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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불교 역경시스템과 현대적 적용 / 강경구
특집 | 불교경전의 번역과 유통
[65호] 2016년 03월 01일 (화) 강경구 kkkang@deu.ac.kr

1. 들어가는 말

2001년 318권 한글대장경의 완간은 한국불교사의 새로운 장을 여는 지표가 되기에 충분하다. 그것은 불교의 전래(384년 마라난타)로부터 1,600여 년, 고려대장경의 완간(1251년)으로부터 700여 년, 한글 번역사업이 시작된 때(1461년 간경도감)로부터 500여 년, 한글대장경 번역사업이 본격적으로 시작된 때(1964년 동국역경원)로부터 37년이 걸린 장구한 시도와 좌절과 성취의 역사를 가지고 있다.

이러한 역경(譯經=逆境)의 대장정을 거쳐 한글대장경 완간이라는 형식적 목적지에 도달한 이제 그것의 내용적 목적이라 할 불교의 대중적 전파와 불교의 발전에 소기의 역할을 다할 수 있게 되었는가에 대한 근본적 질문이 제기될 수밖에 없다. 이에 대해 불교인들은 자부심과 참괴감이라는 모순된 감정을 동시에 느낀다. 그 자부심은 자국어로 된 완전한 대장경을 소유한 몇 안 되는 국가의 대열에 들어서게 되었다는 데서 오는 것일 테고, 참괴감은 완간되기까지 걸린 장구한 시간과 지지부진함, 번역 대장경에 드러난 문제점과 새로운 과제에 대한 압박감으로부터 오는 것일 듯하다. 그렇다면 불교계에서는 한글대장경 완간의 의의와 문제점, 그리고 과제에 대해 어떻게 보고 있는가?

우선 그 의의에 대해 2001년 완간 당시 불교계에서는 제불제조가 찬탄할 일이요, 호법선신이 환희할 일이요, 이 시대 사부대중들이 참으로 용약할 일로서 “이 시대의 우리를 부처의 길로 실어다 줄 뗏목”(법전 스님) “나라의 발전, 남북통일, 인류평화에 대한 기여”(녹원 스님 등) “체계적인 불교학 연구를 가능하게 하는 한국 불교학의 토대 구축”(불교신문) 등의 찬사로 높이 평가하였다. 나아가 《대법거다라니경》 등 어려운 내용과 까다로운 문장으로 일본에서도 번역이 유보된 경전들까지 모두 번역하였다는 점을 높이 평가해야 한다(이미령, 동국역경원), 불교학 발전의 밑거름으로서 불교의 대중화와 현대화에 기여하게 되었다(이진영, 동국역경원)는 등 번역 실무에 종사한 전문가들의 자체평가도 있었다. 완간 당시의 감격과 환희가 사라진 지금에도 이러한 평가가 부정될 이유는 없어 보인다.

그럼에도, 대중들이 알아들을 수 있는 말로 법을 전달하라는 부처님의 교시를 기억할 때, 그리고 거듭 새로워져야 하는 번역의 특성을 고려할 때, 번역의 완성은 새로운 출발이 되어야 한다. 그것이 새로운 시대, 새로운 환경에 적응하여 본래의 설법 취지를 되살려야 한다는 책무를 지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한글대장경 완간 회향법회를 하는 당일, 역경의 가장 중요한 주체였던 월운 스님은 번역의 오류를 바로잡을 개역 사업과 전자불전 사업의 추진을 새로운 과제로 제기한 바 있기도 하다. 사실 정부의 재정지원에 크게 의존하며 그 약속된 결과물을 내야 했던 사업의 성격상, 필연적으로 나타날 수밖에 없었던 부실한 번역과 그로 인한 대중의 무관심이라는 문제는 새로 번역하는 것 이상의 어려움을 예고하고 있다.

이러한 문제점에 대해 전문가들의 다양한 문제 제기가 있어 왔다. 우선 번역사업 추진 과정상의 문제에 대해 이미령은 낮은 번역료, 미비된 역경예규, 형식에 그친 교정·검열 작업, 번역자의 불법에 대한 헌신성 부족, 번역 결과물 보급 프로그램의 부재 등과 같이 구체적으로 지적한 바 있다. 또 불교용어의 통일을 위한 노력이 없었던 점, 한문대장경의 원전이라 할 산스끄리뜨어로 불전이 참고되지 않은 점(이평래), 이역본들의 대조 작업이 이루어지지 않은 점(김재성) 등이 지적되기도 하였다.

한편 번역 결과물의 문제에 대해 전문가들은 신도들의 신행활동과 학자들의 학문연구에 얼마나 도움이 되고 있는가(신규탁), 한글대장경을 통해 불교대중화나 불교학 발전이 얼마나 달성되고 있는가(김은중) 등의 질문을 제기하였다. 요컨대 새로운 시대의 대중들에게 널리 읽히기 위해 번역된 한글대장경이 과연 ‘얼마나 읽히고 활용되고 있느냐’를 묻는 동시에 ‘그렇지 못하다’는 대답을 미리 담고 있는 질문으로 이해된다.
그렇다면 과연 어떻게 하면 많이 읽히고 활용되는 한글대장경이 될 수 있을 것인가? 어떻게 하면 한글대장경이 불교대중화를 이끄는 동력이 될 수 있을 것인가? 한글대장경의 목록 체계를 재구성하고, 문장을 현대화하고, 전자불전을 제작하고, 이미 전산화된 고려대장경과 통합대장경 서비스를 제공하고, 나아가 다언어 통합 디지털 불전에 한글대장경을 포함시키는 등의 과제는 모두 이러한 목적을 전제로 하고 있다.

