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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불교 재가자로서의 삶과 수행의 조화
최영돈 고려대 기계공학과 교수
[27호] 2006년 09월 10일 (일) 최영돈 고려대 기계공학과 교수

1. 서론

원불교 재가자로서 나의 삶과 수행을 어떻게 조화시키고 있는가에 대한 설명을 위해서는 먼저 내가 걸어온 삶의 경로와 원불교 수행의 핵심 원리를 설명하지 않을 수 없다. 왜냐하면 한 사람의 삶의 모습은 그것을 이루게 한 배경을 알지 못하면 바르게 이해될 수 없기 때문이다. 먼저 내가 원불교 수행인으로 걸어온 배경을 설명하고 다음에 원불교 수행의 교법적 원리를 설명한 후 결론으로 이 논고의 주제인 원불교 재가자로서의 삶과 수행의 조화에 대해서 설명하고자 한다.

내가 원불교 신앙을 가지게 된 것은 원불교를 독실히 신앙하셨던 증조모와 한 방에서 어릴 시절을 지낸데 기인한다. 그 때 나의 마음속에는 불교와 원불교에 대한 아무 구분도 없었다. 그냥 불교를 좋아하였고 대학에 들어와 시간이 생기자 여러 불서를 탐독하기 시작했다. 대학 4학년 때 우연이 서울에 원불교 교당이 있는 것을 알고 원남교당 청년회에 다니면서 원불교 신앙과 수행의 길로 접어들게 되었다.

불법의 심오한 원리를 현실 속에서 구현하는 원불교 교리와 맑고 청정한 원불교 교무님들의 모습이 나를 원불교에 대한 믿음에 뿌리를 내리게 한 것 같다. 대학을 나와 kaist 1기생으로 입학하면서 원불교에 대한 믿음은 더욱 커졌다. 그러나 결정적으로 나의 삶을 원불교 신앙과 수행인으로 정착시킨 것은 원불교 3대 종법사이셨던 대산 종사와의 만남이었다.

대산 종사와의 만남은 우연인지 필연인지 모르겠다. 나의 고향은 충청남도 논산군 두마면 계룡산 밑의 신도안이다. 대산종사께서는 여름과 겨울이면 언제나 신도안 삼동원에 오셔서 수양을 하셨다. 그래서 자연스럽게 자주 뵈올 수 있게 된 것이다. 나는 기계공학을 전공하고 대학에서 기계공학을 강의하고 있다.

그런데 어찌해서 현재 불법의 전문 수행인의 길을 밟아가고 있는 지 그 배경을 좀 설명하기로 한다. 내가 고등학교를 다닐 때 나는 미래에 어떤 삶을 살아야 할지 생각하게 되었다. 무엇을 위해 살 것인가 생각하다가 나는 모든 사람이 함께 잘 사는 세상을 위해서 살아야겠으며, 나 자신 만을 위한 삶을 살 것이 아니라 남을 위하는 삶을 살아야겠으며, 세상 사람들이 마음을 바르게 사용하도록 하는 삶을 살아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그러기 위해서 내 자신이 그 일을 할 수 있는 실력을 갖추어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1960년대 말 그 당시 우리나라는 너무나 가난하였다. 그래서 이왕에 수행을 하려면 공과대학을 나와서 국가 경제를 살리는 일을 하면서 한다면 그 공덕이 더 크리라는 생각을 하게 된 것이다. kaist 2학년에 접어들면서 나의 원불교에 대한 신앙심과 수행심은 더욱 깊어져서 공학도의 길을 포기하고 전무출신(원불교 출가)을 단행하기로 결심하기에 이르렀다. 그 소식은 대산 종사에게 알려지게 되었다.

여름에 삼동원에서 쉬고 있는데 대산 종사께서 조실로 들어오라는 전갈이 와서 무슨 일인가 하고 가보았더니 대산 종사께서 시자를 통해서 다음과 같은 뜻을 전하였다. “앞으로 원불교가 그 목적한 바를 이루기 위해서는 교화를 후원할 튼튼한 기관이 확립되어야 하는 데 그 중의 하나가 대공장을 설립하여 경제적 자립을 이룩하는 것”이라는 것이다. ‘나보고 그 역할을 하라는가 보다 생각’하고 질문을 드렸다. “이런 일 하다가는 공부는 언제 합니까.” 하고 여쭈었더니 대산 종사 말씀하시기를 “그야 공부를 바탕으로 해야지” 하시었다.

