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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지금 경전 번역을 말해야 하는가 / 석길암
특집 | 불교경전의 번역과 유통
[65호] 2016년 03월 01일 (화) 석길암 huayen@naver.com

1. 들어가는 말

경전의 번역은 왜 중요할까? 또 나아가서 경전의 번역은 불교의 역사에서 어떠한 의미를 지니는 것일까? 본 글은 이 두 가지에 대한 필자 나름의 해명을 시도한 것이다.
하지만 처음부터 난관에 부딪혔다는 것을 실토해야겠다. 중국불교를 말하면서 불전 번역의 사례를 다루고, 불전 번역과 그에 따른 후속 작업들이 역사와 문화적으로 어떠한 파급효과를 초래했는지 하는 부분은 몰라도 ‘왜 번역되어야 하는가’ 그리고 ‘번역 자체는 불교의 역사에서 어떠한 의미를 지니는가’ 하는 점에 대한 고민은 별로 해보지 않았다는 생각이 번뜻 들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본 글의 첫 번째 단락에서는 ‘왜 번역해야 하는가’에 대한 문제를 전법이라는 부분을 초점으로 삼아 다루었다. 동의하지 않는 분들도 있겠지만, 번역의 가장 기본적인 목적이 무엇일까 하는 고민에 대한 나름의 답변이기도 하다.
본 글의 나머지 단락에서 다룬 것은 불교의 역사, 특히 중국의 역사에서 역경이 어떠한 역할을 했으며, 역경의 과정에서 보이는 의미소들을 어떻게 읽어야 할 것인가 하는 점이다. 여기에서는 중국의 역경 시스템과 관련한 문제에 대해서는 거의 언급하지 않았다. 별도의 주제로 다루어질 예정이기도 하거니와 오히려 중국불교에서의 역경을 어떠한 측면에서 바라볼 것인가 하는 문제, 그리고 역경으로부터 비롯된 문화적 의미소를 어떻게 바라보고 현대의 불전 번역 작업에 반영해야 할 것인가 하는 점이 전법이라는 문제와 관련되어 주된 고민으로 다가왔기 때문이다.
이상의 점을 염두에 두고서 불전 번역의 역사적 의미와 함께 그러한 역사에서 우리가 고민해야 할 것이 무엇인지 제시하는 것을 이 글의 목적으로 삼는다. 그리고 동아시아불교를 주된 연구대상으로 삼고 있는 필자의 한계 때문에 주로 한문불전의 번역과 그 역사적 영향을 중심으로 서술하는 점에 대해서는 미리 양해를 구한다.


2. 전법(傳法)으로서 역경(譯經)
 
