보았을 때 하나의 용어에 하나의 번역어를 고정하는 것은 일종의 방임으로서 독자들에게 문장의 의미를 정확하게 전달해야 할 번역자의 역할을 제대로 하지 못하고 있는 것으로도 볼 수 있다.

   
오너(I.B. Horner, 1896~1981).
아직까지도 빨리경전협회의 번역서들은 동일한 빨리어 용어에 대해 역자들에 따라서 조금은 상이한 번역어들이 제시되고 있고 각각의 문맥에 따라 번역어들이 계속해서 변하고 있다. 또한 한문에서 전문용어로 자리 잡은 다양한 복합어들이 영어 번역에서는 각각의 문맥에 따라 풀어 설명되어 있어서 경우에 따라서 혼란을 주는 경우도 있다. 빨리경전협회는 이러한 문제점을 기존의 번역을 교정하고 수정하여 재번역하고, 빨리어 사전과 문법서를 출판하여 독자들의 이해를 돕는 방식으로 극복하고 있다. 리즈 데이비스는 제자인 스테데(W. Stede)와 함께 빨리영어사전 작업을 충실히 진행하였다. 그리고 이 사전은 1920년대 중반 그의 사후에 스테데의 노력을 통해 단계적으로 출판되어 빨리어 번역자들과 남방불교 독자들에게 빨리 경전의 이해를 돕고 있다. 이러한 전통은 오늘날까지 이어져서 케임브리지 대학의 마거릿 콘(Margaret Cone)에 의해 새로운 빨리어 사전이 2001년과 2006년에 부분적으로 간행되었고 나머지 작업이 지금까지도 계속해서 이어지고 있다.   

빨리경전협회는 제1차 세계대전 이후 심각한 위기 상황에서도 빨리어 경전들을 편집, 교정, 번역, 출판하는 목표를 결코 수정하지는 않았다. 협회 수입의 대부분이 책의 판매와 회원들의 회비에 의존하는 구조를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1930년대의 대공황과 제2차 세계대전이란 위기 상황에서 책의 판매가 줄어들고 회원 수가 감소하는 위기를 맞이하게 되었다. 그리고 이러한 상황은 자연스럽게 출판 계획의 축소로 이어졌다. 빨리경전협회는 이러한 재정 압박에 시달리면서도 캐롤라인(Caroline A. F. Rhys Davids), 로즈(W.H.D. Rouse), 스테데(W. Stede)를 제2대, 3대, 4대 회장으로 맞이하면서 지혜롭게 극복했다. 그리고 1959년 오랫동안 협회의 간사를 지낸 오너(I.B. Horner)를 제5대 회장으로 맞이하면서 새로운 전기를 맡게 되었다.

1960년대 유럽과 미국에서 동양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면서 불교에 대한 연구가 활발하게 진행되었다. 특히 베트남 전쟁에 좌절한 미국의 히피 세대들과 1960년대 후반 학생운동에서 좌절을 경험한 젊은 세대들이 동양의 종교와 불교에서 새로운 대안을 찾으려 했다. 따라서 이 시기에 빨리경전협회의 출판물 판매와 회원 수가 비약적으로 증대했고 재정적인 안정을 통해서 협회가 새롭게 중흥할 기회를 잡게 되었다. 오너는 오래되고 문제가 많은 번역을 교정하고 재번역하여 더욱 많은 사람이 빨리어 경전을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하는 작업을 진행했다. 초창기의 번역어들을 시대적 경향과 축적된 연구 성과에 따라 교정하고 재번역하는 작업은 쉬운 일이 아니었다. 오너 스스로가 율장(Vinaya-piṭaka)을 재번역했고, 다른 번역서의 재판이 나올 때마다 기존의 번역을 교정하고 수정하는 작업을 게을리하지 않았다. 또한 그녀는 다양한 빨리 경전들의 색인집을 만들고 빨리어 문법서를 간행해서 빨리어를 연구하는 학자들과 학생들의 기호를 충족시키기 위해서도 노력했다.

이 시기에 빨리경전협회는 불교의 이해에 중요하다고 판단되는 《짜따까말라(Jātakamala)》와 《마하와스투(Mahāvastu)》와 같은 범어 및 불교 혼성범어 경전들을 교정하고 출판하는 작업을 시작했다. 그리고 이와 함께 점차적으로 아비담마 문헌들과 경전의 주석서들에 대한 편집, 교정, 번역 작업에 박차를 가했다. 1980년대 빨리경전협회를 어어 받은 노만(K.R. Norman)은 오너의 작업을 물려받아 흔들림 없이 협회의 활동을 이어갔다. 탁월한 언어학자였던 노만은 인도 중기 언어인 프리끄릿어를 기반으로 빨리어를 심도 있게 연구했으며 기존의 번역서들을 교정 보완하여 출판하는 작업을 중단 없이 진행했다. 그에 의해서 교정, 번역, 출판된 《담마빠다(Dhammapada)》와 《숫따니빠타(Suttanipāta)》는 빨리어 경전의 재번역이 어떻게 진행되어야 하는가를 보여준 기념비적인 작품이라고 할 수 있다. 또한 그는 가이거의 빨리 문법서를 현대적으로 교정 출판하여 고전의 현대적 재탄생이 어떤 모습을 가져야 하는가를 보여주기도 했다.