그 때 생각하기를 ‘공부를 바탕으로 하면 세상에 못할 일이 없다’ 하는 생각을 하게 되었고 그 후로 서울에 올라와 전무출신한다는 생각도 잊고 대공장을 세워서 원불교의 경제적 자립을 통해 교화 기반을 굳건히 함으로써 일체 생령을 구원하여 광대 무량한 낙원으로 인도하시려는 스승님 대경륜 실현의 밑 걸음이 되어야겠다는 일념을 가지게 되었다.

두 가지 일을 함께 하다 보니 다른 일에는 여념이 없어서 일체 모든 것을 포기하고 공학 공부와 원불교 수행 두 가지 만을 전념하며 이를 조화시킨 새로운 삶의 개척을 위해서 노력하게 된 것이다. 과거를 생각해보면 남들은 한 가지 일도 하기 어려운데 나는 스승님의 경륜을 받들어 대공장의 원대한 꿈을 안고 공학에 전념하는 동시에 ‘성불 제중’, ‘제생 의세’의 큰 서원 아래 불법 수행에 전념하는 삶을 살게 된데 대해 무한이 감사를 드린다.

이와 같이 살아오는 동안 내 마음 속에는 조그만 서원이 생기게 됐다. 원불교 창시자이신 소태산 대종사(少太山 大宗師)께서 제정해 주신 교법을 현실 구현하는 새 시대 새 삶을 살아서 미래 인류의 앞길을 밝혀 주어야겠다는 서원이었다.

나의 수행의 근간이 되는 원불교 교법의 기본 원리와 정신 몇 가지를 소개하고자 한다.

2. 원불교 교법과 나의 수행

2.1 시방일가(十方一家)와 무아봉공(無我奉公)

가장 큰 감명을 준 원불교 교리의 하나는 내가 살고 있는 집은 ‘작은 집이요’ 사회ㆍ국가ㆍ세계, 전 우주가 나의 큰 집이니 무아로 봉공하라는 것이다. 대산 종사께는 이 시방일가의 사상을 ‘무아무불아(無我無不我)’ ‘무가무불가(無家無不家)’이라 게로써 표현해주셨다. 나는 모든 면에서 원불교 교법을 그대로 실현하려 했다. 나는 무아봉공의 삶을 실현하기 위해 재가로 있지만 재가를 벗어나서 출가자와 똑 같은 정신으로 공을 위해서는 사를 잊고(爲公忘私), 온 몸으로 부처님의 일을 하는(全身佛事) 삶을 살기로 결심하게 된 것이다.

2.2 영육쌍전법(靈肉雙全法)

영육쌍전법은 원불교 핵심적 교리의 하나이다. 영과 육을 쌍전하라는 단순한 문자적 의미 이외에 더 깊은 교법적 의미가 담겨져 있다. 원불교 정전(正典)에 영육쌍전법이 다음과 같이 설명되고 있다.

“과거에는 세간 생활을 하고 보면 수도인이 아니라 하므로 수도인 가운데 직업 없이 놀고 먹는 폐풍이 치성하여 개인ㆍ가정ㆍ사회ㆍ국가에 해독을 많이 미쳐 왔으나, 이제부터는 묵은 세상을 새 세상으로 건설하게 되므로 새 세상의 종교는 수도와 생활이 둘 아닌 산 종교라야 할 것이니라. 그러므로 우리는 제불 조사 정전(正傳)의 심인(心印)인 법신불(法身佛) 일원상(一圓相)의 진리와 수양ㆍ연구ㆍ취사의 삼학(三學)으로써 의식주를 얻고 의식주와 삼학으로써 그 진리를 얻어서 영육을 쌍전하여 개인ㆍ가정ㆍ사회ㆍ국가에 도움이 되게 하자는 것이니라.”