지역에서 발원하여 세계적으로 전파된 종교가 비단 불교만은 아니다. 하지만 역사 속에서 성전의 번역에 불교만큼 노력을 기울였던 종교를 발견하기는 쉽지 않다고 단언할 수 있다. 불교의 전파 과정에서 가장 중요하게 나타나는 과정 중 하나가 바로 불전의 번역 작업이었다는 것이 이러한 측면을 잘 보여준다. 이것은 여타의 세계화된 다른 종교들과 비교할 때 확연하게 드러나는 불교만의 특징적인 역사 현상이라고도 말할 수 있다. 그럼 불교라는 집단은 왜 그렇게 불전의 번역에 많은 힘을 기울였던 것일까? 반면에 다른 종교에서는 왜 불교와 같은 대규모의 번역사업이 행해지지 않았던 것일까?
이 같은 이유의 배경으로 선뜻 말해지는 것 중의 하나는, 여타의 종교가 성전언어와 문자에 대해서 엄정한 신성성을 인정하는 전통을 가지고 있었던 것과 달리 불교는 그렇지 않았다는 점이다. 그리스도교와 유대교 그리고 이슬람교의 3대 유일신 종교는 물론이고, 힌두교의 경우에도 그들의 성전언어는 신성성을 지닌 것으로 간주한다. 세속과는 구분되는 진리성을 담지한 언어로서 그 성전언어의 절대성이 강조되는 것이 일반적이었기 때문에, 그것을 세속의 언어로 번역하는 행위는 불경스러운 행위로 간주되는 것이 일반적이었다고 생각된다.
반면 불교에서는 성전언어의 절대성을 옹호하는 것과 같은 시각은 전통적으로 거부되었다. 붓다의 가르침을 특정 언어에 의해서만 수용할 수 있다는 식의 생각은, 이미 붓다의 활동 당시부터 거부된 것이나 마찬가지였기 때문이다. 붓다가 자신의 가르침을 전파하는 데에서 고민한 것은 자신의 가르침을 상대방이 이해할 수 있는가 하는 점이었다. 붓다가 깨달음을 얻은 직후 설법을 망설였다는 점은 상대방이 이해하고 받아들일 수 있는가에 대한 고민에서 비롯된 것이었고, 전법선언의 핵심 역시 자신의 가르침을 얼마나 상대방에게 잘 전달할 수 있을 것인가에 초점을 두고 있다.
전법선언은 많은 사람의 이익과 안락을 위해서라는 전제 아래, “또 비구들이여, 너희가 만약 다른 지방이나 마을에 도착하면 많은 사람을 위하여 그들을 가엾게 여기는 마음을 내어서 그들을 거두어들이기 위해 법을 설하되, 처음도 중간도 끝도 훌륭하고, 그 뜻이 뛰어나고 완전하여서 모자람이 없게 하여라.”고 설하고 있다. 이 전법선언의 초점 역시 ‘상대방의 이익과 안락을 위해서’ ‘그들이 알아들을 수 있도록’ ‘처음도 중간도 끝도 훌륭한’ ‘그 가르침을 [전함에 있어] 부족함이 없도록 하는 것’에 있다. 여기에는 소통과 전달의 중요성이 강조되어 있지, 특정 언어를 강조한다든가 하는 사고방식은 전혀 담겨 있지 않다.
곧 상대방이 알아들을 수 없는 언어로 가르침을 전한다는 것은 붓다에게 아예 고려사항이 되지 않았던 것이다. 때문에 이미 붓다의 활동 당시부터 붓다의 가르침은 지역의 사람들이 알아들을 수 있는 그들의 언어로 설해져야 한다는 것이 당연시되었다고도 볼 수 있다. 알아들을 수 없는 말, 곧 세속의 언어가 아닌 진리만을 위한 별도의 언어로 가르침을 전한다는 생각은 아예 처음부터 도외시되었던 것이다.
이처럼 불교교단 내에는 초기부터 언어를 신성시하는 개념이 존재하지 않았다. 따라서 불교가 인도 내부는 물론 인도 세계를 넘어 다른 세계로 전파되는 과정에서 그 지역의 언어로 번역되어 전해지는 것에 관한 저항감은 미약하였다고 생각된다. 오히려 전법의 과정에서 전파되는 그 지역의 언어로 붓다의 가르침이 설해질 수 있도록 하는 것이 당연시되고 장려되었다고 보는 편이 더 적절할 것 같다.
중국의 사례에 한정해 보았을 때, 불교의 전법승은 동시에 역경승이기도 했던 것으로 보인다. 동아시아 불교사의 초기는 물론 전성기에 이름을 남긴 인도와 서역으로부터 온 전법승 대부분이 역경승으로서 위상을 가지고 있는 것에서도 그러한 점은 분명하게 드러난다. 달리 말하면, 불교가 발원한 인도 세계의 바깥에 불교가 전해졌을 때, 전법은 역경으로 표상되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만큼 불전의 번역은 불교의 전파 과정에서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고 말할 수 있다.
그리고 그것을 가능하게 했던 것은 언어와 문자에 대한 불교의 관대하고도 자유로운 태도 때문이었다고 생각된다. 적어도 불교는 언어 혹은 문자에 대해 그것을 신성시하고 절대화하기보다는 언어와 문자를 가르침을 전달하는 수단 이상으로 여기지 않는 입장이었다고 보인다. 불교 전통에서는 언어가 진리에 이르게 하는 수단으로서 기능한다는 점을 인정하지만, 동시에 언어 그 자체로서 진리성을 담지한다는 것은 인정하지 않는 것이 일반적이다.
그리고 이러한 언어와 문자에 대한 불교의 태도가 불교가 전파되는 지역에서 지역의 언어로 불전을 번역하는 데에 거부감을 느끼지 않게 하는 원인의 하나로 작용했을 것으로 생각된다. 불전을 지역 언어로 번역하는 것에 대한 거부감보다는, 오히려 어떻게 하면 불전 특유의 개념들을 그러한 개념이 없는 지역 언어로 잘 번역해낼 수 있는가, 그리고 지역 언어가 가지고 있는 어떠한 특징에 의해서 그러한 진리성을 좀 더 쉽게 드러낼 수 있을 것인가 하는 점에 초점이 맞추어졌던 것이 불전 번역의 역사에서 주된 고민이었다고도 말할 수 있을 것이다.
그렇다고 해서 본래의 불전 언어에 대한 관심이 소홀했던 것은 아니었다. 오히려 경전의 번역사업이라는 특성상 본래의 언어에서 어떻게 표현되었는가 하는 점 역시 중요한 관심의 대상이었다. 불전의 한역(漢譯) 과정에서 증범(證梵)은 한문으로 번역된 불전의 내용을 범본에 맞추어서 검증하는 역할을 말하는데, 여기에는 범어 문장상의 의미와 내용상의 의미에 대한 검증이 모두 포함된다. 다만 이것은 경전이 설하고 있는 본래의 의미를 충실히 드러내기 위한 작업으로, 그것이 원전어 혹은 원전 텍스트의 절대화로 이어졌던 것은 아니라고 생각된다.
불전이 문자로 기록되기 시작한 이후, 이미 대단히 이른 시기에 불전은 인도의 다양한 지방어로 전해졌고, 그 내용이 기록되면서 다양한 루트를 통해 각종의 언어로 기록된 경전이 중국으로 전해졌을 것으로 추정된다고 한다. 이 점은 중국불교 최초기의 번역된 경전에만 해당하지 않는다. 적어도 4~5세기에 이르기까지도 한역불전의 원전이 된 불전의 언어와 문자는 단일한 것이 아니었다고 추정되는데, 한역불전의 원전에 해당하는 언어와 문자의 다양성 나아가 지역성을 보여주는 사례라고 생각된다.
이것은 이미 중국에 전해지기 이전의 인도불교 역시 넓은 범주의 인도 각 지역의 언어로 설해지고 있었다는 의미로 읽을 수 있을 것이다. 이 같은 점에서 또 다른 의미의 역경을 고려할 수 있으며, 불전언어 혹은 문자의 지역화가 광의의 의미에서 전법 곧 가르침의 전파와 깊이 연관되어 있음을 보여주는 것으로 생각할 수 있을 것이다.