결국 우리에게는 이렇게 완간된 한글대장경의 성과와 한계를 동시에 인정하면서 앞으로 ‘널리 읽히고 활용되는 불경’이라는 대과제를 어떻게 수행할 것인가 하는 숙제가 남아 있다. 그 과정은 적어도 현재까지 거듭 제기된바, 대중성의 부족, 촉박한 일정, 부족한 물적·인적 자원, 미비한 체계성의 문제를 뛰어넘는 진정한 불교적 실천을 바탕으로 한 것이라야 한다.

이 지점에서 새삼 우리는 중국불교의 역경 시스템과 그 실천에 주목할 필요성을 느낀다. 천여 년간 발전을 거듭한 중국의 역경 시스템은 번역 현장에서 나타날 수 있는 제반 문제에 대한 고민과 해결의 총화를 담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따라서 한글대장경을 번역하는 과정과 결과들에서 앞서 살펴본 바와 같은 문제점들이 나타났다면, 그것은 중국에서 똑같이 체험했거나 이미 해결했을 일일 가능성이 크다.

사실 본격적 역경사업이 시작된 직후로부터 중국의 역경 시스템에 대한 주목은 계속되어 왔다. 1963년에 구성된 역경위원회는 번역, 증의, 윤문을 전담하는 실천 조직을 핵심으로 포함하고 있었다. 그것은 중국의 역경 시스템에서 이름과 기능을 그대로 가져온 것이었다. 나아가 이후 역경사업이 구체적으로 진행되는 과정에서나 그 의미를 평가하는 데에서 중국의 역경 시스템은 항상 비교의 대상 혹은 학습의 대상이 되어 왔다. 그렇다면 왜 한글대장경 번역사업은 중국의 역경 시스템에 보이는 전문성, 조직성, 체계성 및 대중성을 갖추지 못하고, 자부심만큼이나 많은 아쉬움을 느끼게 하는 결과물을 내놓을 수밖에 없었는가?

물론 중국의 역경사에서 실질적 기능을 발휘했던 역경 시스템은 오늘날 현실화하기 곤란한 몇 가지 특징을 갖고 있다. 무엇보다도 중국의 역장(譯場)은 절대군주나 권문세족의 전적인 후원으로 운영되는 경우가 많았다. 아니 도안(道安)이 밝힌 바와 같이 ‘군주에게 의지하지 않고는 번역불사를 추진하기 어려웠다(不依國主, 則法事難立)’는 것이 보다 정확한 상황의 묘사라 하겠다. 이에 비해 현대는 어느 한 종교의 사업에 대해 정부의 재원이 집중적으로 투자될 수 없는 상황에 있다. 오히려 동국역경원의 역경사업에 대해 시작(1966년)부터 완간(2001년)에 이르기까지 국비지원이 끊이지 않았다는 사실이 기적에 가깝다. 따라서 국가의 전적인 지원을 기반으로 하는 역경 시스템의 구축과 운용은 이제 거의 불가능하다고 보아야 한다.

이에 비해 교계의 역량이 집중되지 못했다는 문제 제기에 대해서는 교단의 통절한 반성과 새로운 입장 정립이 필요할 것으로 보인다. 역경사업은 조계종 3대 지표의 하나이다. 수치상으로 표현하자면 조계종의 역량 중 3분의 1이 여기에 집중되어야 할 사업인 것이다. 나머지 2대 지표인 도제양성과 포교 역시 역경사업의 진정한 완성과 불가분의 관계에 있다.

따라서 이후 한글대장경의 내용적·형식적 완성도를 높이는 일, 그것을 학문적 담론의 주제로 이끌어가고, 대중화를 통해 불법을 홍포하는 일 등의 사업을 추진하는 데에 교계의 역량과 지원을 집중할 방안을 마련하는 것은 선결적 해결과제가 된다.

이러한 전제하에 중국의 역경 시스템과 그것의 현대적 적용 가능성에 대해 모색해보고자 한다.


2. 중국 역장(譯場)의 분업 시스템

중국에서는 경전 번역이 시작되었던 초기부터 역주가 구술하고[口授], 이를 통역하고[傳言], 받아 적는[筆受] 소박한 분업이 이루어졌다. 통역이 필요 없는 경우도 있었다. 한어에 능통한 삼장이 역주(譯主)일 경우, 구술과 통역을 함께 하는 경우도 있었기 때문이다. 따라서 초기의 경전 번역은 기본적으로 고승이 구술하면 이것을 한어로 받아 적는 간단한 방식을 취했다고 할 수 있다.

이후 국가적 지원을 받게 되면서 체계화된 집체번역 시스템이 구축되고, 다양한 분업의 직책들이 나타나게 된다. 그 내용에 대해서는 문헌에 따라 차이가 보인다. 시대적, 역장별 상황에 따라 직책의 가감이 있었고, 그 수행하는 역할에도 차이가 발생하였기 때문이다. 이에 그 직명과 기능을 종합하여 다시 살펴볼 필요가 있을 것이다.

①역주(譯主)
역장을 주관하며 삼장에 정통한 고승에게 위촉되었다. 초기의 역주들은 번역과 설법을 겸했기 때문에 역장에는 수많은 대중이 참여하였다. 예를 들어 구마라집(鳩摩羅什)의 역장에는 3,000여 명, 담무참(曇無讖)의 역장에는 500여 명, 구나발타라(求那跋陀羅)의 역장에는 700여 명, 보리유지(菩提流志)의 역장에는 1,000여 명의 대중이 운집하여 역경불사에 동참하였다. 그러나 현장과 같은 수당 이후의 역주들은 전국에서 선발된 소수의 정예인원들로 전문 번역단을 구성하고, 그들을 대상으로 번역 구술하는 방식을 취했다. 불필요한 논의를 줄이는 등 전문성과 효율성을 지향했기 때문으로 보인다. 

역주는 한어에 능통한 경우도 있었고, 통역[度語, 傳語]을 필요로 하는 경우도 있었다. 한편 특별한 전공 능력이 역주의 조건으로 요구되기도 하였다. 예를 들어 유식학의 번역이 핵심과제일 경우 반야와 유식에 함께 능통해야 할 것이 요구되었고, 밀교의 경전이 주로 번역된 송 대에는 현교와 밀교에 두루 통해야 한다는 조건이 제시된 일도 있다.