영육쌍전법의 요지는 단순히 영과 육을 쌍전하라는 것이 아니라 일원상의 진리와 삼학[수양(定), 연구(慧), 취사(戒)]으로 의식주를 얻고 의식주와 삼학으로써 그 진리를 얻어서 세상에 유익을 주는 사람이 되자는 것인데 이는 불법시 생활(佛法是生活), 생활시 불법(生活是佛法)의 교리와 의미가 통한다. 이는 불법으로 생활을 하고 생활이 곧 불법 수행이 되게 하라는 것이다. 여기서 불법시 생활은 생활하면서 불법을 닦으라는 것이 아니고 생활 그 자체가 곧 불법 수행이 되어 생활과 수행이 둘이 아닌 산 불법이 되게 하라는 것이다. 이는 말은 쉬워도 실제 실행하기에 대단히 어려운 것이다.

2.3 동정간 삼학 수행

원불교 수행의 강령은 정신 수양(精神修養), 사리 연구(事理硏究), 작업 취사(作業取捨)인데, 정신 수양은 정(定)이고 사리연구는 혜(慧)며 작업취사는 계(戒)이다. 원불교 수행의 원리는 동정간 끈임 없이 이 삼학 수행을 병진하는 것인데 그 방법을 살펴보면 일이 있을 때의 공부는 이 일을 할 때에 저 일에 끌리지 아니하고 저 일을 할 때에 이 일에 끌리지 아니하여 오직 그 일 그 일에 일심만 얻도록 하는 것이 수양 공부요, 인간 만사를 작용할 때에 이 일을 할 때나 저 일을 할 때나 혜를 구하여 순서 있게 하는 것이 연구 공부요, 정의인 줄 알거든 크고 작은 일을 막론하고 죽기로써 실행할 것이요, 불의인줄 알거든 크고 작은 일을 막론하고 죽기로써 하지 않는 것이 취사공부며, 한가할 때는 염불, 좌선, 경전, 의두(疑頭)공부에 전공도 하여 일이 있을 때나 일이 없을 때에 오직 간단없이 공부를 지속하게 하는 것이 동정간 끊임없는 삼학 수행이다.

2.4 무시선법(無時禪法)

동정간 삼학 수행을 동정간 불리선(動靜間不離禪)인 무시선 수행으로 승화시키는 것이 원불교 수행의 주체이다. 원불교 정전에는 무시선법의 요지를 다음과 같이 밝히고 있다.

“사람이 만일 참다운 선을 닦고자 할진대 먼저 마땅히 진공(眞空)으로 체를 삼고 묘유(妙有)로 용을 삼아 밖으로 천만 경계를 대하되 부동함은 태산과 같이 하고 안으로 마음을 지키되 청정함은 허공과 같이 하여 동하여도 동하는 바가 없고 정하여도 정하는 바가 없이 그 마음을 작용하라. 이같이 한즉 모든 분별이 항상 정을 여의지 아니하여 육근을 작용하는 바가 다 공적 영지(空寂靈知)의 자성에 부합될 것이니 이것이 이른바 대승선이요 삼학을 병진하는 공부법이니라.”

2.5 진공묘유(眞空妙有)의 용심법(用心法)

원불교 수행의 결론은 마음공부라 한다. 마음공부나 수행이나 같은 의미로도 사용되지만 원불교 마음공부는 특유의 의미가 있다. 마음공부는 마음을 작용하는 바가 다 공적영지의 자성에 부합되도록 하되 그 결과가 이 세상의 모든 존재들을 살려내는 활생(活生)의 덕으로 나타나게 하는 공부이다.

3. 원불교 재가자로서 수행과 삶의 조화

앞에서 본인이 원불교 수행을 하게 된 동기와 원불교 수행의 핵심 원리를 요약해서 설명하였다. 나의 수행은 앞에서 설명한 원불교 교법을 나의 삶에서 그대로 실현하려는 끝없는 노력의 계속이다. 특히 영육쌍전, 불법시 생활, 생활시 불법의 교법 실현에 많은 노력을 하였다.