3. 중국의 역경사(譯經史)는 사유체계의 전이과정

여기에서는 번역의 당사자 곧 흔히 역주(譯主)라고 불리는 이들이 역경장에서 당면했던 문제, 그리고 역경을 매개로 하는 사유체계의 전이 문제에 대해서 주로 언급하고자 한다.
현대인들에게 이질적이고 다양한 문화의 존재, 그리고 그로부터 연원이 되는 전혀 다른 사고방식의 존재는 상식에 속한다. 하지만 그것을 상식으로 받아들이는 오늘날에조차도 다른 문화권의 문화적 가치, 관습적 가치를 인정한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처음 불교가 전해졌을 때, 불교는 중국인들에게 서쪽 변방의 이역 오랑캐들이 신앙하는 낯선 풍속 중의 하나에 지나지 않았다. 
그런 불교가 오랑캐의 생소하기만 신앙에서 관심의 대상으로 변하는 데는 적지 않은 시간이 필요했다. 그 생소한 신앙을 관심의 대상으로 변화시킨 것이 바로 중국 초기 불교사의 역경작업들이었다. 흔히 고역(古譯) 시대라고 불리는 시기의 역경이 맡은 주요한 역할이 그것이었다. 당시의 중국인들에게 전혀 생소한 사유체계의 존재를 알리는 것, 그리고 그 이질적인 중국의 전통적 사유체계에 빗대어 불교적 사유체계의 모양새를 조금이라도 많이 전달하는 데 초점을 두었던 것이 바로 이 고역 시대였다.
이 시대에 불전을 번역한 이들은 서역 혹은 인도 출신의 불교인들로 중국에 와서 중국어를 익힌 이들이 대부분이었다. 그들의 활동은, 그리고 그들의 경전 번역 결과는 중국 사회 내에 부분적으로 신앙 집단을 만들어냈고, 또 불교의 사유체계에 대한 식자들의 관심을 이끌어냈다. 물론 전면적인 관심은 아니었다. 자신들의 전통적 사유체계에 익숙해 있는 중국인들이 쉽게 수용하기에는 너무나 이질적인 것이었고, 또 중국적 토양에 부합하지 않는 측면 역시 많았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홍명집》에는 다음과 같은 기록이 있다.

이들도 진(晉)의 백성이다. 그 재주와 지혜를 논하더라도 또한 보통사람이다. 그러나 복식을 빙자하여 법도를 무시하고, 이민족의 습속에 따른 오만한 행동으로 저항하고, 만승(萬乘, 황제)의 앞에서 몸을 곧게 세운다면, 이것은 내가 인정할 수 없는 것이다.