②증범본(證梵本)
불법에 대한 스스로의 깨달음과 학문적 이해에 바탕하여 범어 원본의 설명과 표현에 오류가 없는지 점검하는 역할로서 대부분 서역인이 맡았다.

③독범본(讀梵本)
증범본과 나란히 기록되어 있고, 주로 서역인에게 맡겨졌던 것을 보면 범본을 함께 읽으며 원본에 대한 정확한 이해를 돕는 역할이었던 것으로 이해된다.

④증범의(證梵義)
범어의 의미가 번역을 통해 의미 손실이 일어나지 않는지를 점검하는 역할로서 대부분 서역인이 맡았다.

⑤증범문(證梵文)
증문(證文)이라고도 하며 범어 원전에 오류가 없는지 살피는 역할이다.

⑥증선의(證禪義)
자신의 깨달음과 체험에 기초하여 번역문이 불법의 도리를 오류 없이 전달하고 있는지를 검증하는 역할을 하였다.

⑦증의(證義)
번역된 문장에 대해 교리적으로 점검하고 역주와 토론한다. 이를 위해 주로 번역 문장이 원문의 뜻에 부합하는지, 불법의 이치에 모순되지 않는지를 점검하였다. 증의는 역장에서 빠질 수 없는 인원으로 역주, 윤문과 함께 3대 직책에 해당한다.

⑧증역(證譯)
원본과 번역본에 대한 검증을 겸하여 수행하는 일을 수행하였던 보인다.

⑨도어(度語)
역주의 경전 해석을 한어로 바꾸어 이해할 수 있도록 통역하는 역할이다. 역어(譯語), 전어(傳語)라고도 하며 통역의 역할을 수행하였다. 도어가 있었으므로 한어를 하지 못하는 서역의 삼장도 중국에서 역장을 맡을 수 있었다. 구마라집이나 현장, 의정과 같이 역주 스스로 도어를 겸하는 경우도 있었다. 그래서 의정 등의 역장 기록에는 도어가 보이지 않는다. 마조의(馬祖毅) 등은 도어가 범어의 발음을 한자로 기록하는 역할로서 서자(書字)라고도 한다고 설명했다. 서자는 천식재(天息災)의 역장에서 범문을 한자로 바꾸는 일을 했다고 기록되어 있는데, 경전을 뜻하는 범어 수트람(sutram)을 소달람(素怛覽)으로 바꾸는 방식의 역할을 하였다. 그런데 서자는 천식재가 거행한 역경 의식에 대한 묘사에만 발견되고, 그 밖의 역장에는 그 명칭이나 역할이 보이지 않는다. 도어와 서자를 함께 본 마조의의 설명은 일부를 가지고 전체를 대신한 경우에 해당한다.

⑩필수(筆受)
역주가 한어로 구술하거나, 도어가 옮긴 말을 충실히 받아 적는 역할이다. 구마라집 역장과 같이 수백, 수천의 대중이 운집한 역장에서는 대부분의 대중이 필수의 역할을 하고 있었다고 보는 견해가 많다. 대체로 필수는 철문(綴文)과 그 역할을 겸하는 경우가 많았다. 그래서 필수와 철문을 같은 직책으로 보는 관점도 있다. 그러나 철문은 필수가 기록한 인도식 한문을 문법에 맞게 다시 쓰는 역할이었으므로 다른 직책으로 보아야 한다. 천식재의 역장에서는 필수의 역할이 약간 다른데, 서자(書字)가 음사한 범어를 뜻으로 바꾸는 일을 했다. 수트람(sutram)→소달람(素怛覽)→경(經)에 이르는 번역 프로세스의 마지막 역할을 수행했다는 것이다. 적어도 천식재의 역장에서 필수는 받아 적는 역할이 아니라 스스로 번역하는 역할을 했다는 얘기가 된다.

⑪철문(綴文)
필수가 받아 적은 거친 번역문을 다시 정리하여 자연스러운 한문 문장으로 바꾸는 역할이다. 역경은 범어 원본을 따라가며 번역을 하는 방식을 취했으므로 인도식 어순이 나타날 수밖에 없다. 필수가 받아 적는 문장은 조견오온피자성공견차(照見五蘊彼自性空見此)와 같이 인도어순에 따른 한문이었다. 철문은 이것을 조견오온개공(照見五蘊皆空)과 같이 문법에 맞고 의미가 통하도록 조절하는 역할을 했다.

⑫참역(參譯)
원래 참역은 역경의 일에 동참[同參譯務]한다는 뜻으로 쓰이는 말이다. 정식 직책으로 참역을 임명하여 범어 원본과 번역문의 대조교정을 맡긴 것은 천식재(天息災)의 역장에 대한 기록에서 발견된다.

⑬간정(刊定)
직책으로서 간정은 천식재의 역장에 대한 기록에 보인다. 불필요하게 긴 부분을 잘라내어 구절의 의미를 분명히 드러내는 역할을 하였다. 이렇게 다른 역장에 없는 직책들이 천식재의 역장에 여럿 나타나는 것은 송 대의 역경 방식에 내용적 변화가 있었기 때문으로 이해된다. 즉 역주가 일일이 번역 구술하고 세부사항을 결정하던 방식에서 전체 번역과정을 총괄하는 쪽으로 역할의 변화가 있었지 않았는가 짐작해볼 수 있다. 또한 이 천식재의 역장에 대한 기록이 역경원 개원식에 거행된 역경의식을 묘사한 것이라는 점도 주목해야 한다. 그러니까 간정은 철문과 윤문 등의 과정에서 보편적으로 수행되는 수정 작업을 인물화하여 드러낸 것이 아닌가 이해되는 것이다.