이 교법은 생활하면서 부지런히 불법을 닦으라는 것이 아니고 생활 그 자체가 불법 수행이 되게 하라는 것이다. 나는 직업의 모든 일과 삶을 일심(定), 알음알이(慧), 취사(戒)의 삼학으로 함으로써 생활이 곧 수행이 되게 하는 교법의 실현에 몇십 년간 모든 정성을 다 퍼부었다. 영육쌍전법은 진리와 삼학으로써 의식주를 얻고, 의식주와 삼학으로써 진리를 얻으라는 법인데, 여기서 의식주를 얻는 것이 생활이고 진리를 얻는 것이 수행이다.

그런데 삼학이 생활과 수행 양쪽에 끼어서 생활과 수행을 하나로 만들어 주는 요소이다. 원불교의 수양, 연구 취사의 삼학은 불교의 계정혜 삼학과 같은 것인데 수행과 삶을 하나로 일치시키는 요소를 가진 것이 특징이다.
그렇다면 어떻게 출가자로서도 하기 어려운 불법 전문 수행의 길을 재가자로서 걸어올 수 있을까가 문제이다. 재가자로서 나의 마음 자세와 수행과 삶의 조화에 대해서 설명하고자 한다.

3.1 대서원, 대신성, 대정진의 삶

진리와 합일하고 진리를 활용하는 불법의 수행은 방법적 원리를 아는 것도 중요하지만 공부인의 마음 자세가 더 중요한 것 같다. 큰 공부는 큰 서원과 믿음에서 시작된다고 생각된다.

내가 대학원 시절부터 방학 때가 되면 언제나 대산 종사께서 수양하시는 곳을 찾아서 대산 종사를 모시고 그 법문을 들으며 훈증을 받는 동안 어느덧 나도 그 분과 하나의 삶을 살아야겠다는 서원이 서지게 된 것이다. 그와 같은 삶을 계속하기를 30여년, 지금은 현 종법사님을 모시고 같은 생활을 하고 있다. 스승님을 모신 삶 속에서 나도 모르는 중에 내 마음속에 다음의 네 가지 서원을 서지게 된 것이다.

나는 세세생생 우리 스승님들과 삼세제불 제성님들과 한 마음, 한 뜻, 한 글, 한 법, 하나로 살아야 겠다는 서원이며, 둘은 나는 세세생생 법신불 일원상의 진리를 바르게 오득하여 일체 생령을 구원하고 낙원으로 인도하는 성불 제중, 제생의세의 삶을 살아야겠다는 서원이며, 셋은 재가와 출가가 둘이 아니요, 동과 정이 둘이 아니요, 이(理)와 사(事)가 둘이 아닌 대도를 각득하고 실현해서 새 시대 새 삶의 표본이 되어야겠다는 서원이다. 그러기 위해서 내 온 몸과 마음을 스승님과 진리와 이 세상을 위해서 다 바치고 살리라는 서원이었다.

3.2 하루의 일과

하루의 일과는 새 생활 일과를 기본으로 하고 있다. 새 생활 일과는 대산 종사께서 수행과 삶을 일치시키기 위해 모든 수도인이 표준으로 닦아가도록 제정해주신 일과이다. 새 생활 일과는 다음과 같다.

(1) 아침은 수양 정진의 시간이다. 아침 일찍 일어나 마음에 때를 벗기는 선공부로 새 마음을 기르자.
(2) 낮은 보은 노력의 시간이다. 부지런히 일해서 새 세상을 만들자.
(3) 저녁은 참회 반성의 시간이다.

하루 동안에 남을 해친 일이 있는 가 없는 가 반성하여 새 생활을 개척하자.

나의 하루 일과를 대략적으로 살펴보면 아침 4시 30분에 일어나 샤워로 몸을 깨끗이 하고 다섯 시부터 아침 좌선을 1시간 30분 정도 하고 화두(話頭) 연마를 5~10분하고 매일 20분 정도 기도를 드린다. 기도의 내용은 때에 따라 변하는 데 과거에 몇 년간은 민족과 인류의 해원ㆍ상생ㆍ통일을 위해 기도를 드렸고 올해는 교단 100주년을 향한 대서원ㆍ대정진의 기도를 드린다.

