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전읽기모임을 회고하면서

1. 니까야 독송회 7년 결사가 시작되다

이미령
전 동국역경원
역경위원
2006년 12월7일자 인터넷판 한국일보는 “초기 불교 경전 전부를 부처님이 쓰던 팔리어(고대 인도 언어) 원전에서 바로 옮긴 한글본으로 7년간 읽고 공부하는 ‘신행 결사’(信行 結社)가 7일 시작됐다. 불교교육단체 동산반야회는 ‘한글 니까야 독송회’를 결성, 이날 저녁 서울 종로구 조계사 옆 동산불교회관 법당에서 니까야를 설명하는 첫 자리를 가졌다.”라는 기사를 냈다. 전재성 박사가 번역한 5부 니까야 읽기 모임인 ‘니까야 독송회 7년 결사’가 출범하게 된 것은 동산반야회의 고 김재일 이사장의 원력 덕분이었다.

“힘들게 우리말로 번역했는데 우리나라 사람이 읽지 않으면 아무 의미가 없다.”

본격적으로 니까야 읽기 모임이 시작됐을 때의 법보신문의 기사(2007년1월8일자)는 다음과 같았다.

“‘니까야 읽기 7년 신행결사’에 참여한 대중들은 1월 4일 오후 7시 동산불교회관 법당에서 쌍윳따니까야 의 첫 장 ‘갈대의 품-거센 흐름을 건넘의 경’을 독송하는 것으로 7년 신행결사 대장정의 첫 발을 내디뎠다.(중략)

취재기자는 이어서 모임에 참석한 사람들의 육성도 전해주고 있다.

“초기불교 공부를 꾸준히 해왔다는 최정환 씨는 ‘다소 느슨한 감이 있기는 했지만, 상당히 의미 있는 시간이었다’고 첫 시간을 자평했다. 그리고 친정어머니와 함께 니까야 읽기 7년 결사에 참여한 천윤경 씨는 ‘기초교리를 배우고 신행생활을 하면서 무엇인가 미진하고 풀리지 않는 부분들이 있어 답답하던 중 니까야 읽기 모임을 알게 됐다’며 ‘7년이라는 세월이 만만치 않지만 이런 기회가 또 있을까 하는 생각에서 참여하게 됐는데, 한글니까야를 읽으면서 순간순간 희열을 느끼기도 했다’고 첫 날의 소감을 밝혔다.”

2. 7년 결사의 과정과 마무리

결사를 시작한 지 1년 뒤에 월간 <불교와 문화>에서는 이렇게 취재했다.

“지도 법사인 이미령 역경위원이 먼저 읽을 경전에 대해 간략히 설명한다. 나오는 인물과 설해진 계기, 기억해야 할 부분 등을 소개한 다음 함께 1시간여 동안 큰 소리를 내어 경전을 읽는다. 그러고 나서 궁금한 점을 질문하고 대답하는 시간을 갖는다.”(월간 불교문화, 2008년 1월호)

“안순자 불자(69·마포구 성산2동)는 ‘비슷한 내용이 자꾸 되풀이되는 것이 처음에는 짜증났으나 이제는 그 법문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마음으로 알 것 같다’면서 ‘되풀이해서 읽을수록 의미가 다가오고, 다른 책도 읽어보고 싶은 마음이 생겨 아들에게 가끔 불서를 사오라고 한다’고 밝혔다.(중략) 독송회에 참여하는 것이 ‘마치 부처님의 생생한 육성을 듣는 것 같아 좋다’는 박영철 거사(54·서초구 반포동)는 ‘7년 후 『아함경』을 끝내면 대승경전도 읽어볼 계획’이라고 의욕을 보였다. (당시) 니까야독송회 회장 김영수 거사(37·경기도 덕양구 화정동)는 ‘읽다보니 아난이나 가섭 존자가 마치 할아버지처럼 생각돼 친근하면서도 진한 감동이 느껴진다’면서 ‘니까야 공부를 하다보니 나의 전공인 불교미술 제작에도 새로운 눈이 떠진다’고 밝혔다.” (월간 불교문화, 2008년 1월호)

『주간불교』의 취재 기자는 당시 결사에 참여한 사람들의 이야기에 조금 더 귀를 기울이면서 다음과 같은 기사(2009. 4.30일자)를 썼다.