⑭윤문(潤文)
필수가 받아 적고, 철문이 기록한 문장에 대해 원뜻을 잃지 않는 범위에서 수식하고 다듬는 역할을 하였다. 대체로 내외 학문에 두루 통하고 문장이 뛰어난 학자들이 이를 담당하였다. 윤문은 역경의 전체적 분업에서 중요한 3가지 일 중의 하나이다. 이는 북송 대의 역경원이 역경(中堂), 윤문(東序), 증의(西堂)의 삼당 형식으로 건축되었다는 사실을 통해서도 잘 나타나 있다.

⑮범패(梵唄)
범어 경전은 악기의 반주와 함께 노래로 표현될 수 있도록 운율을 갖춘 문장으로 구성되어 있었다. 따라서 범패를 두어 번역본이 낭송하기에 적당한 음률을 가지고 있는지 점검하는 일이 필요했다. 혹은 역경의식을 진행할 때 먼저 범어로 된 범패를 노래하여 몸과 마음가짐을 새롭게 하는 기능을 했다는 기록도 있다.

⑯교감(校勘)
여러 자료와 대조하여 번역문의 오류를 수정하는 역할로서 수(隋) 대에 언종(彦琮)이 그 박학다식함에 기초하여 여러 번역본을 교감하였다는 기록이 남아 있다. 번역된 경전 중에 위작으로 의심되는 것, 결본으로 완전하지 않은 것 등이 있었던 시대였기 때문에 필요한 일이었다고 이해된다. 후대로 갈수록 원본의 확정이 용이해졌으므로 별도의 직책으로서 교감이 설치될 필요가 없었던 것으로 보인다.  

⑰정자(正字)
자학에 밝은 학자가 따로 맡는 경우도 있었고, 역주나 증의가 겸하는 경우도 있었다. 예를 들어 의정의 역장에서는 역주 자신이 철문과 정자를 겸했다는 기록이 자주 보인다. 

⑱감호대사(監護大使)
황제의 명을 받은 대신으로서 역경을 감독하고 위호하는 역할을 하였는데, 승려가 맡는 경우도 있었다. 감호대사는 명목은 감독이었지만 황제를 대신하여 역경에 필요한 제반 조건을 마련해주는 역할을 수행하는 인원이었다고 이해된다. 감역(監譯), 감열(監閱)로도 불렸다.

이 밖에 현장의 역장에는 필수와 별도로 서수(書手)의 직책이 발견된다. 확정된 번역문을 책으로 서사하는 직책이었던 것으로 보인다. 이 외에도 모두 열거하지 못한 직책들이 있을 것으로 보이는데 이 다양한 직책들이 한 역장에 모두 갖추어졌던 경우는 없다. 그렇지만 번역의 과정에 항상 그 일을 하는 누군가는 있었다. 그렇다면 이러한 역경 시스템의 구축과 운용은 현재의 한글대장경 개역에 어떠한 현대적 적용 가능성을 갖고 있는가?


3. 집체성과 대중성의 동시구현을 위한 방안

불경을 번역하는 가장 큰 목적은 그것을 많은 대중이 널리 읽도록 하는 데 있다. 이러한 대중성은 어떻게 구현될 수 있을 것인가? 여기에서 우리는 위에서 살펴본바, 중국 역장의 가장 큰 특징인 집체성과 대중성의 동시구현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구마라집의 소요원(逍遙園) 역장에는 승예(僧叡)와 승조(僧肇) 등 전국의 뛰어난 승려들을 포함한 수백, 수천의 대중들이 운집하여 역경불사에 동참하였다. 이러한 많은 대중의 운집은 비슷한 시기의 역장에 공통적으로 발견되는 특징이기도 하다. 구마라집 등이 불교의 중요 개념은 물론 깨달음의 경계를 이해하는 많은 대중을 거느리고 있었다는 것은 전에 없던 뛰어난 번역을 내놓을 수 있는 조건이 된다. 그것은 구마라집의 뛰어난 불교적 식견이나 언어적 재능과 무관하지 않다. 그러나 우리가 주목할 것은 그 번역의 현장에서 다양한 수준의 대중들과 거듭되는 토론[交辯文旨]이 있었다는 사실이다. 심지어 이 토론식 번역에는 황제 요흥(姚興)이 직접 참여하기도 하였다. 예컨대 《대품반야경》의 번역 현장에서 황제가 축법호(竺法護) 등의 옛 번역본을 들고 새로운 번역과 대조를 하며 구마라집의 번역에 참여했다는 기록이 있다. 그 참여는 이해되지 않는 구절에 대해 질문하고 토론하는 방식을 통해 이루어졌다. 구마라집 등의 번역은 이렇게 다양한 수준의 질문과 토론을 거쳐 모두가 만족하는 수준에 이르렀을 때 문자로 기록하는 방식을 취했다.

이 과정에서 번역문은 거듭 수정되었고, 나아가 대중들로부터 제시된 좋은 번역은 적극 수용되었다. 《묘법연화경》을 번역할 때에 토론을 통해 문구를 확정한 일이 그러한 경우에 해당한다. 이 번역은 이전 번역인 축법호(竺法護)의 《정법화경》을 참고로 하였는데, 〈수결품(授決品)〉의 “천상에서는 세간을 볼 수 있고, 세간에서는 천상을 볼 수 있어서 하늘 나라 사람과 세간 사람이 왕래하고 접촉할 수 있다(天上視世間, 世間得見天上, 天人世人往來交接)”는 번역에 구마라집이 문제를 제기하였다. 이를 토론하는 중에 승예(僧叡)가 “인간과 천상이 서로 접촉하고, 서로 볼 수 있다(人天交接, 兩得相見)”는 문장을 제시하자 이를 기쁘게 수용하였다는 기록이 전한다. 그것은 문장의 함축미를 중시하고, 하늘과 인간을 감응관계로 이해하던 중국의 문화에서 보다 친근하고 깊이 있게 수용될 수 있는 번역이었다고 평가된다.
이처럼 많은 대중을 거느린 역장에서는 집체번역의 과정에서 대중성의 검증이 동시에 진행되었다. 이미 대중성이 검증된 뒤이므로 그 번역문이 이후 많은 대중에게 널리 수용된 것은 당연한 일이다. 그래서 현장이 원전에 충실한 신역(新譯)을 내놓은 뒤에도 구마라집이 번역한 《금강경》 《법화경》 《아미타경》 등의 구역(舊譯) 경전들이 대중들에게 더 널리 읽히는 경전으로 남을 수 있었던 것이다.