기도 후 약 10분간 요가를 하고 20~30분 경전을 연마한다. 7시 30분부터는 출근 준비를 하고 본인이 근무하는 대학에 나아가 교육과 연구, 사회봉사 등 보은 노력에 전념하여 새 직장, 새 사회, 새 나라, 새 세계 개척하고 있다. 저녁이 되면 집에 돌아와 일을 보다가 9시 30분이 되면 다시 기도를 20분하고 저녁 일기를 쓰며 하루 생활이 교법에 어긋난 것이 없는가 반성 대조한다. 다음 날 수행 시 유념 사항을 점검하고 10시가 되면 다시 좌선을 30분 정도하고 10시 30분 취침하는 것을 표준 일과로 하고 있다. 여러 바쁜 일정 속에서도 이 일과를 지키는 것을 공부의 기본으로 삼고 있다.

3.3 유념 공부(有念工夫)

현실의 모든 문제를 법으로 처리하는 능력, 천만 경계 중에서 자성(自性)을 여의지 않는 마음공부, 성불 제중, 제생 의세의 대경륜 실현은 그 마음을 챙기느냐 못 챙기느냐에 달려 있다. 원불교에서는 이 챙기는 마음공부를 주의(注意)라고도 하고 유념공부라고도 한다.

본인은 대학 4학년 때부터 이 유념공부가 모든 공부의 근간임을 알고 몇 십년간 끊임 없이 단련하였다. 유념공부의 방법은 ‘하자’는 조목과 ‘말’자는 조목을 정하고 천만 경계를 하자는 데로 처리하면 유념이고 그 마음을 놓고 처리하면 무념이라 하는 데 공부가 깊어 가면 일이 잘되고 못된 것으로 유념 무념을 잡는다.

그런데 이 유념공부를 더 조직적으로 하려면 다음의 순서로 진행한다.

(1) 응용하기 전에 응용의 형세를 보아 미리 연마하기를 주의할 것이요,
(2) 응용하는 데 온전한 생각으로 취사(取捨= 정의는 취하고 불의는 버리는 것)하기를 주의할 것이요,
(3) 모든 일을 처리한 후에 그 처리 건을 생각하여 보되, ‘하자’는 조목과 ‘말’자는 조목에 실행이 되었는가 못 되었는가 대조하기를 주의 하기.

나는 만나는 모든 일을 또는 천만 경계를 이 유념공부로 처리하여 수행과 삶을 조화시키고 있다. 이 유념 공부가 처음에는 그 힘이 미미하지만 오래오래 단련하면 무궁한 힘을 발휘한다. 유념공부의 공덕을 한 가지 예를 들어본다.

내가 고려대학교에서 교직 생활을 시작한 지 어느덧 26년이 되어서 우리 과에서 가장 오래 재직한 교수가 되었다. 나는 언제나 내가 오늘날 불법 수행과 전공의 공부를 부담 없이 할 수 있도록 허용하는 고려대학교의 자유로운 풍토에 감사하고 있다. 그리고 이 자유로운 분위기에서 이 세상을 크게 유익을 주고 하나로 만들어 가는 큰 사상이 잉태된다고 생각하고 있다.

내가 불법 수행과 인재 양성을 위해 많은 시간을 사용하느라 전공 분야에서 더 큰 기량을 발휘하지 못한데 대해 언제나 대학에 미안한 마음이 있었고 언제인가 보은(報恩)해야 겠다는 마음을 가지고 있었다. 2004년 전국 기계공학과에 대한 대교협 평가가 있었다. 80여개 되는 국내 모든 기계공학과가 평가를 받게 되었다. 우리 과에서도 여러 달 평가 준비를 하였으나 일이 잘 진척되지 않자 보고서 제출일이 2개월 남았을 때 경험 많은 내가 위원장으로 이 일을 처리하도록 위임 되었다.