동진 시대에 승려의 군주에 대한 예경 여부를 둘러싼 논쟁 과정에서 상서령이었던 하충(何充, 292~346)이 승려도 군주에게 예경해야 한다는 취지에서 올린 상소의 일부분이다. 중국인들의 전통적 가치관과 불교의 가치관이 충돌하는 모습을 보여주는 부분이기도 하다. 단적인 예이기는 하지만, 불교적 토양과 중국적 토양의 차이가 드러난다. 그리고 이 같은 충돌이 사회문제로 등장했다는 것은 이미 이때 그만큼 불교에 대한 정보가 중국 사회에도 인지되었다는 의미이다.
번역을 기준으로 말한다면, 인도불교가 중국어로 직역되었던 것이고, 그 직역된 불교를 수용할 준비도 의사도 중국 측에는 없었던 셈이라고도 볼 수 있겠다. 우리 근대 초기에 번역소설이 아니라 번안소설이 유행했었는데, 이질적인 문화와 풍토에서는 번역소설을 받아들이기 쉽지 않았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수용자가 받아들이기에는 낯설고 난감한 풍경일 수밖에 없는 사태인 것이고, 여기에 고역 시대 역경자들의 고민의 한 지점이 존재할 것이다. 전법승, 다시 말하면 초기의 불교 전파자에게 그러한 인문적·자연적 이질성은 불교를 전파하는 데 심각한 장애물이었을 것이다. 이것은 초기의 역경자들에게도 동일하게 적용된다. 불교적 가치체계를 전하되, 중국인들이 수용하는 데 반발이 없어야 한다. 이것은 역경자들에게 적지 않은 고민을 안겨준 문제였을 것이다.
중국인들의 불교에 대한 신앙적인 그리고 학문적인 관심이 큰 폭으로 증가한 것은 후한 말부터 동진 초기에 이르는 시기였다. 왕조의 혼란과 이민족의 중원 진출 등, 전통질서가 무너지면서 불교가 새롭게 관심의 대상으로 주목받기 시작했다. 당연히 관심의 대상이 될 만큼 불교에 대한 소개가 많이 이루어져 있었던 것 역시 이유의 하나로 작용했을 것이다. 《고승전》 〈석도안전〉에는 다음과 같이 도안(道安, 314~385)의 업적을 평하고 있다.

과거로부터 불경을 번역한 지는 오래되었다. 그러나 예전의 번역이 때로 틀린 것이 있기에 깊은 뜻이 드러나지 않고 숨어있어서 아직 두루 통하지 못하였다. ……도안은 경전을 읽으면서 궁구하여 심원한 경지에 이르렀다. 그가 주석한 것은 반야(般若)·도행(道行)·밀적(密迹)·안반(安般)의 여러 경전인데, 모두 문장을 살피고 문구를 비교하여 그 뜻을 드러내어 의심나는 곳을 분석하고 훤하게 풀었다. 모두 22권이었다. 서문이 깊고 풍부해서 깊은 뜻을 잘 드러내었는데, 앞뒤의 조리가 일관되며 문리가 통하였다. 경전의 내용이 극명해진 것은 도안으로부터 비롯된 것이다.