그런데 이러한 방식의 번역은 효율적이지 못하다는 한계가 있다. 짧은 시간에 보다 많은 원전을 번역하고자 하는 것은 모든 번역사업이 지향하는 바이다. 이후 현장 등의 역장에서 전문적인 역할분담과 이에 기초한 효율적인 역장 운영방식이 나타나게 된 것도 이 때문이다. 한글대장경의 번역불사 역시 최대한의 효율성을 지향함으로써 현재의 성취를 볼 수 있었다. 그런데 한글대장경이 완간되고 그 번역의 완결성을 갖추는 일이 지상과제가 된 지금 효율성은 이제 그리 중요한 문제가 아닐 수 있다. 아니 꼭 그래야 한다. 효율성은 대중의 배제를 전제조건으로 하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이러한 집체성과 대중성의 동시구현을 위한 현대적 방안으로 어떠한 것이 있을 수 있을까?

1) 한글대장경 독회의 조직·운영을 통한 집체성·대중성의   동시구현
한글대장경이 아무도 돌아보지 않는 거대한 문서 더미가 되지 않기 위해서는 그것이 읽히는 독회 등을 조직하고 운영할 방안이 마련되어야 한다. 다만 그것이 단순히 한글대장경 보급을 위한 것이 되어서는 안 된다. 아예 시작도 할 수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마찬가지로 대중들을 청중으로 앉혀 놓고 이루어지는 산림법회의 형식이 되어서도 안 된다. 핵심은 대중들의 지성을 인정하고 그 참여를 바탕으로 하는 방식으로 이루어져야 한다는 데 있다. 이를 위해 ‘한글대장경(○○○경) 바로 읽기 모임’ 등의 타이틀로 사찰별, 불교단체별, 학회별로 독회를 조직하고 운영될 필요가 있다. 독회는 일정한 수준 이상의 불교적 식견과 언어적 능력(한국어, 한문, 범어, 중국어, 일어 등)을 갖춘 스님이나 학자가 조직과 운영의 핵심이 될 필요가 있다. 물론 독회이므로 해당 경전에 담긴 불법의 도리를 깊이 토론하고 이해하는 일이 우선적 내용이 되어야 할 것이다. 또한 여기에 더해 그 능력에 따라 여타 한국어 번역본과의 대조, 한문 및 범어 원전과의 대조, 기타 외국어 번역본과의 대조를 통해 한글번역본의 문제점과 대체 방안을 제시하는 방식으로 운영되면 좋을 것이다. 이 과정에서 원본 검증, 증의, 윤문의 작업이 부분적으로 수행될 수 있다.

현실적으로 독회는 개별 사찰별로 운영될 수밖에 없겠지만 조직과 운영은 종단 차원에서 주관하거나 독려하는 것이 되어야 하며, 그 의미 있는 결과가 한글대장경의 개역 작업에 적용될 수 있도록 제도적 장치를 마련하는 것도 종단의 몫이다. ‘한글대장경 《○○○경》의 해’와 같이 일 년(혹은 수년)의 핵심주제를 제시해도 될 것이고, 독회의 결과를 두고 전국 규모의 대중법회를 개최할 수도 있다. 또한 토론의 결과는 역경위원회에서 바로 수용하거나, 그것을 모아 학문적 연구와 토론을 거친 뒤 수용하는 것을 전제로 해야 한다. 이를 통해 과정과 결과에서 집체성과 대중성의 동시구현이 가능해질 것이다.

2) 한글대장경 전자불전 사이트를 통한 집체성·대중성 동시구현

동국역경원에서는 한글대장경이 완간된 뒤 바로 전자불전의 제작에 들어가 현재 그 결과를 대중들에게 공개하고 있다. 그런데 이 한글대장경 전자불전의 결과를 보면 해결해야 할 숙제가 더 명확하게 드러나 보인다.

첫째, 문단별 고유번호를 부여하는 일이 시급하다. 현재 전산화된 한글대장경은 출판된 책을 기준으로 ‘[1/ 10002] 쪽’의 방식으로 페이지를 표시하고 있다. 출판된 책을 중심으로 하고, 전자불전을 보조로 하는 상황이라면 그것은 가장 적절하고도 친절한 서비스라 할 수 있다. 그러나 한편으로 그것은 이후 지속적이고 상시적인 개역과 원활한 학문적 활용에 장애가 될 수 있다. 수정본을 내기 전까지는 페이지가 바뀌는 수준의 수정 작업이 반영되기 어려울 것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고려대장경의 고유번호와 연계된 페이지별, 혹은 문단별 고유번호를 부여하여 전자불전 사이트상에서 개역 작업이 상시적으로 진행될 수 있도록 할 필요가 있다. 예컨대 고려대장경의 고유번호에 H(한글)를 붙이는 등의 방식을 생각해볼 수 있겠는데, 이렇게 할 경우 경문 검색의 어려움을 해결하는 일거양득의 효과를 거둘 수도 있다. 현재의 한글대장경은 경문의 검색 작업에 어려움이 있다. 시스템의 문제와 별도로 한문 원전의 해당 구절이 어떠한 용어, 어떠한 문장으로 번역되었는지 알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런데 고려대장경의 고유번호를 통해 바로 유추할 수 있도록 번호가 부여된다면 이를 통해 해당 구절의 검색이 용이해질 것이다.