이때 나는 이제까지 단련한 유념공부법을 활용하기로 마음먹었다. 유념공부의 치밀한 계획 하에 20명의 모든 교수들이 한 마음 한 뜻으로 뭉쳐졌고 2개월의 준비 후 평가 결과는 학부, 대학원 두 부분 전국 1위의 영광을 얻게 되었다. 그 후 이와 같은 몇 번의 평가 과정을 거치면서 학과 교수들에 불법으로 일하는 나의 사상과 철학에 믿음이 생기게 되었다. 부처님의 은혜가 현실로 나타난 것이다. 이 일을 거치면서 나도 불법 활용(佛法活用)의 위력에 대한 믿음이 더욱 굳건해졌다.

3.4 후진 육성과 예비교무 교육

본인의 최대 관심사 중 하나는 불조 정전의 심인을 바르게 오득하여 후진들에게 바르게 전해주는 것이며 불조 정정의 심인을 세계 곳곳에 전해서 불국의 세계, 낙원의 세계, 일원의 세계로 건설하는 것이다. 이러한 본인의 염원은 12년 전 종로구에 청년들이 함께 모여 원불교 교법을 단련하고 선(禪)을 단련하는 선방을 개설하게 하였다. 매주 수요일 저녁 7시에 20~30명의 대학생, 청년들이 모여서 3시간 가량 염불, 좌선, 강연, 강의, 회화 등 모든 삼학 훈련을 한다.

이 선방 훈련에서 특히 강조한 것은 우리의 삶과 수행이 자신 만을 위한 소승행이 되어서는 안 되고 전 생령을 구원하고 세계를 구원할 큰 서원을 세우고 대승행의 수행 정진을 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 청년 선방의 특징은 매주 상시 훈련을 계속하다가 여름 겨울 두 차례 반드시 종법사님께서 계신 곳에 가서 훈증 훈련을 받는 것이다. 이와 같은 반복 훈련 과정 속에서 30여명의 청년들이 성불 제중, 제생 의세의 서원을 세우고 출가하게 되었다.

지금은 그 조그만 결실이 있어서 미국에서 아프리카에서 모스코바에서 세계교화를 위해 혈성을 다하고 있다. 본인이 도학과 과학을 병진하며 끝없이 밀려오는 일에 힘들기도 하지만 그 모든 어려움이 한 순간에 다 녹는 순간이 있다.

그것은 선방의 청년들이 몇 년의 훈련과정을 거치면서 마음에 청정한 서원이 점차 커져서 세상의 모든 욕심을 떨쳐버리고 모든 중생을 구원하기 위해서 이 세계를 건지기 위해서 출가를 단행하는 모습을 보는 때이다.

나는 원불교 성직자 육성 교육에 남다른 애정을 가지고 있다. 현실 속에서 얻어진 불법 수행의 정신과 원리, 방법을 원불교 예비교무들에게 전하는 것은 내 삶에서 가장 보람 있는 일의 하나이다. 영산원불교 선학대학교에서 정전실습(正典實習)을 3년 강의하였고 익산의 원불교 대학원대학교에서 정전해의(正典解義)를 4년째 강의하고 있다. 예비교무들에 대한 강의는 성직자를 육성한다는 큰 보람이 있는 반면 내가 전공하는 연구에 대한 절대적 시간 부족이라는 큰 아픔을 주었다.

나는 마음에 언제나 심계(心戒) 하나를 가지고 있다. 그것은 내가 정당한 목적으로 하는 일에는 어떠한 어려운 경계가 눈앞에 놓인다 하더라도 불평하지 아니하고 거부하지 아니하고 노력으로써 정면 돌파하여 해결한다는 계문이었다. 예비교무 교육을 위해 투여한 시간을 보충하기 위해서 일체 시간의 낭비를 줄이고 짧은 시간에 많은 일을 하려고 일심을 집중하고 집중하는 데 오래오래 노력을 해서 이제는 두 일을 다 할 수 있는 여유가 생겼다.

나는 전문 수도인과 같이 정혜(定慧)의 능력이 부족하지만 천만 경계 속에 단련한 마음의 힘은 언제나 마음만 먹으면 정혜의 능력도 얻을 수 있다는 자신을 갖게 해주었다.