빨리경전협회는 1990년대에 옥스퍼드대학의 곰브리치(R.F. Go-mbrich) 교수를 회장으로 선출하고 빨리어 주석서의 번역 출간 작업에 몰두하기 시작했다. 빨리어 주석서에 대한 번역 출간은 스리랑카, 미얀마, 태국, 라오스, 캄보디아의 많은 불교인의 숙원사업이었다. 하지만 초기불교를 복원한다는 거대한 명분 속에서 오늘날 테라와다로 알려진 남방불교를 이해하는 데 실제적으로 도움이 되는 주석서에 대한 번역과 연구는 경시되어 왔다.

이 시기에 빨리경전협회가 자신들의 출판 방향을 경전의 주석서 쪽으로 잡았던 것은 주석서들의 이해가 현재의 남방불교 이해에 필수적이며 이러한 부분에 보다 많은 관심이 필요하다는 것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사건이었다고 할 수 있다. 물론 내부적으로 주석서보다는 빨리 삼장의 연구에 보다 충실해야 한다는 근본주의적인 반발이 있었지만, 빨리어 주석서의 편집, 교정, 번역 작업은 1990년대부터 중단 없이 진행되었다. 이와 더불어 태국과 미얀마 등 동남아시아의 빨리 불교문헌들에 대한 연구가 지원되었으며, 피터 스킬링 등의 노력을 통해서 동남아시아 불교문헌의 중요성이 점차 알려지지 시작했다. 곰브리치는 빨리경전협회가 너무 학술적인 부분에만 치중한다고 생각했으며 일반 사람들에게 불교를 알리려는 노력이 부족하다고 생각했다. 그는 서구사회에 불교를 널리 알리는 사업의 일환으로 남방불교와 빨리 경전에 관련된 빨리경전협회의 중요한 번역서와 개론서들을 단행본으로 저렴하게 출간하여 남방불교에 대한 관심을 확대하려고 노력했다. 현재 빨리경전협회는 2015년에 작고한 랑스 카진(L.S. Cousins)을 거쳐서 브리스톨대학의 루퍼드 궤틴(M. L. Gethin)이 이끌고 있다.

2009년에 발행된 빨리경전협회 출판물 목록은 소부(Khuddaka-nikāya)의 몇몇 경전과 논장(abhidhamma)의 야마까(Yamaka)와 빠따나(Paṭṭana)를 제외한 대부분의 빨리 삼장의 편집, 교정, 번역이 출판되었음을 보여주고 있고, 빨리 삼장의 주석서 편집, 교정, 번역 작업의 경우 텍스트의 교정, 출판 작업이 마무리된 상태에서 번역 작업이 계속해서 진행되고 있음을 다음의 2페이지에 걸친 번역서 목록이 보여주고 있다. 

   
 빨리 삼장 텍스트와 번역서 목록

   
빨리 삼장 주석서 텍스트와 번역서 목록

4. 빨리경전협회의 평가

〈스와미 위웨까난다와 문화적 고정관념〉이란 글에서 폴 윌(Paul. J. Will)은 다음과 같은 흥미로운 언급을 하고 있다.
 
동양과 서양이 만난 역사를 통해 보았을 때, 각각의 문화를 대표하는 생각은 그 문화에 대해 이야기하는 사람에 크게 의존해 왔다. 초기 서구의 불교학자들이 테라와다 불교와 만났다는 사실은 이러한 남방불교의 특별한 견해가 불교를 대표하는 견해로 받아들여졌다는 것을 의미한다. 따라서 오늘날까지도 테라와다 불교가 붓다의 본래적 가르침에 가깝고 따라서 순수하다는 생각들이 다른 많은 불교인을 낙담하게 만들고 있다. 서구에서는 스즈키(Suzuki)가 선불교를 이야기하는 대표적인 사람이었기 때문에, 일본불교에서 소수파에 속하는 임제선(Linzai Zen)이 선불교를 대변하는 것으로 서양에 알려져 있다.