둘째, 개역에 대한 의견이 즉시 검토되고 수용되는 시스템이 마련되어야 한다. 현재 중화전자불전협회에서 운영하는 CBETA의 경우, 문장의 오류에 대한 문제가 제기되면 그것을 즉시 검토하여 수용 여부를 결정하고 있다. 또한 제기된 문제와 처리상황을 답변으로 공시하며, 원문에도 일정 기간 붉은 글씨로 표기하는 등 그것이 수정되었다는 사실을 분명히 밝히고 있다. 정오가 분명한 한문대장경의 수정 작업과 의견이 다양할 수밖에 없는 한글대장경의 수정 작업이 같을 수는 없을 것이다. 그렇지만 적어도 분명한 오역의 경우, 그에 대한 즉시 수용이 가능하다. 또 그 개역 사실을 공시하고, 의견을 제시한 사람들을 참역자(參譯者)의 명단에 포함시킴으로써 대중들의 적극적인 관심과 참여를 이끌어낼 수 있을 것이다.

셋째, 보다 분명하고 세밀한 역경예규가 제정되고 철저하게 적용될 필요가 있다. 개인의 번역에서 역경예규는 하나의 참고에 불과할 수 있지만 대중의 집체 참여를 전제로 할 경우, 세밀한 역경예규가 마련되어 철저하게 적용될 필요가 있다. 한글대장경 번역을 위한 현재의 역경예규는 지나치게 간략할 뿐만 아니라 그마저 제대로 적용되지 않고 있다. 특히 초기의 번역에는 옛 문투를 그대로 살려놓는 등 현재의 역경예규를 적용하지 않은 부분이 쉽게 발견된다. 결과적으로 1960년대 역경예규와 새 역경예규가 경전에 따라 각기 다르게 적용된 셈이 되었다. 아마도 경전의 번역을 개인의 지적 산물로 보고 번역 당사자의 허락 없이는 고칠 수 없다는 기준이 세워졌기 때문이라 짐작된다. 그렇다면 옛 대장경 결집의 예에 따라 이것을 구역(舊譯)으로 수록하고, 이에 기초하되 새 역경예규를 적용한 신역(新譯)을 함께 수록하는 방식으로 개역을 추진할 수도 있을 것이다.

앞의 몇 항목에서 살펴본바, 전자불전을 중심으로 한 상시적 개역 작업은 예전에 없던 뛰어난 환경을 바탕으로 하고 있다. 적절한 검토위원회의 운영을 전제로 한다면 그것은 위키피디아와 같이 집체지성을 최대한 결집하는 최고의 방법이 될 수 있다. 이를 위해 무엇보다도 출판된 책을 중심으로 하는 생각의 틀에서 벗어날 필요가 있을 것이다.

4. 집체성과 전문성의 동시구현을 위한 방안

역경사업의 제1특징이 집체성이라는 점에서는 차이가 없지만, 수당(隋唐)의 통일왕조에 들어서면서 역장의 인원 구성과 운영에 뚜렷한 변화가 일어난다. 그 이전에는 구마라집의 역장과 같이 수백에서 수천에 이르는 대중들이 운집하여 역경불사에 참여하였다. 수많은 대중으로 구성된 역장은 앞에서 살펴본 바와 같이 집체의 지혜를 모으고 대중성을 검증하는 현장이 될 수 있었다.

그런데 수당 이후가 되면 그 인원이 20~30명을 넘지 않는 수준으로 소수화된다. 예컨대 현장이 장안 홍복사(弘福寺)에 처음 역장을 차렸을 때, 증의(12인), 철문(9인), 자학(1인), 범문(1인)에 약간 인원의 필수와 서수(書手) 등 전체 30명이 안 되는 인원으로 번역단이 조직되었다. 그것은 역경사업이 쇠퇴기에 들어섰기 때문에 일어난 일도 아니었다. 오히려 수당 대는 역경의 최고 전성기에 해당한다. 그렇다면 현장의 역장은 구마라집의 그것과 어떻게 다른가?

현장의 번역단은 출범한 지 한 달 만에 바로 번역에 착수하여 경이적인 속도로 번역물을 내놓기 시작한다. 《육문경(六門經)》의 번역을 시작 당일에 완료하고, 다시 14일 만에 《불지경(佛地經)》의 번역을 완료하였으며, 이후 5개월이 안 되는 시간에 《보살장경(菩薩藏經)》과 《성교현양론(顯揚聖教論)》의 번역을 완료한다. 이러한 속도로 번역되었기 때문에 현장의 역장은 양적으로 공전절후의 압도적인 성과를 낼 수 있었다.

그렇다면 그것의 질적 수준은 어떻게 담보될 수 있었는가. 거기에 범어와 한어에 두루 정통한 현장의 개인적 역량이 크게 작용하였음은 물론이다. 현장의 번역 구술이 별다른 조정 작업 없이 바로 문장으로 기록되는 경우가 많았기 때문이다. 구마라집이 아무리 한어에 뛰어났다 해도 현장처럼 구술번역이 바로 문자화되기는 어려운 일이었다. 한어가 모국어가 아니었기 때문이다.

다른 한편, 현장의 역장에 참여한 인원들이 이미 전국적으로 대덕(大德)으로 인정받는 교학의 권위자들이었다는 점도 주목해야 한다. 이들 소수의 정예인원은 번역의 높은 질적 수준을 유지하는 데 큰 역할을 하였다.