3.5 원불교 대공장의 설립

대산종사께서 나에게 내려준 임무는 원불교 대공장을 세워서 경제를 자립하고 교화의 튼튼한 후원기관의 역할을 하도록 하는 것이었다. 사실 이 일은 수행보다 어렵고 교화보다 어려운 일 같다. 마치 수도인 보고 수행 더 열심히 하라는 것은 쉬워도 장사해서 돈을 벌느라고 하면 더 어려운 것 같다.

대학원 때 원불교 대공장 설립을 서원 세운 후 매일 아침저녁 법신불 사은전에 심고(心告 = 원불교와 천도교 등에서 마음으로 올리는 기도 형식)를 올리기를 20년 지속하였다. 어찌해야 원불교 대공장을 세워서 스승님 대경륜을 실현 할 수 있을지 오매불망 염원하던 중 대산 종사님께서 뜻있는 사람들이 모여서 공부를 시작하라는 명을 받들고 10여명이 대원회(大圓會)를 설립하여 공부를 시작하였다.

또 5000만원 정도의 자본금을 모아서 10년간 장사로 키워서 5억원을 만든 다음 그것을 자본금으로 해서 조그만 공장을 세워서 지금 잘 운영하고 있다. 이 조그만 공장이 커져서 인류를 구원하고 세계를 살릴 경제적 기반이 확립되기를 오늘도 내일도 염원하고 있다.

4. 일원상의 신앙과 수행

우리가 정법 수행을 한다는 것은 바른 진리의 신앙에 근거해야 한다. 불교에서는 이 진리를 자성불(自性佛)이라 하고 원불교에서는 법신불 일원상(法身佛一圓相), 심불 일원상(心佛一圓相)이라고 하나같은 것이다. 나는 이 자성불을 청정한 나의 마음 바탕이라고 생각한다. 내가 청년 시절에 여러 불서를 읽는 도중 나도 제불 조사님들처럼 불도 수행에 전문하여 자성불을 크게 깨쳐 중생 제도의 일을 하고 싶은 마음이 강했다.

그런데 대산 종사님께 공부에 바탕해서 원불교 대공장을 세우라는 명을 받들고 생각하게 되었다. 내가 불법의 전문공부를 하여 큰 도를 얻는 것이 옳은 길이냐 그 일이 더디더라도 스승님의 대경륜 받들어 실현에 노력하면서 일 속에서 공부하는 것이 옳은 길이냐 할 때 나는 후자가 더 옳은 길이라 생각했다.

왜냐하면 그것은 청정한 마음에 바탕한 사고의 결과이기 때문이다. 나에게 청정한 사고는 나를 불과(佛果)로 인도한다는 믿음을 가지고 있다. 그래서 중대한 판단의 경우를 당하면 힘들고 어려우면서도 새로운 삶의 개척을 선택한다. 부처님은 당시 사람들에게 안일한 삶을 벗어나 수행의 길을 걸으라고 인도해주셨다.

그 당시 수행의 길은 아무도 가보지 않은 개척의 길이었다. 새 문명 시대에 접어든 이 시대에 우리는 과거의 법에 안주하지 말고 인류의 앞길을 밝히고 인도해줄 새 삶과 새로운 길을 개척해야 한다.

그런데 그 핵심은 수행과 삶이 둘 아닌 새 삶을 개척하는 것이고 출가수행과 재가수행이 둘 아닌 새 삶의 표본을 개척하는 것이다. 새로움을 개척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그러므로 큰 용기와 서원으로 정진해야 한다. 교육, 연구, 사회봉사의 끝없는 일을 처리하느라 지친 몸을 안고 부족한 잠을 참으며 하루 일과를 지키고 아침 좌선을 하는 것은 참으로 어려운 일이다.

전문 선방에 입선하면 1~2년이면 될 좌선의 기틀이 몇십 년의 고전 분투 끝에 겨우겨우 틀이 잡혀지는 것이다. 그러나 나는 공부가 늦어지는 것을 걱정하지 않는다. 원래 대도는 시간이 많이 걸리는 것이라는 마음에 여유가 있다. 지금까지 못한 것은 지금부터 하면 되고 미래는 한 없이 열려 있기 때문이다.