사실상 많은 서구의 불교인들은 1800년대 영국의 식민지 통치 시기에 인도, 스리랑카, 미얀마의 남방불교를 만났고 1900년대 초반에 일본을 통해서 동아시아의 대승불교를 만났으며 1960년대에 본격적으로 티베트불교를 만났다. 하지만 이들이 처음 만났던 남방불교는 스리랑카와 동남아시아에서 실재적으로 믿어지던 살아 있는 불교가 아니라 빨리경전협회를 통해 복원된 빨리 경전을 통해서 복원된 초기불교였다. 

식민지 시대 많은 영국인은 초기경전과 율장에 나타나는 붓다의 모습에서 이상적인 빅토리아 시대 영국 신사의 모습을 보았다고 한다. 그리고 붓다의 일생에서 초인적인 부분을 배제하고 철저하게 인간적인 모습의 붓다를 복원하려고 노력했고 이러한 붓다의 인간적인 부분에 매료되었다. 리즈 데이비스의 대표적 저서인 《불교(Buddhism)》는 원래 기독교전도협회(Society for Promoting Christian Knowledge)를 위해 만들어진 책으로 당시 살아 있는 남방불교의 불교관을 적극적으로 반영하기보다는 빨리어 초기경전들을 근거로 만들어졌음을 자랑하고 있다. 사실상 빨리 경전 속의 불교는 오래전에 사라진 불교로서 당시 살아 있는 스리랑카와 동남아시아의 불교를 대변한다고 보기 어려웠다. 하지만 식민지 시대 서구에서는 빨리 경전의 역경을 통해 복원된 경전 속의 불교를 통해서 당시 살아 있는 대부분의 불교를 비판적인 시각에서 바라보게 되었고 빨리 경전 속의 불교만이 진정한 불교이고 그 이후의 불교는 발전된 형태의 불교가 아니라 일종의 타락된 불교로 간주했다.

사실상 남방불교의 관점에서 대승불교와 티베트불교를 바라본 것이 아니라 서구적 관점에서 재구성한 불교를 통해 남방불교를 포함한 불교 전체를 바라보았고, 이를 통해서 식민지의 수많은 불교인에게 당신들의 과거는 뛰어났지만 당신들의 현태는 타락되었다는 메시지를 전달해 당시의 불교를 평가절하하고 오늘날까지도 살아 있는 불교를 수동적 개혁의 대상으로 바라보게 만들었다. 

비록 늦은 감이 있지만 빨리경전협회가 빨리 삼장의 주석서에 대한 편집, 교정, 출판 쪽으로 방향을 잡은 것은 남방불교를 이해하는 틀을 확대한다는 측면에서 중요한 의미를 지니고 있다. 사실상 빨리경전협회가 수집한 스리랑카의 빨리 문헌들은 고대부터 중단 없이 스리랑카에서 전해진 것이 아니다. 스리랑카는 1500년경부터 약 400여 년간의 혹독한 식민지 시기를 거쳤다. 이 시기에 스리랑카는 포르투갈, 네덜란드, 영국에 의해 지배되었고 가톨릭과 기독교의 영향을 받기 시작했으며 남인도로부터 많은 타밀족이 이주하면서 힌두교의 영향을 또한 받게 되었다. 사실상 이 시기에 스리랑카의 빨리어 필사본들은 거의 다 소실되어 버렸고, 스리랑카의 비구 수계 전통조차도 지속되기 어려운 위기를 맞이하게 되었다. 빨리경전협회 빨리 삼장의 저본이 된 대부분의 스리랑카 빨리 문헌들은 1700년대 중반부터 태국과 미얀마를 중심으로 동남아시아에서 스리랑카로 다시 들여온 것들이다. 물론 10세기경에 스리랑카에서 동남아시아로 전해진 빨리 삼장이 되돌아온 것이라고 할 수 있지만, 빨리경전협회의 활동이 스리랑카를 중심으로 진행되면서 당시 남방불교의 주류였던 동남아시아의 태국과 미얀마가 가지는 불교적 역할들이 종종 간과되었다. 오늘날 살아 있는 동남아시아불교는 빨리 삼장을 통해서 이해할 수 있는 성격의 불교가 아니다. 수많은 동남아시아 불교사원의 벽화들은 소부(Khuddaka-nikāya) 《담마빠다(Dhammapada)》의 주석서에 나타나는 수많은 설화를 중심으로 만들어져 있고, 소부(Khuddaka-nikāya) 《본생담(Jātaka)》과 그 주석서에 나타나는 불교설화들을 통해서 동남아시아 불교인들의 불교관이 형성되었기 때문이다.