가장 결정적인 것은 증의와 철문의 두 분과 사이에서 일어난 치열한 의견교환의 작업이었다고 이해된다. 그것은 철문·윤문 분과에서 완성된 문장을 넘기면 증의 분과에서 그 교리적 정확성을 검증하고 다시 넘기기를 반복하는 방식으로 운영되었다. 송 대의 역경원이 삼당(三堂: 역주, 윤문, 증의)을 중심으로 하여 윤문과 증의 사이에 번역문이 오가기를 반복하는 방식으로 운영된 것은 현장 역장의 예를 본받은 것이었다고 한다. 요컨대 현장의 역장은 집체성과 전문성을 동시에 구현하는 모델을 창안하였던 것이다. 그렇다면 현재적 상황에서 집체성과 전문성의 동시구현은 어떻게 모색될 수 있을 것인가?
 
1) 대장경 연구소의 조직과 집체성·전문성의 동시구현

한국 조계종은 선종을 중심으로 한 통불교를 지향한다. 그것은 전체 불교사의 제반 흐름과 성취를 학습과 실천주제로 삼는 포괄성을 특징으로 하고 있다. 이 포괄성은 무정체성으로 바꾸어 표현할 수도 있는데 교학적으로 볼 때 일정한 문제점을 낳는 원인이 되고 있다. 무엇보다도 화엄종사, 법화대사 등으로 호칭될 만한 교학 전문가가 나타나지 않는 것은 이러한 조계종의 통불교 지향과 무관하지 않다.

번역에서도 마찬가지이다. 한문, 범어 등에 능통하다 하여 제반 경전의 번역에 두루 종사할 수는 없는 일이다. 그것은 번역 당사자에게도 도움이 되지 않고, 번역의 질에도 심각한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일이다. 번역은 말씀을 통해 성인의 마음과 만나는 일이며, 나아가 대중들에게 그 일이 재현될 수 있도록 말씀을 전하는 두 가지 일을 포함한다. 스스로 부처를 만나는 일 없이 타인을 만나게 할 수 없다. 그래서 도안(道安)은 역경의 3가지 어려움[三不易]을 토로한 바 있고, 언종(彦琮)은 번역자에게 요구되는 8가지 조건[八備]을 제시한 바 있다. 그 어려움은 부처님 설법 당시의 시대적·상황적 맥락을 모르면서 번역해야 한다는 사실, 범인의 생각으로 성인의 마음을 추측하면서 그것을 옮겨야 한다는 사실, 그리고 500의 대아라한과 교학의 천재였던 아난의 공동작업으로 이루어졌던 결집의 불사와 거리가 먼 현재 번역자의 수준에 대한 인식에서 비롯되는 것이다. 언종이 밝힌 여덟 가지 조건[八備]이라는 것도 결국은 언어 능력뿐만 아니라 교학적 전문성과 불교적 실천 의지를 겸비해야 한다는 것을 강조한 것이다.

그렇다고 도안과 언종이 제시한 조건을 모두 갖춘 삼장이 나타나기를 기다릴 필요는 없다. 개별 경전이나 학파별 교리에 밝은 전공자들이 얼마든지 있기 때문이다. 문제는 이들 전공자의 능력을 어떻게 조직하여 한글대장경의 완성에 공헌하도록 할 것인가에 있다. 이와 관련하여 우선 전공별 불교학자들이 모인 연구회의 조직을 상정해볼 수 있고, 대학 혹은 사찰별로 연구소의 설치를 구상해볼 수 있다. 그중에서도 8대 총림을 비롯한 각 사찰의 강원에 ‘대장경(○○경) 연구소’를 설치하는 방안이 가장 현실성 있는 대안으로 떠오른다. 그것은 각 사찰의 지향에 따라 ‘반야학 연구소’ ‘화엄학 연구소’ 등으로 범위를 넓게 설정할 수도 있고, ‘금강경 연구소’ ‘법화경 연구소’ 등으로 단일 경전으로 특화할 수도 있다.

이 연구소의 주요 사업은 그 해당하는 한글경전의 번역을 검토하는 것이 되어야 할 것이다. 특히 연구원의 전문성에 따라 원본(범어, 한역본)의 대조, 한글 이역본의 대조, 외국어본의 대조 등이 함께 이루어질 필요가 있다.

연구소는 승속의 구분이 없이 연구원들을 채용해야 할 것이며 이를 통해 교학적으로 뛰어난 도제 양성이라는 목적을 부수적으로 성취할 수 있을 것이다. 연구원들이 이러한 경전 연구와 교정 작업을 통해 학문 수준을 높여감은 물론 불교학의 발전에 실질적인 역할을 할 수 있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현재 동국대학교의 양대 캠퍼스를 비롯하여 다양한 교육기관에서 배출되는 불교학 전공자들은 승속을 떠나 잠재적인 도제에 해당한다. 국내외에서 박사학위를 받은 뛰어난 학자들만 해도 양적으로 이미 차고 넘치는 상황이다. 연구소는 이들을 수용하여 안정된 환경에서 연구를 수행하도록 함으로써 넓은 의미에서 도제양성이라는 목표를 달성할 수 있을 것이며, 현실적으로 대장경 번역의 완성을 위한 사업을 진행해나갈 수 있을 것이다. 이러한 측면에서 보자면 조계종의 통불교적 지향은 이미 갖추어진 현실적 역량과 다양한 가능성을 끌어안는 우량한 토양이 될 수도 있다.

2) 위원회의 조직과 전문성·집체성의 구현

현재 우리는 역장을 이끄는 삼장법사가 없는 상황에서 역경사업을 진행하고 있다. 그 대신 불교학의 다양한 전공자들을 활용할 수 있는 조건을 가지고 있다. 위원회의 조직이 그것이다. 중국의 역장에서 전국의 대덕들을 망라하여 증의와 윤문의 분과를 맡겼던 일은 오늘날에도 얼마든지 실현 가능하다는 얘기가 되는 것이다. 물론 한글대장경을 완간하는 과정 중에 이런저런 명목의 위원회가 조직된 바 있고, 또 일정한 역할을 수행한 경우도 없지 않았다. 그러나 결국 대부분의 경전이 1인 번역이 되고 말았기 때문에 현재의 새로운 모색이 필요하게 된 것이다. 그렇다면 대장경 역경(개역) 위원회는 어떻게 조직되고 운영되어야 할 것인가?  