나에게는 진리와 스승에 대한 변치 않는 믿음이 있고 끊임 없는 정진심이 있다. 그리고 자신에 대한 믿음이 있다. 자기가 자기를 믿는다는 것 같이 소중한 것이 없다. 자기가 자기를 믿으려 해도 믿어지지 않는 것처럼 불행한 사람은 없다. 내가 지난 수십년간 나의 모든 욕심을 놓고 명예도 놓고 진리를 믿고 스승님을 받드느라 잃어버린 것도 많지만 나에 대한 스스로의 믿음이 생긴 것과 변함없는 정성과 믿음으로 나아가면 시간의 조만은 있으나 반드시 이루어진다는 진리에 대한 믿음이 생긴 것은 더 없이 소중한 것이다. 이제는 일에 대한 기틀도 어지간히 잡혔으니 틈틈이 부지런히 공부해서 제불 조사의 정전 심인(正傳心印) 오득하는 공부를 해야겠다.

4.1. 신의일관(信義一貫)

본인이 공과대학을 다닐 때 팔만대장경이 처음 번역되어 나왔다. 관심을 갖고 이 책 저 책 사서 읽었는데 그 중에 가장 마음에 남는 대목이 있다. 그것은 부처님께서 성도하시기 전, 선 수행하실 때 무무역 무무(無無亦無無), 비비역 비비(非非亦非非)의 선정에 들었다가 잠시 자성의 혜광이 발하였는데 바로 없어져서 그 원인이 무엇인가 마음을 관해보니 마음에 일직심이 부족한 때문이라는 것을 알고 일직심 기르는 공부를 계속한 후 선정에 들었더니 자성의 혜광이 오래 지속되었다는 법문을 본 것이다.

이 법문의 현대적 의미는 크다고 생각된다. 대도에 큰 서원을 세운 사람은 조그만 능력이나 조그만 명예나 조그만 욕심에 마음을 뺏기지 말고 진리와 스승과 법에 대한 신의를 일관해야 한다는 것이다. 신(信)은 그 믿는 마음을 이름이요, 의(義)는 그 믿음과 공부심이 천만 경계에서 변치 않는 것을 말한다. 송죽의 절개는 추위를 만나야 알고 수도인의 신의는 경계를 만나야 드러나는 것이다.

오늘날 이 세상에 가장 안타까운 것은 눈앞의 이익을 위해서 신의를 저버리고 은혜를 배은으로 갚아서 세상의 공기를 음울하게 하는 현상이다. 어떻게 해야 이 세상의 도덕을 다시 살릴 수 있으며 신의를 살릴 수 있는 지 걱정이 앞선다. 그러나 우리에게는 아직도 욕심에 물들지 않은 수많은 청소년들이 있다. 그들을 정법으로 인도해줄 법선을 목마르게 기다리고 있다. 성자의 자취가 희미해지고 인의 대도가 권위를 잃어가는 이 세상을 구원하기 위해서 우리 모든 수도인들은 청정한 마음을 모아 수행 정진해서 법의 혜명을 밝혀야 한다.

4.2 세계교화의 꿈

우리의 눈앞에 도덕이 무너져 가는 현상이 많이 일어난다 해도 우리나라는 전 세계적으로 대도의 바른 기운을 가장 잘 수호해온 나라라 생각한다. 그러므로 지금 내가 가장 염원하고 있는 것은 세계교화이다. 이 세상을 불은화(佛恩化)하고 전 인류를 선법화(禪法化)하며 우리 민족의 전통과 문화를 세계에 전하여 전 인류를 하나의 가족, 전 세계를 하나의 세계로 만드는 것이 가장 큰 염원이다.

최영돈
고려대 기계공학과 교수.1973년 서울대학교 기계공학과 졸업. 1975년 KAIST에서 기계공학 석사ㆍ박사 학위 취득. 현재 고려대학교 기계공학과 교수로 재직 중이다. 또 2001년부터 원불교 호법수위단원과 새삶회 회장, 원불교 서울 청년선방 지도법사, 원불교 교서 영역위원 등도 맡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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