초기 경전을 봉독하고 담긴 뜻을 배우는 강의를 들으면서 회원들은 부처님 법에 쉽게 다가갈 수 있는 계기가 됐다고 입을 모은다. 대승경전의 추상적인 개념들이 자기 안에서 체화 될 수 있었다는 것이다.

불교에 이제 갓 입문했다는 이법운심 보살(62)은 “경전을 전혀 모르고 왔는데도 쉽게 부처님 말씀을 공부할 수 있다”면서 “시간이 지날수록 부처님 법을 알아간다는 게 신기하고 내 자신이 기특하다”고 말했다.(중략)

 

25년 간 불교를 공부해왔다는 이정혜(60, 자광심) 독송회 총무는 니까야를 독송하면서 무엇보다 모르고 무조건 믿었던 불교에서 벗어났다고 강조했다. 이 총무는 “25년 불교를 믿으면서 친족의 죽음도 겪고 힘든 일이 많아 고민하면 대부분 ‘천도재를 지내라’는 답변이었다”며 “니까야를 읽으면서 스스로 미혹한 부분에서 벗어날 수 있었고 적어도 모르면서 무조건 불교를 믿지는 않게 됐다”고 속내를 털어놨다. 이 총무는 “초기 경전은 읽으면 읽을 수록 어렴풋이 알았던 불교 교리들이 교통정리가 되는 것 같다”고 즐거워했다.

3년째 경전읽기 모임을 꾸준히 해온 사람들에게서는 ‘부처님 법을 알아간다는 것’, ‘실생활에서도 도움이 된다’, ‘무조건 믿는다는 것에서 벗어났다’, ‘어렴풋이 알았던 교리들이 교통정리가 되는 것 같다’는 소감이 흘러나왔다. 소리로 전해지고, 문자로 적혀 내려왔던 붓다의 가르침이 현대인의 삶을 툭 건드리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하지만 막연한 ‘환희심’이나 ‘가피’가 아니라 구체적으로 자신의 일상에 어떤 변화가 일어나고 있음을 깨달았다는 회원들의 인터뷰가 흥미롭다. 그리고 그 모임을 이끌어간 나는 사람들과 이야기를 나누는 과정에서 그들이 자신의 목소리로, 그리고 자신의 언어로 붓다의 가르침에 대해 말을 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경전에서 그랬다더라” “스님이 그러셨더라”가 아니라 “내가 생각하기에 부처님은 ···셨던 것 같습니다.”라는 말을 하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스님과 같은 매개자가 없으면 붓다를 스스로 인지할 수 없을 것만 같았던 보통의 불자들은 이렇게 신행생활의 주체가 되어 자신의 생각으로 자신의 언어로 자신의 목소리로 불교이야기를 하기 시작했다.

니까야 독송 7년 결사는 2013년 12월19일 회향했다. 그러는 사이 초기경전의 한글번역작업은 매우 다채로워졌다.

3. 경전읽기 모임 참여자들을 인터뷰하다

법보신문에는 ‘나의 발심수행’이란 제목의 연재물이 2004년부터 시작해서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다. 나는 이 연재물을 주의 깊게 살펴보곤 하는데 그때마다 참 흥미로운 사실을 확인한다. 대한민국 불자들에게 있어 경전수행은 ‘무조건 금강경’이고, 특히 사경수행은 ‘무조건 법화경’이라는 점이다. 팔만사천법문이라는 말도 있듯이 수없이 많은 경전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한국의 불자들에게 선택받은 경전은 ‘오직’ 금강경과 법화경이라는 사실이 흥미롭지 않은가? 참으로 많은 사람들이 금강경을 열심히 독송해서 마음의 평화를 얻고, 삶의 지혜를 얻고, 가피를 입어 횡액을 무사히 건넜다고 고백한다. 그런데 그보다 더 많은 숫자의 사람들이 금강경을 비롯한 경전들을 아무리 읽어도 뭔가 와 닿지 않는다고 고백한다. 그들의 말은 거의 똑같다.

“훌륭한 말씀이겠지요. 하지만 우리 같은 중생이 뭐 다 알 수 있나요? 그거 다 알면 부처님이게요? 그냥 스님들이 읽으면 좋다고 하니까 읽는 거지요.”