1990년대 이후 동남아시아의 불교문헌들에 대한 연구가 활발해지면서 스리랑카 빨리 문헌에 선행하는 빨리 문헌들이 치앙마이를 중심으로 하는 태국 북부 지역에서 발견되었다. 또 미얀마의 수많은 빨리어 필사본들이 국경을 넘어서 태국의 여러 지역에서 활발하게 수집되고 보존되고 있다. 따라서 2000년대 이후 빨리경전협회는 스리랑카라는 한계를 넘어서 본격적으로 동남아시아의 빨리어 금석문과 필사본들에 점차적으로 관심을 보이게 되었고 소위 테라와다(Theravāda)로 알려진 남방불교 교단의 정체성 문제에 관해서도 랑스 카진(L.S.Cousins)과 루퍼드 궤틴(M. L. Gethin)을 통해 심도 있는 연구가 진행되었다. 

많은 학자는 오늘날 살아 있는 남방불교의 초석이 4~5세기경 스리랑카에서 활동했던 붓다고사(Buddhaghosa)에 의해서 확립된 것으로 보고 있다. 붓다고사는 스리랑카의 고대 수도인 아누라다푸라에서 당시 싱할라어로 기록되어 보존되어 있던 빨리 삼장의 주석서들을 범어 스타일의 빨리어로 번역하고 편집, 교정하여 출판하고 《청정도론(Visuddhimagga)》을 통해 남방불교의 수행체계를 정립했다. 그리고 붓다고사에 의해 정립된 불교가 10세기 이래 수없이 많은 미얀마와 태국 출신의 순례승들에게 전해졌다.

이들은 스리랑카에서 아누라다푸라의 보리수나무와 스리빠다의 산꼭대기에 있는 불족을 참배하고 마하위하라(Mahāvihāra)의 전통을 잇는 불교사원에서 빨리 삼장을 그 주석서와 함께 공부한 후 귀국했다고 한다. 즉 빨리 삼장의 주석을 제외하고 빨리 경전만을 토대로 재구성한 불교는 오늘날의 남방불교와 일정한 거리를 두고 있는 불교라는 인식이 널리 퍼지고 있다. 따라서 빨리경전협회의 창립 100주년이 되는 1980년대에 협회는 동남아시아의 불교 단체들로부터 빨리 삼장의 주석서를 교정 편집 번역하는 작업에 나서달라는 요구를 받았는데, 여기에는 빨리경전협회가 스리랑카와 동남아시아의 살아 있는 불교를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되는 방향으로 나가야 한다는 남방불교계의 염원이 담겨 있다고 할 수 있다. 사실상 동남아시아 불교교단 내부에서 랑카중심주의적 경향이 점차 증대되고 확대되면서 자칫 자신들의 정체성이 소실될 수 있다는 위기감이 증폭된 결과로도 볼 수 있다.

5. 맺음말

130여 년에 걸친 빨리경전협회의 활동은 서구인들에게 인간 중심적인 종교로서 불교의 이미지를 깊이 각인시키는 역할을 했다. 식민지 시대에 이러한 이미지가 식민지의 종교와 문화를 비판하고 자신들의 방식으로 식민지의 종교와 문화를 개혁하려는 경향을 낳기도 한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이러한 전통이 과학적이고 합리적인 사유로 무장한 현대인들에게 불교가 친근하게 다가갈 수 있는 가교의 역할을 할 수 있도록 도왔다는 점 또한 무시하기 어렵다.

빨리경전협회의 역경 사업은 남방 테라와다 불교의 경전들을 바탕으로 하면서도 자생적이고 학술적인 단체의 성격을 강하게 지니면서 진행되었다. 불교학의 초창기에 이들의 활동을 통해서 현대적이고 서구적 이미지를 갖춘 불교가 자리를 잡게 되었고, 점차 동아시아의 대승불교와 티베트의 밀교가 서구사회에 들어갈 수 있는 토대를 형성해 주었다.

그리고 지역불교로서 스리랑카와 동남아시아의 남방불교의 중요성이 강조되면서 빨리 경전을 통해서 초기불교를 재구성하기보다는 빨리 경전과 그 주석서의 교정, 편집, 번역을 통해 오늘날 살아 있는 동남아시아불교를 이해하는 틀을 제공하는 쪽으로 빨리경전협회의 역할이 변화해 나가고 있다. ■            


황순일 / 동국대학교 불교학부 교수. 동국대 인도철학과, 동 대학원 철학과, 영국 옥스포드대 졸업(박사). 태국 출라롱콘대, 카자흐스탄 알파라비 국립대학 교환교수와 일본 사이타마대학 객원교수 역임. 주요 논문으로 〈무기설을 통해본 무여열반의 의미〉 〈설일체유부(Sarvāstivāda)에서 개념과 명칭〉 등이 있고, 저서로 Metaphor and Literalism in Buddhism, The Doctrinal History of nirvana, Sermon of One Hundred Days: Part One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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