혜교의 이 같은 평가는 중국에서 불교에 대한 본격적인 이해의 시작이 도안에서 비롯되었다는 의식을 반영한 것으로 생각된다. 불교가 전해진 지 400년에 가까운 시간이 지나고, 불경이 번역되기 시작한 시점으로부터 다시 200여 년에 가까운 시간이 흐르고 난 뒤에야 비로소 불교에 대한 제대로 된 이해가 시작되었다는 것이다. 이미 몇몇 경전은 여러 차례 중역(重譯)된 상태였고, 격의(格義)라는 방식을 통해 중국의 전통적 사유를 활용하여 불교를 이해하려는 노력도 반복되고 있는 시대였다. 그만큼 불교와 불교가 발원한 천축이라는 사회에 대한 정보가 축적된 결과이기도 했을 것이다.
구마라집(鳩摩羅什, 344~409?)은 그런 시대를 배경으로 등장한 역경승이다. 한자문화권의 불교인들에게 가장 많이 알려진 역경승 두 사람을 꼽으라고 한다면, 아무래도 구마라집과 현장(玄奘, 602~664)이 될 것이다. 중국불교에서 역경사를 구분할 때, 구마라집은 구역(舊譯) 시대를 그리고 현장은 신역(新譯) 시대를 대표하는 역경승으로 일컬어진다. 역경의 경향에서도 두 사람은 뚜렷하게 구분되는 경향성을 가진 것으로 평가된다. 단언해서 말하기는 곤란하지만, 대체로 현장의 번역은 정밀한 것으로 유명하고, 구마라집의 번역은 화려하고 유창하지만 상대적으로 의역과 수정한 부분이 많은 것으로 평가된다.
화려하고 유창하며 잘 읽히는 의역, 그러면서 번잡한 것은 간명하게 줄여서 번역하되 뜻을 드러내는 데 치중한다. 이것이 구마라집의 번역 태도였다. 오늘날까지도 독송되는 것은 현장의 정밀한 번역이 아니라 구마라집의 유려한 번역이다. 원전에 충실하다는 점으로 말하자면, 현장의 번역이 훨씬 더 탁월하다고 할 수도 있다. 하지만 번역 자체가 전법을 전제로 하는 것이었음을 고려하면, 역시 시대에 대한 대응이라고 말해야 더 적절할 것이다. 번역 작업에 치중해야 하는 초점에서 구마라집과 현장의 시대는 전혀 달랐던 것이고, 거기에 우열이 존재한다고 말하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중국불교의 역경사 다시 말하면, 불전의 한역사(漢譯史)는 후한 시대부터 송 대에 이르는 1천 년에 가까운 장시간에 걸쳐서 진행된 것이었다. 두 역경승이 불전의 한역에서 차지하는 분량과 위치가 중요하다는 것은 부정할 수 없다. 하지만 근본적으로는 두 역경승 모두 불전 한역의 역사, 바꾸어 말한다면, 중국인들의 불교 이해의 누적된 역사를 반영한다는 점 역시 부정할 수 없다. 곧 두 역경승이 가진 개인적인 역량 역시 간과할 수 없기는 하지만, 중국인들의 불교 이해가 누적되고, 그 누적된 성과 위에서 두 승려의 역경 사업이 이루어졌다는 사실을 고려할 때, 그들의 역경 사업은 그 자체가 당시 중국불교의 총체적 역량을 반영한 결과물이라는 점을 잊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불교사에 기록된 역경사업은 하나하나가 그 자체로 당시 불교계가 역사적으로 축적해온 역량을 대변하는 것이었고, 동시에 당대의 요구를 반영하는 번역작업이기도 했다는 점을 고려하지 않는 평가는 근시안적일 수밖에 없을 것이다.
역경이라는 누적된 역사적 경험에서 세워진 역경의 원칙들, 그리고 역경의 과정에서 선택되는 번역어들은 일조일석에 얻어진 것이 아니었다. 그것들은 중국인들이 불교를 이해한 정도를 반영한 결과물이었다. 그리고 이해된 만큼 불교는 중국인들에게 그리고 중국 사회에 받아들여졌을 것이다. 역경장이 단순히 불전의 번역이라는 하나의 용도로서가 아니라 동시에 불교의 교학을 연구하는 기관으로서 기능하고 있었다는 점은 그러한 사실을 확연히 보여준다.
현장의 시대에는 불교에 대한 연구 그리고 이해가 충분히 성숙하여 있었다. 현장의 신역이 불교가 전파되어 있었던 동아시아 세계에 거의 즉각적인 반향을 불러일으켰던 것은 이 때문이었다. 이미 수백 년 동안 축적된 불교 이해를 바탕으로, 새롭게 등장한 불교 이론 혹은 새로운 번역 작업에 대해 갑론을박할 준비가 되어 있었던 것이다.
다시 말하면 수백 년의 역경사업이 누적된 끝에 중국불교 독자의 사유작업을 전개할 수 있게 되었던 것이다. 곧 불교를 중국적으로 사유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중국적’이라는 말을 붙였지만, 중국의 전통적 사유에서 보면 그것은 전혀 이질적인 사유체계이고 방식이었다. 선종(禪宗), 성리학, 양명학 등은 그렇게 새롭게 등장한 ‘중국적’ 불교의 사유방식이 만들어낸 결과물이라고도 할 수 있다. 번역으로부터 결과된 사유가 번역물 안에 들어있는 사유에 대한 새로운 해석은 창출해낸 것은 물론 중국의 전통적 사유에도 역시 변화를 초래한 것이다. 곧 역경의 과정을 통해서 중국의 전통적 사유에 의해 불교적 사유에 변화가 초래된 만큼, 중국의 전통적 사유 역시 불교적 사유의 영향을 받아 변화해갔던 것이다. 이 같은 점에서 중국불교의 역경사는 사유체계의 상호전이 과정을 의미한다고도 생각할 수 있을 것이다.