‘읽으면 좋다’- 경전을 대하는 보통 불자들이 늘상 듣는 말이다. ‘어디에 좋은가?’라고 물으면 ‘분별심 내지 말라’라는 따끔한 질책이 돌아온다. 이 얼마나 모호하고도 무모한 문답인가. 지금 자신에게 무엇이 필요한지도 파악하지 못한 사람에게 ‘무조건 좋다’라고 경전을 권하면서도 ‘읽다 보면 저절로 트인다’라면서 ‘그러기 전까지 분별심 내지 말라’는 대답이 과연 타당한가?



4. 번역경전 읽기 모임은 어떤 영향을 미칠까

1)개인에게 미치는 효과

몇몇 사람과 인터뷰를 하면서 그들이 힘주어 말하는 대목들을 살펴보았다.
임희근씨의 경우 ‘현실성’이라는 말을 강조했다. 우리글로 번역된 초기경전을 읽으면서 안개 속에 부옇게 가려져 있던 것이 또렷하고 명백하게 현실적으로 다가왔다는 말이다. 많은 불자들이 불교란 어떤 것인가를 물으면 명확한 대답을 하지 못한다. 불교의 메시지가 워낙 깊어서 그런 것일 수도 있겠지만 불자들의 삶과 유리되어 있기 때문이기도 하다. 초기경전은 질문이 정확하고 그에 대한 붓다의 대답도 명확하다.

조성애씨의 경우 ‘역사성’이란 말을 유난히 강조하는 것처럼 느껴졌다. 초기경전을 공부하면서 성지순례를 떠나보니 ‘경전 속에 등장하던 지명이 바로 이곳이구나’라는 것을 확인하면서 환희심이 생겨났다고 그는 말했다. 지금 살고 있는 이 현재와 현실을 무시한 저 너머는 의미가 없다. 조성애씨는 우리가 우러르고 겸손히 받아들이는 가르침이 ‘진짜로 이 곳’에서 펼쳐진 것이라는 것을 확인했다. 그런 기반 위에서 대승의 가르침도 무난하게 소화가 되었다는 그의 말에서 불자들에게 필요했던 것은 바로 이 ‘역사성’이었음을 확인했다.

변택주씨의 경우 우리말로 부드럽게 번역된 경전을 ‘합송할 경우의 효과’를 강조했다. 경전 관련 모임이 누군가 한 사람의 강의에 의존하는 것이 아니라 다함께 한 목소리로 낭송하는 방향으로 필히 이어지는 것은 수행이 삶 속에서 그래도 펼쳐지는 것과 다르지 않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 아닐까.

박주석씨와의 대화에서는 니까야 독송결사가 한 개인에게 어떤 의미가 있는지를 생각하게 되었다. 니까야는 다른 경전들과 달리 붓다가 숱한 사람들과 대화를 나누는 경의 모음이다. 경전 독송자는 기꺼이 그 대화에 참여하게 된다. 질문자의 모습 어디쯤에서 독송자 자신의 모습을 보게 되고, 그 질문에 친절하게 대하는 붓다의 모습을 통해서 자신의 고민이 정당한 것임을 느끼게 되면서 독송자들도 자기 인생의 주인공으로서 어떤 자세를 취해야 하는지를 익힌다. 기도만능주의가 아니라, 자신의 현재를 바라보고, 풀어내고자 의지를 일으키고, 인과법 등에 빗대어 스스로 사색하면서 살아갈 힘과 용기를 얻었다고 그는 말했다.

2)경전읽기 모임의 효과

그렇다면 이런 장점을 가진 경전 독송이 공동체 안에서 꾸려질 때는 어떤 효과를 갖게 될까? 무엇보다 한문을 거치지 않았다는 점에서 많은 독송자들이 편안하게 생각한다는 점이 흥미롭다. “한문경전은 어렵다”는 것이 사람들 사이에 팽배했음을 반증하기도 한다. 한문이라는 문자는 글자 하나하나마다 수많은 뜻을 동시에 담고 있어서 똑 부러지는 해석을 유도하기가 어렵다.

하지만 원전에서 우리글로 직역된 경전을 만나면서 사람들은 글자(문자)풀이보다는 내용 파악에 주력하게 되었다. 주석서 등의 도움을 받으면 아무리 어려운 내용이라도 어느 정도 파악할 수가 있기 때문이다. 서울불교대학원대학의 정준영교수는 “한문은 다의적인 데다 함축적인 메시지를 품고 있는 문자이기 때문에 그 내용을 파악하기가 어려웠지만 팔리어는 그 뜻이 단순하고도 또렷하다. 그래서 팔리어를 직역한 우리글 초기경전을 읽는 분들은 무엇보다도 ‘쉽다’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라고 말한다.