첫째, 위원회는 해당 경전의 전문 역량을 결집한 조직이 되어야 한다. 

둘째, 위원회의 역경 작업은 현재의 한글대장경을 저본으로 하는 것이라야 한다. 개인적인 차원의 번역은 얼마든지 새로 나와도 되지만 적어도 종단 차원의 번역은 완간된 한글대장경을 저본으로 하여 그 완성을 지향하는 것이 되어야 한다.

셋째, 번역을 위한 번역 혹은 개역을 위한 개역이 되어서는 안 된다. 그것은 시작과 과정 및 결과의 도출에서 집체성과 전문성은 물론 대중성을 함께 구현하는 일련의 불사가 되어야 한다. 

넷째, 위원회는 각 전문 연구소의 운영과 연계된 것인 동시에, 교계와 학계의 화제를 생산하는 학술발표회나 공청회를 통해 대중성을 확보할 수 있어야 한다.

이렇게 조건을 꼽으면서 보니 2007년에 조직되어 운영된 ‘금강경편찬실무위원회’는 하나의 성공적인 모델이 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이 실무위원회는 조계종 불학연구소 산하에 조직되어 종단 차원의 지원, 치밀한 교감, 다양한 원본(한문 이역본, 범본)의 참조, 거듭된 윤문과 검증의 절차를 거쳐 2년 만에 《조계종 표준 금강경》을 편찬해냈다.

편찬실무위원회는 연관 스님(전 화엄학림 강사)을 위원장으로 각묵 스님(화엄학림 강사), 무애 스님(송광사 강사), 송찬우 교수(중앙승가대), 김호성 교수(동국대), 김호귀 교수(동국대) 등으로 구성되었다. 이들은 《금강경》은 물론 각기 빨리어, 반야사상, 한학, 대승불교, 선학의 영역에서 이미 정평이 난 전문가들이었다. 위원회는 2년여의 기간 동안 21차에 걸쳐 편찬실무회의, 워크숍, 학술세미나, 공청회 등을 거쳐 상호 간의 의견을 충분히 교환함은 물론 각계의 의견을 널리 청취하였다. 그 결과물 역시 현재 가장 널리 읽히는 경전의 하나로 자리 잡은 것으로 보인다. 이 편찬위원회는 역경 시스템의 현대적 적용이라는 측면에서 전에 없던 성과를 이루었음에 틀림없다. 따라서 ‘역경의 전통과 정신을 계승하였다’는 자체 평가 역시 크게 이의를 제기할 일이 없어 보인다.

다만 이와 관련하여 일련의 질문이 제기될 수 있다. 우선 이 《조계종 표준 금강경》은 조계종의 사업으로 완간된 한글대장경의 《금강경》과 어떤 관계에 있는가? 편찬 원칙을 살펴보면 기존의 한글대장경을 참고하거나 저본으로 한다는 조항이 발견되지 않는다. 요컨대 현재의 한글대장경은 다양한 한글 번역본의 한 종류로 취급된 것이다. 그것은 조계종 스스로 자기를 부정한 일일 수 있으며, 역량의 낭비일 수도 있다.
물론 완전히 새로 번역할 수밖에 없다는 상황 인식이 있었을 수도 있다. 그렇다면 이 《조계종 표준 금강경》은 이후 어떻게 한글대장경에 포함될 것인가 하는 질문이 다시 제기될 수 있다. 종단적 차원에서 편찬된 신역에 해당하기 때문이다. 종단 차원의 번역이라면 개역이 하나의 원칙이 되어야 하겠지만, 만약 완전한 신역이라면 한글대장경에 결집하는 방안이 강구되어야 할 것으로 보인다.

나아가 뛰어난 학문적 관점이 적용된 개인의 번역서도 동의를 받거나 판권이 종료되는 시점을 기해 대장경에 포함시키는 일도 고려해볼 필요가 있다. 한글대장경 전자불전은 이후 출판된 서적 이상의 영향력을 발휘하게 될 것이다. 이러한 지속적인 결집 작업이 있다면 한글대장경 전자불전은 한국의 대중들이나 학자들이 가장 즐겨 찾는 불법 홍포의 장이 될 수 있을 것이다.

5. 나가는 말

부처님의 가르침은 ‘처음도 좋고 중간도 좋고 끝도 좋아야 하며, 도리에도 맞고 잘 이해되는 언어로 펼쳐져야 한다’. 그것은 끊임없는 자기 혁신이 있을 때 가능한 일이다. 부처님의 가르침을 전달하기 위한 역경사업 또한 개인적·종단적 차원에서 자기 혁신을 거듭할 때 완성될 수 있다.

특히 이후의 역경사업을 추진하는 데에서 현재까지 드러난 문제점들을 극복하고, 집체성과 대중성, 집체성과 전문성을 동시에 구현하기 위해서는 가장 우선적으로 종단 차원의 제도적 장치와 실천 의지가 확보되어야 한다. 이를 통해 역경 과정 자체가 도제를 양성하고, 개인적 눈뜸의 계기가 되며, 한량없는 대중을 불법으로 이끌어 들이는 한국불교의 성대한 불사가 될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그것이야말로 한글대장경 완성을 향한 영원한 모색의 주제가 되어야 할 것이다. ■

 

강경구 / 동의대 중문과·불교문화학과 교수. 부산대 중문학과, 영남대 대학원 중문학과 졸업(석사·박사). 동의대학교 인문대 학장 역임. 주요 논문으로 〈선문정로 문장인용의 특징에 관한 고찰〉 〈6종 漢譯 《金剛經》에 나타난 의미의 전달과 의미의 생성〉 〈《西游記》의 花果山에 대한 불교적 독해〉 등이 있고 저서로 《두 선사와 함께 읽은 신심명》 등이 있다. 현재 대한중국학회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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