4. 격의불교와 교상판석, 재창조로서 경전 번역

최근의 불교학 혹은 최근의 불교는 불전의 한역 과정에서 나타나는 격의불교와 교상판석을 낡은 것으로 치부하는 경향이 있는 것 같다. 하지만 격의불교와 교상판석이란 틀이 반드시 낡아빠져서 버려야 할 어떤 것이기만 한 것일까? 필자는 그렇지 않다고 생각한다.
‘격의불교(格義佛敎)’는 중국인들이 불교를 이해하기 위해 자신들의 전통에서 가장 유사한 사유체계라고 생각한 노장사상의 개념을 활용하여 불교의 개념을 이해하려 했던 방식이다. 노장 전통의 ‘무(無)’라는 개념에 의지하여 불교의 ‘공(空)’ 개념을 이해하려 했던 것이 대표적이다. 이 격의불교라는 말을, 우리는 통상적으로 전혀 다른 틀에 맞추어서 불교를 의미를 이해하려 한 것, 다시 말해서 불교의 올바른 이해에는 도달하지 못한 것이라고 이해한다.
하지만, 이것을 긍정적으로 해석하자면 불교 이해의 징검다리 역할로도 받아들일 수 있다. 곧 개념에 대한 다양한 모색의 과정에 해당하는 것이고, 그러한 과정을 거쳐서 비로소 불교 개념의 올바른 이해에 도달할 수 있었다고도 할 수 있다. 이처럼 하나의 사유체계를 다른 문화권에서 수용해낸다는 것은 늘 이와 같은 개념태에 대한 모색 과정을 거칠 수밖에 없다는 점에서, ‘격의’라는 단계는 역경사상 매우 중요한 장면에 해당한다고 볼 수 있다.
마찬가지로 오늘날의 불교학에서는 거의 사장되어버린 듯한 것으로 ‘교상판석(敎相判釋)’이 있다. 역사적으로 볼 때, 불교가 늘 하나의 전통적 가치체계로서 중국인들에게 이해된 것은 아니었다. 여기에서 ‘하나의 전통적 가치체계’가 아니라는 것은, 중국인들에게 전해지고 수용된 불교가 시대적으로 그리고 지역적으로 다양한 가치체계를 반영하는 것이었다는 의미이다. 불전의 성립에 대한 충분한 정보를 가지지 못했던 중국의 불교인들은 그러한 다양한 가치체계를 ‘불교’라고 불린 하나의 틀 안에 묶으려고 시도했다. 그들은 다양한 가치체계를 제시하는 다단한 유형의, 그리고 다른 시대에 다른 장소에서 번역된 경전과 논서들을 하나의 좀 더 넓은 범주 안에서 이해할 수 있는 방법론을 필요로 했다. 그 방법론이 바로 교상판석이다. 이것 역시 복잡다단한 역경의 결과물을 수용하는 중국불교 나아가서 동아시아불교의 중요한 방식의 하나이고 역경으로부터 비롯된 자연스러운 결과물 중의 하나이다.
중요한 것은 역경의 결과물을 이해하기 위한 이 교상판석의 방법론이 인도불교와는 다른 중국불교 독자의 불교 이해 방식을 낳았다는 점이다. 이를 통해서 중국불교는 인도불교의 전통과는 다른 새로운 관점의 이해틀을 만들어냈고, 그것이 중국불교의 독자적인 전개에 추동력으로 작용할 수 있었다. 동시에 그것은 중국불교 나아가서 동아시아불교 내에서 불교를 이해한 틀의 다양성이 만개하게 된 배경이기도 했다.
불전 번역의 초기 시대에 활용된 ‘격의(格義)’가 불전 안의 핵심 개념에 대한 올바른 이해로 나아가는 모색의 방식을 보여준다면, 교상판석은 당시까지 그들에게 알려진 불교의 전체 체계를 이해하는 방식을 보여준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동시에 그것들은 불전을 바라보는 그리고 불교적 사유체계의 핵심을 결정하는 기준으로 작용하기도 하기 때문에 역경사를 말할 때 반드시 고려되어야 하는 요소이다. 동시에 격의와 교상판석은 언어를 신성시하거나 절대화하는 사유체계에서는 성립이 불가능한 방식이라는 점 역시 놓치지 않아야 한다. 언어가 전달의 매개 혹은 징검다리라는 인식 위에서만 격의 혹은 교상판석과 같은 방식의 수용이 가능해지기 때문이다.