전체적인 맥락을 짚어가면서 실재한 인물들과의 문답을 통해 붓다라는 존재를 확인하는 과정은 불자들에게 자신이 살아 있는 부처님을 친견하고 그 회상(會上)에 동참했다는 뿌듯함을 안겨준다.

예전에는 스님이라는 필터를 통해서 부처님 가르침을 만났다면 이제는 달라졌다. 직접 부처님 회상에 참여해서 그때 일어난 일들을 독송하게 된 것이다. 필터를 통해서 받아들이는 가르침은 아무래도 변형되기 십상이다. 부처님 가르침이 온전히 전해지기 보다는 전달자의 취향과 근기에 따르기 때문이다(그림1). 하지만 직접 한글로 번역된 경전을 접하면서 재가자는 전문수행가인 스님과 동등하게 불제자로서 신행생활을 하게 되었다고 말할 수 있다(그림2).



이런 만족감은 불자들의 적극적인 자세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재가불자들이 자발적으로 경전 읽기 모임을 만들고 이끌어가고 있다는 것이다. 늘 전문적 수행자(스님)에 비해 한참 낮은 차원의 후원자로서 존재하던 불자들이 이제는 직접 부처님의 가르침을 만나고 합송하고 자신들의 목소리로 이야기를 나누면서 그 위상이 달라지고 있다는 것이다.

초기경전 속에 등장하는 다양한 수행법을 익히려는 움직임도 보이고 있다. 정준영 교수는 “니까야라는 방대한 문헌 속에 등장하는 다양한 수행법들을 자꾸 만나다 보면 경전이라는 텍스트의 도움을 받으며 참선수행에 실제로 임할 수 있다”고 말한다. 간화선의 경우 사람마다 저마다의 목소리로 선을 말하고 있는 실정인 반면, 니까야에는 명상의 단계가 조목조목 설명되어 있기 때문에 누구나 시도해볼 수 있고, 중간점검을 텍스트에 의거해 받을 수 있기 때문에 수행의 생활화에도 도움이 된다.

3)현시대 속에서 살아 숨 쉬는 붓다의 가르침으로

니까야에 있는 돈, 부부, 사랑, 자연과 생태, 음식, 외도, 대화법, 심리치료… 등 이런 주제들을 해당분야의 불자전문가가 다룰 경우, 사회파급력은 매우 크다. 실제로 행정학, 경제학, 경영학을 전공한 윤성식 교수는 초기경전에서 다뤄지고 있는 ‘돈’에 관한 책을 냈다. 그의 책 『부처님의 부자수업』은 일반사회에서도 관심을 보여서 연합뉴스, 머니투데이, 서울경제 등 경제일간지가 이 책을 소개하고 있다. 스님이 아닌, 실물경제에 밝고, 세계적으로 경제의 흐름을 꿰뚫고 있는 전문가가 부처님의 말씀을 경전에 근거하여 거론한다는 것이 이들의 호기심을 불러일으킨 것으로 보인다.

또한 초기경전을 공부하는 옥복연 종교와젠더연구소 소장의 제안이 없었더라면 그와 내가 함께 쓴 <붓다의 길을 걷는 여성>도 세상에 나오기 힘들었을 것이다. 이 책은 오마이뉴스와 인천일보, 그리고 한겨레신문에서 관심을 보였는데, 재가여성불자의 이야기를 여성학전공자와 여성칼럼리스트가 썼다는 사실이 호기심을 유도한 것이라 생각한다.

우리글로 번역된 초기경전을 각 분야의 전공자들이 만났을 때 이 시대 난제의 해법을 부처님 가르침에서 끌어올 수도 있다. 초기경전에 입각하여 이론을 세우고 제시한다면, 불교의 대(對) 사회적 역할은 충분히 제 역량을 발휘할 수 있으리라 본다.

우리글 번역경전 읽기 모임은 개인의 종교적 심성을 키우고, 현실생활에 적용하면서 불자로서의 삶을 가꿔가게 해준다. 재가불자의 주체적 신행생활은 불교가 시대에 발맞추고 시대의 난관에 함께 고민하고 해결책을 모색하며, 희망을 안겨주는 방향으로 나아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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