역사적으로 볼 때 그리고 결과론적으로 볼 때, 격의와 교상판석은 대단히 유용하고 또 유의미한 방식이었다고 생각된다. 이질적인 문화의 접촉과 상호수용 과정에서 충돌을 최소화하는 결과를 낳는 한편, 새로운 사유 형태를 창출하는 계기로도 기능했기 때문이다. 적어도 번역 혹은 역경의 본래적 목적, 다시 말하면 전법이라는 측면에 초점을 맞추었을 때 그것은 대단히 성공적인 수레로서 기능했다고 말할 수 있다.
이들 방식 특히 격의의 방식은 당시의 불교를 이해하는 틀로서만 받아들여지는 경향이 강한데, 실은 지금도 대단히 유용한 틀이고 또 사용되고 있는 틀이기도 하다. 굳이 불교의 핵심 개념태에 대한 이해 접근의 문제를 언급하지 않는다고 하더라도, 우리가 우리의 불교 전통에서 사용되어온 개념어들을 이해하려는 경우가 특히 그렇다.
우리는 불교 일상에서 전통적인 한문불전의 개념어들을 사용하지만, 실제 우리의 삶은 그것과 동떨어져 있다. 즉 용어는 한문불전의 언어를 사용하지만, 일상의 언어는 서구화되어 있는 것이 현실이다. 전법선언에서 보이는 붓다의 말을 빗대어서 표현하자면, 우리는 처음도 중간도 끝도 애매모호한 용어로 우리의 불교에 대한 이해를 표현하는 일이 다반사인 일상을 살아가고 있는 것이 된다. 뜻 모를 암호를 나열하고 있는 경우가 허다한 셈이다.
물론 모두가 그런 것은 아니지만, 대부분의 경우 전통적인 한문불전의 언어들은 ‘격의’에서 보이는 것과 같은 치열한 의미 모색의 과정을 거치지 않고 사용되고 있다. 이것은 실제 삶에서 사유의 방식과 사유의 실천에 괴리를 낳는 원인으로 작용한다. 곧 격의의 과정을 좀 더 자연스러운 과정으로 받아들이고, 불교의 이해 과정에 적용하는 노력이 필요하다. 한문불전의 한글화 과정에서 그러한 예가 나타나는 경우가 많은데, 불교적 사유에 대한 모색만큼이나 동시에 일상어에 대한 모색 역시 필요하다는 것이 부정되어서는 안 된다. 곧 좀 더 적극적인 격의의 태도가 요구되는 경우가 많다고 생각된다.
교상판석의 경우도 역시 마찬가지이다. 우리는 교상판석을 불교적 사유체계의 성립과 전개 과정에 대한 역사적 이해의 경우로만 이해하는 경우가 많다. 곧 역사적 불교의 전개 과정에 대한 정보가 없었던 중국의 불교인들이 제한된 경전의 정보에 의해서 역사적 과정으로 파악한 어떤 것으로만 간주하는 것이다. 물론 그와 같은 측면이 존재하는 것을 부정할 것까지는 없을 것이다. 하지만 동시에 교상판석이라는 독특한 방식에 의해, 동아시아 불교인들이 추궁했던 불교적 세계상까지 부정할 필요는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교상판석에 의한 불교적 세계상의 이해는 다른 한편으로는 우리 불교전통이 추구해온 불교적 세계상의 수용을 의미한다. 동시에 그것은 우리가 전통적으로 계승해온 한문불전의 이해방식이면서 동시에 우리가 사용하는 한문불전 언어의 이해틀을 규정하는 것이기도 하다. 때문에 그것은 불교전통을 이해하기 위해서 충실하게 고려되어야 할 틀이지, 근대 문헌학적 방식에 의해서 전면 부정되어야 할 어떤 것은 아니다.
최근의 불교학 관련 연구에서 새로운 자료의 출현이 불교 이해의 새로운 측면을 환기시키는 측면이 있는 것은 분명하지만, 불교 전통의 주된 흐름을 이해하는 새로운 접근로가 추가된 것일 따름이라는 것 역시 잊어서는 안 된다. 교상판석에 의한 접근방법 역시 마찬가지이다. 그것은 전통적으로 우리가 한문불전을 통해서 추구해온 불교적 세계상에 접근하는 방식이며, 근대의 새로운 문헌학적 접근 방식은 그러한 세계상을 새롭게 이해해가는 또 다른 통로를 보여주는 것이지, 전통적 세계상을 부정하는 것이어서는 안 되는 것이다.
이처럼 격의와 교상판석은 불전의 한역 과정에서 불교를 이해하기 위한 방법론으로 도입된 것이지만, 오늘날에도 그것은 불교를 이해하고 접근하는 데 여전히 유효한 방식임을 인정할 필요가 있다. 다만 그것을 어떤 식으로 활용할 것인가 하는 문제는 여전히 모색의 여지가 존재한다.


5. 맺음말
 -미래지향적 경전 번역의 필요성

흔히 우리는 역경을 이미 존재하고 있는 불전을 우리가 사용하는 언어로 번역하는 작업이라고 이해한다. 하지만 역경은 이미 존재하는 것을 번역하여 채우는 작업이 아니라 존재하지 않았던 것을 추가하는 작업이었다. 우리가 중국불교의 역사를 평가할 때 흔히 하는 말 중의 하나가 인도로부터 새로운 불전의 유입이 중단되었을 때 중국불교의 사상사는 활력을 잃었다는 것이다. 이 평가가 중국불교의 사상사를 평가하는 적절한 관점인가 하는 점은 차치하고, 적어도 새로운 불전의 전래와 그것의 역경이 중국불교의 전개에 미친 영향의 한 측면은 적절하게 보여준다고 생각된다. 곧 불교사에서 역경은 불교의 사유영역을 끊임없이 확장하는 작업으로서 기능했던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역경사업은, 당연한 일이겠지만, 새로운 불전의 전래를 계기로 시작된다. 그리고 그 새로운 불전의 전래를 담당하는 것은 전법승 혹은 구법승의 역할이다. 기존에 번역되어 있던 불전이 재번역되는 경우도 역시 불전의 새로운 전래를 전제로 한다. 그 자체로 불교적 사유세계의 확장과 재발견이라는 과정이 진행되는 것이다.
그리고 번역된 불전은 거의 의무적으로 필사되고 전파되는 유통의 과정을 거치는 것이 일반적이었다. 다시 말하면 유통을 전제로 하지 않는 불전의 역경사업은 의미가 없다는 이야기이기도 하다. 그리고 번역된 불전의 오사(誤寫)를 방지하기 위해 일종의 규격화 작업 역시 병행되었다. 이러한 규격화는 단순히 오사를 방지하기 위한 것처럼 생각할 수도 있지만, 사실은 유통과정의 재생산성 확보에 더 큰 의미가 있었다고 생각된다. 곧 불전의 유통을 통한 확대재생산 과정의 편의성을 도모한 것이다.
역경 목록의 편찬과 유통과정의 규격화 작업은 후에 대장경의 인간(印刊) 사업으로 이어진다. 역경 목록의 편찬과 대장경의 인간은 기본적으로 역경의 후속 사업이라는 측면에서 파악할 수 있다. 이들 사업은 불전의 한역 사업이 단순히 번역사업으로 그치는 것이 아니었음을 보여준다. 분류와 종합, 유통이라는 후속된 일련의 과정을 통해서 불교적 사유의 확장, 그리고 불교의 문화적 확장이 이루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우리 시대의 역경 사업 역시 마찬가지이다. 과거를 재생산하는 역경 사업 역시 의미가 없는 것은 아니겠지만, 역경 사업 자체는 본질적으로 미래지향적인 것이어야 한다는 점에 동의하지 않는 이는 드물 것이다. 곧 역경 사업은 유통의 문제가 반드시 고려되어야 하고, 동시에 재생산성과 확장성이 담보되어야 한다는 뜻이다. 그렇지 않으면, 불전의 번역은 단순히 과거의 재생산 이상의 의미를 지니지 않을 것이며, 그것이 어떤 역사적 의미를 획득할 것으로 기대하는 것 자체가 어불성설이다.
마지막으로, 그렇다면 미래지향적인 경전 번역은 어떤 요소를 포함해야 할까?
가장 먼저 염두에 두어야 할 것은 ‘읽히는 경전 번역’이 아닐까 생각된다. 곧 읽히지 않는 경전 번역은 무의미하다는 것이다. 학문적 작업에 의한 정밀하고 주석적인 번역이든, 아니면 대중을 대상으로 쉽게 읽히는 번역이든, 어느 쪽이든 간에 명료하고 구체적인 대상 독자층을 겨냥한 것이어야 한다는 의미이다. 실제로 대부분의 경전 번역은 이러한 부분에서 강렬한 의도성을 내포하고 있는 것이 일반적이다. 다만 그 의도를 어떻게 달성할 것인가 하는 점에 대한 충분한 고려가 이루어졌는지는 여전히 미지수이다.
두 번째로 염두에 두어야 할 것은 유통성과 확장성의 문제라고 생각된다. 첫 번째 문제의 연장선에 있는 것이기는 하지만, 단순히 ‘읽히는 경전 번역’만으로는 유통성과 확장성을 기대하기 쉽지 않다. 일례로 경전 내용의 차별적 재구성과 번역을 매개로 한 확장 재생산을 고려할 수 있다. 역시 적지 않은 시도가 이루어지고 있는 부분이다. 웹에서 검색되는 전자불전 역시 그러한 시도의 한 형태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세 번째로 고려되어야 할 것은 환기성이다. 곧 요즘 식으로 표현하면 시장성이라고도 할 수 있고 이슈화라고도 할 수 있을 것이다. 단순한 번역 작업에 너무 과한 요구가 아니냐고 할 수도 있다. 하지만 경전 번역이 경전 읽기로 이어져서 개인적·사회적 사유의 새로운 확장으로 이어지지 못한다면, 경전 번역의 중요성을 다시 말해야 할 필요도 존재하지 않을 것이다.
경전 번역은 반복적이어야 하고, 늘 진행형이어야 하고, 또한 창조적이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것은 경전 번역이 끊임없는 현재화와 끊임없는 미래지향을 담보할 때만이 애초에 의도했던 바인 전법(傳法)이라는 목적을 달성할 수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

 

 

석길암 / 동국대학교 경주캠퍼스 불교문화학부 교수. 한국외국어대학교 경제학과, 동국대학교 대학원 졸업(철학박사). 주요 논문으로 〈기신론 주석서에 나타나는 여래장 이해의 변화〉 〈화엄경의 편집은 호탄(Khotan)에서 이루어졌는가〉 등과 《지론사상의 형성과 변용》(공저) 《불교, 동아시아를 만나다》 등의 저서가 있다. 본지 편집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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